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하늘고래 (2013.9.8.)

 


  다른 두 식구 잠든 결에 대청마루에 종이 펼치고 크레파스통 연다. 큰아이는 아버지 옆에 엎드려 함께 그림을 그린다. 아버지는 고래를 그리기로 한다. 큰아이는 저랑 어머니 모습을 그린 뒤, 아버지처럼 ‘하늘 나는 고래’를 그린다. 아버지는 촘촘하게 별을 그리고 무지개하늘 바르느라 품이 많이 들고, 큰아이는 어느덧 세 번째 그림까지 그린다. 네 손도 참 빨라졌구나. 아버지 손이 오늘은 너무 더디었나? 하기는. 고래가 바닷물 철썩이면서 첨벙 날아오르기까지 오래 걸리잖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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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24] 풀춤과 풀노래
― 무얼 하면서 놀까

 


  아이들과 살아오며 이 아이들과 무얼 하면서 놀면 즐거울까 하고 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을 가만히 비우고 빙그레 웃으며 아이들을 바라보면, 서로 즐겁게 놀 여러 가지가 어느새 떠올라요. 미리 생각해야 하지 않아요. 따로 찾아 놓아야 하지 않아요. 자전거를 타든, 두 다리로 걷든, 군내버스를 타든, 대청마루에 앉아 빗줄기를 즐기든, 그때그때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놀이가 됩니다. 숲 사이를 걸으면 숲놀이가 됩니다. 바닷물을 밟으며 뛰면 바다놀이가 됩니다. 들 한복판에 자전거를 세우고 걸으면 들놀이가 됩니다. 마당에서 꼬리잡기를 하면 마당놀이가 됩니다. 밥을 먹다가 아그작아그작 소리를 내며 까르르 웃으면 밥놀이가 됩니다.


  하나하나 돌아보면 모든 삶은 일이면서 놀이로구나 싶습니다. 모든 움직임은 일이요 놀이입니다. 아이를 안아도 일이 되면서 놀이가 됩니다. 아이 머리를 빗으로 빗겨 고무줄로 묶을 적에도 일이 되지만 놀이가 되어요. 아이 앞에 공책을 펼치고 한글을 또박또박 적어 보여준 뒤 따라서 적으라 할 적에도 일이면서 놀이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차리는 밥이란 일이자 놀이입니다. 설거지 또한 일이자 놀이입니다. 빨래도 걸레질도 모두모두 일이 되고 놀이가 돼요.


  풀밭 앞에 선 큰아이가 문득 빙그르르 돕니다. 제자리돌기를 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풀밭에서 추는 춤이나 풀밭 언저리에서 부르는 노래를 아이한테 가르친 적 없습니다. 큰아이는 제 마음결에서 샘솟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입을 달싹입니다. 스스럼없이 춤이 나오고, 거리낌없이 노래가 흘러요.


  무얼 하면서 놀아야 할는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온 삶이 온통 놀이가 되는걸요. 무얼 하면서 일해야 할는지 근심하지 않습니다. 온 하루가 오롯이 일이 되어요.


  아이들은 언제나 놀면서 어버이 일을 지켜봅니다. 어른들은 늘 일하면서 아이들 놀이를 바라봅니다. 서로 마주하면서 서로 보여줍니다. 서로 이야기하고 서로 어깨동무합니다. 4346.9.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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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 똥가리기

 


  작은아이가 똥을 잘 가린다. 아주 고맙다. 옆지기가 미국으로 배움길 떠나던 지난 유월 첫머리부터 똥을 가리다가는, 옆지기가 집에 없는 동안 똥을 다시 안 가리더니, 옆지기가 집으로 돌아온 구월부터 다시 똥을 잘 가린다. 요놈 보아라. 쳇.


