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간 사자 웅진 세계그림책 107
미셸 누드슨 지음, 홍연미 옮김, 케빈 호크스 그림 / 웅진주니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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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어떤 책을 어디에서 읽나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2] 케빈 호크스·미셸 누드슨, 《도서관에 간 사자》(웅진주니어,2007)

 


 책은 알맹이를 읽습니다. 껍데기를 읽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회사원일 수 있고, 흙일꾼일 수 있으며, 대통령일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깡똥치마를 입을 수 있고, 구멍나고 헐렁한 바지를 입을 수 있으며, 알몸일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선 채 읽을 수 있고, 누워서 읽을 수 있으며, 앉아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일본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버마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이주노동자가 책을 읽습니다. 원어민강사가 책을 읽습니다. 실업자가 책을 읽습니다.

 

 양복을 빼입은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한 달쯤 빨래하지 않은 옷을 걸친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학교옷 입은 고등학생이 책을 읽습니다.

 

 책은 누구한테나 열립니다. 이 사람한테는 열리고, 다른 사람한테는 안 열리는 책이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가멸찬 사람도 똑같은 책값을 치러 책 한 권 장만합니다. 가난한 사람도 가멸찬 사람도 똑같은 책을 똑같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습니다.


.. 어느 날, 도서관에 사자가 왔어요. 사자는 곧바로 대출 창구를 지나 자료실로 들어갔어요 ..  (5쪽)

 


 책은 줄거리를 읽습니다. 눈으로 글자를 좇으며 읽든, 귀로 소리를 들으며 읽든, 누구나 책은 줄거리를 읽습니다. 줄거리를 읽는 책이기 때문에, 책을 손에 쥔 사람마다 다 달리 받아들입니다. 저마다 살아온 나날에 비추어 줄거리를 헤아립니다. 저마다 쓸모와 찾을모가 다른 만큼, 같은 책 같은 줄거리라 하더라도, 이 줄거리를 가슴으로 삭이는 느낌과 맛이 다릅니다.

 

 아마, 누군가는 독후감이나 보고서 숙제 때문에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삶을 밝히는 눈을 북돋우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자격증을 따거나 수험 공부 때문에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그저 즐거워서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지식을 한껏 쌓으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를 파헤치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이름난 사람이 썼기에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마음에 환히 켜지는 등불을 깨닫기에 읽겠지요.

 

 책방에 서서 책을 읽습니다. 커다란 새책방 한쪽에 서서 책을 읽으면 티가 나지 않습니다. 작은 헌책방 한쪽에 쭈그려앉아 책을 읽어도 티가 나지 않습니다. 새책방에서는 새로 나온 책을 읽으나, 오래도록 안 팔린 채 꽂히기만 한 책을 읽습니다. 헌책방에서는 예전에 판이 끊어진 책을 찾아 훑기도 하지만,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으나 누군가 즐거이 사서 읽다가 내놓은 책을 읽기도 합니다.


.. 아무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어요. 도서관 규칙에 사자에 대한 것은 없었으니까요 ..  (9쪽)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아이들과 복닥이면서 돌아보면, 책을 손에 쥘 겨를조차 없기 일쑤인데, 아이들 눈빛이 좋은 책이고, 아이들 손짓 발짓이 멋진 책이며, 아이들 목소리가 해맑은 책이곤 합니다. 이 땅뿐 아니라 온누리 수많은 어머니들은 아이를 낳고 돌보고 먹이고 재우고 보살피면서 둘도 셋도 없이 어여쁜 ‘아이책’을 읽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자락 논밭을 일구는 흙일꾼은 호미와 낫과 쟁기를 부려 손발과 얼굴 모두 흙빛으로 바뀌는 나날을 보내며 ‘흙책’과 ‘풀책’과 ‘하늘책’을 읽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다로 배를 몰고 나가서 고기를 낚는 바다일꾼은 ‘물고기책’과 ‘바다책’을 읽으리라 생각해요.

 

 종이에 글로 담는 책이란, 이 땅 숱한 이야기 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점 하나라고 느낍니다. 많디많은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 간추려 종이에 글로 담는다고 느낍니다.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듭니다. 종이로 바뀌는 나무는 나무로 숲에서 살아가는 동안 저마다 다른 숲삶을 알알이 아로새깁니다. 책장을 넘겨 종이 내음을 맡을 때에는 잉크 내음이나 화학처리 내음이 난달지 모르지만, 이 화학약품 냄새 밑바닥에는 흙에 뿌리내리고 햇살을 받아먹으며 잎사귀 푸르게 늘어뜨리던 우람한 나무에 아로새긴 기나긴 나날 이야기에 서린 냄새가 깔려요.

 

 시골 숲에서 책을 읽으면 시골 숲바람을 맞으며 책 알맹이를 받아먹습니다. 도시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 깜깜한 땅밑 시끄러운 쇠바퀴 소리에 흔들리면서 책 알맹이를 받아먹습니다. 아이들 재우고 나서 모로 누워 책장을 넘기면 새근새근 숨소리 들으며 책 줄거리를 헤아립니다. 시외버스에 앉아 책장을 넘기면 멀미 나며 어지러운 머리로 책 줄거리를 헤아립니다.


