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93] 보금자리

 

  ‘비오톱(biotop)’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또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참 알아듣지 못합니다. 우리 나라에 언제부터 이 낱말이 들어와 공공기관과 대학교와 시민모임에서 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낱말을 들여오면서 학자나 전문가나 기자나 교사뿐 아니라, 도시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과 시골에서 고요히 흙을 일구는 사람들 누구나 쉽고 즐거우며 아름다이 알아들을 만한 낱말로 걸러내거나 새로 빚지 못했습니다. 작은 벌레가 살고, 작은 나무가 살며, 작은 꽃이 피어납니다. 사람이 살고, 작은 짐승이 살며, 작은 벌과 나비가 드나듭니다. 흙이 있고, 물이 있으며, 햇살과 바람이 있습니다. 뭇목숨이 저마다 살아갈 만한 터전인가를 돌아봅니다. 그래, 그렇지요.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작은 시골집 처마에 제비가 옛 둥지를 손질해 우리랑 함께 살아갑니다. 어미 제비 둘은 알을 까서 새끼를 먹입니다. 암수 제비 둘은 먹이를 찾아 바지런히 온 들판을 누빕니다. 제비는 도시에서는 살아가지 못하겠지요. 제비는 도시에서 먹이를 찾기 힘들겠지요. 도시는 사람들끼리 돈을 더 만들려 애쓰는 곳이니, 작은 땅뙈기, 작은 들판, 작은 숲, 작은 나무 한 그루 가만히 깃들 빈터조차 받아들이지 않거든요. 더 많은 돈보다 더 즐거울 삶을 생각하는 작은 사람은 시골에서 흙을 퍼 옮겨 작은 마당과 작은 꽃그릇을 가꾸는데, 이 같은 작은 손길이 없다면 도시사람은 푸른 숨결 한 번 못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지요. 저마다 사랑하며 살아갈 보금자리입니다. 사람도 보금자리요, 나무도 보금자리이며, 벌레도 보금자리입니다. ‘비오톱(biotop)’이라는 낱말 빚은 어느 독일사람은 틀림없이 ‘보금자리’를 헤아렸겠지요. (4345.5.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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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92] 밭딸기

 

  딸기는 봄을 맞이해 잎을 먼저 틔우고, 이른 봄꽃들이 먼저 흐드러지고 나서야 하얀 꽃송이 피웁니다. 하얀 딸기꽃은 오월로 접어들며 차츰 시들고는 알맹이가 시나브로 굵어집니다. 오월 끝무렵이나 유월 첫무렵에 이르러 비로소 새빨갛게 익습니다. 예부터 딸기는 한봄에 누립니다. 이른봄에는 딸기잎만 볼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겨울이 끝난다 싶을 무렵 가게마다 딸기가 나옵니다. 도시사람은 딸기꽃은 생각조차 안 하며 딸기열매만 돈을 치러 사다 먹습니다. 막상 들판에서 딸기가 알맞게 햇살을 머금으며 자라서 무르익을 무렵에는 딸기를 구경하지 않아요. 비닐집에서 난로불로 키운 딸기, 참외, 복숭아, 수박, 오이를 철없이 아무 때나 사다 먹습니다. 이리하여 오늘날에는 ‘노지(露地) 딸기’라는 딸기가 새로 태어납니다. 예부터 모든 딸기는 들판이나 멧자락에서 자라 ‘들딸기’이고 ‘멧딸기’였으며 그냥 ‘딸기’라고만 했는데, 이제 그냥 ‘딸기’라 일컫는 딸기는 비닐집 딸기입니다. 멧자락이나 들판에서 스스로 자라는 딸기는 ‘딸기’라는 이름을 누리지 못합니다. 밭에 심어 거두니까 밭딸기이지만, 이제 밭뙈기에 비닐 안 씌우는 시골이 없는 만큼 ‘비닐밭딸기’라고 해야 걸맞을까요. 비닐집에서 얻으면 ‘비닐집딸기’가 될까요. 그런데, 국어사전에도 없는 ‘노지’라는 낱말은 어디에서 들어온 말일까요. (4345.5.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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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5-16 23:39   좋아요 0 | URL
노지, 일본어라고 알고 있어요. 첨 결혼해서 시금치를 사는데, 할머니가 노지시금치라고 맛있다고 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노지가 뭐예요? 여쭈었더니 비닐하우스 재배가 아니고 땅에서 자란 재배한 것을 노지라고 한다고 하더라구요.

