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1402 : 있 많은 대화 가지고 계


장사를 하고 있는 동생과는 많은 대화를 가지고 계셔도

→ 장사를 하는 동생과는 얘기를 많이 하셔도

→ 장사하는 동생과는 두런두런 얘기하셔도

《영원한 것을 찾아서》(김형석, 학원사, 1986) 48쪽


얘기를 많이 하거나 오래 한다면 “많이 하다”나 “오래 하다”처럼 말을 합니다. “많은 대화를 가지다”는 잘못 쓰는 옮김말씨예요. 여기에 “가지고 계셔도”처럼 붙이는 ‘계시고’는 군더더기입니다. “얘기를 많이 하셔도”나 “두런두런 얘기하셔도”처럼 고쳐씁니다. “하고 있는” 같은 옮김말씨는 “하는”으로 바로잡습니다. ㅅㄴㄹ


대화(對話) :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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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1401 : -ㅁ에 대하여 해답 준다 것 불가능


모든 물음에 대하여 남김없이 해답을 준다는 것은 불가능 때문이다

→ 물어볼 때마다 남김없이 풀어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몯는 말을 남김없이 풀이할 수는 없는 탓이다

《영원한 것을 찾아서》(김형석, 학원사, 1986) 75쪽


물어볼 적에 모두 풀이를 못 한다고 여길 수 있지만, 오직 길이 하나라고만 여기지 않는다면, 누구나 언제나 뜻풀이에 말풀이에 궁금풀이를 할 만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가 그야말로 끝없이 쉴새없이 물어대는 말잔치를 오래오래 겪어요. 먼먼 옛날부터 이런 살림살이인데, 오랜 나날에 걸쳐 거의 모든 어버이는 아이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가 묻는 말에 어질게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아이도 생각을 밝히면서 또 묻고 자꾸 물으면서 살림꽃을 피웠습니다. 안 된다고 여기니 안 되는걸요. 해보자고 여기는 마음이라면 해볼 수 있어요. ㅅㄴㄹ


대하다(對-) : 1. 마주 향하여 있다 2. 어떤 태도로 상대하다 3. 대상이나 상대로 삼다 4. 작품 따위를 직접 읽거나 감상하다

해답(解答) : 질문이나 의문을 풀이함. 또는 그런 것 ≒ 답

불가능(不可能) : 가능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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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말씨 1400 : 필경 他界 만족의 미소 금치 것


필경 他界에서도 만족의 미소를 금치 못할 것이며

→ 아마 너머에서도 즐겁게 웃으며

→ 무릇 그곳에서도 기쁘게 웃으며

《盧天命 詩集》(노천명, 서문당, 1972) 6쪽


1972년이나 1982년에는 이 보기글처럼 ‘他界’처럼 한자를 드러내어 글을 쓰는 분이 많았습니다. 한자가 다르지만 한글로는 똑같은 다른 낱말 ‘타계’하고 헷갈린다고 여겨서 이처럼 글을 썼다고 하는데, 몸을 내려놓을 적에는 ‘죽다·떠나다·가시다·돌아가시다’라 하면 되고, 다른 곳이나 너머를 가리킬 적에는 ‘다른곳·너머·그곳’으로 갈라서 알맞게 쓰면 됩니다. 우리말로 얼마든지 갈라서 잘 쓸 만합니다. 무릇 우리말을 안 살피는 탓에 한자를 꼭 써야 한다고 여기고 말아요. 한자나 영어를 쓰고 싶으면 쓸 일이지만, 어린이 곁에서 어깨동무하면서 부드럽고 쉬우며 또렷이 쓸 수 있는 우리말은 수두룩합니다. 아마 우리말을 안 배우려고 하는 탓이기에 한자에 얽매인다고 해야겠지요. 즐겁게 웃으면서 어린이하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나날을 등지기에 이렇게 올가미에 갇혀요. 기쁘게 웃으면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말씨앗을 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필경(畢竟) : 끝장에 가서는

타계(他界) : 1. 다른 세계 2. 인간계를 떠나서 다른 세계로 간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 특히 귀인(貴人)의 죽음을 이르는 말 3. [불교] 불교의 십계(十界) 가운데 인간계 이외의 세계

만족(滿足) : 1. 마음에 흡족함 2.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함

미소(微笑) : 소리 없이 빙긋이 웃음

금하다(禁-) : 1. 어떤 일을 하지 못하게 말리다 2. 감정 따위를 억누르거나 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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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1
이와모토 나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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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12.25.

