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딸기를 받으렴



  딸기를 딴다. 앙증맞게 작은 들딸기를 딴다. 한 줌 따고는 아이를 불러 손바닥에 쏟는다. 다시 한 줌 따고는 아이 손바닥에 붓는다. 또 한 줌 따고는 아이 손바닥에 얹는다. 들딸기가 빨갛게 돋은 풀숲을 헤친다. 가시에 찔리고 긁힌다. 아마 예부터 어버이라면 누구나 가시에 찔리고 긁히면서 들딸기나 멧딸기를 땄겠지. 아이들은 어버이가 딴 딸기를 먹으면서 봄맛을 누렸겠지. 아이들은 어버이가 건넨 딸기맛을 보면서 무럭무럭 자랄 테고, 아이들은 새롭게 어른이 되어 저희 아이한테 다시금 딸기를 따서 건넬 테지.


  해마다 딸기밭이 넓게 퍼진다. 해마다 딸기를 더 많이 얻는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어버이가 딸기를 따서 건넨다. 자, 이 딸기를 받으렴. 아이들이 씩씩하게 크면, 곧 아이들 스스로 딸기를 따먹으로 놀겠지. 아이들이 손수 딸기를 따먹을 날이 멀지 않다. 4347.5.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버지 그림놀이] 아이 그림에 마무리 (2014.5.12.)



  큰아이가 그림을 그린다. 작은아이와 나는 별바라기 놀이를 마당에서 한다. 한참 놀다가 들어오니, 큰아이가 그림 하나를 그린 뒤, 바탕에 무언가 더 그리려다가 그만두고 새로 그림을 더 그린다. 큰아이가 그리다가 그친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대로 둘 수도 있지만 살짝 허전하다. 그래서, 하늘에 구름만 있기보다, 아이가 선 땅에 풀이 푸릇푸릇 돋아 싱그러운 바람이 불기를 바라면서 여러 가지 풀을 그려 넣는다. 풀을 그린 뒤 나무를 그릴까 하다가 꽃을 그리기로 한다. 큰아이가 묻는다. “왜 꽃을 그려? 왜 꽃을 많이 그려?” “벼리 마음에 언제나 꽃내음이 맑게 흐르라고.” 꽃을 다 그리고서 구름에 무늬를 입힌다. 구름에 무늬를 다 입히고는 하늘을 알록달록하게 바른다. 온갖 빛이 골고루 어우러진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바라면서.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살이 일기 54] 저녁 자전거를 타려고

― 와 저기 봐



  저녁에 자전거를 타려고 마당에 자전거를 내놓습니다. 저녁 일곱 시가 가까운데 두 아이 모두 잘 생각이 없고 배도 고프지 않습니다. 해는 저쪽으로 넘어갔지만, 자전거마실을 해 볼까 생각합니다. 자전거가 있으니 아이들과 저녁바람을 한 차례 마실 만합니다.


  샛자전거와 수레를 붙인 자전거를 마당에 내놓으니 작은아이가 먼저 알아보면서 좋아합니다. 작은아이는 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손가락을 곧게 뻗습니다. “와, 저기 봐! 제비다!”


  그래, 제비로구나. 제비이지. 날마다 보는 우리 집 제비란다. 새벽 다섯 시에 어김없이 깨어나 재재거리면서 우리를 깨우려 하지. 네 아버지는 제비보다 일찍 일어나니 제비가 새벽에 노래할 적에 시계를 보면서 어쩜 우리 집 제비는 이렇게 날마다 거의 똑같은 때에 일어날까 놀라곤 한단다.


  제비는 이쪽 전깃줄에 앉다가 저쪽 전깃줄로 옮겨 앉습니다. 제비가 날면서 이리저리 앉으니 작은아이도 이쪽으로 손을 뻗고 저쪽으로 손을 뻗습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 따라 “저기에 앉았다! 저기로 갔다!” 하면서 좋아합니다.


  제비는 하루를 마무리지으면서 우리 집 마당을 이리저리 납니다. 해가 아주 넘어가면서 달이 뜨고 별이 돋을 무렵 둥지에 깃들 테지요. 암수 두 마리가 사이좋게 깃을 부비면서 따사롭게 밤잠을 이룰 테지요. 네 살 아이 눈과 가슴에 제비 날갯짓이 또렷하게 드리우는 하루를 천천히 보냅니다. 4347.5.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와 걷는 시골길



