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구멍난 바지 기우기



  큰아이가 입는 바지 무릎에 구멍이 났다. 처음에는 작더니, 차츰 커진다. 어제 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 마실을 하면서 쳐다보니 무릎 구멍에 주먹이 들어갈 만큼 크다. 그런데 큰아이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입는다. 아무래도 이 모습은 아니다 싶어 오늘 아침에 다른 바지를 입으라 하고 구멍을 기우기로 한다. 그냥 기울 수 없을 만큼 큰 구멍이기에 덧댈 천을 살핀다. 아이들이 갓난쟁이일 적에 입힌 바지를 꺼낸다. 네 살 작은아이조차 이 바지에 발 하나를 넣기 힘들 만큼 참으로 작은 바지이다. 그러나 두 아이 모두 이 바지를 입고 잘 크고 놀았다.


  헌 바지 한쪽을 가위로 석석 자른다. 천 조각을 큰아이 구멍난 바지 안쪽으로 댄다. 바늘을 한 땀 두 땀 넣는다. 방에서 바느질을 하다가 마당으로 나간다. 마당에 놓은 걸상에 앉아서 바느질을 잇는다. 후박나무 꽃에 벌떼가 모여 웅웅거린다. 처마 밑 제비집을 드나드는 제비가 부산스레 날갯짓하면서 노래를 한다. 바람이 분다. 밤새 노래하던 개구리는 아침에 조용하다. 비가 그친 아침바람을 느끼면서 바느질을 한다. 큰아이를 불러 옷을 잡으라고 이른다. 내 어릴 적이 떠오른다. 내 어머니도 내 무릎 구멍을 기울 적에 나를 불러서 이렇게 잡으라고 시켰다. 왜 시켰을까. 혼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얌전히 앉아서 잡는 몸가짐도 익히라는 뜻이었을까. 곁에서 바느질을 지켜보면서 어깨너머로 배우라는 뜻이었을까.


  어머니 바느질을 지켜보는 동안 어느새 구멍은 덧댄 천으로 막히고, 새로운 바지가 태어난다. 큰아이 바지를 기우면서 어릴 적을 떠올린다. 우리 아이는 앞으로 커서 제 아이를 낳으면, 또 제 아이를 불러 옆에 앉히고는 무릎 구멍을 기울까. 4347.4.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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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2] 사월에 내리는 비

― 봄비에 젖은 나뭇잎



  사월비가 내립니다. 봄은 비가 잦은 철은 아니나, 꼭 알맞게 비가 오는 철입니다. 겨울에 딱딱하게 굳은 땅을 봄비가 녹입니다. 녹은 땅에 알맞게 촉촉한 기운이 흐르도록 때 맞추어 비가 내립니다. 봄비가 내리면서 곳곳에 둠벙이 생기고, 논에 물이 고입니다. 이때에 개구리는 새로 깨어나고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개구리한테 새 숨결을 불어넣는 봄비입니다. 풀잎도 나뭇잎도 봄비를 맞으면서 한결 싱그럽습니다. 볕만 드리우면 몇 가지 풀은 살짝 억척스레 올라옵니다. 이때에 봄비가 한 줄기 훑으면 억척스럽던 풀은 고개를 꺾습니다. 나무는 봄비를 먹으면서 줄기와 가지가 굵습니다. 이른봄에 꽃을 피웠다가 일찌감치 꽃송이를 떨군 나무는 열매가 잘 익도록 물을 듬뿍 빨아들입니다. 그야말로 지구별 들과 숲에 싱그러우면서 새로운 빛을 베푸는 봄비입니다.


  봄비를 안 반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봄비는 온갖 숨결을 살리는 빗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봄 사월에 한국에 커다란 일이 터졌습니다. 바다에서 배가 한 척 가라앉았습니다. 참 많은 아이들이 바닷속에 잠겼습니다. 바닷속에 잠긴 아이들을 건져야 할 텐데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가냘픈 아이들을 건지는 일이 힘겹습니다.


  이 봄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 봄비는 무엇일까요. 이 봄비는 내려야 할 때에 내리는 비입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가라앉은 배는 가라앉지 말아야 하는데 가라앉은 배입니다.


  시골에서는 비를 맞으며 땅을 갑니다. 이 비와 함께 땅을 갈아야 푹푹 잘 들어가고 깊이 갈리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는 이 비를 기다리며 씨앗을 심고 모를 냅니다. 고춧모를 심든 토마토 모를 심든 오이 모를 심든, 이 비가 내리기를 기다려 여러 가지 씨앗을 심고 모를 냅니다.