  똥오줌을 씩씩하게 가릴 수 있도록 큰 작은아이는 똥을 누든 오줌을 누든 어머니랑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 나 응가!” “그래, 잘 눠 봐.” “응가 안 나와.” “그러면 쉬만 했니?” “응, 쉬.” 큰아이는 첫돌 지나고 얼마 안 지나, 아마 열넉 달쯤 될 무렵부터 스스로 쉬를 가렸고, 똥도 비슷한 때에 가렸다. 작은아이는 세 살에 똥오줌을 가리니 퍽 오래 걸렸다 할 만한데, 그동안 누나가 잘 돌봐 주었으니 늦게 가렸구나 싶다.


  그런데, 옆지기는 큰아이가 오줌이나 똥을 눌 적마다 어머니랑 아버지를 부르던 일을 까맣게 잊은 듯하다. 작은아이더러 왜 자꾸 어머니랑 아버지를 부르느냐고, 그냥 네가 혼자 누면 된다고 말한다. 여보쇼, 아주머니, 우리 큰아이하고 똑같잖아요. 이렇게 몇 해를 오줌 누느니 똥 누느니 알려주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들이 혼자서 조용히 오줌을 누고 똥을 누지요. 4346.9.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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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재웠수

 


  언제였는 지 잘 안 떠오르는데, 〈아이는 재웠수〉였나, 이 비슷한 이름으로 된 영화였는지 무언가 있었다. 참 재미있는 말이로구나 싶어, 동무들하고 낄낄거리며 이 말마디를 흉내내곤 했는데, 이 말마디가 그 뒤로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았다.


  왜 남았을까. 왜 이 말마디가 내 마음속에 남았을까. 깊은 밤에 두 아이를 재우면서 새삼스레 생각한다. 자장자장 고운 노래 부르면서 생각한다. 그래, “아이는 재웠수?”로다. 여보시오, 아버지가 아이를 재웠수, 어머니가 아이를 재웠수? 할머니가 아이를 재웠수, 할아버지가 아이를 재웠수? 누가 집에서 아이들을 재웠수? 누가 하루 내내 아이들과 놀았수? 누가 아이들을 먹였수? 누가 아이들을 가르쳤수? 누가 아이들과 나들이를 다녔수?


  아이는 재웠수? 빨래는 했수? 청소는 했수? 장은 봐 왔수? 밭에 풀은 뽑았수? 겨울에 먹을 무는 심었수? 했수, 안 했수?


  누가 누구한테 하는 말인가. 누가 누구한테 할 말인가. 나 스스로 나한테 “했수, 안 했수?” 하고 물으면서 두 아이 이마를 살살 쓰다듬는다. 4346.9.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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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안는 아이들

 


  마당에 놓은 평상에 맨발로 올라선 두 아이가 논다. 큰아이가 우유상자를 걸상으로 삼아 평상에 올려놓고는 척 앉는다. 그러더니 다리를 못 쓰는 사람 흉내를 내면서 “보라야, 누나가 다리가 아파서 함께 못 놀아. 미안해.” 하면서 “자, 안아 줄게.” 하고 부른다. 다리가 아픈 사람은 어디에서 보았을까? 마을 할머니들 지팡이 짚고 걷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떠올렸을까. 마당을 지팡이 짚으며 걷는 시늉까지 한다. 우리 아이들이지만, 참 재미있네, 하고 여겨 곁에서 조용히 지켜본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곁에서 지켜보거나 말거나 ‘다리 아파 못 움직이니 서로 안아 주기 놀이’를 한다. 큰아이가 일곱 살쯤 되면 동생을 업을 수 있을까. 그때에는 동생도 부쩍 자라 업기 힘들까. 그러면, 큰아이가 여덟 살이 되면 동생을 업으려나. 그때에도 동생은 쑥쑥 커서 못 업으려나. 그러나, 두 아이가 한 살을 더 먹건 두 살을 더 먹건, 이렇게 서로 살가이 안아 주면서 하는 놀이는 실컷 하리라. 4346.9.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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