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살아가며 생각하는 몇 가지

 


ㄱ. 놀기 :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즐겁게 놀자
ㄴ. 먹기 :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즐겁고 맛있게 고맙게 먹자
ㄷ. 자기 :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자
ㄹ. 걷기 : 우리한테 자가용 없기도 하지만, 천천히 걸어다니자
ㅁ. 하기 : 맨손으로도 재미있게 놀 수 있어


4346.12.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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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72) 삶그림

 

  이루고 싶은 일이 있어 그림을 그립니다. 차근차근 그림을 그립니다. 먼저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리니, 나한테 맨 먼저 ‘마음그림’이 태어납니다.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은 내 꿈이에요. 그래서 이 꿈은 ‘꿈그림’이기도 합니다. 오래오래 꿈그림을 품습니다. 언제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잘 모르지만, 즐겁게 가슴에 품어요.


  어느 날 문득 마음속으로 그리던 꿈이 내 삶에서 환하게 이루어졌네 하고 깨닫습니다. 처음 꿈을 삶에서 이룰 적에는 미처 느끼지 못합니다. 꿈을 삶에서 이루어 하루하루 지나다가 어느 날 불현듯이 알아채요.


  마음이 꿈으로 자라고 꿈이 삶이 되어요. 마음으로 빚은 그림이 아름다운 꿈그림으로 거듭나고, 이 꿈그림은 어느새 ‘삶그림’ 됩니다. 곧, 맨 처음에 마음속으로 그린 그림이란, 처음부터 삶그림인 셈이에요. 내 삶을 곱게 가꾸고 싶은 그림이요 빛이기에 삶그림이에요. 이러면서 ‘삶빛’이 될 테지요.


  고운 사랑을 마음에 품으면서 ‘사랑그림’을 그립니다. 내가 이루고 싶기도 한 사랑이면서, 내 둘레 이웃 누구하고라도 나누고 싶은 사랑이에요. 한솥밥 먹는 살붙이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하루입니다. 하루하루 즐겁게 살면서 어느새 ‘이야기그림’도 그리지요. 그림은 ‘노래그림’도 됩니다. 그림은 ‘놀이그림’도 되어요.


  그림을 그리는 삶은 즐거우면서 아름답습니다. 삶은 삶그림이면서 삶빛입니다. 삶놀이 되면서 삶노래 되어요. 삶을 짓고 삶을 나눕니다. 삶지기로서 삶을 누립니다. 사랑을 짓고 나눈다면 사랑지기 되어요. 꿈을 짓고 나누면 꿈지기 되어요. 노래를 짓고 나누면 노래지기 되고, 글을 쓰고 나누면서 글지기 되며, 아이지기도, 책지기도, 밥지기도, 숲지기도, 시골지기도, 마을지기도, 이야기지기도, 살림지기도 됩니다. 4346.12.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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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10 19:41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의 삶그림이 정말 좋습니다~
종이에다 그리신 그림들도요.^^
나중에 기회가 되시면 따로 조촐하고 어여쁜
전시회를 한 번 가지셨으면 하는 바램이 늘 들곤 해요~*^^*

숲노래 2013-12-10 23:53   좋아요 0 | URL
며칠 앞서 문득 '삶그림'이라는 낱말이 떠올랐어요.
그림들을 여기저기 다 붙여놓아서 ^^;;;;
그리고 여기저기 드리기도 하고~

참말, 나중에는 무언가 될는지 모르겠는데
아직은 다 그림이 어슷비슷하기만 해요 ^^;;;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 우리시대의 인물이야기 8
김남일 지음, 김병하 그림 / 사계절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 삶읽기 147

 


남북녘 하나되는 길은
―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
 김남일 글
 사계절 펴냄, 2002.10.29.

