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 - 하나뿐인 내 친구
헬게 토르분 글, 마리 칸스타 욘센 그림, 손화수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4



내 이름을 불러 주셔요

― 비발디

 헬게 토르분 

 마리 칸스타 욘센 그림

 손화수 옮김

 어린이작가정신 펴냄, 2014.6.12.



  바람이 붑니다. 아침부터 내내 바람이 붑니다. 날씨 소식을 들으니 태풍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당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구름이 아주 대단합니다. 짙은 구름 두꺼운 구름 옅은 구름 하얀 구름 잿빛 구름 온갖 구름이 아주 빠르게 흐릅니다. 이 가운데 비를 머금은 구름도 있을까요? 아마 있을는지 모르지요.


  나는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두 팔을 뻗습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올해에는 비가 자주 내렸으니 오늘하고 이튿날까지 비를 뿌리지는 않으면 좋겠어, 하고. 하늘에 대고 말합니다. 비가 알맞게 들과 숲을 적시면서 풀과 나무가 푸르면서 싱그럽기를 바란다, 하고.


  구름은 내 말을 들었을까요. 하늘과 바람은 내 이야기를 들었을까요. 휙 하고 바람 한 줄기가 내 몸을 감돌다가 지나갑니다. 다시 휙 하고 바람 두 줄기가 내 발을 휘감으면서 지나갑니다.



.. 타이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작은 고양이를 침대로 안아 올렸어요. 사실 고양이는 침대 위로 데리고 올라가지 않기로 약속했었지요. 하지만 타이라는 그 순간만큼은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어요. 타이라는 그저 행복했어요. 작은 고양이의 자박자박하는 발소리에서 느껴지는 생명력, 보들보들하고 귀엽고 장난기 가득한 고양이. 폭신한 이불 위에 얌전히 누워 있는 작은 고양이 ..  (5쪽)





  아침에 밥상을 차리려고 마당에서 풀을 뜯으며 풀한테 얘기합니다. 오늘도 우리한테 푸른 숨결을 나누어 주렴, 너희가 머금은 햇볕과 빗물과 흙을 우리한테 나누어 주렴, 새로 돋은 잎사귀를 톡톡 뜯을 테니 또 새로운 잎사귀를 곱게 내놓아 주렴, 하고.


  풀은 내 이야기를 들었을까요. 풀은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어느 만큼 알아들을까요. 풀은 내가 가만히 말을 걸 적에 어떤 마음이 될까요. 웃자란 풀을 낫으로 베거나 손으로 뽑을 적에 “미안해, 너희가 여기까지 나니까 베어야 하거든. 얘들아, 우리가 지나갈 길은 마련해 주어야지.” 하고 말합니다. 늘 보던 풀이었으나 엊그제까지 이름을 모르는 채 가끔 뜯어먹던 풀한테 한 마디 건넵니다. “며느리밑씻개야, 너는 언제부터 이 이름을 누구한테서 얻었니. 누군가는 너한테 이런 이름을 붙였겠지만, 다른 시골에서 다른 누군가는 다른 이름을 붙였겠지? 보기 드문 세모난 잎사귀에 보기 드문 마알간 꽃이 피는 너이니, 틀림없이 너를 두고 다른 이름을 붙인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해.”


  풀이름은 표준말 한 가지만 있지 않습니다. 풀뿐 아니라 나무도, 물고기도, 벌레도, 바람도, 흙도, 꽃도, 한 가지 표준 이름만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한 가지 표준 이름만 알려집니다. 오늘날에는 한 가지 표준 이름으로만 말하고, 한 가지 표준 이름으로만 학문을 하며, 한 가지 표준 이름으로만 풀과 물고기와 벌레와 바람과 흙과 꽃 들을 바라보아요.



.. 타이라는 여기저기 귀 기울여 보아썽요. ‘잔디들은 아기 고양이를 뭐라고 부를까?’ 타이라는 정원 잔디밭에 누워 고양이가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까치밥나무들은 아기 고양이를 어떻게 부를까?’ 까치밥나무 열매 사이에서 조용히 귀 기울이기도 했어요. ‘박새들이 고양이를 부를 때는 어떤 이름을 쓸까?’ 타이라는 자두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박새들을 올려다보기도 했지요 ..  (15쪽)





  우리 집 둘레에 마음껏 자라는 풀을 바라보면서 가끔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이 아이들(풀)한테 붙이는 이름이 한 가지여도 될까 하고요. 예부터 고장마다 고을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풀이름을 다르게 붙였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똑같은 풀을 놓고도 다른 이름으로 가리켰습니다. 전라도에서도 화순과 고창이 쓰는 이름이 달랐고, 곡성과 구례가 쓰는 이름이 달랐어요. 읍과 면에서 쓰는 이름이 다르고, 마을과 마을에서 쓰는 이름이 달랐지요.


  그래서, 예부터 마을말·고을말·고장말, 이렇게 말이 다릅니다. 우리는 크게 뭉뚱그려 ‘한국말’을 쓰지만, 마을에서도 ‘집말’조차 달라요.


