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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토 요코 지음, 변은숙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30

 


놀잇감은 일감이 됩니다
― 이모토 요코
 이모토 요코 글·그림
 문학동네 펴냄, 2002.10.20.

 


  어른들은 장난감을 만듭니다. 어른들은 장난감 가게를 엽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장난감을 팝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내미는 장난감을 받아서 놉니다. 장난감을 받아서 노는 동무를 본 아이는 저도 장난감이 갖고 싶습니다. 아이를 제 어버이를 조릅니다. 아이들 어버이는 다른 아이들 장난감 때문에 또 장난감을 새로 사고 다시 삽니다. 장난감 만드는 어른은 자꾸자꾸 새 장난감을 만듭니다. 그래야 돈을 벌 수 있거든요.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장난감이 쏟아집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장난감을 깎거나 다듬으며 만들 줄 모릅니다. 어른들이 가게에 가서 돈을 치러야 장난감을 얻을 수 있는 줄 여깁니다.


  어른들이 돈을 들여 장만한 장난감을 받은 아이들은 마치 보배라도 되는 듯 여깁니다. 아이로서는 이 장난감이 재산입니다. 가끔 동무한테 빌려주며 함께 놀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혼자 놉니다. 그런데, 혼자 놀다가 지칩니다. 이윽고 새 장난감을 얻고 싶습니다. 집안 가득 장난감투성이인데, 자꾸 새 장난감을 바랍니다.


  손수 깎고 다듬어 만든 장난감이라면 질리거나 물리지 않습니다. 하루아침에 뚝딱 하고 어른들이 돈으로 장만해서 내미는 장난감은 어른 손에서 아이 손으로 가는 때부터 질리거나 물립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내미는 장난감, 이 가운데에서 돈으로 장만한 플라스틱 장난감은 끝없이 새 장난감을 부릅니다.


.. 가만히 들여다보니 달팽이가 당근을 먹고 있었어요. 느릿느릿, 입으로 녹여 가며 천천히 천천히 ..  (6쪽)


  우리 아이들은 예부터 장난감이 따로 없었습니다. 장난을 치면서 손에 쥐는 장난감은 거의 안 가졌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예부터 놀잇감을 마련했습니다. 스스로 마련하든 어버이나 어른이 깎고 다듬어서 살며시 건네든, 우리 아이들은 먼먼 옛날부터 놀잇감을 마련하거나 얻었습니다.


  놀면서 손에 쥐기에 놀잇감입니다. 이와 달리, 어른들한테는 일감입니다. 일하면서 손에 쥐기에 일감일까요? 그렇기도 하고, 일할 거리가 일감이기도 합니다. 어른으로서는 풀뽑기도 일감이요 절구질도 일감입니다. 그러니, 호미로 풀을 캘 적에 일이 되면서 일감이요, 이 일과 일감이란 아이들한테는 놀이와 똑같아요.


  아이들이 어른 곁에서 흙을 호미로 쪼면 놀이입니다.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른 둘레에서 절구질을 흉내내면 놀이일 뿐,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몸이 크고 키가 자라면서 놀이와 흉내에서 차츰 일로 거듭납니다. 절구나 다듬잇돌을 갖고 놀던 아이들이 어느새 절구와 다듬잇돌로 일을 합니다. 놀면서 노래하던 아이들이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불러요.


  놀이노래는 시나브로 일노래로 거듭납니다. 놀이는 어느새 일로 다시 태어납니다. 아이들이 나무를 깎아 만들던 놀잇감은, 어느 때부터 나무를 깎아 만드는 지팡이가 되고 시렁이 되며 기둥이 됩니다. 나무를 켜거나 썰며 놀던 아이들이 나무를 깎고 다듬어 집을 짓습니다. 흙을 쪼고 풀을 뜯으며 놀던 아이들이 흙을 가꾸고 풀밥을 짓습니다.

 


.. 다음날 달팽이 새끼들은 초록똥을 쌌어요. 잎사귀색 똥을요 ..  (24쪽)


  이모토 요코 님 그림책 《좋아질 것 같아》(문학동네,2002)를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달팽이 두 마리를 선물로 받고는 당근을 슬며시 건넵니다. 아이는 당근을 안 좋아하나 봐요. 당근이 얼마나 맛난데, 이 아이는 당근을 왜 안 좋아할까요. 당근맛을 아직 모르기 때문일 테지요. 당근이 얼마나 대단한 줄 모르는 탓일 테지요.


  달팽이는 당근을 먹고는 당근똥을 눕니다. 달팽이는 배추를 먹었으면 배추똥을 눌 테지요. 사람도 똑같아요. 사람도 당근을 먹으면 당근똥을 누어요. 사람도 밥을 먹으면 밥똥을 누고, 불고기를 먹으면 불고기똥을 누어요. 과자를 먹은 사람은 과자똥을 누고, 술을 마신 어른은 술똥을 누어요.


  밥은 똥이 됩니다. 똥은 다시 밥이 됩니다. 놀이는 일이 됩니다. 일은 다시 놀이가 됩니다. 즐겁게 먹는 밥은 즐겁게 누는 똥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 좋은 거름이 되어요. 즐겁게 하던 놀이는 즐겁게 누리는 일이 되어, 놀이노래를 일노래로 삼고 일노래는 또 놀이노래처럼 여기면서 하루가 빛납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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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똥 베틀북 철학 동화 1
헬메 하이네 글 그림, 이지연 옮김 / 베틀북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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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9

 


똥과 흙과 밥
― 코끼리 똥
 헬메 하이네 글·그림
 이지연 옮김
 베틀북 펴냄, 2001.12.20.

