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아 푸른 솔아 - 박영근 시선집
백무산.김선우 엮음 / 강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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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부터 피어날 꽃들한테 한 마디
[시를 노래하는 시 13] 박영근, 《솔아 푸른 솔아》

 


- 책이름 : 솔아 푸른 솔아
- 글 : 박영근
- 펴낸곳 : 강 (2009.5.9.)
- 책값 : 7000원

 


 추운 겨울날 피어나는 겨울꽃이 있습니다. 한창 무르익는 가을에 피어나는 가을꽃이 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환하게 피어나는 여름꽃이 있습니다. 따스한 바람과 함께 따스한 빛깔과 내음 베푸는 봄꽃이 있습니다.

 

 꽃은 봄부터 피어납니다. 봄부터 피어나는 꽃은 겨울까지 핍니다. 추운 한겨울 동안 꽃은 조용히 시들거나 잠잡니다. 이듬해 봄에 다시금 피어날 꿈을 꾸면서 추위를 견딥니다. 아니, 추위를 받아들인다고 해야겠지요.


.. 일하고 먹고 살아가는 시간들 속에서 / 일하고 먹고 살아가는 일을 / 뉘우치는 시간들 속에서 / 때때로 스스로의 맨살을 물어뜯는 / 외로움 속에서 그러나 / 아주 겸손하게 작은 목소리로 / 부끄럽게 부르는 이름을 / 시라고 쓰고 싶다 ..  (서시)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살아가며 동백꽃은 거의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내가 구경하지 못했을 뿐 어느 골목집 마당 한켠에 곱게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 한두 그루 있었으리라 봅니다. 전라남도 고흥이라든지 해남이라든지 강진이라든지 여수라면, 곳곳에 동백나무 흐드러지고 동백꽃 붉습니다. 경상남도 통영이나 진해에도 동백나무 동백꽃은 붉게 흐드러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천 골목동네를 두루 돌아다니며 능금나무 배나무 대추나무 매화나무 복숭아나무 탱자나무 호두나무 밤나무 감나무 수수꽃다리 들을 골고루 구경했습니다. 때로는 석류나무를 보고 살구나무를 봅니다. 때로는 포도나무를 보고 앵두나무를 봅니다. 한 집에 온갖 나무 골고루 심어 돌보지는 못합니다. 조그마한 마당에 몇 가지 나무를 곱게 키우고 우람하게 보살핍니다. 사람 손길 안 닿는 데에서 높디높게 자라난 오동나무를 바라보며 놀라기도 합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나무를 아끼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사람이 애써 심지 않아도 스스로 씨앗을 퍼뜨립니다. 미루나무이든 느티나무이든 멀리멀리 씨앗을 퍼뜨립니다. 이 가운데 어른나무로 튼튼히 뿌리내리는 씨앗은 몹시 드물지만, 이 골목 저 골목, 볕바르거나 그늘지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려 애씁니다.


.. 경님아, 밤기차 어둑한 창가에 기대어 / 서울 가던 날 / 손 한번 흔드시지 못하고 / 번지는 들판의 불빛들 속에서 어머니 / 손 한번 / 흔 드 시 지 못 하 고 ..  (서울 가는 길)


 어떤 분은 어린나무를 장만해서 심어 돌보았겠지요. 어떤 분은 씨앗을 알뜰히 건사해서 작은 새싹부터 보살폈겠지요. 나는 스무 해나 서른 해나 마흔 해 남짓 골목이웃하고 살아온 나무를 바라봅니다. 나는 스무 해나 서른 해나 마흔 해 동안 꽃을 피운 나무를 마주합니다. 나는 내 나이보다 오래도록 살아온 나무가 맺는 열매를 고마이 나누어 먹습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꽃을 피우기까지 적지 않은 해를 보냅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열매를 얻기까지 꽤 긴 해를 보냅니다. 퍽 많은 사람들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키가 작은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인지 아닌지조차 알아보지 못하곤 합니다. 꽤 많은 사람들은 꽃과 잎을 모두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어떤 나무인가 알아차리지 못하곤 합니다. 아마, 아예 거들떠보지 않을 수 있겠지요. 다들 바쁘니까, 모두들 다른 데에 눈길을 두어야 하니까, 겨울나무 앙상한 가지와 함초롬한 작은 새눈을 들여다보지 못하겠지요.


.. 그곳엔 비 내리는 판문점의 닳고 닳은 비애도 /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고지에 오르는 / 지겨운 전쟁도 없지 ..  (천지를 생각하며)


 자동차 끝없이 오가는 찻길에서 자라는 은행나무나 방울나무는 해마다 가지가 잘립니다. 찻길 가장자리에서 배기가스 듬뿍 마시며 맑은 숨을 내뿜도록 들볶이는 나무는 얼마 살아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들 가녀린 길가 나무들, 곧 ‘길나무’들은 사람보다 오래 삽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돈을 벌다가 도시에서 숨을 거두는 사람보다, 길나무 목숨이 훨씬 깁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돈을 벌다가 도시에서 죽는 사람은 으레 병원 문턱을 드나듭니다. 찻길에서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배기가스를 들이마시고 햇볕 한 조각 제대로 받기 힘들며 전깃줄에 등불에 밤낮으로 시달리는 길나무이지만, 이들 길나무는 병원 문턱을 밟지 않습니다. 이들 길나무 가운데 병원에 드나들어야 할 녀석이 있다면 곧장 목이 잘릴 테니까요. 막바로 뿌리가 뽑히고 새 나무로 바뀔 테니까요. 도시에서는 나무이든 사람이든 목숨이든 흙이든 꽃이든 온통 돈으로만 재거나 따집니다.

 

 나무가 슬픕니다. 사람이 슬픕니다. 땅이 슬픕니다. 하늘이, 해가, 구름이, 바람이, 물이, 꽃이, 풀이, 모두모두 슬픕니다. 멧새가 다리쉼을 할 만큼 느긋한 나무를 찾기 어려운 도시입니다. 멧새 한 마리 한갓지게 둥지를 틀기 어렵다면, 착한 사람 하나 몸을 눕혀 쉴 보금자리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셈이리라 생각합니다. 들짐승 한 마리 곱게 깃들며 삶터를 얻기 어려운 도시입니다. 들짐승 한 마리 조그마한 굴조차 팔 수 없다면, 고운 사람 하나 다리를 쭉 뻗고 기지개를 펼 쉼터 하나 얻기 어려운 셈이리라 생각합니다.

