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모든 것은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8
브라이언 멜로니 글, 로버트 잉펜 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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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5



걱정하니까 ‘죽음’, 웃고 노래하기에 ‘삶’

―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브라이언 멜로니 글

 로버트 잉펜 그림

 이영희 옮김

 마루벌 펴냄, 1999.11.21. 1만 원



  아이가 때때로 죽음을 묻습니다. 그러면 아이한테 거꾸로 되묻지요. 넌 죽음이 뭐라고 생각하니? 아이는 선뜻 대꾸하지 못하면서 빙긋 웃습니다. 이러면서 책이라든지 영화라든지 할머니라든지 이웃이 들려준 말을 고스란히 되풀이합니다. 이때에 아이한테 더 물어요. 네가 한 말은 ‘네 생각’이니, 아니면 ‘다른 사람 생각을 그대로 옮긴 말’이니, 하고요.


  때때로 마당에 애벌레가 떨어져서 죽습니다. 드센 비바람이 몰아쳐도 애벌레는 나뭇잎을 단단히 움켜쥐면서 안 떨어지기 마련인데 바람 없는 날에 애벌레가 그만 마음을 놓았는지 마당에 툭 떨어지지요. 마당에 떨어진 애벌레는 씩씩하게 살아서 다시 나무로 기어가기도 하지만,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할는지 몰라서 그만 햇볕에 타죽거나 고양이나 새한테 잡아먹혀 죽습니다.


  마당에 덩그러니 놓여서 죽은 애벌레를 나무 곁으로 옮깁니다. 아이한테 묻습니다. 이 애벌레는 어디로 갈까? 글쎄, 모르겠는데. 이즈음 아이한테 ‘죽음 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애벌레 몸은 흙으로 가지. 애벌레 넋은 몸에서 나와 새로운 곳으로 가고. 그러니 애벌레가 죽었다고 슬퍼하지 않아도 돼. 애벌레는 몸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태어날 테고, 몸은 고운 흙으로 돌아가서 나무와 풀을 살찌워 주거든.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단다. 그 사이에만 있는 거지. (2쪽)




  브라이언 멜로니 님이 글을 쓰고, 로버트 잉펜 님이 그림을 그린 《살아 있는 모든 것은》(마루벌,1999)을 가만히 읽어 봅니다. 이 그림책은 “산 것”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는가” 하는 대목을 밝힙니다. 삶은 어떻게 삶이라 할 만하고, 죽음은 어떻게 죽음이라 할 만한가를 넌지시 보여줍니다.


  아직 학교에 들지 않은 어린이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빚은 그림책입니다. 말은 되도록 줄이고, 그림을 곁들여서 “삶과 죽음 사이”를 쉽게 헤아려 보도록 북돋아 준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고 보니, 참말 “삶과 죽음 사이”입니다. 눈을 뜨면 삶이고, 눈을 감으면 죽음이라 할 만해요. 밤에 잠자리에 드는 우리는 모두 ‘죽는다’고 할 수 있어요. ‘잠’이란 ‘새로운 죽음’이라 할 만하지요.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산다’고 할 테지요. 하루를 새롭게 산다고 할 만해요.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영원히 살지는 못한단다. 살아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따라 그리고 생물에 따라 오래 살기도 하고 짧게 살기도 하지. (10쪽)




  아이한테 물어봅니다. 얘야, 우리가 밤에 잠을 자면 우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있을까? 알 길이 없지요. 아파서 드러눕든 졸려서 드러눕든 둘은 똑같이 잠입니다. 잠이 들면서 꿈을 꾸어요. 어제하고 똑같은 꿈을 되풀이해서 꿀 수 있지만, 어제하고는 다른 꿈을 새롭게 꿀 수 있어요.


  아침에 일어난 우리는 잠에서 깨며 기지개를 켜고 눈을 크게 떠요. 어제하고 똑같은 방에서 일어났기에 ‘아이고, 어제하고 똑같이 지겹네’ 하고 여길 수 있지만, 어제하고 똑같은 방에서 일어났어도 ‘우와, 오늘 하루를 새롭게 선물로 얻네’ 하고 여길 수 있어요.


  그래서, 오늘 아침을 어제랑 똑같이 맞이한다면 ‘죽음하고 같은’ 셈이고, 오늘 아침을 어제랑 다르게 새로이 맞이한다면 ‘그야말로 삶’이라 할 만하구나 싶어요. 이리하여 우리는 누구나 아침이 되어 새로 눈을 뜨고 일어서면 서로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빙그레 웃음지으며 절을 해요. “잘 잤니?” “즐겁게 꿈을 꾸었니?” “반가워요.” “잘 지내셨어요?” “아침 드셨어요?”



크고 강한 나무는 천천히 자란단다. 햇빛을 받고 비를 맞으며. 어떤 나무는 아주 오래 살지. 오백 년도 넘게. 그것이 나무의 수명이란다. (18쪽)




  그림책 《살아 있는 모든 것은》은 삶하고 죽음을 다룹니다. 삶하고 죽음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고요히 보여줍니다. 이 그림책은 ‘죽지 않는 삶’이라든지 ‘살아가는 뜻’을 밝히지는 않아요. 이 그림책은 오직 ‘죽음’은 언제 찾아오고, ‘삶’을 누리는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대목을 밝혀요.