 


  아이들이 똥을 눕니다. 어른들도 똥을 눕니다. 어른은 똥을 눌 적에 말없이 뒷간에 가서 힘을 줍니다. 아이들은 똥을 눌 적마다 어버이를 부릅니다. “나 똥 눌게.” 하고 말합니다. 굳이 안 밝히고 누어도 되지만, 똥을 누는 일도 꼬박꼬박 알려주고 싶구나 싶은 한편, 똥을 누고 난 다음 밑을 닦거나 씻어 달라는 뜻입니다. 머잖아 아이들 스스로 밑을 닦거나 씻을 수 있다면, 애써 어버이를 부르며 “나 똥 눠.” 하고 말하지는 않겠지요.


  우리가 누는 똥은 예부터 거름으로 삼았습니다. 똥과 오줌을 알뜰히 그러모아 흙을 살리면서 살았습니다. 날마다 먹는 밥이란, 날마다 누는 똥이 거름이 되어 얻습니다. 날마다 누는 똥이란, 날마다 먹은 밥을 몸에서 알뜰살뜰 삭혀서 나옵니다.


  나무가 떨구어 흙바닥에 뒹구는 가랑잎은 찬찬히 삭아서 나무를 살찌우는 거름이 됩니다. 가을걷이를 마치고 모가지 잘린 볏포기는 겨우내 삭으며, 봄날 땅갈이를 하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으로 돌아간 뒤 새롭게 흙에서 태어납니다. 흙에서 숨을 쉬고, 흙으로 숨을 쉽니다. 흙이 숨을 쉬고, 흙이 숨을 나누어 줍니다.


.. 코끼리는 기운이 넘치고 행복해져서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기가 힘들었어요. 코끼리가 제대로 셈을 했을까요 ..  (44쪽)


  밥을 알뜰히 다스리는 사람은 똥을 살뜰히 다스립니다. 밥을 즐겁게 먹는 사람은 똥을 즐겁게 돌봅니다. 맛나게 밥을 먹고 시원스레 똥을 누어요. 기쁘게 밥을 차리고 힘차게 똥을 매만져요.


  새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나무열매를 얻습니다. 나무열매를 먹고 나서 포로롱 날아갈 적에 으레 똥을 뽀직 하고 쌉니다. 새들이 누는 똥은 나무 둘레 흙땅에 톡톡 떨어집니다. 새똥은 나무가 새롭게 기운을 얻도록 북돋우는 거름이 됩니다. 새는 나뭇가지에서 열매도 먹지만 벌레도 잡습니다. 나비 애벌레나 나방 애벌레를 잡아요. 애벌레는 나뭇잎을 알맞게 갉아서 먹습니다. 이러다가 곱게 깨어나기도 하고, 애벌레일 적에 새한테 잡혀서 먹히기도 합니다. 새는 열매와 애벌레를 찾아 나뭇가지에 앉습니다. 나무 곁에서 먹이를 찾는 새들은 언제나 나무한테 새똥 거름을 내어줍니다.


  그러면, 사람은 나무한테 무엇을 돌려줄까요. 나무를 베고 자르고 꺾는 사람은 나무한테 무엇을 베풀까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만 여길 뿐, 나무한테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나요. 나무한테 사랑도 꿈도 따순 손길도 베풀지 않으면서, 그저 숲을 베거나 무너뜨리기만 하나요.


.. 코끼리는 매우 행복했어요. 100년이 지난 후에야 0을 알게 되었지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풀과 나뭇잎과 더하기와 빼기에 대해서도 말예요 ..  (54쪽)


  헬메 하이네 님이 빚은 그림책 《코끼리 똥》(베틀북,2001)을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코끼리는 천천히 어른이 되면서 마흔아홉 살, 쉰 나이에 이릅니다. 그러고는 이때부터 차츰 늙어 가만가만 아흔아홉 살, 백 나이에 이릅니다.


  기쁘게 태어나 즐겁게 하루하루 누립니다. 새로운 빛을 어느 나이에 깨닫고는 다시금 곱게 하루하루 즐깁니다. 그러고는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이 코끼리에 앞서 다른 어버이 코끼리들도 이렇게 살았겠지요. 이 코끼리에 뒤이어 다른 새끼 코끼리들도 이렇게 살아가겠지요.


  우리들은 밥을 몇 그릇쯤 비우면서 살아갈까요. 우리들은 똥을 몇 차례쯤 누면서 살아갈까요. 우리들이 먹는 밥은 어디에서 비롯할까요. 우리들이 누는 똥은 어디로 갈까요. 흙에서 나오는 밥을 즐기면서 흙으로 돌려주는 똥이 되는 삶인가요. 흙에서 나오는 밥이지만, 정작 흙한테 똥 한 무더기 돌려주지 않고 바다에 쓰레기로 버리는 삶인가요. 날마다 먹는 밥이 정갈하고 아름답기를 바란다면, 날마다 누는 똥 또한 정갈하고 아름답게 흙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고 생각할 노릇이라고 느껴요. 그래야, 비로소 삶이 삶다울 테니까요. 밥을 지키고 똥을 보살필 때에 이 지구별에 아름다운 사랑이 드리운다고 느껴요. 4347.1.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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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림책은 내 친구 36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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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사진을 <로타와 자전거> 그림책하고

나란히 놓고서 찍었습니다.

