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68] 밑앎

 나는 자가용을 몰 줄 모릅니다. 옆지기는 운전면허증이 있으나 자동차를 몰지 않으며, 우리 집에는 차를 굴릴 만한 돈이 없습니다. 아이가 둘 있으니 자가용이 있으면 돌아다니기에 한결 수월할는지 모릅니다. 자가용이 없으니 모든 짐을 등과 어깨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찻길이 구석구석 잘 뚫린 이 나라에서는 자가용으로 못 갈 만한 데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자가용이 없으니 두 다리로 먼길을 걷지 못합니다. 두 다리로 걸으니 한손에는 사진기를 쥐고 한손에는 아이 손을 잡으며 멧길을 오르내립니다. 바람소리를 듣고 풀내음을 맡으며 흙기운을 받아들입니다. 햇살을 쬐고 바람을 맞으며 푸나무를 바라봅니다.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학교를 다녀야 할까 궁금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에 무엇을 배우거나 받아들일 만한가 궁금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운전면허증을 따야 할까 궁금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신문을 읽거나 방송을 보면서 시사상식이나 기본지식을 익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하나도 모르는 것투성이입니다. 온통 모르는 것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와 온갖 짐승을 예쁘게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살아갈 밑앎을 건사할 줄 안다면, 어버이로서 더 바랄 나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4344.8.1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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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67] 풀사마귀

 자전거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는 길에 새까만 아스팔트길에 버티고 선 사마귀를 봅니다. 자전거 바퀴는 사마귀를 밟지 않고 살살 비키지만, 자동차 바퀴는 이 까만 길에 풀빛 사마귀가 선 줄을 알아챌까요, 알아채지 않고 밟을까요. 읍내로 가다가 차에 밟힌 풀빛 벌레를 한 마리 보았습니다. 머리부터 몸통까지 아주 바스라져서 메뚜기인지 방아깨비인지 사마귀인지 알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까만 길바닥에 풀빛 주검은 또렷하게 아로새겨집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로 살살 달렸다면 까만 길바닥에 선 풀빛 벌레를 쉬 알아보겠지요. 자전거를 타더라도 싱싱 내달리면 알아보지 못할 텐데, 자동차를 타면 천천히 몬다 할지라도 풀빛 사마귀를 못 알아봅니다. 자동차를 타면 사마귀이고 나비이고 잠자리이고 개구리이고 그자 밟아댑니다. 이제 도시이고 시골이고 자동차가 한가득이라, 풀빛 몸뚱이를 수풀에 숨기며 먹이를 찾는 벌레들은 들새나 커다란 벌레보다 사람이 무섭습니다. 수풀에서는 풀사마귀나 풀메뚜기이면 되지만, 까만 아스팔트길에서는 먹사마귀나 먹메뚜기가 되더라도 제 몸을 지키지 못합니다. 아니, 까만 길에서 먹사마귀가 된다면 자전거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밟을는지 몰라요. 풀이 드문 흙땅에서는 흙사마귀가 될 텐데, 가만히 보니 누런 흙땅이나 흙길을 이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4344.8.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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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66] 집짓기

 집을 짓는 일이 ‘집짓기’가 아니게 된 지 하루하루 흐릅니다. 오늘날에는 집짓기를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이제는 어디에서나 ‘건축’을 하고 ‘건설’을 하며 ‘리빌딩’을 합니다. 집이 집이 아니며, 집을 짓는 삶이 집을 짓는 삶이 아닙니다. 집을 짓지 않기 때문에, 이 땅에서 오래오래 이루어지던 집삶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든 저곳에서든 볼 만하도록 짓는 집조차 아닙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달리 아름다운 삶을 일구는 집은 처음부터 없습니다. 쓰레기가 될 집만 짓는 요즈음 흐름입니다. 집 한 채를 지어 즈믄 해를 버텨야 하지는 않으나, 백 해 뒤에 헐든 이백 해 뒤에 허물든, 집을 허물며 나오는 조각조각으로 새 집을 지을 수 없다면, 이 모든 건축과 건설과 리빌딩은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 될 뿐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백 해 뒤까지 헤아리며 짓는 집이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집을 얻어 살아가는 우리들부터 집을 짓지 않고 돈을 들여 부동산을 장만합니다. 집 아닌 부동산이고, 보금자리 아닌 재산이 되고 맙니다. 한 땀씩 품을 들여 가꾸는 살림살이요, 하나씩 마음을 들여 다스리는 삶터입니다. 학문에 앞서 삶이어야 하고, 돈벌이보다 삶을 살펴야 합니다. 건축학을 배우는 젊은 넋이 아닌 보금자리에 깃들 따순 사람들 고운 사랑을 얼싸안아야 할 푸른 넋이어야 합니다. (4344.8.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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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65] 노을빛

