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31] 시골에서 만나는 뱀
―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서
시골에서 살아간다고 하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 가운데 ‘뱀이 나올까 무섭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분 있으면, “우리 집에는 지네도 함께 살아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냥 작은 지네도 아니고 굵다랗고 커다란 지네라고, 우리는 이런 지네 만나면 쓰레받기에 담아서 바깥으로 내보내는데, 마을 이웃들 보았으면 술병에 담든지 기둥에 못으로 박아서 약으로 쓰려 한다고 덧붙입니다.
시골이니, 시골 흙에 지렁이와 개미만 있지 않습니다. 사마귀와 메뚜기도 있고, 여치와 방아깨비도 있습니다. 제비와 박새와 딱새와 참새가 얼크러지고, 직박구리며 꿩이며 까치이며 꾀꼬리이며 소쩍새이며 사이좋게 어울립니다.
우리 집 둘레 풀밭에는 개구리가 많이 살아가니 으레 뱀을 볼 만합니다. 다만, 뱀이 꺼리는 풀이 우리 집 둘레에서 많이 돋아, 뱀이 좀처럼 우리 집에는 못 나타난다고 느껴요. 숲이나 들에서, 다만 아직 농약을 뿌리지 않은 숲이나 들에서 뱀을 만납니다. 농약을 뿌린 숲이나 들에는 뱀이 없어요. 뱀뿐 아니라 개구리도 없어요. 풀도 농약을 맞아 죽지만, 뱀도 개구리도 개미도 풀벌레도 모조리 농약을 맞아 죽어요.
십일월 한복판을 지나 십이월 가까운데, 아직 겨울잠에 들지 않은 뱀을 길에서 만납니다. 아이들 자전거수레에 태워 면소재지 우체국 다녀오는 길인데, 아스팔트 찻길 한복판에 뱀 한 마리 또아리를 틀고 볕바라기를 합니다. 날이 추우니 이곳에서 따순 볕을 받으려 하는구나 싶은데, 척 보아도 곧 자동차에 밟혀 죽겠구나 싶습니다. 자동차가 지나가며 차바퀴로 짓밟을 만한 데에서 볕바라기를 하니까요.
여름에는 여름대로 뱀한테 말을 겁니다. 얘, 얘, 너 내 눈에 뜨여서 그렇지, 다른 사람 눈에 뜨였으면 벌써 잡혀서 술병에 갇히거나 찢겨 죽었을 테야. 요즈음은 옛날 같지 않아 뱀이 많이 줄어, 너를 잡아 보약 쓰려는 사람 많거든. 얼른 풀숲으로 숨으렴.
나는 풀숲을 거닐 적에 뱀에 물릴 생각을 한 적 없습니다. 뱀이 왜 사람을 물겠습니까. 기껏 사람 물어 보아야 곧바로 잡혀 죽을 텐데, 얼른 꼬리를 감춰야지요. 어쨌든, 뱀이 있어야 개구리를 잡아먹습니다. 개구리는 모기며 파리며 풀벌레를 잡아먹습니다. 수리와 매와 소쩍새는 뱀을 잡아먹습니다. 서로서로 사이좋게 살아가야 숲이 살고, 숲이 살 때에 사람도 삽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면, 이 땅을 농약이나 비료로 더럽히거나 망가뜨릴 일이 사라지겠지요. 4346.11.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