  내가 풀이 되어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사람) 나(풀)를 바라보면서 어떤 이름으로 가리키려고 할 때에 어떤 느낌이 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참말 사람들은 제멋대로 부르는구나’ 하고 느낄 테지요. 참말 사람들은 ‘내(풀) 밑넋을 헤아리지 않고 함부로 부르는구나’ 하고 느끼리라 생각해요.



.. 타이라와 할머니. 둘은 발을 옮겼어요. 커다란 떡갈나무 아래, 이른 가을빛 속으로. “알고 보니 나는 나무와 친척이더구나.” 할머니가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했어요 ..  (42쪽)




  헬게 토르분 님이 글을 쓰고, 마리 칸스타 욘센 님이 그림을 그린 《비발디》(어린이작가정신,2014)라는 책을 읽습니다. 도톰한 그림책이라고 해야 할는지, 이쁘장한 동화책이라고 해야 할는지, 이쪽에도 저쪽에도 넣기에 어중간하구나 싶은 책을 읽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그림책이면 어떻고 동화책이면 어떨까요. 어느 갈래에 넣든, 내 마음을 아름답게 건드릴 수 있으면 아름다운 책입니다. 내 마음에 사랑스레 다가올 수 있으면 사랑스러운 책입니다.


  이야기를 읽는 책입니다. 삶을 읽는 책입니다. 넋을 읽는 책입니다. 글감이 무엇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림결이 어떠하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줄거리가 어떠하든, 또 글쓴이나 그린이가 누구이건 아무렇지 않습니다. 어른문학이나 인문책이라서 놀라울 책이 아닙니다. 어린이책이라 해서 가볍게 다룰 만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이야기책 《비발디》에 나오는 고양이와 아이와 어른은 저마다 어떤 빛일까요. 이 책에 나오는 아픈 아이와 바보스러운 학교 동무들은 저마다 어떤 숨결일까요. 아이 하나를 따돌리는 학교 동무들은 저마다 집에서 ‘사랑을 받아 태어났고,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입니다. 그러나 어느 아이 하나를 참으로 얄궂게 따돌릴 뿐 아니라 괴롭힙니다. 저희는 집에서 즐거우면서 애틋하게 사랑받으면서, 막상 이웃이나 동무를 사랑하거나 보살피려 하지 못합니다.



.. “모두 꼭 학교에 가야만 하나요?” 페트라는 햇살이 따사로운 쪽마루에서 부모님과 함께 주스를 마셨어요. “그럼, 학교에 가는 건 누구나 해야 하는 의무란다. 그건 너도 잘 알잖니.” 아버지가 말했어요. “갑자기 그건 왜 묻니? 학교 가기 싫은 거야? 책 읽는 게 다시 어려워졌니?” “아니에요. 제 이야기가 아니에요.” ..  (74쪽)




  바람은 ‘바람’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까 궁금합니다. 해는 ‘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까 궁금합니다. 비와 구름과 흙과 풀은 ‘비’와 ‘구름’과 ‘흙’과 ‘풀’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사람’인데, 사람인 우리들은 ‘사람’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름을 불러 봅니다. 어느덧 짙은 구름은 비를 들이붓습니다. 거세게 바람이 몰아치면서,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나무가 흔들립니다. 후박나무는 후박잎과 함께 흔들립니다. 드센 비바람에 흔들리는 후박나무 곁에 서서 후박나무 줄기를 가만히 손에 대어 보면, 바람 따라 나무가 얼마나 크게 휘청거리는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풀만 바람 따라 눕고 선다’고 말하지만, 나무도 바람 따라 눕고 섭니다. 나무 곁에 서고, 나뭇줄기를 만지며, 나무가 바람 따라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비발디》에 나오는 아이는 외로우면서 외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 나오는 아이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조차 아이하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요. 이 아이하고 동무가 되고 싶은 ‘페트라’라고 하는 아이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도 페트라라는 아이하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요.


  아이들은 학교를 의무교육으로 다녀야 하나요? 왜 아이들은 학교를 꼭 다녀야 할까요? 아이들은 학교보다 ‘사랑’을 제대로 받아야 할 숨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의무교육을 받거나 졸업장을 따야 하는 아이가 아니라, 어버이와 이웃과 동무한테서 따순 사랑을 받으면서 즐겁게 웃고 노래할 아름다운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을 부릅니다. 고운 이름을 부릅니다. 저마다 가슴에 아로새긴 착하고 참다우며 멋스러운 이름을 부릅니다. 이름을 부르며 서로 동무가 됩니다. 이름을 부르면서 다 함께 이웃이 됩니다. 4347.8.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킁킁, 맛있는 냄새가 나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78
니시마키 가야코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3



기운을 차리도록 이끄는 빛

― 킁킁 맛있는 냄새가 나

 니시마키 가야코 글·그림

 이선아 옮김

 비룡소 펴냄, 2007.6.1.



