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옷에 구멍 곱다라니

 


  큰아이 입는 잠옷 무릎에 구멍이 났다. 언제 났을까. 엊저녁에 재울 때에 보니 구멍이 제법 크다. 이 추운 날씨에 춥겠네. 아침이 되어 일어나면 이 옷을 벗을 테니 바느질로 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아침이 되어 바느질을 안 잊을 수 있을까. 바느질을 못 하는 까닭은 ‘아, 맞아, 구멍난 옷 기워야지.’ 하는 생각을 자꾸 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바느질을 하면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물끄러미 구경한다. 아직 아이들한테 실과 바늘을 건네지 않는다. 손을 더 야무지게 놀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일곱 살은 어떨까. 글쎄, 일곱 살은 좀 힘들까. 여덟 살이라면 서슴없이 실과 바늘을 건네겠지.


  아이들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무언가 새롭다 싶은 집일이나 바깥일이나 할 적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본다. 삶을 배운다. 삶에 깃든 사랑을 배운다. 날마다 쌀을 냄비에 받아 헹굴 적에도 날마다 새삼스레 들여다본다. 여러 가지 쌀을 냄비에 골고루 담을 적에는 코를 박으며 냄새를 맡는다. 큰아이가 먼저 냄새를 맡으며 “냄새 좋아.” 하면 작은아이가 누나 따라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며 “냄새 좋아.” 하고 말한다. 문득 생각하니, 아이들이 이렇게 “냄새 좋아.” 하고 말해 주기에, 우리 집 밥이 더 맛나고 몸에 좋구나 싶다.


  이 밤 지나고 새 아침 찾아와 큰아이가 잠옷 벗어 곱다라니 개어 놓으면, 이 옷을 살며시 집어서 찬찬히 기워야겠다. 아침에 잘 떠올리자. 4346.11.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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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31] 시골에서 만나는 뱀
―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서

 


  시골에서 살아간다고 하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 가운데 ‘뱀이 나올까 무섭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분 있으면, “우리 집에는 지네도 함께 살아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냥 작은 지네도 아니고 굵다랗고 커다란 지네라고, 우리는 이런 지네 만나면 쓰레받기에 담아서 바깥으로 내보내는데, 마을 이웃들 보았으면 술병에 담든지 기둥에 못으로 박아서 약으로 쓰려 한다고 덧붙입니다.


  시골이니, 시골 흙에 지렁이와 개미만 있지 않습니다. 사마귀와 메뚜기도 있고, 여치와 방아깨비도 있습니다. 제비와 박새와 딱새와 참새가 얼크러지고, 직박구리며 꿩이며 까치이며 꾀꼬리이며 소쩍새이며 사이좋게 어울립니다.


  우리 집 둘레 풀밭에는 개구리가 많이 살아가니 으레 뱀을 볼 만합니다. 다만, 뱀이 꺼리는 풀이 우리 집 둘레에서 많이 돋아, 뱀이 좀처럼 우리 집에는 못 나타난다고 느껴요. 숲이나 들에서, 다만 아직 농약을 뿌리지 않은 숲이나 들에서 뱀을 만납니다. 농약을 뿌린 숲이나 들에는 뱀이 없어요. 뱀뿐 아니라 개구리도 없어요. 풀도 농약을 맞아 죽지만, 뱀도 개구리도 개미도 풀벌레도 모조리 농약을 맞아 죽어요.


  십일월 한복판을 지나 십이월 가까운데, 아직 겨울잠에 들지 않은 뱀을 길에서 만납니다. 아이들 자전거수레에 태워 면소재지 우체국 다녀오는 길인데, 아스팔트 찻길 한복판에 뱀 한 마리 또아리를 틀고 볕바라기를 합니다. 날이 추우니 이곳에서 따순 볕을 받으려 하는구나 싶은데, 척 보아도 곧 자동차에 밟혀 죽겠구나 싶습니다. 자동차가 지나가며 차바퀴로 짓밟을 만한 데에서 볕바라기를 하니까요.