.. 사실, 사자는 도서관에 딱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사자는 커다란 발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도서관을 걸어 다닐 수 있었어요. 이야기 시간에는 아이들이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등받이가 되어 주었지요. 게다가 이제 도서관에서는 절대 으르렁거리지 않았어요 ..  (18쪽)

 

 


 케빈 호크스 님이 그림을 그리고 미셸 누드슨 님이 글을 쓴 그림책 《도서관에 간 사자》(웅진주니어,200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간 사자》에 나오는 ‘사서 맥비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규정·규칙·법규를 따집니다. 언제나 무슨무슨 규정을 찾고, 노상 어떤저떤 규칙을 헤아립니다.

 

 관리직이라는 자리라면 어쩔 수 없을까요. 공무원이라는 자리라면 어찌할 길이 없을까요.

 

 도서관에는 사자라고 못 들어가란 법 없습니다. 이주노동자라고 도서관에 가지 말란 법 없습니다. 열여섯 살에 아기를 낳은 어머니라서 도서관에서 가로막을 까닭이 없습니다. 학교 문턱을 밟지 못했대서 도서관을 드나들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누구나 도서관에 드나들되, 책 하나에 깊이 마음을 쏟는 다른 사람들을 헤살 놓지 않으면 돼요. 침을 묻히며 책장을 넘긴다든지, 책장을 몰래 오린다든지, 거칠게 책장을 뒤적인다든지 하는, 애먼 짓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호젓하게 책을 즐길 수 있으면 돼요. 나와 내 아이와 내 아이가 낳을 아이가 오래오래 책 하나 두고두고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이라고 여기는 매무새라면 돼요.


.. 사자는 그 뒤를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규칙을 어겼으니까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거든요. 사자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문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맥비 씨는 눈치 채지 못했어요. “관장님, 메리웨더 관장님! 사자가 규칙을 어겼어요. 사자가 규칙을 어겼습니다!” ..  (26쪽)

 


 ‘메리웨더 관장’은 사자가 규칙을 어긴 일이 없으니 괜찮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굳이 규칙을 따지지 않더라도 사자가 반가우면 도서관에서 받아들일 노릇입니다. 규칙을 어겼더라도 사자가 좋으면 규칙을 고칠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도서관이 그리 크지 않아 새로운 책을 더 받아들일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되거든요. 묵은 책은 버리고 새로운 책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도서관을 늘릴까요. 책꽂이 사이사이에 새 책꽂이를 놓을까요. 책꽂이 위에 새 책꽂이를 붙이고 사다리를 놓을까요. 도서관 둘레에 다른 도서관 하나를 열어 새로운 책은 그곳에 둘까요.

 

 도서관 손님으로 사자를 받아들이는 규칙을 마련해도 되겠지요. 규칙이란 아예 없애고 서로 즐거운 책삶을 누리자고 할 수 있겠지요. 책은 누구한테나 책이니까요. 책에 깃든 넋은 누구한테나 좋은 씨앗이니까요. 책으로 나누려는 이야기는 누구한테나 사랑이니까요. (4345.2.19.해.ㅎㄲㅅㄱ)


― 도서관에 간 사자 (케빈 호크스 그림,미셸 누드슨 글,홍연미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7.2.15./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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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紀行
강운구 글.사진 / 까치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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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이야기 찾아나서는 사진마실
 [찾아 읽는 사진책 78] 강운구, 《자연기행》(까치글방,2008)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면서 저절로 별자리를 그릴 수 있습니다. 별자리 이름이나 크기나 모양이나 잘 모르지만, 이모저모 모인 별을 뭉뚱그릴 만하다고 느낍니다. 따로 무슨무슨 자리라고 알지 못하더라도 서로서로 어떻게 엮으면 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나 밤하늘 뭇별을 이 나라 어디에서나 올려다볼 수 있지는 않습니다. 깊은 시골자락에 깃든 집에서 올려다봅니다. 읍내나 시내에서는 뭇별을 올려다보기 어렵습니다. 커다란 도시로 나가면 달빛을 느끼기조차 어렵습니다.

 

 어릴 때 인천에서 살아가며 별자리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책을 읽은 적 있지만, 막상 밤하늘 뭇별을 마음껏 올려다볼 수 없었어요. 밤하늘 별은 올려다보지 못하며 별자리 책만 뒤적인들, 별이고 별자리이고 밤하늘이고 알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 힘들었습니다.

 

 강운구 님이 내놓은 사진책 《자연기행》(까치글방,2008)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강운구 님은 “우리 나라의 식물사전에는 수선화가 화훼식물로 분류되어 있다. 그것은 야생의 수선화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주 남녘 대정 땅의 수선화는 엄연히 야생으로 여러 대를 이어오고 있다(14쪽).” 하고 말합니다. 식물사전이든 식물도감이든 적잖이 다리품을 팔지 않으면 엮을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이 땅 골골샅샅 누비며 이 같은 사전과 도감을 내놓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미처 못 디딘 땅이 있을 테고, 아직 살피지 못한 꽃과 풀과 나무가 있겠지요. 어느 꽃은 아주 드물게 아주 좁은 데에서만 피고 질 수 있으니까요. 어느 꽃이 피고 지는 아주 조그마한 터에 때맞추어 나들이를 하지 않는다면 어느 꽃이 있는 줄조차 모를 수 있으니까요.

