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장이 요정
이모토 요코 글 그림, 길지연 옮김 / 삼성당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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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3

 


사랑스러운 빛이 흐르는
― 구두장이 요정
 그림 형제 원작
 이모토 요코 글·그림
 길지연 옮김
 삼성당 펴냄, 2009.2.15.

 


  그림 형제가 쓴 글에 이모토 요코 님 그림이 붙은 《구두장이 요정》(삼성당,2009)을 읽습니다. 이모토 요코 님은 어떤 이야기에 그림을 그리더라도 무척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아프거나 힘든 사람도 이모토 요코 님 그림책에서는 웃습니다. 슬프고 고단한 사람도 이모토 요코 님 그림책에서는 머잖아 아름다운 빛이 흐를 듯합니다. 가난에 찌들리거나 살림이 어려운 사람도 이모토 요코 님 그림책에서는 곧 넉넉하고 푸진 살림으로 거듭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르게 생각한다면, 이모토 요코 님 그림책은 너무 한 가지 틀에 매인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런 빛은 한 가지 틀에 매인다기보다, 그림책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밝고 맑은 넋이라고 느낍니다. 나쁜 짓을 일삼는 이는 시나브로 착하며 참다운 빛을 깨닫도록 이끕니다. 착한 길을 걷는 이한테는 씩씩하고 튼튼히 살라는 기운을 북돋아 주어요.


.. 그날 밤 구두장이는 마지막 남은 가죽을 구두 모양으로 정성껏 잘랐습니다. 이렇게 잘라 놓고 구두 한 켤레를 내일 천천히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  (4쪽)

 


  그림책 《구두장이 요정》에 나오는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처음부터 가난했을는지, 나중에 가난한지는 잘 모릅니다. 애써 만드는 구두를 널리 팔지 못하고, 구두를 만들어 팔아서는 살림을 좀처럼 잇지 못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구두 한 켤레를 만들고 더는 못 만들 벼랑에 닿습니다. 이때에 요정이 나타납니다. 요정은 구두장이 할아버지를 돕습니다.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뜻밖에 만난 도움을 받고 차츰 살림을 폅니다. 살림을 펴면서 웃음이 피어나고, 웃음이 피어나면서 하루하루 즐겁습니다.


.. 구두장이와 그의 아내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구두를 만들어 놓는 걸까?” 그날 밤, 두 사람은 문 뒤에 숨어 훔쳐보기로 했지요 ..  (20쪽)


  요정은 왜 구두장이 할아버지한테 나타났을까요. 왜 막다른 벼랑에 이르자 나타날까요. 요정은 이제껏 할아버지를 지켜보았을까요. 요정은 막다른 벼랑에 이를 때에 도와주는 손길일까요. 할아버지는 벼랑에서 더 미끄러지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구두장이를 그만두고는 시골로 가서 흙을 일구면서 살아갈까요. 구두장이는 하지 못하더라도 흙을 일구면서 시골자락에서 오순도순 조용하게 살림을 꾸릴 수 있었을까요.


  구두장이 할아버지한테는 모든 일이 수수께끼입니다. 구두장수가 왜 이렇게 힘들어 마지막 한 켤레만 남겨 놓는지 수수께끼입니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허얘지도록 이은 구두장이 일을 늘그막에 더는 할 수 없는 일도 수수께끼입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는지도 수수께끼입니다.


  그렇지만 꼭 한 가지 수수께끼가 아닌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구두를 그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마지막 한 켤레를 만들기로 했으면서도 앞으로 더더 꾸준히 구두를 만들고 싶습니다.

 

 


.. 구두장이와 아내는 요정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곧 크리스마스거든요. 두 사람은 발가숭이 요정들에게 옷과 신발을 만들어 주기로 했습니다 ..  (28∼29쪽)


  요정은 막다른 벼랑이 되었기에 찾아오지는 않았다고 느껴요. 구두장이 할아버지가 마음속으로 품은 깊고 큰 꿈을 듣고서야 기쁘게 찾아왔다고 느껴요. 할아버지 마음속에서 자라는 ‘오래오래 구두를 멋지고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는 꿈’을 읽고는, 이 꿈이 고이 이어지도록 살짝 한손을 거들었다고 느껴요.