 길디긴 장마가 끝났습니다. 아이 하나랑 살아가던 지난 몇 해 동안 장마철이 퍽 고단하구나 하고 생각했으나, 둘째를 낳아 이 둘째 갓난쟁이가 내놓는 오줌기저귀를 들여다보니, 참말 장마철이란 이렇구나 하고 다시금 깊이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 장마철이 끝나 무더위가 찾아올 때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끔찍한 더위라 하면서 걱정하지만, 기저귀 빨래로 죽어나던 어버이로서, 이제 눅눅한 기저귀 말리느라 한 달 가까이 고달프던 일에서 벗어나 한 시간이 채 안 되어 보송보송 바싹 마르는 기저귀를 걷을 수 있는 무더위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래, 이 고마운 무더위 첫날을 지나면서 밤하늘 달과 별을 아주 오랜만에 올려다본다고 느끼며, 첫째 아이랑 함께, 야 달이 참 곱구나 여름별은 이렇게 반짝이는구나, 하고 얘기합니다. 무더위 둘쨋날에는 이야 노을빛이 저리도 예뻤구나, 구름이 붉게 물들었네, 하고 이야기합니다. 무더위 셋쨋날에는 파랗디파란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면서, 자전거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느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이리도 파랗고 어여쁜 하늘을 언제 보았니, 하고 말을 섞습니다. 흉내낼 수 없는 별빛이고, 시늉할 수 없는 햇빛이며, 따라할 수 없는 노을빛입니다. 꼭 하나 있을 착하며 따스한 사랑을 아이랑 살포시 나누자고 새삼스레 다짐합니다. (4344.7.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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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내 고향은 영어를 참 좋아한다


 제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인천입니다. 서울 옆에 있다지만 인천은 인천입니다. 부천은 부천이고 수원은 수원이며 안산은 안산이에요. 서울 둘레에 있대서 서울하고 한동아리일 수 없고, 서울을 쉬 찾아갈 수 있대서 서울 문화를 누릴 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울하고 곁에 있어서 그런지, 인천사람은 퍽 예전부터 서울을 자주 드나듭니다. 똑똑하다 싶은 아이라면 일찌감치 서울로 보내서 가르쳐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대학교를 다녀도 인천에 있는 대학교가 아닌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야 공부 좀 한다고 여기며, 일자리를 얻어도 인천 아닌 서울에서 얻어야 제대로 일하는 줄 여겨 버릇합니다. 이런 탓인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서울에서 하면 인천도 뒤따르고 마는 요즈음 흐름입니다. 서울시에서 ‘Hi Seoul’이라고 내세우니 인천시에서는 ‘Fly Incheon’을 내세웁니다. 다만, 서울시 누리집을 들어가면 서울시는 ‘서울특별시’라고 한글로 적고 나서 누리집 맨 아래쪽에 ‘Hi Seoul’이라는 글월을 넣지만, 인천시는 누리집 대문 가장 잘 보이는 데부터 ‘Fly Incheon’을 넣습니다. 누리집 맨 아래쪽에서야 비로소 한글로 ‘인천광역시’라고 적어요.

