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서 자라는 아이들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를 다니며 자라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란다. 아이들은 ‘일하는 어른들’ 곁에서 놀면서 자란다. 아이들은 교과서를 배우면서 자라지 않는다. 아이들은 ‘일하는 어른들’ 곁에서 ‘일하는 매무새’를 지켜보고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자란다. 아이들은 동무들과 함께 집단생활을 하며 자라지 않는다. 아이들은 ‘일하는 어른들’ 곁에서 뛰놀면서 몸이 단단히 여물고 마음이 싱그럽게 맺힌다.


  사랑스러움을 받아먹고 자란 아이들이 ‘집단생활·공동생활’을 할 적에 사랑스럽다. 사랑스러움은 받아먹지 못한 채 어릴 적부터 ‘집단생활·공동생활’만 하던 아이들이 ‘따돌림·괴롭힘’을 만들어 낸다. 왜냐하면, 혼자서 꿋꿋하게 살든 여럿이 모여서 살든, 사랑스럽게 삶을 일구어야 사랑이 샘솟기 때문이다. 사랑은 없이 지식과 이론을 학습하는 시설이나 학교에서는 사랑은 못 배운다. 사랑을 못 배우니, 어린 아이나 푸름이인데에도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짓을 벌인다. 왜냐하면, 이 어린 아이나 푸름이는 ‘집단생활·공동생활’에서 사랑이 아닌 지식과 이론만 배웠을 뿐이니까. 동무를 아끼는 사랑을 배우지 못했는데 어찌 동무를 아끼겠는가. 이웃을 보살필 줄 아는 따순 사랑을 배운 적 없는데 어떻게 이웃을 보살피겠는가.


  학교에 다녀야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지 않다.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먹고 씩씩하게 자라야 비로소 사랑스럽게 ‘사회생활’을 한다. 어버이한테서 꿈을 물려받고 아름답게 자라야 비로소 아름답게 ‘사회’에 빛이 될 이야기를 흩뿌릴 수 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놀면서 자란다. 그러니까, 어버이는 아이들이 실컷 뛰놀고 마음껏 뒹굴 수 있게끔 보금자리를 돌보고 마을살림 일굴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노는 자리가 바로 ‘어른들 일하는’ 자리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뒹굴며 꿈과 사랑을 받아먹거나 물려받는 곳이 바로 ‘다 함께 살아갈’ 보금자리요 마을이며 숲이다. 4346.10.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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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생각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무얼 하며 놀면 재미날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보며 일찌감치 일어나서는 오늘 아침에 아이들한테 무얼 차려서 먹이면 맛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봄에도 가을에도 이마와 등허리에 땀이 흐르도록 뛰면서 논다. 나는 봄에도 가을에도 새벽바람으로 밥을 끓이고 국을 끓이며 반찬을 마련한다. 서로 다른 생각이지만 서로 같은 집에서 살아가고, 서로 다른 움직임이지만 서로 같은 즐거움을 그린다. 4346.10.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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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육아

 


  첫째 아이가 태어나던 날부터 아이돌보기를 했으니 여섯 해째 이러한 삶을 잇는데, 첫째 아이를 보듬으며 기저귀를 빨고 밥을 하며 집안을 쓸고닦고 치우는 온갖 일을 도맡을 적에 마음속으로 한 가지 뜻을 품었다. 고 조고마한 갓난쟁이를 품에 안고는 “얘야, 네가 커서 네 어머니나 아버지 나이쯤 되어, 또는 더 일찍, 또는 더 늦게, 아무튼 네 사랑을 만나 네 아이를 낳으면, 네 외할머니가 네게 했듯이 나는 네 외할아버지로서 네 아이들 살뜰히 보듬는 사람이 된단다.” 하고 이야기했다. ‘기저귀 빨래하는 아버지’에서 ‘기저귀 빨래하는 할아버지’로 거듭나고 싶다는 꿈이라고 할까.


  아기를 갓 낳은 어머니는 집일을 할 수 없다. 몸을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아기를 낳은 몸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세이레를 온통 드러눕기만 하면서 몸풀이를 꾸준히 해야 한다. 세이레가 지나도 아기 어머니한테는 함부로 일을 시키지 않는다. 가볍게 몸을 움직일 만한 가벼운 일만 맡긴다. 이동안 모든 집일과 갓난쟁이 뒤치다꺼리는 아버지가 도맡는다. 먼먼 옛날부터 시골마을 시골집 아배는 이렇게 아이를 아끼며 살았다. 이와 달리 임금이나 사대부나 권력자나 돈있는 양반네 아버지는 아이를 보듬거나 아끼지 않았다. 일꾼을 사거나 심부름꾼을 썼지.