  할아버지 마음이 부른 요정이요, 할아버지 마음이 찾은 요정이고, 할아버지 마음이 만든 요정이지 싶어요.


  그림책을 덮고 생각합니다. 구두장이 할아버지한테만 요정이 찾아가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우리도 마음속으로 즐겁게 꿈을 꾸고 기쁘게 꿈을 가꾸며 씩씩하게 꿈을 다스리면, 어여쁜 요정이 살포시 찾아들리라 느껴요.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온힘을 기울여 꿈을 꾸었어요. 우리도 온힘을 기울여 꿈을 꿀 노릇이에요. 통일을 꿈꾸고, 민주를 꿈꾸며, 평화를 꿈꿀 노릇이에요. 입시지옥이나 차별이 아닌 아름다운 삶터를 꿈꿀 노릇이에요. 서로 어깨동무하는 삶을 꿈꿀 일입니다. 사랑스러운 빛이 흐르는 보금자리를 꿈꿀 일입니다. 너와 내가 빙그레 웃으면서 신나게 노래하는 하루를 꿈꿀 일입니다. 4347.3.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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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손 - 사랑, 성실 노란돼지 창작동화
박정희 지음, 무돌 그림 / 노란돼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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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1

 


맑은 넋으로 맑은 눈빛
― 깨끗한 손
 박정희 글
 무돌 그림
 노란돼지 펴냄, 2014.2.22.

 


  우리 집에서 바닷가까지 가자면 걸어가기에는 살짝 멀고, 자전거로 달리면 사십 분 즈음 걸립니다. 택시를 불러서 타면 빠르고, 군내버스를 타면 발포리 상촌마을에서 내려 삼십 분 남짓 걷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으레 자가용이나 짐차가 있으니, 자동차로 휙 갔다가 휙 돌아옵니다. 우리 식구한테는 자가용이나 짐차가 없으니, 택시를 부르든 군내버스를 타고 돌아서 가든 자전거를 달리든 합니다.


  네 식구가 함께 바다에 다녀옵니다. 삼월로 접어든 고흥 바닷가이지만, 아직 바닷물은 차갑습니다. 아이들은 바닷물에 들어가고 싶은데, 두 아이 모두 긴옷을 입었습니다. 얼마나 물이 차가운가 알아보려고 내가 먼저 맨발로 찰방찰방 들어가니 발끝부터 종아리 모두 시립니다. 이런 물에 아이들이 들어갔다가는 고뿔이 들겠습니다.


  바닷물이 차기도 하지만 바닷바람이 아직 따뜻하지 않습니다. 한참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래밭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온몸에 찬기운이 돕니다. 모래도 따순 볕살을 머금지 못하니, 아이들이 모래밭에 폭삭 주저앉아 모래놀이를 하기에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바닷바람을 쐬면서 바닷내음을 맡으니 즐겁습니다. 바다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바다빛을 가슴으로 안을 수 있으니 시원합니다. 아이들은 거리끼지 않고 모래밭을 달립니다. 바위를 두 손으로 붙잡으며 기어오릅니다. 양식장에서 떠내려 온 긴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모래밭에 그림을 커다랗게 그립니다. 바다와 함께 노래를 합니다. 바닷내음을 먹으면서 바다아이가 됩니다.

 

 

 

 

 
.. 나는 대답할 말이 없어 답안지를 잡아당겨 X표 받은 문제를 붉은 연필로 바르게 고쳐 놓고, 저녁상을 치우고 들어오실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무어라 하실까?’ 하고 걱정이 되어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  (10∼11쪽)


  한참 놀고 나서 택시를 부릅니다. 면소재지로 옵니다. 면소재지 중국집에서 밥을 시켜 먹습니다. 면소재지 가게와 빵집을 들른 뒤,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들은 면소재지 빵집에서 장만한 빵을 조금 먹고 나서 마당으로 내려가 놉니다.


