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먹으며 낮은산 어린이 7
이오덕 지음, 신가영 그림 / 낮은산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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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을 읽는다 10

 


마음과 몸을 돌보는 밥
― 감자를 먹으며
 이오덕 글
 신가영 그림
 낮은산 펴냄, 2004.6.25

 

 

※ 책풀이 ※
그림책 《감자를 먹으며》는 이오덕 님이 쓴 시 ‘감자를 먹으며’를 새롭게 엮은 책이다. 오랜 나날 시골사람 살아온 발자취가 이 시에 깃들고, 옛날과 오늘날 잇는 징검다리가 감자를 익혀서 먹는 손길에 있다. 감자를 먹듯이 고구마를 먹는다. 고구마를 먹듯이 보리를 먹는다. 보리를 먹듯이 감을 먹고, 대추를 먹으며, 참꽃과 찔레싹을 먹는다.

 

..


  고구마를 캤습니다. 우리 집 고구마는 아닙니다. 이웃 할매와 할배가 이녁 밭에서 고구마를 캐실 적에 일손을 거들어 함께 캤습니다. 먼저 고구마줄기를 낫으로 슥슥 걷어서 한쪽에 펼쳐 말립니다. 이런 다음 골마다 호미로 콕콕 찍은 뒤 살살 흙을 걷으며 땅속에서 크고 작게 알이 맺힌 고구마를 캡니다. 큰 녀석은 큰 녀석대로, 작은 녀석은 작은 녀석대로 나누어 자루에 담습니다. 할매와 할배는 이녁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릴 적에는 겨우내 고구마만 먹고 살았다 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도 도시락은 으레 고구마였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밖에 쌀이란 드물고 모자랐을 테니까요. 또, 제법 잘사는 집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 땅을 부쳐서 살았으니, 쌀밥을 지어 끼니를 잇기 힘들었겠지요.


  겨울에는 고구마라면 여름에는 감자가 될까요. 늦가을에 고구마를 캐면, 감자는 봄에 심어 여름에 캐어 먹었겠지요. 그러면, 이 나라에 고구마도 감자도 들어오지 않았을 지난날에는 어떠했을까요. 1700년대에는, 1500년대에는, 1300년대에는, 900년대에는, 700년대에는, 지난날 시골마을 여느 사람들은 겨우내 무얼 먹었을까요. 여름날 무얼 먹으며 배를 채웠을까요.


  역사책이나 역사영화나 역사연속극에서는 여느 시골마을 여느 사람들 삶을 다루지 않습니다. 아주 마땅하겠지요. 한문으로 적은 역사책에는 궁중 언저리 이야기만 담을 뿐, 서울과 가까운 시골마을 시골사람 이야기조차 안 담아요. 서울에서 먼 전라도나 경상도나 함경도 시골마을 시골사람 이야기는 아예 안 담지요.


  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책을 들추면, 온통 궁중 언저리 이야기입니다. 시골마을 시골사람 이야기는 ‘너무 무거운 세금 때문에 농사꾼이 낫과 쟁기와 대나무창을 들고 일어설 때’뿐입니다. 시골사람 먹던 밥을 역사로 다루지 못합니다. 시골사람 입던 옷을 역사로 보여주지 못합니다. 시골사람 살던 집을 역사로 밝히지 못합니다.


.. 이오덕 선생님은 어린 시절을 이렇게 감자를 통해 조용히 말씀해 주셨다. 안방과 정지 샛문으로 어머니가 젓가락에 찍어 주시던 감자가 아마도 선생님의 삶을 지켜 준 텃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말씀보다 따뜻한 감자로 모든 걸 가르치신 것이다 ..   (머리말/권정생 씀)

 


  이오덕 님이 쓴 시에 신가영 님이 그림을 그려 빚은 그림책 《감자를 먹으며》(낮은산,2004)를 들춥니다. 감자 한 알 먹는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하느냐고 할 수 있겠는데, 시를 읽고 그림을 읽으면서, 참말 감자 한 알 먹는 일이야말로 대단하고 대수롭구나 싶습니다. 시골마을 시골사람 작은 삶자락이 우리 마음을 밝히는 이야기가 됩니다. 시골마을 시골사람 작은 땅뙈기에서 우리 사랑을 빛내는 이야기가 자랍니다.


  마음은 지식이 아닌 삶으로 밝힙니다. 사랑은 권력 아닌 사랑으로 빛냅니다.


  임금이나 신하나 양반은 무엇을 먹습니까. 밥을 먹지요. 밥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쌀에서 나오지요. 쌀은 어떻게 얻나요. 볍씨를 심어 나락을 거두어야 얻지요. 볍씨는 어떻게 얻나요. 가을걷이를 해서 나온 나락 가운데 이듬해에 쓸 볍씨를 따로 씨오쟁이에 갈무리해야 얻지요.


