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이 어때서 내인생의책 그림책 31
사토 신 글, 니시무라 도시오 그림, 양선하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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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6



나는 예쁜 빨강이

― 빨강이 어때서

 사토 신 글

 니시무라 도시오 그림

 양선하 옮김

 내인생의책 펴냄, 2012.10.31.



  “わたしは あか ねこ”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2011년에 처음 나온 그림책이 있습니다. 한국말로 옮기면 “나는 빨강 고양이”입니다. 우리 둘레에서 만날 수 있는 고양이가 가운데 빨강 빛깔 털이 있는 고양이는 없지 싶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고양이인 “빨강 고양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그림책에서는 빨강 고양이가 태어납니다. 하양 고양이와 까망 고양이 사이에서 뜻밖에 빨강 털이 가득한 고양이가 태어나요.


  어쩐 일일까요. 어찌된 셈일까요. 하양과 까망 사이에서 빨강이 태어날 수 있을까요?



.. 난 빨강이야. 우리 엄마는 하얗고, 우리 아빠는 까맣지. 난 하양이랑 까망이랑 줄무늬랑 얼룩이랑 함께 태어났어 ..  (2쪽)



  그림책 《빨강이 어때서》를 읽으면, 어미 고양이는 ‘우리한테서 저런 고양이가 나올 수는 없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미 고양이는 걱정합니다. 틀림없이 저희가 낳았으니 저희 고양이로 여기지만, 앞으로 ‘고양이 사회’에서는 ‘빨강 털’로 살아갈 수 없으리라 여깁니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 고양이 털빛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하양 털빛이나 까망 털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고양이들도 ‘빨강이’가 ‘하양이’나 ‘까망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빨강이는 아주 슬픈 일을 마주합니다. 하양 털인 고양이들은 하양 털빛 암고양이(어미니)한테 살근살근 달라붙고, 까망 털인 고양이들은 까망 털빛 수고양이(아버지)한테 가만가만 다가갑니다. 빨강 털빛 고양이는 혼자 갈 데가 없습니다. 혼자 어디에든 끼지 못합니다.






.. “아휴, 저렇게 털이 빨개서 어쩌지?” 엄마 아빠는 한숨 쉬며 나를 걱정했어. 하지만 난 내 빨간 털이 마음에 쏙 들었어! 참 예뻐 보였거든 ..  (7쪽)



  빨강이가 갈 곳은 한 군데입니다. 집 바깥입니다. 빨강이는 혼자 집을 떠나기로 합니다. 아무도 빨강이를 붙잡지 않습니다. 아니, 아무도 빨강이가 집을 나간 줄 알아차리지 않습니다. 빨강이는 하염없이 헤맵니다. 헤매고 헤매다가 눈물을 똑 흘립니다.


  이때, 빨강이는 삶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버릴 수 있습니다. 빨강이는 더는 살 마음이 들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고양이 아닌 사람은, 이런 일에 맞닥뜨리면 어떻게 하는가요. ‘우리와 같지 않다’면서 ‘나를 혼자 따돌리’는 사회 얼거리가 있다면, 이런 사회 얼거리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그림책은 고양이를 빗대어 이야기를 하고, 그림책은 빨강 고양이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고양이가 아닌 사람이라면, ‘빨간 사람’은 삶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는지요.



.. “흰 우유를 많이 마시면 하얘질지 몰라!” 엄마는 흰 우유를 듬뿍 마시게 했어. 하지만 난 하얘지고 싶지 않았어 ..  (10쪽)






  빨강 털빛 고양이는 죽지 않습니다. 아니, 죽을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빨강 빛깔 고양이는 제 털빛을 몹시 사랑하거든요. 빨갛게 빛나는 털빛이 얼마나 고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비록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무한테서는 모두 떨어져야 하지만, 빨강이는 혼자 씩씩하게 살아가기로 합니다. 내 삶은 내 손으로 힘차게 가꾸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럴 무렵, 빨강이는 놀랍도록 눈부신 동무를 만납니다. 빨강이가 만난 동무는 파랑이입니다.


  이런. 빨강 고양이에 이어 파랑 고양이라니. 파랑 고양이도 지구별에는 있을 수 없을 터이나, 그림책에는 예쁘게 나옵니다. 아마 파랑 고양이도 빨강 고양이처럼 집을 떠나 홀로 돌아다니던 길이었겠지요. 내 삶은 내가 일군다는 마음으로 씩씩하고 꿋꿋하며 힘차게 제 길을 걸었겠지요.



