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동시 따 먹기
김미혜 지음, 김제곤 엮음, 장경혜 그림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는 모두 시인입니다
 [어린이책 읽는 삶 16] 김미혜, 《신나는 동시 따먹기》(창비,2011)

 


- 책이름 : 신나는 동시 따먹기
- 글 : 김미혜
- 그림 : 장경혜
- 펴낸곳 : 창비 (2011.6.20.)
- 책값 : 12000원

 


 온삶을 어린이를 생각하며 지낸 이오덕 님이 내놓은 책 가운데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가 있습니다. 이오덕 님은 초등학교 어린이와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당신이 하늘에서 받은 선물처럼 받아들이며 살았고, 아이들이 스스로 ‘글쓰기’를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는 이 같은 기나긴 삶을 바탕으로 쓴 책이에요.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에 실린 아이들 글을 읽는다든지, 《일하는 아이들》이나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에 실린 아이들 글을 읽으면, 이 글은 모두 ‘시’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 아이들은 어떠한 시 이론과 비평과 해설을 듣거나 배우거나 익히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은 저마다 제 고향마을에서 어버이와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돌이키며 글을 쓰고, 이렇게 쓴 글은 모두 시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제 막 국민학교에서 한글을 뗀 아이들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거의 다 틀리는 비뚤비뚤한 글을 씁니다. 3학년이나 4학년쯤 되면 제법 가지런히 글을 씁니다. 5학년이나 6학년쯤 되면 아이 스스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제법 잘 맞춥니다. 그러니까, 아이들한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억지로 가르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 스스로 배우기 마련이니까요.

 

 아이들한테 영어나 한자를 굳이 가르칠 까닭이 없습니다. 마땅히 써야 하는 영어나 한자라면, 어른들부터 여느 삶 여느 자리에서 영어나 한자를 쓸 테고, 여느 어른이 여느 자리에서 쓰는 영어와 한자는 아이들 여느 삶으로 시나브로 녹아들어요.

 

 가르침도 배움도 저절로 녹아들 때에 가르침이요 배움입니다. 따로 교육과정을 짜거나 교과서를 읽히거나 시험을 치러야 가르침이자 배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재와 참고서를 외우도록 시켜야 아이들이 똑똑해지지 않아요.

 

 아이들은 저마다 디디는 땅을 온몸으로 옳게 부대끼며 착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을 때에 튼튼한 사람으로 자라납니다. 아이들은 제 옷과 밥과 집이 모두 흙에서 비롯하는 줄 깨닫고, 흙은 햇살과 비와 바람을 먹으며 기름지는 줄 깨달을 때에 바야흐로 씩씩한 일꾼으로 거듭납니다.

 

 동시를 쓴다는 김미혜 님이 엮은 《신나는 동시 따먹기》(창비,2011)라는 책을 읽습니다. 김미혜 님은 머리말에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시의 맛을 알게 되고, 시를 어떻게 감상하는지, 시를 어떻게 쓰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고 밝힙니다.

 

 나는 이 머리말을 읽다가, 이 머리말부터 이 책은 ‘시를 읽는 맛’을 지우고 마는 슬픈 책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어떠한 ‘동시 읽기 길잡이책’도 동시이든 시이든 읽으며 누리는 깊고 달콤하며 즐거운 맛을 느끼도록 돕지 않아요. 시를 읽어야 시맛을 느껴요. ‘시 해설’과 ‘시 설명’을 읽는다 해서 시맛을 느끼지 않아요.

 

 동시를 더 재미나게 읽는 길은 없습니다. 동시를 더 재미없게 읽는 길도 없어요. 그러나, 이렇게 ‘동시 읽기 길잡이책’을 낸다면, 이러한 책은 아이나 어른이나 동시를 읽는 맛을 못 느끼거나 엉뚱하게 생각하도록 잘못 이끄는구나 싶어요.


.. 고깔제비꽃 알록제비꽃 태백제비꽃 왜제비꽃 / 제비꽃 이름 무어 그리 복잡할까 ..  (김미혜-그냥 제비꽃)


 《신나는 동시 따먹기》 첫머리에는 엮은이 김미혜 님 동시를 넣습니다. 엮은이 김미혜 님은 〈그냥 제비꽃〉이라는 동시에서 “제비꽃 이름 무어 그리 복잡할까” 하고 말하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할까 궁금합니다. 아이들한테 이런 ‘어른 생각’을 들려주는 일은 아이들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궁금합니다. 이런 어른 생각은 아이들한테 어떤 사랑을 불러일으킬까 궁금합니다.

 

 제비꽃 이름이 뭐가 어지러운가요? 똑같은 제비꽃은 하나도 없으니 다 다른 이름이 붙어요. 똑같은 어린이는 하나도 없기에, 어린이마다 이름이 모두 달라요. 똑같은 어른 또한 아무도 없으니, 어른마다 이름이 서로 다릅니다.

 

 아이를 앞에 두고 “응, 넌 그냥 아이야.” 하고 말할 수 있겠지요.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앞에 두고 “응, 당신은 그냥 어른이야.” 하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러다 보니, 김미혜 님은 동시 끝에 붙이는 풀이글에 더 슬픈 이야기를 달고야 맙니다.


.. 자, 그럼 나무도감을 보고 마음에 드는 나무 이름을 외워 볼까? 10분 동안 얼마나 많은 이름을 알게 되었는지 적어 보자 ..  (25쪽)


 도감을 읽으며 나무 이름을 외우는 일은 나무를 얼마나 잘 알거나 나무와 얼마나 살가이 사귀는 일이 될는지요. 출석부를 보고 아이들 이름을 외우면 아이들을 잘 아는 교사가 되는가요. 전화번호부를 펼쳐 사람들 이름을 외우면 내 이웃들을 잘 헤아리는 사람이 될까요.

 

 이름을 모른다 해서 나쁠 일이 없습니다. 제비꽃을 바라보며 이름을 몰라 “참 예쁜 꽃이로구나.” 할 수 있어요. 내 가슴속으로 이 어여쁜 꽃을 바라볼 수 있으면 돼요. 내 가슴으로 느끼는 대로 ‘내가 사랑스레 느낀 결 그대로 내 나름대로 새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시는 이렇게 태어나요. 내 가슴속에서 사랑이 샘솟을 때에 시가 태어나요. 나는 제비꽃이라는 꽃을 바라보며 ‘제비꽃’이라는 이름을 모르기에 ‘나비꽃’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나비꽃이라는 시를 내 가슴으로 쓸 수 있어요. ‘무지개꽃’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시를 쓸 수 있겠지요. ‘내 동생 손톱처럼 앙증맞은 꽃’이라고 말을 걸며 시를 쓸 수 있어요.

