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바깥마실을 마치고 고흥집으로 돌아온다. 방바닥에 불을 넣는다. 물이 따뜻하게 되기까지 기다리면서 내가 먼저 씻는다. 나는 찬물과 미지근한 물로 씻고는, 큰아이가 시외버스에서 게우면서 쉰 냄새가 물씬 나는 옷을 애벌빨래 한다. 애벌빨래를 마치고 두벌빨래를 하는데 냄새가 빠질 낌새가 없어 여러 차례 더 빨래한다. 그래도 냄새가 가시지 않아 목초액을 탄 물에다가 하룻밤 담가 놓고 이튿날 다시 빨아서 햇볕에 말리기로 한다.


  큰아이를 먼저 씻긴다. 얘야, 서울 가는 시외버스에서 한 차례, 고흥 오는 시외버스에서 다시 한 차례, 두 차례나 게웠으니 속이 참 힘들지? 잘 씻고 푹 쉬며 새근새근 자자. 그래야 몸이 낫겠지. 작은아이를 불러 씻긴다. 아이들 옷가지는 모두 빨기로 한다. 큰아이가 게운 것을 시외버스에서 닦고 훔치고 하면서 내 몸과 옷에도 쉰 내음이 밴다. 씻어도 잘 빠지지 않는다. 며칠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리라 생각한다.


  두 아이는 도라에몽 만화책을 무릎에 펼치고 주먹밥을 먹는다. 이모와 이모부 사는 집에서는 신나게 뛰놀았고, 고흥집으로 와서 고단한 몸으로 만화책을 읽는다. 어여쁜 아이들아 그렇게 조금 놀다가 함께 자자. 즐겁게 꿈나라로 가자. 4347.4.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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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4-15 17:09   좋아요 0 | URL
사름벼리가 멀미를 했군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함께살기님도 힘드셨겠고요.
어서 집에 닿기를 더욱 더 바라면서 돌아오셨겠어요.

숲노래 2014-04-16 06:46   좋아요 0 | URL
아이들과 시외버스는 섣불리 타지 말아야 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끼기도 했어요.

먼 마실이란
참 고단하기도 하네... 하고도 느끼고요.
아이들이 시골집에서 느긋하게 놀면서
몸을 다시 살려야지요~
 

웃음꽃



  우리 아이들이 웃는다. 방긋방긋 웃는다.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낯모르는 어른들이 웃는다. 아이들 웃음꽃을 바라보다가 생각한다. 내가 우리 아이들만 하던 옛날에도 늘 웃음꽃을 피우면서 이웃한테 곱게 웃음빛을 나누었겠지. 아이들은 값진 옷을 입기에 웃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것저것 많이 사 주었대서 웃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가용에 태워 주거나 학교에 보내 주었기에 웃지 않는다. 아이들은 뛰놀면서 웃는다. 아이들은 콩콩콩 내달리면서 웃는다.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웃는다. 왜 학원 걱정을 하는가? 왜 대학교 근심을 하는가? 왜 취업 끌탕을 하는가? 즐겁게 살아가자는 생각이 될 때에 어른도 아이도 웃는다. 사랑스레 어깨동무하자는 마음이 될 적에 다 같이 기쁘게 웃는다. 4347.4.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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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바지 입는 작은아이

 


  칭얼쟁이 꾀쟁이 떼쟁이 같은 이름으로 부르면 참말 아이가 이대로 간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가만히 지켜본다. 어버이로서 골을 부릴 때가 있고, 조용히 눈을 감을 때가 있다. 작은아이가 울고불고 하더라도 바지를 안 입혀 주기도 한다. 아이 스스로 바지를 챙겨 입는 때가 지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냥 입혀 주어도 되지만, 부러 안 입히고 바지를 내밀곤 한다. 똥을 눈 아이 밑을 씻긴 뒤 바지를 스스로 올리도록 한다. 바지를 안 올려 주면 울면서 앙앙거리지만 못 본 척한다. 이럴 때에 으레 큰아이가 달려와서 “왜, 아버지가 바지 안 입혀 줘? 괜찮아, 누나가 입혀 줄게.” 하고 말한다. 벼리야, 네 동생이 스스로 바지를 입도록 하려고 부러 안 입혔는데, 네가 짠하고 나타나서 입히면 네 동생은 앞으로도 혼자 바지를 안 입는단다. 한두 번 큰아이를 타이르지만 그대로 지나치기도 하고, 큰아이더러 동생 옷 입히지 말라고, 동생이 잘 입으니까 지켜보기만 하라고 이르기도 한다.