.. 그날부터 나랑 파랑이는 늘 함께 지냈어. 잘 때도, 놀 때도, 먹을 때도, 노래 부를 때도 말이야. 그리고, 빨간 고양이, 주황 고양이, 노란 고양이, 초록 고양이, 파란 고양이, 남빛 고양이, 보라 고양이가 태어났지 뭐야 ..  (28∼30쪽)



  빨강이는 예쁩니다. 파랑이도 예쁩니다. 하양이도 까망이도 예쁩니다. 안 예쁜 아이는 없습니다. 모두 예쁜 아이들이요, 모두 어여쁜 숨결입니다.


  나도 예쁘고 너도 예쁩니다. 우리도 예쁘고 너희도 예쁩니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예쁘고, 저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예쁩니다. 이곳에서 삶을 가꾸는 사람도 예쁘며, 저곳에서 삶을 북돋우는 사람도 예쁩니다.


  대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예쁩니다. 중학교나 초등학교조차 안 다녔어도 예쁩니다. 주머니에 돈이 그득해도 예쁘고, 주머니에 돈이 한푼조차 없어도 예쁩니다. 긴머리도 예쁘고 짧은머리도 예쁩니다. 모두 예쁘고, 저마다 예쁩니다.


  마음을 보면 돼요. 마음을 읽고, 마음을 나누며, 마음을 사랑하면 돼요. 겉모습에 홀리지 말아요. 겉차림에 휘둘리지 말아요. 우리가 바라볼 곳은 따사로우면서 아름다운 빛입니다. 우리는 따사로우면서 아름다운 빛을 가슴에 품고 사랑을 꽃피우는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 됩니다. 4347.8.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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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소니아 꼬맹이 마음 25
후치가미 사토리노 지음, 김석희 옮김, 사와타리 시게오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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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5



마주 바라보기

― 하얀 소니아

 후치가미 사토리노 글

 사와타리 시게오 그림

 김석희 옮김

 어린이작가정신 펴냄, 2007.12.20.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셔요. 아이들도 우리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아이한테 낯을 찡그려 보셔요. 아이들도 우리한테 낯을 찡그릴 테지요. 그러나, 우리가 낯을 찡그리더라도 아이들은 낯을 안 찡그리기도 해요. 활짝 웃거나 깔깔 웃으면서, 낯을 찡그린 어른들이 남우세스럽게 이끌기도 합니다. 또는 낯을 찡그린 어른한테 살며시 안기면서 말없이 따스한 말을 들려줍니다.



.. 참으로 우연한 첫 만남. 그 강아지는 작은 우리 속에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5쪽)



  그림책 《하얀 소니아》(어린이작가정신,2007)는 아주 남다르다 싶은 이야기를 담습니다. 아주 조그맣고 여린 강아지가 씩씩하게 자라는데, 씩씩하게 잘 자란 강아지와 즐겁게 놀던 어른 한 사람이 그만 일찍 숨을 거둡니다. 언제나 마주 바라보던 둘이었는데, 한쪽은 마주 바라보지 못합니다. 한쪽만 멀거니 바라봅니다.


  이때부터 ‘소니아’라는 개는 그야말로 멀거니 어디인가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올 무렵 ‘까만 털’이 차츰 ‘하얀 털’로 바뀌었대요. 그리움이 털빛을 온통 하얗게, 눈빛처럼 하얗게, 구름처럼 하얗게, 티가 없이 하얗게 바꾸어 주었을까요.



.. 소니아는 아빠를 바라보고, 아빠는 소니아를 바라보고 ..  (13쪽)







  근심이 많다든지 걱정이 많으면, 사람들도 까만 머리카락이 하얀 머리카락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근심과 걱정이란 무엇인가 하면 늙음입니다. 다만, 늙음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늙음일 뿐입니다.


  이와 달리, 근심과 걱정이 아닌 마음이라면, 그러니까 삶을 새로 짓는 생각이라면, 삶을 사랑하는 생각이라면, 어느새 흰머리가 까만머리로 달라지곤 합니다. 새로운 생각으로 짓는 삶과 사랑하는 생각으로 가꾸는 삶이란 그야말로 ‘삶’이거든요.


  이리하여, “하얀 소니아”는 어느 때부터 목덜미에 ‘까만 털’이 났대요. 짙은 그리움이 새로운 빛이 되었다고 할까요. 깊은 그리움이 새로운 사랑으로 거듭났다고 할까요.



