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 도토리 어린이 도감 2
도토리 기획, 권혁도 그림, 김진일 외 감수 / 보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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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9



풀벌레 한 마리도 우리 이웃

― 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

 도토리 기획

 권혁도 그림

 보리 펴냄, 2002.1.4.



  온누리에 얼마나 많은 벌레가 살아가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온갖 벌레는 가짓수가 아주 많습니다. 크기가 저마다 다릅니다. 숫자는 지구별 사람 숫자하고 댈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벌레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벌레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한편, 저마다 일이 아주 많아서 벌레를 들여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만날 만한 벌레가 몇 가지 없기도 합니다. 흙바닥을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는데다가, 숲을 밀고 들을 없애고 냇바닥에도 시멘트를 씌우거든요. 오늘날 문명 사회는 개미도 거미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문명 사회는 어떠한 벌레도 깃들지 못하도록 꽁꽁 틀어막습니다.



.. 농약을 치며 농사를 짓기 전에는 논이나 시냇물에 물방개나 물장군 같은 곤충이 무척 흔했다. 산에 길을 내고 큰 음식점이 들어서기 전에는 산골짜기 물 속에도 날도래가 살고 물가에는 반딧물이가 날아다녔다 ..  (19쪽)




  꽤 지난 옛일이 되었는데, 스님 한 분이 도룡뇽을 살리려는 마음을 담아 고속철도 공사를 막으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아주 많은 사람들은 ‘그깟 도룡뇽’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느새 아주 많은 사람들은 ‘사람 아닌 목숨’한테는 ‘그깟 것’이라 말합니다. 새롭게 길을 낸다면서 나무를 아무렇지 않게 베지요. 새롭게 아파트를 짓는다면서 숲과 들을 아무렇게나 무너뜨리지요.


  참 웃기는 노릇이라 할 텐데, 옛날 유물이나 유적이 나오면 공사를 멈춥니다. 멀쩡히 있던 아름다운 숲이나 들은 무너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사슴벌레나 하늘소를 지키려고 고속도로 공사를 안 하는 일이 없습니다. 감나무나 은행나무 한 그루를 지키려고 건물을 안 짓는 일이 없습니다. 개구리와 맹꽁이와 두꺼비를 살리려고 도시를 안 넓히는 일이 없습니다. 꾀꼬리와 소쩍새와 제비를 헤아려서 도시를 줄이거나 아파트를 없애려고 하는 일이 없습니다.



.. 하루살이는 알이나 애벌레 때에는 물 속에서 살다가 어른벌레가 되면 물 밖으로 나온다. 애벌레는 물 속에 떨어진 썩은 나뭇조각이나 물풀을 먹고 산다. 애벌레가 맑은 물에서 사는 하루살이도 있고 더러운 물에서 사는 하루살이도 있다. 그래서 어떤 하루살이 애벌레가 사는지를 보고, 물이 깨끗한지 더러운지 가늠할 수 있다 ..  (50쪽)





  한두 대통령 때문에 4대강사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꽤 많은 이 나라 여느 사람들이 이 일에 손을 들어주었기에 4대강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4대강사업은 온 나라 물줄기를 끊고 망가뜨리는 짓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적잖은 한국사람한테는 이런 토목공사가 돈벌이가 되고 일자리가 됩니다. 까부수는 일자리와 돈벌이 때문에 참말 한국에서는 까부수는 일만 생깁니다. 토목건설이 없다면 아마 도시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일도 없고 돈도 못 벌 테지요. 그리고, 직업군인 제도가 없으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도 없고 돈도 못 법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군대는 평화를 지켜 주지 않습니다. 군대가 전쟁을 막지 못하기도 합니다만, 군대도 ‘직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모로 아리송한 사회요 나라이며 정치라 할 만하지요. 일자리와 돈벌이를 바란다면, 숲과 들을 아름답게 지키면서 일자리를 마련하고 돈을 벌어야지요. 토목건설을 벌이거나 군부대를 거느리려면 누군가 돈을 내야 합니다. 돈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땅에서 샘솟을까요? 숲과 들을 지키면, 우리는 숲과 들에서 먹을거리를 넉넉하게 얻습니다. 먹을거리를 넉넉하게 해마다 꾸준하게 얻으면, 이동안 일자리가 있고 돈이 되지요. 너른 숲과 들에서 얻는 먹을거리를 혼자 못 먹으니 저잣거리에 내다 팔면 돈이 돼요.