시골잔치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1》

 이와모토 나오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0.12.15.



  서울이라서 더 바쁘거나 시골이라서 안 바쁘지 않습니다. 그저 서로 일하는 결이 다릅니다. 서울은 더 좁은 곳에 더 많이 붐비는 고을인 터라 사람한테 더 치이는 얼거리입니다. 시골은 더 넓은 곳에 더 적게 띄엄띄엄인 고을이니까 뭇사람을 넓고 깊게 마주하려 하지 않으면 일이 어긋나는 짜임새입니다.


  앞가림(재정자립)을 하는 고을은 없다시피 합니다. 그러나 시골로 갈수록 ‘군청’­이 으리으리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웬만한 군청은 하나같이 시청이나 도청보다 우람합니다. 군청 일꾼도 너무 많습니다. 이 어긋난 굴레와 실타래가 어떤 민낯인지 들여다보려는 고을지기(군수)는 안 보입니다. 나라 곳곳이 온통 곪고 썩어도 이를 들여다보려는 글바치(기자·작가)도 안 보입니다. 이제 숱한 글바치는 서울에 거의 몰렸고, 서울 아닌 큰고장에 깃들어요. 면소재지에서 사는 글바치조차 보기 어렵고, 면소재지에서 한참 먼 두멧마을에서 살아가는 글바치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다고 할 만합니다.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이라는 그림꽃이 있습니다. 아마 첫판조차 안 팔리고 사라졌을 텐데, 석걸음으로 여민 이 그림꽃은 ‘일본 시골 면사무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죽어가고 무너지고 사라지려는 시골을 그냥 팔짱을 끼면서 죽어가라거나 무너지거나 사라지라고 할는지, 아니면 억지로 되살리려고 할는지, 아니면 천천히 어깨동무하면서 느긋이 앞길을 내다보려고 할는지, 여러 갈래 가운데 어느 길을 우리 스스로 바라보느냐고 묻는 줄거리입니다.


  이 그림꽃은 ‘죽어가고 사라지려는 조그마한 두멧시골’이 살아날 여러 실마리 가운데 하나로 ‘시골잔치(지역축제)’를 꼽는데, 우리나라에 익숙하거나 흔한 시골잔치하고 다릅니다. ‘마을 뒷동산에서 자라는 큰 벚나무’ 한 그루를 바탕으로 ‘자동차 아닌 뚜벅이’로 찾아가고 둘러보며 도시락을 누리는 조촐한 시골잔치를 꾀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부릉부릉 휙 달려와서 부릉부릉 휙 달아나는 멋대가리없는 시골잔치가 아닌, 고작 10분 노래를 하면서 5000만 원씩 챙기는 ‘서울에 계신 이름난 노래꾼’을 몇 억씩 쏟아부어서 모시는 얼뜬 시골잔치가 아닌, 목돈도 작은돈도 들이기 어렵거나 아예 돈을 안 들이면서 꾀하는 수수하고 투박해서 그야말로 시골스러운 시골잔치로 시골이 살아날 길을 들려주는 줄거리입니다.


  이제라도 스스로 생각할 노릇입니다. 저마다 의젓하게 꿈을 그릴 노릇입니다. 서울은 서울대로 아름답습니다.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은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군포 안산 구미 춘천 경주 나주 전주 청주 충주 통영 진주는 저마다 아름답지요. 굳이 다른 고을이나 서울을 닮거나 따라가야 할 까닭이 없어요. 다른 데에서 하니까 나란히 해야 하지 않고, 아직 아무 데에서도 안 하니 안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어느 고을이건 그저 우리 고을을 바라볼 일입니다. 우리 잔치를 꾀하고, 우리 젊은이와 어르신을 바라보고, 우리 아이들과 아기를 사랑하고, 우리 들숲바다를 품고, 우리 노래를 부를 일입니다.