 


  소설을 쓰는 김남일 님이 쓴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사계절,2002)을 읽습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쓴 위인전입니다. 어린이한테 읽히는 위인전이라면 지난날에는 이순신이라든지 강감찬, 또는 세종대왕이나 이율곡 같은 사람들 이야기였지만, 우리 사회가 차츰 발돋움하면서 문익화 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동화를 쓰던 권정생 님은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살가이 써낸 적 있어요. 언제나 마음속에서 싱그러이 살아서 이야기꽃 베푸는 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었다고 할까요.


  김남일 님이 쓴 문익환 님 이야기는 ‘통일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남녘과 북녘으로 갈린 이 나라 이야기입니다. 남녘에서도 푸대접과 따돌림 때문에 갈기갈기 찢어진 이야기입니다. 참말, 학교나 회사나 군대에서 따돌림이 그치지 않아요. 돈있는 이가 돈없는 이를 괴롭혀요. 힘있거나 이름있는 이가 힘없거나 이름없는 이를 들볶아요.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 님은 언제나 힘도 돈도 이름도 없는 이 자리에 서서 다 함께 어깨동무할 수 있는 나라를 바랐어요. 힘으로도 돈으로도 이름으로도 서로를 누르지 않기를 바랐어요.


.. 익환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어머니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 문재린은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집 안팎의 온갖 일이 고스란히 어머니 몫이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른들을 모시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 종일 혼자서 고된 밭일도 했습니다. 밤이면 식구들이 입을 옷을 짓기 위해서 다시 베틀에 앉아야 했습니다. 그러느라 지금도 어머니의 무릎에는 삼을 쪼갤 때 베인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  (32쪽)


  남녘이 북녘을 손가락질한다면 서로 하나될 수 없습니다. 북녘이 남녘을 해코지하면 서로 하나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남녘은 남녘대로 북녘을 손가락질하거나 해코지합니다. 북녘은 북녘대로 남녘을 손가락질하거나 해코지해요. 이래서야 둘이 하나될 수 있을까요?


  동무 사이를 생각해요. 동무와 동무가 서로를 손가락질한다면 어깨동무를 못해요. 서로 아끼지 않는데 어찌 어깨동무하겠어요. 서로 아끼고 사랑할 때에 어깨동무를 해요. 서로 돕고 보살펴야 어깨동무를 합니다.


  이웃 사이를 헤아려요. 이웃과 이웃이 서로를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푸대접한다면 어찌 되나요. 이웃이라면서 이를 갈거나 눈을 부라리면 어찌 되나요. 이래서야 이웃사촌 될 수 있겠습니까.


  남북녘 하나되는 길은 아주 쉬워요.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해야지요. 서로서로 돌보고 보듬어야지요. 정치 우두머리가 만난대서 통일을 이루지 못해요. 정치 우두머리는 없어도 돼요. 재벌 우두머리 또한 없어도 돼요. 남북녘 이루는 여느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만나면 돼요. 이렇게 하면 남녘과 북녘은 사랑스레 한 나라 한 겨레가 될 수 있어요.


.. 문익환 얼굴은 그만 홍당무처럼 빨개지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잘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무조건 남의 생각이 틀리다고 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다음에야 발전이 있다. 다 안다고 생각하면, 자기가 늘 옳다고 생각하면 도대체 공부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 “얼음이 녹아야 봄이 오는 게 아닙니다. 봄이 와야 얼음이 녹는 것입니다. 통일도 바로 이런 자연의 이치와 다를 게 없습니다.” ..  (79, 185쪽)


  남북녘이 하나되지 못하는 까닭은 아주 쉬워요. 서로서로 아끼지 않기 때문이에요. 서로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런 잘못 저런 허물 따사로이 감싸야지요. 아이들을 떠올려 봐요. 아이들이 무엇 하나 잘못했대서 아이들을 두들겨패겠습니까. 아이들이 접시를 깨뜨렸대서 윽박지르겠습니까. 잘못은 부드럽게 타이르면서 앞으로 잘 하도록 북돋으면 돼요. 깨진 접시는 치우고 새 접시 마련하면 돼요. 싸운다 하더라도 싸운 뒤에 사이좋게 앙금을 풀어야지요.