.. 소니아, 언제나 그윽한 눈동자는 변함없이 가만히, 그저 가만히, 거기에 무언가가 있나 하고 여겨질 만큼 뚫어지게, 그저 뚫어지게 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  (26쪽)



  크고 씩씩한 개가 된 작고 여린 강아지 소니아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언제나 어느 한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고 하는데, 말없는 말로 어느 한 곳을 바라보다가 ‘넋으로 하늘을 떠도는 옛 사랑’을 만났을까요. 넋으로 하늘을 떠도는 옛 사랑은 “하얀 소니아”한테 이제 걱정과 근심은 내려놓고 삶을 아름답게 누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까요.


  따사로운 빛이 흐릅니다. 너그럽고 포근한 빛이 흐릅니다. 살가우면서 따뜻한 빛이 흐릅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더라도 사랑은 사랑입니다. 가뭄이거나 장마라 하더라도 사랑은 사랑입니다. 낮이거나 밤이거나 사랑은 사랑입니다. 그렇지요? 사랑은 늘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입니다. 그림책 《하얀 소니아》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고이 흐르는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4347.8.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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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 - 하나뿐인 내 친구
헬게 토르분 글, 마리 칸스타 욘센 그림, 손화수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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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4



내 이름을 불러 주셔요

― 비발디

 헬게 토르분 

 마리 칸스타 욘센 그림

 손화수 옮김

 어린이작가정신 펴냄, 2014.6.12.



  바람이 붑니다. 아침부터 내내 바람이 붑니다. 날씨 소식을 들으니 태풍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당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구름이 아주 대단합니다. 짙은 구름 두꺼운 구름 옅은 구름 하얀 구름 잿빛 구름 온갖 구름이 아주 빠르게 흐릅니다. 이 가운데 비를 머금은 구름도 있을까요? 아마 있을는지 모르지요.


  나는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두 팔을 뻗습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올해에는 비가 자주 내렸으니 오늘하고 이튿날까지 비를 뿌리지는 않으면 좋겠어, 하고. 하늘에 대고 말합니다. 비가 알맞게 들과 숲을 적시면서 풀과 나무가 푸르면서 싱그럽기를 바란다, 하고.


  구름은 내 말을 들었을까요. 하늘과 바람은 내 이야기를 들었을까요. 휙 하고 바람 한 줄기가 내 몸을 감돌다가 지나갑니다. 다시 휙 하고 바람 두 줄기가 내 발을 휘감으면서 지나갑니다.



.. 타이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작은 고양이를 침대로 안아 올렸어요. 사실 고양이는 침대 위로 데리고 올라가지 않기로 약속했었지요. 하지만 타이라는 그 순간만큼은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어요. 타이라는 그저 행복했어요. 작은 고양이의 자박자박하는 발소리에서 느껴지는 생명력, 보들보들하고 귀엽고 장난기 가득한 고양이. 폭신한 이불 위에 얌전히 누워 있는 작은 고양이 ..  (5쪽)





  아침에 밥상을 차리려고 마당에서 풀을 뜯으며 풀한테 얘기합니다. 오늘도 우리한테 푸른 숨결을 나누어 주렴, 너희가 머금은 햇볕과 빗물과 흙을 우리한테 나누어 주렴, 새로 돋은 잎사귀를 톡톡 뜯을 테니 또 새로운 잎사귀를 곱게 내놓아 주렴, 하고.


  풀은 내 이야기를 들었을까요. 풀은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어느 만큼 알아들을까요. 풀은 내가 가만히 말을 걸 적에 어떤 마음이 될까요. 웃자란 풀을 낫으로 베거나 손으로 뽑을 적에 “미안해, 너희가 여기까지 나니까 베어야 하거든. 얘들아, 우리가 지나갈 길은 마련해 주어야지.” 하고 말합니다. 늘 보던 풀이었으나 엊그제까지 이름을 모르는 채 가끔 뜯어먹던 풀한테 한 마디 건넵니다. “며느리밑씻개야, 너는 언제부터 이 이름을 누구한테서 얻었니. 누군가는 너한테 이런 이름을 붙였겠지만, 다른 시골에서 다른 누군가는 다른 이름을 붙였겠지? 보기 드문 세모난 잎사귀에 보기 드문 마알간 꽃이 피는 너이니, 틀림없이 너를 두고 다른 이름을 붙인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해.”


  풀이름은 표준말 한 가지만 있지 않습니다. 풀뿐 아니라 나무도, 물고기도, 벌레도, 바람도, 흙도, 꽃도, 한 가지 표준 이름만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한 가지 표준 이름만 알려집니다. 오늘날에는 한 가지 표준 이름으로만 말하고, 한 가지 표준 이름으로만 학문을 하며, 한 가지 표준 이름으로만 풀과 물고기와 벌레와 바람과 흙과 꽃 들을 바라보아요.