 

 

 

 망원경이 있으면 도시 한복판에서라도 밤하늘 별을 살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막상 도시 한복판에 깃들면서 밤하늘 별을 느끼려 하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도시 한복판이란 밤별이랑 동떨어진 곳이니까요. 경제성장과 경제개발에 온넋 쏟는 도시 한복판이지 않겠어요. 더구나, 도시 한복판에서는 밤별뿐 아니라 낮꽃 또한 동떨어진 곳이로구나 싶어요. 낮에 마주할 나무하고도 풀하고도 새하고도 동떨어진 곳이겠지요.

 

 “저 자연의 품속은, 자연의 것은 더 아름답다. ‘자연을 보호하자’라고 말하지만 우리에게는 자연을 보호할 만한 능력이 물론 없다. 그것을 있는 자리에 그대로 두고 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을 자기 집, 자기 방으로 못 옮겨서 안달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한 해에 두어 번, 들이나 산의 숲에 가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곳의 모든 꽃은 그 사람의 것이다(33쪽).” 하고 읊는 말마따나 자연 터전은 나날이 파먹힙니다. 곰곰이 살피면, 사람들은 자연을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파먹으면서 경제를 살찌웁니다. 자연을 파헤치면서 돈벌이를 합니다. 자연을 망가뜨리면서 국립공원을 세웁니다. 국립공원 아닌 데는 마음껏 무너뜨리고, 국립공원조차 신나게 어지럽혀요. 강운구 님이 “헉헉대며 꼬박 4시간은 올라야 이르렀던 노고단이 지금은 시암재의 주차장에서 쉬엄쉬엄 30분쯤 걸으면 된다. 망가진 덕택이다(198쪽).” 하고 외치지 않더라도, 이 나라 사람 누구나 한껏 망가진 한국 자연을 찾아볼 수 있어요.

 

 이리하여,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란 이들은 꿀풀이나 다른 꽃을 따서 향기로운 꿀을 빨아먹곤 했었다(38쪽).” 하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옛날 옛적 어른들 이야기처럼 됩니다. 오늘날 아이들로서는 꿀풀이든 다른 꽃이든 따며 놀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들판과 멧자락과 냇가와 바닷가에서 마음껏 하루 내내 뒹굴거나 뛰놀도록 풀어놓는 어른부터 없어요. 아이들이 두어 살만 되어도, 아니 한두 살만 되어도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 넣잖아요. 아이들은 보육원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길들여지잖아요.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때부터 ‘대학입시 수험생’처럼 되어 영어도 배우고 한자도 배우며 갖은 지식을 머리에 꾹꾹 눌러담아야 하잖아요.

 

 

 

 똑똑해지는 오늘날 아이들이 아닙니다. 지식만 많이 갖추는 오늘날 아이들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없고, 이웃을 아끼는 넋이란 없으며, 나와 동무를 사랑하는 꿈이란 없어요. 곧, “좋아하거나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름을 불러 준다고 다 나의 꽃이 되는 것은 아니다(51쪽).” 하는 말처럼, 아이들 스스로 누구를 어떻게 왜 좋아하거나 사랑하면서 기쁜 나날인가를 느끼지 못하고 맙니다. 아이들 스스로 삶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길하고는 너무 동떨어지고 맙니다.

 

 아름다이 살아갈 나날인데 아름다이 품을 꿈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할 이웃인데 사랑스레 북돋울 얼을 가누지 못합니다. 착하게 꾸릴 살림인데 착하게 보듬을 손길을 느끼지 못합니다.

 

 강운구 님이 내놓은 사진책 《자연기행》은 한국땅 골골샅샅 두 다리로 밟으며 안쓰러이 느낀 이야기를 다룹니다. “식물사전에 올라 있는 이 풀(개불알풀)의 호적명 대신에 시골에서는 ‘봄까치꽃’이라고 부른다(65쪽).”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꽃 한 송이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정교하게 아름답고, 멀리 물러서서 무리를 보면 화려한 빛깔이 눈부시게 아름답다(80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구보다 강운구 님한테 아름다울 이야기를 찾아나섭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강운구 님 스스로 알아주겠다 생각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만나며 얼싸안습니다.

 

 나한테 아름답게 스며들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내 눈으로 밤하늘 올려다보며 뭇별을 곱게 사랑할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내 손으로 들판 억새를 쓰다듬으며 싱긋 웃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호미를 쥐어 흙을 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씨앗 한 알 건사하며 내 사랑을 듬뿍 쏟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글 한 줄 쓰면서 내 꿈을 살포시 실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사진 한 장 찍으면서 내 하루를 고맙게 여길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그런데, 사진책 《자연기행》은 여러 매체에 실은 글을 그러모은 탓인지, 똑같은 이야기를 자꾸 되풀이합니다. 똑같이 되풀이하더라도 곰곰이 되새길 만하다 볼 테지만, 이 작은 책에 미처 싣지 못한 더 너른 이 나라 자연마실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⅜쯤 차지하는 되풀이하는 이야기는 덜고 새 글과 새 사진을 담으면 얼마나 살뜰하고 푸진 이야기책이 되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4345.2.19.해.ㅎㄲㅅㄱ)


