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83] 젖떼기밥

 

 일곱 달째 함께 살아가는 둘째한테 젖떼기밥을 먹입니다. 옆지기가 곡식가루를 따순 물에 살살 타서 조금씩 떠먹입니다. 위아래로 앞니가 둘씩 천천히 나는 둘째는 엄마젖이랑 젖떼기밥을 먹으며 씩씩하게 자랍니다. 때로는 무조각을 쥐어서 갉고, 배춧잎도 입에 넣으며, 미역줄기도 오물오물합니다. 귤은 다 으스러뜨리면서 입으로 쪽쪽 빨아먹으며, 감알이나 배알도 잘 빨아먹습니다. 첫째 아이 젖떼기밥을 끓여서 먹이던 일을 떠올립니다. 젖을 차츰차츰 줄이도록 하는 젖떼기밥을 실컷 먹을 무렵 둘째는 첫째가 했듯이 제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 설 테지요. 제 두 손으로 젓가락과 숟가락을 쥘 테지요. 손가락에 힘을 주고 손목으로 힘을 받쳐 젓가락질과 숟가락질을 하겠지요. 젖먹이는 젖을 먹으면서 자라고, 젖을 떼면서 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으면 아기에서 아이로 거듭납니다. 아이는 밥 한 그릇으로 제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살찌웁니다. 아이는 몸을 살찌우는 밥을 받아서 튼튼하게 살아가고, 아이는 마음을 북돋우는 사랑을 받으며 씩씩하게 뛰놉니다. (4344.12.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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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2-30 08:24   좋아요 0 | URL
일러주신대로 사진을 넣으면서 2mm 여백을 두었더니 보기가 좋군요.
고맙습니다~~ ^^

숲노래 2011-12-30 09:03   좋아요 0 | URL
그리 어렵지 않은 편집기술인데 알려주는 사람이 딱히 없고,
어찌저찌 하다 보니, 이걸 하면 참 좋더라고요~
 

[함께 살아가는 말 82] 도토리나무

 몇 해 앞서 첫째를 낳은 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어린이노래를 들려주려고 옆지기가 인터넷을 뒤지다가 ㄴ이라는 데에 올려진 국악동요를 찾았습니다. 여러 가지 국악동요는 요즈음 나오는 어린이노래 가운데 아이한테 들려줄 만한 몇 안 되는 노래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이 국악동요 가운데 첫머리를 “도토리나무에서 왕 도토리가 ……” 하고 여는 어린이노래가 있어요. 아이가 이 노래를 퍽 좋아해서 옆지기랑 나는 외울 수 있을 만큼 들어서 밤에 재울 때라든지 낮에 놀 때라든지 곧잘 부릅니다. 그런데 나는 이 노래를 처음 들을 때부터 노래말이 영 내키지 않아요. 하나도 올바르지 않거든요. 참나무가 맺어 내놓는 열매가 도토리이지만, 참나무는 참나무이지 도토리나무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뽕나무가 맺어 내놓는 열매가 오디이지만, 뽕나무는 뽕나무이지 오디나무가 아니에요. 열매이름을 따서 도토리나무라든지 오디나무라 해도 아주 틀리지는 않아요. 그러나 아이가 나무이름을 어린이노래에 나온 노래말대로 말하는 일은 너무 못마땅합니다. 나는 이 노래를 처음부터 아이한테 “참나무에서 왕 도토리가”로 바꾸어 부르고, 옆지기도 이제 “참나무에서 왕 도토리가”로 바꾸어 부르며, 어머니랑 아버지가 이렇게 부르니, 아이도 이 노래말을 따라 “도토리나무” 아닌 “참나무”로 말합니다. (4344.1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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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81] 심순이