  나라에서 4대강사업을 꾀한 까닭은, 도시에서는 더 토목건설로 돈이 될 만한 길이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나라에서 발전소와 송전탑을 자꾸 밀어붙이는 까닭도 오직 하나입니다. 자꾸 새로운 발전소를 짓고 송전탑을 박아야 일거리가 생기고 돈벌이가 나옵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 한 가지뿐입니다.


  생각을 넓히지 않습니다.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삶을 지으려 하지 않습니다. 경제발전과 돈만 헤아리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수많은 목숨들이 애꿎게 죽습니다. 이러면서 사람살이도 메마르지요. 이웃 풀벌레와 숲짐승을 헤아리지 않는 마음씨로는, 같은 사람끼리도 서로 돕거나 아끼는 길하고 어긋나요. 사람살이에서도 따돌림과 괴롭힘이 흔히 벌어집니다. 이웃을 밟고 올라서려는 사람이 득시글거립니다. 동무를 속이거나 등치는 짓도 잦습니다.



.. 게아재비가 물풀 사이에 가만히 있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먹이가 다가오면 낫처럼 생긴 날카로운 앞다리로 재빠르게 잡는다. 작은 물고기나 올챙이나 장구벌레같아 살아 있는 물벌레를 잡아서 침처럼 뾰족한 입을 찔러서 즙을 빨아먹는다. 봄이 오면 물 밑 진흙 속이나 썩은 나무 틈에 알을 낳는다 ..  (98쪽)





  《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보리,2002)을 읽습니다. 이 책이 나올 무렵이나 요즈음이나 거의 비슷한데,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땅 풀벌레와 물벌레와 숲벌레를 살펴서 하나하나 그림으로 담아 엮은 책은 드뭅니다. 경제와 정치와 사회와 교육이 이러저러하다는 목소리는 많지만, 정작 한국사람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어떤 빛이 있는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곤충도감》은 어떤 책일까요? 벌레 한 마리를 이웃으로 여겨 아끼거나 사랑하려는 마음을 담는 책입니다. 《나무도감》은 어떤 책일까요? 나무 한 그루를 동무로 삼아 아끼거나 사랑하려는 넋을 싣는 책입니다.


  벌레를 지식이나 정보로 살피려는 책은 도감이 아닙니다. 아니, 벌레 한 마리를 살펴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붙여 책으로 엮는 사람이라면, 벌레 한 마리를 이웃이나 동무로 느낄 노릇입니다. 벌레 한 마리를 살피는 일은 과학도 생물학도 아닙니다. 삶입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할 이웃과 동무를 살피면서 사귀듯이 벌레 한 마리를 만나고 살피며 사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림 한 장을 그리고 한살이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 삼을 많이 심어 기를 때는 마을 근처에도 삼하늘소가 흔했다. 지금은 삼을 기르지 않아서 마을에서는 삼하늘소를 볼 수가 없다. 지금도 산 속에 집이 있던 자리는 어쩌다 삼이 남아 있는데, 이런 곳에서는 삼하늘소를 볼 수 있다. 삼하늘소는 봄부터 가을까지 나타나는데 6월에 가장 많다 ..  (196쪽)





  나는 개똥벌레와 이웃으로 지내고 싶습니다. 개똥벌레 이야기가 책 하나로, 도감 하나로, 영화 하나로 나올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섣불리 시멘트를 흙땅에 들이붓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깊은 골짜기와 논도랑에 시멘트를 퍼붓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나는 사마귀하고 여치랑 이웃으로 지내고 싶습니다. 숲과 들이 제 빛을 지키면서 아름답게 우거지기를 바랍니다. 경쟁과 돈과 군대로 버티는 사회가 아니라, 아름다운 꿈과 사랑으로 서로 새롭게 짓는 하루로 밝히는 마을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에 미사일을 퍼붓는 사람하고, 풀숲에 농약을 뿌리는 사람은 서로 똑같은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새로운 전쟁무기를 만드는 사람하고, 발전소와 고속도로와 송전탑 때문에 숲과 들을 밀어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은 서로 똑같은 넋이라고 느낍니다.