.. 타이라는 여기저기 귀 기울여 보아썽요. ‘잔디들은 아기 고양이를 뭐라고 부를까?’ 타이라는 정원 잔디밭에 누워 고양이가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까치밥나무들은 아기 고양이를 어떻게 부를까?’ 까치밥나무 열매 사이에서 조용히 귀 기울이기도 했어요. ‘박새들이 고양이를 부를 때는 어떤 이름을 쓸까?’ 타이라는 자두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박새들을 올려다보기도 했지요 ..  (15쪽)





  우리 집 둘레에 마음껏 자라는 풀을 바라보면서 가끔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이 아이들(풀)한테 붙이는 이름이 한 가지여도 될까 하고요. 예부터 고장마다 고을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풀이름을 다르게 붙였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똑같은 풀을 놓고도 다른 이름으로 가리켰습니다. 전라도에서도 화순과 고창이 쓰는 이름이 달랐고, 곡성과 구례가 쓰는 이름이 달랐어요. 읍과 면에서 쓰는 이름이 다르고, 마을과 마을에서 쓰는 이름이 달랐지요.


  그래서, 예부터 마을말·고을말·고장말, 이렇게 말이 다릅니다. 우리는 크게 뭉뚱그려 ‘한국말’을 쓰지만, 마을에서도 ‘집말’조차 달라요.


  내가 풀이 되어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사람) 나(풀)를 바라보면서 어떤 이름으로 가리키려고 할 때에 어떤 느낌이 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참말 사람들은 제멋대로 부르는구나’ 하고 느낄 테지요. 참말 사람들은 ‘내(풀) 밑넋을 헤아리지 않고 함부로 부르는구나’ 하고 느끼리라 생각해요.



.. 타이라와 할머니. 둘은 발을 옮겼어요. 커다란 떡갈나무 아래, 이른 가을빛 속으로. “알고 보니 나는 나무와 친척이더구나.” 할머니가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했어요 ..  (42쪽)




  헬게 토르분 님이 글을 쓰고, 마리 칸스타 욘센 님이 그림을 그린 《비발디》(어린이작가정신,2014)라는 책을 읽습니다. 도톰한 그림책이라고 해야 할는지, 이쁘장한 동화책이라고 해야 할는지, 이쪽에도 저쪽에도 넣기에 어중간하구나 싶은 책을 읽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그림책이면 어떻고 동화책이면 어떨까요. 어느 갈래에 넣든, 내 마음을 아름답게 건드릴 수 있으면 아름다운 책입니다. 내 마음에 사랑스레 다가올 수 있으면 사랑스러운 책입니다.


  이야기를 읽는 책입니다. 삶을 읽는 책입니다. 넋을 읽는 책입니다. 글감이 무엇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림결이 어떠하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줄거리가 어떠하든, 또 글쓴이나 그린이가 누구이건 아무렇지 않습니다. 어른문학이나 인문책이라서 놀라울 책이 아닙니다. 어린이책이라 해서 가볍게 다룰 만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이야기책 《비발디》에 나오는 고양이와 아이와 어른은 저마다 어떤 빛일까요. 이 책에 나오는 아픈 아이와 바보스러운 학교 동무들은 저마다 어떤 숨결일까요. 아이 하나를 따돌리는 학교 동무들은 저마다 집에서 ‘사랑을 받아 태어났고,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입니다. 그러나 어느 아이 하나를 참으로 얄궂게 따돌릴 뿐 아니라 괴롭힙니다. 저희는 집에서 즐거우면서 애틋하게 사랑받으면서, 막상 이웃이나 동무를 사랑하거나 보살피려 하지 못합니다.



.. “모두 꼭 학교에 가야만 하나요?” 페트라는 햇살이 따사로운 쪽마루에서 부모님과 함께 주스를 마셨어요. “그럼, 학교에 가는 건 누구나 해야 하는 의무란다. 그건 너도 잘 알잖니.” 아버지가 말했어요. “갑자기 그건 왜 묻니? 학교 가기 싫은 거야? 책 읽는 게 다시 어려워졌니?” “아니에요. 제 이야기가 아니에요.” ..  (74쪽)