 

 밤나무 참나무 벚나무 뽕나무 하고 이름을 외운들 무슨 나무 사랑이 되고 어떤 시 사랑이 될 수 있을까요. 막상 뽕나무 줄기를 쓰다듬어 보지 않고 이름만 달달 외운다면, 뽕나무 잎사귀와 꽃잎을 어루만지지 않고 이름만 줄줄 꿴다면, 이러한 지식으로 어떤 시를 쓰는가요. 이렇게 지식만 쌓은 머리로 시를 어떻게 즐기거나 맛보는가요.


.. 좋은 시를 흉내내 ‘모방 시’를 쓰는 것은 새로운 시를 쓰기 위해 꼭 필요한 훈련이란다. 주위를 살펴보고 어떤 내용을 담을지 생각해 본 다음 〈개구쟁이 산복이〉와 비슷한 흐름으로 시를 써 보자 ..  (29쪽)


 김미혜 님은 아이들더러 ‘시 흉내내기’를 하라고 시킵니다.

 

 아이들은 모두 시인인데, 시인더러 시를 흉내내라고 시킵니다.

 

 어린이는 누구나 시인이요, 어린이로 살며 어른이 된 사람들 누구나 시인이기에, 굳이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를 다니지 않아도 시를 쓸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이 쓴 시를 베끼듯 흉내내라니요.

 

 다른 사람이 쓴 시는 내 가슴으로 읽으며 사랑을 느껴야 할 뿐입니다. 내가 쓰려는 시에는 내 온 사랑을 담아야 할 뿐입니다.

 

 베껴쓰기 숙제를 내듯 흉내내기 시를 쓰도록 하는 어른이라면, 시를 말할 수 없습니다. 시를 이야기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시를 쓸 수도 없습니다. 베끼고 흉내내면서 어떤 삶과 꿈과 사랑과 믿음을 나눌 수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흉내내기를 한다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흉내내기가 아니에요. 어른이 바라보기에는 ‘흉내’이지만, 아이들로서는 ‘온몸을 움직여 삶을 다스리는 일’이에요.


.. 청소도 숙제도 미루고 공기놀이에 푹 빠져 버렸네. 놀이, 게임, 영화, 책 ……. 무언가에 몰입하면 시간이 후딱 지나가지. 공기놀이가 끝나면 몇 시쯤 될까? 어쩌다 한 번씩은 할 일 다 미루고 이렇게 마냥 놀면 참 좋을 거야 ..  (31쪽)


 문득 생각합니다. 《신나는 동시 따먹기》라고 하는 책은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동시를 배울 때에 ‘초등학교 논술 공부 더 잘 하라’는 뜻에서 엮은 책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점수따기 하는 아이들이 시험성적 더 잘 거두도록 일찍부터 이끄는 책이 아니겠느냐고 느낍니다.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야 안 해도 되고 미루어도 됩니다. 그러나, 밥을 안 먹거나 집 안팎을 쓸고닦으며 치우거나 몸을 씻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 일은 안 하거나 미룰 수 없습니다. 빨래를 안 해도 될까요. 설거지를 안 해도 되나요.

 

 우리가 먹는 밥은 어디에서 나지요. 공장에서 만든다는 과자나 햄 같은 가공식품이라 하더라도 이 가공식품 밑감은 어디에서 얻나요. 쌀이 없어도 쌀과자가 태어나고, 밀이 없어도 빵이 태어나는가요. 감자가 없어도 포테이토칩을 만들고, 양파가 없어도 양파깡을 만드는가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들이 없으면 가공식품조차 없지 않나요. 시골에서 소와 돼지를 기르는 사람들이 없다면, 소와 돼지한테 먹을 밥이 되는 곡식을 일구는 사람들이 없다면, 어떠한 밥을 도시사람이 먹을 수 있나요.


.. 시인이 도시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 것은 그만큼 농촌의 현실이 힘들기 때문이야. 우리가 쌀과 채소를 많이 먹으면 농촌 사람들도 힘이 날 거야. 엄마 아빠와 함께 농촌에서 나는 먹을거리가 많이 들어간 식단을 짜 보자 ..  (103쪽)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 눈으로는 “우리가 쌀과 채소를 많이 먹으면 농촌 사람들도 힘이 날 거야” 하고 느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참말 시골사람이 힘이 날 만한가 모르겠습니다. 그저 쌀을 사다 먹으면 되고, 푸성귀를 사다 먹으면 일이 다 풀리는가 모르겠습니다. 논밭을 가로지르는 기찻길과 고속도로를 내고, 온 멧자락에 구멍을 내며 고속철도를 놓는 마당에, 시골사람이 두 다리 뻗을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4대강 삽질 하는 데에 퍼붓는 어마어마한 돈은 시골자락을 얼마나 아름다이 돌보는 일이 되나요. 시골마을이 왜 힘이 드는가요. 사람들은 왜 시골을 떠나 도시로만 몰리나요. 왜 아이들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도시로 빠져나가나요. 아이들은 왜 대학교에 들어가면 두 번 다시 시골로 돌아갈 생각을 안 하나요.

 

 굳이 아이들한테 자유무역협정이나 물질문명을 낱낱이 이야기해야 하지는 않다 할는지 모르나, 아이들이 삶과 삶터와 삶자락을 올바로 깨달으며 생각하도록 돕는 어버이요 어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 시인의 눈길이 복숭아 장수 아저씨에게로 향했어. 복숭아 장수 아저씨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앵앵거리는 파리일까, 후끈한 열기일까? 아니면 쏟아지는 졸음일까?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지 않고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이 시 쓰기의 첫걸음이란다 ..  (71쪽)


 시를 쓰는 사람은 생각을 깊이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둘레를 잘 살피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때에 시를 쓰는 넋이 아름다이 거듭납니다. 삶을 착하고 참다이 일굴 때에 시를 읽는 눈이 곱게 태어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지 않는대서 시를 쓸 수 있지 않습니다. 내 가슴을 활짝 여는 착한 매무새일 때에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둘레를 두리번두리번 살핀대서 시로 쓸 만한 이야기를 얻지 않습니다. 내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내 하루를 올바로 가꿀 때에 시나브로 시가 샘솟습니다.