  임금이나 신하나 양반은 흙을 일구나요? 안 일굽니다. 임금이나 신하나 양반은 흙을 알까요? 모르지요. 손에 흙을 안 묻혀요. 손에 물을 안 묻혀요. 오로지 정치와 행정만 하는데, 99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99.9퍼센트나 99.99퍼센트에 이르는 사람들이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데, 옛날 옛적에 정치와 행정을 하는 이들은 텃밭 돌보기조차 안 합니다. 그러면, 어떤 정치와 행정이 태어날까요. 시골마을이 어떠한 줄 모르고, 시골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집에서 어떤 밥을 먹는지조차 모르는 임금이나 신하나 양반이 어떤 아름답거나 올바른 정치나 행정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에도 똑같습니다. 오늘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의사나 판사나 시장이나 군수나 경찰서장이나 장관 가운데 텃밭을 일구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궁금합니다. 교사나 교수 가운데 텃밭을 일구어 이녁 밥을 얻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시골에서 시골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나 교수 가운데 막상 시골마을에서 지내면서 시골일 함께 거드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오직 서울에서, 오로지 도시에서, 여느 사람들 삶하고는 동떨어진 채, 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하나도 모르는 채, 바람과 물이 없으면 죽는 목숨이면서 정작 바람과 물을 깨끗하게 돌보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도 안 하는 채, 책과 교과서와 지식과 정보만 움켜쥐면서 정치와 행정과 교육과 문화와 경제를 이야기하는 모습 아닌가 궁금합니다.


겨울이면 정지 샛문 열고 내다보는 내 손에 쥐어 주며
꼭 잡아 꼭!
봄 가을이면 마당에서 노는 나를 불러
김 무럭무럭 나는 그 감자를 주며
뜨겁다 뜨거, 후우 해서 먹어!  (14쪽)


  말로는 아무것도 못 가르칩니다. 말로는 말조차 못 가르칩니다. 아이들한테 말을 가르치자면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몸으로 움직이는 삶을 보여줄 적에 아이들은 비로소 말을 익힙니다.


  어버이가 텔레비전을 보든 인터넷게임을 하든 자가용을 몰든, 삶을 아이들한테 보여주어야 아이들은 말을 배웁니다. 어버이가 밥을 손수 차리든 바깥밥 시켜서 먹든, 삶을 이루는 모든 이야기를 몸으로 보여주고 함께해야 아이들은 말을 배웁니다.


  감자 한 알로 삶을 보여줍니다. 감자 한 알로 말을 가르칩니다. 감자 한 알로 웃음을 보여줍니다. 감자 한 알로 사랑을 가르칩니다.


  감자를 심어요. 감자를 캐요. 감자를 삶아요. 감자를 굽지요. 그리고 감자를 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둥글둥글 울퉁불퉁한 감자를 저마다 한 알씩 쥐고, 아뜨 아뜨 하면서 고픈 배를 채웁니다. 하하 호호 노래를 하면서 감자를 먹습니다. 허허 깔깔 춤을 추면서 감자를 먹습니다.


  푸욱 삶아서 젓가락으로 찌르면 쏘옥 들어갑니다. 이제 잘 익었구나 생각하며 불을 끕니다. 감자는 바닥에 물을 살짝 깔고 삶을 수 있습니다. 스텐냄비를 한참 달군 뒤 아주 작은 불로 맞추어 물 없이 찔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장작을 때어 솥으로 삶았겠지요. 바깥에서 불을 피워 구울 수 있어요. 삶거나 찌거나 굽는 길은 다 다르지만, 어떻게 먹든 맛난 감자요, 누구하고 나누어 먹든 즐거운 감자입니다.


후후 후우, 허어 허어, 냐음 냠
감자를 먹으면서 나는 자라났다.
밥을 먹기 전에 감자부터 먹고
가끔은 삶은 것을 점심으로도 먹고  (18쪽)

 


  감자를 먹는 아이는 감자와 같은 마음이 됩니다. 감자를 삶는 어른은 감자와 같은 마음을 담습니다. 감자를 먹은 아이는 감자처럼 몽글몽글 야무진 마음을 키웁니다. 감자를 삶은 어른은 앙증맞고 귀여운 감자꽃 같은 웃음으로 사랑을 나누어 줍니다.


  집집마다 감자맛이 다릅니다. 집집마다 밥맛도 다릅니다. 집집마다 사랑맛이 다르고, 손맛이 달라요. 집집마다 밭흙이 다르고 밭흙 일구는 손빛이 다릅니다. 그러나, 다 다른 맛이요 빛이지만, 다 같은 사랑이며 꿈입니다.