 

 자동차 대는 자리는 그렇게 많은데요. 돈을 내고 자동차를 대든, 돈을 안 내고 자동차를 대든, 도시에서는 어디에나 자동차를 대는걸요. 자동차는 그렇게 많고, 자동차 다닐 길은 그렇게 넓으며, 자동차 둘 자리는 그렇게 넓은데, 어이하여 나무 한 그루 느긋하게 뿌리를 뻗을 땅뙈기란 없을까요. 사람 하나 보금자리 예쁘게 꾸며 나무와 풀과 꽃을 즐거이 누릴 땅뙈기란 없을까요. 물줄기 햇살 받으며 시원하게 흐를 땅뙈기란 없을까요.


.. 몇 번인가 이사를 할 때마다 / 그 비좁은 골목길은 리어카 한 대의 이사 보따리에도 땀을 흘렸다 ..  (그 방)


 눈이 내립니다. 겨울눈은 겨울을 살아내는 나무마다 소복하게 쌓입니다. 하얗게 쌓이던 눈은 햇살이 들면서 스르르 녹습니다. 스르르 녹은 물은 나뭇줄기를 타고 흙으로 흘러내립니다. 흙으로 흘러내린 물은 흙을 촉촉하게 적십니다.

 

 이윽고 봄입니다. 언땅이 녹고 겨울눈이 껍질을 벗는 봄입니다. 뭇새들 홀가분하게 지저귀는 봄입니다. 흙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 알을 까고 볼볼 기어나옵니다. 볼볼 기어나오던 벌레들은 새들한테 먹이가 됩니다. 새들은 재재거리는 소리로 흙일꾼 새벽을 깨웁니다. 흙일꾼은 쟁기와 호미로 밭을 갈아엎습니다. 밭자락에는 새로운 씨앗이 깃들고, 새 씨앗을 품은 흙은 새 목숨을 보듬습니다. 새 목숨은 너른 사랑을 받으며 야무지게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립니다. 너른 사랑 받으며 흙 위로 고개를 내민 새싹은 따사로운 햇살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 닫힌 철문 앞에서 / 원직 복직을 외치는 그의 쉰 목소리를 / 희망이라도 불러도 좋은 것일까 ..  (희망에 대하여)


 봄빛이 환합니다. 봄빛은 누런 들판을 푸른 들판으로 천천히 바꾸면서 환한 기운 나눕니다. 봄내음이 그윽합니다. 봄내음은 온누리에 향긋한 내음을 퍼뜨리며 풀먹는 짐승이랑 사람을 살찌웁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은 노래꾼입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은 춤꾼입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은 사랑꾼입니다.

 

 노래를 실어나르는 봄꽃은 노랗게 물듭니다. 춤을 실어나르는 봄꽃은 발그스름하게 물듭니다. 사랑을 실어나르는 꽃은 하얗게 물듭니다.

 

 봄부터 할미꽃과 진달래뿐 아니라 수유와 살구와 수수꽃다리가, 또 원추리와 감자와 당근이, 또 숱한 들꽃과 풀꽃이 들판을 잔치판으로 이룹니다. 나는 내가 이름을 아는 꽃은 이름을 아는 대로 참 곱구나 하고 쓰다듬습니다. 나는 내가 이름을 모르는 꽃은 이름을 모르는 대로 참 예쁘구나 하고 어루만집니다. 패랭이꽃이든 해바라기꽃이든, 모두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애틋한 느낌을 살려 붙인 이름이겠지요. 봄까치이든 민들레이든 마을과 고을마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가장 맑은 넋을 살려 붙인 이름일 테지요.


.. 내 안에도 / 나도 몰래 / 나를 키우고 / 나를 살리는 것 있다는데 ..  (눈물)


 봄에는 봄꽃이 노래를 부르며 시가 하나둘 태어납니다. 봄에는 봄꽃이 춤을 추며 싯말이 하나들 퍼집니다. 봄에는 봄꽃이 사랑을 나누며 싯꿈과 싯무지개가 온누리를 빛냅니다.

 

 박영근 님 시집 《솔아 푸른 솔아》(강,2009)를 읽습니다. 푸른 솔을 노래하는 삶을 보낸 박영근 님 넋을 돌이키며 시집 여섯 권을 한 권으로 간추린 자그마한 시집을 읽습니다. 박영근 님이 쓴 시를 바탕으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노래 한 가락 태어났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는 모릅니다. 그저 시를 읽습니다. “푸른 솔”을 노래한 넋은 어떤 결이었을까 하고 헤아리며 시를 읽습니다.

 

 스스로를 살리고 동무를 살리며 온누리를 살리고프던 꿈을 시 한 자락으로 읽습니다.


.. 전철도 끊긴 동암역 근처 / 눈 쌓인 골목 미루나무 가지 끝 // 빈 새둥지 속에 / 뜨거운 별빛 한줄기 떨어진다 // 오랜 기다림도 그친 곳에 / 눈은 내려 쌓이리 ..  (동암역 근처)


 1958년에 태어나 2006년에 숨을 거둔 박영근 님은 쉰 해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쉰 해를 넘기지 못한 삶이란, 딱 마흔여덟아홉에서 멈춘 삶이란, 쉰을 코앞에 두고 스러진 삶이란, 어떤 사랑이 담긴 이야기일까요. 쉰을 코앞에 두고 스러져야 했을 때에, 박영근 님은 당신 나이를 얼마나 헤아려 보았을까요.

 

 박영근 님을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몇 살까지 삶을 누렸을까요. 당신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일찍 흙으로 돌아간 삶이었을까요, 당신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조금 더 길게 누리다가 흙으로 돌아간 삶이었을까요.