  밥이 맛있는 까닭은 갖은 솜씨를 부려서 멋지게 차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배고픈 사람한테 따스한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따스하게 차렸기 때문입니다. 라면 한 그릇이든 가락국수 한 접시이든 모두 맛있습니다. 즐겁게 웃으면서 해님과 같은 사랑을 담아서 내미는 밥 한 그릇이 새롭게 기운을 차리도록 이끕니다.


  날마다 기쁜 날입니다. 태어난 날이라거나 어떤 기림날이기에 기쁜 날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기쁜 날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니 어느 하루인들 안 기쁜 날이 될 수 없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든 눈이 내리는 날이든, 몹시 더운 날이든 매우 추운 날이든, 우리한테는 하루하루 한결같이 아름답게 기쁜 날입니다.


  한 해 가운데 하루만 골라서 케익을 굽거나 떡을 빚을 까닭이 없습니다. 날마다 케익을 구워도 되고, 날마다 떡을 빚어도 됩니다. 우리 삶에서 오늘 하루는 가장 새로우면서 빛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날마다 차려서 날마다 먹는 밥은 날마다 새로우면서 맛난 숨결이 됩니다.



.. 사짱은 허겁지겁 아침밥을 먹었어요. 엄마는 늘 “천천히 먹어야지.” 하고 말하지만 오늘은 그럴 짬이 없어요. 왜냐하면, 쉿, 엄마한텐 비밀이거든요 ..  (2쪽)




  꼭 자가용을 달려서 먼 데로 바람 쐬러 다녀와야 하지 않습니다. 꼭 기차를 타고 한참 달리는 곳까지 다녀와야 하지 않습니다. 꼭 배나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를 다녀와야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아이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도 즐겁습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마을 한 바퀴를 돌아도 재미있습니다.


  선물은 언제나 마음으로 합니다. 나들이도 언제나 마음으로 합니다. 선물로 꽃을 한 송이 꺾어도 되고, 선물로 삼으려고 꽃을 한 다발 꺾어도 됩니다. 들에 나가 꽃을 종이에 곱게 그린 뒤, 그림을 선물할 수 있어요. 들에서 만난 꽃밭을 가슴으로 듬뿍 안아 노래를 하나 지은 뒤, 노래를 불러서 선물할 수 있습니다. 들꽃 이야기를 글로 써서 편지를 선물해도 돼요. 들꽃을 사진으로 담아 넌지시 보여주듯이 선물할 수 있어요.


  날마다 새로우면서 기쁜 하루이기에, 날마다 새로우면서 기쁜 마음이 됩니다. 날마다 새로우면서 기쁜 마음으로 날마다 새로우면서 기쁜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아이와 눈을 맞추어 보셔요.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즐겁습니다. 아이 손에 내 손을 얹어 보셔요. 손을 맞대기만 하더라도 따사롭습니다.



.. 사짱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엄마가 문 앞에 서 있었어요. “엄마, 왜 그래?” 사짱이 묻자, 엄마가 문을 빠끔 열고는 물었어요. “저 애들, 네 친구니?” ..  (22쪽)




  아이들은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가슴에 안기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등에 업히고 싶습니다. 품에 안기면서 포근하고, 품에 안으면서 웃음이 피어납니다. 등에 업히면서 신나고, 등에 업으면서 노래가 흐릅니다.


  예부터 어느 나라 어느 겨레에서든, 아이와 함께 날마다 새로운 삶을 지으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밥을 지으면서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빨래를 하면서 노래가 터져나옵니다. 아이를 재우고, 설거지를 하며, 비질을 하는 동안 노래가 샘솟습니다. 밭일을 하거나 들일을 할 적에도 모두 노래를 했어요. 길을 걸으면서 노래를 했고, 불을 지피거나 나무를 하면서 모두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노래를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대중노래를 듣는 사람은 많지만, 스스로 노래를 지어서 부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노래를 듣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지만, 스스로 내 삶에서 내 노래를 길어올리는 사람을 만나기 아주 어렵습니다.


  왜 노래를 짓지 않을까요. 왜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요. 왜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짓지 않을까요. 왜 언제나 새로운 삶으로 사랑을 짓지 않을까요. 왜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주지 않거나 왜 아이들한테 사랑을 가르치지 않을까요.  



.. 혼자 남은 꼬마 늑대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어요. 사짱이 깜짝 놀라며 꼬마 늑대한테 다가가 물었어요. “왜 그러니, 꼬마 늑대야? 수프를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 났어?” 꼬마 늑대가 잘래잘래 고개를 흔들었어요. 그러더니 이제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어요 ..  (32쪽)




  니시마키 가야코 님이 빚은 그림책 《킁킁 맛있는 냄새가 나》(비룡소,2007)를 읽습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혼자서 그림책을 읽습니다. 나는 아이 곁에서 아이가 그림책 읽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가 한 번 다 읽은 뒤, 책에 적힌 글월을 몇 가지 다듬습니다. “닭고기 수프가 얼룩덜룩(4쪽)”은 “닭고기 국물이 얼룩덜룩”으로, “사짱은 지금 들판으로 가고 있답니다(6쪽)”는 “사짱은 이제 들판으로 간답니다”로, “달걀 프라이가 나한테 달려오고 있어(8쪽)”는 “달걀 부침이 나한테 달려와”로, “덕분에 사짱은 꽃을 많이 많이 땄답니다(20쪽)”는 “그래서 사짱은 꽃을 많이 많이 땄답니다”로, “늑대는 식탁 위에 올라앉아(24쪽)”는 “늑대는 밥상에 올라앉아”로,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어요(32쪽)”는 “훌쩍훌쩍 울어요”로, “엄마는 아이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42쪽)”는 “엄마는 아이가 하나 더 생긴 듯해”로 다듬습니다.