두 그림책이 아주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로타와 자전거>는 1982년에 처음 한국말로 번역되었는데,

(어쩌면 1979년이었는지 모릅니다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사랑받고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터라,

이참에 함께 사진으로 선보입니다.

즐겁게 누리셔요.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8

 


별잔치를 가슴에 담는 삶
―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논장 펴냄, 2013.12.16.

 


  하늘에 걸린 달이 초승달 되고, 초승달이 어느새 그믐달 되면, 밤하늘은 온통 별잔치입니다. 서울이나 부산에 살더라도, 대전이나 광주에 살더라도, 인천이나 대구에 살더라도, 조그마한 도시에 살더라도, 시골 읍내나 면소재지에 살더라도, 집안에 있는 전깃불을 모두 끄고, 길가에 있는 전깃불은 손으로 가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봐요. 그윽한 별잔치가 얼마나 고운지 함께 누려요.


  한겨울 그믐밤에는 마을 고샅길 전깃불이 있어도 별잔치를 가리지 못합니다. 지구별과 제법 가까운 별은 눈부시게 밝습니다. 지구별과 제법 먼 별은 미리내가 됩니다. 지구별과 아주 먼 별은 흐릿흐릿 허연 바탕입니다.


  달에서 지구별 바라본 사진이라든지, 달에서 먼 우주를 바라본 사진을 고맙게 얻어서 들여다보면, 드넓은 우주에 뭇별이 환하게 빛납니다. 이렇게 많은 별이 이렇게 넓은 우주에 그득해요. 지구별은 아주 조그마한 삶자리입니다. 지구별은 드넓은 우주를 이루는 작은 깨알입니다.


.. 로타가 다시 말했어요. “난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미아 마리아가 말했어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허풍이 너무 심하네.” 요나스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어요. “그럼 스키 타고 방향 바꾸기도 할 수 있어?” 요나스는 요즘 한창 방향을 바꾸며 스키를 타는 연습을 하고 있거든요. 로타는 발끈 화를 냈어요. “내가 언제 방향을 바꿀 수 있댔어?” “좀 전에 뭐든지 할 수 있댔잖아.” “할 수 있어. 방향 바꾸기만 빼고 뭐든지 다.” ..  (3쪽)

 

 


  오늘날 사람들은 거의 다 도시에 살아가기 때문인지 별을 잊습니다. 별을 잊으면서 별을 잃습니다. 별을 잊고 잃으면서 달 또한 잊고 잃어요.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인 달조차 잊고 잃으면서, 온 우주를 채우며 밝히는 별빛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를 함께 잊고 잃어요.


  지난날 사람들은 거의 다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거의 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고 풀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거의 다 시골에서 전기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지난날 사람들은 함경도에 살든 전라도에 살든, 평안도에 살든 경상도에 살든, 밤하늘을 그득그득 채우는 별잔치를 언제나 누렸어요. 드넓은 우주를 밝히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별 가운데 하나가 지구라고 노상 느끼고 깨달으면서 살았어요.


  별을 느끼고 우주를 생각하는 사람은 상냥하며 착합니다. 별을 느끼지 않고 우주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상냥하지 않을 뿐더러 착하지 않습니다. 별을 느끼고 우주를 생각하는 사람은 평화와 사랑을 꿈꿉니다. 별을 안 느끼고 아주를 안 생각하는 사람은 평화와 사랑 아닌 전쟁과 권력과 재산에 끄달립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요. 맑은 냇물을 늘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맑은 숨결로 살아가요. 공장에서 버리고 아파트에서 흘려보내는 지저분한 쓰레기물 흐르는 냇물 옆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맑은 숨결로 살아가기 어려워요. ‘맑은 물’을 마시지 못하니까요. 맑은 물을 두 손으로 뜨지 못하고, 맑은 물을 눈과 코와 귀와 살갗으로 누리지 못하니까요.


  나무가 우거진 푸른 숲을 누리는 사람과 나무 한 그루조차 못 누리는 사람은 삶이 달라요. 다만, 나무는커녕 풀 한 포기조차 없는 데에서 살더라도 마음이 넉넉하고 너그러운 사람 있어요. 나무 우거진 아름다운 숲속에서 살지만 마음이 좁거나 아픈 사람 있어요.


  맑은 냇물과 함께 살아가더라도 스스로 몸가짐을 곱게 추스를 때에 고운 삶이 되어요. 맑은 냇물과 함께 살아가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몸가짐을 곱게 추스를 줄 알면 고운 삶으로 나아가요.


.. 로타는 스키 지팡이 없이도 스키를 타곤 했지만, 비닐봉지 두 개와 밤세를 들고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안되겠다. 넌 빵 봉지 속에 들어가 있어.” 로타는 빵 봉지 속에 밤세를 우겨 넣고 고무줄로 다시 꼭 묶었어요. 봉지 속에서 밤세가 조금 못마땅한 눈으로 로타를 바라보았어요. 로타가 밤세를 달랬어요. “조금만 참아. 그 대신 배가 고프면 빵을 조금 먹어도 좋아. 티 나지 않게 말이야.” ..  (7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쓴 글에 일론 비클란드 님이 그림을 붙인 《난 뭐든지 할 수 있어》(논장,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예수님나신날 기다리는 아이들은 ‘성탄절나무’를 집안에 꾸미고 싶습니다. 로타네 아버지는 ‘마을에서 전나무 파는 가게에 그만 나무가 더 없다’고 말합니다. 전나무를 사올 수 없다고 해요. 로타네 아이들은 몹시 서운합니다.