  우리 겨레에는 오랜 옛날부터 이어온 아름다운 ‘아이돌보기’가 있다고 느낀다. 아기가 태어나기 앞서 아버지는 집 곁에 움막을 한 채 짓는다. 창문 하나 없는 움막이다. 빛이 한 줄기도 안 들어오는 움막이다. 거적으로 드나드는데, 왜 그러하느냐 하면, 갓 태어나는 아기는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눈을 다칠 수 있기 때문이요, 아기 못지않게 어머니도 ‘힘이 많이 빠지고 기운이 다해’ 눈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이레를 움막에서 보내면서 차츰 눈이며 몸을 추슬러 기운을 되찾는다. 이동안 움막에서 갓난쟁이 젖을 물리고 토닥토닥 보드랍게 노래를 부르며 달랜다. 어머니 몸속에서 바깥누리로 나온 아기한테 바깥누리를 천천히 받아들이도록 하는 셈이다. 아버지는 아기 똥오줌 기저귀를 빨고 밥과 미역국을 올린다. 아버지는 아기 낳은 어머니 핏기저귀도 빨래한다. 이렇게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한솥밥지기’ 마음을 더 깊게 읽고 한결 따스히 맞아들인다.


  우리 식구들 도시에서만 지냈다면 아기를 낳을 움막을 지을 수도 없고, 이런 방 한 칸 마련하기도 벅차다. 이제 우리 식구들 시골에서 지내기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아기를 낳을 때가 되면 우리 땅을 마련해서 그 터에 움막을 따로 지을 수 있겠지. 우리 아이들이 숲바람을 쐬고 들내음 맡으면서 기쁘게 아기를 낳고, 다 같이 푸른 숨결 따사로이 돌볼 수 있겠지. 나는 ‘아버지 육아’에서 ‘할아버지 육아’로 거듭날 즐거운 날을 기다린다. ‘할아버지 육아’를 더 씩씩하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게 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아버지 육아’를 예쁘며 착하게 하자고 다짐한다. 4346.10.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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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28] 학교읽기
― 가르치고 배우는 뜻

 


  학교에서는 무언가 끊임없이 가르칩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무언가 꾸준히 배웁니다. 이리하여 아이들 어버이는 아이들을 학교에 넣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날마다 이런 이야기 저런 말을 듣습니다.


  슬기로운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더라도 슬기롭고, 슬기롭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더라도 슬기롭겠지요. 슬기로운 아이들은 학교를 안 다니더라도 슬기롭고, 슬기롭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를 안 다니더라도 슬기롭지 못할 테고요.


  다시 말하자면, 학교는 아이들이 더 슬기롭도록 이끌지 못하고, 학교는 슬기롭지 못한 아이들을 일깨우지 못합니다. 학교는 무언가 가르치면서 모든 아이들을 똑같은 지식이 되도록 줄을 세웁니다.


  슬기로운 아이가 되건 슬기롭지 못한 아이가 되건, 이 아이들은 학교를 안 다닐 적에는 ‘저마다 다른 빛’입니다. 그런데, 학교를 다니고 보면 ‘서로 비슷하게 닮은 모습’으로 바뀝니다. 학교에서는 ‘바른 생활 규범’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모범생 규율’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머리카락과 옷차림과 말매무새 모두 똑같이 맞추도록 하는 틀이 있습니다.


  더구나, 이 나라 학교에서는 오랫동안 아이들을 때리고 거친 말을 퍼부었으며 돈을 걷었어요. 이 나라 학교에서는 아직도 아이들한테 주먹다짐을 하거나 모진 말을 들이붓는 어른이 있어요. 이름은 학교이지만 마치 군대처럼 아이들을 들볶아요. 이 나라 군대에서는 일제강점기 군국주의 군대처럼 주먹다짐과 얼차려와 막말이 아직도 떠도는데, 이 버릇이 학교로 고스란히 스며들어요. 학교를 다닌 나이에 따라 사람 사이에 금을 긋는데다가, 어느 학교를 다녔느냐를 놓고 사람 사이에 값을 매기기까지 해요.


