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05] 밤더위

 

  밤에 덥습니다. 밤더위입니다. 낮에 덥습니다. 낮더위입니다. 밤에 바람이 붑니다. 밤바람입니다. 낮에 바람이 붑니다. 낮바람입니다. 밤에 달이 뜹니다. 밤달입니다. 낮에 달이 뜹니다. 낮달입니다. 밤에 피는 꽃이라 밤꽃이고, 낮에 피는 꽃이기에 낮꽃입니다. 밤에는 밤그림자가 드리우고, 낮에는 낮그림자가 드리웁니다. 밤이 되어 새근새근 밤잠을 이룹니다. 낮에 살짝 드러누워 낮잠을 즐깁니다. 스스럼없이 살아갑니다. 사랑스레 살아갑니다.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스스럼없이 살아가는 나는 스스럼없이 나눌 좋은 말을 빚습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나는 사랑스레 주고받을 맑은 말을 빚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나는 아름답게 꽃피울 기쁜 말을 빚습니다. 한여름 밤은 후끈후끈 덥구나 싶다가도 차츰 깊을수록 더위가 가시면서 새벽에 이를 무렵에는 퍽 시원합니다. 집 둘레에 흙이 있어 풀과 나무가 자라는 보금자리에서는 땀이 하염없이 솟는 밤더위가 찾아들지 않습니다. (4345.7.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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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7-27 15:09   좋아요 0 | URL
무더운 한여름 속에서도 시원한 시간이 있다는 건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멋진 선물 같아요. 저녁 산책할 때 느껴져요.

숲노래 2012-07-27 23:28   좋아요 0 | URL
낮에는 느긋하게 쉬고, 새벽과 아침에만 일하라는 뜻이리라 느껴요~
 

[함께 살아가는 말 104] 네 여 아

 

  누리집에 사진을 올리면서 사진파일 숫자를 하나하나 욉니다. 넷째 사진, 여섯째 사진, 아홉째 사진, ……. 사진파일은 스물이나 마흔을 넘어가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 몇몇을 골라서 올리자고 생각하다가, 숫자가 꽤 길어 이러면 다 못 외우겠네 싶습니다. 파일 숫자를 잊지 않으려고 뒷자리를 ‘사(四) 륙(六) 구(九)’라고 욉니다. 문득 ‘넷 여섯 아홉’이라고 외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앞소리만 따서 ‘네 여 아’라고 외어도 되겠구나 싶습니다. 나 스스로 가장 외기 좋도록 외면 돼요. 그러고 보면, 어린 날 동무들이랑 놀며 숫자를 셀 때에 더 빨리 세겠다며 ‘하 둘 셋 넷 다 여’처럼 왼 적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숫자를 ‘하 둘’이나 ‘다 여’처럼 외는 소리를 곁에서 어른들이 들으면, 예끼 이놈들 숫자를 그처럼 엉터리로 외면 안 돼, 하고 나무랐습니다. 하나하나 똑똑히 읊어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나는 숫자를 앞 글만 따서 외어 버릇하지 않았어요. 빨리 말하느라 꼬이거나 늦어도 ‘다섯 여섯’처럼 말하려고 애썼어요. 귀엽게 일컫는다면서 다 함께 줄여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면, 어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가리킬 적에도 이름 한두 글자를 일부러 빼거나 덜어 부르는 일은 사랑스럽지 않아요. 곱고 예쁘며 알맞고 바르게 읊어야지요. 그런데, 어느 한편으로 보면, 아이일 적부터 숫자를 빨리 말하느라 ‘외 글자’인 한자말 ‘사 륙 구’만 쓰다 보면, 시나브로 ‘넷 여섯 아홉’하고는 멀어지겠구나 싶어요. 숫자를 세며 하나하나 똑똑히 말하되, 때때로 스스로 ‘네 여 아’처럼 말할 줄 알 때에 슬기롭겠지요. (4345.7.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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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03] 고장말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저마다 누리고픈 삶을 누리고픈 대로 보금자리를 찾아 마을을 일구어 살아갑니다. 보금자리는 조그마할 수 있고 널따랄 수 있습니다. 마을은 자그마할 수 있고 큼직할 수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마을에서 얼크러지는 말을 주고받습니다. 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 마을에서 어우러지는 말을 나눕니다. 한겨레라는 테두리에서 모두 같은 말을 쓰지만, 서울사람과 부산사람 말은 서울말과 부산말입니다. 같은 서울 하늘이라 하더라도 종로말과 은평말이 있고, 같은 은평구 하늘이라 하더라도 갈현말과 불광말이 있어요. 전라말과 경상말이 있습니다. 전라 마을과 경상 마을이 있거든요. 전라 마을에서도 익산말과 구례말이 있으며, 장흥말과 고흥말이 있어요. 내 살붙이 살아가는 고흥에는 고흥읍과 도양읍이 있으며 도화면과 금산면이 있습니다. 도화면에는 신호리와 지죽리가 있으며, 신호리에는 동백과 신기와 원산과 호덕이 있습니다. 신호리에 깃든 작은 마을 동백에는 흙을 일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오순도순 모여 삽니다.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 말투를 가만히 들으면 집집마다 다 다르고, 한집 할머니 할아버지 말투도 살짝살짝 다릅니다. 생각해 보면, 큰 테두리에서만 한겨레말이고, 모든 사람은 다 다른 말씨와 말결과 말빛을 뽐내는구나 싶어요. 그리고, 한국땅에 들어온 이주노동자 한겨레말은 이녁대로 다르고, 한국으로 시집온 이들 한겨레말은 이녁대로 달라요. 남녘땅 한겨레말과 북녘땅 한겨레말은 큰 얼거리로 보아서 다르고, 중국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와 일본에서 살아가는 이들 한겨레말은 새삼스레 다릅니다. 스스로 뿌리내려 살아가는 고장에 따라 아기자기하며 살갑고 사랑스러우면서 어여쁜 고장말입니다. (4345.7.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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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살아가는 말

