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할아버지 문익환 우리시대의 인물이야기 8
김남일 지음, 김병하 그림 / 사계절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 삶읽기 147

 


남북녘 하나되는 길은
―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
 김남일 글
 사계절 펴냄, 2002.10.29.

 


  소설을 쓰는 김남일 님이 쓴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사계절,2002)을 읽습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쓴 위인전입니다. 어린이한테 읽히는 위인전이라면 지난날에는 이순신이라든지 강감찬, 또는 세종대왕이나 이율곡 같은 사람들 이야기였지만, 우리 사회가 차츰 발돋움하면서 문익화 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동화를 쓰던 권정생 님은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살가이 써낸 적 있어요. 언제나 마음속에서 싱그러이 살아서 이야기꽃 베푸는 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었다고 할까요.


  김남일 님이 쓴 문익환 님 이야기는 ‘통일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남녘과 북녘으로 갈린 이 나라 이야기입니다. 남녘에서도 푸대접과 따돌림 때문에 갈기갈기 찢어진 이야기입니다. 참말, 학교나 회사나 군대에서 따돌림이 그치지 않아요. 돈있는 이가 돈없는 이를 괴롭혀요. 힘있거나 이름있는 이가 힘없거나 이름없는 이를 들볶아요.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 님은 언제나 힘도 돈도 이름도 없는 이 자리에 서서 다 함께 어깨동무할 수 있는 나라를 바랐어요. 힘으로도 돈으로도 이름으로도 서로를 누르지 않기를 바랐어요.


.. 익환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어머니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 문재린은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집 안팎의 온갖 일이 고스란히 어머니 몫이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른들을 모시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 종일 혼자서 고된 밭일도 했습니다. 밤이면 식구들이 입을 옷을 짓기 위해서 다시 베틀에 앉아야 했습니다. 그러느라 지금도 어머니의 무릎에는 삼을 쪼갤 때 베인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  (32쪽)


  남녘이 북녘을 손가락질한다면 서로 하나될 수 없습니다. 북녘이 남녘을 해코지하면 서로 하나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남녘은 남녘대로 북녘을 손가락질하거나 해코지합니다. 북녘은 북녘대로 남녘을 손가락질하거나 해코지해요. 이래서야 둘이 하나될 수 있을까요?


  동무 사이를 생각해요. 동무와 동무가 서로를 손가락질한다면 어깨동무를 못해요. 서로 아끼지 않는데 어찌 어깨동무하겠어요. 서로 아끼고 사랑할 때에 어깨동무를 해요. 서로 돕고 보살펴야 어깨동무를 합니다.


  이웃 사이를 헤아려요. 이웃과 이웃이 서로를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푸대접한다면 어찌 되나요. 이웃이라면서 이를 갈거나 눈을 부라리면 어찌 되나요. 이래서야 이웃사촌 될 수 있겠습니까.


  남북녘 하나되는 길은 아주 쉬워요.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해야지요. 서로서로 돌보고 보듬어야지요. 정치 우두머리가 만난대서 통일을 이루지 못해요. 정치 우두머리는 없어도 돼요. 재벌 우두머리 또한 없어도 돼요. 남북녘 이루는 여느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만나면 돼요. 이렇게 하면 남녘과 북녘은 사랑스레 한 나라 한 겨레가 될 수 있어요.


.. 문익환 얼굴은 그만 홍당무처럼 빨개지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잘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무조건 남의 생각이 틀리다고 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다음에야 발전이 있다. 다 안다고 생각하면, 자기가 늘 옳다고 생각하면 도대체 공부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 “얼음이 녹아야 봄이 오는 게 아닙니다. 봄이 와야 얼음이 녹는 것입니다. 통일도 바로 이런 자연의 이치와 다를 게 없습니다.” ..  (79, 185쪽)


  남북녘이 하나되지 못하는 까닭은 아주 쉬워요. 서로서로 아끼지 않기 때문이에요. 서로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런 잘못 저런 허물 따사로이 감싸야지요. 아이들을 떠올려 봐요. 아이들이 무엇 하나 잘못했대서 아이들을 두들겨패겠습니까. 아이들이 접시를 깨뜨렸대서 윽박지르겠습니까. 잘못은 부드럽게 타이르면서 앞으로 잘 하도록 북돋으면 돼요. 깨진 접시는 치우고 새 접시 마련하면 돼요. 싸운다 하더라도 싸운 뒤에 사이좋게 앙금을 풀어야지요.