― 자연기행 (강운구 글·사진,까치글방 펴냄,2008.7.10./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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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1
토우메 케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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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있는 즐거움
 [만화책 즐겨읽기 118] 토우메 케이,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1)》

 


 그믐밤에는 달이 보이지 않습니다. 달이 보이지 않으면 별이 한결 잘 보이지 않으랴 싶지만, 막상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노라면 별을 그리 많이 찾아보지는 못합니다. 깜깜해진 밤하늘은 더 깜깜하고 별빛까지 수그러듭니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살짝 바깥으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걷습니다. 바람이 꽤 쌀쌀하면 살짝 나왔다가 금세 들어갑니다. 바람이 그닥 차지 않으면 마을을 한 바퀴 빙 돕니다. 보름밤에는 길이 훤히 잘 보여 걱정없이 걷는데, 그믐밤에는 여느 때에 잘 보이던 길이 아주 깜깜합니다. 이때 아버지랑 나란히 걷는 첫째 아이는 아버지 손을 꼭 움켜쥐며 뒤로 물러섭니다.

 

 별을 보고 깜깜한 밤을 보면서 이제 이렇게 조용한 때에는 모두 코 하고 자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습니다. 이런다고 곧 잠들 아이들은 아닙니다. 갓난쟁이 둘째는 가슴에 엎드리도록 합니다. 첫째는 곁에 누우라 합니다. 이런 다음 한참 노래를 부르며 놉니다.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하다가는 두 팔로 아버지 가슴을 팍 디디고 웃몸을 일으키는 둘째가 까르르 웃기를 되풀이하다가는 눈꺼풀이 스르르 감길 무렵, 나즈막하게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이무렵 첫째는 “동생 자?” 하고 묻고는 저도 하품을 길게 하다가는 눈을 사르르 감습니다.


- “너 지금 까마귀들에게 밥 주고 있는 거냐? 그건 팔다 남은 도시락이잖아. 사장님이 아시면 야단하실 텐데.” “비밀로 해 주세요. 어차피 버릴 거잖아요.” (10쪽)
- “나도 도시락, 한 개만 줘.” “뭐? 이런 일을 하면 안 되게 되어 있어, 규정상. 미안하지만.” “뭐? 방금 까마귀에게는 줬잖아.” “그, 그야 그렇지만.” “좀 봐줘. 막차를 놓쳐서 신주쿠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단 말이야. 배가 너무 고파서 그래. 까마귀에게 적선한 셈치면 되잖아.” (13쪽)

 


 아이 둘을 나란히 재우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이 둘을 재우고 보면 셋이나 넷이 있을 때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떠올립니다. 다른 무엇보다 아이들이랑 살을 부대끼며 같이 있는 나날이 가장 즐거운 하루가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억지로 재우려 한대서 잠들 아이들이 아니라, 실컷 뛰고 구르고 기고 달리고 하다가 제풀에 겨워 곯아떨어질 때에 비로소 꿈누리로 접어드는 아이들이리라 생각합니다.

 

 멀리 찾아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어요. 바로 내 어린 나날을 조금만 떠올리면 오늘 내 곁에서 살아가는 아이들하고 어떻게 어울릴 때에 서로 기쁘며 좋은가를 깨달을 수 있어요.

 

 사람 몸은 밥을 먹으며 기운을 얻는다면, 사람 마음은 사랑을 먹으며 기운을 얻어요. 밥 한 그릇으로 몸에 새 기운 북돋우고, 사랑 한 자락으로 마음에 새 기운 북돋울 수 있어요. 몸과 마음이 함께 튼튼해야 씩씩한 사람이 돼요. 몸만 튼튼하거나 마음만 튼튼할 수 없어요. 내 몸을 빛낼 가장 좋은 밥을 찾아서 먹고, 내 마음을 빛낼 가장 좋은 사랑을 찾아서 나누어야 즐거운 삶이에요.


- “그나저나 넌, 하나도 안 변했구나.” “사람이 반년만에 쉽게 바뀌겠어! 너야말로 전혀 안 변했는걸.” (35쪽)
- “이상하지. 사랑이란 단지 착각일 뿐인데, 알고 있으면서 그걸 거역할 수가 없다니. 덕분에 5년씩이나. 바보같이.” (72∼73쪽)

 


 가장 즐거이 살아가는 길은 오직 하나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가장 즐거이 살아가는 길이니까요. ‘가장’은 오직 한 가지에만 붙이는 꾸밈말이거든요.

 

 이렁저렁 즐거운 길이란 많아요. 이모저모 즐거이 누릴 삶도 많겠지요. 그러나 참말 가장 즐겁게 오순도순 어우러질 길이라 한다면 다문 하나예요. 어버이로서, 아이로서, 집식구로서, 옆지기로서, 살붙이로서, 서로서로 가장 즐겁게 오순도순 어우러질 길이란 스스로 밥을 일구어 얻고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려 나누는 삶 하나라고 느껴요.


