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3.7.13. 큰아이―이오덕 할배한테 꽃을

 


  이오덕 님 일기책 다섯 권을 기리는 책잔치에 아이들과 마실을 간다. 잔치마당 들머리에 커다란 그림판이 하나 붙는다. 이 그림판에 이오덕 님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쓰라고 하는데, 아직 아무도 안 쓴다. 큰아이와 내가 매직을 하나씩 손에 쥔다. 나는 나대로 나비와 꽃을 그리고,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나비와 꽃을 그린다. 서로서로 마음속에서 고운 그림을 끌어내어 찬찬히 빈자리 채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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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29. 2013.7.10. ㄱ

 


  시골은 도시와 달리 막비가 퍼붓지 않는다. 흙과 숲과 나무와 풀이 있으니 드세게 빗줄기 퍼붓더라도 이내 개어 물기가 찬찬히 마른다. 비가 말끔히 갠 이듬날부터 마당에 ‘나무로 된 살림살이’를 내놓아 볕바라기 시킨다. 이불과 깔개와 베개를 평상에 올려놓고 말린다. 한창 해바라기 시키며 따끈따끈 잘 마르며 눅눅한 기운 가시는데, 두 아이는 평상에 놓은 여러 가지를 놀잇감으로 삼는다. 큰 깔개와 큰 베개에 드러누워 만화책을 본다. 얘야, 너희 거기 드러누워 놀라고 내놓지는 않았는데. 하기는. 너희도 볕바라기 하면서 살갗을 까맣게 태워도 되겠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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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 한 줄기

 


  시골에서 쓰는 찬물은 쓰면 쓸수록 차가운 기운이 짙다. 한여름이건 한겨울이건 시골물은 찬물이다. 입으로 마셔서 몸으로 받아들일 때나 손발로 적셔 살갗으로 맞아들일 적이나 언제나 찬물인 시골물이다.


  도시에서 쓰는 물은 언제나 찬물이 아니다. 아무리 쓰고 써도 물 기운은 똑같다.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도시에서는 찬물을 쓸 수 없다. 도시에서 먼 시골자락 멧골마을 여러 곳을 시멘트 울타리 세워 물을 잔뜩 가둔 댐부터 시멘트관으로 잇고 이어 도시로 끌어들이는 물에는 찬 기운이 서리지 않는다.


  물을 마시거나 물로 살갗을 적시면서 물빛과 물내음과 물맛을 어느 만큼 느끼는가 하고 돌아본다. 도시사람과 시골사람은 저마다 어떤 기운을 물에서 얻는가 헤아린다. 물빛을 바라보며 물을 마시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물내음을 맡으며 물을 쓰는 사람은 몇이나 있는가. 물맛을 짚으며 물을 누리는 사람은 한국땅에 있기는 있는가.


  비오는 날에 비를 기쁘게 맞으며 걷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시골에서 손으로 냇물을 떠서 마시려고 하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 4346.7.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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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가운 손님 (도서관일기 2013.7.1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포두면에서 산다는 분이 도서관으로 찾아오겠다 전화를 한다. 군내버스를 타고 동백마을에서 내린 뒤 연락을 한다고 한다. 마당에 옷가지와 이불과 베개를 잔뜩 널고 아이들 데리고 도서관으로 간다. 장마가 살짝 쉬는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는 땡볕이 후끈후끈 내리쬔다. 이불도 옷가지도 베개도 잘 마른다. 장마비 내리는 동안 집안이 눅눅해지며 이불과 옷가지와 베개에 스미던 물기가 바짝바짝 마르는구나 싶다. 며칠 뒤 또 비가 온다 하니, 햇살내음 듬뿍 받기를 바라면서 이불과 옷가지와 베개를 평상이며 마당에 잔뜩 깔아 놓고 도서관으로 간다.


  햇볕은 따갑고 뜨겁지만, 우리 도서관에 깃들며 창문을 열면 시원하다. 이곳이 폐교 되기 앞서도 이렇게 시원했을까. 폐교가 된 뒤 운동장이며 학교 건물 둘레며 온통 풀밭이 되어 뙤약볕을 한껏 받아들여 주면서 풀바람이 불기에 시원하지는 않을까.