  아이들은 때때로 궁금해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여든 해쯤 살다가 죽는다면 앞으로 일흔 해쯤 뭐를 해야 할까?’ 하고요. ‘어차피 죽을 텐데 왜 힘들게 공부를 해야 하나?’ 하고도 궁금해 할 만해요.


  아이들이 이 대목을 궁금해 하면 나는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조곤조곤 속삭입니다. 그래, 너희들은 살고 싶니, 죽고 싶니? 이렇게 물으면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말을 할 테지요. 그러면 이제 다시 물어요. 어떻게 살고 싶니? 웃으면서 살고 싶니? 노래하며 살고 싶니? 짜증을 내거나 골을 부리며 살고 싶니? 아이들은 늘 ‘웃고 노래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짜증이나 골이 아니라 기쁨 가득한 사랑이 되고 싶다고 말해요.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지. 풀도, 사람도, 새도, 물고기도, 토끼도, 아주 작은 벌레까지도. 이 세상 어디에서나! (38쪽)




  웃음이 있는 하루이기에 삶이 된다고 느껴요. 온누리 모든 것이 다 그렇다고 느껴요. 풀도 사람도 새도 물고기도 토끼도 아주 작은 벌레까지도, 웃음과 노래가 흐를 적에 기쁜 삶이 된다고 느껴요. 웃음과 노래가 없이 짜증이나 골부림만 감돈다면 ‘살아도 삶 같지 않은 나날’이 된다고 느껴요.


  이리하여, 아이들을 무릎에 앉힌 채 더 말을 잇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니까 죽음을 걱정하는구나 싶어, 그래서 너희들 아버지는 삶을 생각하면서 이 삶을 즐겁게 짓는 길을 생각하고 싶어, 너희는 어떻게 무엇을 생각하면서 살겠니?


  삶과 죽음 사이에 무엇을 놓을지는 누구도 모르겠지요. 다만, 삶과 죽음 사이에 짜증이나 골부림을 놓는다면 죽음이 빠르게 찾아들리라 느껴요. 삶과 죽음 사이에, 아니 그저 삶이라는 자리에 웃음과 노래를 놓는다면, 언제나 웃고 노래하는 삶이 되어, 즐겁게 새로운 하루가 찾아오리라 느껴요.


  여기까지 아이들하고 이야기꽃을 피운 뒤에 그림책을 덮습니다. 자, 이제 우리 ‘꿈꾸러’ 가자. 오늘 하루는 여기에 내려놓고, 신나게 꿈을 꾸면서 새로운 하루로 나아가자. 2016.2.1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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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예요? 생각하는 분홍고래 2
콘스탄케 외르벡 닐센 지음, 정철우 옮김, 아킨 두자킨 그림 / 분홍고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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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4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푸는 수수께끼

― 나는 누구예요?

 콘스탄체 외르벡 닐센 글

 아킨 두자킨 그림

 정철우 옮김

 분홍고래 펴냄, 2013.9.13. 12000원



  살랑거리는 포근한 바람을 타고서 노르웨이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그림책 《나는 누구예요?》(분홍고래,2013)를 읽습니다. 콘스탄체 외르벡 닐센 님이 글을 쓰고, 아킨 두자킨 님이 그림을 그린 이 그림책은 ‘내가 누구인가?’ 하는 수수께끼를 어린이가 스스로 푸는 길을 찬찬히 들려줍니다. 성교육 지식으로서 어머니랑 아버지 몸에 있는 두 가지 씨앗이 만나서 태어나는 ‘나’라고 하는 ‘몸’을 넘어서, 이 몸을 다스리면서 움직이는 ‘또 다른 나’라고 하는 ‘넋’이 무엇인가를 찾고 싶은 어린이한테 길찾기를 들려주어요.



윌리엄은 가끔 혼자 있고 싶어요. 친구들과 뛰어 놀라는 잔소리를 안 들어도 되고, 얼마든지 생각에 빠질 수 있으니까요. 생각하고 싶은데 왜 놀아야 하죠? 그리고 생각을 어떻게 멈추죠? 친할머니는 윌리엄이 안 보여도 어디 있는지 다 알아요. (2쪽)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때때로 혼자 생각에 잠깁니다. 혼자 생각에 잠기는 날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쏟아지는 생각을 들여다보느라 바쁘니까요. 흐르는 생각을 살펴야 하니까요.


  생각을 하면서 공을 찰 수 없고, 생각을 멈추면서 술래잡기를 할 수 없어요. 나무에 마련한 오두막으로 올라가서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서 생각에 잠겨요. 나무가 베푸는 기운을 받고, 숲내음이 흐르는 오두막 기운을 함께 느끼면서 생각에 잠겨요.


  그림책을 보다가 ‘우리 집 나무도 무럭무럭 자라서 이런 오두막을 지을 수 있으면 좋겠네’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우리 집을 두 층으로 올려서 다락방을 하나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네 하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우리 집 아이들이 저마다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기고 싶어 할 적에 그곳에 깃들어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테니까요.