- “미안해. 이 밤중에. 잠깐 나와 줄 수 없을까?” “커피숍이라도 갈까?” “아니, 여기서도 괜찮아. 오래 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난, 널 좋아해.” (87쪽)
- “네가 말한 착각에 종지부를 찍고 자전거 채로 넘어졌어. 그냥 한번 자기변혁을 시도해 봤을 뿐이야. 거짓말쟁이인 자신을 힘껏 쫓아내 봤어. 그리고 도망갈 길을 잃으면 어떻게 되나 하고 봤더니, 뜻밖에, 아무렇지도 않더라구. 계속 같은 곳에 있을 뿐.” (95쪽)
- “거짓말쟁이는 아무것도 잃지 않지만 아무것도 손에 넣을 수 없어. 난 거짓말쟁이지만 처음으로 남이 날 좋아해 주길 바랐어. 나도 도망칠 곳을 잃은 건지도 몰라.” (98쪽)

 


 아이들이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다고 그리 기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이름난 대학교에 붙는다고 기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붙거나 큰회사 시험에 붙었기에 기쁘지 않습니다.

 

 아이가 씨앗 한 알 고이 건사해서 무럭무럭 자라도록 심을 수 있을 때에 기쁩니다. 아이가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서로서로 아끼고 보듬으며 어루만질 수 있을 때에 기쁩니다. 아이가 따스한 손길로 풀줄기와 꽃잎을 쓰다듬을 수 있을 때에 기쁩니다. 아이가 맑은 눈빛으로 노래하며 이야기꽃 피울 때에 기쁩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내 삶에서 나부터 살고 싶은 길이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동안 아이하고 함께 누리고 싶은 길입니다.

 

 나는 시험 100점이 썩 기쁘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나는 어찌저찌 누리는 이름쪽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로서는 내가 살가이 건사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좋습니다. 내가 포근히 감싸며 나눌 수 있는 사랑이 좋습니다. 내가 흐뭇하게 길어올릴 이야기와 꿈이 좋습니다.

 

 아이한테 바라고 싶은 무언가를 나부터 살아내면 됩니다. 아이한테 무언가 바라고 싶으면 나부터 기쁘게 살아내면 됩니다. 아이와 어버이가 나란히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이 한길을 걸으면 됩니다.


- “네가 싫은 건 아니지만, 그다지 잘해 줄 수 없을 것 같아. 지금 내 머릿속은 그럴 여유가 없거든.” “알고 있어. 우오즈미는 생각할 게 많으니까. 자신에 대해서도, 시나코 선생님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어. 난 반 바퀴 정도 늦게 출발한 러너 같은 존재야.” “뭐?” “처음부터 지는 경기를 시작했다는 뜻이지. 우오즈미가 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알지만, 난 우오즈미가 생각하는 것만큼 환상이나 이상을 가지고 있진 않아. 내가 생각하고 느낀 그대로의 사람이었어. 그러니까 우오즈미가 누굴 좋아하든 상관없어. 난 우오즈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야 물론, 언젠가는 날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하지만 지금은 우선,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그러니까 괜찮아. 포기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이런 내가 이상해?” (215∼217쪽)

 


 토우메 케이 님 만화책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학산문화사,2001) 첫째 권을 읽습니다. 모두 일곱 권으로 이루어진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첫째 권에서는 ‘함께 있는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사랑이든 아니든, 사랑이라 느끼든 못 느끼든, 서로 바라보고 함께 어깨동무하는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증명서나 계약서나 신고서가 있어야 함께 살아가는 님이 아닙니다. 한 집 같은 방에서 나란히 잠자리에 누워야 함께 살아가는 짝이 아닙니다. 몸을 섞는대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몸을 섞기도 하지만, 사랑이 아니면서 몸을 섞기도 해요.

 

 사랑일 때에는 서로 마주볼 수 있기에 기쁘고, 사랑인 만큼 서로 마주볼 수 없어도 마음으로 그리기에 기쁘며, 사랑인 사람들은 저마다 두 다리 서는 곳에서 사랑씨앗 곱게 뿌리며 돌보기에 기쁩니다.


- “까마귀 좋아해?” “좋아한다기보다, 익숙해지면 귀엽잖아.” “가끔 먹이를 나눠 줘서 고마워.” “그게, 네 까마귀였어?” “응.” (15쪽)
- “난 우오즈미를 만나고 싶어서 가게에 들르는 거야.” “그거 고맙군.” (51쪽)


 좋아하니까 손을 잡아야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니까 입을 맞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니까 나들이를 함께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니까 둘이 꼭 붙어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니까 이 지구별 이 조그마한 마을 이 자리에 함께 햇살을 누리고 바람을 마시면서 웃고 울 수 있습니다. (4345.2.18.흙.ㅎㄲㅅㄱ)


―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1 (토우메 케이 글·그림,신현숙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1.6.25./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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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아파요 - 세계우수창작동화 100선 18
마르타 코시 글.그림 / 예지현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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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는 깨끗해지지 않는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9] 마르타 코시, 《숲이 아파요》(푸름이동사모,2004)

 


 도시는 깨끗하지 않습니다. 깨끗한 도시는 이 나라에 없습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이웃한 다른 나라에도 깨끗한 도시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시라는 곳이 되면, 지구별 어디에서나 지저분한 터전이 되고 만다고 느낍니다.