.. 사짱은 꼬마 늑대를 식탁에서 내려 주며 말했어요. “우리 엄마를 잠깐 빌려 줄 테니까 안아 달라고 해 봐.” … 한동안 엄마 품에 안겨 있자 꼬마 늑대는 다시 힘이 났어요. 그래서 엄마 무릎에서 폴짝 뛰어내렸지요. “나 이제 그만 갈래.” 꼬마 늑대는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서서 말했어요. “엄마, 다음에 또 안아 주세요.” ..  (36, 40쪽)



  아이는 어머니한테 선물을 하고 싶어 들판으로 갑니다. 예쁜 들꽃을 꺾고 싶거든요. 그림책을 보면, 아이가 지내는 집 둘레에도 들꽃은 많구나 싶어요. 그러나 아이는 굳이 먼 들판까지 갑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남달리 기리면서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집 둘레 들꽃은 언제나 집에서 즐겁게 바라봅니다. 먼 들판에 피는 들꽃은 집으로 가져와서 새로운 꽃바람을 일으키고 싶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생일을 기리고 싶은 마음인데, 곰곰이 따지면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생일입니다. 날마다 생일잔치입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동이 트면서 새롭게 깨어나거든요. 늘 새롭게 태어나는 하루이니 날마다 생일이고 잔치예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아마 날마다 꽃을 꺾지 싶어요. 어머니가 태어난 날 하루만 꽃을 꺾지 않고 날마다 꽃놀이를 할 테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도 어느 하루만 아이를 안지 않고 날마다 아이를 안을 테지요.


  기운을 차리도록 이끄는 빛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담은 손길로 밥을 짓습니다. 사랑을 실은 눈빛으로 마주봅니다. 사랑을 엮은 이야기가 깃든 책을 읽습니다. 4347.7.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그림책은 내 친구 38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논장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2



스스로 선물하는 사랑

―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14.6.30.



  아이들은 자전거를 달리고 싶습니다. 폭신한 걸상에 앉아 알맞게 발을 구르면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자전거를 달리면서 깔깔 웃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달리면서 자동차 때문에 막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두 다리로 달리고 싶습니다. 이곳에서든 저곳에서든 두 다리로 씩씩하게 달리면서 하루를 신나게 누리고 싶습니다. 학교에 가야 하거나 학원에 가기를 바라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언제나 구슬땀 흘리면서 씩씩하게 달리면서 놀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활개를 치면서 달리고 싶습니다. 나비가 날듯이, 잠자리가 날듯이, 제비가 날듯이, 크고 작은 수많은 새가 하늘빛을 머금으면서 눈부시게 날듯이, 온몸으로 활개를 치면서 달리고 싶습니다. 성적표에 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 어버이가 가진 돈에 얽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늘빛이 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해를 마주하면서 햇빛이 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별을 올려다보면서 별빛이 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눈빛을 밝히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 로타는 그 말에 더욱 화가 났어요. 로타는 아빠 엄마한테 말했어요. “들었죠? 내가 자전거를 못 타는 건 자전거가 없기 때문이라고요.” 그리고 샌드위치를 조금 오물거리고 나서 다시 종알거렸어요. “나 진짜로 자전거 탈 수 있어. 비밀이지만!” ..  (4쪽)




  칠월 여름을 맞이하여 비가 안 오는 날이면 자전거를 몰아 골짜기로 갑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습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습니다. 나는 두 아이를 앞자전거 발판을 구르면서 힘껏 이끕니다. 골짜기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고 비알이 가파릅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고갯길을 오릅니다. 한참 고갯길을 오르면 물살이 빠르면서 시원한 골짜기가 나옵니다. 아이들은 골짜기에서 마음껏 물장구를 칩니다. 아이들은 골짜기에서 기쁘게 물놀이를 합니다.


  더위에 흘린 땀을 골짝물로 씻은 뒤 자전거를 달립니다. 이제는 내리막입니다. 오르막에서는 다 함께 땀을 흘리지만, 내리막에서는 다 같이 바람을 가릅니다. 오르막이 고될수록 내리막이 시원합니다. 비탈길이 힘겨울수록 내려올 적에 빠릅니다.


  골짜기로 가는 동안 이웃마을 들길을 지납니다. 아직 농약을 치지 않을 무렵에는 들빛이 짙푸르면서 잠자리와 개구리와 풀벌레와 멧새가 가득합니다. 시골에 젊은이가 없대서 헬리콥터를 불러 항공방제를 한 차례 하고 나면, 잠자리가 사라지고 개구리 노랫소리가 죽으며 풀벌레도 멧새도 어느새 자취를 감춥니다.