  삼월꽃과 사월꽃이 저문다. 이제 오월꽃이 핀다. 그런데 오월꽃이 핀대서 벌꿀 모이는 이들이 벌통을 두지는 않는다. 오월로 접어드니 비로소 벌통을 치운다. 사월에 흐드러졌던 갓꽃이랑 유채꽃은 거의 다 저물었고,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후박나무도 후박꽃이 많이 떨어졌다. 아직 모든 꽃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꽃과 저런 꽃이 지더라도 새롭게 오월꽃이 핀다. 이를테면, 오월이 되면서 찔레꽃이 피고 붓꽃이 핀다. 장미꽃도 오월부터 핀다. 젓가락나물꽃도 오월에 고운 빛이 노랗다. 괭이밥꽃은 사월에도 피지만 오월에도 예쁘다. 토끼풀꽃도 사월뿐 아니라 오월에도 한껏 흐드러진다. 아무튼 꽃은 봄부터 가을까지 꾸준히 피니까, 벌도 봄부터 가을까지 꾸준히 있는데, 삼월과 사월처럼 벌이 마구 날아다니지는 않는다. 이제 벌 소리를 거의 못 들으니, 큰아이는 벌에 쏘인 일을 곧잘 잊으면서 마당에서 잘 논다.


  작은아이는 벌에 쏘이지 않았다. 작은아이는 벌에 안 쏘였기에 벌을 무섭게 여기지 않고, 마실을 신나게 다닌다. 큰아이가 집 바깥으로 안 나가겠다고 하는 날 작은아이만 데리고 마실을 다니다가 생각에 잠긴다. 작은아이가 벌에 쏘였으면 어떠했을까. 큰아이는 안 쏘이고 작은아이만 벌에 쏘였으면, 큰아이는 제 동생을 어떻게 이끌었을까.


  얘들아, 너희가 뛰놀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진대서 다시 안 뛰니? 너희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놀다가 몸이 고단해 코피가 주루룩 흐른대서 일찍 자니? 벌한테 쏘일 수도 있는 일이야. 벌이 또 쏘면? 또 맞지 뭐. 다시 쏘면? 또 맞으면 돼. 괜찮아. 벌한테 쏘여도 며칠 지나면 다 가라앉아. 네 아버지를 보렴. 모기한테 물리든 벌한테 쏘이든 아랑곳하지 않아. 건드리지도 긁지도 쳐다보지도 않아. 우리는 우리가 하고픈 일을 하면 돼. 너희는 너희대로 놀고 싶은 대로 실컷 놀면, 벌은 우리와 아주 살가운 동무가 되어 고운 노래를 들려준단다. 4347.5.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살이 일기 53] 뜀박질

― 놀고 일하며 쉬는 곳



  나는 국민학교를 다닐 적까지 ‘집’이 어떤 곳인 줄 생각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만큼 내 어버이가 살림을 알뜰살뜰 꾸리셨기에 즐겁게 뛰놀았구나 싶습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간 뒤부터 ‘집’을 생각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여섯 해 다니는 동안 새벽 다섯 시 반이나 여섯 시 사이에 집을 나섰고, 학교에는 열한 시까지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걷거나 버스를 타느라 길에서 보내는 때를 빼니, 중·고등학교 여섯 해에 걸쳐 ‘집’이라는 곳에 머무는 때는 고작 다섯 시간 즈음이었습니다.


  하루 다섯 시간, 게다가 이 다섯 시간이란 누워서 자는 때라면, 집은 어떤 곳일까요. 집이 집다울 수 있을까요. 짐은 그저 “자는 데”을 뿐이고, 학교가 학교이면서 집 구실을 해야 하는 셈 아닐까요.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에 머물지만, 학교는 학교 노릇도 집 구실도 하지 않습니다. 학교는 오직 입시지옥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슬기나 즐거움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입니다. 사람이 기쁘게 웃고 어깨동무하는 슬기를 보여주지 않는 학교입니다. 이웃이 서로 아끼고 동무가 서로 사랑하는 길을 밝히지 않는 학교입니다. 게다가 이런 학교에서는 뛰거나 놀지 못합니다. 수업을 받으며 웃어도 안 되고, 쉬는 때라서 노래를 해도 안 됩니다. 허울은 ‘학교’이지만 속내는 ‘감옥’과 같습니다.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아가며 날마다 ‘집’을 생각합니다. 집은 어떤 모습일 때에 집이 될까요. 집이 모인 마을은 어떤 빛일 때에 마을이 될까요. 그저 여러 집이 모이면 마을이지 않습니다. 집은 집답게 예뻐야 하고, 마을은 마을답게 사랑스러워야 합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웃고 떠들면서 노래할 수 있을 때에 집입니다. 농약바람이 아닌 풀바람이 흐르면서 풀내음이 싱그러울 때에 마을입니다. 나무가 우거지면서 나무그늘과 나무노래가 감돌 때에 집이면서 마을입니다. 함께 놀고 함께 일하며 함께 쉬는 곳이 집이 되겠지요. 함께 웃고 함께 노래하며 함께 이야기꽃 피우는 데가 집이 될 테지요. 4347.5.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