 

 한국땅 서울에는 청계천이 있답니다. 청계천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청계천에서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울사람은 청계천 물을 ‘먹는물’이나 ‘씻는물’로 삼지 않아요. 댐에 가둔 물을 수도꼭지를 틀어서 쓰고, 이 물조차 정수기를 달아 다시금 걸러야 합니다.

 

 물을 마실 수 없는 도시에서는 바람도 마실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물을 마시지 못할 뿐더러 바람조차 마시지 못하니, 이곳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몸이 튼튼할 수 없습니다. 서울에는 크고작은 병원이 곳곳에 수없이 늘어설밖에 없어요.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도시이기에, 아프고 만 사람들을 낫게 해 준다며 돈벌이를 하는 병원이 그득그득 있어야 해요.


.. 깊은 숲 속 마을에 동물들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았어요 ..  (3쪽)

 


 시골이라 해서 어디나 맑은 물과 바람이지는 않습니다. 요즈음은 도시가 넘치고 넘치면서 공장을 시골로 옮기거든요. 도시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 땅값이 올라, 땅값 싸면서 물 마음껏 쓰고 버릴 수 있는 시골로 공장을 옮기거나 새로 짓거든요. 더구나, 도시 한복판에서 골프를 즐기는 사람은 드뭅니다. 한갓지며 깨끗한 시골자락을 밀고 깎아 골프장을 짓습니다. 골프장 잔디를 늘 푸르게 한다며 풀약을 어마어마하게 치고 물을 허벌나게 씁니다. 제주섬에 있는 골프장에서 쓰는 물은 삼다수라는 먹는샘물 회사가 뽑아올리는 물보다 몇 곱이 많아요. 제주섬이 깨끗하다 하고 관광하기 좋은 데라 하지만, 골프장 넘치는 제주섬이라 한다면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기는 힘들다고 느껴요.

 

 곧, 도시사람은 도시에 바글바글 모이면서 스스로 삶터를 옥죄고, 시골은 시골대로 공장과 골프장으로 더럽히거나 망가뜨립니다. 게다가, 큰도시와 큰도시를 더 빠른 길로 잇는다며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끊임없이 새로 지어요. 이러는 동안 시골사람은 도시사람 때문에 삶터를 잃거나 빼앗깁니다. 시골마을이 짓밟혀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곁으로 보이는 시골마을은 모조리 도시사람 때문에 짓이겨진 슬픈 터전입니다.


.. 동물들의 병은 낫지 않았어요. 어제는 사슴과 다람쥐가 죽었어요. (멧골 아이) 리사는 큰 소리로 엉엉 울었어요 ..  (11쪽)

 


 도시는 깨끗해지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도시는 돈을 놓고 돈을 벌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깨끗해질 수 없다고 느낍니다. 환경부담금을 내도록 한대서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돈이 모일 뿐입니다. 도시에는 발전소가 없습니다. 도시에는 쓰레기 묻거나 태우는 터가 몇 없습니다. 도시에는 핵발전소 폐기물 묻는 터가 없습니다. 도시에는 ‘위해 시설’이나 ‘유해 시설’을 들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도시에 숲을 이루도록 흙땅을 건사하는 일이란 보이지 않습니다.

 

 숲을 마련하지 않고, 그나마 남은 논밭이랑 얕은 멧자락을 허물어 아파트를 짓는 도시입니다. 이러한 도시가 깨끗해질 일이란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도시는 날마다 더 더러워집니다. 도시는 날마다 더 지저분한 먼지를 온누리로 흩뿌립니다. 도시사람은 자가용을 몰아 도시뿐 아니라 이웃 시골마을까지 더럽힙니다. 자가용을 몰면서 골골샅샅 누비는 동안 정갈하던 시골자락마저 지저분해집니다.

 

 장비를 갖춰 산을 타니까 산이 망가집니다. 자전거를 몰고 산을 오르내리니까 산이 깎입니다. 나쁜벌레 막는다며 헬리콥터로 농약을 온 들판과 멧자락에 뿌려대니까 숲이 몸살을 앓습니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숲에서 자라는 나무를 베어 종이로 쓴다거나 가구를 짠다거나 하는 일이 많지 않은데, 이마저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숨을 마음껏 들이쉴 만한 터전이 못 됩니다.


.. 야콥은 숲 속을 나와 어느 도시에 도착했어요. 도시의 수많은 공장 굴뚝에서는 하루 종일 새까만 연기가 나왔어요. 또 거리의 자동차들은 쉴새없이 더러운 연기를 뿜어내며 달렸어요. 콜록콜록! 야콥은 숨쉬기조차 힘들었어요 ..  (12쪽)

 

 


 돈을 벌자면 도시로 가야 한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도시로 가야 더 크나크다 하는 돈을 벌겠지요. 요즘 같은 누리에서 시골로 가면 돈구멍이 없다고 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시골에서 돈벌이를 얼마나 하겠습니까. 시골에서 푸성귀를 일구거나 곡식을 거두어도 도시에 내다 팔아야 돈을 벌 테니까, 도시하고 안 이어지면 돈구멍이 없어요.