..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 홑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 점 없고, /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  (길)


 내 무릎에 안긴 채 잠든 아이를 바라봅니다. 우리 아이는 앞으로 몇 해쯤 더 아버지 무릎에 안긴 채 잠들 수 있을까 어림해 봅니다. 우리 아이는 열다섯 살이 되거나 스물다섯 살이 되어도 아버지 무릎에 안긴 채 잠들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이 둘 아버지인 나는 앞으로 몇 살까지 아이들을 무릎에 안으며 무릎과 발목이 뻣뻣하게 저려도 싱긋 웃으면서 아이 머리카락을 쓸어넘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하루는 언제나 꽃밭입니다. 아이한테서 꽃내음을 맡고, 나한테서 꽃내음을 맡습니다. 아이한테서 꽃빛을 느끼고, 나한테서 꽃빛을 느낍니다. 서로서로 꽃과 같은 결과 무늬로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포근하며 촉촉한 꽃잎처럼, 곱고 보드라운 꽃잎처럼, 향긋하고 어여쁜 꽃잎처럼, 환하고 맑은 꽃잎처럼, 하루하루 좋게 누리고 싶다고 꿈을 꿉니다.

 

 그리고, 박영근 님 시집에 나오는 〈꽃들〉을 읽습니다. “공장 담벼락을 타고 올라 / 녹슨 철조망에 / 모가지를 드리우고 망울을 터뜨리다 / 담장 넘어 비로소 피어나는 꽃들, / 흐르는 바람에 / 햇살 속에(꽃들)” 하고 노래하는 〈꽃들〉을 읽습니다.

 

 참말 박영근 님 시에는 꽃이 자주 나옵니다. “카티자, 세상에 꽃이라니, 도대체 무슨 꽃들이 / 저렇게 빨갛고 노란 것일까 / 기억 속의 꽃들이 한꺼번에 말을 잃고 / 병원 계단을 오른다(임시 묘지의 시)” 하고 외치면서도, 참말 꽃이 자주 나옵니다. 웬 꽃이냐며 혀를 차지만, 어인 꽃이냐고 울부짖지만, 그래도 꽃을 말합니다. 꽃을 바라보고 꽃을 느끼며 꽃을 어루만집니다.


.. 계절이 골목길 건너 백목련의 꽃망울과 은행나무 가지 위에서 바뀔 무렵이면 / 그 집엔 밀린 빨래들이 그 작은 마당과 / 녹슨 창틀과 흐린 처마와 담벽에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 햇살에 취해 바람에 흔들거릴 것이다 ..  (이사)


 밀린 빨래도 작은 마당 꽃망울 내음을 받아들입니다. 안 밀리고 그날그날 즐기는 빨래도 작은 마당 꽃망울 내음을 받아먹습니다.

 

 빨래는 꽃내음을 먹으며 더 보송보송하게 마릅니다. 꽃내음 깃든 옷을 입고 일터로 가는 사람들 넋은 꽃넋으로 거듭납니다. 꽃내음 깃든 옷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 이마에서 꽃방울 같은 땀방울이 떨어집니다.

 

 이제 봄이고, 이제부터 봄꽃이 피어납니다. 흙으로 돌아간 박영근 님은 좋은 거름이 되어 봄꽃이 흐드러지도록 돕는 작은 흙알갱이로 살아가겠지요. (4345.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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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
장성수 외 지음 / 눈빛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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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사박물관 사진찍기
 [찾아 읽는 사진책 54]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 《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눈빛,2008)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 사람들이 모여 《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눈빛,2008)이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책 머리말에는 “화호리(전라북도 정읍시 신태인읍 소재)는 마을 전체가 생활사박물관을 방불케 한다(5쪽).” 하고 적습니다. 참으로 마을 어디를 보나 ‘생활사박물관’과 같다고 느껴 이렇게 ‘읍 면 리’ 가운데 고작 리라 할 자그마한 마을 이야기를 책 하나로 묶으려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시로 치면 ‘시 구 동’에서 동이라 할 만할 테지요. 그러면, 도시에서 조그마한 동 하나 이야기는 책 하나로 묶을 만할까요.

 

 바라보는 눈길에 따라 무엇이든 달라집니다. 누군가한테는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는 아주 작은 곳이지만, 이곳에서 태어나 살아간 사람한테는 너른 마당이거나 우주라 할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내가 태어난 인천 남구 도화1동이 무척 조그맣다고 여길 수 있으나, 어린 내가 뛰놀기에는 동 하나 크기만 하더라도 몹시 큽니다. 어른이 된 내가 도화1동을 걸어서 돌아다니자면 몇 시간을 들이거나 며칠을 들여도 골목골목 누비지 못합니다. 신나게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몰거나 오토바이를 몰아야 몇 시간쯤 들여 골목골목 모두 누빌 만해요.

 

 

 

 신태인읍 화호리라는 시골마을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자그마한 시골마을이라 하지만, 고샅과 들판과 멧자락을 두루 돌아다니며 느끼자면 퍽 오래 걸립니다. 아니, 하루에 걸쳐 다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날씨에 따라, 철에 따라, 달에 따라, 아침 낮 저녁에 따라 언제나 다른 빛깔과 모습과 내음을 보여줍니다. 언제나 다른 빛깔과 모습과 내음이니, 언제나 다른 이야기가 태어나요.

 

 새삼스럽지 않습니다만, 온 나라 곳곳에 동사무소가 있고 면사무소가 있어요. 동사무소와 면사무소 일꾼이 있어요. 이들 동사무소랑 면사무소 일꾼이라면 동 한 곳이 흐르는 한해살이 이야기를 꾸준히 적바림하거나 갈무리해야지 싶습니다. 면 한 곳이 누리는 한해살이 꿈과 사랑을 찬찬히 적바림하거나 갈무리해서 해마다 책 한 권씩 내놓아야지 싶습니다.