  기운이 넘치는구나. 마을 어귀에서 버스를 내려 집까지 들어오는 길에 다리가 아프다며 절뚝절뚝 걷거나 자꾸 넘어지더니, 집에 닿자마자 다시 기운이 났니?


  놀려면 기운이 넘쳐야겠지요. 아픈 아이는 놀지 못합니다. 일할 적에는 기운이 나야겠지요. 힘든 어른은 일하지 못합니다. 즐거이 밥을 차려서 먹어 기운을 얻은 뒤 신나게 놉니다. 기쁘게 밥을 마련해 먹고는 기운을 내어 알뜰살뜰 일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리기 앞서 차분히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오늘은 어떤 밥을 차려 얼마나 즐겁게 먹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찬찬히 도마질을 합니다. 하루나 이틀 걸러 숫돌로 칼을 갑니다. 칼이 잘 들어야 무를 잘 썹니다. 칼질 소리가 통통통 맑게 울리면, 아이들은 ‘아하, 곧 밥을 다 해서 우리를 부르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 언니는 두 살 위이고 5학년인데, 손만 깨끗한 것이 아니라 얼굴도 이도 머리도 언제나 깨끗합니다. 손님이나 식구들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맡아 놓고 듣습니다 ..  (13쪽)


  밥을 먹으며 기운을 얻는 아이들은 활짝 웃으면서 놉니다. 배고파 기운이 나지 않는 아이들은 자꾸 골을 부리거나 툭탁거리곤 합니다. 밥을 먹어 기운을 차린 어른들은 빙글빙글 웃음지으며 일합니다. 배고파 기운이 안 나는 어른들은 자꾸 한숨을 쉬거나 등허리를 두들기면서 일머리가 안 잡힙니다.


  빨래를 합니다. 걸레질을 합니다. 방을 치우고 비질을 합니다. 깔개와 이불을 마당에 널어 말립니다. 하루가 흐릅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멧새가 노래합니다. 곧 들녘마다 개구리 노랫소리가 퍼지리라 생각합니다. 머잖아 풀벌레 노랫소리로 밤새 싱그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어제 낮에 마을 샘터와 빨래터를 치우는데, 다슬기가 퍽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이 다슬기가 샘터와 빨래터뿐 아니라 논도랑마다 그득했겠지요. 다슬기가 그득하던 지난날에는 개똥벌레도 많았겠지요. 개똥벌레가 밤마다 불빛잔치를 하던 지난날에는 논에 미꾸라지와 붕어도 살았을 테고, 게아재비와 물방개가 헤엄치며 놀았으리라 생각해요.


  개구리가 있으니 뱀이 있고, 뱀이 있으니 소쩍새가 있습니다. 소쩍새와 나란히 조롱이와 수리와 매가 하늘을 날고, 사월이면 제비가 찾아와 둥지를 매만집니다. 다 같이 곱게 어우러지면서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 “또 새 앞니는 좀 있으면 희어지겠지. 새로 나왔을 때는 누구든지 그렇던걸. 그리고 치과에서 들었는데 너무 하얀 이는 약하다더라. 너는 이제 새로 나온 이와 다 닳은 이가 섞여서 더 누렇게 눈에 뜨이는 거야. 매일 닦으면 되지 뭐. 또 얼굴이 거무스레한 것이 걱정이라고? 하하……. 아침마다 비누질해서 씻지? 엄마는 우리 넷째 딸이 제일 미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얼굴은 마음이 변하는 대로 변해 가는 것이니까. 엄마가 말한 대로 수업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일하고 뛰어놀고 하면, 답안지 걱정도 없어지고 재미만 있게 되고 그렇게 될 거야. 머리는 빗을 줄을 몰라서 그런 게지.” ..  (22쪽)


  1960년대에 박정희 할머님이 이녁 큰딸과 함께 손수 빚은 작은 그림책 《깨끗한 손》이 새로운 그림을 얻어 되살아났습니다. 인천 화평동에서 ‘평안 수채화의 집’을 꾸리는 박정희 할머님은 이녁 넷째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큰딸과 함께 이 그림책에 담았습니다. 이 마음결을 2014년 봄에 ‘무돌’이라는 분이 새로운 그림을 입혀서 ‘노란돼지’라는 출판사에서 새책으로 선보입니다.