  언제까지 남녘은 북녘을 손가락질하면서 해코지해야 하나요. 언제까지 북녘은 남녘을 손가락질하면서 해코지해야 하나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정치 우두머리와 끄나풀과 몇몇 기자와 지식인 들이 자꾸 쑤석이면서 서로 손가락질하거나 해코지하도록 부추기는지 몰라요. 여느 사람들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려는 마음인데, 정치 우두머리와 끄나풀과 몇몇 기자와 지식인 들만 남북이 하나되기를 안 바라면서 일을 틀어 버리려 하는지 몰라요.


  참말, 서로 하나되려 한다면 서로를 높여야 합니다. 잘 한다고 북돋우고, 사랑스럽다며 웃음으로 맞이해야지요. 저쪽더러 고개를 숙이고 이쪽으로 오라 하면 누가 오겠어요. 예부터 익은 벼가 고개를 숙여요.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남녘이나 북녘이나 서로 ‘익은 벼’라 한다면, 먼저 맞은편으로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려 해야 옳아요.


.. “내 말은, 내용이 아니라 성서가 옛날 말 그대로 적혀 있다는 말입니다. 너무 어려워요. 우리한테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어떻겠어요?” 사실이었습니다. 성서는 기독교가 처음 우리 나라에 들어올 때 선교사들이 번역한 것에서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나 쓰던 말들이 버젓이 씌어 있었지요. 그런 말들은 대개 한자말이 많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문익환은, 말과 글에는 반드시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묻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말과 글을 바르게 쓰지 않고 일본어와 영어만 즐겨 쓴다면 나중에는 민족 정신도 흐릿해질 게 분명하다고 믿었습니다 ..  (105, 108쪽)


  문익환 님이 걸어온 발걸음은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삶빛이었으리라 생각해요. 높은 자리도 낮은 자리도 아닌 아름다운 자리를 찾으려 하셨지 싶어요. 거룩하거나 훌륭한 자리가 아닌 사랑스러운 자리를 찾으려 했다고 느껴요.


  그래서, 문익환 님은 ‘통일 할아버지’ 이기에 앞서 ‘예쁜 할배’요 ‘사랑 할배’로구나 싶어요. 예쁘게 노래하고 사랑스레 춤추면서 우리 삶을 아름답게 빛내고픈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분이라고 느껴요.


.. 문익환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철거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땀을 줄줄 흘리면서 산꼭대기까지 찾아갔습니다.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수은 중독에 걸린 어린 노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마치 자기 손자가 그런 사고를 당하기라도 한 듯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소값이 폭락하여 성난 농민들이 소를 몰고 시위를 하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소리 높여 싸웠습니다.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 갇힌 사람이 있으면 가족들을 찾아가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  (164쪽)


  소설을 쓰는 김남일 님은 문익환 님 삶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어릴 적 태어난 마을, 어릴 적 이녁을 돌본 어버이, 어릴 적부터 함께 얼크러지며 자란 동생,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만나거나 사귄 동무와 이웃, 기나긴 삶을 단출하게 갈무리해서 이 책 하나로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그런데, 좀 힘알이가 없습니다. 어딘가 고갱이가 안 드러나는구나 싶어요. 아름다운 삶을 아름답게 적바림하려고 애썼구나 싶지만, 문익환 님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살아오며 어떤 꿈을 펼치려 했는지, 차근차근 낱낱이 알뜰살뜰 풀어내지는 못했다고 느껴요. 한 사람 발자국을 좇으며 이런 일 저런 일 있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크고 작은 일들이 서로 어떻게 얽히고 이어져 한 갈래 아름다운 빛이 되었는가까지 밝히지는 못했다고 느껴요.


  1970년에 몸을 불사른 전태일 님 이야기를 듣고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며 삶길을 크게 바꾼 문익환 님 삶을, 노래하는 빛이 서린 성경을 읽고 밤하늘 별로 살아간 벗 윤동주를 그리는 마음으로 시를 쓰던 문익환 님 삶을, 발바닥을 아낄 줄 알 때에 이웃을 아낄 줄 아는구나 하고 감옥에서 깨달은 문익환 님 삶을, 너무 많은 이야기조각 엮으려 하다가, 외려 두루뭉술하게 얼거리가 흐트러졌다고도 느껴요.


  ‘간추려서 살을 조금 붙인 해적이’는 위인전이 되지 못합니다. 위인전도 동화책 한 권과 똑같이 오롯이 엮고 짠 문학책이 되어야 합니다. 4346.12.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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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10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익환 목사님의 <목 메는 강산 가슴에 곱게 수놓으며>를
절실하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숲노래 2013-12-10 23:52   좋아요 0 | URL
네, 문익환 목사님 위인전이나 전기인데,
김남일 님쯤 된다면
제대로 깊고 넓게 다룰 만한데,
책을 읽는 내내 왜 이렇게 아쉬울까 하는 생각
지울 길 없었어요.

틀림없이 뜻있는 책이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