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내버스 꾀꼬리

 


  시골집 떠나 마실을 나오는 길, 큰아이가 군내버스에서 조잘조잘 노래를 부른다. 스스로 가락과 노랫말 지어 부르다가는, 즐겨부르는 몇 가지 노래를 이어서 부른다. 군내버스는 오늘 따라 조용하다. 할매들도 할배들도 그저 조용히 타고 읍내로 간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마음 되어 이렇게 노래를 한껏 부르면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이 아이들한테 어떤 빛을 물려주고, 이 아이들은 어버이한테 어떤 꿈을 이어주는 하루일까. 4346.8.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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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기사에 붙은 '전국 온도표')

 

..

 

[당신은 어른입니까 30] 날씨읽기
― 한국은 왜 아열대 날씨가 되는가

 


  한국에서 한여름에 40도를 넘어서는 데가 나타납니다. 한국이 온대 날씨 아닌 아열대 날씨로 바뀐다는 이야기는 퍽 예전부터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전부터 이런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사람들 살림살이는 달라지거나 제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았어요. 온대 아닌 아열대가 된다 하더라도 자동차는 늘어나기만 합니다. 고속도로와 고속국도는 끝없이 자꾸 닦습니다. 늘어나는 자동차는 배기가스를 더 많이 내뿜습니다. 고속도로와 고속국도는 시골마을 들과 숲과 멧골을 깎아서 닦습니다. 요즈음 고속도로와 고속국도는 아예 1자로 펴는 길인 터라, 높은 멧자락과 멧자락 사이에 까마득하게 다리를 놓고 굴을 파요. 요즈음 고속도로 한 곳은 지난날 고속도로 열 곳이 들과 숲과 멧골을 파헤치거나 무너뜨리는 크기와 엇비슷하달 만큼 끔찍한 막삽질입니다.


  들과 숲과 멧골이 무너지면, 사람들이 마실 숨이 나빠집니다. 푸른 숨결이 차츰 사라지지요. 자동차는 자꾸 늘고, 공장 또한 자꾸 늡니다. 아파트도 자꾸 늘며, 관광단지와 쇼핑센터와 백화점과 대형할인매장 또한 자꾸 늘어나요. 전기를 많이 쓰는 시설은 끊임없이 아주 빠르게 늘어납니다. 이에 발맞추어 발전소도 한꺼번에 엄청나게 새로 짓습니다. 발전소는 ‘도시 중심지’에서 가까우면 위험·위해시설이 된다 하기에 시골에다 짓고, 우람한 송전탑을 길게 이어 도시로 전기를 보냅니다.


  한국이 온대 날씨에서 아열대 날씨로 바뀌는 까닭을 모를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시골을 파먹으면서 도시가 커지고, 자동차 엄청나게 늘어나며, 전기 먹는 시설을 비롯해 아파트와 공장과 발전소를 어마어마하게 늘리니, 이렇게 달라지거나 뒤틀리는 삶터에 맞추어 날씨 또한 달라지거나 뒤틀립니다.


  날씨가 심술을 부리지 않습니다. 날씨는 사람들 삶을 고스란히 따릅니다. 부채 하나로 여름을 나던 지난날 사람들은 온대 날씨를 누렸어요. 아무리 한여름 뙤약볕이라 하더라도 시원스레 바람이 불었고, 나무그늘에서 땀을 식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한여름뿐 아니라 첫봄과 늦봄에도 시원스러운 바람을 쐬기 어려워요. 자동차 배기가스와 공장 매연이 스모그를 이루어 도시를 섬처럼 가둡니다. 스모그 무더기에 장마전선이 깃들면 빠져나오지 못하며 비를 왕창 퍼붓습니다. 옛날처럼 장마전선이 남녘과 북녘을 천천히 오르내리면서 골고루 비를 뿌리지 않아요. 막삽질로 들과 숲과 멧골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서울·경기·강원에 비를 퍼붓고 또 퍼붓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런 날씨를 어느 만큼 살필까요. 이런 날씨를 얼마나 헤아릴까요. 이런 날씨를 어떻게 느낄까요.