저 어릴 때만해도 딸기는 여름에 먹었어요. 비닐하우스 재배딸기 한 십년 된 것 같아요. 저는 뭐하러 겨울에 재배하는지 모르겠어요. 비싼 난방비 들이면서.

숲노래 2012-05-17 07:02   좋아요 0 | URL
일본말을 안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말을 제대로 생각하며 알맞게 쓰는 길을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아무렇게나 말을 하니, 아무렇게나 생각하지 않느냐 싶기도 해요.

수박은 이제서야 모종을 심을 때인데, 그러니까 수박은 이제서야 싹이 틀 때인데, 가게(마트)에는 벌써 수박이 나오잖아요...
 

[함께 살아가는 말 91] 나중에 내요

 


  파주책도시로 마실을 나옵니다. 파주 책도시에서 사진잔치를 열기에 전남 고흥에서 퍽 먼 마실을 나옵니다. 바깥으로 나온 만큼 바깥에서 밥을 사다 먹고, 잠을 잘 자리를 따로 얻습니다. 이틀을 묵은 파주에서 나오며 1층 손님맞이방에 열쇠를 돌려주는데 “‘바우처’로 하시면 되지요?” 하고 묻습니다. “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되묻습니다. 문득, ‘바우처라 하는 말이 나중에 다른 분이 삯을 치르도록 하는 일을 가리키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 님이 나중에 돈을 치러 주신다는 말이지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네 식구 함께 짐을 꾸려 나오며 다시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국사람끼리 주고받는 말인데 한국사람이 알아들을 만한 말을 쓰지 않는 일이 너무 흔한 이 삶이 얼마나 좋거나 얼마나 아름답거나 얼마나 즐거웁다 할 만한지 아리송합니다. 한국에 호텔이라는 곳이 옛날부터 있은 적이 없으니 ‘호텔’이라는 이름부터 영어에서 가져다 쓴다 하지만, 이런 낱말 저런 낱말 몽땅 영어로 적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자동차를 한국에서 처음 만들지 않았으니 자동차를 이룬 곳곳을 가리키는 이름도 한국말로 따로 없을밖에 없으나, 굳이 ‘백미러’라 할 까닭 없이 ‘뒷거울’이라 하면 됩니다. 내 이웃을 생각하고 내 삶을 사랑할 줄 안다면, 잠을 자는 호텔 이름부터 이곳에서 쓰는 숱한 말마디를 한결 예쁘며 사랑스레 보듬을 수 있겠지요. 아이들한테 물어 보셔요. 아이들하고 좋은 말을 함께 생각해 보셔요.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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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90] 고무신


