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가는 길 - 김현철 포토에세이
김현철 지음 / 미지애드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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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을까
 [찾아 읽는 사진책 55] 김현철, 《거제 가는 길》(미지애드컴,2011)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부르는 노래마다 이 노래를 골라 목소리를 싣는 사람들 마음을 느낍니다. 기쁨에 넘치는지, 덜덜 떠는지, 신나거나 재미나는지, 슬프거나 고단한지 고스란히 느낍니다.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몸이 아픈지 잠을 제대로 못 이루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마음이 어떠하고 생각이 어떠한지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비평가나 전문가 자리에 있지 않더라도 알거나 느낍니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쓰는 글을 읽을 때에도 이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는 그림이나 사람들이 찍는 사진을 바라볼 때에도 이처럼 느낄 수 있어요. 노래이든 춤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빚는 사람 스스로 어떠한 마음이며 몸이고 생각이자 삶인지 낱낱이 담습니다.

 

 숨길 수 없어요. 감추지 못해요. 하나하나 드러내요. 시나브로 풀어내요.

 

 

 

 기쁜 삶이라 기쁨이 가득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빚습니다. 슬픈 나날이라 슬픔이 얼룩진 이야기를 사진으로 싣습니다.

 

 외롭다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은 외로움 물씬 묻어나는 사진을 찍습니다. 씩씩하게 한길 헤치는 사람은 씩씩함이 물씬 풍기는 사진을 찍습니다.

 

 정치꾼 ‘김영삼 아들’이라는 이름표가 먼저 뒤따르는 김현철 님 사진책 《거제 가는 길》(미지애드컴,2011)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김현철 님은 머리말에 “더 늦기 전에 지나쳐 버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며 살아야겠다며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사진찍기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그저 그런 밋밋한 일상들을 담고 나중에 다시 열어 보고, 아내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이렇게 찍은 사진들로 작은 책을 만들게 되었다. 행복하게 찍고 즐겁게 만든 책이니만큼 독자들도 편하고 재밌게 봤으면 좋겠다(15쪽).” 하고 밝힙니다. 참말 김현철 님은 외롭고 슬픈 사람입니다. 그냥 김현철이 아니라 ‘김영삼 아들’ 김현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야 하니까요.

 

 

 

 생각해 보셔요. 임응식은 임응식이지 ‘아무개 아들’ 임응식이 아닙니다. 주명덕은 주명덕일 뿐 ‘아무개 아들’ 주명덕이라 하지 않아요. 강운구라면 강운구입니다. ‘아무개 아들’ 강운구라서 눈여겨볼 만하지 않겠지요.

 

 사진을 바라볼 때에는 이 사진을 빚은 사람 ‘이름값이 드높기’ 때문에 사진 작품까지 ‘다른 사람 작품보다 더 드높게 여기며 바라보’아야 하지 않아요. 모두 똑같은 사진으로 한 자리에 놓고 바라봅니다.

 

 대학교를 다닌 사람 작품이 고등학교나 중학교까지 마친 사람 작품보다 나을 수 없습니다. 미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영국으로 떠나 사진을 배운 사람이 한국땅에서 사진강좌 한 번 못 듣고 홀로 사진길 걸은 사람 작품보다 훌륭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름표, 졸업장, 나이, 성별, 재산, 얼굴, 몸매 따위를 따지며 사진을 읽지 않아요. 우리는 사진쟁이가 어떤 장비를 썼느냐를 따지며 사진을 읽지 않아요. 우리는 사진꾼이 무슨 사진감을 몇 해나 몇 달쯤 붙잡으며 사진길을 걸었느냐를 살피며 사진을 읽지 않아요.

 

 

 

 매그넘 회원 작가이기 때문에 더 돋보일 사진은 없습니다. 신문기자이기 때문에 더 남다를 사진은 없습니다.

 

 “내가 연애를 하지 않았더라면 꽃말이며 꽃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35쪽)?” 하는 말처럼, 누구나 살아가는 결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살아가는 결, 사랑하는 결, 살림하는 결, 생각하는 결, 마음쓰는 결이 사진으로 묻어납니다.

 

 김현철 님은 당신 아버지라는 빛과 그림자를 짊어져야 했기 때문에, “‘구타 다음에 십타가 있다’는 농담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군대생활 하면서 고생 안 해 본 사람 없겠지만, 내 경우는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의도적으로 나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제대를 며칠 남겨 놓지 않은 어느 날은 중대장으로부터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 그대로 하루 종일 구타를 당했다. 정말 참을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참아야 했다(159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군대라는 곳은 사내들이 끌려가고 가시내들은 끌려가지 않아요. 그나마 한국땅에서 가시내들은 조금 낫구나 싶기도 하지만, 군대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사내들이 군대에서 주먹다짐과 거친 말에 길든 나머지, 이 주먹다짐과 거친 말을 가시내들한테 풀어놓는다면, 가시내들도 사내들과 똑같이 군대 뒤탈을 앓는 셈입니다. 모두 슬픈 사람 슬픈 삶 슬픈 사랑이 되고 맙니다.

 

 

 

 조그마한 사진책 《거제 가는 길》은 어떤 사진일까요. 작은 크기 사진책 《거제 가는 길》은 어떤 책일까요. 정치꾼이 되고픈 꿈을 키우려는 출판기념잔치 책일까요, 참으로 수수한 김현철 님 삶을 나즈막한 목소리와 매무새와 눈길로 돌아보는 이야기를 담은 사진일까요. 어떤 마음이 샘솟아 사진기를 손에 쥐었을까요. 어떤 꿈을 북돋우며 연필을 손에 들었을까요.

 

 “외포리 양조장에서 만난 ‘김현철 씨’. 나를 보고 먼저 말을 걸어 왔다. “저도 김현철입니다.” 아는 척을 해 주니 괜히 기분이 좋다. 현철 씨! 혹시 나 때문에 손해 본 일은 없지요(41쪽)?” 하고 스스로 묻는 김현철 님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정치를 꿈꾸기에 이 작은 사진책 《거제 가는 길》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요.

 

 대통령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나날을 스스로 사진으로 찍을 수 있고, 청와대에서 바라본 비서들과 경호원들과 장관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담을 수 있습니다. 김현철 님은 국회의원이 된다면 국회의사당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기자들만 찍는 사진이 아니라 국회의원도 찍는 사진을 선보일 수 있을까요. 기자 자리에서 바라보며 찍는 사진이랑, 국회의원이 국회의사당에 앉아 바라보며 찍는 사진이라면 얼마나 달라질까요.

 

 김현철 님은 삶이 삶인 나머지, ‘민생투어’라든지 ‘서민 만나기’를 합니다. 곧, 김현철 님은 ‘민생을 모른다’거나 ‘서민이 아니다’고 할 만한 셈입니다. ‘서민 정책’이라든지 ‘민심 살리기’를 말하는 정치꾼은 모두 서민을 이제껏 등졌다는 소리밖에 아닙니다.

 

 

 

 나는 《거제 가는 길》이라는 작은 사진책이 뭐 대단하다 여기지 않습니다. 이 사진책 하나가 한국 사진 발자취에 길이길이 아로새겨지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이 작은 사진책을 비평하거나 비판하거나 이야기할 사진비평가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 만하듯, 비평을 받아야 사진이 작품으로 거듭나지 않습니다. 비판이나 이야기를 들어야 비로소 사진이 사진답다 할 만큼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누구나 내 삶을 누리듯 사진을 누립니다. 누구라도 내 삶을 사랑하듯 사진을 사랑합니다.

 

 하루하루 내 좋은 삶을 빚는 꿈처럼, 하루하루 내 좋은 삶을 담는 사진이면 흐뭇합니다. 내 곁에 있는 고운 사람을 사랑스레 바라보며 사진으로 한 장 담아도 좋고,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겨도 좋습니다. 내 둘레에 있는 고마운 사람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사진으로 두 장 찍어도 좋고, 가슴속에 예쁘게 아로새겨도 좋아요.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습니까.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갑니까.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합니까. 어떤 마음으로 책을 읽고, 어떤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며, 어떤 마음으로 밥을 합니까. (4345.2.11.흙.ㅎㄲㅅㄱ)


― 거제 가는 길 (김현철 글·사진,미지애드컴 펴냄,2011.8.1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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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 가자 - 겨울 도토리 계절 그림책
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 / 보리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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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을 담는 그림으로 빚는 책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1] 이태수·윤구병, 《우리끼리 가자》(보리,1997)

 


 나는 그림책을 1999년에 비로소 읽었습니다. 1998년 12월을 끝으로 대학교에 휴학계를 내고는 ‘대학교 자퇴 선언’을 했어요. 모두 다섯 학기를 다닌 대학교인데, 군대를 마치고 곧장 그만두고 싶었으나 두 학기를 더 다녔고, 두 학기를 더 다니면서 대학 교육이 한 사람한테 얼마나 도움이 안 되는가를 더욱 뼈저리게 느껴, 배움값으로 돈을 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아니, 돈보다 ‘돈까지 치르며 내 젊음을 흘려버리는’ 일이 몹시 슬프며 싫었어요. 대자보를 큼지막하게 하나 써서 붙이고, 학과방에 편지를 남깁니다. 대학교 그만두는 사람이 쓴 대자보는 누군가 금세 뜯어서 치웠고, 내가 남긴 편지도 금세 쓰레기통에 처박힙니다. 모두들 졸업장을 따려고 애쓰는 판이니, 대학교 그만두는 목소리는 스며들 구멍이 없었구나 싶어요.