  너무 쉽게 ‘지구온난화’를 들먹이지는 않나요? ‘내가 도시 물질문명 누리는 탓’은 하지 않으면서 ‘인류가 모두 환경문제에 눈길을 안 두기 때문’이라고 둘러대지는 않나요? 자가용을 몰고, 에어컨을 돌리며, 온갖 공산품을 끝없이 사다가 쓰고 쓰레기로 버리는 나날을 되풀이하면서, 날씨가 왜 뒤틀리거나 흔들리는지, 밑뿌리를 캘 생각은 없지 않나요?


  ‘스스로 삶을 바꾸지 않는 사람 하나’가 모여 열이 되고 백이 되며,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이 됩니다. 그나마 한국 날씨가 온대에서 열대로 안 가고 아열대로 가는 까닭은, 이럭저럭 도시에서 ‘스스로 삶을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 하나’ 있고, 이런 사람이 열 백 천쯤 있기 때문입니다. 자가용을 안 모는 사람이 아주 드물지만 어김없이 있고, 에어컨을 안 쓰는 사람이 매우 드물지만 꼭 있으며, 공산품을 함부로 안 쓰는 한편 쓰레기를 거의 안 내놓는 예쁜 삶 일구는 사람이 참 드물지만 사랑스레 있습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에는, 지구별 모든 목숨이 날씨를 읽었습니다. 2010년대 오늘날에는, 지구별 모든 목숨 가운데 사람만 날씨를 못 읽습니다. 옛날에는 개미도 나비도 벌도 제비도 사람도 날씨를 읽고 느끼며 알았어요. 오늘날에는 개미나 나비나 벌이나 제비는 날씨를 읽고 느끼며 알지만, 사람만큼은 날씨를 안 읽고 안 느끼며 안 알려 해요.


  날씨방송을 본대서 날씨를 알 수 없어요. 하늘을 보아야지요. 바람을 마셔야지요. 흙을 만지고, 풀과 나무를 어루만지며, 해와 달과 별을 두루 살필 때에 비로소 날씨를 알아요. 하늘과 바람과 흙과 해를 돌아보지 않으면 날씨를 느낄 수 없어요. 4346.8.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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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머리 두 갈래로 묶기

 


  큰아이와 함께 살아온 지 여섯 해째 되고 보니, 큰아이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묶는 일을 수월하게 한다. 내 머리카락을 안 자르고 두면서 고무줄로 휙 묶고는 머리띠로 조인 채 지내니, 예쁘게 묶는 손재주가 없었으나, 옆지기가 집에 없이 여러 달 지내면서 하루이틀 손재주가 늘어난다. 긴 고무줄로 가시내 머리카락을 어떻게 묶는가 하는 대목을 천천히 익힌다.


  둘레 사람들은 으레 ‘어머니가 해 주어야지’ 하고 말한다. 아버지가 딸아이 머리카락 묶는 일이 어울리지 않거나 걸맞지 않다는 듯 여긴다. 그러면, 등허리까지 머리카락이 내려오는 아버지인 내가 내 머리카락을 혼자 스스로 묶는 모습은 뭘까? 내 머리카락 길이나 좀 보고서 이런 얘기를 해도 해야 할 텐데.


  큰아이가 일곱 살이 되거나 여덟 살쯤 되면, 고무줄을 안 쓰고도 머리카락만으로 땋을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큰아이는 아홉 살 즈음 되면 혼자서 머리카락을 땋으며 놀 수 있을 테고, 곁에서 아버지가 먼저 솜씨있게 해낸 다음 찬찬히 가르쳐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무더운 여름날 아침에 큰아이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묶으면서 생각한다. 그동안 큰아이랑 작은아이가 머리끈 가지고 놀다가 많이 망가뜨리고 끊어먹고 늘어뜨리고 잃어버리고 했는데, 이제 날마다 머리카락을 묶어야 하는 만큼, 빳빳하고 깨끗하며 예쁜 머리끈 둘 새로 장만해야겠다. 다음에 읍내에 가면 머리끈부터 사자. 4346.8.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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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8-10 09:26   좋아요 0 | URL
산들보라가 이것도 누나처럼 해달라고 하면 어쩌지요? ^^
더울땐 짧은 머리보다 차라리 좀 길러서 묶는게 제일 실용적이고 시원하지요.