  여름에는 여름대로 뱀한테 말을 겁니다. 얘, 얘, 너 내 눈에 뜨여서 그렇지, 다른 사람 눈에 뜨였으면 벌써 잡혀서 술병에 갇히거나 찢겨 죽었을 테야. 요즈음은 옛날 같지 않아 뱀이 많이 줄어, 너를 잡아 보약 쓰려는 사람 많거든. 얼른 풀숲으로 숨으렴.


  나는 풀숲을 거닐 적에 뱀에 물릴 생각을 한 적 없습니다. 뱀이 왜 사람을 물겠습니까. 기껏 사람 물어 보아야 곧바로 잡혀 죽을 텐데, 얼른 꼬리를 감춰야지요. 어쨌든, 뱀이 있어야 개구리를 잡아먹습니다. 개구리는 모기며 파리며 풀벌레를 잡아먹습니다. 수리와 매와 소쩍새는 뱀을 잡아먹습니다. 서로서로 사이좋게 살아가야 숲이 살고, 숲이 살 때에 사람도 삽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면, 이 땅을 농약이나 비료로 더럽히거나 망가뜨릴 일이 사라지겠지요. 4346.11.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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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11-19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헉 전 넘 무섭네요 사진까지 보니 글은 정겹게 읽었지만

숲노래 2013-11-19 10:44   좋아요 0 | URL
물끄러미 바라보면 하나도 안 무섭고 귀엽답니다 ^^
 

밤에 쌀 씻고 설거지

 


  한밤에 보일러를 돌린다. 우리 집 보일러는 땅밑에서 흐르는 물을 끌어올려 돌아가기에, 보일러를 돌리면서 지난저녁 남긴 그릇들을 설거지한다. 물이 잘 돌도록 틀어서 쓴다.


  저녁을 먹고 나서 모든 그릇을 설거지할 수 있지만, 일부러 얼마쯤 남긴다. 왜냐하면 밤에 아이들 쉬를 누이면서, 또는 한밤이나 새벽에 보일러 돌릴 무렵, 물이 잘 흐르도록 하려면 물꼭지를 틀어 땅밑에서 물을 뽑아올려 주어야 하니까. 이렇게 하자면 조금 번거롭기는 한데, 어차피 밤에 일어나서 아이들 쉬를 누여야 하고, 나도 내 일을 밤이나 새벽에 하니까, 다 괜찮다. 아이들 아침에 먹일 밥도 한밤이나 새벽에 미리 씻어서 불려야 하니까, 어차피 이렇게 해야 한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 아침까지 안 깨고 잔다면 한결 개운할까? 아마 그러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밤에 잠을 깨어 아이들 쉬를 누인 뒤, 오줌그릇 들고 마당으로 내려와서 한밤에 눈부시도록 밝은 별빛과 달빛 올려다보기를 즐긴다. 아이들이 밤오줌을 누어 주기 때문에, 나로서는 아주 스스럼없이 밤빛을 실컷 누린다.


  실컷 누린 밤빛을 마음으로 담아 부엌으로 가서 쌀을 씻는다. 설거지를 마무리짓는다. 새로 뜬 물을 유리병에 담는다. 유리병에 담아 이틀쯤 묵힌 물을 달콤하게 마신다.


  예부터 한집 살림 맡은 어머니는 새벽 세 시 반 즈음 조용히 일어나 맑은 물 한 그릇 길어서 부엌님한테 올렸다고 한다. 내 밤설거지도 이와 같다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시골집조차 부엌님이나 뒷간님이나 집님이나 모두 사라졌다고 할 만하지만, 그래도 우리 보금자리 돌보는 넋이 가까이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음을 담아 물 한 그릇 올리고, 나도 이 물을 함께 마신다. 4346.11.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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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18] 전기읽기
― 아파트와 청와대 옆에 발전소를

 


  전기란, 도시사람 도시살이를 지키도록 하는 물질문명 밑바탕입니다. 도시에 몰려들어 살아가는 사람이 워낙 많기에, 이 도시를 지키도록 하려면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써야 합니다. 아파트와 건물에서 전기를 쓰고, 지하철에서 전기를 쓰며, 지하상가에서 전기를 씁니다. 그리고, 도시사람 쓰는 물건을 공장에서 척척 찍어낼 뿐 아니라, 도시 물질문명 지키도록 물건을 이웃나라와 사고팔려면 또 전기를 끝없이 만들어서 써야 합니다.