 

 그러나, 돈 아닌 삶을 생각한다면 도시에서 삶찾기는 까마득합니다. 밥이 되는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잊는 도시에서 어떤 삶을 찾고 어떤 사랑을 느끼며 어떤 사람을 사귀는가요.

 

 오늘날 사람들은 삶이 아닌 돈을 찾으니까 도시로 몰리기만 해요. 오늘날 사람들은 아이들한테 사랑 아닌 지식을 가르치려 하니까 더 커다란 도시 더 커다란 학교로 내몰기만 해요. 오늘날 사람들은 어깨동무할 이웃이랑 동무를 사귀기보다는 이름값 드날리는 데에 기울어지니까 수수한 꿈과 믿음이랑 동떨어지고 말아요.

 

 왜 아이들한테 자동차를 익숙하게 하나요. 왜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하고 사귀도록 하나요. 왜 아이들이랑 흙을 밟으며 먹을거리 일구는 삶을 잊는가요. 왜 아이들이랑 도란도란 이야기꽃 노래잔치 벌이는 꿈 같은 하루하고 멀어지나요.

 

 가수가 되어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 노래를 좋아하고 즐기는 아이들이어야 사랑스럽습니다. 공무원이 되어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 스스로 땀흘려 일하는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는 아이들이어야 믿음직합니다. 있는 집에 시집장가 가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 꿈과 사랑과 믿음이 얼크러진 좋은 넋으로 살아가는 짝꿍을 만나는 아이들이어야 아름답습니다.


.. (멧골 아이 야콥은) 광장으로 달려가 큰 소리로 외쳤어요. “왜 착한 내 친구(멧짐승)들을 괴롭히는 거예요?” 그때 도시의 대표가 나와서 말했어요. “네 친구들이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계속 말썽을 피웠단다. 그런데 넌 어디서 왔니?” “저는 숲 속 마을에 사는데, 동물들이 아파서 약을 구하러 왔어요. 여기서 날아온 나쁜 공기 때문에 동물들이 아파요. 제발 도시를 깨끗하게 해 주세요!” ..  (19쪽)

 


 마르타 코시 님 그림책 《숲이 아파요》(푸름이동사모,2004)를 읽습니다. 2002년에 ‘예지현’이라는 데에서 처음 나왔다가 사라진 《동물들이 아파요》가 2004년에 새옷을 입었으나, 《숲이 아파요》라는 이름으로 나온 그림책은 전집 가운데 하나입니다. 따로 찾아 읽을 길이 없습니다.

 

 이 그림책은 아주 단출하고 짤막하게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첫째, 숲은 즐거웠습니다. 둘째, 숲이 갑자기 앓아눕습니다. 셋째, 숲을 살리려고 길을 떠납니다. 넷째, 도시에 닿아 숨이 막혀 죽을 뻔합니다. 다섯째, 도시에서 따돌림받고 들볶이는 들짐승을 만납니다. 여섯째, 도시사람더러 제발 서로서로 살아남을 길을 찾자고 외칩니다. 일곱째, 숲으로 돌아온 아이는 숲동무랑 예전처럼 조용하면서 아름다이 살아갑니다.

 

 숲이 아프고 도시가 아픈 까닭은 오직 하나입니다. 공장과 자가용, 이 두 가지입니다. 공장과 자가용으로 대표하는 도시살이란 바로 ‘돈’입니다. 돈 때문에 공장을 짓고, 돈 때문에 공장을 지으면서 다세대주택과 아파트가 늘어납니다. 공장 일꾼이 늘어나며 공무원도 늘어나고, 이것저것 끝없이 늘리고 늘리면서 도시는 몸집이 커질 뿐, 이 커진 몸집을 어찌 건사해야 하는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돈은 끝없이 쌓이는데, 끝없이 쌓이는 돈으로 무얼 해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나날이 되는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제성장을 이룬들 밥을 나누지 않으면 부질없습니다. 수출을 많이 한들 땅을 나누지 않으면 덧없습니다. 맑은 물과 바람과 햇살과 흙과 풀을 누릴 수 있는 터로 이 나라를 돌보아야 합니다. 내가 살고 네가 살며 우리가 살아가자면, 도시사람 아닌 숲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도시를 버리고 숲을 살려야 합니다.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4345.2.18.흙.ㅎㄲㅅㄱ)


― 숲이 아파요 (마르타 코시 글·그림,김요한 옮김,푸름이동사모 펴냄,200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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キツネ (北國からの動物記) (大型本)
다케타쓰 미노루 / アリス館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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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한테 보여주며 함께 살아갈 이웃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49] 다케타쓰 미노루(竹田津 實), 《北國からの動物記 ② キツネ》(アリス館,2008)

 


 들짐승 돌보기로 온삶을 바친 일본사람 다케타쓰 미노루(竹田津 實) 님은 당신 스스로 좋아서 일본 훗카이도에 동물병원을 열었겠지요. 이름은 ‘동물’병원이지만, 정작 다케타쓰 미노루 님이 돌본 짐승은 집짐승보다는 들짐승이었어요. 그래서 다케타쓰 미노루 님 병원은 여느 동물병원이라는 이름보다는 ‘들짐승’병원이라고 할 때에 걸맞다고 느낍니다.