 


  집에서 어린 아이들과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을 함께 봅니다. 디브이디에 담긴 만화영화 사이사이 주제노래가 흐릅니다. 주제노래를 아이하고 함께 부르는데, 노래 끝자락에 “헤엄쳐라 거친 파도 헤치고”라 나옵니다. 서른 해쯤 앞서를 돌이킵니다. 내가 열 살 즈음이던 때에는 이 노랫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텔레비전에 흐르니 그저 그대로 따라서 부를 뿐이었습니다. 나는 고등학생쯤 되고서야 비로소 국어사전을 들출 줄 알았고, 고등학생 적에 국어사전에서 ‘파도(波濤)’라는 낱말을 찾아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흔하게 쓰는 이 낱말이 한자말이었다니! 게다가 더 놀랄 만한 대목은 낱말풀이입니다. “파도 : 바다에 이는 물결”이라고 적힙니다. 어이없구나 하고 느끼며 국어사전에서 ‘물결’을 찾아봅니다. ‘물결’ 뜻풀이 두 번째에 “파도처럼 움직이는 어떤 모양이나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달립니다. 하나는 한자말이고 하나는 겨레말로 다를 뿐이지만 뜻이 같은 ‘파도’와 ‘물결’인데, ‘물결’을 풀이하면서 “파도처럼 움직이는 무엇을 빗대는 말”이라 가리킨다면 어떻게 헤아려야 좋을까요.