  감자씨는 묵은 감자를 심습니다. 토막토막 칼로 잘라서 심습니다. 한쪽에 재를 묻혀서 심습니다. 씨감자로 흙에 묻힌 아이들은 새 뿌리가 나고 새로운 싹이 돋을 때까지 별바라기를 하고 해바라기를 합니다. 흙속에서 살아가는 동무를 사귑니다. 천천히 실뿌리 나오고 굵은 뿌리 됩니다. 천천히 첫 싹을 올리고 이내 굵다란 줄기가 됩니다. 잎이 하나둘 나옵니다. 잎이 차츰 퍼집니다. 꽃대가 오르고 망울 맺히며 천천히 꽃잎 벌어집니다.


  하얗게 꽃을 피우고 볼그스름한 꽃을 피웁니다. 조그마한 꽃송이에 벌과 나비가 내려앉습니다. 개미도 꽃가루를 먹고 싶어 감자꽃잎으로 기어옵니다.


  수많은 벌레들이 감자꽃 둘레에서 꽃가루받이를 돕습니다. 감자꽃은 바람 따라 살랑이고, 감자잎은 햇볕을 먹으며 씩씩합니다. 씨앗이 된 작은 감자알은 차근차근 새 알을 흙속에서 품습니다.


이윽고 쑥 향기 물씬 밴 뜨거운 감자를 파내어
후우 후우 불면서 먹던 그 맛
잘 익어 터진 북해도 흰감자
껍질을 훌훌 벗기면 아이 뜨거!
야무진 자주감자 껍질을 벗기면서 아이 뜨거!
뜨거워서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공 받듯이 받다가
한입 가득 넣으면 입 안에 녹아드는 그 향기 그 맛
팍신팍신 달고소한 그 감자 맛
아른아른 여울물에 헤엄치는 피라미들의 이야기까지 들어 있는
그 모래쑥 향기 듬뿍 밴 감자 맛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쳐다보는 머리 위 미루나무에선 이초강 이초강
이초강 이초강 이초강 이초강 이초강 이초강
보리매미들이 온통 사납게 울어쌓고  (27쪽)


  사랑으로 심어 돌보아 거둔 감자를 사랑으로 물에 헹군 뒤 불에 안치면, 달고소한 맛이 아른아른 피어납니다. 가게에서 사다 먹는 감자 아닌, 손수 밭에서 돌보아 거둔 감자를 삶거나 굽거나 익혀서 먹어요. 감자국을 끓이고 감자지짐을 해요. 감자밥을 짓고 감자볶음을 해요.


  메추리알이랑 감자를 함께 삶습니다. 멸치랑 감자를 함께 볶습니다. 고구마하고 잘게 썰어 지집니다. 뭉텅뭉텅 깍뚜기처럼 썰어 카레를 끓입니다.


  감자를 먹고 자란 아이들은 감자와 같은 웃음꽃을 피웁니다. 감자를 즐기며 자란 아이들은 감자와 같이 별바라기와 해바라기를 하며 살결 까맣게 익습니다.


  가을바람이 불어 들마다 들풀 시들어 눕습니다. 봄바람이 불어 시든 들풀 사이에 새로운 싹이 돋습니다. 겨울바람이 불어 들마다 눈송이 흩날립니다. 여름바람이 불어 들마다 들풀 빛깔 싱그럽고 짙푸릅니다.


  감자밭에 개구리 함께 살아갑니다. 고구마밭에 지렁이 함께 살아갑니다. 들쥐는 감자알도 고구마알도 갉아먹습니다. 사람도 감자를 먹고 쥐도 감자를 먹습니다. 멧돼지도 땅을 파헤쳐 감자며 고구마를 우걱우걱 씹어먹습니다.


  배고픈 모든 목숨 밭으로 찾아듭니다. 배고픈 이들 모두 밭에서 거둔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로 배를 채웁니다. 함께 먹는 밥으로 함께 나누는 사랑 됩니다. 함께 즐기는 밥으로 함께 북돋우는 삶 됩니다.


  콩 한 알 새한테도 주고 쥐한테도 주셔요. 콩 한 알 이웃한테도 주고 동무한테도 주셔요. 감자 한 알 멧돼지한테도 주고 쥐한테도 주셔요. 감자 한 알 이웃한테도 주고 동무한테도 주셔요.


  배고픈 이웃 있으면 등을 돌리지 말아요. 외로운 이웃 있으면 지나치지 말아요. 손을 내밀어요. 밥을 함께 먹어요. 웃음을 나누어요. 어깨동무하며 이야기꽃 피워요.


그렇게 사시사철 감자로 살아 내 몸도 마음도
이런 감자빛이 되고 흙빛이 되었지.