 

 이리하여, 이오덕 님이 이야기하는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하는 말을 가슴으로 아로새길 수 있어요. 어린이는 날마다 흙을 밟고 신나게 놀면서 삶을 즐기니까 연필 한 자루를 쥐면 시를 술술 씁니다. 어린이는 날마다 햇살을 먹으며 마음껏 놀고 제 어버이하고 논일 밭일 집일 함께 하니까, 구슬땀 흘리는 손으로 붓을 쥐어 그림을 슥슥 그립니다.

 

 아이들한테는 시를 가르칠 까닭이 없습니다. 어른들부터 스스로 삶을 착하고 밝고 예쁘게 꾸리는 몸짓일 때에, 아이들은 제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삶을 배웁니다. 삶을 배우는 아이들은 시를 배우는 셈입니다. 삶을 느끼고 사랑을 깨닫는 아이들은 시를 느끼고 시를 깨닫는 아이들로 다시 태어납니다.

 

 아이들한테는 ‘삶’이라고 하는 시집을 선물하면 넉넉합니다. 아이들한테는 ‘사랑’이라는 노래책을 선물하면 흐뭇합니다. (4345.2.16.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쓰는 그날 그 거리 - 사진기자 고명진의 포토에세이
고명진 지음, 조천우.최진 글.정리 / 한국방송출판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가까이에서 보고 멀리서 바라보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77] 고명진, 《다시 쓰는 그날 그 거리》(한국방송출판,2010)

 


 깊은 밤에도 찻길에는 등불이 밝습니다. 오가는 자동차 없어도 밤길이 훤합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깊은 시골마을에서는 꿈꿀 수 없는 모습이요, 딱히 바라지 않는 모습입니다. 네 식구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뵈러 가는 길에 지나가는 일산 새도시는 밤 열 시가 넘어도 번쩍번쩍 밝습니다.

 

 새로 올려세운 아파트에는 아직 불빛이 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머잖아 새 아파트에도 층마다 불빛이 훤하겠지요. 이 많은 아파트에 등불을 밝히자면 서울하고 멀찍멀찍 떨어진 영광과 고리와 울진뿐 아니라 또다른 새 시골마을 깊숙하고 조용하며 깨끗한 터전을 싹 밀어내어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야 한다고 하겠지요. 원자력발전소는 되도록 서울이랑 경기도하고 멀리멀리 떨어진 데에 지으려 하니까요.

 

 원자력발전소를 서울이나 경기도 같은 데하고 아주 멀리 떨어진 데에 짓는 까닭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원자력발전소가 뻥 하고 터지기라도 하면 서울이 다쳐서는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영광이나 고리나 울진 같은 데는 어쩌지요? 이곳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소 방사능을 늘 쐬어야 하는데 어쩌지요? 원자력발전소가 터지기라도 하면 이곳 사람들은 어쩌지요? 앞으로 이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굴레를 떠안으며 살아야 하지요?

 

 시골마을 사람들이 고향 터전을 깨끗하고 조용하며 아름다이 지키고 싶어 원자력발전소를 손사래치는 손길을 가리켜 적잖은 지식인과 언론매체는 ‘님비’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시골마을 사람들은 따로 발전소가 없어도 돼요. 전기를 아예 안 쓰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텔레비전이야 안 보면 되고, 냉장고야 안 쓰면 되며, 빨래기계 없이 손으로 빨래하면 되니까요. 전기를 펑펑 써야 하는 데는 도시입니다. 시골마을은 해가 질 무렵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쉬니, 굳이 밤길을 등불로 밝히지 않아도 돼요. 자동차 넘쳐나는 도시에 전기로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아파트 가득한 도시는 화력발전소이든 원자력발전소이든 몇 군데씩 있어야 해요. ‘님비’라는 이야기로 무언가를 꾸짖으려면 시골마을 사람들 ‘고향 지키기’ 아닌 도시 사람들 ‘위해시설 도시에 들이지 않기’를 꾸짖어야 올발라요.

 

 

 

 사진기자로 한삶을 보낸 고명진 님이 빚은 사진책 《다시 쓰는 그날 그 거리》(한국방송출판,201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진기자 고명진 님 사진책 《다시 쓰는 그날 그 거리》에 나오는 ‘집회 시위 현장’은 모두 서울 모습입니다. 부산 모습마저 한두 차례 나올 동 말 동합니다. 인천이나 부천이나 대전은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현대 역사를 밝힌다는 민주주의 촛불이 선 곳은 오직 서울뿐이로구나 싶으면서, 그러면, 현대 역사를 어둡게 깎아내리거나 짓밟은 곳 또한 오직 서울뿐 아닌가 싶어요.

 

 “연행되어 끌려간 경찰서에서 화염병을 들고 있는 자신의 사진과 맞닥뜨리는 상황이니, 학생들이 우리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촬영하다가 시위대에 둘러싸여 신분증을 뺏긴 적도 많았고, 카메라와 필름을 뺏긴 채 폭행을 당한 적도 많았다. 나는 경찰도 아니고 권력의 앞잡이도 아니라는 각서를 쓰기도 했다(23쪽).” 하는 이야기를 글로 읽고 사진으로 바라봅니다. 참으로 슬픕니다. 왜 이렇게 서로서로 싸워야 하나요. 왜 한 하늘 한 땅을 누리는 이웃이자 동무이자 살붙이일 사람들이 한쪽은 대학생이 되고 한쪽은 전투경찰이 되어 욕지꺼리 내뱉으며 죽이자 살리자 싸워야 하나요. 모두들 서울로 몰리지 말고, 모두들 호젓한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서 흙을 일구며 살아간다면 싸울 일이 없지 않을까요. 서울에는 정치꾼만 남기고 경찰이든 대학생이든 몽땅 서울을 비우고 시골로 가서 흙을 일군다면, 싸울 일이란 아예 없지 않을까요. 전투경찰이든 경호원이든 대통령을 지키지 말고 고향마을을 지킨다면, 부정부패라느니 독재정권이라느니 설 일이 없지 않을까요. 군인들이 총을 들고 철책을 지키지 말고 고향마을에서 쟁기와 낫을 들고 들판에서 땀방울 흘린다면, 전쟁이라느니 군사독재라느니 싹틀 틈조차 없지 않을까요.

 

 아이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살아가는 경기도 일산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아, 이곳은 도시 한복판이 아닌 논밭 있는 일산 변두리인데, 이곳에서조차 별을 보기란 왜 이리 힘들지? 왜 달빛조차 그닥 안 밝지?

 

 

 

 별이 없어도 될 도시인가요? 서울에는 별이 없어도 되나요? 달이 없어도 괜찮은 도시인가요? 부산에는 달이 없어도 되나요?