  언제까지 남녘은 북녘을 손가락질하면서 해코지해야 하나요. 언제까지 북녘은 남녘을 손가락질하면서 해코지해야 하나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정치 우두머리와 끄나풀과 몇몇 기자와 지식인 들이 자꾸 쑤석이면서 서로 손가락질하거나 해코지하도록 부추기는지 몰라요. 여느 사람들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려는 마음인데, 정치 우두머리와 끄나풀과 몇몇 기자와 지식인 들만 남북이 하나되기를 안 바라면서 일을 틀어 버리려 하는지 몰라요.


  참말, 서로 하나되려 한다면 서로를 높여야 합니다. 잘 한다고 북돋우고, 사랑스럽다며 웃음으로 맞이해야지요. 저쪽더러 고개를 숙이고 이쪽으로 오라 하면 누가 오겠어요. 예부터 익은 벼가 고개를 숙여요.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남녘이나 북녘이나 서로 ‘익은 벼’라 한다면, 먼저 맞은편으로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려 해야 옳아요.


.. “내 말은, 내용이 아니라 성서가 옛날 말 그대로 적혀 있다는 말입니다. 너무 어려워요. 우리한테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어떻겠어요?” 사실이었습니다. 성서는 기독교가 처음 우리 나라에 들어올 때 선교사들이 번역한 것에서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나 쓰던 말들이 버젓이 씌어 있었지요. 그런 말들은 대개 한자말이 많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문익환은, 말과 글에는 반드시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묻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말과 글을 바르게 쓰지 않고 일본어와 영어만 즐겨 쓴다면 나중에는 민족 정신도 흐릿해질 게 분명하다고 믿었습니다 ..  (105, 108쪽)


  문익환 님이 걸어온 발걸음은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삶빛이었으리라 생각해요. 높은 자리도 낮은 자리도 아닌 아름다운 자리를 찾으려 하셨지 싶어요. 거룩하거나 훌륭한 자리가 아닌 사랑스러운 자리를 찾으려 했다고 느껴요.


  그래서, 문익환 님은 ‘통일 할아버지’ 이기에 앞서 ‘예쁜 할배’요 ‘사랑 할배’로구나 싶어요. 예쁘게 노래하고 사랑스레 춤추면서 우리 삶을 아름답게 빛내고픈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분이라고 느껴요.


.. 문익환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철거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땀을 줄줄 흘리면서 산꼭대기까지 찾아갔습니다.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수은 중독에 걸린 어린 노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마치 자기 손자가 그런 사고를 당하기라도 한 듯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소값이 폭락하여 성난 농민들이 소를 몰고 시위를 하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소리 높여 싸웠습니다.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 갇힌 사람이 있으면 가족들을 찾아가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  (164쪽)


  소설을 쓰는 김남일 님은 문익환 님 삶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어릴 적 태어난 마을, 어릴 적 이녁을 돌본 어버이, 어릴 적부터 함께 얼크러지며 자란 동생,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만나거나 사귄 동무와 이웃, 기나긴 삶을 단출하게 갈무리해서 이 책 하나로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그런데, 좀 힘알이가 없습니다. 어딘가 고갱이가 안 드러나는구나 싶어요. 아름다운 삶을 아름답게 적바림하려고 애썼구나 싶지만, 문익환 님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살아오며 어떤 꿈을 펼치려 했는지, 차근차근 낱낱이 알뜰살뜰 풀어내지는 못했다고 느껴요. 한 사람 발자국을 좇으며 이런 일 저런 일 있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크고 작은 일들이 서로 어떻게 얽히고 이어져 한 갈래 아름다운 빛이 되었는가까지 밝히지는 못했다고 느껴요.