 

 아마 여느 어른이라면 아이들을 바라볼 때에 ‘다 같은 아이’라고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 같은 아이로 보이더라도, 다 다른 어버이가 낳아 다 다른 집에서 살아가요. 곧, 다 다른 아이는 다 다른 집에서 다 다른 삶을 누립니다. 이렇게 다 다른 아이들 이야기를 어버이 스스로 꾸준히 담는다면 다 다른 삶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참말 재미나며 눈부신 다 다른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사진이야기 《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을 읽으며 “1934년 화호농장 소작인 4백여 명이 정부와 농장주에게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정부나 농장측 모두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않자, 소작인들은 그 이듬해인 1935년 5월에 다시 한 번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였다(51쪽).”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이 이야기는 1930년대 삶자락을 공무원이 적바림해 놓았기에 오늘날 학자들이 자료를 뒤적이며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놈들이 나쁜 짓을 어떻게 했냐고 하니 비가 오면 하수구를 그쪽으로 대 가지고 못살게 만들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팔게 만들고, 또 다른 집은 안 팔면 말을 그냥 마당에다 쨈며 놓고 그랬어. 말이 마당에 있는데 어떻게 살겄어? 그래서 나쁜 짓을 해 가지고 한국사람들을 다 쫓아낸 거야(주민 구술 1922년생,103쪽).” 하는 목소리에 밑줄을 긋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을 한 곳에서 오래오래 뿌리를 박으며 살아온 사람한테서 귀담아 들었으니 적바림할 수 있습니다. 따로 누군가 종이나 책이나 신문에 적바림하지 않았을 이야기라지만, 한 사람 삶에는 또렷하게 아로새겨진 이야기입니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주세법은 최근까지도 유효한 채로 남아 있었다. 일본 식민정부가 한국인들의 생활 습관을 무시하고 술에 대한 국가통제를 했다는 것을 잊은 채 식민정책을 그대로 답습해 왔다(143쪽).”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자료에 나오기도 하고, 마을 붙박이한테서 들을 수도 있겠지요. 이곳에도 저곳에도 깊디깊게 돋을새김한 삶자락입니다.

 

 마땅한 노릇이라 하겠습니다만, 신태인읍 화호리는 틀림없이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인천 남구 도화1동과 도화2동과 도화3동 또한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서울 종로구 평동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부산 중구 보수동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이 나라 어느 곳이나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일제강점기 발자국이 짙게 남았기에 생활사박물관이 되지 않습니다. 1950년대 발자국이 남았어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1970년대 발자국이 옅게 드리워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1990년대 발자국이 넓게 남아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2010년대 발자국이 갓 찍혔어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바라보기에 따라 달라지는 삶이거든요. 바라보기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이거든요.

 

 어떤 이야기를 건져올리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사랑을 느끼며 어깨동무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삶을 깨닫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는 누구나 ‘박물관사람’입니다. 김치를 담글 줄 알아도 박물관사람입니다. 손빨래를 할 줄 알아도 박물관사람입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릴 줄 알아도 박물관사람입니다. 호미로 땅을 쫄 줄 알아도 박물관사람입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박물관’을 생각하면서 꿈꾸고 돌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박물관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꿈이랑 사랑을 물려주려고 하느냐에 따라, 우리 스스로 길어올릴 글·그림·사진·춤·노래·연극·영화는 사뭇 달라집니다. (4345.2.22.물.ㅎㄲㅅㄱ)


― 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 글·사진,눈빛 펴냄,2008.12.25./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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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
호원숙 지음 / 샘터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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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은 삶에서 태어납니다
 [책읽기 삶읽기 99] 호원숙,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샘터,2006)

 


 나는 두 아이한테 어버이입니다. 나는 두 어버이한테 아이입니다. 나는 두 아이가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나서 착하고 어여삐 살아가기를 꿈꿉니다. 내 어버이 또한 나한테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나서 착하고 어여삐 살아가기를 빌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걷습니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걷습니다. 맑은 날은 햇살을 받으며 걷습니다. 바람 부는 날은 바람을 맞으며 걷습니다.

 

 자가용이 없는 우리 살림이기에 으레 걷습니다. 때로는 자전거를 함께 타고, 때로는 버스를 얻어 탑니다. 같은 빠르기로 걷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습니다. 같은 느낌과 생각까지는 아닐 테지만, 같은 하늘과 들판과 새들을 바라보며 걷습니다.


.. 해가 떠오르기 전 아침노을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 나는 단풍나무 숲을 걷는다. 이파리 하나하나 말을 거는 듯 음악이 들리는 듯하다 ..  (10, 11쪽)


 해가 기울어 어두운 때, 아이를 데리고 마당이나 뒤꼍으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곤 합니다. 밤에 별을 볼 수 있는 시골이 좋습니다. 밤에 별을 볼 수 없다면 얼마나 밋밋하고 따분한 터전이 될까요. 전기가 없으면 반짝거리지 못하는 데라면 얼마나 메마르고 허전한 터전이 될까요.

 

 아침과 낮과 저녁으로 바깥바람을 쐽니다. 때마다 바람이 다릅니다. 날에 따라 바람이 다르고, 철에 따라 바람이 다릅니다. 나는 나대로 바람을 맞아들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바람을 맞아들일 테지요.

 

 어버이가 살아가는 터전이란 어버이부터 즐거이 누리는 사랑이면서, 아이들한테 곱게 물려주는 사랑입니다. 어버이부터 더 좋은 꿈을 북돋우는 사랑을 누릴 수 있고, 아이들한테 더 기쁜 사랑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버이부터 하루하루 가까스로 견디거나 힘겨이 버티기도 합니다. 사랑하고 동떨어진 채 지낼 수 있습니다. 이동안 아이들은 고되거나 슬픈 아픔을 나날이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좋은 삶을 누리지 않으면, 아이들 또한 좋은 삶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 시골 출신인 남편이 건네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서울 아이는 이런 건 모른다. 자연에서 놀지 않았기에 무얼 먹어야 할지 잘 모른다. 연두색의 꼼밥(소나부 꽃은 약간은 새큼하고 약간은 달큼하고 약간은 떫다 … 나는 좋은 부모 밑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고 젊어서 원 없이 사랑도 했고 좋은 직장에서 월급도 받아 보았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내 젖으로 키웠고 좋은 학교에 보냈다 ..  (23, 66쪽)


