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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ㅣ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8월
평점 :
역사 관련 교양서적들을 읽다 보면 역사를 바꾼 다양한 원인들을 제시하는 책들을 만나곤 한다. 그
대표적인 책 중에 하나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선 13가지 식물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다고 해서 과연 어떤 식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먼저 첫 번째 주자는 의외로 우리가 즐겨먹는 '감자'였다. 세계사에서의 감자의 역할은 초강대국
미국을 만들었다는 조금은 황당한 얘기였다. 남미 안데스산맥 주변이 원산지인 감자는 덩이뿌리
식물이다 보니 성서의 기록에 나오지 않는 식물이라는 이유로 '악마의 식물'로 여겨져 중세 유럽에서는
종교재판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화형(?)까지 당하는 웃지 못할 사건까지 일어난다. 이렇게 천대받던
감자가 프리드리히 2세, 루이 16세 등의 적극적인 보급 노력에 힘입어 서민들의 중요한 식량으로
거듭나지만 한정된 품종의 감자만 재배하던 아일랜드에서는 감자 역병이 돌자 대기근이 일어나서 400만명이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 케네디 대통령의 할아버지를 비롯해 레이건,
클린턴, 오바마의 조상들이 있었다니 비약하면 감자가 미국의 대통령들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렇게 감자 얘기만 들어도 흥미로웠는데 이후 줄줄이 등장하는 토마토, 후추, 고추 등
여러 식물들의 세계사에 끼친 영향은 감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기존에 역사상 영향력이 있던
대표적인 식물로 '원더랜드' 등 여러 책에서 언급되었던 후추는 이 책에서도 대항해시대의 발단이자
원동력으로 부각된다. 남인도가 원산지인 후추를 찾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먼저 항로를 개척하면서
선두주자로 나섰는데 콜럼버스도 후추를 찾아 인도로 가려고 했다가 엉뚱하게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해 그곳이 인도인 줄 잘못 아는 해프닝을 벌였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후추를 찾던 콜럼버스는
결국 후추를 찾지 못하고 고추를 후추로 속여 면피를 하게 되는 사연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감자처럼 독이 있는 식물로 여겨져 오랫동안 식용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토마토도 미국
법정에 선 일이 있었는데 토마토가 채소냐 과일이냐 하는 문제로 연방 최고법원은 토마토가 디저트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채소라고 판결했으나 식물학적으로는 과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의 보양식(?)으로 사용되었다는 양파나 후추와 더불어 세계사를 바꾼
미국 독립전쟁과 아편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차, 노예무역의 발단이 되었던 사탕수수,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된 목화 등 여러 식물들이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이 책을 보니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역사는 역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어디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는 점을 이 책도 잘 보여주었는데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역사 속의 식물의 힘을 제대로
가르쳐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