후우 후우 감자를 먹으면서
나는 또 책을 읽었다.
감자를 먹으면서 글을 썼다.

감자를 먹고 학교 선생이 되어서는
감자 먹고 살아가는 산골 아이들을 가르쳤다.  (28~32쪽)


  햇볕을 쬐면서 해님처럼 따스한 마음 됩니다. 빗물을 마시면서 비님처럼 시원한 마음 됩니다. 숲바람 들이켜면서 바람님처럼 푸른 마음 됩니다.


  마음속으로 햇빛을 담아요. 몸속으로 감자빛을 담아요. 마음속으로 들빛을 담아요. 몸속으로 풀빛을 담아요.


  감자가 자란 흙은 사람이 자라게 하는 흙입니다. 감자빛이란 흙빛이고, 흙빛이란 삶빛이며, 삶빛이란 우리들 모든 사람들한테서 흘러나오는 빛입니다.


  흙 한 줌을 아낍니다. 감자 한 알을 아낍니다. 쌀알 한 톨을 아낍니다. 물 한 방울을 아낍니다. 내 목숨을 아끼듯이 이웃 목숨을 아낍니다. 내 마음속에 사랑이 흐르기를 바라듯이 이웃 마음속에 사랑이 흐르기를 바랍니다.


  감알을 먹으면서 우리 몸은 감빛이 됩니다. 능금을 먹으면서 우리 몸은 능금빛이 됩니다. 나리꽃을 바라보면서 우리 눈은 나리꽃빛이 되고, 함박꽃을 바라보면서 우리 눈은 함박꽃빛이 되어요.


  무엇을 먹을 때에 아름다운 삶일까요. 무엇을 바라볼 때에 아름다운 사랑일까요. 어디에서 누구와 이웃이 되어, 아니 나 스스로 이웃한테 어떤 사람이 되어 살아갈 때에 우리 마을이 아름다운 보금자리요 삶터가 될까요.


나는 지금 할아버지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어린애처럼 후우 후우 감자 먹기를 좋아해서
감자 먹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감자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마을에 가서
오두막집 지어 사는 꿈을 꾼다.   (37쪽)

 


  대통령도 밥을 먹어요. 임금님도 밥을 먹어요. 밥이 없으면 모두 죽습니다. 대통령도 바람을 마셔요. 임금님도 바람을 마셔요. 바람이 더러우면 모두 죽습니다. 대통령도 임금님도 누구나 물을 마시지요. 흐르는 냇물과 샘물을 마시지 못하면 모두 죽고 말아요.


  궁궐을 크게 짓기 앞서 흙을 기름지게 돌볼 줄 알아야 합니다. 아파트를 높이 세우기 앞서 시골을 아름답게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총칼이나 탱크나 미사일이나 전투기를 만들기 앞서 논과 밭을 정갈하게 보듬을 줄 알아야 합니다. 고속도로나 관광단지나 발전소나 골프장에 앞서 숲을 푸르게 어루만질 줄 알아야 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밥과 바람과 물이 대단합니다. 대학교도 은행계좌도 자가용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들과 숲과 하늘이 대수롭습니다.


  넉넉한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정치는 덧없습니다. 싱그러운 바람을 마실 수 없다면 경제는 부질없습니다. 맑은 물을 들이켤 수 없다면 문화는 쓸모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길을 연 뒤에 비로소 정치나 교육이 있고, 사람이 사랑한 길을 가꾼 뒤에 바야흐로 경제나 문화가 있습니다.


내가 믿는 하느님도
그렇다.
감자를 좋아하실 것이다.
맑고 깨끗하고 따스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감자 맛을 가장 좋아하실 우리 하느님,
내가 죽으면 그 하느님 곁에 가서
하느님과 같이 뜨끈뜨끈한
감자를 먹을 것이다.  (41쪽)


  예배당에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감자 한 알에 하느님이 있습니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 가슴속에 하느님이 있습니다.


  성경책에도 하느님이 없어요. 하느님은 바람속에서 싱그러운 풀내음을 타고 흐릅니다. 맑게 피어나는 구름이 뿌리는 빗물 사이사이 하느님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종교가 아닌 삶입니다. 하느님은 우상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풀포기에서 함께 자라고, 하느님은 무지개 끝자락에서 함께 빛납니다. 아이들 웃음 사이에 하느님 웃음이 묻어납니다. 어른들 노래 사이에 하느님 노래가 흐릅니다. 다 다른 하느님이 다 다른 하느님을 낳아 다 다른 사랑과 꿈으로 살아가면서 새로운 하느님을 마음속으로 밝힙니다.


