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금 한 쪽



  아이들이 능금을 먹다가 한 쪽을 남긴다. 아버지 먹으라고 한 쪽을 남겼단다. 다만, 저희들은 여러 쪽을 먹고서 한 쪽을 남긴다. 뭐, 다 좋다. 내 몫이 있는 줄 생각조차 안 했고, 아이들이 잘 먹기를 바랄 뿐인데, 아이들이 서로 더 먹겠다 하지 않고 한 쪽을 그대로 둔다. 건드리지 않고 쳐다보지 않는다. 어디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두 시간쯤 그대로 두는데 참말 이 아이들이 이 능금 한 쪽을 더 먹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얼마나 깊고 살가운 마음씀인가. 아이들이 남긴 능금 한 쪽을 고맙고 달게 잘 먹었다. 4347.4.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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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왜 바쁜지 몰랐다



  아침에 아이 둘을 씻기면서 밥물을 안친다. 두 아이를 씻기고 옷을 입힌 뒤 국냄비에 불을 넣는다. 불은 작게 올리고 나서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한다. 빨래를 마치고 나서 찬거리를 마련한다. 뒤꼍을 돌며 풀을 뜯는다. 보글보글 끓는 밤냄비에 쑥을 썰어 넣는다. 풀을 헹구어 물기를 턴 다음 밥상에 올린다. 아이들을 불러 밥상맡에 앉힌다. 아이들더러 밥을 먼저 먹으라 이르고는 빨래를 들고 방으로 가서 옷걸이에 꿰어 넌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허리를 톡톡 두들긴 뒤 내 밥을 푸고 국을 뜬다. 아이들은 밥상맡에 아버지가 함께 앉기까지 얼마나 기다렸을까. 문득 내 어린 날을 떠올린다. 어머니가 집에서 함께 밥상맡에 앉는 일은 드물었다. 밥을 거의 다 먹을 즈음 비로소 앉으셨다. 이동안 부엌일을 하고 집안일을 매만진다. 웬만한 일거리는 심부름을 시키셔도 될 텐데 굳이 혼자 다 하셨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왜 그리도 바빠야 하는지 잘 몰랐다. 두 아이와 살며 나 스스로 어머니 몫을 맡다 보니, 시나브로 어릴 적 어머니 모습을 읽는다. 심부름을 시키거나 맡길 적에도 일이다. 그냥 혼자서 바지런히 하고 만다. 아이들은 즐겁게 밥을 먹으면서 새롭게 기운을 내어 씩씩하게 놀면 기쁘다.


  마음이란 그렇다. 마음은 마음으로 이어진다. 마음은 마음으로 읽는다. 차근차근 읽고, 오래오래 마주한다. 4347.4.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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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고 걷는 길



  아이들과 손을 잡고 걷는다. 아이들이 우리 손을 놓고 저희끼리 신나게 앞으로 달린다. 큰아이가 곁님이나 나보다 훨씬 빠르게 앞장서서 걷는다. 작은아이가 혼자서 콩콩 뛰듯이 걷다가 제 어머니 손을 잡고 걷는다. 걷다가 힘이 드니 어머니 손에 기대어 걷는 셈이다.


  어디에서 살든 네 식구는 함께 걷는다. 함께 손을 잡고 눈을 마주하면서 살아간다. 일곱 살 큰아이는 열 리 길도 씩씩하게 걸을 수 있고, 네 살 작은아이는 다섯 리 길쯤 씩씩하게 걸을 수 있다. 두 아이를 지켜보면서 곁님과 내가 이 아이들만 하던 나이에 어떤 몸짓과 눈빛으로 놀고 어울렸을까 돌아본다. 나도 씩씩하게 이 길을 걸었겠지. 나도 힘이 들면 기대거나 업히면서 다리를 쉬려 했겠지.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분다. 사월바람이 싱그럽다. 조용히 호젓하게 들길을 걸어가면서 온몸이 개운하다.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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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면 일어나면 돼

 


  아이가 놀다가 넘어진다. 아이가 걷다가 넘어진다. 아이가 달리다가 넘어진다. 아이는 두 살이건 네 살이건 열 살이건,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릴 수 있지만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다. 아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가? 어버이 스스로 바라는 대로 아이가 살아간다. 어버이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는가에 따라 아이 매무새가 달라진다. 얘야, 괜찮아, 툭툭 털고 일어나렴, 다시 잘 뛰면서 안 넘어지면 돼. 또 넘어지면 또 일어나면 돼. 다시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돼. 콩콩콩 씩씩하게 달리고 뛰면서 이 땅을 네 숨결로 가득 채우렴. 4347.4.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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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0] 새봄을 마신다
― 네 식구가 걷는 길

 


  자가용이 있으면 읍내로 나갈 적에 군내버스 때를 살피지 않아도 되겠지요. 자가용이 있으면 먼 데로 마실을 갈 적에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땀을 빼지 않아도 되겠지요. 자가용이 있기에 더 낫거나 덜 낫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자가용이 없이 지내면서 네 식구가 함께 들길을 걸어갈 적에 두 다리를 더 잘 느낍니다. 땅과 흙을 차근차근 들여다보고, 풀잎을 스치는 바람을 고즈넉하게 맞이합니다.


  자가용으로 빠르게 달릴 적에는 둘레를 살피지 못합니다. 두 다리로 걸을 적에는 언제나 우뚝 서서 한참 들꽃 한 송이를 들여다보곤 합니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빨리 가야 하지 않습니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모두 우리 삶자리입니다.


  네 식구가 나란히 걷다가 들꽃을 보려고 혼자 살그마니 걸음을 멈춘 뒤에 천천히 좇아가는데, 곁님과 큰아이와 작은아이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이 자라는 결을 새삼스레 느낍니다. 큰아이는 씩씩하게 가방까지 메면서 잘 걸어요. 작은아이도 웬만한 길은 콩콩 뛰듯 걷습니다.


  아이들은 걸으면서 큽니다. 아이들은 걸으면서 냄새를 맡습니다. 아이들은 걸으면서 햇볕을 먹습니다. 아이들은 걸으면서 생각을 키웁니다. 아이들은 걸으면서 노래를 합니다. 아이들은 걸으면서 웃습니다.


  해와 바람과 비와 흙과 풀이 살찌우는 숨결이 감도는 길을 네 식구가 함께 걷습니다. 아이들이 걸으면서 크듯이, 어른도 걸으면서 커요. 어른도 걸으면서 풀내음을 맡고, 햇볕이 어떤 맛인가 헤아리며, 생각을 넓힙니다. 어른도 씩씩하게 걷는 동안 새롭게 노래를 하고 웃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4347.4.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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