  1970년에 몸을 불사른 전태일 님 이야기를 듣고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며 삶길을 크게 바꾼 문익환 님 삶을, 노래하는 빛이 서린 성경을 읽고 밤하늘 별로 살아간 벗 윤동주를 그리는 마음으로 시를 쓰던 문익환 님 삶을, 발바닥을 아낄 줄 알 때에 이웃을 아낄 줄 아는구나 하고 감옥에서 깨달은 문익환 님 삶을, 너무 많은 이야기조각 엮으려 하다가, 외려 두루뭉술하게 얼거리가 흐트러졌다고도 느껴요.


  ‘간추려서 살을 조금 붙인 해적이’는 위인전이 되지 못합니다. 위인전도 동화책 한 권과 똑같이 오롯이 엮고 짠 문학책이 되어야 합니다. 4346.12.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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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10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익환 목사님의 <목 메는 강산 가슴에 곱게 수놓으며>를
절실하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숲노래 2013-12-10 23:52   좋아요 0 | URL
네, 문익환 목사님 위인전이나 전기인데,
김남일 님쯤 된다면
제대로 깊고 넓게 다룰 만한데,
책을 읽는 내내 왜 이렇게 아쉬울까 하는 생각
지울 길 없었어요.

틀림없이 뜻있는 책이기는 하지만...
 

돈 많으면 책 실컷 읽을까

 


  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살림돈 얼마 없어 히유 한숨을 쉬고 내려놓는 책이 매우 많다. 마흔 해 살아오며 손수 장만한 책이 오만 권쯤 된다면, 장만하고 싶으나 눈물을 삼키며 내려놓은 책이 오십만 권쯤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방에서 책을 사면서 주머니를 들여다볼밖에 없으니, 주머니에 있는 돈을 어림해 책을 고른다. 책을 고른 뒤 책값을 치른다. 꼭 사서 되읽을 만한 책을 고르고는, 오늘 살 수 없다 여긴 책을 찬찬히 읽는다. 책방마실을 할 적마다 여러 시간 들이는 까닭이라면, 사서 읽을 책만 고르자면 삼십 분만에라도, 아니 십 분이나 오 분만에라도 책을 골라서 나올 수 있다. 그렇지만, 차마 돈이 없어 못 사는 책들이 있기에, 이 책들을 책방에서 선 채로 읽어내려고 오랫동안 머물곤 한다.


  나한테 돈이 아주 많아, 또는 책을 다 사들일 만큼 제법 많아, 눈에 뜨이는 대로 모든 책을 다 장만해서 내 서재에 내 책이 백만 권쯤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 그려 본다. 나는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답게 삶을 꾸린다고 할 만할까. 백만 권에 이르는 책을 읽고 살피는 데에 모든 겨를과 품과 기운을 빼앗겨, 정작 종이책 바깥에서 날마다 예쁘고 신나게 흐르는 삶은 하나도 못 보지는 않을까. 내가 몸으로 부대끼며 이룰 사랑은 안 하고, 책에만 나오는 사랑을 읽지는 않을까. 내가 손수 지어서 맛나게 차려먹을 밥은 안 먹고, 책에만 나오는 그럴듯한 사진에만 군침을 흘리지는 않을까. 내가 스스로 두 다리로 땅을 디디며 골골샅샅 찾아다니기보다는 책에 나오는 여행 이야기 꽁무니만 좇으며 머릿속으로만 여행을 다니지는 않을까.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 해서 모든 동화책과 그림책을 다 사서 읽혀야 하지는 않는다. 책을 사 줄 돈이 없다 하더라도 모든 동화책과 그림책을 도서관으로 찾아가서 빌려 읽혀야 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동화책 하나와 그림책 하나로도 즐겁다. 어른도 이와 같아, 시집 하나와 사진책 하나로도 넉넉하다. 한 사람이 굳이 백만 권에 이르는 책을 읽는다거나 천만 권에 이르는 책을 건사해야 하지는 않아. 열 권만 건사해도 되지. 서른 권만 읽어도 되지. 사람들이 한 해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다 한들 대수로울 일이 있겠나. 삶을 읽고 사랑을 읽으며 사람을 읽을 줄 알면 되니까. 숲을 읽고 풀을 읽으며 나무와 꽃과 바람과 햇볕과 지구별을 읽을 줄 알면 넉넉하니까.