  감자를 함께 먹는 들판에 하느님이 함께 있습니다. 무기공장이나 고속도로 한복판에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감자를 심는 밭뙈기에 하느님이 함께 있습니다. 핵발전소나 축구장에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4346.11.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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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1-2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오덕 선생님 글을 읽다가 좋은 서재와 글을 만나 반갑습니다. 저도 같은 책을 읽었는데 이렇게 다르군요. 깊은 생각과 마음을 보고 많이 배우며 깨닫고 갑니다. 선생님 글을 하나 하나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시로 읽는 책 74] 문학

 


  하늘한테 상장 주는 사람 없어요.
  그래도 하늘은 파란 숨결
  늘 누구한테나 따숩게 베풀어요.

 


  ‘삐삐’ 이야기를 쓴 린드그렌 님이 노벨문학상 받았는지 알 노릇이 없는데, 문학상을 받거나 말거나 즐겁게 읽으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우리 가슴에 남을 수 있으면 사랑스러우리라 느껴요. 해님한테, 냇물한테, 빗방울한테, 풀잎한테, 나무한테, 숲한테, 꽃송이한테, 무지개한테, 구름한테, 참말 우리 둘레 아름다운 숨결한테 상장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마, 상장을 주겠다 한들, 받을 해님이나 냇물이 없어요. 상장을 주더라도 별과 달은 이런 물건들 받지 못해요. 해님이 받는다면 마음을 받아요. 나무와 풀이 무언가 사람한테서 받는다면 사랑을 받아요. 우리 사람들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한 가지라면, 오직 하나,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4346.11.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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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는 길 2. 자전거와 함께 살기
― 한 해 동안 주마다 300킬로미터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이오덕 님 글과 책을 만지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이오덕 님 곁에서 이녁 말씀을 들은 분들 가운데 막상 이오덕 님 넋을 알뜰히 받아먹으며 스스로 마음을 키운 분은 뜻밖에 몹시 적구나 싶었다. 왜냐하면, 이오덕 님은 ‘나를 따르라’ 하지 않았는데, 모두들 ‘이오덕 제자’라는 이름을 내걸며 ‘이오덕 따르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오덕 님은 사람들이 이녁을 ‘스승’이나 ‘선생님’으로 모시는 일을 매우 싫어하셨다. 모두 다른 사람이고 모두 다른 목숨이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살아가는 넋이라고 말씀하셨고, 이러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멧골학교에서 마흔두 해를 지내셨다. 그러면, 이 넋과 뜻을 제대로 살피면서 모두들 ‘제자’ 아닌 벗님으로서 ‘어깨동무’ 하는 두레나 품앗이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이오덕 님이 쓴 일기를 날마다 읽으면서 새삼스레 생각했다. 이오덕 님 일기책은 2013년 봄에 드디어 ‘다섯 권으로 간추린 책’으로 예쁘게 나왔는데, 이 일기책에는 알짜 이야기가 많이 빠졌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오덕 님 넋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을 텐데, 이번에 나온 일기책에서 빠진 알짜란 무엇인가 하면, 이오덕 님이 ‘이녁 둘레에서 제자라고 스스로 밝히는 사람(거의 다 현직 교사, 또 거의 다 초등학교 교사)’을 마주하며 느낀 아쉬움을 밝힌 글이다. 한국글쓰기연구회라는 모임을 이오덕 님이 여셨는데, 이 연구회 현직 교사들이 연수모임을 할 적마다 늘 술만 마시고, 제대로 된 공부모임이 이루어지지 않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오덕 님은 이 모임 집어치우고 모임이름을 ‘술 연구회’로 바꾸라는 말까지 자주 하셨다.


  연수모임이 아니더라도, 다른 회원(현직 교사)들이 저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가르치고 배우면서 얻은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내놓지 못하곤 했고, 회원들 스스로 저마다 다른 학교와 다른 아이들을 마주하며 느낀 이야기를 책으로 엮을 만큼 되어야 하는 줄 느끼지 못한다. 오직 이오덕 님만 혼자서 꾸준하게 글을 쓰고 책을 엮었을 뿐이다.


  이오덕 님 일기를 원본으로 읽고, 책으로 나오지 못한 글을 원고지로 읽고, 이오덕 님이 온삶을 걸쳐 읽어 건사하신 책을 아침저녁으로 나란히 읽고, 이정우 님이 들려주는 아버지 이야기를 귀로 듣고, 《우리 글 바로쓰기》 책을 내려고 모은 엄청난 신문자료를 샅샅이 읽었다. 이러는 동안 곰곰이 생각 하나를 키웠다. 나는 이곳에서 이오덕 님 글을 모두 갈무리한 뒤에는 ‘내 넋을 살찌워 내 글을 쓰고 내 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내가 이곳에서 이오덕 님 글과 책을 만지면서 차근차근 갈무리하는 뜻이 하나도 없겠다고 느꼈다.