숲노래 2013-08-10 09:32   좋아요 0 | URL
산들보라는 아직 머리카락이 아주 짧아서
빗질만 해 주어요.

산들보라는
아마... 누나 치마 몽땅 물려받을 테니,
치마도 입으면서 놀고
머리도 예쁘게 땋겠지요~~ ^^
 

자전거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군내버스도 타고 걸어서 다니기도 하지만, 자전거를 씩씩하고 즐겁게 타면서 살아간다. 두 아이는 아직 많이 어려 스스로 자전거를 몰지 못하고, 샛자전거에 타는 큰아이도 아직 발판을 굴러 아버지를 거들지 못한다. 오직 내 두 다리에 기대어 큰자전거 하나와 샛자전거 하나에 자전거수레, 이렇게 세 가지를 끌고 다닌다.


  길게 늘어서서 달리는 자전거는 큰길도 달리지만, 고샅도 마을길도 달린다. 이 자전거로 가파른 비탈이나 높다란 오르막도 오르곤 한다. 골짜기 찾아가느라 우둘투둘한 멧길을 달리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달리느라 아버지는 늘 땀투성이 된다. 땀이 비오듯이 흐른다. 비오는 날에 자전거를 몰면 빗물에 땀방울 씻길 테지만, 아이들은 비를 쫄딱 맞아야 하니까, 아직 비오는 날에 아이들과 자전거를 달리지는 않는다.


  자전거로 이 마을 저 마을 달리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우뚝 멈춘다. 하늘을 바라보고 들을 둘러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다른 빛을 느낀다. 맑은 바람을 마시고, 시원한 그늘을 누린다. 자전거와 함께 살아가며 하루하루 새로운 빛과 결을 맞아들인다. 4346.8.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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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21] 멸구만 잡는 친환경농약
― 사라지는 제비·개구리·매미·잠자리

 


  다음주에 또 항공방제를 한답니다. 올 2013년 들어 벌써 세 차례입니다. 다음주에 항공방제를 하면, 그무렵에 맞추어 고흥 시골집을 비울 생각입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온 마을에 농약내음 그득 퍼지는 꼴 보기 싫을 뿐 아니라, 냄새가 고약해서 창문을 못 여니, 이 무더운 한여름에 푹푹 찌면서 애먹을 테니, 차라리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여러 날 보내야겠다 싶기도 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전남 고흥 시골에서만 항공방제를 하지 않고, 모든 시골에서 골고루 항공방제를 하고 농약을 뿌려대니, 여름 햇볕 내리쬐는 이 아름다운 날에 정작 시골에서 느긋하게 지내지 못합니다.


  농협 관계자와 면사무소에서는 ‘멸구와 나방을 잡는 친환경농약 살포 항공방제’를 한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이 친환경농약 항공방제가 지나간 논에서 개구리 몽땅 죽었고, 개구리 죽으면서 잠자리와 나비도 나란히 죽었으며, 곁들여 매미와 사마귀와 메뚜기와 방아깨비와 귀뚜라미까지 잇달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마을에 해오라기와 멧새 날갯짓 사라질 뿐 아니라, 시골집 처마마다 한둘씩 있는 제비집에 제비들이 깃들지 않아요.


  멸구만 잡는 친환경농약이 있을까요. 나방만 잡는 친환경농약은 사람 몸에 어떻게 스며들까요. 개구리와 나비도 죽는데, 잠자리와 제비도 죽는데, 이런 친환경농약이 사람 몸에는 나쁘지 않다는 말을 어떤 학자와 전문가와 교수와 농협 조합장이나 관계자가 밝힐 수 있을까요.


  올여름에 마을에 제비가 거의 다 사라지고 말았는데, 다음해 봄에 우리 마을에 제비가 돌아올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제비를 볼 수 없는 곳을 시골이라 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비와 노래할 줄 모르고, 제비와 춤출 줄 모르는 사람이 시골사람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4346.8.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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