 

 깊디깊은 밤에도 가게마다 불빛을 환하게 비춥니다. 우리 시골집이며 이웃 시골마을이며 밤이 되면 아주 깜깜해요. 등불조차 띄엄띄엄 아주 드뭅니다. 불을 켠 집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면내 가게도 일찍 닫고 읍내 가게 또한 일찍 닫아요. 그래, 전기를 써야 하는 데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이니까, 서울 종로와 명동과 압구정동과 삼성동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야지요. 이곳에 송전탑을 우람하게 세워야지요. 이곳에 핵폐기물처리장을 짓고, 이곳에 고압변전소를 으리으리하게 놓아야지요.

 

 “이 사진을 찍은 1987년 그 해, 나는 이 사진과 부산에서 찍은 다른 사진 한 장을 ‘한국 보도 사진전’에 냈다. 두 사진 모두 나란히 탈락했다. 똑같은 사진을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 보도 사진전’에 냈다. 이 사진은 뉴스 부문 3위에 입상했고, 다른 사진은 AP통신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진’에 포함됐다. 참 재미있는 일이지 않은가(47쪽)?” 하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한국 사진밭이나 문화밭이나 예술밭이나 언론밭은 예나 이제나 더없이 슬프구나 싶습니다. 왜 이렇게 슬픈 나라에서 슬픈 굴레를 뒤집어쓰며 살아야 하나 안타깝습니다.

 

 풀이 자랄 틈바구니 없고 나무가 가지 뻗을 터 모자란 도시입니다. 자동차 씽씽 달리는 찻길 나무들은 가지를 홀가분하게 뻗지 못합니다. 뎅겅뎅겅 잘립니다. 전깃줄을 건드린다며, 건물 창문을 가린다며, 나무는 줄기가 뭉텅뭉텅 잘려야 합니다.

 

 자연스러움하고는 동떨어진 도시라니까 어쩔 수 없나요. 그러면, 나뭇가지와 나뭇줄기 싹둑 베는 도시에서 사람들 삶은 어떤 모습이지요? 사람들 삶 또한 싹둑 잘리는 곳이 도시 아닌가요?

 

 이 도시에서 무슨 꿈을 꿀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사랑이 싹트지 못하는 도시에서 미움만 싹트지 않나 궁금합니다. 어깨동무를 하기 어려운 도시에서는 이렇게, 슬픈 시위와 집회를 열지 않고서는 아픈 사람들 목소리를 내놓지 못하는가 싶어 눈물겹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내 손을 잡고 울음을 터뜨리는 어머니들도 많았다. 내 아들은 감옥에 갈 만큼 잘못한 것이 없다고, 내 착한 아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말이다(73쪽).”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착한 아들이 감옥에 가야 할 까닭이 없겠지요. 민주주의를 찾겠다고 하는데 붙잡혀야 할 까닭이 없겠지요. 좋은 나라 아름다운 꿈을 외치겠다는데 전투경찰이 달려들어 사과탄을 깨뜨리고 몽둥이로 두들겨패야 할 까닭이 없겠지요.

 

 고명진 님은 “보도사진은 신문에 나지 않은 이상, 사진 시체가 되어 책상 위를 뒹구는 쓰레기가 되고 만다. 하지만 당장 보도가 안 된다고 해서 기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사진기자가 가장 피해야 할 생각이다(178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신문에 나지 않으면 보도사진으로 빛을 못 보는 셈이라 할 텐데, 신문이란 무슨 말을 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루는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 나라 신문매체에 실려야 돋보이는 보도사진이라 할 만한지, 이 나라 신문매체라면 굳이 안 실려도 좋을 보도사진이 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구태여 신문매체 자리를 따지기보다, 스스로 사진책을 엮고 스스로 1인언론을 마련하거나 스스로 마을소식지를 마련해서 보도사진을 띄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과 같은 흐름이라면, 애써 중앙일간지 틀을 따지지 말고, 인터넷 작은 방으로도 보도사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신문에 실려 사람들이 많이 보고 많이 알아줄 때에 보도사진답게 빛이 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보는 사진이기 때문에 보도사진 이름이 붙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삶을 밝히고 사람을 아끼며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에 보도사진 이름이 걸맞으리라 느껴요.

 

 사건과 사고를 찍는다면 ‘사건 사진’과 ‘사고 사진’이에요. 시위와 집회를 찍는다면 ‘시위 사진’과 ‘집회 사진’이겠지요. 이들 사건 사진이 사건 사진으로 안 그치고 보도사진이라는 이름이 붙으려면 ‘사건을 다루는 틀’을 넘어서는 다른 삶·사람·사랑 이야기가 깃들어야 해요. 우리 가슴속에서 피어날 꿈과 믿음과 웃음과 눈물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해요. 신문사진이기에 보도사진이 아니며, 보도사진이기에 신문사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진을 배우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후미진 골목 가장 발길이 뜸한 곳까지 깊숙이 들어가 보라고 권한다(218쪽).” 하는 말마디를 곱씹습니다. 사진기자 한삶을 누린 고명진 님이 들려줄 가장 아름다운 말마디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참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 또한 내가 사랑할 터를 생각하고 내가 사랑할 터에서 두 발 씩씩하게 내딛으며 하루를 즐기자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내 이야기가 태어나고, 내 이야기가 태어나는 곳에서 내 사진이 태어나거든요. 내 삶과 동떨어진 데에서는 내 이야기가 태어나지 못하고, 내 이야기가 태어나지 못하는 곳에서는 아무리 값진 장비를 갖추어도 내 사진이 태어나도록 이끌지 못해요. 나는 내 온 사랑을 쏟는 땀방울과 눈물방울로 사진을 찍습니다. 처음부터 보도사진이 되라며 찍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예술사진이 되라 할 수 없고, 처음부터 인물사진이나 패션사진이나 다큐사진이 되라 할 수 없어요.