  다 다른 고장에서 태어나고 다 다른 마을에서 살아가던 아이들이지만, 학교를 다닐 적부터 ‘서울 표준말’로 말씨를 바꾸어야 합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거나 바닷물 만지는 어버이한테서 태어난 아이도,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일하는 어버이한테서 태어난 아이도, 서로 똑같은 교과서를 들여다보고 똑같은 시험문제를 풀며 똑같은 웃학교로 나아가는 교육을 받도록 하는 학교입니다.


  얼핏 보면 ‘평등’이라 할 터이나, 곰곰이 살피면 아이마다 다르게 서린 빛을 누르거나 없애는 일입니다. 왜 아이들은 웃학교에 가야 할까요? 왜 아이들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은 고향 말씨를 잃어야 할까요?


  학문을 해야 하는 뜻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는 왜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는 아이들한테 어떤 빛이 되고 어떤 꿈이 되며 어떤 사랑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사회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기에 학교를 다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특권을 누리도록 한다면 교육이 아닐 테지요. 그런데, 모든 아이들 다 다른 빛을 똑같이 틀에 박히게 내몬다면, 이 또한 교육이 아닐 테지요. ‘나다움’을 가르칠 수 있을 때에 교육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 스스로 ‘나다움’을 깨닫도록 이끌 적에 비로소 교육이라고 느낍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마을에서 다 다른 보금자리를 일구면서 다 다른 삶을 즐겁게 누리도록 북돋울 수 있어야 바야흐로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고 느낍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얼거리가 아름다울 때에 교육이에요. 가르치고 배우는 삶이 아름다워야 교육입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모습과 빛과 결이 아름다운 흐림일 때에 교육이지요.


  함께 나눌 뜻으로 법도 의학도 철학도 문학도 예술도 가르치면서 배우리라 느껴요. 서로 어깨동무하려는 꿈으로 밑지식을 가르칠 초등학교요 고등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느껴요.


  교과서를 가르칠 학교가 아닙니다. 아이들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깨닫도록 가르칠 학교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옷과 밥과 집을 일구도록 도울 학교입니다. 도시에서는 도시 나름대로 삶길을 보여줄 학교요, 시골에서는 시골 나름대로 삶빛을 일깨울 학교입니다. 다 다른 아이들한테 다 다른 꿈과 사랑이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가 하고 이야기하는 배움마당이자 어울림마당이 학교예요.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놀며, 어깨동무하면서 춤추고, 노래하며 이야기하는, 삶이 흐드러지는 꽃이 되는 터가 학교입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뜻은 하나입니다. 즐겁게 살아가는 길을 느끼도록 하고 싶기에 가르치고 배웁니다. 사랑하며 살아가는 길을 누리도록 하고 싶기에 가르치고 배웁니다. 꿈꾸며 살아가는 빛을 환히 밝히고 싶기에 가르치고 배웁니다. 4346.10.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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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귀뚜라미

 


  뒹굴면서 자느라 이불을 걷어차고 나한테 달라붙는 큰아이를 살그마니 떼면서 이불깃 여민다. 큰아이는 자다가도 쉬 마려우면 스스로 일어나서 오줌그릇에 앉는다. 작은아이는 자다가 쉬 마려우면 꾹 참고 아침까지 버티거나 자면서 바지에 쉬를 눈다. 그래서 큰아이 이불깃 여민 깊은 밤에 작은아이 귀에 대고 살며시 불러 본다. 작은아이가 뒤척이면서 하품을 한다든지, 모로 누으려 하거나 움직일 적에 “보라, 쉬?” 하고 묻는다. 그러면 작은아이가 이 말을 알아듣는다. 작은아이는 눈을 지긋이 감은 몸이지만, 아버지가 살며시 안아 들면 팔을 벌려 목을 안는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겨 대청마루 오줌그릇 앞으로 나오고, 오줌통을 들어 받치면 곧 졸졸 소리를 내며 쉬를 눈다. 쉬를 누이는 동안 온몸을 아버지 몸에 기댄다. 쉬를 다 누면 오줌통을 내려놓고 다시 작은아이를 안아서 자리에 눕힌다. 작은아이는 길게 하품을 하며 이불을 두 손으로 척 잡고는 깊이 잠든다. 지난밤 비바람이 사뭇 몰아쳐서 마루문 모두 꼭 닫았는데, 꼭 닫은 마루문 사이로도 귀뚜라미 노랫소리 스며든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숱한 풀벌레가 노래를 베푼다. 비바람 멎어 바람까지 조용한 밤에 여러 풀벌레가 노래를 하고, 사이사이 풀개구리 노래가 섞인다. 포근한 밤이다. 4346.10.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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