  자그마치 쉰 해를 묵은 예전 그림으로 되살려도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박정희 할머님 큰딸이 국민학교 5학년 어린이였을 적에 그린 그림은 그무렵 삶자락과 삶내음을 고스란히 담으면서 어린이 눈높이답게 수수하며 고운 빛이 흘러요. 그리고, 2014년에 새로 태어난 그림책은 쉰 해가 지난 오늘 눈빛과 손빛으로 어루만지면서 포근하고 부드러운 그림빛이 흐릅니다.

 

 

 


..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손수건과 양말이 뽀송뽀송 말라 있었습니다. 손도 언니처럼 깨끗했습니다. 매일 어머니께 빨아 주십사 부탁했던 손수건과 양말을 앞으로는 내가 빨겠다고 생각하니 기뻤습니다. 그리고 어제저녁에 걱정했던 일들은 꿈처럼 사라지고, 어머니 말씀대로 될 것이 틀림없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  (37쪽)


  오늘날 어린이는 제 옷가지를 손수 빨래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림책 《깨끗한 손》에 나오는 넷째딸은 열 살 나이에 비로소 손빨래를 합니다. 어머니 곁에서 손빨래를 배우고, 집안을 스스로 치우고 쓸고닦는 매무새를 익힙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집일이 아니라, 스스로 웃으면서 하는 집일입니다. 남이 하라니까 하는 집살림이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하는 집살림입니다.


  학교에 다니며 배울 적에도 이와 같아요. 교실에서 교사가 교과서를 읽으니 배우지 않습니다. 스스로 눈빛을 밝히면서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키웁니다. 스스로 눈망울을 빛내면서 슬기를 가꾸고 마음을 북돋웁니다. 100점을 맞으려고 하는 시험공부가 아닌, 스스로 아름답게 피어나려고 즐기는 삶빛이에요.


  맑은 넋으로 맑은 눈빛이 됩니다. 맑은 숨결로 맑은 삶이 됩니다. 맑은 노래로 맑은 사랑이 됩니다. 맑게 속삭이면서 맑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맑게 웃으면서 함께 어깨동무하는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4347.3.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

 

박정희 할머님과 맺은 인연과 얽혀 사진 몇 장을 붙입니다.

지난 2008년부터 박정희 할머님 사진을 찍었고,

얼마 앞서 2014년 3월 6일에 찍은 사진까지

이럭저럭 붙입니다.

 

사진이 좀 많아, 다른 글에 사진을 따로 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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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며
신자와 도시히코 글, 아베 히로시 그림, 유문조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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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1

 


우리는 모두 별빛
― 별을 보며
 신자와 도시히코 글
 아베 히로시 그림
 유문조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09.2.3.

 


  두 아이를 잠자리에 누입니다. 불을 끕니다. 두 아이 사이에 눕습니다. 등허리를 펴고 누우니 온몸이 우두둑우두둑 하루 내내 애썼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피어납니다.


  오른쪽에 누운 큰아이가 나를 부릅니다. “노래 불러 줘요.” 그래, 부르마. 노래를 부르면 듣는 너희도 즐겁고 부르는 나도 즐겁지. 노래를 두 가락쯤 부를 무렵, 집 바깥에서 어떤 소리가 납니다. 무슨 소리일까? “조용히 해 봐.” 10초 남짓 귀를 기울입니다. 아닌가?


  “무슨 일이야?”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린 듯했거든.” “그래? 바람이 부는 소리인가 봐.” 큰아이 말대로 바람소리일는지 모르지만, 내 귀에는 틀림없이 이 저녁에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가 가늘게 들린 듯했습니다. 포근한 볕과 바람이 감도는 고흥 시골마을에서는 개구리가 깨어날 때가 되었거든요. 마침 엊그제 비가 촉촉히 내려 논에 물이 고였고 웅덩이도 곳곳에 생겼습니다.