 

 돌이켜보면, 대학교를 그만두지 않았으면 1999년뿐 아니라 2009년이나 2019년까지도 그림책을 읽지 않으며 살았을는지 모릅니다. 혼인해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림책에는 눈길조차 안 두며 살았을는지 모릅니다. 혼인을 하지 않았으면 그림책을 읽었을까 궁금합니다. 참말, 나는 대학교를 그만두고 신문사지국에서 신문돌리기를 하며 조용히 일하던 1999년 봄에 그림책을 처음으로 읽었습니다. 얽매인 사슬이 없고, 옥죄는 밧줄이 없으니, 참으로 홀가분하게 그림책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1999년 봄, 내가 새벽에 일어나 돌리는 신문에 난 조그마한 책소개 기사 하나 눈에 뜨였습니다. ‘세밀화로 그린 도토리 계절 그림책’ 가운데 봄 이야기인 《우리 순이 어디 가니》가 나왔다는 기사입니다. 신문기사를 가위로 오립니다. 하나는 내가 건사하고 하나는 대학교 앞 구내서점 아저씨한테 가져가서 보여주며, 이 책을 갖추어 달라고 말합니다.

 

 한 주쯤 기다린 끝에 책을 받습니다. 이무렵 신문돌리기 한 달 일삯으로 삼십만 원을 받았고, 이 가운데 십육만 원은 적금을 부었어요. 십사만 원으로 한 달 살림돈을 삼으니 하루치 살림돈을 고스란히 들이는 책입니다. 도서관에 얘기해서 책을 받아 빌려읽을 수 있으나, 이 그림책은 꼭 사서 읽고 싶었습니다. 품에 안고 싶어요. ‘그림책이라니? 그림책이라니?’ 하고 생각하면서 내 품으로 꼬옥 안으며 읽고 싶었어요.

 

 책방에서 책을 받아 신문자전거 짐바구니에 넣습니다. 오르막을 낑낑대며 오르며 신문사지국으로 돌아옵니다. 들뜬 마음으로 책장을 넘깁니다.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읽으며 굵다란 눈물방울 톡톡 떨굽니다. 여러 시간 걸쳐 그림책 한 권 여러 차례 아주 천천히 읽으며 새깁니다.

 

 이날 뒤로 도서관이나 새책방이나 헌책방으로 마실을 다니며 그림책을 꼼꼼히 둘러봅니다. 도서관과 새책방에서는 갓 나온 그림책을 살피고, 헌책방에서는 나라밖 그림책이랑 사라진 옛 그림책을 돌아봅니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무렵에 나온 그림책은 몹시 드물지만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1960년대에도 그림책이 더러 나온 자취를 찾습니다. 1950년대 한국 그림책도 어쩌다 구경합니다. 1960년대 과학잡지에 실린 ‘일본 작품 베낀 만화’를 훑습니다.

 

 

 스스로 책을 이모저모 찾으며 읽는 동안, 한국땅 어른들이 한국땅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베풀려고 애쓴 지는 얼마 안 되었다고 깨닫습니다. 1990년대를 넘어서며 겨우 그림책이 싹텄다 할 만하고, 2000년대를 넘어서며 나라밖 그림책이 펑펑 쏟아지듯 나온다 할 만해요. 1980년대 그림책은 으레 일본 그림책을 저작권계약 안 하고 낸 판이기 일쑤였는데, 이나마 전집으로 묶어 파는 책들이었으니, 내 국민학생 무렵에는 나뿐 아니라 내 동무들도 그림책을 읽으며 자랄 수 없었겠구나 싶습니다. 살림돈 넉넉해서 그림책을 전집으로 선물할 만한 또래동무는 한둘 있을까 말까였으니까요.


.. 동물 마을에 겨울이 왔어. 하루는 아기토끼가 동무들을 불러모았어. “우리 산양할아버지한테 옛날이야기 들으러 갈래?” “그래, 그래.” 곰이랑 다람쥐랑 멧돼지랑 너구리랑 족제비랑 노루랑 모두모두 좋아했어 ..  (6쪽)


 1999년 봄에 《우리 순이 어디 가니》를 처음 만나고서 그림책에 눈을 뜬 나는, 1999년 여름에 이 그림책을 펴낸 출판사에 들어갑니다. 늙어 죽는 날까지 신문사지국에서 신문밥을 먹으며 살아가려나 생각했는데, 신문을 돌리며 읽던 《작은책》이라는 잡지에 난 ‘출판사 새 일꾼 받음’ 알림글을 살피다가 ‘학력 따지지 않음’이라는 말에 끌려 입사지원서를 냈어요. 나는 고졸이거든요. 고졸을 쓰겠다는 일터는 드물거든요.

 

 《우리 순이 어디 가니》를 펴낸 출판사에 들어간 뒤, 《바빠요 바빠》가 태어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봅니다. 이 그림책들 간기에 ‘영업부 일꾼 이름’이 빠진 대목은 옳지 않다고 여러 차례 얘기한 끝에 내 이름 석 자도 1쇄와 2쇄를 찍을 때에는 조그맣게 나란히 실립니다. 책은 편집부 일꾼 땀방울로만 빚지 않거든요. 책을 알리고 책방에 깔며 사람들한테 파는 영업부 일꾼뿐 아니라, 출판사 살림을 맡는 관리부 일꾼하고, 인쇄소와 제본소를 오가며 꼼꼼히 살피는 제작부 일꾼 땀방울까지 그러모아 빚어요.

 

 

 《바빠요 바빠》 3쇄를 찍을 무렵에는 이 일터를 그만둡니다. 아무래도 나는 나를 길들이려 하는 사람들하고 어깨동무를 할 수 없습니다. 좋은 그림책 하나가 아이들을 ‘좋은 길로 길들이는 가르침’이 아니라 한다면, ‘좋은 책을 빚으려는 일이란 일터 사람들을 틀에 맞추는 부속품으로 여기는 굴레’여서는 안 되니까요.

 

 그림책을 그리는 사람이랑 그림책에 글을 넣는 사람은 온누리를 두루 살피는 몸가짐이어야 합니다. 이 그림책 읽을 아이들 눈높이와 삶과 꿈을 톺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그림책 장만해서 아이들과 즐길 어른들 눈길과 살림살이와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주인공만 돋보이게 그릴 수 없습니다. 그림책 뒷자리를 이루는 자잘한 그림은 허술하게 그릴 수 없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담을 그림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다이 빚을 그림입니다.


.. 커다란 떡갈나무를 지나는데, “아참, 난 도토리를 모아야 해. 그래야 겨울을 날 수 있어.” 아기다람쥐가 나무 위로 쪼르르 올라가는 거야. “그럼 우리끼리 가자.” “그래, 그래.” ..  (11쪽)


 그림책 《심심해서 그랬어》와 《우리끼리 가자》와 《우리 순이 어디 가니》와 《바빠요 바빠》는 ‘세밀화로 돌아보는 봄·여름·가을·겨울’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차례를 보면, 여름 겨울 봄 가을, 이렇게 나왔어요. 철에 맞추어 고우며 보드라운 붓결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도시사람들 누구나 잊거나 멀리하는 살가운 자연과 들판과 논밭과 멧골을 보여줍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들부터 읽고,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 살아갈 아이들이 읽도록 마련한 ‘세밀화 계절 그림책’입니다. 시골에서 태어났거나 시골에서 살아가는 어른이나 아이들 읽으라고 마련한 그림책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시골마을 시골어른과 시골아이는 애써 그림책을 들추지 않아도 되니까요. 들판이 그림책이고, 멧자락이 그림책이에요. 밭고랑이 그림책이고, 바닷가 갯벌이 그림책이에요. 하늘이 그림책이며, 햇살이 그림책입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나는 이 그림책들을 아주 신나게 팔았습니다. 스물다섯 살 젊은 사내는 서른 서른다섯 아줌마들한테, 또 마흔 마흔다섯 아줌마들한테 이 그림책들을 매우 바지런히 팔았어요. 영업부 일꾼으로 열한 달 일하면서 이 그림책들만 해도 여러 천 권 팔았지 싶습니다. 나는 아줌마들한테 이 ‘세밀화 계절 그림책’을 아이들한테 읽히면 ‘(도시) 아이들한테 자연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좋은가’ 하는 꿈과 사랑을 느끼도록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득 다시 생각합니다. 내가 이 그림책을 처음 만난 그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밟는 땅은 땅이라기보다 시멘트길이거나 아스팔트길입니다. 맨흙을 복복 소리 느끼며 밟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일터를 오가든 학교를 다니든, 비오는 날 질척거리는 흙이 신에 잔뜩 엉겨붙으며 걷는 일이 없습니다. 풀포기 마음껏 자라나는 흙땅에서 뒹굴 일이 아예 없습니다. 자연은 온통 그림책에만 담깁니다. 내 둘레 어디에도 자연이란 없는데 그림책에만 자연이 싱그럽다는 빛깔로 펄떡펄떡 숨쉽니다.