  봄에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사월에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사월은 씨앗을 심는 달이기에, 사월에 씨앗을 심지 않으면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밥을 얼마든지 굶겠다고 한다면, 밥을 안 먹고 견디겠다고 한다면 사월에 비가 안 내리기를 바랄 수 있겠지요.


  빗물은 초피꽃을 적십니다. 빗물은 느티꽃을 적십니다. 빗물은 가시나무 꽃을 적시고, 장미나무 꽃을 적십니다. 빗물은 우리 온몸을 적시고 우리들 마음을 살살 달래면서 내립니다. 온 땅에 푸른 빛이 짙도록 북돋우는 사월비입니다. 기쁜 마음에도 아픈 마음에도 푸른 숨결이 감돌 수 있기를 빕니다. 4347.4.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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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1] 다시 찾아온 제비

― 사월에 기다린 손님



  제비가 찾아왔습니다. 지난해와 그러께에 이어 올해에도 제비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올해에는 제비가 무척 줄어들었습니다. 지난해에는 마을 가득 온통 제비떼였는데, 올해에는 몇 마리 안 됩니다. 열 마리가 채 안 되지 싶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마을에 집집마다 온통 제비집이요 제비노래였으나, 올해에는 우리 마을에 제비가 몇 마리 없습니다.


  고흥에서 봄을 세 해째 맞이하면서 생각합니다. 지난해에 마을 이웃들이 농약을 그야말로 엄청나게 썼습니다. 그러께에는 이래저래 날씨가 안 맞고 태풍이 잦아 항공방제를 못 했으나, 지난해에는 항공방제까지 숱하게 했습니다. 농약바람이 불고 또 부니, 마을에 있던 제비가 눈에 띄게 줄었고, 우리 집 제비들도 어느 날부터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지난해에는 아직 바다 건너 중국 강남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었는데 하루아침에 죄 사라졌습니다.


  올해에도 봄에 농약바람이 곳곳에 붑니다. 마늘밭에 농약을 뿌리고, 논둑에 농약을 뿌리며, 고추를 심기 앞서 또 농약을 뿌립니다. 우리 마을은 ‘친환경농업단지’라고 하지만, 정작 ‘친환경’이 되도록 흙을 가꾸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농협과 군청에서 꾀하는 ‘친환경농업’이란 ‘친환경농약’을 쓰는 ‘산업’일 뿐이기도 합니다.


  마을에서 제비를 반기거나 기다리는 이웃이 없습니다. 마을에서 나비를 반기거나 기다리는 이웃이 없습니다. 제비도 여느 새처럼 곡식을 쪼아먹으리라 여기며 싫어합니다. 나비는 얼른 잡아서 알을 못 까게 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제비가 있어 날벌레를 잡고, 나비가 있어 꽃가루받이가 됩니다. 새가 없고 풀벌레와 나비가 없으면 시골은 얼마나 시골스러울 수 있을까요.


  해마다 사월에 한국을 찾아오고 팔월 끝무렵에 바다 건너 중국으로 돌아가는 제비입니다. 온몸이 반짝반짝 빛나며, 고운 노래를 하루 내내 들려주는 제비입니다. 올해에도 알을 까서 새끼들을 잘 건사하겠지요? 우리 집에서 느긋하게 머물면서 예쁜 새끼 여럿 낳아 팔월 끝무렵에 즐겁게 중국으로 돌아가기를 빕니다. 4347.4.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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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두 아이



  작은아이는 큰아이를 늘 따라한다. 큰아이는 작은아이한테 이것저것 가르치면서 물려준다. 작은아이는 큰아이가 하는 말대로 말할 뿐 아니라, 큰아이가 보여주는 움직임을 고스란히 따른다. 큰아이는 작은아이한테 제 말을 하나하나 가르치면서 알려준다. 둘이 함께 있으면 언제나 복닥복닥 조잘조잘 소리가 크다. 두 아이는 서로 새로운 이야기를 빚는다. 둘 가운데 하나가 자거나 하나가 따로 있으면 아주 조용하다. 움직임이 잦아들고 소리도 가라앉는다. 동생은 누나를 바라보면서 큰다. 누나는 동생을 마주하면서 자란다. 둘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삶을 일군다. 이러한 얼거리 그대로 어버이와 아이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삶을 짓는다.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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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베개 작은 베개



  일곱 살 큰아이가 제 베개를 안 쓰겠다고 한다. 큰아이는 어른들이 베는 큰 베개를 쓴다. 누나가 큰 베개를 쓰니 네 살 작은아이도 작은 베개를 안 쓰겠다고 한다. 이리하여 두 작은 어린이가 큰 베개를 쓴다. 작은 베개는? 작은 베개는 어른인 내가 쓴다. 4347.4.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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