  돈이 많대서 아이들을 잘 보살피거나 가르치지는 않는다. 돈이 많대서 좋은 집을 장만하지는 않는다. 돈이 많대서 다니고픈 여행을 신나게 다니지는 않는다. 돈이 많대서 사진을 더 잘 찍지 않고, 돈이 많대서 글을 더 잘 쓰지 않는다. 돈이 많대서 무엇을 더 잘 할까? 아무것도 없다. 돈이 없대서 글을 못 쓰나? 돈이 없대서 사진을 못 찍나?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읽지 않는다. 마음이 없으니 책을 못 읽는다. 마음이 없기에 아름답게 못 살고 즐겁게 못 산다. 사랑이 없기에 착하게 못 살고 참답게 못 산다. 책을 읽든 아이를 낳아 돌보든 무엇을 하든, 우리 마음이 따사로울 수 있어야 하고, 우리 사랑이 환하고 밝을 수 있어야 한다. 4346.12.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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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2-10 11:08   좋아요 0 | URL
수단에 불과한 돈이 '목적'이 되는 삶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겠지요.

소로우는 '호사스런 부자들은 편안하고 따뜻하게 지내는 정도를 넘어, 무리할 정도로 뜨겁게 지낸다. 앞서 말했듯이 이렇게 되면 그들의 몸이 요리되는 셈이다'라고까지 말하더군요.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을 얻고 나면, 쓰고 남을 정도로 구하지 않고 다른 대안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달리 말하면, 상대적으로 더 하찮은 일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모험적인 삶을 시도한다.'고 말했던 소로우 님 또한 '책을 많이 읽으라'고 유달리 강조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숲노래 2013-12-10 11:40   좋아요 0 | URL
아침에 어느 분이 '돈이 많지 않아 아이한테 제대로 못 해 준다' 하는 말씀을 하셔서, 갑자기 그 말 때문에 여러 생각이 샘솟아 이런 글을 썼어요. 아직 못 사서 못 읽는 책도 많지만, 이제껏 즐겁게 사서 즐겁게 읽는 책도 많다 보니, 외려 그 말씀을 들으며 새로운 생각이 활활 불타오르는 듯해요 ^^;

수이 2013-12-10 11:21   좋아요 0 | URL
백번 천번 옳은 말씀! 어렸을 때 교보문고 사장은 좋겠다, 이렇게 책이 많고 많으니 읽고싶은 책은 다 읽을 수 있겠는걸~ 했는데 그건 무지 단세포와 같은 생각이었어요 후훗. 오늘도 아자아자 함께살기님

숲노래 2013-12-10 11:41   좋아요 0 | URL
네, 책방이 넓거나 서재가 크다 해서 그 책을 모두 다 '내 것'으로 삼지는 못하니까요, 우리 손에 있는 작은 책 하나 아낄 수 있으면 넉넉하구나 싶어요~

앤님 또한 오늘 하루 사랑스레 누리셔요~

그렇게혜윰 2013-12-10 11:53   좋아요 0 | URL
있는 책을 다 읽어야 맛은 아니지만, 가끔 있는 책 또 살 땐 그 책이 과연 내게 어떤 의미가 있나 싶어져요. 그 의미를 아이도 함께 알아가면 좋겠어요. 아이 키우는 것은 엄마가 아니라, 아이와 엄마 공동의 일 같아요.