  보리 출판사에서 어린이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할 적에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보리 출판사에서 ‘보리 어린이 국어사전’이 나오는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지만, 이 국어사전이 나온 뒤에는 내 나름대로 ‘내 넋을 더 살찌워 한결 아름답고 알찬 새 국어사전’을 혼자서 스스로 만들 만큼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저지른 말썽, 창비 김이구 님이 보여준 안쓰러운 모습, 보리 출판사 옛 동료들이 내 가슴에 새긴 생채기,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속이 쓰려 죽을 노릇이었다. 마음속에서 솟는 눈물과 아픔을 달랠 길이 없었다. 이즈음, 2004년에, ‘발바리’라는 모임을 알았다. 서울 광화문에서 한 달에 한 차례 ‘떼거리 잔차질’을 하는 모임이다(http://bike.jinbo.net). ‘두 발과 두 바퀴로 하는 떼거리 잔차질’이라서 발바리 모임이다. 서울 한복판부터 자동차를 줄이고 자전거로 살아가자는 뜻을 알리려는 모임인데, 운영자도 주최자도 따로 없다. 스스로 모이고 스스로 달린다. 집회도 시위도 아닌 ‘자전거 타기’이다. 버스가 경적을 울리며 자전거 타는 사람을 윽박지르건 오토바이가 자전거 앞에서 배기가스 춤을 추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또 천천히, 서울 시내 한복판을 한 시간쯤 달리는 모임이다.


  처음에는 이 모임에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서 함께했다. 그런데, 어차피 자전거모임에 갈 바에는 아예 충청북도 충주부터 서울까지 자전거로 달려야 제맛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동안 길눈을 익힌다. 길그림책을 펼쳐서 충주에서 서울로 가는 일반국도와 지방도로를 살핀다. 이정우 님과 서울이나 인천으로 볼일 보러 함께 움직일 적에 지나가는 일반국도와 지방도로를 눈여겨본다. 이러고서, 어느 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새벽 여섯 시 즈음 길을 나섰다.


  얼마나 설레던지. 편도 150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린다.


  처음 자전거로 150킬로미터를 달리던 날, 다섯 시간 반이 걸렸다. 사이에 쉬며 도시락을 먹느라 이만 한 시간이 나온다. 한 번 이렇게 달리니 등허리와 팔다리가 되게 저리고 결리다. 도시락 먹느라 쉰 삼십 분을 빼면 다섯 시간 고스란히 달린 셈인데, 다섯 시간을 거의 쉬지 않고 달리자니, 땀이 물꼭지 틀어 놓은 듯이 떨어진다. 등에 멘 가방은 내 땀으로 젖고, 옷은 벗어서 짜면 땀물이 줄줄 흘렀다.


  팔다리 안 쑤신 데가 없지만 마음은 홀가분했다. 그래, 이제부터 자전거로만 다녀 보자.

  첫 주는 충주로 돌아가는 길에 시외버스를 탄다. 다음주부터는 오로지 자전거로만 오간다. 충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충주로. 여름, 가을, 겨울, 봄, 네 철을 고스란히 자전거로 달린다. 비가 오건 태풍이 지나가건 눈이 오건 자전거로 달린다. 비가 오면 비를 맞는다. 눈이 오면 눈을 맞는다. 이제 150킬로미터 편도를 달리는 길이 익숙해, 한 번도 안 쉬고 달리면 네 시간 반만에 서울에 닿는다.


  바보짓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네 시간 반을 한 차례도 안 쉬고 엉덩이에 불이 나든 말든 달린다. 비가 와서 온몸과 가방이 옴팡 젖어도 그대로 달린다.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 손가락과 얼굴과 발가락 모두 꽁꽁 얼어붙어도 그대로 달린다. 한겨울에 너덧 시간 자전거로 달리면, 몸을 녹이는 데에 두 시간쯤 걸린다. 몸을 녹이느라 이불 뒤집어쓰고 새우처럼 몸을 말아 덜덜 떨면 아주 천천히 몸이 녹고, 피가 따스하게 다시 돈다. 이때에 느낀다. 나는 이렇게 살아서 숨쉬는 사람이로구나.


  서울에서 충주로 돌아갈 적에는 가방이 터지도록 책을 산다. 자전거 짐받이에 책을 십 킬로그램쯤 묶는다. 이러던 어느 날, 짐받이 붙인 안장 조임쇠가 부러진다. 서울을 벗어나 이제 막 용인을 지나는데 안장 조임쇠가 부러지네. 책이 너무 무겁구나. 아슬아슬한 자전거를 천천히 달려, 여느 날보다 한 시간 반쯤 더디 달려 충주에 닿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사람들이 아이들 태우려고 마련하는 수레를 장만하기로 한다. 다른 사람들은 수레를 자전거에 붙여 아이를 태우지만, 나는 서울에서 책방을 돌며 책을 200∼300권씩 장만해서 책을 싣는다. 45킬로그램까지 싣는 수레이건만, 나는 60∼80킬로그램쯤 되는 책을 싣는다.