  이제 허튼 짓은 그만둘 때가 아닌가요. 식량자급율 100퍼센트는커녕 30퍼센트도 안 되는 이 나라에서 언제까지 도시를 더 늘리고, 언제까지 시골을 시멘트덩이로 만들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여름과 가을에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나라 어디에서든 개똥벌레가 반짝반짝 밝은 춤을 출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나라 어디에서나 나비와 잠자리가 날며, 제비와 꾀꼬리가 노래하는 삶터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자동차와 기차와 비행기는 이제 줄여야 합니다. 도시는 몸집을 줄이고, 일자리를 바란다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야 합니다. 내 이웃이 누구인지 제대로 바라보아야 하고, 내 동무가 어떻게 지내는지 옳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곤충도감》은 참 멋진 책입니다. 다만, 처음 나온 지 열 해가 훨씬 지난 만큼, ‘어린이한테 읽히려는 책’을 넘어서 ‘어른 누구나 읽을 책’이 되도록 더 많은 풀벌레와 물벌레와 숲벌레 이야기를 집어넣는 고침판을 선보일 수 있기를 빕니다. 4347.8.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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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목소리 - 누치두 다카라 - 생명은 귀한 것 평화징검돌 1
마루키 도시 글, 마루키 이리 그림, 신명직 옮김 / 평화를품은책(꿈교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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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8



평화를 부르는 목소리는 평화

― 오키나와의 목소리

 마루키 도시·마루키 이리 글·그림

 신명직 옮김

 꿈교출판사 펴냄, 2013.10.8.



  전쟁을 저지르는 이들은 언제나 똑같은 말을 읊습니다. 바로 ‘평화를 지키려는 뜻’이었다고. 그런데, 전쟁무기는 전쟁을 부를 뿐, 평화를 부른 적이 없습니다. 전쟁무기를 손에 쥐어 저쪽 나라를 쳐부수면, 저쪽 나라는 어느새 더 커다란 전쟁무기를 챙겨서 우리한테 들어옵니다. 그동안 받은 아픔을 곱배기로 돌려주려 하지요. 그러면, 우리 쪽에서는 저쪽보다 더 엄청난 전쟁무기를 갖추어 다시 쳐부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쪽은 아예 우리를 싹쓸이하듯이 없애려고 아주 무시무시한 전쟁무기를 만듭니다.


  핵무기는 저쪽 나라를 ‘나쁜 놈’으로 삼아 싹쓸이를 하듯이 죽여서 없애려고 하는 전쟁무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총과 칼도 저쪽을 나쁜 놈으로 여겨 얼른 죽여서 없애려고 하는 전쟁무기입니다.


  전쟁무기이기에 전쟁을 부릅니다. ‘평화무기’란 없습니다. 평화를 이루도록 하는 힘은 사랑입니다. 평화는 언제나 사랑으로만 이루고, 사랑으로 이루는 평화는 아름다운 꿈을 키웁니다.



.. 푸르고 푸른 바다였습니다. 무지개처럼 빛나는 바다였지요. 햇빛이 밝게 내리쬐고, 수많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놀고 있었습니다 … 오키나와는 고구마랑 쌀이 나고, 사탕수수에서 설탕이 나고, 바나나랑 파파야, 귤도 나는 풍요로운 섬이었습니다. 쯔루와 사부로는 아단나무 잎으로 팔랑개비를 만들거나, 예쁜 조가비를 주우며 아침부터 밤까지 뛰어놀았습니다 ..  (2∼4쪽)





  전쟁은 언제나 사랑을 억누릅니다. 사랑을 억누르는 전쟁에는 아름다움도 꿈도 없습니다. 전쟁무기를 갖춘 군대는 전쟁훈련만 합니다. 씨앗을 심어 곡식이나 열매를 거두려 하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를 갖춘 군대는 더 많은 무기를 갖추려고만 합니다. 풀을 베어 실을 얻어 옷을 짜려 하지 않습니다. 나무를 돌보아 우람하게 자라면 고맙게 몇 그루 얻어 집을 지으려 하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으로만 나아가고, 군대는 전쟁훈련만 하며, 전쟁무기와 군부대는 언제나 평화를 짓밟고 사랑을 억누릅니다.


  지구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전쟁훈련을 하는 군부대에서는 폭력이 일어납니다. 사람을 사랑이 아닌 신분과 계급으로 나누어 다루니, 으레 폭력이 일어날밖에 없습니다. 전쟁훈련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면 뒤처질 텐데, 군부대에서 뒤처지는 젊은이는 따돌림을 받고 주먹질을 받으며 거친 말에 마음이 다칩니다. 군부대는 전쟁을 꾀해 저쪽 나라를 모두 죽이는 훈련을 받는 터라, 전쟁훈련을 제대로 따라오도록 모든 젊은이를 다그칩니다. 바보로 만들고, 노예로 삼으며, 기계처럼 부립니다. 군부대에 끌려가는 젊은이는 모두 소모품입니다. 군부대에서는 젊은 사내를 소모품으로 부리려고 성접대를 하고, 성접대를 하는 동안 술집과 사창가가 늘어나며, 전쟁이 터지면 성노예(위안부)를 만들거나 강간을 저지릅니다. 지구별에서 불거지는 모든 성폭력과 강간은 군부대 때문에, 전쟁 때문에 일어납니다.