  도시가 서기 때문에 커다란 발전소를 지어야 합니다. 도시를 자꾸 늘리려 하기 때문에 커다란 발전소는 자꾸 늘어야 합니다. 아파트를 더 세우고 고속도로를 더 닦으며 공장을 더 돌려야 하니까 발전소를 끝없이 늘려야 합니다.


  발전소는 도시 언저리에 안 짓습니다. 발전소 매연과 공해와 전자파가 워낙 사람한테 안 좋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애써 도시로 끌어모았는데, ‘도시 주거 환경’이 나쁘다면 사람들이 떼로 일어나서 손가락질을 할 테지요. 그러니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달래거나 다독일 뜻으로 도시에 발전소를 안 지어요. 도시에 있던 공장도 도시 바깥으로 내보내며, 도시사람이 버리는 쓰레기를 치울 곳이랑 도시사람 쓰는 석유를 다루는 공장도 몽땅 도시하고는 아주 먼 시골에 짓습니다.


  도시사람이건 시골사람이건 밥을 먹습니다. 밥은 시골에서 얻습니다. 쌀과 다른 곡식을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미국에서 사다 먹는다 하더라도, 그 나라 시골이 있어야 흙을 일구어 쌀과 여러 곡식을 얻어요. 시골이 없다면 능금도 복숭아도 배도 포도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도시를 키우려고 시골을 죽입니다. 도시를 살린다며 시골을 망가뜨리거나 더럽힙니다. 도시 물질문명을 지킨다면서 도시에 발전소를 안 짓고 도시에 있던 공장을 시골로 보내는 일이란, 도시사람 스스로 나쁜 밥이랑 농약·비료·항생제·화학첨가물 그득한 가공식품만 먹겠다는 뜻이 되고 맙니다. 도시사람 쓸 전기를 시골에 발전소 지어서 얻으면 얻을수록, 시골에 우람한 송전탑 서면 설수록, 시골을 망가뜨리는 꼴이 되고, 시골 숲과 들과 보금자리를 어지럽히는 짓이 되어, 시골과 함께 도시가 흔들리거나 무너질밖에 없습니다.


  핵발전소뿐 아니라 화력발전소 모두 도시 한복판에 서야 옳습니다. 공장과 쓰레기매립지나 하수처리장 모두 도시 한복판에 놓아야 옳습니다. 식품공장과 맥주공장과 자동차공장과 석유화학공장과 유리공장과 제지공장과 반도체공장 모두 도시 한복판에 올려야 옳습니다. 도시사람은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과 폐수와 방사능과 전자파가 어떠한가를 제대로 모릅니다. 제대로 모르니, 스스로 삶으로 안 겪으니, 하나도 깨닫지 못합니다. 물꼭지 틀면 물 콸콸 쓸 수 있는데, 수도물 이으려고 시골 여러 마을 물에 잠기도록 하고 너른 숲 망가뜨리는 짓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수도물이란 문명이 아니라 ‘문명 파괴’요 ‘환경 재난’입니다. 전기란 문화가 아니라 ‘문명 몰살’이자 ‘환경 재앙’입니다.


  전기를 쓴다 하더라도, 왜 집집마다 집열판 두어 매연도 공해도 없이 전기를 스스로 만들어 쓰도록 하지 않을까요? 전기를 쓰려면 가장 깨끗하고 가장 올바르며 가장 아름다운 전기를 저마다 스스로 만들어서 써야 하지 않나요?


  발전소 짓는 돈, 한국전력이라는 커다란 회사를 꾸리는 돈, 전봇대와 송전탑 세우는 돈, 전깃줄 끝없이 잇는 돈, 이런 돈 저런 돈 모두 따져 보셔요. 도시사람이 ‘발전소를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에 짓느라 들이는 돈’을 헤아려 보셔요. 커다란 발전소를 지어 전기를 뽑은 뒤에 우람한 송전탑과 전깃줄을 잇고 잇느라 드는 돈을 가누어 보셔요.