 소설쓰는 박완서 님 딸로 태어나 살아온 호원숙 님이 내놓은 수필책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샘터,2006)를 읽습니다. 박완서는 박완서이고 호원숙은 호원숙일 텐데, 수필책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는 어머니 박완서를 ‘큰 나무’로 삼고 맙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할 수 있을까요. 어찌할 길 없는 셈이라 할 만할까요.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간대서 내 키가 커질 일이 없습니다. 나무가 크다면 얼마나 크고, 나무가 작다면 얼마나 작을까요. 나무는 그저 나무입니다. 나무 사이를 걸어가는 나는 그저 나 하나입니다. 내가 나무 사이를 걸어갔기에 나무들마다 키가 한껏 자라날는지 모르고, 내가 나무 사이를 걸어간 탓에 나무들마다 키가 한 뼘씩 줄어들는지 모릅니다만, 나 스스로 키가 커지겠다고 꿈꾸지 않는다면, 큰 나무들 사이를 걷는대서 내 키가 커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나무들 사이를 걸어가더라도 나는 얼마든지 키를 키울 수 있어요. 아무 나무 사이를 안 지나더라도 나는 나대로 내 키를 키울 만합니다.


.. 쓸 수 있다는 것, 써진다는 것 모두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다고 이런 책을 단숨에 읽을 필요는 없으리라. 하루에 한 편이라도 읽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착해질 것 같다 … 그래도 아이들 어릴 때 쓴 일기 공책은 버리지 못한다. 그걸 버리는 건 그들의 몫이니까 … 어머니의 데뷔작 《나목》을 읽던 날을 잊지 못한다. 단숨에 읽어 버렸지만 읽고 난 후 여태껏의 우리 집의 분위기와 빛깔이 바뀌어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  (48, 57, 167, 213쪽)


 소설쓰는 박완서 님은 소설쓰는 박완서 님대로 당신 삶을 사랑하면서 일구었습니다. 호원숙 님은 호원숙 님대로 당신 삶을 사랑하면서 일구면 됩니다. 굳이 큰 나무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작은 나무라고 낮출 까닭이 없습니다.

 

 박완서 님은 호원숙 님을 비롯한 여러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을 일구었기에 소설을 쓰는 기운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소설쟁이 한길을 못 걸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호원숙 님한테 어머니 박완서 님이 큰 나무가 아니라, 박완서 님한테 호원숙 님이 큰 나무였을 수 있어요.


.. 아이는 그동안 무얼 공부했는지 이상의 수필 〈권태〉는 알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시험 전날 갑자기 무얼 어떻게 하겠는가. 미리 알려준 게 무슨 독과도 같았다. 나는 서재에서 낡은 이상 문학 전집을 꺼내 들고 아이 방으로 갔다. 그 애한테 세로로 조판된, 그것도 오래되어 잉크가 다 날아가 버린 책을 읽으라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이상의 수필집을 읽어 준다. 어린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듯이 ..  (170쪽)


 수필이란 내 삶을 드러내며 내 꿈을 나누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삶이란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습니다. 내 삶이란 작지도 크지도 않습니다. 내 삶은 오로지 내 사랑대로 흐릅니다. 내 삶은 오직 내 사랑을 나 스스로 어떻게 보살피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수필책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는 처음부터 ‘호원숙 수필’로 썼어야 아름답습니다. 어머니 그늘자리에서 쓰는 수필이 아니라, ‘내 삶자리’에서 쓰는 글이었어야 예쁘게 빛납니다.

 

 차라리, ‘어머니 박완서를 떠올리거나 그리는 이야기’로만 가득 채웠으면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어머니 박완서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이야기’로 알알이 누볐으면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라면, 그저 큰 나무에 기대어 열매 얻어먹는 셈일 뿐입니다.

 

 살아가노라면, 큰 나무에 기댄대서 잘못일 수 없고, 열매 몇 알 얻어먹는 일이 나쁠 까닭이 없어요. 다만, 호원숙 님으로서는 호원숙 님 한 사람한테만 서린 고운 빛줄기가 있습니다. 이 빛줄기를 곱게 사랑하며 북돋우면 좋겠습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아줌마이면 어떻고, 숲길 걷기를 좋아하는 도시내기이면 어떤가요. 오늘 내 삶을 꾸밈없이 맞아들여 스스럼없이 아낄 때에 가장 빛나는 하루이고, 이 가장 빛나는 하루를 수수하게 글로 여밀 때에 수필이 태어나요.

 

 문학은 삶에서 태어납니다. 문학은 생각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문학은 삶을 아끼는 생각으로 일굽니다. 문학은 삶을 사랑하는 생각으로 빚습니다. (4345.2.22.물.ㅎㄲㅅㄱ)


―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 (호원숙 글,샘터 펴냄,2006.4.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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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 미래그림책 24
고바야시 유타카 글 그림, 길지연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이제 아무도 없는 어여쁜 마을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42] 고바야시 유타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미래M&B,2003)

 


 봄맞이 흰눈이 소리없이 내리는 시골길을 아이와 나란히 걷습니다. 이 겨울이 지나면 새로운 봄이 찾아와 온누리에 푸른 빛깔 새옷을 선물하겠지요.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 가을을 거쳐 겨울이 오듯, 겨울이 지나 새봄을 맞이합니다. 봄은 시골자락에도 찾아오고 도시 한복판에도 찾아옵니다. 시골자락에서는 곳곳에 돋는 푸른 잎사귀로 봄내음을 알리고, 도시 한복판에서는 가게와 백화점 에누리 광고판이랑 사람들 밝은 빛깔 옷차림으로 봄빛을 알립니다.


.. 봄입니다. 자두나무, 벚나무, 배나무, 피스타치오 나무, 파구만 마을은 꽃동산이 되었습니다 ..  (3쪽)

 


 따스한 바람은 어느 곳에나 붑니다. 마을이 통째로 가라앉아 못물이 된 곳에도 봄바람이 붑니다. 구비구비 시원히 흐르는 물줄기 마을에도 봄바람이 붑니다. 삽차와 밀차가 끊임없이 오가며 시멘트를 퍼붓는 공사터에도 봄바람이 붑니다. 높디높은 건물로 숲을 이루는 도시에도 봄바람이 붑니다.