여기 나무 집에 혼자 있는 윌리엄은 누구일까요? 윌리엄은 엄마의 꿈이 이루어진 거래요. 그렇지만 어떻게 꿈이 아이가 될 수 있죠? 그럼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누군가의 꿈이었다는 거예요? (4쪽)


외할머니는 윌리엄의 질문을 듣지 못했나 봐요. “그럼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데?” 대답은 않고 오히려 되물어요. (10쪽)




  ‘나는 누구지?’ 하고 궁금해 하는 아이는 둘레에서 마주하는 사람들한테 이 수수께끼를 묻습니다. 두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말씀을 여쭈고, 어머니하고 아버지한테 말씀을 여쭙니다. 마을 형이나 누나한테 묻습니다. 아이를 둘러싼 사람들은 저마다 맞닥뜨리는 삶에 맞추어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을 형들은 “넌 그냥 멍청이야(20쪽).” 하면서 짓궂게 놀립니다. 마을 누나는 아이 이름에 깃든 뜻이 남달리 있으리라고 넌지시 귀띔말을 들려줍니다.


  아이는 여러 사람한테 수수께끼를 묻는 사이에 어렴풋하게 알 듯도 하다고 느끼지만, 도무지 모르겠다고, 오히려 실타래가 더 엉킨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바야흐로 종잡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느껴요. 더군다나 증조할머니 말씀처럼 “크면 안다”고 하는 이야기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 아이는 바로 오늘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을 뿐, 나이가 마흔 살이나 예순 살이나 여든 살이 되어서야 알기를 바라지 않아요.



증조할머니는 윌리엄이 소중한 선물이래요.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선물이요. 자기가 어떻게 선물일 수 있느냐고 물으면 한동안 말이 없어요. 그러고는 이렇게 얘기하죠. “네가 크면 알게 될 거야.” (18쪽)


“너 이름마다 뜻이 있는 거 아니? 내 이름은 올리케야. 늑대처럼 강하다는 뜻이지. 나한테 딱 맞는 이름이야. 난 포기하지 않거든.” 어쩌면 윌리엄이라는 이름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 줄지 몰라요. 그런데 세상에는 윌리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아요. (23쪽)




  우리는 저마다 ‘내가 누구인지’ 얼마나 알까요? 우리는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 얼마나 마음을 기울일까요? 돈을 버느라 너무 바빠서 ‘내가 누구인지’ 생각할 틈이 없을까요? 그림책 《나는 누구예요?》에 나오는 아이 아버지는 일하느라 바빠서 ‘내가 누구인지’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아이 할아버지 한 분은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일(취미)에 푹 빠지느라 아이가 묻는 말에 찬찬히 대꾸할 겨를이 없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꿈’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는데, 아이로서는 ‘꿈’이 무엇인지도 아직 잘 몰라요. 어머니가 아이를 꿈꾸었기에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는 대목이라든지, 어머니한테 어떤 아이가 이 보금자리로 찾아오기를 꿈꾸었는가 하는 대목까지는 잘 모릅니다.


  나무 오두막에서 한참 생각에 잠긴 아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할머니 한 분은 영차영차 힘을 내어 오두막까지 올라옵니다. 주전부리를 챙겨서 올라오시지요. 그러고는 아이한테 아주 쉬운 실마리를 하나 밝혀 줍니다. 아마 할머니도 할머니 스스로 누구인가 하는 대목을 새롭게 생각해 보셨겠지요. 나이가 들면 다 알 수 있다는 실마리가 아니라, 나이가 어릴 적에는 어린 숨결대로 어떤 넋이고, 나이를 먹는 동안에는 이때에 새롭게 어떤 넋이며, 나이가 많이 들어 늙은 때에는 이때대로 새롭게 어떤 넋인가를 생각해 보셨구나 싶어요.



한참 뒤 할머니가 말했어요.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너일지도 몰라.”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요?” “그래, 모든 것.” (26쪽)




  기쁨을 마음에 담으면 기쁨이 바로 나예요. 슬픔을 마음에 얹으면 슬픔이 바로 나예요. 웃음을 마음 가득 터뜨리면 웃음이 바로 나예요. 눈물을 펑펑 쏟아내면 눈물이 바로 나예요. 그러니까, 나는 늘 바뀝니다. 나는 늘 거듭나기도 합니다. 나는 늘 제자리걸음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뒷걸음질을 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껑충 뛰어오를 수 있습니다. 신나게 달릴 수 있고, 고단하게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참말 나는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 《나는 누구예요?》를 읽을 어린이가 이 대목을 어느 만큼 스스로 헤아리거나 깨달을 만한지는 알기 어려운 노릇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책을 어머니랑 아버지가 아이하고 함께 읽으면서 생각을 기울이면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어머니도 오늘 이곳에서 ‘나는 누구일까’ 하고 돌아보고, 아버지도 오늘 이곳에서 ‘나는 누구인가’ 하고 되새기면서, 아이가 아이 스스로 ‘나는 어떤 사랑을 받아서 어떤 꿈을 가슴에 품고 이곳에 태어난 넋인지 궁금하네’ 하는 수수께끼를 풀도록 도와줄 수 있으면 참으로 아름답겠지요.