  아이하고 둘이 노래를 부를 때에 슬쩍 노랫말을 바꿉니다. “헤엄쳐라 거친 물결 헤치고”로. 그런데 이 다음에 나오는 노랫말에서 다시 걸립니다. 이 다음에는 “달려라 땅을 힘껏 박차고”라 나오는데, 곧장 “아름다운 대지는 우리의 고향”이라 나와요. ‘땅’을 박차다가 ‘대지(大地)’가 아름답다고 말해요. “넓고 큰 땅”을 가리킨대서 ‘대지’라 한다지만, ‘땅’이 가리키는 지구별 겉자리는 ‘작은 곳’을 가리키지 않아요. ‘땅’도 ‘대지’도 모두 “지구별 겉자리 너른 곳”을 가리켜요. ‘바다’도 ‘하늘’도 모두 너른 곳을 가리키지 좁은 어느 구석을 가리키지 않아요. 한겨레가 예부터 즐겨쓰던 낱말은 크기를 줄이거나 넓히지 않아요. 꾸밈없이 얼싸안거나 어루만지는 낱말이에요. 오늘날에 이르러 새롭게 가리키려 한다면 새로운 낱말을 빚겠다는 생각으로 ‘큰바다’나 ‘큰땅’이나 ‘큰하늘’처럼 적을 수 있겠지요. ‘너른바다’나 ‘너른땅’이나 ‘너른하늘’처럼 적을 수 있어요. 스스로 생각하면서 살찌울 때에 아름답게 살아나는 말이요 글이거든요. 나부터 곱게 생각하며 참답게 사랑할 때에 비로소 싱그러이 숨쉬는 말이면서 글이에요. 이리하여 나는 아이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다시금 노랫말을 살짝 바꿉니다. “달려라 땅을 힘껏 박차고. 아름다운 이 땅은 우리들 고향.”


  함께 살아가기에 함께 누릴 말을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가기에 함께 사랑할 말을 생각합니다. 내 모든 좋은 생각을 말 한 마디에 담고 싶습니다. 내 모든 좋은 사랑을 글 한 줄에 싣고 싶습니다. 내가 즐겁게 생각할 때에 즐거우면서 좋은 꿈이 말마디에 담긴다고 느낍니다. 내가 예쁘게 사랑할 적에 예쁘면서 좋은 넋이 글줄에 실린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내 하루를 즐겁게 일구면 내 마음에서 피어나는 말은 곱게 꽃을 피워 말꽃이 된다고 느껴요. 내 하루를 살갑게 보듬으면 내 생각에서 자라나는 글은 맑게 열매와 씨앗을 맺어 글씨(글씨앗)가 된다고 느껴요.


  함께 살아가며 어깨동무할 말을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가며 서로 사랑할 말을 생각합니다. 옳은 말과 바른 말도 좋으나, 언제나 즐겁게 누릴 말을 생각합니다. 착한 말을 생각하고 참다운 말을 생각합니다. 내 좋은 보금자리와 내 좋은 마을과 내 좋은 지구별을 아름답게 보살필 가장 아름다운 말을 생각합니다.
2012.7.2.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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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02] 똑똑, 누구셔요

 

  “똑똑, 누구십니까. 꼬마입니다.” 하고 첫머리를 여는 어린이노래를 아이하고 함께 부릅니다. 이 노래를 듣고 부르는 아이들은 누구나 방문을 열기 앞서 ‘똑똑’ 두들긴 다음 안쪽에서 “누구셔요?” 하고 묻는 소리를 기다리겠지요. 아이가 방에 있을 적에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들긴다면, 아이는 문 바깥에 대고 “누구셔요?” 하고 묻겠지요. 엊저녁 읍내 고흥고등학교에 볼일이 있어 찾아가서는 이곳 선생님 두 분을 뵙고 ‘국어교사실’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고등학교가 참 시원스레 생겼고, 교실이며 골마루가 참 환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예전하고 견주니 참 밝고 상큼해요. 그런데 국어교사실 문 한쪽에 ‘노크’ 하고 들어오라는 쪽글이 하나 붙습니다. 얼핏 스치듯 바라보다가 빙그레 웃기만 합니다. 아무한테도 ‘국어교사실 노크 쪽글’ 이야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같은 말마디는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느낄 노릇이거든요.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누구나 어릴 적에는 ‘노크’보다는 ‘똑똑’이라는 소리말을 듣고 자랐을 테니, 아이들 스스로 어떤 말로 생각을 드러내어 나눌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돌아볼 수 있어야 해요. 그나저나, 우리 집 다섯 살 아이하고 고등학교에 찾아가 골마루를 지나는데, 이곳 아이들이 우리 아이를 바라보며 귀엽네, 하다가는 한 아이가 “장화 신었네.” 하고 말하는데, 곁에 있던 다른 아이는 “와, 레인부츠네.” 하고 말합니다. (4345.6.3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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