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어제는 우리 집 옆밭에서 고구마 캐는 할매와 할배를 보고는 일손을 도우려고 바로 나갔다. 할배가 많이 힘들다 하셔서 할매 홀로 고구마밭 캐느라 일손이 더뎠기에, 내가 거들기는 했어도 일을 모두 마치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일곱 시부터 다시 고구마밭에 나온다 하시기에, 나도 아침에 일찍 일손 거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 새벽 세 시에 일어나 글쓰기를 하고, 다섯 시 반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곱 시 즈음 일어난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 뒷간을 두 번 드나든다. 이렇게 하고 옆밭을 바라보니 할매 혼자 고구마를 바지런히 캐신다. 호미 한 자루 들고 건너간다. 문득 빗방울 듣는다. 고흥에도 비가 오려나. 고구마 캐기보다도 캔 고구마 자루에 담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호미는 밭 한쪽에 내려놓고는 자루를 들어 굵기에 따라 두 갈래로 고구마를 담는다. 할매는 고구마를 더 캐시고, 나는 고구마를 차곡차곡 담는다. 얼추 다 담았다 싶을 무렵 집에서 손수레 끌고 나온다. 아픈 할배가 경운기 몰고 올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손수레에 고구마 그득 든 자루를 싣는다.


  할매 댁에 고구마를 내려놓는다. 고구마는 따순 불 들어오는 마루방에 척척 놓는다. 빗물이 들을 듯하기에, 바깥에 두신 쌀가마 둘하고 겨가마 하나를 헛간으로 옮긴다. 할배와 할매가 어떠한 몸인지 알기에 일을 거들었을 뿐인데, 묵은지 한 꾸러미를 얻는다. 옆지기가 좋아하겠지.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다. 곧 아이들이 배고파 하겠구나 싶어 밥을 차린다. 이동안 옆지기는 씻고, 아이 둘을 함께 씻긴다. 아이들 씻는 사이 달걀국을 끓이고 고구마떡볶음을 한다. 큰아이가 예전에 달걀국 안 먹어 세 해 넘게 이 국은 안 끓였는데, 이제는 먹을까 싶어 모처럼 끓인다. 어제 캔 고구마를 숭숭 썰어서 하루 동안 불린 가래떡을 함께 볶는다. 캐고 나서 바로 먹는 고구마는 맛이 덜 하다 하지만, 화학비료도 화학거름도 안 쓴 고구마는 캐어 바로 먹어도 무척 맛나다.


  아이들 밥 얼추 먹이고는 살짝 자리에 누워 등허리를 편다. 이십 분인가 삼십 분쯤 누운 뒤 일어나 빨래를 한다. 어제 못 한 빨래하고 아침에 옆지기와 아이들 씻으며 나온 옷가지를 빨래한다. 척척 빨래하는 사이 작은아이가 똥을 누어 밑을 씻긴다. 모두 마친 빨래를 마당에 넌다. 빨래를 널고서 책짐 서재도서관으로 옮기려고 짊어진다. 서재도서관에 가서 곰팡이 먹은 책꽂이에 니스를 바른다. 니스 바르는 붓이 뭉개져서 더는 못 바른다. 면소재지 철물점 가서 붓을 더 사야겠다.


  집으로 돌아가며 바람소리 듣는다. 텃새만 남은 늦가을 막바지요 겨울 문턱에 흐르는 바람소리 듣는다. 이제는 풀벌레 노랫소리 거의 모두 사라졌다. 아주 사라졌다고까지 할 만하다. 개구리 노랫소리도 거의 다 사라졌다. 어제 고구마를 캘 적에 풀개구리 한 마리 폴짝폴짝 뛰던데, 아이들이 풀개구리 꽁무니 좇으며 한참 놀던데, 아무래도 고구마밭에 깃들어 겨울잠을 자려다가 그만 깼구나 싶다. 밭자락 고구마는 다 캐었으니 부디 다시 구멍 파고 들어가서 고이 쉬렴. 이제 이듬해 봄까지 너희 노랫소리는 못 들어도 되니까 느긋하게 쉬렴.


  고즈넉하다. 까마귀와 까치 우는 소리 크게 울린다. 십일월 찬찬히 흘러 십이월이 다가오면, 우리 큰아이가 기다려 마지않는 눈송이 흩날릴까. 올겨울에는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어느새 아침 훌떡 지나가고 한낮도 지나간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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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무엇을 배우는가

 


  아이는 언제나 스스로 살아갈 길을 배운다. 아이는 씩씩하게 살아갈 길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고 싶다. 아이는 즐겁게 노래하는 길을 배운다. 아이는 사랑스럽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어버이한테서 나누어 받고 싶다.


  호미질을 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호미순이’나 ‘호미돌이’ 된다. 자가용 으레 모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자동차순이’나 ‘자동차돌이’ 된다. 책을 즐겨읽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책순이’나 ‘책돌이’ 된다. 자전거 나들이 좋아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자전거순이’나 ‘자전거돌이’ 된다.


