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기다리기

 


  유월 열이튿날에 미국으로 배움길 떠난 옆지기가 팔월 스물이튿날에 돌아오기로 했지만, 여드레쯤 미뤄 팔월 서른날 즈음 돌아오기로 했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왜 아직 안 오느냐고 날마다 한두 차례 묻는다. 어머니가 더 배우고 돌아오느라 늦는다고 말하면서 달래는데 잘 기다려 준다.


  어머니를 많이 보고픈 큰아이는 종이에 어머니 모습을 그려 가위로 오린다. 한참 어머니 종이인형 들고 다니면서 놀다가 저녁나절 마룻바닥에 흘린다. 큰아이 그림과 내 그림을 문 한쪽에 붙이다가 어머니 그림인형을 보고는 주워서 큰아이 그림에 살짝 끼운다.


  얘들아, 이제 이레만 더 기다리자. 그러면 어머니 즐겁게 만날 수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신나게 하루하루 놀면서 무럭무럭 자라면, 어머니도 마음과 몸이 한껏 자란 채 시골집으로 돌아온단다. 4346.8.2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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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기차에서 (2013.8.17.)

 


  기차에서 그림놀이를 한다. 서울에서 순천까지 오는 네 시간 남짓 한 기찻길에서 아이들이 따분해 하지 않도록 종이 한 장을 주고 크레파스를 꺼낸다. 큰아이는 조금 그리다가 그치고, 작은아이도 조금 끄적거리다가 만다. 작은아이가 끄적거리다가 만 종이를 내가 받아서 이모저모 덧바르면서 새 그림을 그린다. 작은아이가 끄적인 자리는 추임새라 여기면서 우리 아이들 마음속에 깃들 고운 ‘결’을 하나씩 헤아린다. 물결, 바람결, 숨결, 꿈결, 이렇게 네 가지를 바라면서 해와 달과 제비와 사마귀를 차근차근 그려 넣어 마무리짓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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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한 마리

 


  아이들이 자다가도 모기 소리를 깨닫고는 잠에서 벌떡 깨어 아버지를 찾곤 한다. 동생이 모기 소리를 듣는 일은 드물고, 언제나 누나가 모기 소리를 듣고는 아버지를 부른다. 나는 아이들더러 “괜찮아. 들어가서 누워. 아버지가 모기 잡을 테니까.” 하고 말한다. 아이들이 다시 잠자리에 누우면, 나는 마루 쪽 불을 켜고는 가만히 서며 귀를 기울인다. 이놈 모기 어디에서 나타나 우리 아이들 잠을 못 자게 하느냐. 몇 분쯤 꼼짝 않고 서서 기다리면 모기는 다시 잉 소리 가늘게 내면서 찾아든다. 이즈음 두 팔을 살며시 뻗는다. 내 팔에 모기가 앉도록 하려는 생각이다. 그러면 참말 모기는 내 팔 가운데 하나를 골라 내려앉고, 나는 몇 초를 더 기다린 뒤 철썩 소리가 나도록 때려잡는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내는 철썩 소리를 듣고는 느긋하게 잠이 든다. 때로는 모기가 큰아이나 작은아이 몸에 내려앉기도 하는데, 이때에는 가볍게 찰싹 때려서 잡는다. 모기를 잡고 나서는 “자, 모기 잡았어. 이제 마음 더 쓰지 말고 잘 자렴.” 하고 말한다. 아이들은 홀가분한 얼굴이 되어 색색 숨소리를 내며 깊이 잠든다. 4346.8.2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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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먹는 풀

 


  올여름 고흥 시골마을에는 비가 거의 안 온다. 남녘 다른 시골에도, 또 도시에도 비가 거의 안 온다. 아무래도 서울·경기·강원을 잇는 ‘현대문명 개발산업’ 띠가 어마어마해서 비구름이 이 둘레를 벗어나지 못하며 이곳에만 퍼부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골에서는 논에 물을 대고 밭에 물을 주느라 바쁘다. 그런데, 논도 밭도 아닌 땅뙈기에서 들풀은 씩씩하게 잘 자란다. 물을 따로 받아서 먹지 못하는 들풀은 한여름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쑥쑥 자란다.


  쑥도 이름 그대로 쑥쑥 자라고, 고들빼기도 부추도 씩씩하게 잘 큰다. 이런 들풀을 하나둘 뜯거나 꺾어서 먹으면 풀내음이 짙게 스며든다.


  저녁에 아이들과 먹을 밥을 차리면서 마당 둘레 풀을 뜯다가 생각한다. 우리가 먹을 밥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풀을 먹을 때에 몸이 살아날까. 우리는 어떤 숨결을 받아들이는 목숨인가. 우리를 살찌우는 밥은 어떠한 삶터 어떠한 빛을 머금을까.


  마을에서 지내는 들고양이가 우리 집을 저희 보금자리처럼 여기며, 한여름에는 평상 밑으로 들어가서 자고, 봄가을에는 마당 아무 데에서나 벌렁 드러누워 자곤 한다. 들고양이, 들풀, 들사람, 들밥, 들일, 들꽃, …… ‘들’ 이름 붙는 이웃들을 곰곰이 헤아린다. 4346.8.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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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19 10:51   좋아요 0 | URL
들고양이가 편안하니 흙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참 좋습니다.
아름다운 집에서 식구들도 풀들도 고양이도 다 평화로와요~

숲노래 2013-08-19 15:25   좋아요 0 | URL
다른 집에는 거의 이렇게 드러누워서 쉬지 못하는 듯하더라고요..
 

생일선물

 


  한 해에 한 번 맞이하는 난날(생일)을 여섯째 맞이하는 큰아이는 아직 ‘생일’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열 차례 넘게 이런 말 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큰아이 스스로 ‘태어나다’와 ‘생일’을 어렴풋하게 느끼는 듯하다. 그러더니, “할머니가 벼리 생일이라고 치마 사 주신다고 했어요. 치마 사 주셔요.” 하고 말한다.


  네 할머니 두 분은 너한테 고운 치마 여러 벌 사 주셨지. 맛난 밥도 차려 주셨지. 너른 사랑도 베풀어 주시지. 네 아버지는 네 난날에 맞추어 그림 하나를 그려서 준다. 하늘과 흙과 별과 나무와 꽃과 새와 풀벌레를 모두 가슴에 안는 어여쁜 꽃순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빈다. 4346.8.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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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19 11:10   좋아요 0 | URL
사름벼리가 아버지께 참 고운 그림선물을 받았네요~!
아버지가 마음빛으로 그려준 생일선물을 받고 즐거운 사름벼리. ^^

사름벼리야! 아줌마도 생일 축하해~~*^^*

숲노래 2013-08-19 15:26   좋아요 0 | URL
일곱 살이 되면
생일과 선물을
조금 더 잘 알아차리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