 우리 나라는 무엇이든 서울로 쏠립니다. 우리 나라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는 소식이 되고, 큰 신문사이든 방송사이든 출판사이든 회사이든 서울에 모이기만 합니다. 서울에 있대서 잘못이 아니라, 서울에만 있으니 골칫거리이거나 말썽거리가 됩니다. 이리하여, 서울시가 ‘Hi Seoul’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서 썼을 때에 언론사마다 날카롭게 꾸짖으면서 이래서야 이 나라 얼굴이 제대로 서겠느냐고 따졌으나, 서울하고 맞붙은 인천시에서 아예 ‘인천광역시’라는 이름조차 뒤로 숨기거나 안 쓰면서 ‘Fly Incheon’이라고만 쓸 때에는 어느 누구도 꾸짖거나 나무라지 않았어요. 아니, 이렇게 이름을 쓰는 줄 몰랐겠지요. 이러다가 한글날 즈음 되어서야 비로소 인천시가 ‘Fly Incheon’을 쓰는 일을 나무라고, 대전시가 ‘It's Daejeon’을 떠벌이는 모습을 꾸짖습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다달이 《굿모닝 인천》이라는 소식지를 받아보니까, 이 소식지를 들여다보면서 인천시가 얼마나 영어를 사랑하는지를 한번 생각해 봅니다. 요 한두 달 사이에 나온 소식지를 들추다가 2011년 5월치가 눈에 뜨여 빙그레 웃으면서 펼칩니다. 강원도 평창에서는 겨울올림픽을 이끌었다면서 기뻐 하는데, 인천에서는 2014년에 아시아 경기대회를 이끌었다며 즐거워 합니다. 2011년 5월치에는 겉에 이 소식이 하나 나옵니다. 다만, ‘아시아 경기대회’나 ‘아시안 게임’이라 안 쓰고 ‘AG’라 쓰는군요.

- 굿모닝 인천 Good Morning INCHEON

 그러고 보면, 소식지 이름은 《굿모닝 인천》이지만, 이렇게 알파벳으로 “Good Morning INCHEON”이라고 덧답니다. 나라밖 사람들, 그러니까 외국사람도 읽을 소식지라면 이렇게 알파벳 이름을 함께 붙일 만하겠지요. 그렇지만, 《굿모닝 인천》은 한글로 만드는 소식지입니다. 영어로 기사를 넣지 않아요.

 다른 지자체나 관공서나 회사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지자체 소식지이든 관공서 소식지이든 회사 소식지이든, 알파벳으로 소식지 이름을 밝힐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 대한민국은 ‘우리 말을 한글로 적으면서 생각을 나누는’ 곳이지, ‘영어를 알파벳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나누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식지 겉에 적힌 몇 가지 눈에 뜨이는 글을 알리는 대목을 봅니다.

- Special
- 인천 孝
- 2014 인천AG
- Old But New 용현동

 한글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인천’과 ‘용현동’만큼은 알파벳으로 적으면 알아보기 더 힘드니까 한글로 적은 듯해요.

 소식지를 넘깁니다. 첫 쪽부터 ‘차례’가 아닌 ‘Contents’라 적습니다. 그러네요. 이제 이런저런 소식지이든 잡지이든 으레 ‘차례’나 ‘벼리’ 같은 말마디는 구지레하다 여기면서 이처럼 ‘Contents’라 적기 일쑤예요.

 ‘Contents’라는 자리에 어떤 말을 쓰는지만 돌아보더라도, 인천에서 내는 소식지 빛깔을 알겠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Contents’는 이렇게 짜였습니다. 하나하나 읽다가 입에 쩍 벌어집니다.

