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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지마 노래하면 집이 파다닥 3
콘노 아키라 지음, 이은주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24년 1월
평점 :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12.25.
만나고 알아가고
《쿠지마 노래하면 집이 파다닥 3》
콘노 아키라
이은주 옮김
미우
2024.1.31.
만나면서 알아갑니다. 만나지 않을 적에는 마음이 섞이거나 흐를 일이 없으니 알아가지 않습니다. 얼굴을 보면서 만날 날이 있고, 종이에 글을 적어서 띄워 만날 때가 있습니다. 목소리가 오가며 만나기도 하고, 그저 마음으로 그리면서 만나기도 합니다.
서로 만납니다. 사람 사이로 만나고, 이웃 숨결로 만납니다. 철과 달과 날을 만나고, 밤과 아침과 저녁과 아침을 만납니다. 비를 만나고 구름을 만나고 별을 만납니다. 해를 만나고 바람을 만나고 바다를 만납니다.
책을 만나는 자리가 있습니다. 손수 쓰는 글을 묶은 책을 만나고, 이웃이 쓴 글을 여민 책을 만납니다. 낯선 숱한 사람이 써서 내놓은 책을 만나며, 이미 떠난 옛사람이 남긴 책을 만납니다.
《쿠지마 노래하면 집이 파다닥 3》은 만남길이 깊어가는 하루를 들려줍니다. 쿠지마는 쿠지마대로 처음에는 드넓은 숲에서 풀꽃나무와 눈밭을 만나다가 사람을 만났습니다. 일본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이 아이들대로 하루하루 자라면서 새로 걸어갈 길을 만납니다. 이러다가 아주 낯선 둘이 문득 만나는데, 서로 다른 줄 알기에 다른 마음을 읽으며 이으려고 하는 눈빛이 흘렀어요.
다르니까 다를 뿐입니다. 다르기에 틀리거나 옳지 않습니다. 다르기에 어긋나거나 맞지 않아요. 다르게 바라보면서 다르게 누리는 삶이고, 다르게 받아들이면서 다르게 배우는 나날입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길에는 으레 씨앗을 남깁니다. 주고받는 말은 서로서로 말씨(말씨앗)로 남습니다. 서로 나눈 말은 마음에 깃들어 마음씨(마음씨앗)로 남깁니다. 이제 손을 흔들고 멀어가면서 맵시(매무새·몸씨앗)를 남겨요. 우리가 발을 디딘 곳에 씨앗이 남고, 우리 숨결에 씨앗이 남으며, 우리 삶에 씨앗이 남습니다.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 어떤 씨앗을 남길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미움씨앗이나 싫음씨앗이나 짜증씨앗을 남기지는 않나요? 괴롬씨앗이나 지침씨앗이나 힘듦씨앗을 남기기 일쑤인가요? 기쁨씨앗이나 웃음씨앗을 남길 날이 있고, 눈물씨앗이나 노래씨앗을 남길 날이 있어요.
어느 씨앗이든 서로 알아갑니다. 속으로 깊이 알아가고, 겉만 슥 훑으면서 껍데기만 알아갑니다. 마음으로 스미면서 서로 어떤 넋인지 알아가는 사이가 있고, 겉차림만 훑느라 속마음은 하나도 모르는 빈털터리로 알아가는 사이가 있어요.
서로 알고 싶다면 흉허물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 알아가려면 높낮이가 없어야 합니다. 동무일 적에 알 수 있어요. 동무란, 동그랗게 두르면서 포근히 돌보고 넉넉히 돌아볼 줄 아는 사이입니다. 너랑 나로 마주하면서 둘이 두레를 이루어 돕고 둘러볼 줄 아는 길이기에 동무입니다. 동무이기에 알아가는데, 동무가 아닐 적에는 힐끗거리는 구경꾼입니다. 냇물 너머 불구경을 하며 팔짱을 낄 적에는 하나도 못 알아가요. 돌아보고 돌보고 돕고 두를 줄 아는 사이로 지내야 비로소 알아갑니다.