  그런데, 살짝 알쏭달쏭합니다. 로타네가 살아가는 곳은 큰도시가 아니에요. 거의 시골이라 할 만한 작은 마을입니다. 그러면, 로타네 아버지는 아이들과 함께 눈썰매 이끌고 가까운 숲으로 가서 전나무 한 그루 벨 수 있어요. 한 시간을 걷든 두 시간을 걷든 숲으로 마실을 가면 돼요. 마을 어른들이 함께 숲으로 나들이를 가서 ‘전나무 마련하지 못한 집’ 숫자에 맞추어 전나무를 베어 올 수 있어요.


  전나무를 꼭 돈으로 사야 하지 않으니까요. 돈으로 사는 전나무도 누군가 숲에서 베어서 가져오니까요.


  어린 로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로타네 어머니와 아버지도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돈으로만 하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아요. 전나무를 살 돈은 있으나 전나무는 없잖아요? 그러면, 돈이 아닌 ‘삶과 몸짓과 마음’을 움직여 전나무를 장만해야지요.


.. 로타는 아줌마의 베개를 폭신폭신하게 부풀렸어요. 그리고 빵을 두툼하게 썰고 버터를 발라 아줌마한테 드렸어요. 숨이 찰 때 먹으면 좋다고 하면서요. 그러고는 설거지도 하고 바닥도 쓸었어요. 뭐든지 어찌나 척척 잘 해내는지, 로타 스스로도 감탄스러울 정도였답니다. “이만큼이나 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아줌마, 또 시킬 일 있어요?” “그럼, 가게에 가서 신문 좀 사다 주겠니?” 로타는 이 심부름이 마음에 쏙 들었어요 ..  (14쪽)

 


  예수님은 어디에서 나셨을까요. 지구별에서 나셨지요. 지구별은 어떤 별일까요. 우리들이 살아가는 별이지요. 우리들이 살아가는 별은 어떤 별인가요. 예수님이 나신 별이지요. 예수님은 어떤 넋일까요. 사랑이 그득한 넋이겠지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사랑이 그득한 지구별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넋이에요. 누구나 사랑 그득한 넋입니다. 서로서로 따사로운 사랑을 나누면서 맑은 눈빛으로 환하게 웃는 사람들입니다.


  가슴속에 고운 사랑 있으면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가슴속에 맑은 사랑 있으면 언제나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 로타는 돈도 힘도 이름도 딱히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린 로타는 스스로 씩씩하고 꿋꿋하게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로타는 스스로 마음속으로 외치거든요. “참말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하고.


  스스로 마음으로 외치고 속삭이며 이야기할 때에 스스로 할 수 있어요. 스스로 할 수 없다 여기는 사람은 참말 스스로 못해요. 스스로 할 수 있다 여기는 사람은 참말 스스로 해요.


.. 아빠도 말했어요. “아무렴, 다른 전나무들은 다 잊어도 로타의 전나무는 영원히 기억할 거야.” 로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가만히 이런 생각을 했어요. ‘신기해. 난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아. 크리스마스트리를 구하는 일이든 뭐든 다 할 수 있어. 맞아. 정말로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  (28쪽)

 


  아름다운 빛이 별과 함께 지구로 찾아와요. 아름다운 사랑이 서로서로 마음속에서 샘솟아 지구별을 감돌아요. 내 마음속에서 자라는 사랑을 우리 살가운 이웃한테 건네요. 우리 살가운 이웃이 건네는 사랑을 즐겁게 내 마음으로 받아요. 아이들하고도 주고받아요. 곁님하고도 나누어요.


  함께 하기에 즐거운 사랑입니다. 같이 나누기에 기쁜 사랑입니다. 함께 걷기에 즐거운 삶입니다. 같이 돕고 돌보기에 기쁜 삶입니다.


  그나저나, 어린이책 《난 뭐든지 할 수 있어》인데, 이 예쁜 책에 적힌 글월은 어린이 눈높이와 걸맞지 않습니다. 어린 로타는 그림책에서 ‘다섯 살’로 나와요. 한국 나이로는 일곱 살이라 할 만하지 싶습니다. 곧, 한국으로 치면 일곱 살 어린이 눈높이로 맞추어 이 그림책 글월을 가다듬어야 올바릅니다. 여덟 살도 아홉 살도 아닌 일곱 살 눈높이로, 초등학생 교과서에 나오는 말마디나 어른들 읽는 인문책에 나오는 말마디 아닌 일곱 살 어린이 말마디에 맞추어, 신문이나 방송에서 흐르는 말투 아닌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듣고 배울 말투로 추슬러야 아름답습니다.