  함께 생각하면서 함께 길을 찾습니다. 아직 어렴풋하더라도, 아직 잘 모르겠더라도, 서로 손을 맞잡으면서 씩씩하게 새로운 길을 걸어갑니다. 2016.2.1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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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수학 그림책 - 미야니시 다쓰야의 ‘수’ 이야기
미야니시 다쓰야 글.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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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6



밤하늘 별을 세는 숫자놀이

― 처음 만나는 수학 그림책

 미야니시 다쓰야 글·그림

 김숙 옮김

 북뱅크 펴냄, 2015.7.30. 11000원



  아이들하고 집에서 셈놀이를 하다가 내 어릴 적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세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눈앞에 있는 것을 찬찬히 세면 되니까요.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니 ‘눈앞에 없는 것’을 세라고 가르치지요. 처음에 산수를 배우면서 무척 어리둥절했어요. 아니 왜 눈앞에 없는 것을 세라고 하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이르러서야 곱셈이나 나눗셈을 한다든지, 방정식이나 여러 수식을 익히려면 ‘눈앞에 없는 것’을 기호로 셀 줄 알아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지만, 처음에는 왜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세라고 시키거나 묻는가 하고 아리송하기만 했습니다.


  내 어릴 적에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운 것하고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한테 가르칠 것을 함께 돌아봅니다. 무엇을 가르치거나 배우든 왜 가르치거나 배우는가부터 이야기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어느 나이에 이르렀으니 꼭 배워야 한다는 얘기보다는, 이것을 배우면서 어떻게 살려서 쓸 만한가를 알려주고, 이것을 배우면서 생각이나 살림이나 생각을 얼마나 한껏 키울 만한가를 들려줄 수 있어야지 싶어요.




“모르겠지? 그러면 이 꽃삽은 내가 가져가겠다! 흐흐흐.” 숫자별 외계인이 그렇게 말한 바로 그때, (19쪽)



  미야니시 다쓰야(미야니시 타츠야) 님이 빚은 그림책 《처음 만나는 수학 그림책》(북뱅크,2015)을 아이들하고 찬찬히 읽습니다. 큰아이는 이 그림책에 나오는 셈을 잘 읽고, 작은아이는 아직 숫자를 다 읽지 못합니다. 그래도 작은아이는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으면서 셀 줄 압니다. 그래, 너처럼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세도 되지. 누구나 처음에는 그렇게 하나씩 짚으면서(만지면서) 센단다. 이렇게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짚으면서 차근차근 느낄 적에 비로소 이러한 숫자를 마음으로도 그릴 수 있어.


  그림책 《처음 만나는 수학 그림책》에는 외계인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숫자별 외계인’이 지구별에 나타나서 놀이터 아이들한테 다가오더니 낼름 꽃삽을 빼앗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꽃삽을 빼앗더니 숫자 문제를 못 풀면 꽃삽을 그대로 가져가겠노라 하고 말해요.


  어른인 이 외계인은 참으로 엉뚱하지요. 난데없이 나타나서 뜬금없이 아이들 것을 빼앗겠다고 하니까요. 더군다나 문제를 못 풀면 제 것이라고 외치니 더더욱 짓궂지요.




비행접시가 땅에 내려왔어. 그 안에서 숫자별 외계인 아이들이 내렸어. “얘들아, 숫자별 외계인 아이들 수는?” “음, 5보다 5 많으니까…….” “답은 바로 10이지!” 누군가가 대답하면서 비행접시에서 나왔어. (28∼29쪽)



  꽃삽을 빼앗긴 아이들은 씩씩하게 숫자 문제를 풉니다. 숫자별 외계인은 지구별 어린이가 너무 똑똑하다면서 붉으락푸르락합니다. 나중에는 그냥 꽃삽을 가로채려 합니다. 이즈음 아이들을 돕는 ‘더하기 아저씨(더하기 맨)’가 나타나서 도와주어요. ‘더하기 아저씨’는 숫자별 외계인을 꼼짝 못하도록 ‘더하기 문제’를 척척 맞추어 줍니다.


  나중에는 숫자별에서 ‘어린이 외계인’하고 ‘어머니 외계인’까지 지구별로 찾아와서 함께 숫자놀이를 해요. 어머니 외계인은 지구별 꽃삽이 더없이 멋있고 쓸모있구나 싶어서 얻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아버지 외계인’이 짓궂은 짓을 해서 미안하다고 밝히면서 ‘숫자로 선물’을 남기고 떠납니다.


  뭐, 숫자놀이하고는 동떨어진 얘기이지만, 꽃삽은 참으로 멋있고 재미난 연장이에요. 꽃삽으로 흙을 잘 뜰 수 있고, 꽃삽으로 땅을 파서 씨앗을 심기에 좋고, 작은 나무라면 꽃삽으로도 얼마든지 옮겨심기를 할 만해요. 꽃삽 하나만 있으면 흙놀이를 신나게 하면서 해가 떨어지는 줄조차 잊을 만하고요.