.. 로타는 새로 받은 선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때는 자전거 생각을 까맣게 잊었어요. 아침나절에는 장난감 자동차도 갖고 놀고, 그림책도 보고, 줄넘기도 하고, 그네도 타면서 아주아주 즐겁게 놀았죠 ..  (8쪽)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도시에서 자전거를 달리는 아이들은 들길을 누리지 못합니다. 자전거는 달리지만, 새와 개구리와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누리지 못합니다. 바람에 눕는 풀을 못 보는 도시 자전거이고,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을 못 보는 도시 자전거입니다. 도시에서는 언제나 자동차를 살펴야 해요. 자동차 때문에 자전거를 탈 만한 곳이 아주 줄어요. 자동차 때문에 자전거뿐 아니라 골목놀이가 사라져요. 자동차 때문에 아이들은 놀 곳이 없어요.


  축구장이 있어야 공차기를 하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골목에서나 빈터에서나 마음껏 공차기를 하고픈 아이들입니다. 야구장이 있어야 공치기를 하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나무막대기와 공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공치를 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우리가 누릴 곳은 따사로운 보금자리입니다. 우리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줄 선물은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나무를 심을 만한 마당과 자전거를 달릴 만한 골목이나 고샅과 동무들과 어울려 뛰놀 빈터와 숲을 어른들 스스로 곱게 가꾸어 아이들한테 이어주어야지 싶습니다.



.. “자, 밤세, 쌩쌩 달리는 거야.” … 요나스와 미아 마리아보다 훨씬 빨리 바람을 가르며 쌩쌩 달렸죠. 그래요. 트집쟁이 거리에서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자전거는 여태껏 아무도 본 적이 업었어요. 로타가 소리쳤어요. “멈춰! 멈춰!” 하지만 하전거는 멈출 수 없었고 로타도 멈출 수 없었어요 ..  (19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쓴 글에 일론 비클란드 님이 그림을 담은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논장,2014)를 읽습니다. 멋진 그림책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는 스웨덴에서 1971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에서는 1982년과 1984년에 처음 옮겼습니다. 1980년대 첫무렵에는 ‘현대세계걸작그림동화’ 가운데 11번으로 나왔고, 이때 붙은 책이름은 《로타와 자전거》(백제/문선사 펴냄)입니다. 1980년대에 처음 나왔다가 어느새 사라진 이 그림책을 아끼는 분이 꽤 많았으나 오래도록 되살아나지 못했는데, 2014년에 드디어 논장 출판사에서 곱다라니 엮어서 선보입니다.


  예전 책과 새로운 책을 함께 놓고 살핍니다. 예전 책에서 살짝 뭉개진 그림이 새로운 판에서는 잘 살아납니다. 얼굴빛도 마을빛도 모두 새로운 판이 한결 곱습니다. 그리고, 예전 책은 그림 가장자리가 잘렸으나, 새로운 판은 그림을 잘 살려 주었습니다.


  책이름처럼 이 그림책은 ‘다섯 살 아이가 두발자전거를 타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나는 우리 집 아이들과 이 그림책을 몇 해 앞서부터 즐겁게 보면서 ‘자전거 타는 이야기’ 말고도 다른 이야기에서 한껏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로타 생일에 온 식구가 기뻐하는 모습이 즐겁습니다. 다음으로, 로타가 그네 선물을 받아서, 마당에 선 커다란 나무에 그네를 걸고는 하얀 꽃잎이 나부끼는 한복판에서 노는 모습이 즐겁습니다. 그리고, 로타가 사는 마을 곳곳에 제비들이 춤추는 모습이 즐겁고, 집집마다 마당이 있으며, 나무가 자라고, 꽃잎이 흩날릴 뿐 아니라, 빨래가 해바라기를 하면서 춤추는 모습이 그야말로 즐겁습니다.



.. 바로 그때 길 저쪽에 아빠가 보였어요. 로타는 기둥 위에서 잽싸게 미끄러져 내려갔어요. 아빠가 로타한테 딱 맞는 작은 자전거를 끌고 오지 뭐예요! “어, 어떻게 된 거지?” 하고 로타는 혼잣말을 했어요 ..  (27쪽)





  로타한테는 무엇이든 언제나 선물입니다. 아버지가 베푼 자전거만 선물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마을이 선물이요,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선물입니다. 멋진 오빠와 언니가 선물이고, 살가운 어머니와 아버지가 선물입니다.


  우리한테는 무엇이 선물일까요. 우리는 어떤 선물을 누리면서 살아가나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선물로 삼아서 나누어 주는가요. 우리 어른은 스스로 어떤 빛을 선물로 누리면서, 아이들하고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가요.


  다섯 살 로타는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이나 쉰 살인 어머니와 아버지인 우리들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 꿈을 꿀 수 있습니까?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까? 삶을 지을 수 있습니까?