  나한테는 운동신이 없습니다. 가죽신도 없고 다른 신도 없습니다. 나는 오직 고무신을 신고 걷습니다. 나는 고무신을 발에 꿰고 달립니다. 나는 고무신을 걸치고 자전거를 탑니다. 그렇지만 요즈음 고무신은 고무로 만든 신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든 신입니다. ‘플신’이라든지 ‘뿔신’이라 해야 올바릅니다. 겨울이 되면 고무신을 벗고 털신을 신습니다. 물이 안 새도록 하면서 발목 께에 털을 붙였기에 털신입니다. 옛날 사람은 비오는 날 나막신을 신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사람은 비오는 날 비신을 신기도 하지만, 으레 ‘장화’를 신습니다. 아이들은 운동‘신’ 아닌 운동‘화’를 신고, 어른들은 ‘구두’를 신어요. 달리기 하는 사람은 ‘달리기신’이나 ‘육상신’ 아닌 ‘육상화’를 신습니다. 농구를 하건 배구를 하건 축구를 하건 모두 ‘신’ 아닌 ‘화’를 신습니다. 그래도 모두들 신집이나 신발집에 가서 신이나 화를 장만하곤 했는데, 나날이 신집이나 신발집이 사라집니다. 차츰차츰 ‘슈샵’이나 ‘슈스토어’가 생깁니다. 초등학교마다 English zone이 생기는 요즈음에는 사커슈와 키즈슈가 나옵니다. ‘신’은 사라지는 말이고, ‘靴’는 낡은 말이며, ‘shoe’는 멋스럽고 새로운 말이 됩니다. 시골마을 젊은이 가운데 고무신 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시골마을 아이들 가운데 고무신 즐기는 아니는 우리 아이 빼고는 만나기 힘듭니다. (4345.4.2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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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89] 톺아보다

 

 한국사람 가운데에는 한국땅에서 살아가지 않는 이가 있을 테고, 한국땅에서 살더라도 한국말을 안 쓰는 이가 있으리라 봅니다. 모두 똑같은 삶은 아닐 테니까요. 나는 내가 어린 날부터 내 어버이한테서 듣고 배운 말을 쓰는 한편, 나 스스로 새로 배우거나 찾거나 살핀 말을 북돋웁니다. 나로서는 누군가 나한테 사랑스럽거나 따스히 들려주는 말이 고마우며 좋습니다. 더 좋은 말이나 더 나쁜 말이란 따로 없지만, 내 넋과 얼을 따사로이 보듬도록 이끄는 말마디라면 참 좋게 여길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섯 살 적에도 말을 새롭게 배우고, 열다섯 살이나 서른다섯 살에도 말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노상 새 말을 배우고 새 삶을 일군다고 느낍니다. 마흔다섯 살이나 예순다섯 살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새 말을 익히며 새 삶을 누리겠지요. 왜 그런가 하고 따질 까닭 없이, 하루하루 새로운 나날이요, 같은 살붙이하고 같은 보금자리에서 얼크러지더라도 날마다 새로 생각하고 새로 숨쉬며 새로 이야기꽃을 피워요. 1995년쯤이었나 1998년쯤이었나, ‘톺아보다’라는 한국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처음 이 말을 들을 때에는 뭣하러 이런 낱말까지 국어사전에서 캐내어 쓰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 스스로 나한테 익숙한 말 틀이나 테두리에서 안 벗어나려 하면 새 말을 못 받아들여요. ‘살피다’와 ‘살펴보다’를 옳게 가려 쓸 줄 알아도 즐겁고, 여기에 ‘톺아보다’를 넣어 내 말밭을 한껏 북돋우면 훨씬 즐거워요. 곰곰이 돌이키면, 늘 새로 생각하고 언제나 새 하루 맞이하듯 노상 새 삶을 톺아보는 무지개빛 사랑이요 꿈입니다. (4345.3.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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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25 08:13   좋아요 0 | URL
왜 이글을 쓰셨는지 알겠습니다 ^^
그러고보면 아이들만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네요.

숲노래 2012-03-25 09:1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어른들이 날마다 새롭게 말을 배울 수 있으면,
아이들도 날마다 좋은 말을 즐거이 배울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뿌리깊은 글쓰기>라든지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같은 책을 자꾸자꾸 쓴답니다. 독자들보고 말을 배우라는 뜻보다, 어버이요 어른인 나부터 말을 제대로 배우고 싶거든요.

다만, 아직 이 뜻을 알아차린 분은 얼마 없는 듯해요 ㅠ.ㅜ 앞으로는 조금씩, 때로는 한꺼번에 확~ 그러다가 누구라도 즐거이 이 뜻을 기쁘게 나눌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