 뒷북을 잘 치는 말똥쟁이 첫째 아이라고 놀리는 말을 일삼으니까, 아이가 자꾸 뒷북을 치면서 말똥쟁이 노릇을 하지 않느냐 하고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착한 아이요 예쁜 아이라고 노래를 하면 시나브로 참말 착하며 예쁜 아이로 즐거이 살아가지 않겠느냐고 생각해 봅니다. 빨래를 마친 아버지가 마당 빨랫줄에 널려고 밖으로 나오면 어느새 이를 알아채고는 뒤를 쫄래쫄래 따르면서 제 작은 손으로 빨래를 한 점씩 집어 내미는 아이입니다. 빨래마다 빨래집게 둘씩 집어서 내밀 줄 알고, 손닦개이고 동생 기저귀이고 아이 옷가지이고 예쁘게 갤 줄 아는 아이예요. 밥상에 수저 놓아 달라 이야기하면 척척 놓을 줄 알며, 그릇 날라 달라 하면 하나씩 얌전히 나를 줄 압니다. 그래서 이 아이한테 새로운 이름 하나, ‘심순이’를 붙이곤 합니다. 심부름 잘 하는 예쁜 아이로 지내니까 넌 심순이란다, 하고. 심순아, 심순아, 날마다 예쁘게 말하고 예쁘게 생각하며 예쁘게 살아가자. 곱게 손 뻗고 곱게 달음박질하며 곱게 밥먹자. 어머니 심부름도 잘 하고 아버지 심부름도 잘 하며,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 심부름도 씩씩하게 할 줄 아는 어여쁜 아이로 자라렴. (4344.1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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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80] 김떡순

 인천은 어느 도시나 시골보다 분식이라는 먹을거리가 발돋움했습니다. 아주 자그마한 터에 수많은 학교와 살림집이 다닥다닥 붙은 채 일제강점기 공장도시요 항구도시로 크던 데라 이와 같은지, 이러한 흐름이 해방 뒤로도 서울로 물건 올려보내는 공장도시요 항구도시 구실을 이었기에 뿌리깊게 퍼졌을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ㄹ이라는 곳이 온 나라 곳곳에 새끼가게를 수없이 차릴 때에 인천 시내 한복판에 들어선 ㄹ은 오래 못 버티고 구석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런저런 이름난 새끼가게가 들어서더라도 분식집 햄빵이 예나 이제나 널리 사랑받을 뿐 아니라, 인천 신포시장 분식집은 온 나라에 ‘분식집 새끼가게’를 퍼뜨리기까지 합니다. 인천을 떠나 처음 서울이라는 곳에서 분식을 먹던 1994년, 서울 종로에 줄지어 선 포장마차 분식집에서 ‘김떡순’이라 적은 글월을 처음 보았습니다. 포장마차 분식집마다 김떡순이라 적기에 뭔 소리인가, 무슨 여자 이름을 이렇게 짓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한참 지나고서야 김떡순이란 “김밥 + 떡볶이 + 순대”인 줄 알았어요. 누가 맨 처음 이 이름을 지었는지, 언제부터 이 이름이 퍼졌을는지 모릅니다. 번뜩 떠오른 생각으로 지은 이름일는지, 포장마치 분식집 일꾼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다가, 또는 술 한잔 함께 기울이다가 빚은 이름일는지 모릅니다. 일본사람은 ‘달걀부침 얹은 볶음밥’을 ‘오믈렛 라이스’도 아닌 ‘오무라이스’라는 이름을 붙인다지만, 한국사람은 예쁘게 ‘김떡순’이라는 이름을 빚어 곱게 부릅니다. (4344.11.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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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79] 집밥

 나이든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서 밥을 차려 대접하는 일은 참 기쁩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오늘, 내 두 아이와 밥상 앞에 마주앉아 도란도란 말꽃을 피우면서 몽실몽실 올라오는 따끈따끈한 밥을 나눌 수 있는 일은 몹시 즐겁습니다. 아마 그리 멀지 않은 옛날까지 누구나 집에서 이렇게 밥을 나누었겠지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신 아이들한테 밥을 나누고, 당신 아이들이 자라면서 당신 아이들이 당신과 당신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한테 밥을 나누던 삶을 이었겠지요. 이제 요즈음 사람들 누구나 집에서 밥을 나누는 일이 줄어듭니다. 이제 오늘날 사람들 누구나 으레 바깥에서 밥을 대접하는 일이 좋은 일이거나 섬기는 일인 듯 여깁니다. 혼인잔치를 할 때이든 돌잔치를 할 때이든 마을잔치나 동네 도르리가 되지 못합니다. 집에서 흙을 일구어 거둔 나락으로 밥을 지어 나누지 않기 때문에, 더욱이 돈을 벌어 돈을 써서 돈으로 바깥밥을 사먹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나락이 얼마나 나고 다른 푸성귀나 곡식은 얼마나 거두는가를 헤아리거나 느끼지 않습니다. 집에서 밥을 차리고, 집에서 밥을 나누며, 집에서 밥자리를 치우는 삶을 잊을 때에는 집에서 내 살붙이하고 사랑을 꽃피우는 조그마한 이야기를 하찮게 여겨 밀어젖힙니다. (4344.11.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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