  요즈막에 시골에서는 농약을 뿌리느라 어디에서나 어수선합니다. 새마을운동과 함께 1970년대부터 불어닥친 농약바람은 2010년대를 지나도록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웬만한 어버이들은 ‘농약 덜 쓴 쌀’이나 ‘농약 안 친 쌀’을 사다 먹으려고 애쓰지만, 막상 시골에서는 농약을 한 차례라도 더 치려고 애씁니다. 도시로 떠난 딸아들이 낳은 아이(손자와 손녀)를 먹이겠다면서 시골 할매와 할배는 ‘농약 듬뿍 쳐서 키운 쌀’을 가을마다 보내 줍니다. 시골에 늙은 어버이를 두고 도시로 떠난 딸아들은 시골서 보낸 쌀보다는 생협 매장에서 ‘유기농 쌀’이나 ‘친환경 쌀’을 사다 먹는다지요. 시골에서는 일손이 없다며 농약에만 기대려 하고, 도시에서는 사람이 넘치고 온갖 병치레가 넘실거리면서 농약을 타지 않은 곡식을 바랍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다섯 살 로타라면 이 나라 시골에서 어떻게 흙을 가꿀까 궁금합니다. 다섯 살 로타가 이 나라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간다면 어떻게 하루를 누릴까 궁금합니다. 4347.7.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훔쳐간 꼬마 도깨비들 - 별하나 그림책 3
사라 다이어 글 그림, 조은수 옮김 / 달리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1



함께 나눌 때에 아름다운 삶

― 세상을 훔쳐간 꼬마 도깨비들

 사라 다이어 글·그림

 조은수 옮김

 달리 펴냄, 2004.2.28.



  아이들은 콩콩 뛰면서 놀 적에 즐겁습니다. 어른들은 신나게 노래하면서 일할 적에 즐겁습니다. 아이들은 깔깔 웃으면서 놀 적에 기쁩니다. 어른들은 빙그레 웃음지으면서 일할 적에 기쁩니다.


  뛰지 못하면서 놀라고 하면 아이들은 좀이 쑤십니다. 노래를 가로막으면서 일만 하라고 시키면 어른들은 죽을 맛입니다. 웃지 못하게 막으면서 놀라고 하면 아이들은 놀지 못합니다. 일할 때에는 웃지 말라고 윽박지르면 어른들은 괴롭습니다.



.. 날마다 꼬마 도깨비들은 밖으로 나와 “아, 세상이 참 아름답구나.” 하면서 놀라워했지요 ..  (7쪽)



  도시에서는 풀이나 나무가 자랄 만한 빈터가 마땅히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손바닥만 한 땅뙈기조차 엄청나게 비싸게 때문입니다. 도시에서는 풀이 자라거나 나무가 솟을 만한 땅을 그대로 두려 하지 않습니다. 가게로 쓰거나 주차장으로 삼거나 건물을 지으려 해요.


  옛날부터 어느 나라에서든 꽃그릇을 두지 않았습니다. 꽃그릇을 둘 일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문을 열고 내다보면 어디에나 풀밭이요 숲이었기 때문입니다. 집을 둘러싸고 온통 풀밭이면서 숲인데, 굳이 집안에 그릇을 따로 두어 꽃을 보려고 하지 않았어요. 철마다 다른 꽃을 만나면서 즐거웠고, 달마다 다른 풀과 잎을 마주하면서 기뻤습니다. 철마다 다른 나물을 캐면서 즐거웠고, 달마다 다른 남새를 거두면서 기뻤습니다.


  이제 도시에서는 어느 집에서나 꽃그릇을 둡니다. 흙이 숨쉬는 빈터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 스스로 흙내음을 맡고 흙빛을 보고 싶기에 꽃그릇을 둡니다. 흙내음을 못 맡고 흙빛을 못 볼 적에는 사람다운 기운을 지키기 어렵다고 느껴, 이제 도시에서는 누구라도 꽃그릇 하나쯤 집안에 두려고 합니다.




.. 도깨비들은 저마다 가져온 것들을 돌조각 속에 잘 간직했어요 ..  (14∼15쪽)



  공원은 흙이 싱그럽게 숨쉬는 곳이어야 아름답습니다. 공원을 두는 까닭은, 엄청나게 몰려들어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안 미치도록’ 할 뜻이기 때문입니다. 공원 한 뼘조차 없이 시멘트 건물만 빽빽하면 어찌 될까요? 최첨단을 달린다는 건물이라 하더라도, 빽빽한 건물만 가득한 곳은 감옥하고 같아요. 풀이 없고 나무가 자라지 않는 곳은 사람들 누구나 사람다움을 잃으면서 바보가 되도록 내모는 감옥이라고 할 만합니다.