숲노래 2013-12-10 12:14   좋아요 0 | URL
저도 아이들과 여러 해 함께 살아오면서
아이한테 무언가 따로 가르치는 일보다는
삶으로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사이가 되는구나 하고
늘 느끼곤 해요.

어버이(부모)라는 자리는 이래서 어버이로구나 하고
날마다 새롭게 배우면서 느껴요.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새롭게 느끼고 배우는 이야기
많을 테지요!

있는 책을 또 사는 일은,
참말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이 즐겁게 하는 책놀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곤 해요~

드림모노로그 2013-12-10 14:22   좋아요 0 | URL
월급 타면 요즘도 종종 월급의 반을 책사는 데 날려버린답니다 ㅋㅋㅋ
그래서 정작 필요한 것을 못 살때 , 함께 살기님처럼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ㅎㅎㅎ

말씀처럼 책을 읽고 살피는 데에 마음을 빼았겨 내 주의의 모든 것에 소홀할 때가 많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책을 읽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떠올려보게 되는 아름다운 글이네요.
너무너무 잘 읽고 가고요 ~ 늘 그렇듯이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숲노래 2013-12-10 15:53   좋아요 0 | URL
헉! 월급 절반을!
놀랍고 훌륭하십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출판사 일꾼으로 일하던 지난날에는
월급 3/5을 적금으로 붓고, 2/5 가운데 4/5을 책값으로 썼으니~ ^^;;

언제나 아름다운 책 만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 길어올리시리라 믿어요~

착한시경 2013-12-10 18:16   좋아요 0 | URL
너무 아름다운 글...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그동안 마구마구 구입했던 책들이 쌓여가는 걸 보니~반성하게되네요~ 늘 좋은 글 감사히 읽고 있답니다^^ 즐거운 저녁시간 되시길~

숲노래 2013-12-10 23:43   좋아요 0 | URL
고마운 말씀입니다.
언제나 즐겁게 읽고 싶어
신나게 책을 장만하셨겠지요~

돈이 있거나 없거나
책사랑 한길 저마다 예쁘게 일구기를 빌어요~

카스피 2013-12-10 23:23   좋아요 0 | URL
흠 만약 주체할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다면 커다란 서재를 꾸면놓고 좋아하는 책들을 잔뜩 사놓고 흐뭇해 할것 같아요.뭐 다 읽는다는 보장은 없지만요ㅜ.ㅜ

숲노래 2013-12-10 23:44   좋아요 0 | URL
그렇게 할 수 있어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서재를 얼추 만 평이나 십만 평 넓이로
꾸밀 수 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고 설렙니다~ ^^

눈아 2013-12-15 01:58   좋아요 0 | URL
어린시절.. 7남매 막내로 언니와 오빠들이 보는 어려운 책들은 있었지만, 제가 보고 싶은 책들은 없어서 어쩌다 생기는 용돈으로 헌책방이나 길거리 좌판에 헌책 할아버지께 동화책을 사서 너덜너덜해질때까지 몇 번이고 읽고 또 읽던 생각이 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헌책은 퇴근길 동무였습니다.
보고싶은 책 몇 권을 낑낑거리며 들고 산비탈을 올라 집으로 갈 때, 뭐 대단한 월척이라도 건진 어부의 마음이었습니다.
당시.. 열심히 벌어서 책방을 하면 좋겠다. 했었죠.
새로 나온 책을 실컷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40이 훨씬 넘은 지금
책방은 생각지도 못하고, 인터넷 서점을 기웃거린답니다.
어린시절이나 청년시절에 비해서 비교적 여유로운 요즘이지만,
책을 많이 사지거나 읽지도 못하고 뭐가 바쁜지 세월의 꽁무니만 보면서.. 느린느린 살고 있습니다.

올해 고마운 분들께 시집이라도 선물하고 싶어.. 기웃거리다
함께살기님의 글을 보니..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의 꿈이 떠올라 살금 웃습니다.

