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88] 노래목소리

 

 넓게 펼쳐진 논 사이를 걷습니다. 첫째 아이는 어머니 손을 잡습니다. 둘째 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바람이 되게 붑니다. 된바람은 첫째 아이를 휭 하고 날려 넘어뜨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드센 바람이 부는 날 논둑길을 거닐다니 싶지만, 바람이 거세면 거센 대로 듬뿍 맞아들일 수 있는 봄날이 좋습니다. 봄이 되어 한결 홀가분하게 먹이를 찾으며 새끼를 돌볼 들새와 멧새가 휭휭 불어대는 바람을 가르며 납니다. 새들이 날며 내는 소리를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사람이 바라보기에 같은 갈래 새라 하더라도 지저귀는 소리가 다릅니다. 흔히 참새는 “짹짹”이라 하지만, 참새가 보옹 보옹 하고 날갯짓하며 지저귀는 소리를 듣자니, 어느 때에는 “째째째” 하고 어느 때에는 “찍찍찍” 하며 어느 때에는 “찌이찌이찌이” 합니다. 참새 스스로 때와 곳에 따라 스스로 읊는 소리가 다르고, 동무 참새한테 이야기하는 소리가 다를 테지요. 까마귀는 까마귀 소리로 서로 뜻을 나눕니다. 직박구리와 동박새는 직박구리와 동박새대로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와 옆지기와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사람과 삶대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아버지가 부르는 노랫소리와 어머니가 부르는 노랫소리하고 아이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다릅니다. 바람소리와 목소리와 노랫소리가 얼크러집니다. 집으로 돌아와 ‘보이스코리아’라는 풀그림을 가만히 보다가, 이제 ‘코리아’ 사람들 입에 ‘보이스’가 영어 아닌 한국말처럼 익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4345.3.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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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87] 낮밥

 

 초등학교 아이들이 롯데리아나 케이에프시나 맥도널드라는 곳에 찾아가서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하는 푸름이한테 말합니다. “런치세트 주셔요.” 스무 살을 넘고 서른 살을 웃도는 젊은 사람들이 ‘브런치 카페’를 찾아갑니다. 그래도 아직 웬만한 회사원들은 낮 열두 시 즈음 되어 ‘점심’을 먹으러 바깥으로 나돌겠지요.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는 이들 가운데 ‘런치’나 ‘브런치’를 모를 분은 없겠지만, ‘점심’을 먹을 만한 밥집을 찾아다니며 이녁 나름대로 맛집을 헤아리겠지요. 아침에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래하고 나서 낮으로 접어들 무렵 밥을 차립니다. 흔한 말로 ‘아점’이라 할 만한 밥으로 하루 첫 끼니를 즐깁니다. 여느 사람들이 낮밥을 먹을 즈음 우리 네 식구는 첫밥을 먹습니다. 아침에 먹을 때에는 아침밥이고, 낮에 먹을 때에는 낮밥이며, 저녁에 먹을 때에는 저녁밥입니다. 밤에 무얼 먹는다면 밤밥이 될 테지요. 새벽에는 새벽밥을 먹습니다. 새벽에 듣는 새소리는 새벽소리입니다. 밤에 듣는 새소리는 밤소리입니다. 달은 낮에도 걸리곤 해 낮달을 올려다보곤 합니다. 밤에는 새까만 하늘을 가득 채우는 밤별과 함께 밤달을 올려다봅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며 개구지게 뛰놉니다. 아이들 빨랫거리는 하루에도 숱하게 쏟아집니다. 아침빨래, 낮빨래, 저녁빨래를 하면서 하루가 저뭅니다. (4345.3.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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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새로 바꾼 이름을 놓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많이 보입니다.

이름으로 비아냥거리는 짓은 몹시 볼썽사납습니다.

'하는 일'을 놓고 비판해야 올바릅니다.

 

진보나 개혁이나 혁명... 을 외친다는 이들 스스로

못 하거나 안 하는 일을

보수정당 우익정당 수구정당 기득권정당에서

알뜰히 해낸다면,

이런 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좋을까요.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이라는 버거운 굴레를

이 나라 사람들은 언제쯤 털어버릴 수 있을까요..

 

 

[함께 살아가는 말 86] 새누리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잘 모르지만, 시골 흙일꾼이라면 ‘새누리 벼’를 압니다. ‘새누리 벼’는 농협에서 유전자를 건드려 파는 볍씨입니다. 이른바 온갖 벌레와 비바람에 더 잘 견딘다는 볍씨가 되도록 유전자를 건드리기 때문에, 이 볍씨를 심어 벼를 거둔 다음 다시 이 볍씨를 논에 심으면 알곡이 제대로 여물지 않는다고 해요. 해마다 새 볍씨를 농협에서 사야 합니다.

 