숫자별 외계인들은 모두 자기네 별로 돌아갔어. 이제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에 비행접시는 없어. 하나도 없으니까 비행접시 수는 0(영)이야. 개구리도 집으로 가서 보이지 않았어. 한 마리도 없으니까 개구리 수도 0. 달팽이도 닭도 가 버려서 한 마리도 없기 때문에 달팽이도 닭도 0. (38쪽)




  그림책 《처음 만나는 수학 그림책》을 보면, 숫자별 외계인이 내는 숫자 문제가 나옵니다만, 이 문제 말고도 숫자로 셀 것이 곳곳에 나옵니다. 이를테면, 구름이 있고, 나무가 있어요. 숫자별 외계인이 타고 오는 우주선도 있으며, 어느새 밤이 깊으면서 하늘 가득 돋은 별도 있지요. 숫자별 외계인이 지구를 떠난 뒤에는 밤하늘 별만 가득 남는데, 아이들하고 별 숫자를 세면서 놀 수 있습니다.


  그림책을 함께 보던 큰아이는 “별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세?” 하고 묻습니다. 나는 “하나씩 세다 보면 다 셀 수 있어.” 하고 얘기해 줍니다. 못 셀 듯하다고 여기면 못 세기 마련이고, 하나씩 세다 보면 다 셀 수 있기 마련이에요.


  그림책에 나오는 별을 셀 만하다면, 우리 집 마당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만나는 수많은 별도 셀 만해요. 마당에 놓은 평상에 함께 드러누워서 서로 하늘을 갈라 한쪽 하늘에 별이 얼마나 되는가를 세 볼 수 있습니다. 하나부터 백까지 세고, 백에서 이백까지 셉니다. 숫자는 자꾸 늘어서 삼백이 되고 사백이 됩니다.


  문득 어릴 적 일이 다시 떠오릅니다.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는 나한테 숫자 세기를 시키면서 숫자하고 가까워지도록 이끌었습니다. 별을 세도록 이끌었고, 꽃을 세도록 이끌었어요. 때로는 나뭇잎을 세도록 이끌었어요. 잠자리에서는 잠이 올 때까지 숫자를 몇까지 셀 수 있는지 물어보셨어요. 때로는 서로 숫자를 하나씩 말하기를 하면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고요. 이제 와서 돌아보니 천이나 이천이라는 숫자를 서로 하나씩 말하면서 숫자놀이를 하는 일이란, 이런 놀이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란, 참 대단하네 싶습니다. 천까지 함께 세고, 이천까지도 같이 세는 몸짓으로 어른들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셈입니다. 2016.2.12.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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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거즐튼무아 알맹이 그림책 30
마츠오카 쿄오코 글, 오오코소 레이코 그림, 송영숙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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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3



우리는 늘 “아무튼 즐거워” 노래하지요

― 워거즐튼무아

 마츠오카 쿄오코 글

 오오코소 레이코 그림

 송영숙 옮김

 바람의아이들 펴냄, 2013.5.20. 9000원



  아홉 살이 된 큰아이가 저녁에 일기를 씁니다. 큰아이한테 ‘일기’는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글’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오늘 큰아이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로는 마당에서 아버지가 웃몸을 안고서 빙글빙글 돌려 준 놀이입니다. 저랑 동생을 마당에서 갈마들며 빙글빙글 돌려 준 놀이가 오늘 하루 놀이 가운데 가장 크게 남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제는 흙놀이를 한 일이 남길 만한 이야기였다고 적습니다. 이제 하룻밤을 자고 새로운 날이 찾아오면 어떤 이야기를 일기에 적을까요? 오늘이나 어제하고 똑같은 놀이를 누린 이야기를 적을 수 있고, 다르거나 새로운 놀이를 누린 이야기를 적을 수 있겠지요.



땅을 파고 씨앗을 심는 내내, 아줌마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나팔꽃이랑 맛 좋은 수박이 번갈아 가며 떠올랐습니다. ‘나팔꽃일까, 수박일까? 아무튼 즐거운 일이야.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구 말구.’ 하고 아줌마는 생각했습니다. (17쪽)




  마츠오카 쿄오코 님이 글을 쓰고, 오오코소 레이코 님이 그림을 그린 《워거즐튼무아》(바람의아이들,2013)를 읽습니다. ‘워거즐튼무아’는 ‘아무튼 즐거워’를 거꾸로 적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놀이라고 할까요. 말장난일 수 있고요. ‘어싫튼무아’라 하면 ‘아무튼 싫어’일 테고, ‘네밌재튼무아’라 하면 ‘아무튼 재밌네’예요.


  나는 집에서 아이들한테 곧잘 ‘거꾸로 말하기’를 해 봅니다. 그러면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어리둥절해 합니다. 이러다가 큰아이가 먼저 눈치를 채고 ‘아하, 또 뒤집어서 말하네?’ 하면서 웃어요. 이를테면, 나물을 먹을 적에 ‘물나’라 말한다든지, 수박을 먹자고 하면서 ‘박수’ 먹으라 한다든지, 고기를 차린 저녁밥을 ‘밥기고’라 해요.