 

 언제나 맨 처음은 삶입니다. 사람입니다. 사랑입니다. 삶과 사람과 사랑을 얼싸안는 자리에서 차근차근 글이 태어나고 그림이 태어나며 사진이 태어납니다. 삶과 사람과 사랑이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있을 때에 바야흐로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라는 저마다 다른 옷을 입는 꿈이 피어납니다. 사진은 늘 내 가슴속에 있습니다. (4345.2.16.나무.ㅎㄲㅅㄱ)


― 다시 쓰는 그날 그 거리 (고명진 글·사진,한국방송출판,20105.15./15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물원 그림책은 내 친구 1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미란 옮김 / 논장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머니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8] 앤서니 브라운, 《동물원》(논장,2002)

 


 졸리면서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가슴에 엎드리게 해서 재우곤 합니다. 첫째 아이이든 둘째 아이이든, 이렇게 가슴에 엎드리게 해서 재우고 보면, 아이 무게에 눌려 가슴이 뻑적지근합니다. 묵직하구나 싶어 몸을 옆으로 살살 기울이며 팔베개 하며 내립니다. 팔베개를 한 채 그대로 있어야 할 때가 있고, 어느 때는 팔베개를 살짝 빼내어도 새근새근 잠듭니다.

 

 내가 우리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때에 내 어버이는 나를 어떻게 재웠을까 궁금합니다. 내 어버이도 나를 가슴에 엎드리게 하며 재우느라 뻑적지근한 하루를 보내셨을까요.

 

 서양사람은 아이들이 꽤 어릴 때부터 방이나 침대를 따로 쓰게 한다지만, 모든 서양사람이 이렇게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조그마한 집에서 살아가던 사람들도 아이들마다 잠자리를 따로 마련해서 재웠을까요. 모두 함께 한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들었을까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잠자리를 따로 마련하는 일이 좋은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부러 함께 잠자리를 마련해야 할 까닭이 없을 테지만, 애써 잠자리를 갈라야 할 까닭이 있을까 모르겠어요.

 

 잠을 자는 방에 모두 나란히 누워 불을 끄면, 숨소리 골골 천천히 느끼다가 어느 결에 꿈나라로 갑니다. 여름에는 덥다지만, 겨울에는 한 방에 함께 누우니 한결 따스합니다. 깊이 잠든 아이 이마를 쓰다듬으며 머리결을 뒤로 넘길 때에, 이 어여쁜 아이를 새삼스레 다시 돌아봅니다. 참으로 어여쁜 아이라고 느끼는 내 눈길이라면, 이 아이가 제 어버이를 바라볼 때에도 참으로 어여쁜 어머니 아버지라고 느낄까 하고 돌이킵니다. 하루를 마감하며 오늘 하루 얼마나 즐거웠는지 되새기고, 새로 맞이할 하루는 어떻게 누릴까 하고 꿈꿉니다.

 


.. 엄마는 씁쓸하게 말했다. “동물원은 동물을 위한 곳이 아닌 것 같아. 사람들을 위한 곳이지.” ..  (22쪽)


 내가 혼자 살아간다면 어떤 모습 어떤 꿈 어떤 사랑이었을까 헤아려 보곤 합니다. 네 식구 함께 얼크러지는 오늘을 곱씹으며,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나는 어떤 어버이로 이 자리에 서는가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옆지기를 만나고 두 아이와 어깨동무를 하기에 마음을 한결 따스하게 품거나 사랑을 한껏 해맑게 북돋울 수 있다고 말해도 될까요. 홀로 살아가는 나라면, 덜 따스하거나 덜 너그럽거나 덜 믿음직하거나 덜 씩씩하거나 덜 야무진 모습이라 해도 될까요.

 

 혼자일 때와 식구를 이룰 때를 돌아보면, 무엇보다 ‘날마다 얼굴 마주보는 사람’이 다릅니다. 혼자일 때에는 늘 혼자 생각하고 혼자 길을 걸으며 혼자 살림을 꾸립니다. 여럿일 때에는 내 생각을 말하고 네 생각을 들으면서 우리 보금자리 알뜰살뜰 여밀 길을 이야기합니다.

 

 그래, 여럿이 이루는 식구라면 마땅히 여러 목소리가 조곤조곤 나와야겠지요. 내 목소리를 내고 네 목소리를 들어야겠지요.

 


.. 그 다음에는 비비원숭이를 보았는데, 조금 재미있었다. 비비원숭이 둘이 싸우자, 엄마가 말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구나.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지만.” ..  (18쪽)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나는 어릴 적에 우리 집에서 여러 사람 목소리를 조곤조곤 주고받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 얼거리는 예나 이제나 아직 가부장 틀에서 그닥 벗어나지 않은 만큼, 어쩌는 수 없이 아버지 목소리만 울려퍼진다 하겠지요. 그러나 참말, 예나 이제나 이렇게 아버지 목소리만 울려퍼져도 좋은지 궁금해요. 더욱이, 집일과 집살림을 찬찬히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돌아보지 않는 아버지들 목소리만 울려퍼져도 즐거운 나날이 될는지 궁금해요.

 

 식구를 이루는 어버이라 한다면, 아버지와 어머니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며 빛나야 하지 않을까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신을 낳으며 살아온 할아버지와 할머니 목소리를 곰곰이 귀를 기울여 들으면서 서로서로 생각과 마음을 더 넉넉하고 따스히 빛내야 좋지 않을까요.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어떤 모습과 목소리와 숨결과 사랑과 꿈과 생각과 마음을 물려받았을까 하고 돌이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모습과 목소리와 숨결과 사랑과 꿈과 생각과 마음을 기쁘며 신나게 물려줄 만한가 하고 돌이킵니다.

 

 틀림없이 좋은 넋을 물려받아야겠지요. 틀림없이 좋은 얼을 물려줄 수 있어야겠지요. 가장 빛나는 사랑을 물려받아야겠지요. 가장 빛나는 사랑을 물려줄 수 있어야겠지요.

 


.. 호랑이는 계속 그러기만 했다. “너무 불쌍해.” 엄마가 말하자, 아빠가 코웃음쳤다. “저 녀석이 쫓아오면 그런 소리 못 할걸. 저 무시무시한 송곳니 좀 보라고!” ..  (10쪽)


 앤서니 브라운 님 그림책 《동물원》(논장,2002)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은 첫 쪽에 모든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우리 식구’를 보여주는 첫 그림에 모든 이야기가 담깁니다.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갈라 보여주는 ‘우리 식구’는 네 칸으로 쪼개진 모습이요, 바깥에서 창살 안쪽을 들여다본 모습입니다. 마지막 그림에 나오는 창살에 갇힌 모습인 고릴라하고 똑같아요.

 

 고릴라도 창살 안쪽에 갇힙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저마다 창살 안쪽에 갇힙니다. 나와 동생도 따로따로 창살 안쪽에 갇혀요.