  이제 수레를 단 자전거를 달려 충주에서 서울로 가자니, 가는 데에 네 시간 오십 분 걸린다. 수레에 책을 가득 채워 충주로 돌아가자면 아홉 시간 걸린다. 자전거가 너무 힘들겠지. 내 몸보다 자전거가 벅차겠지. 이렇게 자전거를 달리니, 바퀴가 이내 닳는다. 체인이 끊어진다. 여러 부속을 모두 갈아끼운다. 내 자전거는 몸통을 뺀 모든 부속을 여러 차례 간다.


  충주 무너미마을은 시골이다. 이정우 님과 읍내마실을 다니다가 장날에 신가게 들러 고무신을 함께 사곤 했다. 이무렵, 고무신을 처음 신으며 아주 좋았다. 비로소 내 발이 내 발답게 숨쉬는구나 하고 느꼈다. 남들은 뒷꿈치 까진다며 고무신을 안 신는다는데, 나는 겨울에도 맨발로 고무신을 꿸 적에 참 즐거웠다. 발가락 꼬물꼬물 숨을 쉬고, 발바닥은 땅바닥을 가까이 느낀다. 맨발 고무신으로 자전거를 달리면, 이 발바닥과 앞꿈치로 발판을 굴러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더 싱그러이 살아난다.


  이오덕 님이 이녁 삶을 언제나 글로 꼬박꼬박 적어서 남기셨듯, 나도 자전거로 이 땅을 달린 이야기를 꼬박꼬박 적어 놓는다. 누가 읽어 주거나 말거나 대수롭지 않다. 자전거를 타고 충주와 서울을 오가는 동안 겪거나 만나거나 느낀 이야기를 그날그날 저녁에 조곤조곤 적바림한다. 자동차들이 얼마나 자전거를 깔보고, 때로는 갑자기 밀어붙이며 괴롭히는지 적는다. 아주 드물게 ‘자전거를 지켜 주려’고 밤에 내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며 다른 자동차를 막아 주는 분을 만나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화이팅!’ 외쳐 주는 분을 만나는데, 이런 분들 이야기도 적는다. 바보스러운 사람들을 많이 겪은 만큼,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이 겪는다. 그래, 그렇지. 이오덕 님 곁에서 ‘이오덕 제자’라고 내세우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바보스럽게 스스로 삶을 못 가꾸는 사람이 있을 테고, 조용히 아름답게 삶을 잘 가꾸는 사람이 있을 터이다. 왜 모든 사람들이 다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러나, 이런 생각에 이를 때마다 슬프다. 왜 모든 사람들이 다 아름답게 살아가지 못하는가?


  자전거로 국도를 주마다 300킬로미터 달리며 느낀다. 어느 국도이든 사람이 걸을 자리가 없다. 사람이 걸을 자리가 없으니 자전거가 달릴 자리가 없다. 국도란, 시골에 난 길이다. 도시 한복판에는 따로 ‘인도’가 있다. 사람들 거니는 자리가 도시에는 있다. 그런데,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사람이 다닐 길’은 송두리째 사라진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할매와 할배가 어디 마실을 다닐라면, 찻길 가장자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움직여야 한다. 시골에서는 자동차가 할매와 할배 들이받아 죽이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시골 할배들은 자전거에 불을 안 붙이고 밤마실을 다니시는데, 시골 국도에서 사람들은 100킬로미터나 120킬로미터까지 마구 달리곤 하니, 그만 밤에 할배 자전거를 치고는 뺑소니로 사라지는 일이 잦다.


  왜 국도 한쪽에 시골사람 걸어다닐 자리를 안 만들까. 왜 국도 한쪽에 시골사람이 걷고 자전거로 다닐 자리를 안 만들까. 관광상품으로 ‘자전거 나들이’ 하는 길을 수백 수천 억 원을 들여 짓지 않아도 된다. 아니, 이런 관광상품을 만들기 앞서, 마을사람이 자동차 걱정을 하지 않고 느긋하게 다닐 자리를 마련해야 옳지 않은가. 제대로 된 거님길을 마련하면 자전거길은 저절로 생긴다.


  응어리진 마음을 풀려고 타는 자전거였는데, 두 달 넉 달 여섯 달, 이렇게 흐르고 흐르는 동안 외려 마음이 더 아프다. 이 나라 행정과 정치와 문화와 산업 모두,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새삼스레 몸으로 배우니, 자꾸자꾸 아프다.