.. 포격이 잠잠해지고, 잠시 조용해졌을 때였습니다. 일본군 3명이 들어와 소리쳤습니다. “일본군이 오키나와를 지킨다. 일본군이 일본을 지킨다. 너희들은 나가라! 안 나가면 죽인다.” 모두들 너무 무서워 무덤을 뛰쳐나왔습니다 … 구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내도, 다섯 아이도 모두 죽었습니다. 단지 조선사람이기 때문에, 스파이가 되기 쉽다는 이유였습니다. 다른 섬사람들도 일본군을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없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  (17∼19쪽)





  마루키 도시 님과 마루키 이리 님이 함께 빚은 그림책 《오키나와의 목소리》(꿈교출판사,2013)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한국에 2013년에 처음 나오는데, 일본에서는 1984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두 사람은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전쟁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아픈 나날을 보냈고, 언제나 ‘전쟁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를 그림에 담아 이웃한테 보여주었습니다. 일본이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짓을 부끄럽게 여길 뿐 아니라, 일본 군인과 정치꾼이 하지 않는 ‘뉘우침’을 보여주고, 일본 군인과 정치꾼이 죽이거나 괴롭힌 ‘일본 나라 수수하고 작은 사람들’ 이야기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서는 이웃나라 사람을 수없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전쟁 미치광이 일본’에 힘을 보태지 않는 제 나라 사람(일본사람)도 군인과 정치꾼이 수없이 죽였습니다. ‘전쟁 부역자인 작고 수수한 사람들’조차 ‘전쟁 부역을 하지 않는 작고 수수한 이웃’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가까운 한국전쟁을 헤아려 보면, 군인과 경찰과 정치꾼이 아닌 ‘수수한 마을사람’끼리 네 편과 내 편으로 갈라져서 서로 괴롭히는 끔찍한 짓이 벌어졌습니다. 전쟁도 싸움도 다툼도 미움도 모르던 사람들이, 정치권력자가 만든 군부대와 전쟁무기 때문에 애꿎게 소용돌이에 휩싸였어요. 전쟁을 거스르고 평화로 나아갔어야 하는데, 무서운 정치권력자 주먹과 군홧발 때문에 덜덜 떨다가 그만 작고 수수한 사람 스스로 ‘전쟁 부역자’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남녘에서 죽인 북녘사람은 누구일까요? 한국전쟁 때 북녘에서 죽인 남녘사람은 누구인가요? 한겨레는 두 나라로 쪼개진 채 이웃과 동무를 이웃이나 동무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한겨레는 한 나라 아닌 두 나라로 갈라진 채 서로서로 바보가 되는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군부대와 전쟁무기를 놓지 않는 남·북녘 두 나라에는 따돌림이 판칩니다. 어리석은 제국주의 전쟁놀이를 뉘우치지 않는 일본 사회와 정치와 교육에서도 따돌림이 판치지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왜 따돌릴까요? 바로 전쟁과 군부대 때문입니다. 사회와 나라와 정치와 교육과 문화가 온통 군국주의로 치달으니, 학교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이웃이나 동무로 여기지 않아요. 이러한 얼거리는 한국도 똑같기에, 한국에서 따돌림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 “누나, 배고파.” 사부로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조명탄이 어두운 밤하늘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쯔루는 굴러다니는 사탕수숫대를 주워 들고 고구마밭으로 뛰어들어가, 있는 힘껏 흙을 파헤쳤습니다. 고구마 두세 개를 찾아 재빨리 돌아왔습니다. 옷으로 흙을 털어낸 다음, 사부로에게 먹이고 자기도 먹었습니다. 발밑에 고여 있던 물을 마셨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은 피가 섞인 흙탕물이었습니다 ..  (27쪽)



  평화로운 나라에서는 언제나 사랑스러운 바람이 붑니다. 평화로운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이웃사촌입니다. 서로서로 이웃사촌인 마을에서는 부자와 가난뱅이가 따로 없습니다. 언제나 서로 돕고, 언제나 서로 나누니까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이웃돕기를 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도 이웃돕기를 하지 않습니다. 사랑스러운 마을에서만 이웃을 돕고 두레를 하며 품앗이를 벌입니다. 아름다운 마을에서는 언제나 놀이마당을 이루고 이야기잔치와 춤잔치와 노래잔치를 벌입니다.