 허풍이 너무 심하네 → 허풍이 너무 세네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고 → 겨울 방학이 되었고
 별로 어렵지 않을 → 그리 어렵지 않을
 로타네 가족이 사는 → 로타네 식구가 사는
 아줌마한테 안부 전해 주렴 → 아줌마한테 잘 계시느냐 말씀 여쭈렴
 빵 봉지 속에 들어가 있어 → 빵 봉지에 들어가
 게다가 속도도 빨랐어요 → 게다가 무척 빨랐어요
 집에 도착했을 때 → 집에 닿았을 때
 로타가 힌트를 주었어요 → 로타가 귀띔을 했어요
 얼마나 겁을 먹고 있을지 → 얼마나 무서워 할는지
 너무 울적하니까 → 너무 슬프니까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어요 → 큰 소리로 외쳤어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자 →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자
 혹시 쓰레기 더미 맨 위에 → 설마 쓰레기 더미 맨 위에
 절대, 절대 안 배울 거야 → 다시, 다시 안 배워
 스스로도 감탄스러울 정도였답니다 → 스스로도 놀랄 만했답니다
 이만큼이나 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 이만큼이나 하자면 쉬운 일은 아니죠
 화를 내며 연방 으르렁거렸지만요 → 골을 내며 자꾸 으르렁거렸지만요
 하지만 트리는 꼭 있어야 된다고요 → 그렇지만 나무는 꼭 있어야 된다고요
 자, 식사하자 → 자, 밥 먹자
 못 구하면 그때는 단념하는 거다 → 못 사오면 그때는 그만두자
 트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 짐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전나무는 아주 근사했지만 → 전나무는 아주 멋졌지만
 로타의 전나무는 영원히 기억할 거야 → 로타 전나무는 늘 떠올리겠어


  아이들한테 어떤 말을 물려줄 때에 아름다울는지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일곱 살 어린이가 어떤 말을 쓰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빌어요. 게다가, 로타네는 도시 한복판이 아닌 고즈넉한 마을에서 살아갑니다. 숲으로 둘러싸이고 새들이 날아다니는 조용한 마을에서 살아갑니다. 한결 상냥하면서 부드러운 말마디를 떠올려야지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가장 사랑스럽고 따사로우면서 환한 말을 익힐 수 있도록, 이 그림책 말마디를 하나하나 다듬어야지 싶습니다.


  어른들이 익숙하게 쓴대서 아무 말이나 아이한테 들려줄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니까 일곱 살 어린이한테 들려주어도 되지 않습니다. 교과서가 다 옳지 않습니다. 한국말사전이 다 알맞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나오거나 한국말사전에 실린 낱말이 아닌, 어른과 아이가 서로 살갑고 사랑스레 나눌 아름다운 말을 헤아릴 때에 즐거운 삶입니다. 그리고, 일곱 살 어린이가 글을 깨쳤다고 할 적에, 이 아이가 다섯 살 동생한테 물려줄 말을 떠올려요. 일곱 살 어린이가 네 살이나 세 살 동생한테 말을 가르치는 모습을 헤아려요.


  어른들은 일곱 살 어린이한테 어떤 말을 물려줄 때에 아름다울까요. 일곱 살 어린이는 어버이한테서 어떤 말을 배워서 제 어린 동생한테 어떤 말을 들려줄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밤하늘 그득 채우는 별잔치를 올려다보면서 생각해 봐요.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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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08 05:56   좋아요 0 | URL
우리 집 아이들은 이 <로타와 자전거>를 오랫동안 보다 못해
낙서까지 해 놓아서... -_-;;;;
큰아이가 하도 저 그림책을 좋아한 나머지
볼펜으로 그림에 '그림 그린다'며 죽죽 그은 곳이 여럿 있답니다... ㅠ.ㅜ

<난 뭐든지 할 수 있어>가 이번에 새로 나온 만큼
<로타와 자전거>도 곧 새로 나오겠지요...

막내 2014-06-30 13:27   좋아요 0 | URL
<로타와 자전거>는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논장출판사) 제목으로 이번에 출간되었습니다.

막내 2014-06-30 13:27   좋아요 0 | URL
<로타와 자전거>는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논장출판사) 제목으로 이번에 출간되었습니다. 소식 전해드려요~~
 
발바닥 이야기 과학은 내친구 5
야규 겐이치로 글 그림, 엄기원 옮김 / 한림출판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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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5

 


발바닥으로 그리는 사랑과 꿈
― 발바닥 이야기
 야규 겐이치로 글·그림
 엄기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7.1.30. 9500원

 


  맨발로 다니면 재미있습니다. 바닷가 모래밭에서도, 바닷물에 첨벙 뛰어들 적에도 재미있습니다. 골짜기에 가서 동글동글한 돌을 밟으며 골짝물에 몸을 담글 적에도, 빨래터에 가서 물이끼를 벗기고 첨벙첨벙 물장난을 할 적에도 재미있어요.


  숲길을 맨발로 걸어도, 고샅길을 맨발로 다녀도, 밭이나 논에서 맨발로 돌아다녀도 재미있습니다.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싱그럽고, 발가락으로 건드리는 흙과 풀이 상큼해요.


  맨발로 이불을 꾹꾹 눌러서 빨래할 적에도 재미있습니다. 맨발로 대청마루를 쿵쿵 걸어도 재미있습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뿐 아니라 대청마루에서 콩콩 일부러 소리내며 뛰노는 까닭도, 콩콩 소리뿐 아니라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재미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해요.


.. 이 책은 맨발로 읽어야 해 ..  (1쪽)


  한국말에 ‘양말’은 없었어요. 현대 서양문명이 들어오면서 비로소 ‘양말’이라는 낱말을 써요. 예전에는? 예전에 한겨레는 버선을 신었어요. 그런데 들이나 숲이나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버선도 따로 싣지 않았어요. 예부터 여느 시골사람은 누구나 맨발로 일했어요. 손으로 흙을 만지고, 발로 흙을 느꼈어요. 손으로 풀내음을 맡고, 발로 풀빛을 받아들였어요.