.. 언제나 별은 있었다 ..

 


  다시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를 부르다가 끊어집니다. 스르르 잠들었습니다. 노래가 끊어진 줄 깨달은 큰아이가 나를 다시 부릅니다. “노래 더 불러 줘요.” “응? 그래, 그래.” 다시 노래를 부릅니다. 겨우 끝까지 마칩니다. “노래 더 불러 줘요.” “알았어.” 새로 다른 노래를 부르다가 두 마디쯤에서 또 스르르 잠듭니다. 큰아이는 나를 다시 깨우고, 나는 다시 노래를 부르다가, 또 끊어지고, 어찌저찌 네 가락쯤 더 부른 뒤 “벼리야, 이제 자꾸 잠이 쏟아져서 못 부르겠다. 자야겠어.” 하고 말합니다. 큰아이는 스스로 노래를 한 가락 부르고는 조용합니다. 다 함께 잠드는 저녁이 됩니다.


.. 하늘의 별을 보며 / 우리들은 자란다 ..

 

 


  밤에 아이들이 깨어나 쉬가 마렵다 하면 쉬를 같이 누입니다. 쉬를 누인 뒤 쉬통을 비우러 마당으로 내려서면 밤하늘이 언제나 별잔치입니다. 구름이 낀 날에도 구름 사이로 비추는 별빛이 곱습니다.


  누군가 우리 식구한테 ‘왜 도시에서 안 살고 시골에서 사나요?’ 하고 물으면, 곧잘 ‘별을 보려고요.’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도시에서도 별을 볼 수 있잖아요?’ 하고 되묻는데, 이때에 ‘시골에서는 별잔치예요.’ 하고 다시 말합니다.


  다른 식구들보다 나 스스로 별을 보고 싶어서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또, 우리 아이들이 별빛을 누리기를 바라며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앞으로 아무 전깃불 없이 깜깜한 보금자리를 꿈꾸면서 우리 땅을 늘리려 합니다. 별을 누릴 수 있기에 시골이고, 별빛과 함께 새근새근 잠들기에 시골이에요. 별과 함께 노래하니 시골이며, 별웃음으로 하루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니 시골입니다.


  신자와 도시히코 님 글에 아베 히로시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별을 보며》(문학동네,2009)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참말 별빛입니다. 참으로 별꿈입니다. 숲에서도 남극에서도 들판에서도 모두 별노래입니다. 도시 한복판에서도 별이고, 우리 가슴에도 별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별을 보며 자랍니다. 해님도 별이고 달님도 별입니다. 지구도 별이고 우리 몸뚱이도 별입니다. 다 함께 별이 되면서 빛납니다. 다 같이 별빛으로 어우러지면서 환하게 웃습니다.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별꾳을 느끼고, 저 먼 곳에서 포근하게 드리우며 찾아오는 별살을 맞아들입니다. 4347.3.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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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집을 지었어요 바바파파 BARBAPAPA 5
아네트 티종 글, 탈루스 테일러 그림, 글샘터 옮김 / 빛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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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0

 


함께 살아가는 보금자리
― 새 집을 지었어요, 바바파파 5
 안네트 티종, 탈루스 테일러 글·그림
 글샘터 옮김
 빛글 펴냄, 2011.4.25.

 


  누구한테나 집이 있습니다. 스스로 장만한 집이든, 남한테서 빌린 집이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집이든, 어버이와 함께 지내는 집이든, 누구한테나 따사로운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보금자리가 되는 집은 넓을 수 있고 좁을 수 있습니다. 시골에 있을 수 있고 도시에 있을 수 있습니다. 이웃과 사이좋게 나란히 있을 수 있고, 홀로 조용히 외딴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즐겁게 지내려는 집입니다. 사랑을 나누려는 보금자리입니다. 아름답게 살고 싶은 집입니다.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은 보금자리입니다.


  새벽을 여는 멧새 노랫소리를 들으며 일어납니다. 천천히 퍼지는 햇살을 느끼며 아침을 맞이합니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일하고 놉니다. 찬찬히 기우는 어스름을 바라보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어둡게 깔린 별빛을 헤아리면서 이부자리에 깃듭니다.