 한겨레 말글을 일찍부터 아끼거나 사랑하던 이들은 ‘새누리’라는 낱말을 퍽 좋아했습니다. 이 나라를 새롭게 바꾼다는 뜻과 느낌을 담는 ‘새누리’는 여러모로 어여쁩니다. 이 토박이말로 교회 이름을 짓는 곳이 있을 만큼 ‘새누리’라는 낱말은 싱그럽고 맑은 느낌을 두루 나누어 줍니다. 출판사 이름으로도 쓰이고, 어린이책 읽는 모임 이름으로도 쓰이며, 지역아동돌봄마당 이름으로도 쓰입니다. 2012년 2월에는 정당 이름으로까지 ‘새누리’가 쓰여요. 정당에서 한겨레말 ‘새누리’를 쓰는 대목은 몹시 놀랍습니다. 정치를 하는 이들은 한겨레말보다 중국말을 사랑할 뿐 아니라, 어설픈 영어를 아무 데나 쓰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거든요. 기자나 지식인이 붙인 이름이라지만, 한국사람 이름을 DJ라느니 MB라느니 하고 부르는 모습은 참 슬픕니다. 국회의원은 ‘國’이라 새긴 이름표를 붙이고 싶다 하지 ‘나라’나 ‘국’이라 적는 이름표는 붙이고 싶다 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한국에서 푸른 누리 꿈꾼다는 이들조차 ‘푸른당’이나 ‘푸른누리당’이라는 이름을 안 쓰는데, 보수 우익이라 하는 이들이 ‘새누리당’이라는 이름을 쓰니 더 놀랍습니다. 새누리당 사람들이 훌륭한 이름을 쓰면서 안타까운 길을 걷더라도, 훌륭한 길을 걸으려 힘쓴다는 이들 스스로 안타까운 이름을 내거는 모습을 곰곰이 톺아보기를 바랍니다. (4345.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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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2-03 12:54   좋아요 0 | URL
흠 새누리에 그런뜻이 있군요.저도 녹색당,새누리당처럼 일반 국민들에게 이름처럼 친근하게 다가갈 정당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2012-02-03 14:28   좋아요 0 | URL
그러나,
아무리 좋게 생각하더라도
이름만 좋은 정당이라면
하나도 좋을 수 없는 정당이라고 느껴요.

이궁...

노이에자이트 2012-02-03 17:1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볍씨품종에 새누리가 있죠.군사정권 때는 통일벼 노풍 등이 있었습니다.당시 가장 질좋은 쌀은 아키바레였죠.다수확 품종이 아니라고 해서 공무원들은 심지말라고 하고...그랬죠.

숲노래 2012-02-04 05:25   좋아요 0 | URL
여러 가지 볍씨 품종이 '유전자 안 건드린 품종'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시골 농협에서 시골 흙일꾼한테 나눠 주는 유인물을 들여다보면, 이들 볍씨가 참말 '유전자 안 건드리고 교배로 더 나은 품종을 만들었다' 할 만한지 알쏭달쏭해요.

마을 어르신들이 새누리이든 무어든, 농협에서 사다 심는 볍씨는 세 해를 쓰지 못해, 해마다 새로 사서 쓴다고 하는데, 이런 볍씨가 유전자 건드린 볍씨가 아니면 무얼까 하고... 참... 거시기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말 85] 능금씨

 

 

 ‘사과(沙果)’라는 이름은 옳지 않지만, 사람들은 ‘사과’라는 이름 아니고는 이 열매를 가리키지 못합니다. 예부터 이 열매를 가리키던 이름은 ‘능금나무 내(柰)’였습니다. ‘능금나무 내’는 ‘멋 내’라고도 적힙니다. 그러니까 우리 열매 이름은 ‘능금’이랑 ‘멋’이에요. 이와 비슷하게, ‘오얏 리(李)’라는 이름이 있어요. 이제는 ‘자두(紫桃)’라고만 하고 ‘오얏’이라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는데, 사람 성을 일컬을 때에 ‘자두 리’라 하는 사람은 없어요. ‘柰’라는 한자를 놓고도 ‘사과나무 내’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잃은 사람들은 능금나무이든 멋나무이든 생각하지 못해요. 생각을 잊은 사람들은 오얏나무를 헤아리지 않아요. 배꽃이라는 어여쁜 이름이 있어도 ‘이화(梨花)’라는 한자에 갇히는 한국사람이에요. 경성대학교라 안 하고 서울대학교라 하지만, 배꽃대학교라 말하지 못하고 이화(여자)대학교라 말하기만 해요. 새해에 다섯 살 된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열다섯이 되고 스물다섯이 되면, 이 아이가 둘레 어른들 사이에서 듣고 나눌 말은 어떤 모습이 될까 궁금합니다. 우리 아이가 생각씨 담은 생각말을 들려줄 때에 예쁜 마음씨로 곱게 이야기꽃 피울 이웃은 얼마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새해 선물로 받은 능금 한 알 썰며 능금씨 하나 건사합니다. (4345.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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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84] 가장 좋아

 

 아이랑 즐겨부르는 노래는 노래말을 슬그머니 바꾸곤 합니다. 〈달려라 하니〉를 부르다 보면, “난 있잖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고 나오는데, 나는 아이랑 “세상에서 가장 좋아.”로 바꿉니다. ‘세상’도 바꿀까 하다가 이 낱말은 그대로 둡니다. 아버지가 이 대목을 바꾸면 아이도 차츰 바꾸어 부르는 노래말에 익숙해지겠지요. 우리 아이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가장 좋아” 하고 노래를 부를 텐데, 이 노래를 아는 다른 사람들은 “제일 좋아”가 맞다면서 우리 아이보고 노래말을 바로잡으라 이야기할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노래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렇지만 나는 우리 아이하고 서로 좋아하며 즐기는 노래이기 때문에 참으로 사랑스러우면서 좋은 노래말을 붙이고 싶어요. 우리 입에 따사로이 달라붙으면서 싱그러이 북돋울 만한 낱말을 혀로 굴리고 싶어요. 아이도 어른도 서로서로 좋은 말로 좋은 넋을 보살피면서 좋은 날을 일구고 싶어요. 나와 아이는 논문을 읽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와 아이는 논문을 읽더라도 사랑스러울 말마디로 아름답게 읽고 싶어요. 서로를 따뜻하게 보살피는 말꽃과 말빛을 나누고 싶어요. (4344.12.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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