  학교 운동장에는 플라스틱 잔디를 깔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라도 ‘흙으로 된 땅’을 밟고 걷거나 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흙내음을 맡아야지요. 비가 올 적에는 빗물이 흙땅을 튀기는 소리를 듣고, 흙땅에 빗물이 고이면서 풍기는 흙내음을 맡아야 합니다. 그저 흙뿐인 운동장인데, 이곳에 풀씨가 날아들어 온갖 풀이 자라는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아무도 안 심었지만, 갖가지 풀이 싱그럽게 돋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도 어른도 푸른 생각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지구별에 풀과 나무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지구별에서 숲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지구별이 모두 도시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지구별에서 숲과 멧골을 밀어붙여 고속도로와 골프장과 발전소만 끝없이 만들면, 관광단지와 호텔과 놀이기구와 아파트만 자꾸 만들면, 이런 지구별은 얼마나 끔찍한 감옥이 될까요?


  숲이 있어야 숨을 쉽니다. 숲이 있어야 밥을 얻습니다. 숲이 있어야 집을 지을 나무를 베어서 쓸 수 있습니다.




.. 도깨비들은 곧 깨달았어요. 해는 하늘이 없으니까 떠 있을 곳이 없고, 하늘은 땅이 없으니까 있을 데가 없고 ..  (19∼21쪽)



  사라 다이어 님이 빚은 그림책 《세상을 훔쳐간 꼬마 도깨비들》(달리,2004)을 읽습니다. 꼬마 도깨비는 여느 때에는 돌조각에 깃들어 지내는데, 아침마다 돌조각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바라본대요. 해와 구름과 들과 숲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아름답다고 노래한대요.


  어느 날 꼬마 도깨비들은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한 가지를 돌조각으로 가져간대요. 이리하여 지구별을 꾸미던 아름다운 것은 모두 사라지는데, 돌조각에 들어온 해와 바다와 흙 모두 제 빛을 잃는다지요. 혼자만 있을 수 없다지요.




.. 도깨비들은 큰맘을 먹고, 가져온 것들을 모두 제자리에 갖다 놓았어요 ..  (26∼28쪽)



  우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무엇을 쓰고, 무엇을 다루는 목숨일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장난감으로 삼을까요? 어른들은 이녁 집에 무엇을 건사할까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돈을 아주 크게 여깁니다. 저마다 돈을 벌려고 힘씁니다. 돈을 더 벌어서 은행계좌에 꽁꽁 모셔 둡니다. 돈을 꽤 많이 벌었어도 이웃과 나누지 않습니다. 책을 꽤 많이 장만했어도 이웃과 함께 읽지 않습니다. 지식을 꽤 많이 갖추었어도 이웃과 주고받지 않습니다.


  어느 때에 아름다울까요. 어느 때에 즐거울까요. 어느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꼬마 도깨비들은 뒤늦게 깨달은 뒤 모두 제자리에 두었대요. 꼬마 도깨비들은 뒤늦게 알아차린 뒤 두 손을 말끔히 비웠대요. 꼬마 도깨비들은 두 손에 아무것도 안 쥐었대요. 꼬마 도깨비들은 ‘내 것’을 하나도 안 두고 그저 기쁘게 웃으면서 바라본대요. 4347.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야? 고양이야? - 베틀리딩클럽 저학년 그림책 2002 베틀북 그림책 10
기타무라 사토시 지음, 조소정 옮김 / 베틀북 / 200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0



아이들 눈망울을 보셔요

― 나야? 고양이야?

 기타무라 사토시 글·그림

 조소정 옮김

 베틀북 펴냄, 2000.5.20.



  풀벌레가 노래하는 밤입니다. 아직 칠월인데 이 밤에 풀벌레 노랫소리만 들릴 뿐, 개구리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지난해에도 이런 여름밤을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께에도 이런 여름밤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온 들판 개구리 노랫소리가 끊어집니다. 왜 개구리 노랫소리가 사라질까요. 왜 논에서 개구리가 울지 않을까요.


  풀벌레가 노래하는 곳도 그리 넓지 않습니다. 풀벌레는 풀숲이 있어야 노래할 수 있습니다. 풀숲이 없다면 풀벌레는 깃들기 어렵고, 풀숲이 없는 데에서 풀벌레는 알을 낳아 새끼를 보기 어렵습니다.


  개구리와 풀벌레가 사라지는 데에서는 벌과 나비도 자취를 감춥니다. 개구리와 풀벌레와 벌과 나비가 사라지는 데에서는 어린이도 자취를 감춥니다. 다시 말하자면, 들이 들답지 못하거나 숲이 숲답지 못할 적에는 시골마을에 아이들이 사라집니다. 아니,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던 아이들을 몽땅 도시로 보내면서, 시골마을 자그마한 학교가 문을 닫고, 시골마을에 남은 늙은 할매와 할배는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와 비닐을 쓰는 ‘새마을 농업’을 할 뿐입니다.



..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엄마 때문에 밥도 못 먹었어요. 엄마가 무지무지 화를 내더라고요. 나는 엄마 손에 붙들려 스쿨버스 타는 곳까지 끌려갔어요. 그렇게 학교에 가게 됐는데……. 그런데 아직도 내가 집에 있는 거예요 ..  (6쪽)




  도시에서는 ‘친환경’이나 ‘무농약’이나 ‘저농약’이나 ‘유기농’ 같은 이름을 붙인 곡식과 열매를 다룹니다. 도시에는 들도 숲도 없지만, 가까운 어느 가게를 가든 ‘농약을 안 썼다’고 하는 곡식이나 열매를 장만하기 쉽습니다. 돈만 있으면 못 사는 것이 없는 도시입니다.