  바람은 ‘바람’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까 궁금합니다. 해는 ‘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까 궁금합니다. 비와 구름과 흙과 풀은 ‘비’와 ‘구름’과 ‘흙’과 ‘풀’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사람’인데, 사람인 우리들은 ‘사람’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름을 불러 봅니다. 어느덧 짙은 구름은 비를 들이붓습니다. 거세게 바람이 몰아치면서,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나무가 흔들립니다. 후박나무는 후박잎과 함께 흔들립니다. 드센 비바람에 흔들리는 후박나무 곁에 서서 후박나무 줄기를 가만히 손에 대어 보면, 바람 따라 나무가 얼마나 크게 휘청거리는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풀만 바람 따라 눕고 선다’고 말하지만, 나무도 바람 따라 눕고 섭니다. 나무 곁에 서고, 나뭇줄기를 만지며, 나무가 바람 따라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비발디》에 나오는 아이는 외로우면서 외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 나오는 아이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조차 아이하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요. 이 아이하고 동무가 되고 싶은 ‘페트라’라고 하는 아이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도 페트라라는 아이하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요.


  아이들은 학교를 의무교육으로 다녀야 하나요? 왜 아이들은 학교를 꼭 다녀야 할까요? 아이들은 학교보다 ‘사랑’을 제대로 받아야 할 숨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의무교육을 받거나 졸업장을 따야 하는 아이가 아니라, 어버이와 이웃과 동무한테서 따순 사랑을 받으면서 즐겁게 웃고 노래할 아름다운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을 부릅니다. 고운 이름을 부릅니다. 저마다 가슴에 아로새긴 착하고 참다우며 멋스러운 이름을 부릅니다. 이름을 부르며 서로 동무가 됩니다. 이름을 부르면서 다 함께 이웃이 됩니다. 4347.8.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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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킁, 맛있는 냄새가 나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78
니시마키 가야코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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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3



기운을 차리도록 이끄는 빛

― 킁킁 맛있는 냄새가 나

 니시마키 가야코 글·그림

 이선아 옮김

 비룡소 펴냄, 2007.6.1.



  밥이 맛있는 까닭은 갖은 솜씨를 부려서 멋지게 차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배고픈 사람한테 따스한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따스하게 차렸기 때문입니다. 라면 한 그릇이든 가락국수 한 접시이든 모두 맛있습니다. 즐겁게 웃으면서 해님과 같은 사랑을 담아서 내미는 밥 한 그릇이 새롭게 기운을 차리도록 이끕니다.


  날마다 기쁜 날입니다. 태어난 날이라거나 어떤 기림날이기에 기쁜 날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기쁜 날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니 어느 하루인들 안 기쁜 날이 될 수 없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든 눈이 내리는 날이든, 몹시 더운 날이든 매우 추운 날이든, 우리한테는 하루하루 한결같이 아름답게 기쁜 날입니다.


  한 해 가운데 하루만 골라서 케익을 굽거나 떡을 빚을 까닭이 없습니다. 날마다 케익을 구워도 되고, 날마다 떡을 빚어도 됩니다. 우리 삶에서 오늘 하루는 가장 새로우면서 빛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날마다 차려서 날마다 먹는 밥은 날마다 새로우면서 맛난 숨결이 됩니다.



.. 사짱은 허겁지겁 아침밥을 먹었어요. 엄마는 늘 “천천히 먹어야지.” 하고 말하지만 오늘은 그럴 짬이 없어요. 왜냐하면, 쉿, 엄마한텐 비밀이거든요 ..  (2쪽)




  꼭 자가용을 달려서 먼 데로 바람 쐬러 다녀와야 하지 않습니다. 꼭 기차를 타고 한참 달리는 곳까지 다녀와야 하지 않습니다. 꼭 배나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를 다녀와야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아이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도 즐겁습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마을 한 바퀴를 돌아도 재미있습니다.


  선물은 언제나 마음으로 합니다. 나들이도 언제나 마음으로 합니다. 선물로 꽃을 한 송이 꺾어도 되고, 선물로 삼으려고 꽃을 한 다발 꺾어도 됩니다. 들에 나가 꽃을 종이에 곱게 그린 뒤, 그림을 선물할 수 있어요. 들에서 만난 꽃밭을 가슴으로 듬뿍 안아 노래를 하나 지은 뒤, 노래를 불러서 선물할 수 있습니다. 들꽃 이야기를 글로 써서 편지를 선물해도 돼요. 들꽃을 사진으로 담아 넌지시 보여주듯이 선물할 수 있어요.


  날마다 새로우면서 기쁜 하루이기에, 날마다 새로우면서 기쁜 마음이 됩니다. 날마다 새로우면서 기쁜 마음으로 날마다 새로우면서 기쁜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아이와 눈을 맞추어 보셔요.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즐겁습니다. 아이 손에 내 손을 얹어 보셔요. 손을 맞대기만 하더라도 따사롭습니다.