왕자님도 모르는 것이 있었답니다. 왕자님이 모르는 것은, 성 밖에 사는 왕자님 또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들이지요. 성 밖에서는 아이들이 하루 종일 놀고 있습니다. 봄이 오고 사과나무에 꽃이 피면, 아이들은 나무 밑에서 술래잡기를 하기도 하고 숨바꼭질을 하기도 합니다. 여름이 되면, 아이들은 벌거벗고 시냇물에서 헤엄도 칩니다. 가을에도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있어요. 낙엽을 모아서 산처럼 쌓아 놓고 그 가운데로 풀쩍 뛰어들어 낙엽 속에 파묻히는 것이에요. (22쪽)




  아무튼, 《워거즐튼무아》에는 ‘뚱보 아줌마’하고 ‘왕자’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뚱보 아줌마는 어느 날 부엌을 치우다가 묵은 씨앗을 찾아냈고, 이 묵은 씨앗을 밭에 심기로 합니다. 밭을 갈아서 씨앗을 심으려는 뚱보 아줌마를 본 이웃사람은 그 씨앗이 ‘나팔꽃’ 씨앗이라고도 하고, ‘수박’ 씨앗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씨앗을 심고 보니 호박이 나왔다지요.


  뚱보 아줌마는 씨앗을 심은 뒤 푯말을 세웠대요. ‘라몰도지일꽃팔나’, ‘라몰도지일박수’, ‘워거즐튼무아’ 이렇게 세 마디를 적은 푯말이에요. 그러나, 거꾸로 읽으니 이런 말일 뿐, 뚱보 아줌마는 ‘나팔꽃일지도몰라’하고 ‘수박일지도몰라’하고 ‘아무튼즐거워’라 적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나팔꽃 씨앗하고 수박 씨앗을 모를 수 있을까요? 호박 씨앗하고 수박 씨앗은 크기부터 많이 다른데, 이 대목을 모를 수 있을까요? 뭐, 아무튼 모를 수 있겠지요. 이 그림책은 아무튼 이런 줄거리로 흐르니까요.



“이제부터 요리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만, 이것을 먹을 때는 몇 가지 꼭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사옵니다. 우선 이 ‘라몰도지일꽃팔나’이옵니다만,” 하고 아줌마는 첫 번째 호박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것을 먹으려면 바깥에서, 그것도 시냇물가의 풀밭에서 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외의 장소에서 먹는다면, 목구멍이 막혀서 죽게 될 것입니다.” (51쪽)




  그림책 《워거즐튼무아》에 나오는 왕자님은 궁궐에서 공부만 해야 합니다. 공부만 하느라 지칩니다. 공부 빼고는 할 수 있는 일도 놀이도 없기에 머리가 아픕니다. 이러던 어느 날 마차를 타고 어느 마을을 지나가다가 뚱보 아줌마가 세운 푯말을 보아요. 왕자님은 푯말에 적힌 글을 거꾸로 읽었기에 ‘라몰도지일꽃팔나’가 뭔 소리인지 알 길이 없지만 무척 재미난 주문이라고 여깁니다. 공부에 공부만 거듭하는 나날이 이어지니 그만 꽝 터지면서 ‘라몰도지일꽃팔나’라든지 ‘라몰도지일박수’ 같은 말을 마구 읊었다고 해요. 이러면서 ‘워거즐튼무아’를 주지 않으면 밥을 굶겠다고 외쳤다고 하는군요.


  궁궐에서 왕자님을 가르치거나 모시는 이들은 어쩔 줄 몰라 하지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요. 이러다가 왕자님이 읊은 말은 ‘어떤 아줌마가 세운 푯말에 적힌 글을 거꾸로 외웠을 뿐’인 줄 알아냅니다. 그러나 차마 그 대목을 왕자님한테 밝히지 못합니다. 이때에 뚱보 아줌마는 좋은 생각을 하나 내놓아요. ‘워거즐튼무아’이든 ‘라몰도지일꽃팔나’이든 모두 ‘여느 호박’일 뿐이지만, 왕자님한테 재미있게 ‘호박 요리’를 베풀어 주자고 생각합니다.



임금님은 “공부는 잘 하고 있었나?” 말씀하시고, 왕자님에게 여러 가지를 질문하셨어요. 그러자 왕자님은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임금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시냇가의 풀밭에는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가 어디에 있으며 물이 흐르는 구멍이 어디에 있을까, 또 성 옆 밀가루 가게의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에는 새끼가 몇 마리가 있는지, 거미는 무엇을 먹고 사는지 등의 질문이었지요. 물론 임금님은 그 어떤 질문에도 만족스럽게 대답하지 못했지요. 그러자 왕자님은 자랑스럽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임금님에게 가르쳐 주었답니다. (61쪽)




  뚱보 아줌마는 왕자님한테 호박 요리를 줄 적에 늘 토를 붙입니다. 그냥 먹어서는 안 되고, 냇가에 가서 풀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먹어야 한다고 토를 붙여요. 그리고 혼자 먹으면 안 되고 시골마을 아이들하고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토를 붙입니다. 왕자님 곁에서 심부름을 하는 신하는 이런 토달기, 그러니까 궁궐 바깥에서 햇볕을 쬐면서 ‘워거즐튼무아’를 먹도록 하는 일이 못마땅합니다. 더군다나 뚱보 아줌마는 왕자님한테 입힌 거추장한 옷을 모두 벗긴 뒤 가벼운 차림새가 되어서 ‘왕자님 또래인 시골아이’하고 신나게 뛰놀기를 바라고, 이대로 하도록 북돋웁니다.