 

 

 자연을 꼼꼼하게 살피고 꼼꼼하게 담는 그림이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어떻게 그릴 때에 ‘세밀화’라는 이름 그대로 ‘꼼꼼그림’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그림은 사진하고 달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나타낼 수 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그림은 어느 한 구석 안 빠뜨리거나 허술히 안 다룰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옛날 옛적 갓날 갓적에…….” 산양할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시작했어. 아기토끼는 어느 틈에 잠이 들고, 산 속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렸단다 ..  (26쪽)


 한국에 여우는 살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여우를 보자면 동물원에 가야겠지요. 그런데, 동물원에서 바라보는 여우를 그림으로 담는다 한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차디찬 시멘트 감옥에 갇힌 사람을 그릴 때하고, 드넓은 논밭에서 구슬땀 흘리는 사람을 그릴 때에는 어떠한 느낌이 될까요. 갇힌 짐승과 홀가분한 들짐승을 바라보는 느낌은 어떠할까요.

 

 그림책에 여우를 담으려면, 도토리 가득 주둥이에 물은 다람쥐를 그리려면, 멧골을 누비는 곰을 보여주려면, 먹이를 찾는 크고작은 멧돼지를 만나려면, 한국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세밀화 계절 그림책’ 만드는 곳에서 일했기 때문에, 헌책방을 부지런히 쏘다니면서 다케타쓰 미노루(竹田津 實)라는 분이 담은 사진책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平凡社,1974)를 장만했습니다. 이밖에 숱한 일본 사진책과 그림책을 꾸준히 구경하고 장만했습니다. 내가 1999년에 출판사에 들어가 일하던 무렵이나 그 뒤로 오랫동안 다케타쓰 미노루라는 이름은 한국에 거의 안 알려졌습니다. 이제는 몇 가지 책이 한국말로 옮겨지는데, 막상 이분 사진책이 한국에서 새롭게 나오거나 알알이 알려지지는 않습니다. 훗카이도 동물병원 이야기만 나돌 뿐입니다. 이분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들여우를 보살피기도 하고 들여우를 마주하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여우들이 들판에 굴을 파며 새끼를 낳고 살아가거든요. 일본 사진쟁이 호시노 미치오(星野道夫) 님은 《Grizzly》(平凡社,1985)를 비롯해서 북극곰 한삶을 사진으로 숱하게 찍어서 남겼습니다. 일본에도 곰이 있습니다만, 더 너르며 홀가분한 터전에서 어여삐 살아가는 목숨을 마주하고 싶기에 애써 북극까지 찾아가 북극곰을 만나요.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책 또한 어린이 그림책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찬찬히 알아채며 사랑할 수 있었어요.

 

 

 나는 ‘세밀화 계절 그림책’ 네 권 가운데 《우리끼리 가자》를 가장 좋아합니다. 겨울빛을 가장 곱게 담아낸 한국 그림책이라고 느낍니다. 한국에서는 《우리끼리 가자》만큼 겨울빛을 예쁘게 보여주는 그림책이 아직 없다고 느낍니다.

 

 다만, 이 그림책 《우리끼리 가자》에는 몇 가지가 없습니다. 곱고 정갈하다 할 만한 그림이지만, 눈부신 빛살이 없습니다. 온누리 하얗게 덮을 만큼 소복히 내리는 눈은 몹시 눈부십니다. 눈이 그친 맑은 하늘은 아주 눈부시고, 파란 빛깔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은 온누리를 하얗게 밝힙니다. 온통 하야면서 아주 또렷합니다. 눈이 가득 덮인 멧자락 오르는 이들은 까만안경을 쓰곤 하는데, 예전에는 눈안경이라고 ‘실눈 뜨듯 길쭉하게 틈을 벌린 종이 안경’을 썼다고 해요. 눈부신 빛살과 눈더미 빛결 때문에 앞을 볼 수 없거든요.

 

 햇살이 구름에 가려 눈이 펑펑 내릴 때에도 온누리는 무척 또렷합니다. 환하고 또렷합니다. 바람이 되게 몰아칠 때에는 무시무시하게 춥지만, 바람이 잠자며 눈발만 쏟아질 때에는 소리가 잦아들고 둘레가 포근합니다. 멈춘 듯한 그림이 눈앞에 드넓게 펼쳐집니다.

 

 한여름에는 한여름대로 들판과 멧자락이 푸른 빛으로 눈부시도록 또렷합니다. 봄가을에는 봄가을대로 들판과 멧자락과 마을이 봄빛과 가을빛으로 눈부시도록 환하면서 또렷합니다.

 

 

 이제 아이들과 복닥이는 나날을 보내는 어버이로 살아가면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세밀화 계절 그림책’을 읽히며 가만히 되짚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세밀화 계절 그림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방문을 열고 대청마루에서 바깥을 내다 보기만 해도 ‘세밀화보다 더 꼼꼼하며 촘촘히 드러나는 봄철 여름철 가을철 겨울철 자연 삶자락’이 펼쳐지거든요. 애써 그림책까지 뒤적이면서 자연을 따로 찾아야 하지 않아요.

 

 곧, 이 그림책들, ‘계절 그림책’이 되든 ‘세밀화 그림책’이 되든 ‘자연 그림책’이 되든, 그림책이란 도시에서 태어나서 살아갈밖에 없는 아이들이 시멘트와 아스팔트에 꽁꽁 갇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뻗지 못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따로 만들어야 하는 빚이로구나 싶어요. 자연을 밀어 없앤 자리에 ‘자연을 담은 그림책’을 놓습니다. 숲을 밀어 없앤 자리에 ‘숲을 베어 만든 그림책’을 놓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어깨동무하며 몸소 느끼도록 하는 ‘자연책’이 아니라 ‘자연을 베고 공장을 돌려 만드는 책’을 지식과 정보로 아이들한테 읽히며 길들이는 어른입니다. 숲을 아끼고 돌보는 ‘숲책’이 아니라 ‘숲을 밀어 아파트 짓고 학교 짓고 건물 짓는 도시살이를 감추며 길들이는 책’을 자연사랑 이야기꾸러미로 내미는 어른입니다.

 

 나부터 내 삶을 돌이키면,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며 도시에서 사는 동안 ‘세밀화 계절 그림책’을 예쁘다 하고 느낄밖에 없습니다. 도시에서 멀찍하게 떨어진 시골에서 시골사람으로 지내는 하루하루 누릴 때에는, 시골자락 시골길과 시골숲을 굳이 사진으로 찍지 않더라도 늘 온마음으로 즐깁니다. 아이들과 활짝 웃으며 서로서로 자연이 되면 서로가 서로한테 좋은 삶책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저러하대서 《우리끼리 가자》를 비롯한 ‘세밀화 계절 그림책’이 나쁘거나 뜻없다고 느끼지 않아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아가잖아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헤어나려고 힘쓰지 않잖아요. 너무도 많은 어른들이 도시에서 버티고 살아가면서 이녁 아이들을 도시사람으로만 키우잖아요. 아이들은 스스로 깨우쳐 도시 굴레와 도시 사슬을 풀 수 있어요. 아이들은 그만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며 어른들이랑 똑같이 구르다가 어느 날 문득, 《우리끼리 가자》 같은 그림책을 읽다가 아주 가느다란 실마리 하나를 붙잡고는 ‘이제부터 내가 참다이 사랑하며 착하게 살아갈 길을 열자’ 하면서 생각을 바꿀 수 있어요.