 

 범을 바라보며 불쌍하다고 느끼는 어머니는, 어머니 삶부터 불쌍합니다. 그런데, 어머니 삶만 불쌍하지 않아요. 아름다움과 사랑과 믿음과 꿈을 아이들한테 들려주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살아내지 못하는 아버지 또한 불쌍합니다. 불쌍한 어머니와 아버지하고 살아가는 ‘나와 동생’까지 불쌍해요.

 

 그림책 어머니는 동물원이 ‘동물을 생각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렇다고 ‘사람을 생각하는’ 곳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 스스로 사람다이 살아가지 않고 짐승들을 가두었으니, 이 또한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 아니에요. 사람 스스로 굴레에 갇히는 일이요, 사람 스스로 올가미를 쓰는 일이에요.

 

 


.. 갑자기 아빠가 물었다. “우리가 만난 지옥이 무슨 지옥인 줄 아니?” 해리가 대답했다. “몰라요.” 그러자 아빠가 큰 소리로 외쳤다. “바로 교통 지옥이지.” 다들 ‘와하하’ 웃었다. 나랑 엄마랑 해리랑만 빼고 ..  (4쪽)


 그림책 《동물원》을 넘기며 다시금 생각합니다. 나는 옆지기와 짝을 이루고 두 아이와 살아가는 오늘을 누리면서, 이렇게 네 사람 삶이 한 집에서 얼크러지는 모습이 아주 고맙고 보배롭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 고맙고 보배로운 삶을 그리 예쁘게 누린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한결 홀가분하게 누릴 만하고, 참으로 기쁘게 누릴 만한데, 이래저래 힘겹거나 고단한 일을 많이 짊어집니다.

 

 왜 슬픈 굴레나 고단한 짐을 짊어질까요. 아무래도 나부터 스스로 ‘어머니(내 옆지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탓이겠지요. 내 목소리가 얼마나 곱게 들리는 목소리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 목소리를 곱게 듣는 삶이어야 합니다. 아이들 목소리가 어여삐 꽃피울 자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모두들 사랑으로 빛나는 하루를 누리는 즐거운 길을 걸어야 합니다.

 

 슬기롭게 살아가는 어머니가 될 때에 즐겁습니다. 슬기롭게 살아가는 어머니와 함께 착하고 참다이 살림을 꾸리는 아버지가 될 때에 아름답습니다. 좋은 식구로 이루어진 삶은 고마운 선물이자 환한 꿈입니다. (4345.2.16.나무.ㅎㄲㅅㄱ)


― 동물원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장미란 옮김,논장 펴냄,2002.8.5./98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경괴동 3
모치즈키 미네타로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도쿄·후쿠시마·서울·영광 아이들
 [만화책 즐겨읽기 117] 모히즈키 미네타로, 《동경괴동 (3)》

 


 아이들이 흙 한 줌 느긋이 밟지 못하게끔 도시로 내모는 어른들입니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자면 더 커다란 도시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더 커다란 도시로 아이들을 내몰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더 커다란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는지 궁금합니다.

 

 자그마한 도시 어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배운 다음 교사라는 자리에 서며 아이들을 가르치나요. 커다란 도시 어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배우고서 교사라는 자리에 서는가요.

 

 더 커다란 도시로 나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나중에 저희들 고향마을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더 커다란 도시에서 지내며 학교에 다닌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난 뒤 저희들 고향마을을 어여삐 북돋우는 참답고 슬기로운 어른으로 우뚝 설까요.


- “이봐, 너한테 친구 따윈 없어. 넌 우정도 쥐뿔 기억 못 하잖아. 넌 죽을 때까지 평생 고독해. 네 인생은 산 지옥이라구. 저기 마요네즈처럼 생겨서 마요네즈를 들고 가는 저 녀석도 똑같아. 메모해 둬.” “으으으, 저기, 사람은 왜 늘 다들 서로서로 심한 말을 하는 걸까. 네 경우 세상 모두를 바보 취급하는 것도, 대중적인 것에 대한 경멸도, 그것도 역시 그냥 겁쟁이라서 그래?” (5쪽)
- “무서워 하지 마. 난 네 친구야. 난 알아. 너는 언젠가 날 진짜로 볼 수 있게 될 거야. 그때까지 계속, 매일매일 놀러올게. 널 외톨이로 만드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297∼298쪽)


 도시로 내몰린, 더 커다란 도시로 내몰린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틀에 얽매이도록 길들여진다고 느낍니다. 더 낫다는 가르침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힘과 사랑힘과 믿음힘을 북돋우지 못하도록 꽁꽁 옭죄이고 만다고 느낍니다.

 

 도시로 내몰린, 더 커다란 도시로 내몰린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이 시키는 일만 하도록 길들여지는구나 싶습니다. 더 낫다는 가르침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어른들이 내주는 시험공부와 숙제와 논술시험 들에 사로잡히는 넋이 되고 마는구나 싶어요.

 

 아이들을 더 커다란 도시로 내모는 어른들은 아이들을 더 너른 품으로 껴안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더 커다란 도시 학교에 집어넣는 어른들은 아이들을 더 따스한 가슴으로 보듬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더 커다란 도시 학교와 학원에 오래도록 집어넣는 어른들은 아이들을 더 보드라운 손길로 어루만지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아이들을 사랑어린 눈길로 바라보지 못하는걸요. 처음부터 아이들을 꾸밈없는 믿음으로 마주하지 못하는걸요. 처음부터 아이들을 기쁜 웃음으로 맞이하지 못하는걸요.


- “난 비겁한 인간이니까 혼자가 되고 싶어서 도망쳤어.” (13쪽)
- “모르겠다니. 당신은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데. 당신 환자들은 병 때문에 조금 특이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실은 당신도 환자 쪽이었다는 거야?” “지금까지 거짓말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어. 하지만 병원에서 애들을 치료하는 사이에 나도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123쪽)


 도쿄 아이들은 괴물로 길들여집니다.

 

 서울 아이들은 괴물로 길들여집니다.