예부터 임금이나 벼슬을 쥔 자리에서는 사람을 하나도 못 알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나라지기나 고을지기가 사람을 하나도 못 알아갑니다. 아이랑 손을 잡고 걷지 않는 어버이가 아이를 알 길이 없습니다. 아이 곁에서 하염없이 같이 놀고 수다를 떨 때라야 이웃으로서 아이를 알 수 있습니다.
온갖 책을 많이 읽었기에 책을 알지 않습니다. 한 줄을 읽더라도 되새기고 곱새기면서 이웃으로 다가서려는 마음일 적에 비로소 책을 알아갑니다. 우리가 쓰는 말 한 마디도 마찬가지라서, 낱말 하나가 어떤 밑동이며 결이고 짜임새인지 오래오래 들여다보고 혀에 얹으면서 생각을 기울여야 우리말·우리글을 넉넉히 알아가요.
처음에는 낯선 터전에 가볍게 깃들고서 떠나려던 쿠지마이지만, 철새라는 몸을 잊고서 오래오래 머무를 수 있습니다. 쿠지마 씨하고 둘레 사람들은 하루하루 새록새록 만나면서 저마다 다르되 하나인 마음을 일구어 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이곳에서는 서로서로 어떻게 다르며 하나인 마음을 가꾸는 길인지 돌아봅니다.
ㅅㄴㄹ
“왠지, 몰래 인간을 잡아먹을 것 같아 보여서.” “먹을 리가 없잖아!” “아니, 좋은 의미로 한 말이야. 좋은 의미로.” “좋은 의미로 사람을 먹을 것 같다는 게 무슨 소린데! 나쁜 의미밖에 없잖아!” (29쪽)
“뭐야,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에잇.” “아얏! 모르겠냐! 상대가 너 같은 녀석이라도 이별은 슬픈 거야!” (56쪽)
“쿠지마도 이렇게 같이 공부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난 싫어!” “그렇구나. 난 앞으로도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계속 공부해야 하는데.” “인간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83쪽)
“무서웠어. 저 사람, 엄청 화를 내서.” “아마 선생님이 더 무서웠을걸.” (96쪽)
“러시아는 어떤 곳이야?” “몰라. 숲속에서밖에 안 살았고, 도시엔 거의 가 본 적이 없으니까.” (105쪽)
#クジマ歌えば家ほろろ #紺野アキラ
Akira Konno
《쿠지마 노래하면 집이 파다닥 3》(콘노 아키라/이은주 옮김, 미우, 2024)
크게 휘두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 크게 휘두르지 않아야 할 듯해
→ 크게 안 휘둘러야 할 듯해
11쪽
뭘 보는 거야
→ 뭘 봐
→ 뭘 보는데
→ 뭘 보나
28쪽
패배한 사람 얼굴에 먹으로 낙서를 하는 벌칙이 있지만
→ 진 사람 얼굴에 먹으로 그림 그리는 꿀밤이 있지만
→ 진 사람 얼굴에 먹질을 하며 괴롭혀야 하지만
41쪽
좋은 점을 알고 친해지길 바랐단 말이야
→ 좋은 곳을 알고 사귀기를 바랐단 말이야
53쪽
인간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 사람이 아니라서 반갑네!
→ 사람이 아니라서 기쁘네!
83쪽
널 상대하느라 늦어진 거야
→ 널 만나느라 늦었어
→ 너랑 대꾸하느라 늦었어
109쪽
“죽마고우는 아닌데.” “으음, 수어지교 아닐까요?”
→ “너나들이는 아닌데.” “으음, 한살림 아닐까요?”
→ “마음동무는 아닌데.” “으음, 함살림 아닐까요?”
→ “너나들이는 아닌데.” “으음, 한울타리 아닐까요?”
111쪽
역시 속담박사구나
→ 그래 옛말지기구나
→ 어쩜 삶말꾼이구나
112쪽
뭐, 난 잡식이니까
→ 뭐, 다 먹으니까
→ 뭐, 안 가리니까
14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