 

 나한테 《우리끼리 가자》는 자연을 그림책으로만 보며 내 삶은 정작 도시에 그냥 버티고 눌러앉는 하루가 얼마나 바보짓인가 하고 느끼도록 도와준 길동무입니다. 도시에서 부대끼던 때에는 가까이에 이 그림책들을 놓았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오늘은 이 그림책을 책시렁 한쪽에 얌전히 모셔놓습니다. (4345.2.10.쇠.ㅎㄲㅅㄱ)


― 우리끼리 가자 (이태수 글,윤구병 그림,보리 펴냄,1997.3.15./7500원)

 

 

덤. 지난날, 출판사에서 함께 일하던 선배들한테 받은 글줄.

내 생일 기념으로 책에다 글 한 줄씩 남겨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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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2-10 12:39   좋아요 0 | URL
한 편의 수묵화같은 그림책이라 저 또한 이책을 좋아합니다.
화려한 그림들에 눈이 멀어갈때쯤 부러 이러한 책들을 들여보곤했었는데 요즘 깜빡했단 생각이 드네요.아이들 유치원에서 다녀오면 이책을 다시 찾아봐야겠어요.

님의 리뷰에도 조용하게 하얀 눈이 내리네요.^^

숲노래 2012-02-11 08:01   좋아요 0 | URL
파스텔 수묵화라 하겠지요.
어깨에 조금 더 힘을 빼고
더 보드라이 그리거나
더 또렷하게 그렸으면
참 좋았겠다고 느껴요.

2012-02-10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1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1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1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2-10 17:13   좋아요 0 | URL
일본은 정말 여우가 많더군요.그런데 여우는 미국이나 유럽에도 많더라고요.도심지에도 나타나고...그리고 일본엔 곰도 많더군요.반달곰도 많고, 북해도엔 불곰도 많고...

도화에 제일 많은 산짐승은 뭔가요?

숲노래 2012-02-11 08:01   좋아요 0 | URL
음... 까마귀와 까치?
^^;;;
되게 많답니다.

너구리랑 오소리도 봤고... 흠...
 
나의 칼 나의 피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92
김남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흙과 꿈과 사랑을 노래하는 삶
[시를 노래하는 시 11] 김남주, 《나의 칼 나의 피》

 


- 책이름 : 나의 칼 나의 피
- 글 : 김남주
- 펴낸곳 : 실천문학사 (1987.11.15.)
- 책값 : 5000원

 


 겨울도 한철, 추위에 오슬오슬 떨며 옷을 두껍게 껴입는다지만, 머잖아 한 겹 두 겹 훌훌 털어낼 봄을 맞이하리라 생각합니다.

 

 겨울이니 춥기 마련입니다. 겨울이니 추위가 닥치기 마련입니다. 추운 겨울 따스히 나고자 여러모로 마음을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지난밤, 물을 졸졸 틀어놓습니다. 따스한 남녘땅에서 물이 어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자칫 물이 얼면 어찌 손쓸 길이 없으니 졸졸 틀어놓습니다. 방 온도가 14도 밑으로 내려가는 날에는 물을 틉니다. 지난 12월과 올 1월 2월 석 달에 걸쳐 오늘로 세 번째 14도 밑으로 온도가 내려갑니다.

 

 마당에는 흰눈이 쌓였습니다. 지난 석 달에 걸쳐 마당에 눈이 쌓이기로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내리는 듯 마는 듯하던 눈이요, 내리면 곧 녹는 눈이었는데, 간밤에는 아이 새끼손톱보다 조금 얕게 쌓입니다. 첫째 아이와 둘이서 뒤꼍으로 나가 한참 발자국놀이를 했습니다.


.. 그들은 척척박사이기에 무엇보다도 먼저 묻겠다 / …… / 팔레비와 소모사와 이 아무개와 박아무개가 / 제 스스로 물러났던가 ..  (나 자신을 노래한다)


 모처럼 얼어붙는 남녘땅 겨울날 새벽나절, 나는 부시시 일어나 빨래를 합니다. 이런 날씨에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마당에 빨래를 널더라도 꽁꽁 얼어붙습니다. 기저귀 빨래는 처음에는 얼다가도 이내 녹으면서 마르지만, 여느 옷가지는 얼어붙기만 할 뿐 마르지 않아요. 꽁꽁 얼어붙는 날씨에는 빨래를 조금씩 꾸준히 하면서 앞에 한 빨래가 마를 만하다 싶으면 걷어서 방바닥에 펼쳐 바싹 말립니다. 뒤이어 새 빨래를 합니다. 한꺼번에 많이 하면 말리기 수월찮으니 알맞게 나누어 빨래를 합니다. 이럭저럭 하루이틀 보내면 밀리는 빨래 없이 옷을 건사할 수 있습니다.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무렵 빨래를 하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옆지기 옷가지는 내 옷가지처럼 커다랗습니다. 두 아이 옷가지는 참말 작습니다. 아이들 바지나 웃도리 길이는 나와 옆지기 웃도리 소매 길이만큼 되지도 않습니다. 참 작고 짧아요. 이 작고 짧은 옷을 입으며 살아가는 아이들 또한 나와 옆지기하고 똑같은 넋이 깃든 목숨이 펄떡펄떡 숨쉽니다.

 

 작은 사람은 작은 기운을 내겠지요. 작은 사람은 큰 사람처럼 큰 기운을 낼 수 없겠지요. 큰 사람은 짐을 많이 짊어지면서 작은 사람을 업거나 안을 수 있다지만, 작은 사람은 짐을 짊어지기에도 벅차고 큰 사람을 업거나 안을 수 없겠지요.


..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 …… / 제 자신을 속이고서 ..  (자유)


 돈이 넉넉한 사람이 돈이 없거나 모자란 사람한테 돈을 나누는 일은 참 마땅하다고 느낍니다. 먹을거리 푸짐하게 갖춘 사람이 배고프거나 배곯는 이하고 밥을 나누는 일은 더없이 마땅하다고 느낍니다. 똑똑하거나 슬기로운 사람이 어리숙하거나 어리석은 사람하고 앎·넋·꿈을 나누는 일은 몹시 마땅하다고 느낍니다.

 

 내가 글을 쓰는 까닭은 달리 있지 않습니다. 내가 더 갖춘 앎이 있으면 나눕니다. 내가 더 읽은 책이 있거나 내가 더 생각하는 꿈이 있거나 내가 더 깨달은 이야기가 있으면 스스럼없이 글을 써서 나눕니다.

 

 누군가는 나처럼 글을 쓸 테고, 누군가는 글솜씨 없다며 입으로 알콩달콩 말잔치를 베풀겠지요. 누군가는 그림을 그릴 테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을 테며, 누군가는 춤과 노래를 들려주겠지요.

 

 누군가는 맛난 밥을 차립니다. 누군가는 빨래를 합니다. 누군가는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합니다.

 

 누군가는 호미질을 하고, 누군가는 괭이질을 하며, 누군가는 삽질을 합니다. 누군가는 그물을 던지고, 누군가는 도끼를 찍으며, 누군가는 나물을 다듬습니다.


.. 셋이라면 더욱 좋고 / 둘이라도 떨어져 가지 말자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앞에 가며 너 뒤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 뒤에 남아 너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 열이면 열 사람 천이면 천 사람 어깨동무하고 가자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눈이 덮인 마을은 고요합니다. 들쥐도 들고양이도 발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멧새도 들새도 어디에선가 따사로이 잠을 잘 테고, 멀찍이 떨어진 한길을 오가는 자동차는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이 자는 밤나절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큰보름이 지났으나 달빛은 아주 밝습니다. 다른 철에는 보름이 지나면 달빛이 이내 사그라들지만, 큰보름 앞뒤로는 보름달 아니어도 달빛이 몹시 밝아요. 마을 곳곳 어두운 데 없이 환하게 비춥니다.


.. 누가 허리 꺾인 네 상처에 / 꽃잎 대신 철가시바늘을 꽂아놓았느냐 ..  (학살 2)


 구름이 지나갑니다. 구름이 달을 가립니다. 구름이 걷힙니다. 달이 다시 환합니다. 구름은 또 흐릅니다. 달빛은 살짝 가리고, 달빛이 살짝 가린다지만 보름달 빛살은 온누리 골고루 퍼집니다.

 

 달빛이 맑고 밝은 밤에는 그림자가 매우 짙습니다. 달빛을 머금은 그림자는 등불이 만드는 그림자와 견줄 수 없이 매우 짙습니다. 전깃불 그림자는 달그림자하고 나란히 서지 못합니다. 전깃불 그림자는 조금만 떨어져도 아스라히 사라지고, 달그림자는 내가 어디에 서든, 내가 무엇을 하든, 내가 어떻게 몸짓을 하든, 내 모든 결과 무늬에 따라 그림자를 빚습니다.

 

 아이를 안고 고샅을 걸으면 아이를 안은 내 모습이 논자락에 펼쳐집니다. 아이와 손을 잡고 마당을 노닐면 아이 손을 잡은 내 모습이 후박나무 그림자와 함께 마당을 가득 채웁니다.