  잘 살펴보셔요. 한겨레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겨레에서는 ‘나라(정치 제도)’가 있기 앞서, 어디에서나 작은 마을로 살림살이를 이루었고, 작은 마을에서는 늘 잔치를 열었어요. 큰잔치 작은잔치 늘 잔치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마을잔치’는 거의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는 ‘텔레비전만 보는 시골 할매와 할배’만 있고, 지자체에서는 ‘지역 축제를 돈을 들여서 큼지막하게 벌이려는 관광상품’을 만들 뿐입니다.


  왜 그러겠어요? 평화가 없고, 평화가 없으니 사랑이 없으며, 사랑이 없기에 꿈이 없는 탓입니다.




.. 그때 일본군 한 명이 뛰어들어 왔습니다. 빠방, 빵빵! 하고, 미국 군함에서 일본군을 겨냥해 총을 쏘았습니다. 일본군이 죽었고, 언니 누나들도 죽고 말았습니다. 일본군 또 한 명이 흰 깃발을 흔들며 바다로 기어갔습니다. 그러자 다른 일본군이 뒤에서 그 군인을 쏘았습니다. 가까운 바위 뒤에서 수류탄이 터졌습니다. 선생님과 10명쯤 되는 언니 누나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  (40쪽)



  그림책 《오키나와의 목소리》는 이야기합니다. 오키나와(류우큐우)는 ‘일본땅’이 아닌 오키나와였습니다. 일본 정치권력자는 오키나와를 ‘일본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일본에 깃든 나라이지만 일본 ‘본토’에는 ‘식민지’인 오키나와였습니다. ‘일본이면서 일본이 아니었던 식민지 오키나와’는 197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식민지 굴레와 미군기지 수렁에서 살짝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못합니다. 애꿎게 죽은 사람들은 곳곳에서 아픈 넋으로 바뀌어 나비가 되거나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제주섬 사람들이 애꿎게 죽었습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애꿎게 죽었습니다. 전라남도 광주에서도, 진도 앞바다에서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애꿎게 죽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마음에 담고 이웃과 동무를 바라보아야 할까요.


  전쟁무기는 평화를 지켜 주지 않습니다. 군부대는 평화를 부르지 않습니다. 평화는 오직 평화로 지킵니다. 평화를 부르는 목소리는 언제나 사랑 하나입니다. 4347.8.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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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산호초
미리엄 모스 지음, 강이경 옮김, 에드리언 캐너웨이 그림, 박종영 감수 / 서돌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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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7



여기는 어디인가요

― 여기는 산호초

 미리엄 모스 글

 에드리언 캐너웨이 그림

 강이경 옮김

 서돌 옮김, 2008.7.5.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언제나 나무를 이야기합니다. 구름을 바라보는 사람은 늘 구름을 이야기합니다. 풀벌레를 바라보는 사람은 노상 풀벌레를 이야기합니다. 자동차를 바라보는 사람은 언제나 자동차를 이야기하고, 아파트를 바라보는 사람은 늘 아파트를 이야기하며, 신문을 바라보는 사람은 노상 신문에 나오는 사건·사고를 이야기합니다.


  숲을 바라보며 살기에 숲빛을 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살기에 하늘빛을 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살기에 바다빛을 품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바라보는 대로 마음에 빛 한 줄기를 품습니다. 더 좋거나 더 나쁜 빛은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가꾸는 빛이요, 스스로 일구는 빛입니다.



.. 오랜 세월 서서히 만들어진 눈부신 산호와 수없이 많은 작은 생명으로 가득한 곳 ..  (4쪽)





  이 도시가 저 도시보다 좋지 않습니다. 이 시골이 저 시골보다 낫지 않습니다. 작은 도시이건 커다란 시골이건 스스로 살아가는 터전일 뿐입니다. 어느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건 스스로 돌보면서 보듬는 삶자리입니다.


  바람이 붑니다. 숨을 쉬는 모든 목숨을 살리는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모든 목숨은 숨을 거둡니다. 바람이 불기에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푸르게 우거진 숲에서 푸른 바람이 불어 매캐한 도시를 보듬습니다. 매캐한 도시를 떠돌던 바람이 푸르게 우거진 숲으로 날아가면, 매캐한 기운을 푸르게 우거진 숲이 가만히 어루만지면서 다독입니다.


  예전에는 어디에서나 한여름에는 풀벌레 노래잔치였습니다. 그야말로 풀벌레 나라였다고 해도 될 만했습니다. 이러면서 개구리도 노래잔치를 벌였어요. 한여름 밤은 귀를 살짝 기울이면 밤새 아리따운 노래가 가득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도시에서는 풀벌레도 개구리도 멧새도 노래할 수 없습니다. 풀벌레와 개구리와 멧새가 깃들 흙땅이 거의 모두 사라집니다. 시골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뿌려대는 농약 때문에 풀벌레와 개구리와 멧새가 죽습니다.