  2011년 가을에 사진책도서관을 고흥으로 옮기면서 여태껏 ‘젊은이’가 우리 도서관에 오겠다고 전화하며 찾아온 적은 오늘이 처음이다. 교사나 어른을 따라 함께 온 젊은이와 푸름이는 있지만, 스스로 씩씩하게 찾아온 사람은 아직 없다. 오늘 손님은 여러모로 반가운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낀다. 참 마땅한 일인데,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이 읽을 책이지, 억지로 누군가 끌여들여 손에 책을 쥐도록 할 수 없다. 시골숲이 아름답다 하더라도 스스로 시골로 찾아와 숲에 깃들어야 시골숲이 어떻게 아름다운가 하고 느낀다. 시골바람이 시원하다 하더라도 스스로 시골로 찾아와 바람을 쐬어야 자동차 배기가스로 가득한 도시바람하고 사뭇 다른 달콤한 시골바람 시원한 맛을 느낀다.


  남이 추천하는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 마음을 살찌우지 못한다. 내 마음이 끌리는 책을 스스로 찾고 살피면서 어떻게 내 마음을 건드리거나 움직이도록 이끄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궁금한 대목은 스스로 찾아서 밝힌다. 아쉬운 대목은 스스로 갈고닦아서 북돋운다. 기쁜 대목은 동무들과 도란도란 책이야기를 펼쳐 나눈다. 아름다운 대목은 마음에 잘 아로새겨 내 삶길에 밑바탕으로 삼는다.


  돌이켜보면, 어느 도서관도 ‘도서관 홍보’를 하지 않는다. “우리 도서관으로 오십쇼!” 하고 홍보하는 데는 없다. 도서관은 늘 그 자리에서 씩씩하게 책터를 가꾸면 된다. 사람들 스스로 말미를 마련하고 생각을 열며 책을 손에 쥐어야 한다. 도서관은 언제나 누구한테나 문을 열어야 할 뿐이고, 사람들이 찾고 싶은 책을 언제라도 내어줄 수 있도록 책시렁 알차게 갖추어야 할 뿐이다.


  반가운 손님을 앞에 두고 책꽂이 자리를 바꾼다. 지난해에 새로 들인 책꽂이에 곰팡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원목 아닌 합판으로 짠 책꽂이는 참말 쓸 것이 못 된다. 아무리 새로 들인 책꽂이라 하더라도 합판으로 댄 책꽂이는 도서관에 두어서는 안 되는구나 싶다.


  나무로 빚은 책을 나무로 짠 책꽂이에 둘 때에 도서관이 된다. 나무로 지은 집에 온갖 나무 알뜰살뜰 가지를 뻗고 푸른 잎사귀 빛낼 때에 보금자리가 된다. 책이란 나무빛이라 하겠구나. 집이란 보금자리숲이라 하겠구나.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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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36] 한 마디 말

 


  능금씨 심으면 능금나무 자라고
  부추씨 떨어지면 부추풀 돋으니
  씨앗 한 톨 온누리 어루만진다.

 


  어른들이 고운 말 즐겁게 쓰면, 아이들도 고운 말 사랑스레 쓴다고 느껴요. 어른들이 고운 말을 잊거나 즐겁게 주고받는 말빛을 잃으면, 아이들도 고운 말을 잊을 뿐 아니라 서로서로 즐겁게 말빛 주고받는 기쁨을 잊어요. 한 마디 말은 언제나 한 마디 말씨앗이에요. 두 마디 말은 늘 두 마디 말씨앗이고요. 능금씨 한 톨이 뿌리를 내려 우람한 능금나무 되고는 맛난 능금알 베풀듯, 곱게 나누는 말씨 한 마디는 아름다운 말나무 되어 온누리 따사롭게 보듬는 사랑스러운 말빛이 됩니다. 4346.7.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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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7-14 18:09   좋아요 0 | URL
장일순님의 <나락 한알속의 우주>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작은 나락 한알 속에서 우주를 보는 것, 씨앗 한톨 에서 온누리를 읽을 수 있는 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