고맙습니다.^^

숲노래 2013-12-15 02:38   좋아요 0 | URL
저도 혼자 살 적에는 옥탑집과 적산가옥집... 이런 곳으로
책꾸러미를 낑낑거리며 나르는 동안
혼자 즐겁게 지내곤 했어요.

살림이 넉넉해진대서 책을 더 잘 읽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눈아 님 위로 여섯 언니 오빠 들이 있다니
대단하네요 @.@

가끔 이곳저곳 예쁜 헌책방들 돌아다니시면서
아름다운 이야기와 책과 꿈도 만나 보셔요~~

괄목상대 2013-12-16 09:47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문득 제가 무얼 놓치고 있었는지 조금 깨닫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3-12-16 10:35   좋아요 0 | URL
놓치셨다기보다 살짝 다른 데에 더 마음을 쓰셨겠지요.
마음속에 늘 있었으면
언제라도 사뿐사뿐 다시 찾아들어
즐거운 삶으로 이루어지리라 믿어요 ~ ^^
 

[시골살이 일기 34] 대문을 열면
― 삶그림

 


  대문을 열면 언제나 아름다운 그림 하나 우리 앞에 드리웁니다. 대문 뼈대를 그림틀 삼아 바깥을 바라보며 늘 아이 좋구나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아름다운 그림을 날마다 누리니 얼마나 고마운 삶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을 이웃 할매와 할배 모두 아름다운 그림을 언제나 누리기에 일흔이나 여든 나이에도 씩씩하고 튼튼하게 흙을 만지며 살아가실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큰아이가 대문 뼈대를 밟고 그네놀이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제 더는 대문 뼈대를 그네로 삼는 놀이는 못 하게 할밖에 없어 아이한테 미안하지만, 나중에 대문틀을 튼튼하게 마련할 수 있으면 그때에 놀면 돼요. 아무튼, 큰아이가 한참 그네놀이를 대문을 밟으며 할 적에 평상에 앉아 바라보는데, 대문 뼈대 밟고 오락가락하면서 바깥 모습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할 적에, 꼭 그림 하나를 보여주었다 감추었다 하는 느낌이 들어요. 새삼스럽다고 할까요, 새롭다고 할까요. 사랑스럽다고 할까요, 산뜻하다고 할까요.


  그러고 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 같은 집’에서 살고 싶었어요. 국민학교 다닐 무렵인데, 학교에서 ‘어른인 교사’들은 무언가 가르치면서 으레 ‘그림 같은 집’이라는 말을 썼어요. 아주 멋있거나 훌륭하거나 아름답다고 할 적에 ‘그림 같은’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림 같은 집이란 돈으로만 이룰 수 없으리라 느꼈어요. 이러면서 나는 나중에 반드시 그림 같은 집에서 살겠어, 하고 생각했어요. 대문을 열면 언제나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지는 집, 대문을 열지 않더라도 마당에서 그림 같은 아름다움을 누리는 집, 마당으로 내려서지 않고 대청마루에 앉더라도 아름다운 그림을 즐기는 집, 대청마루 아닌 방이나 부엌에서도 늘 그림이라 할 이야기를 한껏 가꾸는 집에서 살림을 꾸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돈을 벌거나 모아서 그림 같은 집에서 살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내 삶은 그림 같은 집에서 아름답게 이루어지겠다고 느꼈어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그림 같은 집을 누릴 수 있는가 하고 따지지 않았어요. 어디에서라도 우리 집은 늘 그림 같은 집이 되기를 빌었어요.


  이 시골집에서 우리 아이들은 무슨 꿈을 꿀까 궁금합니다. 아이들 아버지는 그림 같은 집을 꿈꾸다가 참말 그림 같은 집에서 살아가는데, 우리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꿈을 그려 어떤 아름다운 빛을 이 지구별에서 이룰까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며 살아가는 나날을 두근두근 설레면서 손꼽아 기다립니다. 4346.12.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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