.. 사짱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엄마가 문 앞에 서 있었어요. “엄마, 왜 그래?” 사짱이 묻자, 엄마가 문을 빠끔 열고는 물었어요. “저 애들, 네 친구니?” ..  (22쪽)




  아이들은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가슴에 안기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등에 업히고 싶습니다. 품에 안기면서 포근하고, 품에 안으면서 웃음이 피어납니다. 등에 업히면서 신나고, 등에 업으면서 노래가 흐릅니다.


  예부터 어느 나라 어느 겨레에서든, 아이와 함께 날마다 새로운 삶을 지으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밥을 지으면서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빨래를 하면서 노래가 터져나옵니다. 아이를 재우고, 설거지를 하며, 비질을 하는 동안 노래가 샘솟습니다. 밭일을 하거나 들일을 할 적에도 모두 노래를 했어요. 길을 걸으면서 노래를 했고, 불을 지피거나 나무를 하면서 모두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노래를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대중노래를 듣는 사람은 많지만, 스스로 노래를 지어서 부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노래를 듣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지만, 스스로 내 삶에서 내 노래를 길어올리는 사람을 만나기 아주 어렵습니다.


  왜 노래를 짓지 않을까요. 왜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요. 왜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짓지 않을까요. 왜 언제나 새로운 삶으로 사랑을 짓지 않을까요. 왜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주지 않거나 왜 아이들한테 사랑을 가르치지 않을까요.  



.. 혼자 남은 꼬마 늑대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어요. 사짱이 깜짝 놀라며 꼬마 늑대한테 다가가 물었어요. “왜 그러니, 꼬마 늑대야? 수프를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 났어?” 꼬마 늑대가 잘래잘래 고개를 흔들었어요. 그러더니 이제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어요 ..  (32쪽)




  니시마키 가야코 님이 빚은 그림책 《킁킁 맛있는 냄새가 나》(비룡소,2007)를 읽습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혼자서 그림책을 읽습니다. 나는 아이 곁에서 아이가 그림책 읽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가 한 번 다 읽은 뒤, 책에 적힌 글월을 몇 가지 다듬습니다. “닭고기 수프가 얼룩덜룩(4쪽)”은 “닭고기 국물이 얼룩덜룩”으로, “사짱은 지금 들판으로 가고 있답니다(6쪽)”는 “사짱은 이제 들판으로 간답니다”로, “달걀 프라이가 나한테 달려오고 있어(8쪽)”는 “달걀 부침이 나한테 달려와”로, “덕분에 사짱은 꽃을 많이 많이 땄답니다(20쪽)”는 “그래서 사짱은 꽃을 많이 많이 땄답니다”로, “늑대는 식탁 위에 올라앉아(24쪽)”는 “늑대는 밥상에 올라앉아”로,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어요(32쪽)”는 “훌쩍훌쩍 울어요”로, “엄마는 아이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42쪽)”는 “엄마는 아이가 하나 더 생긴 듯해”로 다듬습니다.



.. 사짱은 꼬마 늑대를 식탁에서 내려 주며 말했어요. “우리 엄마를 잠깐 빌려 줄 테니까 안아 달라고 해 봐.” … 한동안 엄마 품에 안겨 있자 꼬마 늑대는 다시 힘이 났어요. 그래서 엄마 무릎에서 폴짝 뛰어내렸지요. “나 이제 그만 갈래.” 꼬마 늑대는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서서 말했어요. “엄마, 다음에 또 안아 주세요.” ..  (36, 40쪽)



  아이는 어머니한테 선물을 하고 싶어 들판으로 갑니다. 예쁜 들꽃을 꺾고 싶거든요. 그림책을 보면, 아이가 지내는 집 둘레에도 들꽃은 많구나 싶어요. 그러나 아이는 굳이 먼 들판까지 갑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남달리 기리면서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집 둘레 들꽃은 언제나 집에서 즐겁게 바라봅니다. 먼 들판에 피는 들꽃은 집으로 가져와서 새로운 꽃바람을 일으키고 싶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생일을 기리고 싶은 마음인데, 곰곰이 따지면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생일입니다. 날마다 생일잔치입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동이 트면서 새롭게 깨어나거든요. 늘 새롭게 태어나는 하루이니 날마다 생일이고 잔치예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아마 날마다 꽃을 꺾지 싶어요. 어머니가 태어난 날 하루만 꽃을 꺾지 않고 날마다 꽃놀이를 할 테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도 어느 하루만 아이를 안지 않고 날마다 아이를 안을 테지요.


