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28] 학교읽기
― 가르치고 배우는 뜻
학교에서는 무언가 끊임없이 가르칩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무언가 꾸준히 배웁니다. 이리하여 아이들 어버이는 아이들을 학교에 넣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날마다 이런 이야기 저런 말을 듣습니다.
슬기로운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더라도 슬기롭고, 슬기롭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더라도 슬기롭겠지요. 슬기로운 아이들은 학교를 안 다니더라도 슬기롭고, 슬기롭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를 안 다니더라도 슬기롭지 못할 테고요.
다시 말하자면, 학교는 아이들이 더 슬기롭도록 이끌지 못하고, 학교는 슬기롭지 못한 아이들을 일깨우지 못합니다. 학교는 무언가 가르치면서 모든 아이들을 똑같은 지식이 되도록 줄을 세웁니다.
슬기로운 아이가 되건 슬기롭지 못한 아이가 되건, 이 아이들은 학교를 안 다닐 적에는 ‘저마다 다른 빛’입니다. 그런데, 학교를 다니고 보면 ‘서로 비슷하게 닮은 모습’으로 바뀝니다. 학교에서는 ‘바른 생활 규범’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모범생 규율’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머리카락과 옷차림과 말매무새 모두 똑같이 맞추도록 하는 틀이 있습니다.
더구나, 이 나라 학교에서는 오랫동안 아이들을 때리고 거친 말을 퍼부었으며 돈을 걷었어요. 이 나라 학교에서는 아직도 아이들한테 주먹다짐을 하거나 모진 말을 들이붓는 어른이 있어요. 이름은 학교이지만 마치 군대처럼 아이들을 들볶아요. 이 나라 군대에서는 일제강점기 군국주의 군대처럼 주먹다짐과 얼차려와 막말이 아직도 떠도는데, 이 버릇이 학교로 고스란히 스며들어요. 학교를 다닌 나이에 따라 사람 사이에 금을 긋는데다가, 어느 학교를 다녔느냐를 놓고 사람 사이에 값을 매기기까지 해요.
다 다른 고장에서 태어나고 다 다른 마을에서 살아가던 아이들이지만, 학교를 다닐 적부터 ‘서울 표준말’로 말씨를 바꾸어야 합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거나 바닷물 만지는 어버이한테서 태어난 아이도,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일하는 어버이한테서 태어난 아이도, 서로 똑같은 교과서를 들여다보고 똑같은 시험문제를 풀며 똑같은 웃학교로 나아가는 교육을 받도록 하는 학교입니다.
얼핏 보면 ‘평등’이라 할 터이나, 곰곰이 살피면 아이마다 다르게 서린 빛을 누르거나 없애는 일입니다. 왜 아이들은 웃학교에 가야 할까요? 왜 아이들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은 고향 말씨를 잃어야 할까요?
학문을 해야 하는 뜻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는 왜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는 아이들한테 어떤 빛이 되고 어떤 꿈이 되며 어떤 사랑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사회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기에 학교를 다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특권을 누리도록 한다면 교육이 아닐 테지요. 그런데, 모든 아이들 다 다른 빛을 똑같이 틀에 박히게 내몬다면, 이 또한 교육이 아닐 테지요. ‘나다움’을 가르칠 수 있을 때에 교육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 스스로 ‘나다움’을 깨닫도록 이끌 적에 비로소 교육이라고 느낍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마을에서 다 다른 보금자리를 일구면서 다 다른 삶을 즐겁게 누리도록 북돋울 수 있어야 바야흐로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고 느낍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얼거리가 아름다울 때에 교육이에요. 가르치고 배우는 삶이 아름다워야 교육입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모습과 빛과 결이 아름다운 흐림일 때에 교육이지요.
함께 나눌 뜻으로 법도 의학도 철학도 문학도 예술도 가르치면서 배우리라 느껴요. 서로 어깨동무하려는 꿈으로 밑지식을 가르칠 초등학교요 고등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느껴요.
교과서를 가르칠 학교가 아닙니다. 아이들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깨닫도록 가르칠 학교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옷과 밥과 집을 일구도록 도울 학교입니다. 도시에서는 도시 나름대로 삶길을 보여줄 학교요, 시골에서는 시골 나름대로 삶빛을 일깨울 학교입니다. 다 다른 아이들한테 다 다른 꿈과 사랑이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가 하고 이야기하는 배움마당이자 어울림마당이 학교예요.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놀며, 어깨동무하면서 춤추고, 노래하며 이야기하는, 삶이 흐드러지는 꽃이 되는 터가 학교입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뜻은 하나입니다. 즐겁게 살아가는 길을 느끼도록 하고 싶기에 가르치고 배웁니다. 사랑하며 살아가는 길을 누리도록 하고 싶기에 가르치고 배웁니다. 꿈꾸며 살아가는 빛을 환히 밝히고 싶기에 가르치고 배웁니다. 4346.10.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