  한겨레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살던 시골사람도 맨발로 일하며 살았어요. 영국이든 미국이든 독일이든 프랑스이든,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모두 맨발로 놀면서 자랐어요. 맨손으로 흙을 만지고 맨발로 흙을 밟았어요.


  그렇지만 어느새 맨손이나 맨발로 살아가는 사람이 사라져요. 아이들도 맨손으로 흙을 만지지 못해요. 흙을 만지며 노는 아이들은 아주 드물어요. 흙이 있는 놀이터부터 사라지고, 흙이 있던 운동장도 사라져요. 아이들은 양말에 신으로 발을 감싸요. 손에 흙을 묻히지 않으니 손에서 흙내음이 나지 않아요. 손에서 흙내음이 나지 않으니, 몸이 흙빛하고 멀어져요. 지난날 사람들은 흙빛 손과 발이었고, 흙빛 얼굴과 몸이었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허여멀건 손과 발이요 얼굴과 몸이에요.


  흙을 만지고 밟을 적에는 늘 햇볕을 먹어요. 손으로도 발로도 얼굴로도 몸으로도 늘 햇볕을 먹어요. 햇볕을 먹는 동안 바람을 마셔요. 손과 발과 얼굴과 몸 모두 햇볕하고 나란히 바람을 마시면서 튼튼해요. 바람을 마시는 사이 빗물을 들이켜지요. 냇물과 도랑물도 들이켜고요.


  아이도 어른도 손빛은 흙빛이면서 햇빛이고 바람빛이요 물빛이었습니다. 아이와 어른은 모두 발빛은 흙빛으로 맑고 햇빛으로 환하며 바람빛으로 푸르고 물빛으로 맑았어요.


.. 발바닥으로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어. 잔디 위. 발바닥이 따끔따끔. 기분이 좋아 ..  (12∼13쪽)

 


  사람들은 날마다 밥을 먹지만, 손수 흙을 일구어 나락을 거두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내기나 풀베기나 가을걷이에 하루쯤 일손을 거드는 사람 또한 거의 없습니다. 일손을 거드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일손을 거들어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습니다. 한 해에 하루나 이틀조차 말미를 내지 못해요. 시골에서 벼가 어떻게 자라고 배추가 어떻게 잎을 늘리는지 들여다보는 사람이 매우 드물어요. 한겨레는 김치를 먹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김치가 될 배추나 무를 손수 씨앗으로 심어서 거두는 사람은 아주 적어요.


  어른부터 손으로 흙을 만지지 않아요. 아이들도 어른을 따라 손으로 흙을 만지지 않아요. 어른부터 맨발로 논밭을 드나들지 않아요. 아이들도 어른을 따라 맨발로 논밭을 드나들 일이 없어요.


  맞벌이를 하거나 바깥일로 바쁜 어른들이니,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유치원이나 유아원이나 어린이집을 들락거려요. 아이들은 어버이와 함께 자라지 못하고, 아이들은 어버이와 나란히 흙내음을 맡지 않아요. 아이들은 어버이 살내음조차 맡기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학습과 교육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씁니다.


.. 잘 걷는 사람일수록 대개 발허리가 넓고 다리도 튼튼해서 오래 걸어도 지치지 않아 ..  (27쪽)


  야규 겐이치로 님 그림책 《발바닥 이야기》(한림출판사,2007)를 읽으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발바닥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을 보면서, 우리 어른들 가운데 발바닥을 생각하거나 아끼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으레 자가용을 몰아요. 자가용을 안 몰면 버스나 전철을 타요. 어른들 가운데 자전거로 일터를 오가는 이는 매우 드물어요. 어른들 가운데 두 다리로 걸어서 일터를 드나드는 이는 더더욱 드물어요.


  어른들은 맨발로도 다니지 않아요. 어른들은 맨손으로도 일하지 않아요. 어른들은 스스로 손맛과 발맛을 느끼지 않아요. 아이들 또한 어른들한테서 손맛이나 발맛을 물려받지 못해요. 어른들이 가르치는 지식은 배우지만, 어른들한테서 삶이나 사랑이나 꿈은 이어받지 못해요.


  잘 걷는 사람은 다리뿐 아니라 몸도 튼튼하겠지요. 발가락과 발바닥으로 흙냄새와 풀냄새와 해냄새와 바람냄새와 물냄새 맡을 줄 안다면, 손과 코와 살갗으로도 흙이랑 풀이랑 해랑 바람이랑 물이 베푸는 냄새를 살가이 받아들이겠지요.


  꼭 발바닥만큼 삶을 읽으리라 느껴요. 참말 발바닥만큼 사랑을 나누리라 느껴요. 그예 발바닥만큼 꿈을 키우리라 느껴요. 4346.12.3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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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31 23:58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지난 한해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곁님과 벼리와 보라의 아름다운 시골집
늘 즐겁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빌겠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숲노래 2014-01-01 00:06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2013년 즐겁게 누릴 수 있도록
맑은 빛 나누어 주셔서 고마웠어요.

2014년에도 늘 맑은 웃음과 꽃과 사랑을
둘레에 예쁘게 베풀어 주셔요~~ ^^
 
조금만 내 친구는 그림책
타키무라 유우코 지음, 허앵두 옮김, 스즈키 나가코 그림 / 한림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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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7

 


천천히 자라서 삶이 되는 사랑
― 조금만
 스즈키 나가코 그림
 타키무라 유우코 글
 허앵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10.1.20.