..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가 / 외적의 앞잡이이고 / 수천 동포의 학살자일 때 / 살아 남은 사람들이 있어야 할 곳 / 그곳은 어디인가 ..  (살아 남은 자들이 있어야 할 곳)


 달이 있고 별이 있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흙이 있고 풀이 있는 땅을 내려다봅니다. 하늘은 까만 빛깔에서 노랗게 보랗게 발갛게 물들다가는 파아랗게 물들며 아침이 찾아옵니다. 겨우내 땅은 누렇다가 하얗다가 다시 누렇게 바뀌다가는 금세 푸르게 물들며 따스한 기운 가득합니다.

 

 내 마음속에 봄을 그리는 꿈이 있기에 봄이 찾아옵니다. 한여름 무더위, 내 마음속에 겨울을 그리는 꿈이 있어서 겨울이 찾아옵니다.

 

 사람들 따스한 사랑이 하나둘 모여 따순 날씨가 됩니다. 사람들 차디찬 미움과 시샘과 꾐수가 얼크러져 차디찬 날씨가 됩니다.

 

 그냥 더운 날이나 그냥 추운 날은 없다고 느껴요. 마음이 차가울 때에 차가운 날씨요, 마음이 따사로울 때에 따사로운 날씨예요.

 

 내 삶에 따라 달라지는 날씨입니다. 내 넋을 돌보는 삶에 따라 바뀌는 날씨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매무새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날씨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널뛰는 날씨입니다.

 


..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 뜨는 해와 함께 일어나고 / 지는 달과 함께 자며 /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팍팍한 가슴에도 있고 ..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스러운 날씨라서 사랑을 한결 짙게 느낀다고도 하지만, 내 가슴에 사랑꽃이 흐드러질 때에 비로소 사랑스러운 날씨입니다. 내 가슴이 사랑이라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구름이 끼든 사랑스러운 날씨입니다. 내 가슴이 사랑 메말라붙어 차디차거나 메마르거나 쓸쓸한 빈터라면, 해가 나든 해가 기울든 비가 오든 비가 멎든 메말라붙거나 차디차거나 메마르거나 쓸쓸한 날씨입니다.

 

 내 마음으로 읽으면서 느끼는 날씨입니다. 내 가슴으로 다스리는 날씨입니다. 내 마음으로 읽으면서 느끼는 삶입니다. 내 가슴으로 다스리는 삶입니다. 내 마음으로 읽으면서 느끼는 사람이고 마을이며 보금자리예요.


..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우리 농민들에게 소중했던 것 / 그것은 / 돌이었다 낫이었다 창이었다 ..  (돌과 낫과 창과)


 씨앗을 심는 흙일꾼들 마음은 혼자 배부르려는 마음일 수 없습니다. 같이 먹고 같이 나누며 같이 흐뭇한 삶을 꿈꾸는 마음입니다.

 

 씨앗을 심는 흙일꾼들한테까지 돈을 심으려 하는 등쌀 때문에, 흙일꾼들은 그만 풀약을 쓰고 비료를 쓰며 항생제를 씁니다. 누구보다 잘 알고 느끼는 흙일꾼들부터 ‘유전자 건드린 씨앗’을 돈을 치러 사서 쓰고 맙니다. 곡식과 열매를 거둔 다음, 이 곡식과 열매 가운데 씨앗을 갈무리해서 이듬해에 새로 심지 못하고 말아요. 볍씨를 갈무리하더라도 모판에 비료를 쳐서 빽빽하게 자라도록 한 다음 기계에 앉혀 논바닥에 기계로 밀 뿐입니다. 사람이 먹는 곡식을 어떻게 간수하며 보살펴야 하는가를 그만 흙일꾼 스스로 잊고 맙니다.

 

 흙일꾼한테 돈마음을 심은 도시사람은 스스로 흙을 밟지 않습니다. 스스로 흙을 밟지 않으니, 볍씨가 무엇이고 볏모를 어떻게 나도록 하며 볏모를 어떻게 논에 심어야 하는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볍씨와 볏모와 볏가리를 살피지 못해요. 오직 돈으로 쌀을 돌아봅니다. 값이 싼가 비싼가, 유기농인가 아닌가, 저농약인가 아닌가, 친환경인가 아닌가, 이런저런 대목은 살피지만, 막상 볍씨일 때부터 얼마나 어떻게 사랑받은 씨앗이요, 이 씨앗에 어떤 땀과 삶과 꿈을 담아 논바닥에 심는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 나는 자유의 편에 서 있다고 / 나는 불의에는 반대한다고 / 입을 열어 한번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 쥐꼬리만한 봉투 때문에 / 보잘것없는 지위 때문에 ..  (지위)


 돈 때문에 풀약을 칩니다. 돈 때문에 비료를 뿌립니다. 돈 때문에 항생제를 씁니다. 돈 때문에 씨앗 유전자를 과학자들이 건드리고 농협에서 이 씨앗을 사고팝니다.

 

 돈 때문에 모내기와 모심기와 벼베기를 도시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하려고 나서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회사나 공공기관 일을 쉬지 못합니다. 돈 때문에 전철이나 버스를 멈추지 못합니다. 돈 때문에 4대강 삽질을 그치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수출과 수입이 끊이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자동차를 만들고, 돈 때문에 손전화기 만들며, 돈 때문에 공장을 세우고 고속도로를 닦습니다.

 

 오직 돈 때문입니다. 오직 돈 때문에 관광산업을 말합니다. 오직 돈 때문에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오직 돈 때문에 대학교로 보내려 합니다. 오직 돈 때문에 영어를 가르치고 배웁니다. 오직 돈 때문에 정치가 갈리고, 신문사와 방송사가 들썩입니다.

 

 그런데, 참말 돈 때문이라면, 참다운 돈을 찾거나 밝히거나 나누는 길을 가야 할 텐데요. 참말 돈 때문이라면, 옳게 벌고 옳게 쓸 돈을 제대로 깨달아 착한 일자리 바른 일거리를 찾아야 할 텐데요.


.. 감옥들은 부자들이 그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 그리고 이들은 감옥을 채우기 위해 경찰과 검사를 만들었으며 ..  (사실)


 지난날에는 대학생들이 농촌봉사활동이라는 이름을 걸고 철 따라 시골마을로 흙일을 하러 갔습니다. 오늘날에는 대학생들이 농촌봉사활동을 할까요.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수행평가나 자원봉사 같은 점수따기를 하고자 시골마을 흙일 봉사활동을 하기는 하나요.

 

 지난주 면내 우체국에 편지를 부치러 찾아가니, 면내 고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겨울방학 봉사활동 점수를 따려고 찾아와서는 우체국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끔찍하구나 싶어 차마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청소가 무슨 봉사활동이라고요. 청소는 집에서 늘 제 어버이와 함께 즐기는 삶이어야지요. 시골마을 아이들이라면 시골마을 아이들다이 제대로 봉사활동을 해야지요. 아니, 시골마을 아이들이니 시골마을 어버이와 이웃들이 날마다 늘 하는 일을 곁에서 거들며 배워야지요. 바닷가에서 아이들 어버이나 이웃과 함께 매생이를 거두고 굴을 까야지요. 물고기를 다듬고 그물을 꿰어야지요. 곡식을 갈무리하고 된장을 뜨고 새끼를 꼬아 매달아야지요. 참말 일다운 일을 거들거나 함께하면서 삶을 배워야지요. 점수를 따지 말고 사랑을 나누어야지요. 학교에서 시키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오는 꿈을 키워야지요.

 

 문득 생각합니다. 도시 아이들 모두 시골마을로 철 따라 이레씩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철 따라 이레씩 시골에서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모를 심으러, 김을 매러, 벼를 베러, 곡식을 갈무리하러, 철마다 이레쯤 스스로 땀흘리는 일과 삶과 사랑을 몸으로 느끼도록 해야 이 나라가 아름다이 거듭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 형제여 내 바라나니 서재에서 자유를 노래하지 말라 / 형제여 내 바라나니 학교에서 진리를 구하지 말라 / 형제여 내 바라나니 교회에서 예수를 찾지 말라 / 형제여 내 바라나니 법정에서 정의를 구하지 말라 ..  (희망에 대하여 2)


 아이가 태어나면 시골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제대로 살피지 못했으나, 이제는 이렇게 느끼고 생각합니다. 새로 태어난 아이를 사랑스레 기리거나 아끼거나 보살피자면, 이 아이들 모두 시골로 보내고, 아이들 어버이 또한 시골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아휴직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육아휴직이 아닌 시골살이를 해야 합니다. 시골에서 아이들이 흙을 밟도록 하고, 어버이 또한 흙을 밟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흙이 베푸는 선물을 물려받고, 햇살과 바람과 눈비와 푸나무가 베푸는 선물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들짐승과 날짐승이 베푸는 선물을 함께 받아먹으면서 아이들 마음밭 사랑씨앗이 무럭무럭 크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러는 동안 아이들 어버이는 이제껏 생각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던 참사랑과 참삶을 시나브로 알 수 있겠지요.