- Event : 5월 페스티벌
- INCHEON 2014 : AG 포스터
- Special : 어린이 꿈제작소
- 가정의 달 5월 : 인천 孝
- 책 읽는 인천 : 독서가족
- 2014 인천AG : Tibet, 라싸
- Old But New : 용현동
- Culture News : 문화뉴스, 이달의 공연전시
- 사람과 사람 : 조학영, 김효민
- Civic News : 시정뉴스
- Council News : 의정뉴스
- Infobox : 생활정보
- Spot the Difference : 틀린그림 찾기
- Reader's Photo : 김치찰칵
- 모닝커피 한잔 :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페스티벌’과 ‘포스터’와 ‘뉴스’는 왜 한글로 적는지 궁금합니다. ‘Tibet’은 알파벳으로 적는데 ‘라싸’는 왜 한글로 적을까요. 인천시에서 내놓는 이 소식지를 읽는 사람은 차례 아닌 Contents에 실린 이런저런 이름을 들여다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좋을까 궁금합니다. 한국으로 찾아온 외국사람이 한글을 신나게 배우면서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려고 힘쓰는데, 인천시에 살 집을 마련해서 인천시 소식지를 펼치면서 이러한 Contents를 읽어야 할 때에 무슨 생각을 할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소식지 간기 자리를 봅니다. 한글로는 따로 적는 말이 없이 “Incheon monthly magazine vol.209”라고만 적습니다. ‘209호’라고 적는 줄 몰라서 ‘vol.209’로 적었을까요. ‘인천시 월간지’라고 적을 줄 몰라서 ‘Incheon monthly magazin’로 적었을는지요.

 소식지 겉에 실은 사진을 이야기하면서 ‘Cover Story’라 적습니다. 그렇군요. ‘Cover Story’가 되겠네요. 우리 나라 중앙일간지 가운데 신문이름을 한글로 붙인 곳에서 내는 주간잡지에도 ‘커버스토리’가 실립니다. 다만, 이 주간잡지에서는 알파벳으로 ‘Cover Story’라 하지 않고 한글로 ‘커버스토리’라 합니다.

 인천시가 다달이 내는 소식지를 찬찬히 읽으며 생각합니다. 차례 자리를 비롯해 소식지에 실은 글에도 영어는 곳곳에 자주 나타납니다. 하나하나 들자면 끝이 없겠다고 느낍니다. 히유 한숨을 내쉬고는 소식지를 덮습니다. 인천시가 내세운 상징이름이라 할 ‘Fly Incheon’을 다시금 돌아봅니다. 인천시는 꼭 이렇게 영어로 상징이름을 지어야 했을까 알쏭달쏭합니다. ‘날자 인천’이라든지 ‘난다 인천’이라든지 ‘나는 인천’처럼 이름을 붙일 수 없었나 아리송합니다.

 모르는 노릇이기는 한데, ‘나는 인천’이라 이름을 붙였다면, “하늘을 나는 인천”이면서 “나라는 사람은 바로 인천”이라는 뜻이 됩니다. 내가 말하고 생각하며 일하는 모든 삶이 곧 인천이니까, 나 스스로를 자랑스레 여기면서 씩씩하고 사랑스레 아끼자는 뜻을 보여줄 수 있어요. 그렇지만 ‘Fly Incheon’일 때에는 그저 영어 이름이요, 한국사람한테나 인천사람한테나 그다지 가슴으로 와닿을 만한 아름다움이 깃들기는 힘들지 않겠느냐 싶어요.

 독일사람은 독일말로 상징이름을 짓습니다. 프랑스사람은 프랑스말로 상징이름을 지어요. 네덜란드사람은 네덜란드말을 쓰고, 스웨덴사람은 스웨덴말을 씁니다. 베트남사람은 베트남말을 쓰고, 스리랑카사람은 스리랑카말을 써요. 모두들 제 나라 제 겨레 말을 씁니다. 한국사람은 일본사람이 ‘김치’를 ‘기무치’라고 고쳐서 말할 때에 못마땅해 합니다만, 정작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옳거나 바르거나 알맞거나 사랑스럽거나 착하거나 참답게 쓰지 않아요.

 아, 저는 제 고향을 사랑해야 할까요. 우리 말글은 아끼거나 좋아하거나 보듬거나 돌볼 줄 모르는 이 고향을 사랑해야 하나요. (4344.7.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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