  네 살 작은아이는 혼자 얼마든지 신을 꿸 수 있다. 그런데 뭔가 귀여움을 받고 싶다든지 마음이 바쁘면 자꾸 신을 신겨 달라 한다. 귀여움과 사랑을 세 사람한테서 받으니 이런 마음이 들까. 막내 자리란 더 귀여움과 사랑을 받는 자리인 터라, 스스로 씩씩하게 서기까지 한결 오랜 나날이 드는 셈일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도움 받는 일이 무슨 대수일까 싶다. 몸이 아픈 사람은 몸이 아프니 쉰다. 쉬면서 밥상을 받는다. 쉬면서 빨래를 쉰다. 아파서 몸져누운 사람더러 일어나서 밥을 차리라 할 수 없다. 몹시 아파 뒷간에 가지 못하고 기저귀를 차야 하는 사람더러 걸레질을 하거나 비질을 하라고 시킬 수 없다.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더 따순 손길을 받아야 할는지 모른다. 굳이 ‘벌써’ 스스로 바지를 입으라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 큰아이가 돌쟁이 무렵에 스스로 바지를 입고 신을 꿰며 단추를 풀고 잠근 모습을 떠올리면 ‘두 아이를 견주는 셈’이 된다.


  아무튼, 작은아이가 제 바지를 사흘에 걸쳐 스스로 입는 모습을 지켜본다.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앞으로도 이처럼 스스로 즐겁게 옷을 입고 뛰놀 수 있기를 빈다. 4347.4.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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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글과 아침밥

 


  오늘까지 마감글을 셋 써야 한다. 글 한 꼭지는 이제 막 마무리를 지었고, 두 꼭지를 더 쓰면 된다. 글을 바란 곳에서는 다음주까지 쓰면 된다고 얘기하지만, 우리 네 식구는 이튿날 아침에 먼 마실을 가야 하니, 오늘까지 글을 끝내고 마실길을 나서야 한다. 마감글을 쓰기에 다른 글을 안 쓰지 않는다. 다음달까지 끝내야 할 글꾸러미가 있어 날마다 이 글꾸러미를 조금씩 쓴다. 이듬해에 내놓을 책에 넣을 글도 틈틈이 쓴다. 도서관일기를 쓰고 아이들과 살아가며 지내는 이야기를 쓴다. 책으로 내주는 곳이 없어도 사진비평을 쓴다. 지난 12월에 새로 태어난 사진잡지에서는 내 사진비평을 고맙게 실어 준다. 잡지사에 보낼 사진비평은 어제 써서 보냈다. 밥을 끓이면서 글을 만진다. 밥불을 끈 뒤 달걀을 삶으며 글을 붙잡는다.


  오늘 먹을 풀을 뜯어야지. 얼른 밥상을 닦고 차근차근 차려야지. 아이들이 어지른 부엌과 방과 마루도 치워야지. 작은아이는 마당에서 혼자 쉬하는 놀이를 하다가 바지를 두 벌 버리네. 네 살 작은아이가 이제 혼자서 바지를 벗고 입을 줄 아니 손이 덜 간다. 숨을 돌린다. 쪽파를 다져야겠고, 밥과 국 말고 어떤 반찬을 올릴까 생각에 잠긴다. 이러면서, 남은 마감글 두 가지를 어떻게 엮을까 헤아린다. 4347.4.1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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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49] 꽃빛을 담는 하루
― 시골에서는 누구나 꽃사람

 


  읍내에 저자마실 가는 길입니다.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기다립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이리 달리고 저리 뜁니다. 사월로 접어든 시골마을은 온통 유채물결입니다. 옛날부터 유채물결은 아니었을 텐데, 시골에서는 경관사업을 한다며 늦가을논에 유채씨를 뿌려요. 늦가을에 유채씨를 뿌리면 겨울부터 조금씩 싹을 틔우면서 잎을 내놓고, 봄에는 노란 꽃물결이 찰랑입니다.


  집에서도 늘 꽃빛을 누리지만, 집 바깥으로 나와서 조금만 걸어도 어디에서나 꽃내음이요 꽃잔치입니다. 아이들은 이리 보아도 꽃이고 저리 보아도 꽃인 마을에서 꽃아이가 됩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면, 읍내도 도시와 똑같습니다. 시골 읍내도 아스팔트 찻길입니다. 시골 읍내는 도시와 견주면 자동차가 적으나, 도시처럼 자동차 때문에 둘레를 잘 살펴야 하고,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해요. 아이들은 자동차 때문에 즐겁게 뛰놀거나 내달리지 못합니다. 걸어서 움직일 적에도 이곳저곳에 함부로 세운 자동차 때문에 고단합니다.


  시골이라 하더라도 읍내나 면소재지는 시골이 아니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시골이라면 들과 숲과 내와 골짜기가 있어야 시골이 된다고 느낍니다. 풀이 돋을 빈터가 있어야 시골이고, 나무가 자랄 숲이 있어야 시골이며, 꽃물결을 이루는 들이 있어야 시골이지 싶어요.


  시골에서는 누구나 꽃사람이 되리라 느낍니다. 풀꽃을 보고 들꽃을 보며 나무꽃을 봅니다. 풀꽃에서 풀꽃내음을 맡고, 들꽃에서 들꽃내음을 먹으며, 나무꽃에서 나무꽃내음을 맞아들여요.


  꽃빛을 담는 하루가 흘러 삼월이고 사월이며 오월입니다. 곧 딸기꽃이 지면 딸기알이 굵겠지요. 딸기알이 굵는 늦봄부터 아이들은 손과 입이 새빨갛게 물들겠지요. 바람이 쏴아 불면서 아이들은 사월내음을 실컷 들이켭니다.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4347.4.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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