.. 바바 가족은 새 아파트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바바 가족은 아파트를 떠나기로 했어요 ..  (17쪽)

 


  우리 집은 우리 사랑이 감도는 곳입니다. 우리 보금자리는 우리 꿈이 태어나는 자리입니다. 우리 집은 우리 노래를 부르는 곳입니다. 우리 보금자리는 우리 이야기를 꽃피우는 자리입니다.


  돈으로 집을 짓지 않습니다. 꿈꾸면서 집을 짓습니다. 재산이나 부동산으로 집을 얻지 않습니다. 즐겁게 노래할 터를 닦고, 기쁘게 춤출 자리를 다집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어른들은 씩씩하게 일해요. 아이들이 먹을 밥을 손수 길러서 마련하고, 어른들은 구슬땀을 흘리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집이란 잠자는 곳이 아닌 살아가는 곳입니다.


.. 바바 가족은 프랑수아와 클로딘과 함께 정원을 꾸미고 있었어요. 그런데 또 집 부수는 기계가 나타났어요 ..  (26쪽)

 

 


  안네트 티종 님과 탈루스 테일러 님이 글과 그림을 함께 엮은 ‘바바파파’ 그림책 가운데 하나인 《새 집을 지었어요》(빛글,2011)를 읽습니다. 바바파파가 처음에 살던 집은 너무 좁아서 새 집을 찾습니다. 처음에는 바바파파 혼자였으니 작은 집으로도 넉넉했지만, 바바마마가 찾아들고 아기바바가 태어나면서 작은 집이 좁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바바파파 식구들이 지낼 만한 마땅한 집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높다란 층집에 깃들어 잘 지내는 듯하지만, 바바파파 식구는 괴롭습니다. 새와 노래할 뜰이나 마당이나 밭도 없으며, 신나게 뒹굴거나 뛰놀 자리가 없는 아파트는 더없이 고단합니다.


  바바파파 식구는 도시를 떠나기로 합니다. 걷고 걷습니다. 한참 걷고 또 걷습니다. 비행기를 타거나 자동차를 달리지 않아요. 천천히 온 식구가 걷고 걸어 조용하고 외진 시골로 갑니다. 새들이 노래하고 꽃이 피어나며 나무가 우거진 옆에 냇물이 흐르는 숲에 집을 짓습니다.


.. 별이 총총, 밤이 되었어요. 바바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답니다 ..  (34쪽)

 

 


  우리는 어떤 집에서 살아갈까요. 우리는 어떤 집에서 살며 어떤 꿈을 키울까요. 우리는 어떤 삶을 일구고 싶을까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속삭이면서 보금자리를 가꿀까요.


  한국이든 프랑스이든 도시는 커지고 시골은 줄어듭니다. 어느 나라나 도시는 더 커지고 시골은 더 줄어듭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도시에서는 집이 모자라 아우성이고, 시골에서는 사람이 줄어 아우성입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살 적에 아름다울까요. 우리들은 어떻게 꿈꾸면서 집을 마련하고 이야기꽃을 피울 적에 사랑스러울까요. 4347.3.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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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1
아라이 료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보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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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9

 


두 다리로 걷는 즐거움
― 버스를 타고
 아라이 료지 글·그림
 김난주 옮김
 보림 펴냄, 2007.6.25.

 


  시골에서 살며 자가용이 없는 집이 드뭅니다. 나이든 할매와 할배가 살아가는 집에는 경운기는 있어도 자가용이나 짐차가 없지만, 젊은 식구가 살아가는 집에는 으레 자가용이나 짐차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시골버스를 타는 젊은이는 거의 없어요. 시골에서 살며 아이를 돌보는 젊은 식구가 아이와 함께 시골버스를 타는 일이란 참말 거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도 웬만하면 자가용을 굴립니다. 도시에서 살며 자가용을 굴리는 이들은 더러 버스나 전철을 타곤 합니다. 도시에서는 자가용과 버스와 전철 가운데 하나를 퍽 쉽게 고를 만합니다. 도시에서는 찻길도 넓고 차편도 많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느라 5분이나 10분이 걸리곤 하지만, 버스를 한 시간이나 두 시간씩 기다리는 일은 없어요. 더욱이, 밤 늦게까지 버스가 있고 전철이 다녀요.