.. 올라가고 / 내려오지 않는다 / 올라가고 올라가고 올라가고 / 내려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여기서 저기까지 / 밭둑에서 논둑까지는 / 성한 다리 성한 팔은 하나도 없다 ..  (고향 3)


 아이들 이끌고 읍내마실을 하다 보면, 옆지기랑 아이들 다 함께 면내마실을 하거나 마을돌기를 하다 보면, 네 식구 즐거이 흙을 밟고 거닐 만한 데가 없다고 곧 깨닫습니다. 흙 있는 자리는 논이나 밭인데, 다른 사람 땅인 논밭을 함부로 밟기 어렵습니다.

 

 싱그러이 숨쉬는 흙을 밟고 살가이 풀이 자라는 흙을 느끼지 못하고서야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겠느냐 싶습니다. 공장에서 밥을 만들어 주지 않으니까요. 공장에서 옷을 만들어 주거나 집을 만들어 주지 않으니까요. 공산품 먹을거리가 넘친다지만, 어떠한 공산품이라 하더라도 ‘흙에서 태어’납니다. 흙이 없고서야 어떠한 공산품도 태어날 수 없어요.

 

 흙에서 거두고서야 비로소 공장이 움직입니다. 흙에서 일구어 얻은 다음에야 비로소 도시가 섭니다. 흙에서 가꾼 사랑이 있기에 사람이 숨을 쉴 수 있어요.


.. 그리하여 우리네 들판으로 하여금 / 더 이상 도시의 곡물지대가 되도록 하지 말자 / 그리하여 우리네 마을로 하여금 더 / 더 이상 도시의 상품시장이 되도록 하지 말자 / 그리하여 우리네 아들딸로 하여금 / 이 세상 잘난 놈들의 값진 고용살이 되도록 하지 말자 ..  (농부의 일)


 김남주 님 시집 《나의 칼 나의 피》(실천문학사,1987)를 읽습니다. 사람들은 김남주 시인을 일컬어 으레 ‘혁명전사’라 말하지만, 나는 김남주 시인은 혁명전사라 말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아니, 혁명전사이기는 혁명전사입니다. ‘낫을 들고 쟁기를 들어 흙을 일구는 혁명전사’입니다. 김남주 시인부터 스스로 낫을 들고 쟁기를 들어 살림을 꾸리는 흙일꾼이 되는 혁명전사예요.


.. 흔해빠져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으면서도 / 내가 없으면, 일분 일초도 없으면 / 세상은 순식간에 죽음의 바다, 나는 농민이다 ..  (농민)


 김남주 시인한테 ‘농민시인’이라는 이름도 걸맞지 않습니다. 애써 이름을 붙이려면 ‘혁명전사’가 맞습니다만, 어디에서 누구랑 무엇을 하는 혁명전사인가 하고 따지면, 바로 시골마을 조그마한 집에서 살붙이들과 땅을 일구는 흙빛 눈물이랑 흙내음 웃음 꽃피우는 혁명전사 시인이에요.

 

 흙을 노래하기에 낫을 듭니다. 흙을 꿈꾸기에 쟁기를 듭니다. 흙을 부여잡고 디디기에 혁명을 외칩니다. 흙하고 한몸뚱이가 되어 얼크러지기에 전사로 거듭나요. 흙에 입맞추고 흙에 몸을 누이기에 어여쁜 사람입니다.


.. 암흑의 / 시대의 / 시인의 일 그것은 무엇일까 / 침묵일까 / 관망일까 / 도피일까 / 밑 모를 한(恨)의 바다 넋두리일까 ..  (시인이여)


 해마다 한 차례쯤 김남주 시인 시집을 새로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직 도시에서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그야말로 머리로만 김남주 님 시를 읽으려고만 했다고 느낍니다. 이제 시골마을로 살림을 옮겨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조금씩 머리 아닌 몸으로, 생각 아닌 손발로 김남주 님 시를 만날 수 있다고 느낍니다.

 

 다만, 내 삶터는 시골마을이나, 내 몸뚱이는 아직 시골사람이 아닙니다. 날마다 기쁘게 밟을 흙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어요. 아이들과 마음껏 뛰놀며 부여잡을 흙땅을 넉넉히 건사하지 못했어요.

 

 이제 나는 어떻게든 오천 평을 마련하자고, 오백 평이나 쉰 평이라도 먼저 마련하자고, 우리들부터 예쁘게 살아갈 좋은 흙집과 흙땅과 흙터로 흙누리를 이루자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흙꿈을 꾸는 흙사랑을 시나브로 이룬다면,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은 언젠가 흙사람이 되어 흙빛 고이 감도는 흙이야기인 《나의 칼 나의 피》를 참다이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사랑만이 / 겨울을 이기고 / 봄을 기다릴 줄 안다 ..  (사랑 1)


 그러니까, 김남주 님한테 당신 칼은 당신 낫이며 쟁기요 호미입니다. 김남주 님한테 당신 피는 당신 흙이며 햇살이고 눈비입니다.

 

 썩썩 베는 낫질이 시로 태어납니다. 쿡쿡 엎는 쟁기질이 시로 거듭납니다. 콕콕 쪼는 호미질이 시라는 숨결을 얻습니다.

 

 칼춤이란 호미춤입니다. 칼노래란 낫노래입니다. 칼바람이란 쟁기바람입니다.

 

 고운 햇살 받아먹은 곡식과 푸성귀를 거두어 먹는 사람은 새로 태어납니다. 싱그러운 목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빛나는 몸뚱이로 다시 태어납니다. 빛나는 몸뚱이는 빛나는 넋입니다. 빛나는 넋은 빛나는 말입니다.

 

 그예 김남주 님은 차갑고 어두우며 풀포기 하나 없는 감방에 갇혀야 했으나, 스스로 흙사람이라는 꿈을 잊지 않았기에 시를 썼어요. 메말라붙은 시멘트바닥이 동서남북 꽁꽁 둘러싸고 쇠사슬과 쇠몽둥이와 쇠창살로 얽혀야 했으나, 스스로 흙사람이라는 사랑을 언제나 되새겼기에 시를 남겼어요.


.. 내가 손을 내밀면 / 내 손에 와서 고와지는 햇살 / 내가 볼을 내밀면 / 내 볼에 와서 다스워지는 햇살 /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 자꾸자꾸 자라나 / 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 / 내 목에 와서 감기면 /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 내 입술에 와서 닿으면 / 그녀와 주고받고는 했던 / 옛추억의 사랑이 되기도 한다 ..  (창살에 햇살이)


 사랑하고 싶습니다. 살아가고 싶습니다. 생각하고 싶습니다. 나는 내 칼을 쥐고 싶습니다. 나는 내 피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4345.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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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2-09 10:13   좋아요 0 | URL
언젠가 김남주 시인 육성으로 녹음된 시를 들었어요. 시는 제목도 잊어버렸는데 그 목소리는 기억나요. 카랑카랑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였죠.

오옷! 이것이 1000번째 느낌글인가요!

오신지 얼마 안 되었는데 언제 이렇게 많이 쓰셨을까요! 처음에 산들보라 똥기저귀며 식구들 빨래거리를 일일이 손빨래 하시는 보고 모니터 이 편에서 얼마나 놀랐게요. 하긴 그땐 님 서재에 와선 그런 인사치레도 남길 수 없었죠. 왠지 맞춤법이나 낱말을 한 톨도 틀리지 않고 맞게 써야 할 것 같아서..ㅎㅎ 서재 마실 다니시는 된장 님을 보면 이제 이 동네 주민 다 되셨구나 싶어요^^ 주민이 뭐예요? 터줏대감이신걸요.<--악..터줏대감도 '임자'로 벼루어야 하나요?(터줏대감이 일본식 말이라고 하던데 정말인가요?)

숲노래 2012-02-09 10:17   좋아요 0 | URL
저한테도 김남주 육성 시낭송 테이프 있었는데,
어느 날 누가 훔쳐갔어요 ㅠ.ㅜ

목소리를 듣고 나서는
시읽기가 한결 달라졌어요.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이 대목은 또 어떻게 읽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었거든요~~ ^^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 - 어떻게 낳을까 고민하는 예비 엄마를 위한 임신 출산 포토 에세이
오오노 아키코 지음, 이명주 옮김, 미야자키 마사코 사진 / 브렌즈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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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바라보며 찍는 사진입니까
 [찾아 읽는 사진책 57] 미야자키 마사코,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브렌즈,2010)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브렌즈,2010)은 사진책이라 할 수 있으나, 사진책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일본 산과의사 오오노 아키코 님이 쓴 글이 바탕이 되니, 여느 글책이라 할 수 있는데, 오오노 아키코 님 글은 이녁이 꾸리는 조산소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기와 아기를 낳는 어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미야자키 마사코 님 사진이 어우러지면서 빛을 냅니다.