 

 고막을 찢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전투기에서 톡 하고 떨구는 폭탄에도 봄바람이 묻습니다. 온 나라 멧자락을 두루 날아다니는 헬리콥터가 나무에 벌레 먹지 말라면서 뿌리는 농약에도 봄바람이 묻습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헐뜯는 이야기를 퍼붓는 대남방송과 대북방송 스피커에도 봄바람이 묻습니다.

 

 봄바람은 눈 덮이는 마늘밭을 살짝 스치듯 지나갑니다. 봄바람은 기저귀 넌 후박나무 빨래줄을 살짝 스치듯 지나갑니다. 봄바람은 고속도로 많디많은 자동차 틈바구니를 살짝 스치듯 지나갑니다. 봄바람은 여학생 짧은치마와 남학생 쫄바지를 살짝 스치듯 지나갑니다.


.. 오늘 야모는 처음으로 당나귀 뽐빠와 함께 읍내로 과일을 팔러 갑니다. 형 대신 아빠를 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  (6쪽)

 


 아이와 둘이서 눈밭을 누비며 생각합니다. 아이와 둘이서 눈발을 맞으며 인천 골목길을 누비던 때에도 우리 둘은 호젓하게 눈길을 걸었습니다. 아이와 둘이서 눈발을 맞는 고흥 고샅길에서도 우리 둘은 한갓지게 눈길을 걷습니다. 도시에서 사람들은 모두 회사나 공장이나 학교로 갑니다. 시골에는 할머니랑 할아버지만 남고 젊은이와 어린이는 거의 다 도시로 떠납니다.

 

 도시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람들 스스로 숨을 느긋하게 쉴 틈이 모자랍니다. 시골에서는 사람이 너무 적어 사람들 스스로 품앗이를 하며 오순도순 어깨동무할 꿈을 꾸기 벅찹니다.

 

 사람이 너무 많은 곳에서는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거나 가꾸기 버겁습니다. 아니, 바쁜 나머지 아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너무 적은 곳에서는 아름다운 마을이 꾸밈없이 지켜질는지 모르나, 늙은 흙일꾼이 농약과 비료를 안 쓰며 흙을 아끼거나 사랑하기란 너무 고단하고 벅찹니다. 아니, 오랜 새마을운동과 농협 정책 때문에 그만 수수한 흙사랑과 삶사랑과 하늘사랑을 잊어버리고야 맙니다.


.. “파구만 버찌 주세요!” 작은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부터 야모의 버찌는 날개 돋친 듯 팔렸습니다. “얘야, 나도 다오. 나도 한때 파구만 가까이에서 과수원을 했었단다. 그 시절이 그립구나.” “아저씨는 전쟁터에서 돌아오셨나요?” “그래. 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단다.” 야모의 가슴속에서 쿵 소리가 났습니다. 할룬 형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  (20∼21쪽)

 

 


 이제 아무도 없는 어여쁜 마을일까요.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어여쁜 마을인가요.

 

 관광명소가 되지 않으면 찾아오지 않습니다. 관광명소가 되어야 발길이 머뭅니다. 관광명소가 되면 어여쁜 빛깔은 바래고 맙니다. 관광명소로 꾸미며 어여쁜 풀 꽃 나무 새 멧등성이 고샅 밭뙈기는 제 내음과 결을 잃고 맙니다.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를 낼 때에만 어여쁜 마을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도시 한복판에는 아파트 올릴 땅이 모자라 얕은 멧자락을 끼고 촘촘히 들어서던 도시 바깥쪽 자그마한 골목동네를 싸그리 밀어내며 어여쁜 터가 사라집니다. 시골을 뒤집어엎거나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를 내거나 공장을 짓느라 논밭을 없앴으면서, 논밭이 모자라다는 핑계로, 그러니까 땅을 넓힌다면서 갯벌을 메워 새 논밭을 만듭니다. 어여쁜 갯벌 어여쁜 바닷가 어여쁜 마을이 하루아침에 깡그리 사라집니다.

 

 지도는 해마다 달라집니다. 길찾이 기계는 해마다 새 줄거리를 넣어도 빠뜨리는 새 길이 있다고 합니다. 지도는 해마다 달라집니다. 흙땅이 줄어들고 가게가 늘어납니다. 흙이 파묻히며 시멘트랑 아스팔트가 늘어납니다. 나무가 줄어들고 아파트가 늘어납니다. 풀밭과 꽃밭은 공원으로 탈바꿈합니다.

 

 눈으로 바라볼 어여쁜 마을도 없지만, 마음으로 꿈꿀 만한 어여쁜 마을이 무엇인지조차 그리지 못합니다.


.. 드디어 마을에 다 왔습니다. 그리운 고향 냄새가 풍겨 옵니다. 겨우 하루였는데도 아주 먼 여행에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  (36쪽)

 

 


 고바야시 유타카 님이 빚은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미래M&B,2003)을 읽습니다. 고바야시 유타카 님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이 나라 어여쁜 마을을 만났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 자그마한 마을에서 웃음 맑은 어여쁜 사람들을 많이 사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자그마한 마을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해요. 폭탄으로. 폭탄이 터지며.

 

 왜 누군가 전투기나 전폭기에 올라타고는 아프가니스탄 자그마한 마을에 폭탄을 퍼부어야 했을까요. 왜 누군가 전투기나 전폭기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해야 했을까요. 왜 누군가 전투기나 전폭기를 아프가니스탄 자그마한 마을로 띄워 보내야 했을까요. 왜 누군가 자그마한 마을 웃음 맑은 사람들을 감쪽같이 없애야 돈과 힘을 거머쥘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전쟁은 군인이 일으키지 않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군인이 죽지 않습니다. 아니, 전쟁은 군인을 부리는 사람이 일으킵니다. 전쟁은 민간인이라는 사람을 죽입니다. 아니, 군인이란 여느 때에는 민간인이었으나 나라가 불러서 군인이라는 옷으로 갈아입은 사람입니다. 민간인을 불러 군인으로 바꿔치기한 사람은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권력자가 민간인이 군인으로 바뀌도록 몰아세웁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권력자는 어여쁜 마을을 생각하거나 좋아하거나 아끼지 않아요. 오로지 돈을 더 많이 벌거나 힘을 더 드높이는 데에만 마음을 씁니다.