  도시에서는 언제나 사람이 넘치고, 시골에서는 언제나 사람이 모자랍니다. 도시에서는 언제나 기계가 넘치고, 시골에서도 언제나 기곗소리가 가득합니다. 도시에서는 사람이 많아도 기계가 넘치며, 시골에서는 사람이 모자라기에 기계가 넘칩니다.


  생각할 노릇입니다. 사람들이 온통 도시로 몰리는 오늘날 얼거리에서, 시골에 몇 안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농약 안 쓰는 농업’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를 낳으면 시골에서 키우지 않는 오늘날이고, 아이들이 자랄 적에 아이들더러 ‘너 농사꾼이 되렴’ 하고 이끌거나 가르치지 않는 오늘날인데, 왜 도시사람은 ‘농약 안 쓰거나 덜 쓴 것’을 그토록 찾으려 할까요.



.. 일어나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았어요. 고양이가 돼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죠. 고양이는 학교에 안 가도 되잖아요, 안 그래요 ..  (10쪽)





  마을마다 거의 비슷한 때에 농약을 칩니다.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은 올해부터 ‘친환경농업단지’에서 ‘풀렸’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농약 검사에서 걸렸’기 때문입니다. 농약을 안 쓰든 ‘친환경 이름이 붙은 농약을 쓰’든 해야 했을 테지만, 두 가지를 모두 어겼으니, 농약 검사를 할 때마다 걸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참으로 마땅한 일인데, 논에 농약을 치면 개구리가 모조리 죽습니다. 개구리를 비롯해서 거미와 잠자리도 다 함께 죽습니다. 이와 함께 제비와 수많은 새들이 죽고, 벌과 나비까지 죽어요.


  개구리와 거미와 잠자리와 제비와 새가 죽으면 어찌 될까요. 모기와 파리가 들끓습니다. 모기와 파리가 들끓으면 어떻게 할까요? 다시금 벌레 잡는 약을 끝없이 뿌리지요. 끝없는 수렁이 되풀이되는 셈이고, 끝 간 데 없이 쳇바퀴를 도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려고 농약을 칠까요. ‘새마을 농업’은 왜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와 비닐을 앞세워 ‘수확량 늘리기’를 꾀할까요. 더 많이 거두어서 무엇이 좋을까요. 흙을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와 비닐로 망가뜨리면, 이런 흙에서 이듬해에 무엇을 거둘 수 있을까요. 흙이 망가지고 들과 숲이 엉망진창이 된 시골에 어떤 어버이가 어떤 아이를 그대로 두면서 삶을 가꾸고 싶을까요.



.. 엄마는 마침내 아들에게 뭔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엄마는 걱정이 됐는지 의사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당장 와 달라고 했어요 ..  (27쪽)




  기타무라 사토시 님이 빚은 그림책 《나야? 고양이야?》(베틀북,2000)를 아이와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학교에 가기 싫어 날마다 늦잠을 자는 아이가 나옵니다. 아이 어머니는 날마다 아침에 아이를 깨우느라 바쁩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한테 그저 밥을 먹여 얼른 학교로 보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뒤에도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교사도 아이가 저마다 어떤 삶을 누리는지 살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는 어른도 지치거나 고단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학교에 가기 싫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도 어른도 억지로 학교에 갑니다.


  학교란 어떤 곳일까요. 학교는 왜 세웠을까요. 어른들한테 일자리를 주려고 만든 학교일까요. 아이들한테 입시지옥을 겪게 하려고 만든 학교일까요. 학교에서는 어떤 지식을 어떤 교과서로 아이들 머릿속에 집어넣고 싶을까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삶을 가꾸는 어른으로 지내는가요.


  아이들 눈망울을 바라볼 수 있기를 빌어요. 어른들은 서로서로 눈빛이 어떠한지 들여다볼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나는가요? 어른들은 눈빛이 해맑게 빛나는가요?


  교육을 학교에 맡기지 말아요. 아이들이 배울 것은 어른들이 먼저 스스로 배운 뒤, 아이한테 기쁘게 물려주어요. 삶을 사회나 복지나 문화에 맡기지 말아요. 스스로 삶을 가꾸면서 날마다 새롭게 노래를 불러요. 그리고, 노래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텔레비전으로 아이한테 노래를 가르치지 말아요. 어버이 스스로 즐겁게 삶을 노래하면서 이 노래를 아이들이 물려받을 수 있도록 해요.


  아이가 어떤 숨결인지 바라볼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로 지내면서 어른이 된 우리들은 서로서로 어떤 넋인지 깨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무엇을 먹을 때에 우리 몸이 기쁘고, 어떤 일을 할 때에 웃음이 솟으며, 어느 곳을 보금자리로 삼아 어떤 마을로 일굴 때에 다 같이 어깨동무하면서 아름다울 수 있는지 생각하기를 빌어요. 4347.7.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