..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갈 거예요 ..  (2쪽)

 


  시골버스는 한두 시간을 가볍게 기다립니다. 사람이 뜸한 깊은 마을이라면 서너 시간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버스가 하루에 한 차례만 지나가는 마을도 있습니다. 시골에서 한 시간에 한 번씩 버스가 다니는 마을은 이럭저럭 손님이 있지만, 두 시간에 한 번 다닌다거나 서너 시간에 한 번 다니는 마을은 손님이 드물어요. 하루에 한 번 버스가 지나가는 마을이라면 손님이 훨씬 드물어요.


  도시에서라면 아마 한 시간쯤 버스를 기다린다든지, 한 시간쯤 두 다리로 걸어서 어딘가를 찾아가는 일이 거의 없지 싶습니다. 한 시간쯤 길을 거니는 도시내기는 얼마나 있을까요. 두 시간쯤 길을 거닐며 이웃한테 찾아가는 도시내기는 몇이나 될까요.


  자전거로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달려 일터나 학교를 오가는 도시내기가 있을까요. 동무를 만나거나 이웃과 어울리려고 자전거로 한두 시간을 달리는 도시내기는 얼마쯤 있을까요.


..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이제 밤이에요. 라디오도 잠들었어요. 버스는 안 와요 ..  (14쪽)

 


  길은 자동차가 다니기에 길이 아닙니다. 길은 사람이 다니기에 길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한결 빨리 달릴 수 있는지 모르나, 참말 빨리 달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동차를 얻어서 길을 빨리 지나가면 우리 삶에 더 즐겁거나 좋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두 다리로 마을을 느끼면서 걸어요. 두 다리로 골목을 느끼면서 걸어요. 두 다리로 들과 숲과 멧골과 바다와 냇물을 느끼면서 걸어요. 십 킬로미터쯤이라면 씩씩하게 걸어요. 버스를 십 분 기다리고 십 분쯤 달려 어딘가를 찾아가도 즐거울 테지만, 버스를 안 기다리고 한 시간쯤 천천히 걸어서 찾아가도 즐거워요.


  봄에는 봄내음을 맡으면서 걸어요. 여름에는 여름노래를 들으면서 걸어요. 가을에는 가을빛을 누리면서 걸어요. 겨울에는 겨울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어요.


.. 조금 더 기다리다 마음을 바꿨어요. 버스는 안 탈래요 ..  (30쪽)

 


  아라이 료지 님 그림책 《버스를 타고》(보림,2007)를 읽습니다. 너른 사막과 비슷한 곳에서 누군가 버스를 기다립니다. 하루 내내 기다립니다. 그러나 하루 내내 기다려도 버스는 지나가지 않아요. 버스를 기다리는 하루 내내 온갖 사람을 스치듯이 만나고, 밤새 별잔치를 누립니다. 이튿날이 되어 비로소 버스를 만나는데, 버스에는 사람들이 가득해서 탈 자리가 없습니다. 버스는 스르르 떠납니다. 사막처럼 너른 벌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사람은 한동안 생각에 잠깁니다. 그러다가 씩씩하게 일어서서 두 다리로 걷습니다. 두 다리로 거닐면서 노래를 합니다. 들바람을 마시고 들볕을 머금으면서 천천히 걷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가면서 마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가는 동안 이웃마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가면서 멧새 노래를 듣고 풀벌레 이야기를 듣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가면서 내 몸을 구석구석 새삼스레 느낍니다.


  삼월에는 삼월을 느낍니다. 사월에는 사월을 마주합니다. 오월에는 오월을 헤아립니다. 우리들은 철마다 철을 느끼고 달마다 달을 헤아리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숨결입니다. 4347.3.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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