 

 후쿠시마 아이들 또한 괴물로 길들여졌으나, 하루아침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영광 아이들 또한 괴물로 길들여지는데, 언제 어떻게 간곳없이 사라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원자력발전소와 핵폐기물처리장을 없애자고 하는 목소리를 놓고, 학교에서는 ‘님비 현상’이라는 학문과 이론으로 지식을 가르칠 뿐입니다. 원자력발전소가 있어야 한다면, 바로 아이들이 다니는 초·중·고등학교 운동장에 세울 노릇입니다. 핵폐기물처리장이 있어야 한다면, 바로 아이들과 어른들 살아가는 커다란 도시 아파트 주차장에 지을 노릇입니다. 쓰레기를 파묻을 곳은 도시 바깥이나 시골 논밭이나 멧등성이여서는 안 됩니다. 쓰레기는 쓰레기가 나온 도시 한복판과 아파트 주차장에 묻어야 하고 태워야 합니다. 쓰레기를 왜 도시 바깥으로 실어내나요. 아파트와 건물마다 어마어마하게 쏟아내는 똥오줌을 왜 도시 바깥으로 내보내나요. 아파트와 건물에서 엄청나게 쓰는 전기를 왜 멀디먼 시골자락에 발전소를 세워서 끔찍하게 높다란 송전탑을 수없이 세워서 끌어들이나요.

 

 원자력발전소가 곁에 없어도 전기를 펑펑 쓰며 걱정없는 도쿄 아이들은 몽땅 괴물로 길들여집니다.

 

 핵폐기물처리장이 어디 있는 줄 알지 못해도 전기를 마구 쓰며 근심없는 서울 아이들은 모조리 괴물로 길들여집니다.

 

 원자력발전소가 있던 후쿠시마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먼지조차 되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영광 아이들은 날마다 무슨 바람과 물과 햇살을 먹으며 살아야 하나요.


- ‘빌어먹을! 난 수술해서 착한 사람이 될 거야!’ (117쪽)
- ‘자는 일이나 먹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 따위 다 궤변이라는 건 나도 안다.’ (177쪽)
-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로 완전히 달라지는 거 같아.” (266쪽)


 어른들은 아이들 목소리를 듣고 나서 더 커다란 도시로 살림집을 옮기나요. 어른들은 아이들 목소리를 들은 뒤에 아파트를 장만하거나 자가용을 굴리나요. 어른들은 아이들 목소리를 들은 다음 회사원 일자리나 공무원 일자리를 거머쥐나요.

 

 아이들 목소리를 듣고 나서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어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풀과 꽃과 나무 목소리를 들은 다음 핵폐기물처리장을 짓는 어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꼭 원자력발전소와 핵폐기물처리장만이 아니에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눈길과 마음길과 사랑길과 생각길과 꿈길을 어느 만큼 헤아리는가요. 우리 어른들은 정작 ‘어른인 내 목소리와 눈길과 사랑길과 꿈길’을 조금이라도 옳거나 바르게 살피기는 하는가요.

 

 왜 살아가는 사람인가 궁금합니다. 누구하고 살아가는 사람인가 궁금합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가 궁금합니다.


- “참, 다음 주말에 수술하기로 했다면서? 만약에 그걸로 나으면 넌 변하겠지? 지금이랑은 다른 네가 되는 거야? 그럼, 난 널 어떻게 대하면 돼? ……. 아무렴 어때. 나랑은 상관없는데.” (190∼191쪽)
- ‘사람이 없는 세계. 가능하다면 나도 그런 세계에서 살고 싶었는데.’ (197쪽)
- ‘주위 사람들은 다들, 늘 항상, 나를, 마치, 징그러운 거라도 보는 양 꺼리며 말했는데, 그 중 단 한 사람만이 거침없이 상처 주는 말을 했어.’ (210∼211쪽)


 모히즈키 미네타로 님 만화책 《동경괴동》(삼양출판사,2010) 셋째 권을 덮습니다. 모두 세 권으로 이루어진 만화책 《동경괴동》입니다. 아픔을 먹고 아프게 살아가고야 마는 아이들 나날을 담은 만화책입니다. 어른들 바라보기에 ‘정신병’에 걸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이라 할 만하겠으나, 아이들 바라보기에 이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른 누리’에서 꿈꾸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입니다.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다른 아이들이 아닙니다.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할 테지만, 사랑하려는 손길과 마음길에 따라 사뭇 달리 보이는 아이들이라 할 테며, 이보다는 서로 사랑하며 아끼는 꿈길과 생각길에 따라 그야말로 곱게 껴안을 아이들이에요.


- ‘그거야말로, 고흐처럼 죽는 건 너무 슬프잖아.’ (220쪽)
- “남을 슬프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 남을 상처 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니, 지긋지긋해. 나도 인간이니까 사랑받고 싶어. 하지만, 으으, 계속, 사랑받고 싶었어.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만, 사람을 사랑, 하고 싶어.” (234∼235쪽)


 사랑하며 살아갈 아이들이에요. 점수따기를 하며 살아갈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랑받으며 살아갈 아이들이에요. 더 높다 하는 대학교에 들어가도록 푸른 나날을 시험공부에 목매여야 할 아이들이 아니에요.

 

 사랑하며 살아갈 아이들이지, 학교에 다니거나 학원에 얽매일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랑받으며 살아갈 아이들이지, 더 커다란 도시로 내몰린다든지 어른들 자가용에 짐짝처럼 실려 이리저리 끌려다닐 아이들이 아니에요.

 

 그런데, 어른들은 무엇보다 한 가지를 잊어요. 아이들은 누구나 사랑하며 살아야 하고 사랑받으며 살아야 하는데요, 어른들 또한 누구나 사랑하며 살아야 하고 사랑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모두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즐거워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모두 사랑받으며 살아갈 때에 맑고 밝은 빛을 누려요. (4345.2.15.물.ㅎㄲㅅㄱ)


― 동경괴동 3 (모히즈키 미네타로 글·그림,이지혜 옮김,삼양출판사 펴냄,2010.12.6./5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에게 닿기를 4
시이나 카루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아하는 사람과
 [만화책 즐겨읽기 113] 시이나 카루호, 《너에게 닿기를 (4)》

 


 좋아하는 사람과 살아가는 나날은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는 나날은 사랑스럽습니다.

 그지없이 마땅한 소리인데, 참 쉽게 잊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지없이 마땅하기에 날마다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지내기도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내 하루가 좋은 삶이라 여긴다면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어 내 곁 좋은 사람들 마음에 좋은 사랑이 싹트도록 힘을 쏟을 수 있겠지요. 내 하루가 사랑스러운 삶이라 느낀다면 나부터 사랑스러운 일놀이를 붙잡으며 내 둘레 사랑스러운 사람들 가슴에 좋은 꿈이 피어나도록 마음을 기울일 수 있겠지요.

 

 곧,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사람과 살아가야 할 노릇이구나 싶어요.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짝을 짓고 집을 지으며 사랑을 지어야 할 노릇이구나 싶어요.