  뼈빠지게 자전거로 달려 한밤에 충주에 닿는다. 아홉 시간을 달린 끝에 다리힘이 거의 풀려 마지막 오르막을 가까스로 달린다. 땀에 젖은 옷을 벗는다. 알몸인 채 방바닥에 드러눕는다. 처음 이곳에 오던 일을 떠올린다. 나는 서울에서 무너미마을로 올 적에 시외버스를 타고 생극이나 무극에서 내린다. 되도록 생극에서 내리는데, 생극에서 내리려 한 까닭은, 생극면에서 신니면 광월리 무너미마을까지 걷는 길이 무척 곱기 때문이다. 무극(금왕읍)에서 내려 걸으면, 자동차가 너무 많아 한갓지지 못하다.


  생극면에서 내려 무너미마을까지 오는 데에 12.4킬로미터이다. 빠른걸음이라면 한 시간 사십 분이면 닿는다. 숲바람 마시고 들내음 맡으며 느긋하게 걸으면 두 시간이나 두 시간 반쯤 걸린다. 걸어서 오느라 땀투성이 되면, 보리밥집에서 일하는 노금옥 아주머님이 “전화 하지, 왜 걸어왔어요. 이 더운 날에(또는 이 추운 날에).” 하고 말씀하신다. “길이 좋아서 걷고 싶어서요.”


  이오덕 님 글을 갈무리하던 네 해를 더듬는다. 자가용 안 몰고 버스를 타고 면소재지에 내려 천천히 걸어서 이오덕 님 무덤으로 찾아온 손님이 다섯손가락으로 꼽을 만큼밖에 없다. 모두들 자가용으로 달려오고, 또 자가용을 몰아 무덤 언저리까지 간다. 이오덕 님이 굳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새소리·바람소리·개구리소리·풀벌레소리 누리면서, 숲노래와 풀노래 듣던 넋을 짚거나 헤아리지 않는다. 꼭 글쓰기연구회 교사들한테뿐 아니라, 다른 분들, 이른바 스스로 ‘이오덕 제자’라는 분들을 볼 때면, 부디 큰길가 보리밥집부터 무덤까지라도 걸어서 오십사 하고 바라지만, 이렇게 걷는 사람이 없다. 이오덕 님이 듣던 꾀꼬리 노래를 듣거나 소쩍새 울음을 들으려 하는 사람이 없다. 감잎 지는 빛깔과 구름 흐르는 빛결 받아안으려는 사람이 없다. 자가용 유리창으로 어떤 소리와 빛을 맞아들일 수 있을까. 자가용에서 어떤 이웃을 사귈 수 있을까. 자가용 달리면서 시골 논흙 밭흙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문득 생각한다. 이오덕 님은 운전면허증을 딴 적 있을까. 아마 면허증을 딴 적이 없지 싶다. 이오덕 님은 자가용을 몬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가만히 보면 처음부터 ‘자가용과 사귀지 않’았다. 그래, 맞구나. 처음부터 자가용하고 사귀지 말아야지. 4346.11.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내가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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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콩 책읽기

 


  들콩은 누가 심거나 뿌리지 않아도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린다. 들콩은 농약이나 비료를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들콩은 들쥐도 먹고 들새도 먹는다. 들콩은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톡톡 끊어서 먹기도 한다. 우리가 먹는 콩은 모두 맨 처음에는 들콩이었겠지. 조그마한 알이 맺혔겠지. 이 콩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차츰 굵은 알로 달라졌을 테고, 이제 사람들은 들콩내음을 잊고는 유전자를 함부로 건드려 ‘유전자 바꾼 콩’을 먹는다.


  콩을 먹으며 콩알이 뿌리내린 흙맛을 함께 누릴 때에 즐거울 텐데. 콩밥을 지으며 콩알이 올린 줄기를 함께 헤아린다면 더없이 기쁠 텐데. 콩나물이나 두부를 먹더라도 콩알이 맺은 조그마한 콩꽃을 떠올리고, 콩꽃이 지며 콩꼬투리에 송알송알 어우러지는 열매를 읽으면, 우리 삶에 고운 풀내음이 살풋 실릴 수 있을 텐데. 4346.11.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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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66. 2013.10.3.

 


  걸상을 젖히고 사다리에 앉는 사름벼리. 어디이든 더 재미있고, 무언가 남다르다 싶은 놀이를 하고 싶은 사름벼리. 굳이 걸상에 앉아야 하지는 않아. 사다리에도 앉고 풀밭에도 앉고 마룻바닥에도 앉으면 되지. 서도 되고 누워도 되고 말이야.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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