.. 부드럽게 흔들리는 바다, 맑은 산호 밭을 노니는, 물고기들이 잔치를 벌이는 곳 (7쪽)




  미리엄 모스 님이 글을 쓰고, 에드리언 캐너웨이 님이 그림을 그린 《여기는 산호초》(서돌,2008)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나는 이 그림책을 헌책방에서 장만합니다. 새책은 벌써 판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고운 빛이 흐르는 예쁜 그림책이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하고는 걸맞지 않아 쉬 판이 끊어졌지 싶습니다. 고운 빛이 흐르는 예쁜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우리들은 고운 빛하고 등지며 예쁜 삶터를 가꾸는 길하고는 엇나가기에 이 책을 알아보는 손길이 얼마 없지 싶습니다.


  참으로 마땅하지요. 산호초는 어디에 있을까요? 아무 데나 있지 않겠지요. 지저분한 바다에 산호초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쓰레기를 날마다 엄청나게 쏟아붓는 도시가 곳곳에 있으면 산호초가 자랄 턱이 없습니다.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바닷가마다 때려짓는데 산호초가 숨쉴 턱이 없습니다. 해군기지와 둑 공사와 4대강사업 따위가 춤을 추니 산호초가 살아남을 턱이 없습니다.


  만화영화 〈폰효〉에도 잘 나옵니다만, 사람들 스스로 온통 쓰레기더미인 터전에서 살아가니, 뭍에도 바다에도 쓰레기만 넘실거립니다. 쓰레기차가 하루라도 쓰레기를 안 치우면 어떻게 될까요? 청소부가 하루라도 쓰레기를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소각장에서 하루라도 쓰레기를 태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들은 눈부신 문명이나 문화를 누리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쓰레기와 나란히 있으면서 날마다 어떤 쓰레기를 얼마나 버리는지 모르는 채 쳇바퀴를 돕니다.



.. 바다가 산처럼 높이 솟아올라, 사납게 부서지며, 산호초를 산산조각 내는 곳 ..  (21쪽)




  여기는 어디인가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어디인가요. 도시는 도시대로 쓰레기 나라입니다. 시골은 시골대로 쓰레기 누리입니다. 시골에서는 마을 할매와 할배가 농약병과 비료푸대를 아무 데나 버립니다. 못 쓰는 가전제품을 논도랑에도 버리고, 뒷산이나 앞산 기슭에 짐차에 싣고 와서 퍼붓곤 합니다. 시골 아이들이건 도시 아이들이건 과자 빈 껍데기나 음료수 빈 깡통을 아무 데나 버립니다.


  땅에서 스스로 거둔 먹을거리를 손수 갈무리해서 먹을 적에는 쓰레기가 없습니다. 가게에서 돈을 치러 무언가 장만하면 곧바로 쓰레기가 나옵니다. 돈으로 무언가를 사고팔 적에 어김없이 쓰레기가 나옵니다. 스스로 삶을 짓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쓰레기 굴레에 갇힙니다.


  여기는 어디인가요. 우리 보금자리인가요. 우리 마을인가요. 우리 나라인가요. 우리 지구별인가요. 우리 누리인가요. 우리 우주인가요. 아니면, 남이 사는 터인가요, 내가 사는 터인가요.


  인천 앞바다에 조기가 다시 찾아올 날은 언제쯤이 될까 궁금합니다. 서울 시내 골골샅샅 제비가 다시 찾아갈 날은 언제쯤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이 나라 어디에서나 무지개와 미리내를 마음껏 올려다보다가 개똥벌레 불꽃춤을 구경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이 되려나 궁금합니다. 4347.8.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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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이 어때서 내인생의책 그림책 31
사토 신 글, 니시무라 도시오 그림, 양선하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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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6



나는 예쁜 빨강이

― 빨강이 어때서

 사토 신 글

 니시무라 도시오 그림

 양선하 옮김

 내인생의책 펴냄, 2012.10.31.



  “わたしは あか ねこ”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2011년에 처음 나온 그림책이 있습니다. 한국말로 옮기면 “나는 빨강 고양이”입니다. 우리 둘레에서 만날 수 있는 고양이가 가운데 빨강 빛깔 털이 있는 고양이는 없지 싶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고양이인 “빨강 고양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그림책에서는 빨강 고양이가 태어납니다. 하양 고양이와 까망 고양이 사이에서 뜻밖에 빨강 털이 가득한 고양이가 태어나요.