  시골에서 나고자란 어린이는 푸른배움터나 열린배움터를 다니자면 마을을 떠나야 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큰고장으로 떠나서 배우더라도 즐겁게 제 마을로 돌아와서 알뜰살뜰 땀흘려 일할 만한 바탕을 다지는 노릇을 해야 할 고을지기(군수)요, 고을일꾼(군청·면사무소 공무원·교사)입니다. 서울사람이 문득 놀러왔다가 흠뻑 사로잡혀서 그대로 눌러앉고픈 들숲바다와 마을빛을 돌볼 노릇인 고을지기에 고을일꾼입니다.


  나무는 가지치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억지로 예쁜꽃을 심지 말아야 합니다. 부릉부릉 달리는 길은 안 넓혀야 합니다. 그저 시골버스로 느슨히 오가면서 걸어다니고 두바퀴(자전거)를 달려야 할 시골입니다. 돈이 될 일거리는 그만 만들고, 이제부터는 손수 살림을 짓도록 이바지하는 데에 고을돈(지역예산)을 들일 노릇입니다.


  시골이 살아남으려면 이제라도 풀죽임물(농약)과 죽음거름(화학비료)을 몽땅 걷어내고서, 비닐도 더는 안 쓰기로 해야겠지요. 경운기·트랙터·콤바인까지 모두 치우고서, 수레를 끌고 모는 얼거리로 바꿔야겠지요. 손과 발로 일하면서 해바람비를 머금는 길로 갈 적에만 비로소 시골이 살아남습니다. 여태까지 손발을 멀리하고 해바람비를 등지는 길로 돈만 옴팡지게 쏟아부었는데, 이럴수록 시골이 더 빨리 늙고 죽어가기만 했습니다. 이런 판에도 또 돈만 어마어마하게 쏟아붓는 얼거리라면, 이 큰돈은 다 누구 뒷주머니로 흘러든다는 뜻 아닌가요?


ㅅㄴㄹ


“유채꽃이 장난 아니네?” “유채꽃이 아니라 겨자거든? 먹으면 꽤 맛있어. 최근에 편의점 생겼는데 들렀다 갈래? 어차피 다른 가게도 없으니까.” (6쪽)


“오빠, 이 마을에 고등학생 이상의 젊은이는 우리 셋밖에 없으니까 사이좋게 지내자.” (9쪽)


“나 같은 애는 어린 거 빼곤 아무 장점도 없으니까.” “무슨 소리야? 너같이 시간 잘 지키고 성격 좋은 애가 어딨다고. 넌 옛날부터 좋은 애였어.” (20쪽)


“미안해, 오빠. 고마워. 그렇게 동네 심부름 가는 차림으로 달려와 줘서.” (48쪽)


“쌍방향에서 차가 올 때 반드시 어느 한쪽은 기다려 준다거나 길에서 만난 고등학생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거나, 그런 곳이 그렇게 흔한 건 아니니까요. 전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76∼77쪽)


“그래도 갔다 와, 형. 풀죽어 돌아와도, 지금이라면 어느 집에 들어가든 따뜻한 밥 한 끼는 내줄 거야. 형이 하는 일은 바로 그런 일이거든.” (114쪽)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을 사람들은 반대할까?” ‘괜찮아, 여름축제도 해냈는데 뭐.’ “축제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야. 마을 전체를 설득해야 해. 그동안 이렇게 대규모의 일을 생각한 적도 없고, 했다가 실패할까 봐 두려워.” ‘하지만 넌 여기 계속 있을 거잖아.’ (175∼176쪽)


#雨無村役場産業課兼觀光係 #岩本ナオ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1》(이와모토 나오/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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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지마 노래하면 집이 파다닥 3
콘노 아키라 지음, 이은주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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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12.25.