 

 늘 들짐승을 돌보며 살아갔기에 들짐승한테 병원삯을 받지 못합니다. 들짐승은 돈을 갖고 다니지 않아요. 들짐승은 은행계좌가 없어요. 들짐승은 곡식이나 푸성귀로 병원삯을 갚지 않아요. 몸이 다 나으면 병원을 훌쩍 떠나 들판으로 돌아가요.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이를 모르지 않았겠지요. 뻔히 밥벌이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 이렇게 일하며 살아가지 않았겠지요.

 

 한국말로 옮겨진 다케타쓰 미노루 님 책으로는 뒷이야기를 더 살피기 어렵습니다만, 몇 가지 이야기책으로 읽고 몇 가지 사진책으로 곰곰이 돌아보노라면,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누구보다 당신 옆지기와 아이들한테 가장 좋다 싶은 터전에서 가장 좋다 싶은 보금자리를 일구고 싶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일하며 살지 않았느냐 싶어요.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다친 들짐승을 보살핍니다.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 고치는 짓을 하지 않아요. 다쳐서 병원을 찾아오는 들짐승이 더러 있으나, 이웃사람들이 다친 들짐승을 보고는 가엾게 여겨 병원으로 데려온답니다.

 

 여러 해에 걸쳐 다케타쓰 미노루 님 사진책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우리 옛이야기처럼 ‘다친 들짐승이 다케타쓰 미노루 님한테 선물 한 가지 베풀며’ 서로 이웃으로 사귀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리 다친 제비처럼 돈더미를 베풀지는 않으나, 다친 들짐승은 다케타쓰 미노루 님한테 사진으로 찍히면서 참새이든 여우이든 족제비이든 들쥐이든 토끼이든 사슴이든 …… 한집에서 한식구로 지내며 살가이 사귄 이들 짐승을 들판에서 다시 만나 가까이 사진으로 담는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엮인 책으로 읽으며 ‘새로운 사랑과 삶’을 느낄 수 있어요. 이동안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책을 내놓고 사진을 판 돈으로 병원을 꾸립니다. 병원 한 칸을 더 늘릴 수 있고, 당신 아이들을 먹여살리며 가르칠 수 있기까지 해요. 깊은 들판에 조용히 자리한 들짐승병원이 오래오래 이을 만한 돈을 이야기책이랑 사진책이 벌어 줍니다.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별나라 짐승을 사진으로 담지 않습니다.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머나먼 나라 새롭거나 낯선 짐승을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늘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들짐승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언제나 곁에서 이웃으로 지내는 들짐승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들짐승을 보살피는 나날이 길어질수록 들짐승을 차분히 바라보며 살가이 담아내는 손길은 한결 따스해집니다. 들짐승하고 이웃으로 지내는 햇수가 늘어날수록 들짐승을 꾸밈없이 마주하며 수수히 담아내는 눈길은 더욱 넉넉해집니다. 들짐승병원에서 태어나 함께 살아간 아이들은 어떤 삶을 누리고 어떤 이야기를 빚으며 어떤 사랑을 꽃피웠을까요. 아이들이 품을 꿈과 사랑에 앞서, 이 아이들을 낳은 두 어버이는 어떤 꿈과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누리며 즐겼을까요.

 

 호시노 미치오 님은 북극곰을 만나러 먼길을 떠나면서 아름다운 벗님을 사귀고 찾았습니다.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훗카이도 들짐승병원 둘레에서 들짐승을 늘 마주하면서 살가운 이웃을 사귀고 보살폈습니다. 모두 사랑어린 눈길로 벗님과 이웃을 사귑니다. 모두 믿음어린 손길로 벗님과 이웃하고 어깨동무했습니다.

 

 들짐승이 살아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자면 꽤 오래도록 지켜보고 무척 오랜 나날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혼자 들짐승을 지켜보기도 했겠지만, 아이들과 들판에서 뒹굴고 놀면서 들짐승을 살펴보기도 했을 테지요.

 

 흙을 밟으며 들짐승을 만나는 어버이 곁에서 흙을 밟으며 뒹굴고 노는 아이들입니다. 흙을 밟는 들짐승하고 나란히 흙을 밟는 이웃으로 지내는 어버이와 함께 흙을 밟는 들짐승을 좋은 이웃으로 여기는 아이들입니다.

 

 

 

 사진을 찍는 어버이라면, 우리 아이들하고 누구랑 서로 이웃으로 사귀며 함께 살아갈 때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리라 봅니다. 글을 쓰는 어버이라면, 우리 아이들하고 누구랑 서로 이웃으로 지내며 같이 살아갈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헤아리리라 봅니다. 더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더 빼어난 이야기를 글로 써야 하지 않습니다. 더 돋보이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이야기를 글로 써서 읽혀야 하지 않습니다. 사랑 가득한 삶을 사진으로 나눌 때에 즐겁습니다. 사랑 감도는 삶을 글로 함께할 때에 웃음꽃이 핍니다.

 

 좋은 넋으로 좋은 삶이요, 좋은 꿈으로 좋은 사진입니다. 기쁜 생각으로 기쁜 나날이요, 기쁜 사랑으로 기쁜 글입니다. (4345.2.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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