  어쩐 일일까요. 어찌된 셈일까요. 하양과 까망 사이에서 빨강이 태어날 수 있을까요?



.. 난 빨강이야. 우리 엄마는 하얗고, 우리 아빠는 까맣지. 난 하양이랑 까망이랑 줄무늬랑 얼룩이랑 함께 태어났어 ..  (2쪽)



  그림책 《빨강이 어때서》를 읽으면, 어미 고양이는 ‘우리한테서 저런 고양이가 나올 수는 없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미 고양이는 걱정합니다. 틀림없이 저희가 낳았으니 저희 고양이로 여기지만, 앞으로 ‘고양이 사회’에서는 ‘빨강 털’로 살아갈 수 없으리라 여깁니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 고양이 털빛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하양 털빛이나 까망 털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고양이들도 ‘빨강이’가 ‘하양이’나 ‘까망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빨강이는 아주 슬픈 일을 마주합니다. 하양 털인 고양이들은 하양 털빛 암고양이(어미니)한테 살근살근 달라붙고, 까망 털인 고양이들은 까망 털빛 수고양이(아버지)한테 가만가만 다가갑니다. 빨강 털빛 고양이는 혼자 갈 데가 없습니다. 혼자 어디에든 끼지 못합니다.






.. “아휴, 저렇게 털이 빨개서 어쩌지?” 엄마 아빠는 한숨 쉬며 나를 걱정했어. 하지만 난 내 빨간 털이 마음에 쏙 들었어! 참 예뻐 보였거든 ..  (7쪽)



  빨강이가 갈 곳은 한 군데입니다. 집 바깥입니다. 빨강이는 혼자 집을 떠나기로 합니다. 아무도 빨강이를 붙잡지 않습니다. 아니, 아무도 빨강이가 집을 나간 줄 알아차리지 않습니다. 빨강이는 하염없이 헤맵니다. 헤매고 헤매다가 눈물을 똑 흘립니다.


  이때, 빨강이는 삶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버릴 수 있습니다. 빨강이는 더는 살 마음이 들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고양이 아닌 사람은, 이런 일에 맞닥뜨리면 어떻게 하는가요. ‘우리와 같지 않다’면서 ‘나를 혼자 따돌리’는 사회 얼거리가 있다면, 이런 사회 얼거리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그림책은 고양이를 빗대어 이야기를 하고, 그림책은 빨강 고양이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고양이가 아닌 사람이라면, ‘빨간 사람’은 삶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는지요.



.. “흰 우유를 많이 마시면 하얘질지 몰라!” 엄마는 흰 우유를 듬뿍 마시게 했어. 하지만 난 하얘지고 싶지 않았어 ..  (10쪽)






  빨강 털빛 고양이는 죽지 않습니다. 아니, 죽을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빨강 빛깔 고양이는 제 털빛을 몹시 사랑하거든요. 빨갛게 빛나는 털빛이 얼마나 고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비록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무한테서는 모두 떨어져야 하지만, 빨강이는 혼자 씩씩하게 살아가기로 합니다. 내 삶은 내 손으로 힘차게 가꾸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럴 무렵, 빨강이는 놀랍도록 눈부신 동무를 만납니다. 빨강이가 만난 동무는 파랑이입니다.


  이런. 빨강 고양이에 이어 파랑 고양이라니. 파랑 고양이도 지구별에는 있을 수 없을 터이나, 그림책에는 예쁘게 나옵니다. 아마 파랑 고양이도 빨강 고양이처럼 집을 떠나 홀로 돌아다니던 길이었겠지요. 내 삶은 내가 일군다는 마음으로 씩씩하고 꿋꿋하며 힘차게 제 길을 걸었겠지요.



.. 그날부터 나랑 파랑이는 늘 함께 지냈어. 잘 때도, 놀 때도, 먹을 때도, 노래 부를 때도 말이야. 그리고, 빨간 고양이, 주황 고양이, 노란 고양이, 초록 고양이, 파란 고양이, 남빛 고양이, 보라 고양이가 태어났지 뭐야 ..  (28∼30쪽)



  빨강이는 예쁩니다. 파랑이도 예쁩니다. 하양이도 까망이도 예쁩니다. 안 예쁜 아이는 없습니다. 모두 예쁜 아이들이요, 모두 어여쁜 숨결입니다.


  나도 예쁘고 너도 예쁩니다. 우리도 예쁘고 너희도 예쁩니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예쁘고, 저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예쁩니다. 이곳에서 삶을 가꾸는 사람도 예쁘며, 저곳에서 삶을 북돋우는 사람도 예쁩니다.