 

 옆지기랑 두 아이와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을 찬찬히 읽습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 이 책을 만났거나 옆지기하고 살기 앞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내 삶이 달라졌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첫째는 2008년 8월에 태어났고 둘째는 2011년 5월에 태어났습니다. 이 책은 2010년에 나왔어도 나는 201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옆지기랑 한참 살아간 뒤, 두 아이를 낳고 나서야 비로소 이 책을 읽습니다.

 

 산과의사 오오노 아키코 님은 ‘아기와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한테 아픔이나 생채기가 되지 않을 아기낳기’를 꿈꿉니다. 아니, 아픔이나 생채기가 되지 않을 아기낳기가 아닌 ‘기쁨이나 사랑이 될 아기낳기’를 꿈꾸어요.

 

 

 

 

 

 

 

 

 “평평한 분만대에 누워 진통촉진제를 맞았고 간호사가 내 배에 올라타 아이를 밀어냈다. 지금도 생생한 그때의 감정을 말로는 잘 표현할 수가 없다. 경악과 공포, 그리고 이제껏 맛본 적 없는 비애라고나 할까. 아이를 낳았다는 감동 따위는 없었고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뿐이었다(15∼16쪽).” 하는 아픔과 생채기를 받았기에 스스로 조산소를 연 산과의사 오오노 아키코 님입니다. 이와 같은 삶인 오오노 아키코 님 곁에서 아기랑 아기 어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미야자키 마사코 님이라면 ‘바라보는 눈길’이 사뭇 다르겠지요. 바라보는 사람을 헤아리는 넋 또한 다르겠지요.

 

 이야기책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을 읽는 내내 한 가지만 생각합니다. 아니, 한 가지를 아주 깊이 생각합니다. 미야자키 마사코 님은 누구를 바라보며 찍는 사진입니까, 하고 생각합니다. 오오노 아키코 님은 누구를 바라보며 아기를 받는 사람입니까, 하고 생각합니다. 곧, 나는 어떤 사람들하고 살붙이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람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옆지기는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 때에 사랑스러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대체 어떤 출산 과정을 거쳐 태어났을까. 그 부모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녀를 키웠을까 … 엄마가 되기로 한 여성이 모성을 키워 가는 데 방해받지 않는 출산이 필요하다(38∼39쪽).” 하는 말마디를 곱씹습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아기를 돌보아 씩씩하고 튼튼한 사람으로 보살필 수 없습니다. 곧, 사랑이 아니고서는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글을 쓰지 못합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노래를 부를 수 없고,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며, 영화를 찍을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바탕이랑 오로지 사랑이에요. 사진을 가르치는 사람은 사진쟁이 스스로 사랑을 깨닫도록 이끄는 사람인 셈입니다. 사진을 읽으며 말하는 사람은 사진쟁이가 사진에 담은 사랑이 어떠한 결과 무늬인가 하고 느끼면서 널리 나누려는 사람인 셈이에요.

 

 “출산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귀하게 대접받음으로써 얻는 안도감이 어린 생명을 소중히 보살필 수 있는 힘을 키워 준다 … 이번에 출산한 산과의사가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결국 제왕절개를 선택했다면 나중에 임상에서 직면하게 될 출산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기다림을 선택할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131, 170쪽).” 하는 말마디를 찬찬히 헤아립니다. 겪지 않는대서 모를 수 없다지만, 겪을 때와 겪지 않을 때는 달라요. 머리로만 알 때하고 몸으로 맞아들일 때는 다릅니다. 마음 깊이 사랑을 담아 생각할 때와 머리로 얼핏 생각할 때와는 달라요.

 

 어버이가 아이를 쓰다듬는 손길과 아이가 어버이를 어루만지는 손길을 몸으로 느껴 볼 때하고 머리로 생각할 때에는 사뭇 다를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내 손으로 떠서 먹을 때,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어버이나 아이 손으로 받아 먹을 때,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할 때,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먹은 기운으로 하루를 씩씩하게 살아갈 때, 이러한 삶을 스스로 겪지 않고 머리로 생각해서만 느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꿈속 이야기 아닌 살아가는 이야기인 사랑입니다. 머나먼 데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 바로 내 곁에서 이루어지는 일인 사랑입니다. 이리하여, 사진찍기는 내가 어디에 서서 누구를 바라보며 어떠한 넋으로 무슨 이야기를 이루고 싶은가 하는 마음을 담는 일이 됩니다.

 

 “그런 특별한 명칭이나 이치를 공부했다고 해서 엄마가 아기를 안는 것은 아니다. 태어난 아기를 엄마가 가슴에 안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 사랑 없이 자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사랑을 받았습니다(181, 275쪽).” 하는 말을 되새깁니다. 글을 쓴 오오노 아키코 님 말로 그치지는 않겠지요. 이 책에 사진을 담은 미야자키 마사코 님 ‘사진 찍는 손길’로 고스란히 이어지겠지요.

 

 “분유 성분이 꾸준히 개량되어 모유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분유를 개량하는 목표가 모유와 같아지기 위해서인 이상, 모유보다 좋을 수는 없다(241쪽).” 하는 이야기는 아기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길에서만 나누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진을 왜 찍을까요. 사진은 나한테 어떻게 스며들까요. ‘더 나은’ 사진이란 있을까요. ‘좋은’ 사진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나요.

 

 

 

 

 산과의사 오오노 아키코 님은 아기를 함께 낳는 시인입니다. 산과의사이면서 시인이기 때문에 “임신 기간이 8개월 정도 되니 자연히 계절이 바뀝니다. 그렇게 매일 걷다 보면 어제는 피지 않았던 꽃이 피고, 바람 냄새가 달라지고, 하늘 색도 변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자동차로 다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 자전거를 타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260쪽).” 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기 낳는 사람들 곁에서 사진을 찍어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을 함께 빚은 미야자키 마사코 님 또한 사진쟁이이면서 시인입니다. 시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문득 오늘 이 나라 삶을 돌아보면, 이야기책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에 실린 사진은 너무 슬프면서 부럽고 아픕니다. 한국에서는 아기를 낳는 곁에 아버지가 있도록 하는 병원을 찾아보기 몹시 힘들거든요. 한국에서는 아기를 낳는 곁에 있는 아버지나 살붙이가 사진기를 들고 ‘놀랍고 아름다우며 고맙고 사랑스러운 빛줄기’를 사진으로 갈무리하는 꿈을 이끌도록 따순 손길을 펼치는 산과의사를 만나기 아주 힘들거든요. 아니, 사진찍기에 앞서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따사로이 쥐며 아기를 만나도록 돕는 산과의사는 어디에 몇이나 있을까요. 어머니 둘레에 어머니를 보살필 사람들이 지켜보면서 힘을 북돋운다면, 한국땅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는 어떤 몸짓 매무새 눈길 손길 마음자락이 되어 새 아기를 받으려 할까요.

 

 한국에서도 ‘아기를 맞이합니다’ 하는 이야기로 사진 실타래를 솔솔 풀 사진쟁이 한 사람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예 없지 않겠지요. 어디에선가 구슬땀을 흘리겠지요. 어느 곳에선가 눈물과 웃음을 함께 지으면서 빛나는 사진삶 이루겠지요. (4345.2.8.물.ㅎㄲㅅㄱ)


―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 (미야자키 마사코 사진,오오노 아키코 글,이명주 옮김,브렌즈 펴냄,2010.12.25./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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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찾은 할아버지
한태희 글.그림 / 한림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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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긴 겨울이 가고 긴긴 봄이 오겠지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6] 한태희, 《봄을 찾은 할아버지》(한림출판사,2011)

 


 겨울은 막바지로 흐릅니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한테는 한 해 가운데 2월이 겨울 막바지입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을 지내고 겨울을 기다리던 사람은 이제 겨울을 얼마쯤 누리고서는 아쉽게 떠나 보냅니다.

 

 겨울이 겨울인 까닭은 추위로 온누리를 꽁꽁 얼리기 때문입니다. 겨울은 추운 철이요, 춥지 않고서야 겨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춥지 않은 겨울이 되면 뒤틀린 철이며 날씨인 탓에, 온누리 또한 뒤틀리고 말아요.