 

 나라와 경제를 살찌운다면서 댐을 짓고 발전소를 짓습니다. 나라와 경제를 생각한다면서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4대강사업을 벌입니다. 나라와 경제를 걱정한다면서 도시를 더 키우고 공장을 더 늘립니다.

 

 이리하여, 나와 옆지기와 두 아이가 살아가는 이 나라는 조용하며 어여쁜 나라가 되지 못합니다. 나와 옆지기와 두 아이와 이웃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마을이 조용하며 어여쁜 보금자리가 되기 힘듭니다. 전쟁을 부르는 권력자가 있고,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느 사람들이 있으며, 권력자가 부르는 말 한 마디에 금세 군인으로 옷을 갈아입는 민간인이라는 여느 이웃들이 있는 동안, 이 나라 이 마을에는 어여쁜 꿈이나 사랑이 깃들지 못합니다. (4345.2.21.불.ㅎㄲㅅㄱ)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 (고바야시 유타카 글·그림,길지연 옮김,미래M&B 펴냄,2003.6.30./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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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새 7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바라보는 아름다운 꿈
 [만화책 즐겨읽기 119] 데즈카 오사무, 《불새 (7)》

 


 나는 어른들이 아이한테 사탕 주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내가 이제 사탕을 안 먹을 뿐 아니라, 사탕이 무엇으로 만드는가를 아니까 못마땅하게 여기겠지요. 돌이키면, 나도 어릴 적에는 사탕 먹기를 좋아했고, 누군가한테서 사탕을 받으면 기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사탕을 여럿 잇달아 먹으면 입안이 싸하면서 아파요. 밥맛이 나지 않습니다. 사탕만 더 먹고 싶지, 밥을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라면 이 사탕이 몹시 끔찍할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사탕 한 알이면 울던 아이 울음을 그치게 하거나 말 안 듣는 아이 말을 듣게 하기도 하니까, 한숨을 쉬면서 사탕을 주기도 하리라 생각합니다.

 

 사탕 아니면 아이를 어찌 달래나 걱정할는지 모르지만, 사탕 아니고도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는 먹을거리는 많아요. 아이 입맛은 어버이 입맛이요, 아이가 좋아하는 먹을거리는 어버이부터 좋아하는 먹을거리인 만큼, 어버이부터 삶과 넋과 밥을 찬찬히 가다듬거나 고치면서 아이와 좋은 삶과 넋과 밥을 헤아리면, 사탕에서 얼마든지 홀가분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화학조합물인 설탕이 아닌 엿을 먹을 수 있고, 사탕수수 졸여 굳힌 덩어리를 먹을 수 있습니다. 돼지감자를 먹을 수 있고, 배나 능금을 먹을 수 있어요. 당근이나 푸성귀를 물로 짜서 먹을 수 있어요. 우리 식구 땅뙈기를 마련해서 우리 식구가 밭을 일구어 우리 식구 먹을거리를 손수 마련할 수 있습니다. 무 한 뿌리 배추 한 포기 시금치 한 포기를 내 밭에서 거두어 먹는 맛을 아이와 어른이 다 함께 느낀다면 입맛과 밥맛은 새롭게 거듭나리라 믿어요.


- “개는 무슨 얼어죽을! 모두들 하나같이 너저분한 잡동사니잖아! 당신들도 마찬가지야!” “역시 그렇군, 레오나. 안됐지만 그 원인은 인공 두뇌에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소뇌 전부와 대뇌 대부분을 인공 두뇌로 교환한 건 전례가 없으니.” “결국 난 실험대상이었던 건가요?” “넌 완전히 죽어 있었어. 그 육체를 부활시키려면 의학상 새로운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31쪽)
- “꽃이다! 그림은 무기물이라 그런가? 살아 있는 꽃은 꽃으로 보이지 않는데 그림 속의 꽃은 제대로 보여!” (37쪽)


 나는 어른들이 아이한테 과자 주는 일을 괘씸하게 여깁니다. 이제 나는 과자를 따로 사다 먹지 않고 즐기지 않으니까 괘씸하다 여긴다 할 텐데, 곰곰이 돌이키면 나도 어린 나날 과자를 꽤나 좋아해서 자주 먹었습니다. 어린 나날 과자를 무엇으로 만드는가를 살피지 않았어요. 어른들도 과자가 어디에서 무엇으로 만드는가를 따지지 않았어요. 나들이를 가면 으레 과자를 한 부대 장만해야 하는 줄 알고, 바깥을 돌아다니며 과자를 사다 먹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가만히 보면,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바깥으로 나들이를 다니면 꼼짝없이 과자를 사다 먹을밖에 없습니다. 집에서 따로 도시락을 마련하거나 주전부리를 챙기지 않으면, 아이도 어른도 가게에서 손쉽게 돈을 치러 사는 과자에 손이 가고야 맙니다.

 

 너무 마땅한데, 과자를 사다 먹으면 비닐 쓰레기가 나옵니다. 집에서 도시락이나 주전부리를 챙기면 통에 담을 테니 쓰레기가 없습니다. 도시락 통은 잘 씻어서 말리면 얼마든지 다시 씁니다. 썩 좋지 못한 화학조합물 잔뜩 넣은 과자를 돈까지 비싸게 치러 사다 먹으면, 얼마 안 되는 알맹이를 비우고 나서 쓰레기가 풀풀 날립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집과 일터를 바지런히 오가야 하고, 이래저래 아이와 마실 다니는 일이 잦아야 하니까, 참말 온누리가 새 물건과 새 쓰레기로 그득그득 넘칩니다.

 

 사탕이랑 과자는 한쪽에서는 혀와 마음과 생각을 녹입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끝없이 쓰레기를 늘립니다. 사탕 공장과 과자 공장에서는 물과 전기를 잔뜩 먹으면서 물과 땅을 더럽히는 일을 되풀이합니다.