만나고 알아가고


《쿠지마 노래하면 집이 파다닥 3》

 콘노 아키라

 이은주 옮김

 미우

 2024.1.31.



  만나면서 알아갑니다. 만나지 않을 적에는 마음이 섞이거나 흐를 일이 없으니 알아가지 않습니다. 얼굴을 보면서 만날 날이 있고, 종이에 글을 적어서 띄워 만날 때가 있습니다. 목소리가 오가며 만나기도 하고, 그저 마음으로 그리면서 만나기도 합니다.


  서로 만납니다. 사람 사이로 만나고, 이웃 숨결로 만납니다. 철과 달과 날을 만나고, 밤과 아침과 저녁과 아침을 만납니다. 비를 만나고 구름을 만나고 별을 만납니다. 해를 만나고 바람을 만나고 바다를 만납니다.


  책을 만나는 자리가 있습니다. 손수 쓰는 글을 묶은 책을 만나고, 이웃이 쓴 글을 여민 책을 만납니다. 낯선 숱한 사람이 써서 내놓은 책을 만나며, 이미 떠난 옛사람이 남긴 책을 만납니다.


  《쿠지마 노래하면 집이 파다닥 3》은 만남길이 깊어가는 하루를 들려줍니다. 쿠지마는 쿠지마대로 처음에는 드넓은 숲에서 풀꽃나무와 눈밭을 만나다가 사람을 만났습니다. 일본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이 아이들대로 하루하루 자라면서 새로 걸어갈 길을 만납니다. 이러다가 아주 낯선 둘이 문득 만나는데, 서로 다른 줄 알기에 다른 마음을 읽으며 이으려고 하는 눈빛이 흘렀어요.


  다르니까 다를 뿐입니다. 다르기에 틀리거나 옳지 않습니다. 다르기에 어긋나거나 맞지 않아요. 다르게 바라보면서 다르게 누리는 삶이고, 다르게 받아들이면서 다르게 배우는 나날입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길에는 으레 씨앗을 남깁니다. 주고받는 말은 서로서로 말씨(말씨앗)로 남습니다. 서로 나눈 말은 마음에 깃들어 마음씨(마음씨앗)로 남깁니다. 이제 손을 흔들고 멀어가면서 맵시(매무새·몸씨앗)를 남겨요. 우리가 발을 디딘 곳에 씨앗이 남고, 우리 숨결에 씨앗이 남으며, 우리 삶에 씨앗이 남습니다.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 어떤 씨앗을 남길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미움씨앗이나 싫음씨앗이나 짜증씨앗을 남기지는 않나요? 괴롬씨앗이나 지침씨앗이나 힘듦씨앗을 남기기 일쑤인가요? 기쁨씨앗이나 웃음씨앗을 남길 날이 있고, 눈물씨앗이나 노래씨앗을 남길 날이 있어요.


  어느 씨앗이든 서로 알아갑니다. 속으로 깊이 알아가고, 겉만 슥 훑으면서 껍데기만 알아갑니다. 마음으로 스미면서 서로 어떤 넋인지 알아가는 사이가 있고, 겉차림만 훑느라 속마음은 하나도 모르는 빈털터리로 알아가는 사이가 있어요.


  서로 알고 싶다면 흉허물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 알아가려면 높낮이가 없어야 합니다. 동무일 적에 알 수 있어요. 동무란, 동그랗게 두르면서 포근히 돌보고 넉넉히 돌아볼 줄 아는 사이입니다. 너랑 나로 마주하면서 둘이 두레를 이루어 돕고 둘러볼 줄 아는 길이기에 동무입니다. 동무이기에 알아가는데, 동무가 아닐 적에는 힐끗거리는 구경꾼입니다. 냇물 너머 불구경을 하며 팔짱을 낄 적에는 하나도 못 알아가요. 돌아보고 돌보고 돕고 두를 줄 아는 사이로 지내야 비로소 알아갑니다.