 


  곧 한 해가 저뭅니다. 음력으로 치면 설은 아직 멀지만, 십이월에서 일월로 넘어가는 달력을 보면서 새삼스레 여러 가지를 떠올립니다. 2013년까지 여섯 살이던 큰아이는 일곱 살로 접어듭니다. 올해까지 세 살이던 작은아이는 네 살로 접어들어요. 일곱 살이 될 큰아이는 돌쟁이 무렵부터 혼자서 단추를 꿸 줄 알았습니다. 혼자서 단추를 꿸 뿐 아니라 혼자서 옷을 잘 갈아입습니다. 어느 날에는 하루에 옷을 열 벌 가까이 바꿔 입으며 놀아, 이렇게 한 번 입고 벗은 옷을 어쩌나 하고 애먹기 일쑤였어요.


  이와 달리 작은아이는 네 살이 되지만 아직 단추를 혼자서 못 뀁니다. 혼자서 옷을 입지 못합니다. 아직 양말도 혼자 신지 못합니다. 나는 작은아이가 스스로 단추를 꿰고 옷을 입으며 양말을 신기를 바라면서 안 거들려 하지만, 으레 큰아이가 동생을 도와줍니다. 더 나이를 먹으면 으레 혼자 다 잘 하겠거니 생각하지요. 참말 작은아이는 이렇게 늦구나 하고 새로 배워요. 어쩌면, 나도 어릴 적에 이러했을까 싶어요. 나도 어릴 적에 어머니나 언니한테서 도움을 받아 느즈막히 혼자서 옷을 입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 단비는 시장에 갈 때 엄마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잡을 수 없었습니다 ..  (2쪽)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지내며 돌아봅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어른들은 언제나 사랑을 나누어 주면서 살아가요. 사랑을 먹으며 살아가는 아이들은 마음밭에 사랑씨앗 심으면서 무럭무럭 키웁니다. 사랑을 나누어 주면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마음밭에서 사랑열매 꾸준하게 거두고 가꾸면서 씩씩하게 살림을 일구어요.


  아이들은 언제나 씩씩하게 자랍니다. 사랑받으면 사랑받는 대로 사랑을 가슴으로 포옥 안습니다. 사랑을 못 받거나 덜 받으면 사랑을 못 받거나 덜 받는 대로 따사로운 손길과 눈길을 다스립니다.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사랑을 나누어 주는 어른으로 우뚝 섭니다. 사랑을 덜 받거나 못 받은 아이들도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웃음꽃을 피우는 길을 씩씩하게 걷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어머니와 아버지하고 함께 지내는 하루가 가장 즐겁습니다. 놀이동무도 좋고, 놀이기구도 좋아요. 그러나, 어떤 놀이동무보다도 어버이가 가장 반갑습니다. 어떤 놀이기구보다도 어버이 손길과 눈길이 가장 기쁩니다. 왜냐하면, 아직 어리거든요. 어리기에 따사로운 손길을 타야 합니다. 어린 만큼 너그러운 눈길을 받아야 합니다. 어버이 곁에서 어버이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삶을 익혀요. 어버이 둘레에서 어버이가 나누어 주는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튼튼하게 자랍니다.


.. 밤이 되어 단비가 잠옷으로 갈아입으려 하는데 단추가 잘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엄마한테 도와 달라고 갔더니 엄마는 아기를 재우고 있었습니다. 단비는 다시 한 번 혼자서 단추를 채워 보았습니다 ..  (10쪽)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글을 일찍 깨쳐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외국말인 영어를 빨리 익혀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호미를 쥐거나 낫을 들거나 괭이를 잡고 흙을 만지며 놀아야 합니다. 숲길을 걷고, 멧자락을 타고 오르며, 냇물을 가로질러야 합니다. 바닷물에서 헤엄치고, 들판에서 풀을 뜯으며, 숲속에서 나무를 타며 놀아야 합니다. 어느 만큼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스스로 집 바깥으로 뛰쳐나갑니다. 아직 어릴 적에는 어버이 곁에서 맴돌듯이 놀지만, 일곱 살을 지나고 여덟 살을 거치면서 조금씩 테두리를 넓혀요. 아홉 살이 되고 열 살이 되면, 이제 어디이든 스스로 나들이를 다닐 만하겠지요. 십 리쯤은 혼자서도 오갈 수 있어요. 이때에는 어버이보다 동무하고 사귀면서 온누리를 바라보는 눈길을 넓힐 만해요. 더 너른 누리를 헤아리기 앞서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 스스로 씩씩하게 설 수 있는 기운과 마음과 넋과 꿈’을 사랑으로 받아먹을 노릇입니다.


  글이든 지식이든 외국말이든, 아이 스스로 언제라도 배울 수 있습니다. 한 살 일찍 배운대서 더 잘 하지 않습니다. 두 살 늦거나 열 살 늦게 배운대서 나쁠 일이 없어요. 꼭 여덟 살에 초등학교를 가야 하지 않습니다. 굳이 스무 살에 대학교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아니,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를 반드시 다녀야 하지 않아요. 아이는 입시지식을 배울 까닭이 없어요. 아이는 스스로 살아갈 빛을 익히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스무 살이 되어 대학교에 들어갈 만큼 시험지식은 많이 갖추었다지만, 혼자서 밥을 지어서 차릴 줄 모른다면, 옷을 빨아서 갤 줄 모른다면,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할 줄 모른다면,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칠 줄 모른다면, 이불을 빨거 말리며 해바라기 시킬 줄 모른다면, 씨앗을 심어 밭을 일굴 줄 모른다면, 나무를 돌보며 열매를 거둘 줄 모른다면, 꽃을 바라보고 풀내음을 맡을 줄 모른다면, 어린 동생을 보살피듯이 아기를 따사롭게 어르며 자장노래 부르고 함께 놀 줄 모른다면, 이런 스무 살은 어떤 빛일까요.