  자, 이제부터 왕자님은 어떻게 될까요?


  ‘워거즐튼무아’를 맛나게 먹은 왕자님은 공부가 아닌 놀이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립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수많은 또래 아이들하고 뒤섞여서 온갖 놀이를 처음으로 겪으면서 웃습니다. 허옇던 살갗하고 얼굴은 까무잡잡하게 탑니다. 신하들은 이런 일을 몹시 못마땅해 하는데, 공부에 등을 돌릴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실컷 놀면서 ‘모든 짜증과 괴로움’을 풀어낸 왕자님은 온마음을 바쳐서 공부를 해요. 공부만 시킬 적에는 공부가 죽도록 싫었다면, 실컷 놀면서 바깥바람이랑 햇볕을 쐬도록 한 뒤에는 공부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림책 《워거즐튼무아》를 살며시 덮으며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린이와 푸름이는 얼마나 마음껏 뛰어놀 만할까요?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은 햇볕은커녕 비도 눈도 제대로 맞지 못하면서 입시지옥에서 허덕여야 하지 않나요? 입시지옥을 지나갔어도 어떤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떨어졌느냐에 따라 또 고단한 길이 이어져요.


  아이들은 공부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은 삶을 모르는 채 공부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은 동무나 이웃조차 없이 공부만 해야 할까요? 나팔꽃도 수박꽃도 호박꽃도 모르는 채 공부만 한 아이들이 국회의원이나 판사나 의사가 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동무도 이웃도 없이 ‘궁궐 울타리’에서만 자란 왕자님은 어떤 임금님 노릇을 할까요? 한국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분들은 반지하도 옥탑방도 버스삯도 모르기 일쑤였어요. 대통령 자리에 앉은 분들은 어떤 이웃을 두거나 어떤 동무를 사귀면서 어린 나날을 보냈을까요? 아무튼 《워거즐튼무아》라는 그림책을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읽으면서 “아무튼 즐거워”가 온누리에 가득 퍼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434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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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신기한 사탕이다
미야니시 타츠야 글 그림, 계일 옮김 / 계수나무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1



‘사탕 한 알’로 달래려 하지 마셔요

― 우와! 신기한 사탕이다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계일 옮김

 계수나무 펴냄, 2009.12.25. 9500원



  아이들한테 사탕 한 알은 얼마나 대단한가 하고 늘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사탕 한 알이면 ‘울던 아이도 울음 뚝’이고, ‘눈물이 가득하던 아이도 눈물 뚝’입니다. ‘싸우던 아이도 싸움 뚝’이 되도록 하고, ‘떼쓰던 아이도 떼 뚝’이 되도록 해요.


  사탕 한 알은 언제나 대단한 힘을 내지만, 때때로 얄궂은 힘도 냅니다. 이를테면, 사탕은 자꾸 사탕을 먹고 싶도록 이끕니다. 사탕 한 알이 울음이나 싸움이나 떼를 끝낼 수 있더라도, 사탕 맛을 본 아이는 자꾸 사탕을 먹고 싶습니다. 바야흐로 사탕을 더 먹고 자꾸 먹고 또 먹고 거듭 먹고 내처 먹고 한결같이 먹겠다면서 울거나 엉겨붙거나 떼를 쓸 수 있어요.


  어른들은 아이를 보며 섣불리 사탕으로 달래려 해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사탕 한 알로 달래려는 몸짓으로는 아무것도 달래지 못해요.



“여기에 있는 사탕을 먹으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단다. 자, 이 노란 사탕 하나 먹어 보지 않을래?” (3쪽)


“사탕을 다 먹고 나면 신기한 힘도 사라진단다. 이번엔 이 파란 사탕을 먹어 보렴!” (9쪽)




  미야니시 타츠야 님이 빚은 그림책 《우와! 신기한 사탕이다》(계수나무,2009)를 읽습니다. 숲에서 사는 꿀꿀이(돼지)가 어느 날 ‘숲 속 사탕가게’에서 ‘놀라운 사탕’을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힘이 없고 어린 꿀꿀이는 이제껏 동무나 이웃한테서 놀림을 제법 받은 듯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돼지 가운데 멧돼지도 아닌 집돼지라면 웬만한 숲짐승한테 여러모로 밀릴 테니까요.