  예부터 임금이나 벼슬을 쥔 자리에서는 사람을 하나도 못 알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나라지기나 고을지기가 사람을 하나도 못 알아갑니다. 아이랑 손을 잡고 걷지 않는 어버이가 아이를 알 길이 없습니다. 아이 곁에서 하염없이 같이 놀고 수다를 떨 때라야 이웃으로서 아이를 알 수 있습니다.


  온갖 책을 많이 읽었기에 책을 알지 않습니다. 한 줄을 읽더라도 되새기고 곱새기면서 이웃으로 다가서려는 마음일 적에 비로소 책을 알아갑니다. 우리가 쓰는 말 한 마디도 마찬가지라서, 낱말 하나가 어떤 밑동이며 결이고 짜임새인지 오래오래 들여다보고 혀에 얹으면서 생각을 기울여야 우리말·우리글을 넉넉히 알아가요.


  처음에는 낯선 터전에 가볍게 깃들고서 떠나려던 쿠지마이지만, 철새라는 몸을 잊고서 오래오래 머무를 수 있습니다. 쿠지마 씨하고 둘레 사람들은 하루하루 새록새록 만나면서 저마다 다르되 하나인 마음을 일구어 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이곳에서는 서로서로 어떻게 다르며 하나인 마음을 가꾸는 길인지 돌아봅니다.


ㅅㄴㄹ


“왠지, 몰래 인간을 잡아먹을 것 같아 보여서.” “먹을 리가 없잖아!” “아니, 좋은 의미로 한 말이야. 좋은 의미로.” “좋은 의미로 사람을 먹을 것 같다는 게 무슨 소린데! 나쁜 의미밖에 없잖아!” (29쪽)


“뭐야,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에잇.” “아얏! 모르겠냐! 상대가 너 같은 녀석이라도 이별은 슬픈 거야!” (56쪽)


“쿠지마도 이렇게 같이 공부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난 싫어!” “그렇구나. 난 앞으로도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계속 공부해야 하는데.” “인간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83쪽)


“무서웠어. 저 사람, 엄청 화를 내서.” “아마 선생님이 더 무서웠을걸.” (96쪽)


“러시아는 어떤 곳이야?” “몰라. 숲속에서밖에 안 살았고, 도시엔 거의 가 본 적이 없으니까.” (105쪽)


#クジマ歌えば家ほろろ #紺野アキラ

Akira Konno


《쿠지마 노래하면 집이 파다닥 3》(콘노 아키라/이은주 옮김, 미우, 2024)


크게 휘두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 크게 휘두르지 않아야 할 듯해

→ 크게 안 휘둘러야 할 듯해

11쪽


뭘 보는 거야

→ 뭘 봐

→ 뭘 보는데

→ 뭘 보나

28쪽


패배한 사람 얼굴에 먹으로 낙서를 하는 벌칙이 있지만

→ 진 사람 얼굴에 먹으로 그림 그리는 꿀밤이 있지만

→ 진 사람 얼굴에 먹질을 하며 괴롭혀야 하지만

41쪽


좋은 점을 알고 친해지길 바랐단 말이야

→ 좋은 곳을 알고 사귀기를 바랐단 말이야

53쪽


인간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 사람이 아니라서 반갑네!

→ 사람이 아니라서 기쁘네!

83쪽


널 상대하느라 늦어진 거야

→ 널 만나느라 늦었어

→ 너랑 대꾸하느라 늦었어

109쪽


“죽마고우는 아닌데.” “으음, 수어지교 아닐까요?”

→ “너나들이는 아닌데.” “으음, 한살림 아닐까요?”

→ “마음동무는 아닌데.” “으음, 함살림 아닐까요?”

→ “너나들이는 아닌데.” “으음, 한울타리 아닐까요?”

111쪽


역시 속담박사구나

→ 그래 옛말지기구나

→ 어쩜 삶말꾼이구나

112쪽


뭐, 난 잡식이니까

→ 뭐, 다 먹으니까

→ 뭐, 안 가리니까

14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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