  대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예쁩니다. 중학교나 초등학교조차 안 다녔어도 예쁩니다. 주머니에 돈이 그득해도 예쁘고, 주머니에 돈이 한푼조차 없어도 예쁩니다. 긴머리도 예쁘고 짧은머리도 예쁩니다. 모두 예쁘고, 저마다 예쁩니다.


  마음을 보면 돼요. 마음을 읽고, 마음을 나누며, 마음을 사랑하면 돼요. 겉모습에 홀리지 말아요. 겉차림에 휘둘리지 말아요. 우리가 바라볼 곳은 따사로우면서 아름다운 빛입니다. 우리는 따사로우면서 아름다운 빛을 가슴에 품고 사랑을 꽃피우는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 됩니다. 4347.8.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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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소니아 꼬맹이 마음 25
후치가미 사토리노 지음, 김석희 옮김, 사와타리 시게오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5



마주 바라보기

― 하얀 소니아

 후치가미 사토리노 글

 사와타리 시게오 그림

 김석희 옮김

 어린이작가정신 펴냄, 2007.12.20.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셔요. 아이들도 우리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아이한테 낯을 찡그려 보셔요. 아이들도 우리한테 낯을 찡그릴 테지요. 그러나, 우리가 낯을 찡그리더라도 아이들은 낯을 안 찡그리기도 해요. 활짝 웃거나 깔깔 웃으면서, 낯을 찡그린 어른들이 남우세스럽게 이끌기도 합니다. 또는 낯을 찡그린 어른한테 살며시 안기면서 말없이 따스한 말을 들려줍니다.



.. 참으로 우연한 첫 만남. 그 강아지는 작은 우리 속에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5쪽)



  그림책 《하얀 소니아》(어린이작가정신,2007)는 아주 남다르다 싶은 이야기를 담습니다. 아주 조그맣고 여린 강아지가 씩씩하게 자라는데, 씩씩하게 잘 자란 강아지와 즐겁게 놀던 어른 한 사람이 그만 일찍 숨을 거둡니다. 언제나 마주 바라보던 둘이었는데, 한쪽은 마주 바라보지 못합니다. 한쪽만 멀거니 바라봅니다.


  이때부터 ‘소니아’라는 개는 그야말로 멀거니 어디인가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올 무렵 ‘까만 털’이 차츰 ‘하얀 털’로 바뀌었대요. 그리움이 털빛을 온통 하얗게, 눈빛처럼 하얗게, 구름처럼 하얗게, 티가 없이 하얗게 바꾸어 주었을까요.



.. 소니아는 아빠를 바라보고, 아빠는 소니아를 바라보고 ..  (13쪽)







  근심이 많다든지 걱정이 많으면, 사람들도 까만 머리카락이 하얀 머리카락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근심과 걱정이란 무엇인가 하면 늙음입니다. 다만, 늙음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늙음일 뿐입니다.


  이와 달리, 근심과 걱정이 아닌 마음이라면, 그러니까 삶을 새로 짓는 생각이라면, 삶을 사랑하는 생각이라면, 어느새 흰머리가 까만머리로 달라지곤 합니다. 새로운 생각으로 짓는 삶과 사랑하는 생각으로 가꾸는 삶이란 그야말로 ‘삶’이거든요.


  이리하여, “하얀 소니아”는 어느 때부터 목덜미에 ‘까만 털’이 났대요. 짙은 그리움이 새로운 빛이 되었다고 할까요. 깊은 그리움이 새로운 사랑으로 거듭났다고 할까요.



.. 소니아, 언제나 그윽한 눈동자는 변함없이 가만히, 그저 가만히, 거기에 무언가가 있나 하고 여겨질 만큼 뚫어지게, 그저 뚫어지게 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  (26쪽)



  크고 씩씩한 개가 된 작고 여린 강아지 소니아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언제나 어느 한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고 하는데, 말없는 말로 어느 한 곳을 바라보다가 ‘넋으로 하늘을 떠도는 옛 사랑’을 만났을까요. 넋으로 하늘을 떠도는 옛 사랑은 “하얀 소니아”한테 이제 걱정과 근심은 내려놓고 삶을 아름답게 누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까요.


  따사로운 빛이 흐릅니다. 너그럽고 포근한 빛이 흐릅니다. 살가우면서 따뜻한 빛이 흐릅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더라도 사랑은 사랑입니다. 가뭄이거나 장마라 하더라도 사랑은 사랑입니다. 낮이거나 밤이거나 사랑은 사랑입니다. 그렇지요? 사랑은 늘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입니다. 그림책 《하얀 소니아》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고이 흐르는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4347.8.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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