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새봄맞이 제비꽃잔치 (2014.3.30.)

 


  해마다 우리 집 제비꽃이 늘어난다. 우리 집만 우리 마을에서 농약을 안 쓴다. 풀도 웬만해서는 그대로 둔다. 풀을 그대로 두니 뒤꼍 흙이 차츰 살아나고 옆밭 흙도 무척 기름지다. 흙에는 꼭 거름을 주어야 하지 않는다. 풀잎이 흙으로 돌아가고 나뭇잎이 떨어져서 모이면 흙이 살아난다. 밭이라 하더라도 곁에 나무가 있어 나뭇잎이 틈틈이 떨어져 흙을 살릴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게다가 나뭇잎이 떨어진 자리에는 풀이 잘 안 난다. 애써 농약을 쳐야 풀이 덜 돋지 않는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한결 눈부신 제비꽃잔치를 구경하기에, 이 기쁨을 노래하고 싶어 ‘새봄맞이 제비꽃잔치’ 그림을 그린다. 마당 평상에 엎드려서 한참 차근차근 그린다. 우리 집 네 식구에 맞추어 제비꽃을 네 송이 그리고, 두 아이가 평상에 널을 걸쳐 미끄럼놀이 하는 모습을 그린다. 제비꽃 둘레로 돌나물을 그리는데, 큰아이는 돌나물이 나비로 보이는가 보다. 그렇게 보니 또 그렇구나. 두 아이가 노는 둘레로 해님이 맑고 환하게 빛난다. 우리 집은 꽃집이라는 뜻에서 꽃송이를 잔뜩 집어 넣고, 우리 집은 숲집이 된다는 뜻에서 나뭇잎도 곳곳에 그려 넣는다. 다 그리고 나서 두 팔을 치켜든다. 아, 내가 그린 그림이 이렇게 좋구나. 그림 끝에 “우리 숲에서 놀자.”라는 말을 덧붙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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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향기로운 금쪽 (2014.3.25.)

 


  이웃한테 편지를 부치는 김에 조그맣게 그림을 하나 그려 본다. 이웃님은 네 식구인데, 네 식구 가운데 두 사람 이름을 적는다. 작은 종이에 그리기도 했기에 네 식구 이름을 다 넣지 못했지만, 나중에 또 그릴 일이 있으리라 여겨 두 사람 이름만 적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를 넣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구름 무늬를 알록달록 넣는다. 구름 무늬만 넣으면 밍숭맹숭할 듯해서, 꽃을 빨갛게 그린다. 꽃을 감싸는 푸른 나뭇잎을 그린다. 나뭇잎을 감싸는 파란 별을 그린다. 파란 별이 하늘을 날며 땅에 드리우는 별비를 그린다. 여러모로 엉성하게 그리고 말았구나 하고 느낀다. 다음에는 제대로 큰 종이에 시원스럽게 그려야겠다고 생각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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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47] 대숲 곁으로
― 보고 듣고 마시고

 


  대숲 곁을 걷습니다. 큰아이가 먼저 저 앞으로 달려갑니다. 작은아이가 누나를 좇아 콩콩콩 달려갑니다. 큰아이는 언제나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작은아이는 누나가 가르는 바람을 맡으며 뒤따릅니다.


  큰아이는 대숲을 스치고 먼저 사라집니다. 작은아이는 대숲 곁에서 살짝 뒤를 한 번 돌아보고는 누나한테 갑니다. 두 아이는 대숲 곁을 지나면서 대숲인 줄 알아차릴 수 있으나, 대숲인 줄 모르고 그냥 달릴 수 있습니다. 알아차려도 즐겁고 몰라도 즐겁습니다. 봄바람이 일렁이면서 댓잎을 건드리는 소리는 노래가 되어 아이들 마음으로 깃듭니다.


  아이들이 사라지고 난 대숲 곁을 천천히 걷습니다. 아이들은 이 길을 ‘하얀 길’이라고 가리킵니다. 아스팔트로 덮인 길은 ‘까만 길’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흙으로 된 길은 ‘누런 길’쯤 될 테고, 풀밭을 이룬 길은 ‘푸른 길’인 셈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거의 다 까만 길을 밟거나 하얀 길을 디딥니다. 누런 길이나 푸른 길을 밟거나 디디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까만 길이나 하얀 길은 사람길 아닌 찻길입니다. 누런 길이나 푸른 길은 풀길이요 숲길이며 들길입니다. 길이면서 들이고, 길이라기보다 숲입니다.


  누런 길과 푸른 길에서는 봄내음이 피어납니다. 까만 길과 하얀 길에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런 길과 푸른 길에서는 봄노래가 흐릅니다. 까만 길과 하얀 길에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까만 길과 하얀 길을 넓힙니다. 누런 길과 푸른 길을 갈아엎습니다.