  이런 집돼지인 꿀꿀이는 사탕가게에서 아주 놀라운 사탕을 맛봅니다. 범이 우는 소리가 나는 사탕을 맛보고, 늑대 모습으로 바뀌는 사탕을 맛보지요. 작은 사탕 한 알이지만, 이 사탕 한 알로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는 재미를 깨닫습니다. 이리하여 ‘놀라운 사탕’을 잔뜩 장만해서 주머니에 챙겨요. 그러고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장난’을 치기로 합니다.



꿀꿀이는 기뻐하며 숲 속으로 들어갔어요. 조금 뒤, “어디, 장난 좀 쳐 볼까?” 꿀꿀이는 빨간 사탕 세 개를 한꺼번에 입에 털어넣었어요. (16쪽)




  놀라운 사탕을 손에 쥔 꿀꿀이가 하는 일은 ‘놀이’가 아닌 ‘장난’입니다. 숲에 있는 동무나 이웃하고 재미를 나누려는 놀이를 할 생각을 품지 못해요. 숲에 있는 동무나 이웃을 골리거나 놀리려는 장난을 칠 생각을 해요.


  아무래도 여느 때에 받은 놀림을 돌려주겠노라 하는 생각이었겠지요. 너희도 좀 놀림을 받고 깜짝 놀라 보렴 하면서 장난을 치겠노라 하는 생각이었을 테지요.


  가만히 따지면, 꿀꿀이가 그동안 받았을 놀림은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꿀꿀이가 다른 동무나 이웃을 놀려도 될 만하지 않아요. 네가 나를 놀렸으니 나도 너를 놀리면 될까요? 네가 나를 괴롭혔으니 나도 다른 누군가를 찾아서 괴롭히면 될까요? 네가 내 뺨을 때렸으니 나도 나보다 여린 누군가를 붙잡고 뺨을 때리면 될까요?


  장난꾸러기가 된 꿀꿀이는 혼자서 신납니다. 이러다가 꿀꿀이는 숲에서 ‘참 늑대’를 만나요. 사탕을 먹고 ‘거짓 늑대’가 된 꿀꿀이는 ‘참 늑대’가 이끄는 대로 늑대 무리로 가야 하지요. ‘참 늑대’는 ‘거짓 늑대’인 꿀꿀이더러 그곳에서 뭐 하느냐고, 우리(늑대) 무리로 가야 하지 않느냐고 데려가지요.


  늑대는 언제나 무리를 지어서 다녀요. 혼자 다니지 않지요. 꿀꿀이는 이 대목을 잘 모른 듯해요. 사탕을 먹고 늑대 모습이 된다 하더라도 숲에 있는 늑대는 놀라지 않겠지요. 왜 저놈이 저기에서 혼자 저러나 하고 여기겠지요. 그러니까, 거짓 늑대 노릇을 하는 꿀꿀이는 아주 큰일이 났습니다. 사탕이 다 녹으면 거짓 늑대로 꾸민 모습이 모두 사라질 텐데, 어떡해야 할까요.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게다가 입 안의 사탕이 다 녹으면서 꿀꿀이의 몸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크크크, 잡았다!” ‘아, 이젠 틀렸어!’ 그때 너구리 아저씨가 한 말이 떠올랐어요. ‘깜짝 놀랄 일이 생길 거야.’ (29쪽)




  그림책 《우와! 신기한 사탕이다》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째, 놀라운 사탕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둘째, 놀라운 사탕으로 재미난 놀이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셋째, 놀라운 사탕으로 신나게 장난을 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넷째, 놀라운 사탕으로 혼자 신나게 장난을 치다가 큰코 다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다섯째, 장난을 치더라도 가볍게 한 번만 칠 노릇이고, 동무나 이웃을 자꾸 놀래키면 스스로 덫에 갇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여섯째, 놀라운 뭔가로 장난을 치는 삶은 아무한테도 재미없기 때문에, 동무랑 이웃하고 다 함께 어깨를 겯고 재미난 삶을 짓는 길을 생각하자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가끔 문득 한 알을 얻어서 먹는 사탕일 때에 맛있습니다. ‘사탕중독’이 된다면, 즐거운 맛을 누리는 살림이 아니라, ‘사탕이 없으면 마치 죽음과 같이 되는’ 어리석은 모습이에요.


  사탕에 매여서 ‘놀라운 뭔가’를 손에 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장난감도 그렇고 책이나 다른 여러 가지도 똑같습니다. 어른들도 이와 같아요. 술을 날마다 자주 마셔야 즐거울 수 있지 않아요. 가끔 문득 누리는 술 한 잔이 기쁨이 될 수 있어요. 동무하고 이웃을 불러서 도란도란 알맞게 누리는 조촐한 잔치가 될 때에 비로소 기쁨이라 할 만해요.


  놀라운 사탕으로 그야말로 놀라운 일을 겪은 꿀꿀이는 앞으로는 더 사탕으로 장난을 치자는 생각을 안 하겠지요? 사탕 한 알이 있으면 동무하고 반을 나누어 먹을 수 있겠지요? 남을 놀리거나 괴롭히는 데에서는 기쁨이나 즐거움이 없는 줄 잘 느꼈을 테지요? 4349.2.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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