 

 봄은 따스해야 봄입니다. 여름은 더워야 여름입니다. 가을은 시원해야 가을입니다. 철마다 다른 빛이요 다른 삶이며 다른 꿈입니다. 모든 씨앗은 겨우내 고이 쉬거나 잠들면서 봄을 기다립니다. 모든 씨앗은 봄을 맞이해 씩씩하게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립니다. 모든 씨앗은 여름에 흐드러진 잎사귀를 뽐내어 꽃을 피우고는, 가을날 열매와 새로운 씨앗을 맺어요.


..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짚신을 삼거나 바느질을 하면서 춥고 긴 겨울을 보냈습니다. 먹을 것은 넉넉해서 걱정이 없었지만 늘 집 안에만 있으려니 참으로 지루했어요 ..  (7쪽)

 

 


 내 마음도 철과 같이 흘러, 어느 때에는 봄이요 어느 때에는 겨울입니다. 내 마음이 포근하게 넓은 날이 있으나, 내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차디찬 날이 있습니다. 흐르는 날처럼 움직이는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낄 만하지만, 내 마음이 서늘하거나 차갑거나 시릴 때에는 몹시 답답합니다. 나는 왜 서늘한 마음 차가운 마음 시린 마음으로 살아야 하나요. 언제나 봄으로 살아갈 수 없을 터이나, 한겨울에도 꿋꿋하게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우는 겨울꽃 겨울풀처럼, 나는 한결같이 포근하면서 따사로운 넋으로 살아갈 때에 한껏 사랑을 나눌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추위가 모두 걷히고 나면 땅뙈기에 삽이 잘 들어가겠지요. 포근한 날씨가 온 땅을 따사로이 감싸면, 논도 밭도 삽이나 괭이로 쪼면서 갈아엎을 수 있겠지요.

 

 한겨울에는 삽질을 하기 힘듭니다. 얼어붙은 땅뙈기는 삽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마, 얼어붙은 겉흙 밑에는 포근한 속흙이 흙벌레들을 고이 감쌀는지 몰라요. 겨울잠을 포근히 자라며 따사로이 보듬을는지 몰라요.

 

 흙벌레도 풀벌레도 모두 고요한 겨울입니다. 늦가을과 이른겨울까지 노래하던 흙벌레와 풀벌레는 한겨울로 접어들며 모두 소리를 죽입니다. 새봄이 찾아오고 한참 있어야 비로소 기지개를 켭니다. 무당벌레도 겨울을 나고 사마귀알도 겨울을 견딥니다. 누렇게 말라죽은 풀이 가득한 들판은 머잖아 푸른 빛깔 새 옷을 입습니다. 말라죽은 풀은 새로 돋아날 풀이 씩씩하게 자라날 좋은 밥이 됩니다. 한 삶이 흘러 다른 한 삶이 찾아옵니다.


.. “꿩아, 꿩아! 예쁜 꿩아! 주먹밥 하나 줄 테니 봄이 어디 있는지 알면 가르쳐다구!” 할아버지가 주신 주먹밥을 맛있게 먹고, 꿩이 말했습니다. “나도 봄이 어디 있는지는 몰라요.” ..  (20쪽)

 

 


 한태희 님이 빚은 그림책 《봄을 찾은 할아버지》(한림출판사,2011)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에 젖습니다. 겨울이 얼마나 길다고 봄을 찾으러 길을 떠날까? 할아버지가 이제껏 한두 해 살아오지 않았을 텐데, 할머니가 말리는 손길을 뿌리치며 애써 봄맞이 길을 떠나야 하는 까닭이 있을까?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겨우내 쉽니다. 흙도 쉬고 푸나무도 쉬며 사람도 쉽니다. 가을까지 바지런히 일하며 겨우내 쉴 밥과 옷과 집을 갈무리합니다. 쉬는 동안 짚신도 삼으나 바구니도 짜고 새로운 봄부터 쓸 온갖 연장을 마련합니다. 힘껏 움직인 몸이 새롭게 움직이도록 차근차근 다스리고 돌봅니다.

 

 그런데, 멧골짜기 흙일꾼 살림집에 할머니랑 할아버지 둘만 있습니다. 당신 아이들이 없고, 당신 아이들이 낳았을 아이들이 없습니다. 오직 둘만 남습니다.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요. 아이가 없는 두 늙은 흙일꾼일까요. 아이가 있으나 아이들은 멀리멀리 다른 데로 시집장가를 가서 기나긴 겨우내 한 차례조차 안 찾아올까요. 아이들을 그리던 나머지 봄이라도 부르고 싶어 애먼 길을 나서야 했을까요. 늙은 두 사람만 호젓하게 남는 멧골집이란 오늘날 이야기 아닌 멀디먼 옛날 옛적 이야기일까요.


.. 쏟아져 내리는 눈 때문에 할아버지는 지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따뜻한 봄을 집으로 가져갈 수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  (23쪽)

 

 


 봄은 억지로 맞아들이지 못합니다. 봄뿐 아니라 여름도 억지스레 찾아들이지 못합니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악지스레 잡아당기지 못합니다. 겨울이라 해서 악지로 몰아내지 못합니다. 날과 달과 철이 얼크러지며 흐르는 하루예요. 고마운 추위가 있어 고마운 더위가 있고, 고마운 바람이 있어 고마운 햇살이 있습니다. 기나긴 봄이랑 여름이랑 가을을 누린 사람들은 기나긴 겨울날 오순도순 모여 앉아 기나긴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손바닥과 발가락과 볼과 가슴에 찬찬히 새긴 이야기꾸러미를 저마다 살포시 풀어놓습니다.

 

 새로운 봄은 새로운 바람과 함께 새롭게 찾아옵니다. 새로운 꽃은 새로운 햇살과 나란히 새로운 빛을 뽐내며 찾아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멧골집에서 하얀 눈나라 마음껏 누리면서 고구마를 불에 익혀 자셔요. 고구마가 동이 날 무렵 바야흐로 무지개빛으로 예쁘게 차려입은 봄이 인사하러 올 테니까요.


 따스한 햇볕 아래 매화꽃이 한 줄기 탐스럽게 피어 있었습니다
→ 따스한 햇볕을 쬐며 매화꽃이 한 줄기 활짝 피었습니다

 

 향기로운 꽃내음에 취해 어지러울 때
→ 향긋한 꽃내음에 홀려 어지러울 때

 

 아이가 다가와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습니다
→ 아이가 다가와 할아버지 손을 잡았습니다

 

 꽃향기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꽃내음이 차츰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제야 슬며시 후회가 되었어요
→ 그제야 슬며시 뉘우쳤어요


 그림책 《봄을 찾은 할아버지》를 아이와 함께 읽다가 곳곳에 금을 죽죽 긋고는 새말을 적어 넣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혼자 이 그림책을 읽는다 하면, 새봄과 같은 말을 살피며 마음속 깊이 고운 말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새말을 적바림합니다.

 

 

 

 매화꽃이든 개나리꽃이든 “햇볕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어디가 아래이고 어디가 위일까요. 꽃이든 나무이든 풀이든 “햇볕을 쬐”거나 “햇볕을 받”습니다. 꽃은 ‘활짝’ 핍니다. 한자말 ‘향기(香氣)’는 “좋은 냄새”를 뜻합니다. “향기로운 꽃내음”은 알맞지 않아요. “짙은 꽃내음”이라 하거나 “향긋한 꽃내음”이라 해야 알맞습니다. 그림책 맨끝에서는 ‘꽃내음’이라 적지만, 그림책 곳곳에서는 ‘꽃향기’로 적는데, 이 대목은 알뜰히 추슬러야겠습니다. 우리 말은 ‘점점(漸漸)’이 아닌 ‘조금씩-차츰-천천히-찬찬히’입니다. 아이들 읽을 그림책이라 한다면 ‘후회(後悔)’보다는 “뉘우치다”라는 낱말을 넣을 때에 알맞으리라 생각해요. 멧골짝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어떠한 말을 나누며 살았을까 하고 곰곰이 헤아리면서 그림책 말마디를 다스리면 좋겠습니다.

 

 그림책을 살피면, 11쪽에는 까망고양이가 나오지만, 맨 뒷자리 속종이에는 까망개로 나옵니다. 33쪽 춤추는 할아버지 곁에서 기지개 켜는 짐승도 고양이보다는 개로 보입니다. 고양이 수염을 안 그렸고, 얼굴도 개 모양입니다. 11쪽 벽에서 사라진 옥수수가 33쪽에는 다시 나옵니다. 깜빡 잊을 수 있을 텐데, 그림에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주면 좋겠습니다. (4345.2.8.물.ㅎㄲㅅㄱ)


― 봄을 찾은 할아버지 (한태희 글·그림,한림출판사 펴냄,2011.3.30./11000원)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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