  보고 듣고 마시는 대로 삶이 됩니다. 아이들이 대숲 곁을 달리면서 대숲바람을 마십니다. 나도 아이들 곁에서 대숲바람을 먹습니다. 4347.3.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동백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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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가락

 


  아이들이 노래를 부른다. 가만히 들으면 참 즐겁다. 나도 아이들한테 노래를 불러 준다. 아이들한테 노래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다 듣고 나서 “좋아요.” 하고 얘기해 준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내 마음을 살찌우고, 어버이가 부르는 노래는 아이들 마음을 북돋운다.


  아이들은 노래를 어떤 틀에 맞추어서 부르지 않는다. 아이들은 노래를 즐겁게 부른다. 아이들은 노래를 웃으면서 부른다. 대회에서 1등을 거머쥔다든지 음반을 잔뜩 팔 수 있도록 노래를 부르지 않는 아이들이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노래를 들려줄 적에도 대회나 음반을 따지지 않는다. 언제나 가장 고우면서 맑은 사랑을 꿈꾸면서 노래를 부른다. 늘 가장 즐거우면서 신나는 빛을 노래에 담는다.


  삶을 노래하고, 노래가 삶으로 다시 태어난다. 삶을 이야기하고, 이야기가 삶으로 찬찬히 녹아든다.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한결같이 웃고, 노래를 부르는 어버이도 노상 웃는다. 노래는 웃음이고, 웃음은 삶이며, 삶은 사랑이다. 4347.3.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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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3-26 14:00   좋아요 0 | URL
자연무대가 멋지네요~ 즐거이 노래부르는 남매 모습도 즐거워보여요!^^

숲노래 2014-03-26 14:31   좋아요 0 | URL
지난겨울에 꺾은 쑥대를 그대로 둔 자리 옆으로
새로 쑥이 돋아요.
그저 그런 대로 있는 시골집이랍니다~ ^^;
 

[시골살이 일기 46] 풀밥을 먹자
― 얘들아 밥이 다 되었어

 


  밥을 다 차릴 무렵 풀을 뜯습니다. 풀을 미리 뜯을 수 있지만, 밥이랑 국이랑 다 될 무렵 비로소 풀을 뜯습니다. 어느 때에는 아이들이 너무 배고파 하기에 미처 풀을 못 뜯고 밥이랑 국부터 먹이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는 혼자 마당으로 내려서서 풀을 뜯어서 헹군 뒤 송송 썰어 올리기도 합니다. 풀을 일찌감치 뜯는 적이 없습니다.


  여러 해째 이렇게 풀을 뜯으며 생각합니다. 왜 미리 풀을 안 뜯을까? 왜 미리 풀을 뜯는 버릇을 들이지 못할까?


  새봄을 맞이해 봄풀을 뜯다가 문득 한 가지 떠오릅니다. 어떤 풀을 뜯어서 먹든, 뜯는 자리에서 바로 입에 넣으면 가장 맛있습니다. 뜯어서 밥상맡까지 가지고 올 적보다 풀밭에서 뜯어 곧바로 먹으면 가장 맛있어요.


  밥을 차려야지 하고 생각하는 ‘머리’에서는 미리 풀을 뜯으면 밥상 차리기가 한결 수월하다고 여깁니다. 밥을 차리는 ‘마음’에서는 갓 뜯은 풀이 가장 맛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니까, 머리보다 마음이 늘 앞서기에, 풀을 맨 나중에 뜯어서 차리는구나 싶어요.


  풀 뜯는 데에는 몇 분이 걸리지 않습니다. 슥 한 바퀴 돌면 됩니다. 아이들은 곧잘 풀뜯기를 거듭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먹을 풀을 스스로 뜯으면 더 맛있습니다. 남이 차려서 내미는 밥도 맛나지만, 손수 차려서 먹는 밥이란 더없이 맛있어요. 손수 씨앗을 심어서 거둔 푸성귀라면 훨씬 맛있을 테지요.


  풀을 뜯으며 생각합니다. 풀은 사람이 따로 풀씨를 뿌리지 않아도 스스로 뿌리를 내려 자랍니다. 풀은 사람 손길을 타야 잘 자라지 않습니다. 풀은 스스로 돋고 스스로 푸릅니다. 사람이 이런 씨앗 저런 씨앗을 심어 거두어 먹어도 좋을 텐데, 스스로 돋는 풀만 뜯어서 먹으려 해도 다 못 먹습니다. 풀밥을 먹고 풀물을 마시기만 하더라도 사람은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고속도로를 늘리거나 아파트를 더 지어야 할 이 땅이 아니라, 풀밭과 숲을 가꾸고 돌보면서 누구나 풀밥을 실컷 누릴 수 있을 때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 땅이 되리라 느껴요. 논둑과 밭둑을 시멘트로 덮으려 애쓰지 말고, 논둑과 밭둑에서 자라는 풀을 즐겁게 맞이해서 기쁘게 먹으면 넉넉하리라 느껴요.


  풀을 먹는 몸에서는 풀내음이 납니다. 풀을 먹는 사람은 풀내음이 나는 글을 씁니다. 풀을 먹는 사람은 풀내음이 감도는 책을 사귑니다. 풀을 먹는 사람은 풀내음으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동백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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