  기운을 차리도록 이끄는 빛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담은 손길로 밥을 짓습니다. 사랑을 실은 눈빛으로 마주봅니다. 사랑을 엮은 이야기가 깃든 책을 읽습니다. 4347.7.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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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그림책은 내 친구 38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논장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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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2



스스로 선물하는 사랑

―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14.6.30.



  아이들은 자전거를 달리고 싶습니다. 폭신한 걸상에 앉아 알맞게 발을 구르면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자전거를 달리면서 깔깔 웃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달리면서 자동차 때문에 막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두 다리로 달리고 싶습니다. 이곳에서든 저곳에서든 두 다리로 씩씩하게 달리면서 하루를 신나게 누리고 싶습니다. 학교에 가야 하거나 학원에 가기를 바라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언제나 구슬땀 흘리면서 씩씩하게 달리면서 놀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활개를 치면서 달리고 싶습니다. 나비가 날듯이, 잠자리가 날듯이, 제비가 날듯이, 크고 작은 수많은 새가 하늘빛을 머금으면서 눈부시게 날듯이, 온몸으로 활개를 치면서 달리고 싶습니다. 성적표에 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 어버이가 가진 돈에 얽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늘빛이 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해를 마주하면서 햇빛이 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별을 올려다보면서 별빛이 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눈빛을 밝히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 로타는 그 말에 더욱 화가 났어요. 로타는 아빠 엄마한테 말했어요. “들었죠? 내가 자전거를 못 타는 건 자전거가 없기 때문이라고요.” 그리고 샌드위치를 조금 오물거리고 나서 다시 종알거렸어요. “나 진짜로 자전거 탈 수 있어. 비밀이지만!” ..  (4쪽)




  칠월 여름을 맞이하여 비가 안 오는 날이면 자전거를 몰아 골짜기로 갑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습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습니다. 나는 두 아이를 앞자전거 발판을 구르면서 힘껏 이끕니다. 골짜기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고 비알이 가파릅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고갯길을 오릅니다. 한참 고갯길을 오르면 물살이 빠르면서 시원한 골짜기가 나옵니다. 아이들은 골짜기에서 마음껏 물장구를 칩니다. 아이들은 골짜기에서 기쁘게 물놀이를 합니다.


  더위에 흘린 땀을 골짝물로 씻은 뒤 자전거를 달립니다. 이제는 내리막입니다. 오르막에서는 다 함께 땀을 흘리지만, 내리막에서는 다 같이 바람을 가릅니다. 오르막이 고될수록 내리막이 시원합니다. 비탈길이 힘겨울수록 내려올 적에 빠릅니다.


  골짜기로 가는 동안 이웃마을 들길을 지납니다. 아직 농약을 치지 않을 무렵에는 들빛이 짙푸르면서 잠자리와 개구리와 풀벌레와 멧새가 가득합니다. 시골에 젊은이가 없대서 헬리콥터를 불러 항공방제를 한 차례 하고 나면, 잠자리가 사라지고 개구리 노랫소리가 죽으며 풀벌레도 멧새도 어느새 자취를 감춥니다.



.. 로타는 새로 받은 선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때는 자전거 생각을 까맣게 잊었어요. 아침나절에는 장난감 자동차도 갖고 놀고, 그림책도 보고, 줄넘기도 하고, 그네도 타면서 아주아주 즐겁게 놀았죠 ..  (8쪽)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도시에서 자전거를 달리는 아이들은 들길을 누리지 못합니다. 자전거는 달리지만, 새와 개구리와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누리지 못합니다. 바람에 눕는 풀을 못 보는 도시 자전거이고,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을 못 보는 도시 자전거입니다. 도시에서는 언제나 자동차를 살펴야 해요. 자동차 때문에 자전거를 탈 만한 곳이 아주 줄어요. 자동차 때문에 자전거뿐 아니라 골목놀이가 사라져요. 자동차 때문에 아이들은 놀 곳이 없어요.


  축구장이 있어야 공차기를 하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골목에서나 빈터에서나 마음껏 공차기를 하고픈 아이들입니다. 야구장이 있어야 공치기를 하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나무막대기와 공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공치를 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우리가 누릴 곳은 따사로운 보금자리입니다. 우리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줄 선물은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나무를 심을 만한 마당과 자전거를 달릴 만한 골목이나 고샅과 동무들과 어울려 뛰놀 빈터와 숲을 어른들 스스로 곱게 가꾸어 아이들한테 이어주어야지 싶습니다.



