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에 접어들다

 


  구월에 접어들어 빨래를 하니, 물내음과 물빛이 사뭇 달라졌다고 살갗으로 느낀다. 머잖아 따순물 아니고는 손빨래를 못 하겠다고 느낀다. 바람이 살풋 선들선들 불면서, 빨래할 물도 이렇게 찬 기운 그득 서리는구나. 이제 밤빨래나 새벽빨래를 할 적에 손을 호호 불어야겠네. 그렇다면, 여느 빨래는 해가 높이 솟은 한낮에 해야 할까. 가을바람에 가을노래 고즈넉히 실린다. 4346.9.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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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9-05 07:02   좋아요 0 | URL
치마순이, 치마돌이에 이어 함께살기님은 빨래순이라고 하셨네요? ^^
손빨래 덕분에 가을을 손으로도 느끼셨어요.

숲노래 2013-09-05 07:22   좋아요 0 | URL
네, 저는 빨래순이입니다 ^^;;;
언젠가.. '빨래하는 삶'을 "빨래순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을 생각이에요~~

가을이에요, 가을. 참 가을입니다...
 

[시골살이 일기 23] 놀이터와 일터
― 시골에서 농약 쓰는 까닭

 


  아이들이 흙땅에서 실컷 뛰고 구르면서 놉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땀 송송 흘리면서 흙땅을 박차고 놉니다. 아이들은 흙땅에서 뒹굴기도 하고, 흙땅을 손으로 만지기도 하며, 넘어지기도 합니다. 손이며 발이며 얼굴이며 온통 흙투성이 되어 개구지게 놉니다.


  아이들은 고샅에서든 밭고랑에서든 들에서든 숲에서든 뛰어놀고 싶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아이들은 온몸을 거침없이 움직이면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 뛰어놀 흙땅에 농약을 뿌렸다면? 아이들을 놀리지 못합니다. 농약을 뿌린 흙땅 자리에는 어른도 쪼그려앉아서 쉬지 못합니다. 농약냄새 코를 찌르면서 어지러울 뿐 아니라, 농약 기운이 몸에 스며들 수 있으니, 아이들이 이런 데에서 놀지 못하는데다가, 어른들도 이런 곳에서 쉬지 못해요.


  오늘날 시골에서는 젊은 일손 모자라서 농약을 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젊은 일손 모자라는 탓만 할 수 없어요. 아이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지 않으니 농약에 손을 뻗고, 논밭에서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일하거나 놀지 않으니 자꾸자꾸 농약에 기댑니다.

  시골에 집이 있어도 아이들이 흙땅에서 안 놀아요. 어린이집에 가거나 학교에 갑니다. 아이들은 면내나 읍내에서 놀려 하지, 마을이나 들판이나 바다나 숲에서 놀려 하지 않아요. 오늘날 아이들은 시골내기라 하더라도 시골하고 엇갈리거나 등집니다. 어른들 일하는 곳 곁에서 놀지 않는 아이들 되다 보니, 어른들은 시나브로 흙땅에 농약을 칩니다. 아이들이 밭둑이나 논둑 풀베기를 거들지 않다 보니, 어른들은 풀베기 할 자리에 농약을 뿌립니다.


  더 생각하면, 오늘날 시골에서 시골 어른들은 시골 아이들을 시골에 남겨 흙을 일구며 살도록 가르칠 뜻이 없습니다. 하루 빨리 시골 벗어나 도시에서 돈 잘 벌고 몸 안 쓰는 일거리 찾기를 바랍니다. 시골 어른들 스스로 아이들한테 시골일 물려주지 않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린이도 푸름이도 젊은이도 시골일하고 등지거나 모르쇠로 자라다가 도시로 떠나요. 이러는 동안 시골 어른들은 모든 흙일을 농약과 화학비료에 기대어 합니다.


  시골에 젊은 일손 다시 늘어나도록 하자면, 농약과 화학비료에 기대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껴요. 도시로 떠난 아이들이 자라 어른 되어 이녁 아이를 낳으면, 철 따라 손자 손녀 데리고 올 텐데, 손자 손녀 누구도 농약범벅이 된 흙땅에서 못 놀아요. 농약으로 더러워진 도랑물을 만질 수 없어요.


  아이들이 흙땅에서 놀다가 저희 밭둑이나 논둑에서 오줌을 눌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흙땅에서 놀다가 힘이 들면 밭둑이나 논둑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논밭 한쪽에 시원스러운 나무그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이 일하며 쉬기에 즐거운 들과 숲과 마당이라면, 아이들이 놀며 쉬기에 즐거운 들과 숲과 마당입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 만한 데라면, 바로 어른들이 즐겁게 일할 만한 아름다운 삶자리입니다. 4346.9.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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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하얀 빛을 (2013.8.31.)

 


  선물상자를 뜯는다. 겉은 시끌벅적한 그림이 있지만 속은 누런 빛 두꺼운 종이로 되었으니, 그림놀이 하기에 딱 좋다. 큰아이한테 한 장 건네고, 나도 한 장 맡아서 그림을 그린다. 큰아이가 문득 말한다. “어, 이 종이에는 하얀 빛 잘 보여! 노란 빛도 잘 보여!” 그래, 흰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흰 크레파스는 거의 안 보이지. 누런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흰 크레파스 아주 잘 보인단다. 과자상자이든 무슨 상자이든, 알맞게 잘 잘라서 쓰면, 이때에는 그림에 모든 빛을 새롭게 느끼도록 그릴 수 있어.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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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9-02 08:11   좋아요 0 | URL
골판지 울퉁불퉁한 면이 그림에 오히려 색다른 효과를 주어 좋습니다.

숲노래 2013-09-03 08:02   좋아요 0 | URL
바다를 그릴 적에는
이런 골판종이가
참 좋아요~
 

언제나처럼

 


  일산집에 머물며 언제나처럼 조용히 빨래를 걷어 가만히 옷가지를 갠다. 장모님은 장모님대로 이 살림 저 일 도맡느라 바쁘시니, 해가 떨어지기 앞서 잘 마른 옷가지들 걷어 차곡차곡 갠다. 노는 아이들 불러 함께 개지 않는다. 너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놀아라. 네 아버지는 일산집 빨래를 갠다. 그리고, 너희들 땀에 젖은 옷가지는 그때그때 빨아서 널어 놓는다. 4346.9.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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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어디 있니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어머니한테 “아빠는 어디 있니?” 하고 묻는 사람을 아직 못 보았다. 모두들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만 하는 듯 여기니, 어머니가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모습은 대수롭지 않게 바라본다. 그러면, 아버지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때에는?


  어머니가 아버지 없이 혼자 아이들을 도맡아 돌보며 살아갈 수 있고, 아버지가 어머니 없이 홀로 아이들을 도맡아 보살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란히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


  누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든, 무언가 궁금하거나 말을 걸고 싶을 적에는 “아이들아, 참 예쁘구나.” 하고 말하면 된다. 엄마는 어디 있을까? 아이들 마음밭에 있지. 아빠는 어디 있을까? 아이들 가슴속에 있다. 4346.8.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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