  온 나라 모든 살림집에 집열판 붙여서 전기 스스로 빚어서 쓰도록 하는 데에 드는 돈이 오히려 아주 적게 듭니다. 값조차 쌉니다. 게다가 공해도 매연도 없습니다. 전깃줄이나 전봇대 어지러이 서지 않을 뿐 아니라, 송전탑 걱정조차 없습니다. 발전소를 돌린다며 우라늄을 만지거나 석유나 석탄을 땔 걱정마저 없습니다. 발전소 폐기물조차 하나 없지요. 그러나, 공공기관이라 일컫는 정부 조직이나 재벌회사는 돈벌이(세금)를 하고자, 사람들 여느 살림집에 집열판 붙이는 길을 걷지 않습니다. 사람들 또한 전기를 어떻게 써야 즐겁고 아름다우며 올바를까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면 아파트 옆에 지어야 합니다. 청와대 옆에도 발전소를 지어야 합니다. 안전과 환경에 걱정이 없다면 마땅히 아파트와 청와대 옆에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나란히 지을 노릇입니다. 핵폐기물처리장은 미대사관 옆에 지으면 됩니다. 안전하고 환경을 더럽히지 않는다 하니까요.


  더 곰곰이 살피면, 사람들 스스로 흙을 잊기에 전기를 아무렇게나 씁니다. 스스로 흙하고 동떨어진 채 살면서, 밥과 옷과 집이 모두 흙에서 비롯하는 줄 잊었으니, 자꾸 쓰레기를 낳는 물질문명에 기댑니다. 물질문명을 누릴 적에도 아름답게 즐기며 깨끗하게 돌보는 길하고는 멀어집니다. 흙에서 나온 것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석유와 석탄도 흙에서 나온 그대로 온갖 공해와 매연을 이 땅에 드리웁니다. 흙에서 얻은 쌀과 곡식과 열매는 사람들 몸을 거쳐 똥오줌 되어 다시 흙을 살리는 거름 구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이를 몽땅 생활쓰레기로 다룹니다.


  흙에서 나온 그대로 흙으로 갑니다. 흙에서 뽑아낸 쇠붙이로 전쟁무기 만들면, 이 땅에는 전쟁이 판칩니다. 흙에서 얻은 나무로 종이를 만들어 책을 엮으면, 이 책에는 나무내음이 감돌면서 사람들한테 아름다운 빛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들려줍니다. 흙에서 우라늄 캐내면 엄청난 방사능이 지구별 곳곳에 퍼지지요. 흙에서 다이아몬드를 캐내거나 금을 캐내니, 사람들 눈알이 빙빙 돌아 버렸습니다. 흙에서 무엇을 캐내렵니까. 흙에서 캐낸 것을 어떻게 쓰며 흙에 무엇을 돌려주렵니까. ‘밀양 송전탑’을 말하기 앞서 ‘우리 집 전기’부터 생각할 수 있어야, 무엇보다 ‘내 손으로 만질 흙’을 살필 수 있어야, 비로소 ‘어른’입니다. 4346.11.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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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보라 네모 그림에 (2013.11.8.)

 


  작은아이가 네모를 그려 주었다. 누나가 그리는 그림을 으레 보니, 누나가 요즈음 한창 그리는 ‘네모난 몸통 자동차 로봇’ 모양을 흉내내었으리라 느낀다. 다만, 작은아이는 여기까지만 그리고 다른 놀이에 눈길을 돌린다. 그림종이는 또 이대로 하나 사라지는가 하고 생각하다가, 작은아이 그림에 덧그림 해 볼까 생각한다. 네모마다 눈과 코와 입을 그린다. 큰아이가 눈과 입은 늘 웃는 얼굴 되도록 하라 말하기에 웃는 얼굴로 그린다. 가장 큰 네모에는 큰아이가 좋아하는 치마를 입힌다. 머리카락 부슬부슬 그려 넣고, 네모들한테 손발 붙인다. 치마네모한테는 한손에 도라에몽 만화책, 다른 한손에는 호미를 쥐어 준다. 꽃 한 송이씩 넣고, 무지개를 넣어 본다. 제비와 나비를 그린 뒤 바탕을 찬찬히 채운다. 작은아이는 무언가 하나씩 새로 그릴 때마다 곁에서 “오잉?” 하면서 웃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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