  대학생이 되어 인문책은 읽는다 하더라도, 나락 한 톨이 어떻게 다시 볍씨 되어 논자락에서 모로 자라고 이삭을 패며 누렇게 익는가를 깨닫지 못한다면 부질없습니다. 논문을 써서 학사나 박사가 된다 하더라도, 사람을 비롯한 모든 목숨을 살리는 물과 바람과 햇볕과 흙을 헤아릴 줄 모른다면 덧없습니다.


  사랑으로 자라는 아이들은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으로 삶을 가꿀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새로운 빛을 밝힐 줄 알아야 합니다.

 


.. 단비는 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누나가 됐으니까 낮잠은 안 잘거야.” 그런데 자꾸만 눈이 감기려고 합니다. 단비가 말했습니다. “엄마, 조금만 안아 주세요.” “조금만?” 엄마가 단비에게 물었습니다. “네, 조금만이라도 괜찮아요.” 단비가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습니다 ..  (24∼26쪽)


  스즈키 나가코 님이 그림을 그리고, 타키무라 유우코 님이 글을 쓴 《조금만》(한림출판사,2010)을 읽습니다. 어버이로서 먼저 읽고, 아이와 함께 차근차근 읽습니다. 큰아이는 그림책을 보면서 “얘는 왜 단추를 못 꿰어? 여기 두 개 안 뀄네.” 하고 말합니다. “얘는 왜 머리를 못 묶어? 나는 묶을 줄 아는데.” 하고도 말합니다. 참말, 여섯 살 큰아이 말대로, 그림책 《조금만》에 나오는 아이는 혼자서 잘 하는 일이 잘 안 드러납니다. 그동안 혼자서 어머니 사랑을 차지한 탓일까요.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듬뿍 받기만 하면서 씩씩하게 홀로서기를 못 하는 셈일까요.


  그런데, 어린 동생이 태어나 스스로 ‘큰아이’, 곧 ‘누나’가 되면서 새삼스럽게 자라려 합니다. 어린 동생한테 마음을 더 기울일 줄 아는 누나가 되고 싶습니다. 어린 동생을 따사로이 보살필 줄 아는 누나가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 손을 빌지 않고도 씩씩하게 제 놀이와 자리를 살피는 큰아이가 되고 싶습니다. 혼자서 야무지게 옷을 입고 몸을 씻으며 어머니 일을 거드는 큰아이가 되고 싶습니다.


.. 단비는 엄마 냄새 가득한 품에 포옥 안겼습니다. 그동안 아기에게 조금만 기다리게 했답니다 ..  (30쪽)


  아이들과 지내는 동안 집일을 도맡으며 가끔 숨이 차다고 느낍니다. 우리 아이들이 얼른 자라 밥하기랑 빨래하기랑 집안일을 살짝살짝 거들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함께 풀을 뜯어 밥을 차리기를 기다려요. 함께 돌을 나르고 대나무를 베어 울타리도 쌓고, 이것저것 꾸밀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다만, 아이한테 이런 말은 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어느 날 문득 큰아이가 나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왜 이렇게 빨래를 잘 해요? 나는 왜 빨래를 잘 못해요?” 여섯 살 큰아이는 세 살 적부터 설거지를 거들겠다며 작은 손으로 그릇을 부시곤 했습니다. 여섯 살이 무르익고 일곱 살로 접어들려는 요즈막에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차례쯤 설거지를 스스로 맡아서 합니다. 걸레를 빨아서 내밀면 아주 좋아라 웃으면서 함께 걸레질을 합니다. 두 살 적부터 비질을 흉내내더니 세 살 적부터 비질을 제법 잘 합니다. 호미질도 꽤 잘 합니다. 삽질은 아직 몸이 작아서 잘 못하지요. 곧 자전거로 함께 달릴 만하리라 느껴요. 이듬해 봄부터 큰아이는 따로 제 작은 자전거를 타도록 하면서 면소재지까지 오갈까 하고 생각해요. 큰아이가 여덟 살쯤 되면, 집부터 바닷가까지 함께 자전거를 달릴 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조금씩 자랍니다. 천천히 큽니다. 조금씩 힘이 붙습니다. 천천히 눈길을 넓힙니다. 아이가 커서 홀로서는 때까지 어버이는 아이를 따사롭게 품습니다. 아이가 커서 홀로선 뒤로는 이제 아이도 어른이 되어 그동안 저를 돌본 어버이를 따사롭게 안습니다. 아직 아이들은 키도 몸도 힘도 작아서 어버이 품에 포옥 안기지만, 머잖아 이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보다 키도 몸도 힘도 크면서 어버이를 한결 넉넉하게 안아 주리라 느껴요.


  아이는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습니다.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천천히 할매와 할배가 됩니다. 아이는 어느새 새롭게 어른이 되고, 새롭게 어른이 되면서 새로운 빛으로 아이를 낳아 새로운 사랑을 물려줍니다.


  조금씩 흐릅니다. 천천히 이어집니다. 삶도 사랑도 꿈도 따사로운 손길과 손길이 만나면서 한결 빛납니다. 4346.12.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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