 

 가장 좋아하지 않으면서 돈에 휩쓸린다든지 이름값에 휘둘린다든지 무슨무슨 끈 때문에 얽매인다면, 서로서로 슬픔과 생채기와 아픔만 쌓이리라 느껴요. 가장 좋아하는가 하는 대목이 아닌, 얼굴을 본다거나 몸매를 본다거나 껍데기를 보았다면, 서로서로 아픔과 미움과 시샘이 생겨나리라 느껴요.


- “네가 훨씬 잘 어울려.” “사와코, 그럼.”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응원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어. 카제하야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야.” (8∼9쪽)
- ‘혹시 카제하야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치절하게 대해 줬다면, 난 같은 마음을 갖게 됐을까?’ (16쪽)


 가장 좋아하는 사람하고 살아야 해요.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해요.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살아야 해요. 가장 좋아하는 밥을 먹어야 해요. 가장 좋아하는 꿈을 꾸어야 해요. 가장 좋아하는 살림을 꾸려야 해요. 가장 좋아하는 나들이를 즐기고, 가장 좋아하는 말마디로 내 넋을 가꿔야 해요.

 

 오직 하나 아닌가 싶어요. 내가 낳은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곁에서 돕고 보살피는 길은 오직 하나, 아이들 스스로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삶을 찾도록 하는 데에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이들은 굳이 영어를 잘 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꼭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학원뿐 아니라 학교조차 애써 다녀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오직 하나, 제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야 해요. 아이들 어버이를 둘러싼 여러 어른한테서 즐거이 사랑을 받아야 해요.


- ‘처음으로 또렷하게 한 마디의 단어로 의식한 말.’ (62∼63쪽)
- “어떻게 특별하단 걸 알아?” “그거 꼭 논리정연하게 대답해야 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아주 특별해져 있었어.” (104∼105쪽)
- ‘눈앞의 카제하야를 느끼는 이 마음이 전부 사랑이겠지?’ (132∼133쪽)


 시이나 카루호 님 만화책 《너에게 닿기를》(대원씨아이,2007) 넷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첫째 권부터 넷째 권에 이르기까지 이 만화책에 흐르는 이야기는 오로지 하나예요. 가장 좋아하는 삶, 가장 좋아하는 사람, 가장 좋아하는 일, 가장 좋아하는 꿈, 가장 좋아하는 길, 가장 좋아하는 말, 가장 좋아하는 나날이에요.

 

 둘째로 좋거나 셋째로 좋을 만한 삶은 찾지 않아요. 가장 좋아할 만한 삶을 찾아요. 넷째로 좋거나 막째로 좋을 만하다 싶은 삶은 헤아리지 않아요. 저마다 한 번씩 누리는 이 좋은 삶이니까, 이 좋은 삶이 그야말로 빛나도록 도울 가장 좋은 일을 찾아요.

 

 내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좋아할 만한 사람은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둘이서만 지내는 삶은 아니에요. 좋은 동무는 차례를 매기거나 번호를 붙이지 못하거든요. 누가 누구보다 더 좋다고 가를 수 없거든요.

 

 함께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동무이자 이웃이요, 가장 좋아하는 꿈을 실어 가장 아리따이 빛날 이야기를 이루는 옆지기예요.


- “사와코, 꼬임에 넘어가지 않게 조심해. 넌 그저 네 마음을 우선으로 생각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91쪽)
- “친구한테 말한다는 건, 이렇게 가슴이 설레는구나. 나한테 말해 줬을 때, 너도 이랬겠지?” “친구 아니라고, 그러니까 너랑 똑같이 취급하지 말라고 했잖아.” “긴장, 되지 않았어? 조금 쑥스럽지 않았어? 조금 기쁘지 않았어?” (192∼193쪽)


 만화책 《너에게 닿기를》에 나오는 아이들은 고등학생입니다. 어른들이 바라보기에 ‘기껏 열대여섯’ 또는 ‘고작 열예닐곱’ 또는 ‘이제 열일고여덟’밖에 안 된 철부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자리에서 아이들 삶으로 바라보자면 어느 하루라도 놓칠 수 없이 고맙고 좋으며 기쁘고 사랑스러운 꿈이에요.

 

 먼 앞날 연봉 높은 회사에 들어갈 일을 꾀하며 오늘 하루는 시험공부로 내다 버려야 하지 않습니다. 시험성적을 높이고자 오늘 하루를 흘려보내도 되지 않아요.

 

 온 하루를 즐길 삶입니다. 모든 하루를 고맙게 맞아들일 삶입니다. 나한테 즐거운 하루이고, 너와 함께 기쁜 나날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좋은 빛을 네 가슴속에 조그마한 씨앗 하나로 심어 함께 돌보고픈 꿈입니다.


- ‘처음 겪는 일이라, 정말 그런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 마음이 사랑이면 좋겠고, 사랑이길 바란다고 강하게 아주 강하게 생각했다.’ (110∼111쪽)
- ‘나 있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해. 카제하야를 좋아하는 것도, 그 마음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도, 모든 걸 혼자서 완결하지 않는 세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훨씬 행복하구나.’ (148∼149쪽)


 아이들 마음속에서 푸른 사랑이 자랍니다. 어른들 마음속에서 붉은 열매가 맺습니다. 아이들 마음밭에서 새싹이 틉니다. 어른들 마음밭에서 곧고 씩씩하게 줄기가 뻗어 이윽고 우람한 나무로 자랍니다.

 

 누구나 푸른 사랑 예쁜 씨앗을 품어요. 누구나 푸른 사랑 예쁜 씨앗을 튼튼하고 우람한 나무로 키워요. 누구나 푸른 사랑 예쁜 씨앗에서 비롯한 튼튼하고 우람한 나무에서 맺는 싱그럽고 달콤한 열매를 맛보면서 아름다이 누리는 삶이에요. (4345.2.11.흙.ㅎㄲㅅㄱ)


― 너에게 닿기를 4 (시이나 카루호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7.12.15.4200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주 2012-02-1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올~된장님께서 이런 책을 보신다니! ㅎㅎ
새롭습니다 ㅋㅋㅋㅋ
초딩,중딩 여학생들만 보는 게 아니었군요~오글오글 간질간질 ㅋㅋㅋ

숲노래 2012-02-15 08:23   좋아요 0 | URL
벌써 4권째 느낌글이거든요.
(앞 세 권도 느낌글을 썼어요)

그런데 이 만화책은 초중딩을 넘어 고딩이나 대딩
아이들도 즐거이 읽을 만하지 싶어요.

남자 아이들이 좀 이런 만화라도
읽어 주면 좋겠구나 싶기도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