.. “자, 밤세, 쌩쌩 달리는 거야.” … 요나스와 미아 마리아보다 훨씬 빨리 바람을 가르며 쌩쌩 달렸죠. 그래요. 트집쟁이 거리에서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자전거는 여태껏 아무도 본 적이 업었어요. 로타가 소리쳤어요. “멈춰! 멈춰!” 하지만 하전거는 멈출 수 없었고 로타도 멈출 수 없었어요 ..  (19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쓴 글에 일론 비클란드 님이 그림을 담은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논장,2014)를 읽습니다. 멋진 그림책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는 스웨덴에서 1971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에서는 1982년과 1984년에 처음 옮겼습니다. 1980년대 첫무렵에는 ‘현대세계걸작그림동화’ 가운데 11번으로 나왔고, 이때 붙은 책이름은 《로타와 자전거》(백제/문선사 펴냄)입니다. 1980년대에 처음 나왔다가 어느새 사라진 이 그림책을 아끼는 분이 꽤 많았으나 오래도록 되살아나지 못했는데, 2014년에 드디어 논장 출판사에서 곱다라니 엮어서 선보입니다.


  예전 책과 새로운 책을 함께 놓고 살핍니다. 예전 책에서 살짝 뭉개진 그림이 새로운 판에서는 잘 살아납니다. 얼굴빛도 마을빛도 모두 새로운 판이 한결 곱습니다. 그리고, 예전 책은 그림 가장자리가 잘렸으나, 새로운 판은 그림을 잘 살려 주었습니다.


  책이름처럼 이 그림책은 ‘다섯 살 아이가 두발자전거를 타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나는 우리 집 아이들과 이 그림책을 몇 해 앞서부터 즐겁게 보면서 ‘자전거 타는 이야기’ 말고도 다른 이야기에서 한껏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로타 생일에 온 식구가 기뻐하는 모습이 즐겁습니다. 다음으로, 로타가 그네 선물을 받아서, 마당에 선 커다란 나무에 그네를 걸고는 하얀 꽃잎이 나부끼는 한복판에서 노는 모습이 즐겁습니다. 그리고, 로타가 사는 마을 곳곳에 제비들이 춤추는 모습이 즐겁고, 집집마다 마당이 있으며, 나무가 자라고, 꽃잎이 흩날릴 뿐 아니라, 빨래가 해바라기를 하면서 춤추는 모습이 그야말로 즐겁습니다.



.. 바로 그때 길 저쪽에 아빠가 보였어요. 로타는 기둥 위에서 잽싸게 미끄러져 내려갔어요. 아빠가 로타한테 딱 맞는 작은 자전거를 끌고 오지 뭐예요! “어, 어떻게 된 거지?” 하고 로타는 혼잣말을 했어요 ..  (27쪽)





  로타한테는 무엇이든 언제나 선물입니다. 아버지가 베푼 자전거만 선물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마을이 선물이요,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선물입니다. 멋진 오빠와 언니가 선물이고, 살가운 어머니와 아버지가 선물입니다.


  우리한테는 무엇이 선물일까요. 우리는 어떤 선물을 누리면서 살아가나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선물로 삼아서 나누어 주는가요. 우리 어른은 스스로 어떤 빛을 선물로 누리면서, 아이들하고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가요.


  다섯 살 로타는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이나 쉰 살인 어머니와 아버지인 우리들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 꿈을 꿀 수 있습니까?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까? 삶을 지을 수 있습니까?


  요즈막에 시골에서는 농약을 뿌리느라 어디에서나 어수선합니다. 새마을운동과 함께 1970년대부터 불어닥친 농약바람은 2010년대를 지나도록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웬만한 어버이들은 ‘농약 덜 쓴 쌀’이나 ‘농약 안 친 쌀’을 사다 먹으려고 애쓰지만, 막상 시골에서는 농약을 한 차례라도 더 치려고 애씁니다. 도시로 떠난 딸아들이 낳은 아이(손자와 손녀)를 먹이겠다면서 시골 할매와 할배는 ‘농약 듬뿍 쳐서 키운 쌀’을 가을마다 보내 줍니다. 시골에 늙은 어버이를 두고 도시로 떠난 딸아들은 시골서 보낸 쌀보다는 생협 매장에서 ‘유기농 쌀’이나 ‘친환경 쌀’을 사다 먹는다지요. 시골에서는 일손이 없다며 농약에만 기대려 하고, 도시에서는 사람이 넘치고 온갖 병치레가 넘실거리면서 농약을 타지 않은 곡식을 바랍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다섯 살 로타라면 이 나라 시골에서 어떻게 흙을 가꿀까 궁금합니다. 다섯 살 로타가 이 나라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간다면 어떻게 하루를 누릴까 궁금합니다. 4347.7.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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