  어버이는 이녁 삶을 노상 아이한테 물려주거나 가르친다. 어버이는 이녁 생각을 노상 아이한테 보여주면서 알려준다. 어버이는 이녁 사랑을 노상 아이와 함께 가꾸거나 일군다. 어버이는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삶을 이루고, 아이는 어버이 곁에서 앞으로 살아갈 꿈을 천천히 헤아린다. 4346.1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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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살아가는 하루


 
  아이들은 하루 내내 어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이러다가도 저희한테 아주 재미나다 싶은 무언가 있으면 어버이 뒤는 그만 따라다니고는, 재미나다 싶은 것에 폭 사로잡힌다. 이를테면 나뭇가지가, 흙이, 풀꽃이, 멧새가 아이들 놀잇감이나 놀이동무가 된다. 빗물이나 눈송이도 아이들한테 재미난 놀잇감이나 놀이동무가 된다. 한참 어버이 꽁무니 좇던 아이들이지만, 스스로 눈빛 밝혀 새롭게 배우거나 즐기거나 누릴 것이 있으면 곧바로 따라간다. 언제나 새로운 무언가 느끼고 겪으면서 무럭무럭 크고 싶으니까.


  어버이는 하루 내내 아이들 뒤를 졸졸 따라붙는다. 이것저것 돌보고 이래저래 먹이며 이렁저렁 씻기고 입히느라 아이들 뒤를 졸졸 따라붙는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곳을 함께 바라본다. 아이들이 뒹구는 자리를 제대로 쓸고닦았는지 살핀다. 아이들 코는 막히지 않았나 들여다보기도 하고, 한동안 물을 안 마셨으면 물을 마시라고 부른다.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동안 어버이는 새삼스레 아이 눈높이가 되어 보금자리와 마을과 온누리를 사뭇 다르게 바라보며 느낀다.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눈높이로 멈추지 않는다. 어른이 되기까지 거친 아이와 푸름이 눈높이를 가만히 되새기면서 이 땅과 이 나라와 이 지구별에 어떤 사랑과 꿈이 흐를 때에 아름다운가 하고 헤아린다.


  아이들은 어버이 뒤를 따라다니며 삶을 배운다. 어버이는 아이들 뒤를 따라붙으며 사랑을 배운다. 아이들은 어버이 뒤를 따라다니는 동안 생각을 넓힌다. 어버이는 아이들 뒤를 따라붙으며 마음을 살찌운다. 4346.1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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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느티잎 가을빛 (2013.10.30.)

 


  계룡에서 살아가는 이웃한테 찾아간다. 이 집에 아이 둘 있고, 이 집으로 마실온 다른 이웃 아이 둘이 있다. 아파트에서 네 아이는 어떻게 놀까? 어린 아이들이 아파트에서 마음껏 뛰지 못하면서 놀아야 하는데, 저마다 얼마나 후련하게 놀면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문방구에 들러 그림종이 다섯 장을 장만한다. 아이 있는 집이라면 으레 크레파스 있으리라 여겼고, 크레파스를 마루에 펼친 뒤 내가 먼저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은 서로 종이를 하나씩 얻어 꼬물꼬물 스스로 나타내고픈 이야기를 종이에 담는다. 아파트 이웃집이지만, 이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느티잎이 길가에 수북하게 떨어졌다. 가을빛 곱게 입은 느티잎을 떠올리며 조그마한 잎사귀 하나에 얼마나 너른 우주와 넋이 깃들었을까 돌아본다. 가을 느티잎이 별비를 맞는 그림은 다른 이웃집에 선물로 주고, 둥그런 가을잎이 햇살처럼 환하게 가을빛 퍼뜨리는 그림은 계룡 이웃집에 선물로 남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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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나뭇잎과 글줄 (2013.10.27.)

 


  로봇을 그리는 큰아이 곁에 엎드려서 풀잎을 그리고 꽃잎을 그린다. 흰종이에 부러 흰꽃을 그려 본다. 흰종이에 그린 흰꽃을 알아볼 사람은 알아볼 테지. 오늘은 좀 다르게 그리고 싶어,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 말고 시골길 한참 거닐며 만난 가을날 붉나무를 그린다. 붉나무 잎이 모두 다른 붉은 빛깔이기에 가지도 잎도 다른 빛으로 그려 본다. 제비꽃을 그리는데 풀잎을 잘못 그렸다. 다음에 다시 잘 그리자고 생각하며 커다랗게 나뭇잎 테두리를 그린다. 그러고 나서 무엇을 그릴까 하다가, 글로 줄을 이어 본다. 글줄이랄까 글띠랄까. 빙글빙글 돌며 글을 하나씩 쓴다. 큰아이가 한글 즐겁게 익혀 나중에 하나씩 읽어 보기를 바라며 글띠를 그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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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0-30 07:12   좋아요 0 | URL
이 그림도 새롭고 또 참 좋네요!
붉나무도 흰꽃도 보라제비꽃도 까마중(?)도
색색으로 쓰신 글띠도 다 참 좋습니다~

숲노래 2013-10-31 09:54   좋아요 0 | URL
아, 까마중과 까마중꽃도 있어요~~
appletreeje 님도 그림놀이 함께 즐겨요~

oren 2013-10-31 10:34   좋아요 0 | URL
이맘때 산자락에서 가장 붉게 물드는 나무가 '붉나무'더라구요.

'가을색'으로 칠한 붉나무 그림도 아름답고, 알록달록하게 뿌려놓은 글씨들도 여러 색깔로 물든 풀포기처럼 느껴지네요.

숲노래 2013-11-01 05:55   좋아요 0 | URL
붉나무한테서는 어떤 열매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열매나 꽃이 어떠하든
붉나무는 그 붉은 잎사귀만으로도
참 아름답구나 하고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