- “그 회사로 전화해도 될까?” “안 돼요. 로봇은 작업 중에는 불필요한 행동을 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근무 시간이 끝나고 만나면 되잖아.” “일이 끝나면 에너지가 스톱되어 창고로 들어갑니다.” (44쪽)
- “당신, 그 로봇과 이 사진이 똑같이 생겼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나?” “전혀 달라요.” “그렇게 보는 건 당신뿐이야, 레오나 씨. 우린 아무리 봐도 똑같이 보인단 말이야.” “치히로를 모욕하는 녀석은 내가 용서하지 않아!” (55쪽)


 아름다운 꿈을 바라보는 삶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름다운 사랑을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이들은 어른들이란 어떠한 삶을 바라보며 어디에서 무럭무럭 자라는가요. 아이들은 어른들한테서 어떠한 사랑을 물려받으며 어느 길을 씩씩하게 걷는가요.

 

 국가경쟁력 때문에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라이름 드날리거나 나라사랑 내세우며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삶을 사랑하고 싶기에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와 함께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 하루하루 사랑하는 넋으로 지내고 싶으니 오순도순 살림을 일굽니다.

 

 온 사랑을 담아 짓는 밥입니다. 온 믿음을 실어 짓는 옷입니다. 온 기쁨을 누리며 짓는 집입니다.

 성공이나 실패라는 틀로 나누지 못하는 삶입니다. 명예나 권력이라는 울타리에 가둘 수 없는 삶입니다. 학벌이나 재산으로는 재지 못하는 기쁨이요 보람이며 사랑입니다.


- “치히로! 전혀 움직이질 않잖아! 대체 뭐 하는 거야?” “나, 괴로워. 괴로워. 아파. 너무 괴로워요.” “뭐라고?” “새로운 감정이 날 지배해서 지울 수가 없어요.” (62쪽)
- “정말 상쾌한 날씨군. 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는데.” (82쪽)
- “오, 하늘이여! 숲이여! 물이여! 공기여! 내 말 좀 들어 봐!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 인간들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너희들 자연계의 요정들이라면 우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지?” (86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일곱째 권을 읽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사람답고, 삶이 얼마나 삶다우며, 사랑은 얼마나 사랑다이 누릴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가 얼크러지는 일곱째 권을 천천히 받아먹습니다.

 

 사람은 왜 태어나서 왜 살아갈까요. 사람은 왜 밥을 먹고 왜 아이를 낳을까요. 사람은 왜 짝꿍을 사귀고 왜 삶을 누릴까요.

 

 사람이 심는 나무는 무엇을 해야 나무답다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심는 꽃은 어떻게 피어야 꽃답다는 소리를 들을까요.

 

 냇물은 어떻게 흘러야 냇물답고, 멧자락은 어떤 모양새여야 멧자락다울까요. 바다는 어떻게 있어야 하고, 햇살은 어떻게 비추어야 할까요.

 

 어느 사람이든 어느 목숨이든 햇살과 흙과 물과 바람이 어우러져 태어납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깃들지 않으면 사람도 목숨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만들어 이룬다는 도시 물질문명에서는 햇살이나 흙이나 물이나 바람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사당에서 일하는 국회의원이 햇살을 받으며 일하는가요. 청와대 청소부나 국회의사당 영양사는 햇살이나 냇물이나 바람을 받으며 일하는가요. 시청이나 군청 일꾼은 어떠한 터전에서 일하는가요. 병무청이나 법원 일꾼은 어떠한 삶을 지으며 일하는가요.

 

 사람들은 누구나 ‘일’을 한다고 말하는데, 참말 ‘일’이란 무엇인가요. 돈을 버니까 일이 되나요. 돈을 벌 때에는 ‘돈벌이’이지, ‘일’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을 텐데요. 내 꿈을 싣고 내 사랑을 펼치며 내 삶을 누리는 일이 아니라, 하루하루 끼니를 잇는 돈벌이만 하면서, 우리 아이들한테까지 삶짓기 사랑짓기 사람짓기 아닌 돈벌이만 익히도록 내몰지 않나요.


- “넌 내가 돈을 주고 산 도구야. 이봐, 도구에게 무슨 권리가 있다는 거지?” (103쪽)
- “난 인간인가요?” “인간이다마다. 어엿한 인간이지.” “난 인간이 아니에요. 그러니 인생이라고도 할 수 없다구요!” “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지?” “내 몸의 60%는 인간이 아닌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그래, 인공 두뇌, 인조 세포, 인공 장기 …….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 자네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으니까.” “만일 자동차가 부서져 고칠 때 반 이상을 전철 부품으로 간다면, 그건 과연 자동차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 “내 뇌의 반 이상과 소뇌는 전부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렇지.” “차라리 전부 갈아치우지 그랬어요?” “그러면 자네는 로봇이 되고 말아! 로봇이!” “그럼 차라리 로봇으로 만들어 주세요!” “말도 안 돼! 그럼 내가 인간을 부활시켰다는 의미가 없어지고 말잖아!” (177∼179쪽)


 아이들이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어른들부터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어른들로서는 돈벌이에 얽매이면서 아이들만큼은 사랑스러운 꿈을 푸르게 꾸라고 이끌 수 없습니다. 어른들이 먼저 아름다이 살아갈 사랑스러운 꿈을 푸르게 꾸어야 합니다. 이 푸르고 너르며 싱그러운 길을 아이들 손을 잡으며 즐거이 걸어가야 합니다.

 

 함께 걸어가며 즐거운 길입니다. 함께 사랑하며 기쁜 삶입니다. 함께 밥과 옷과 집을 나누기에 보람찬 하루입니다.

 

 따사로운 기운 머금은 해님은 아침마다 찾아듭니다. 고맙게 하루를 비춘 해님은 곱게 저물면서 어두운 마을 밝게 보듬는 달과 별이 빛납니다. 바람은 차갑게 불다가도 포근하게 붑니다. 잎과 꽃은 겨울을 맞이하며 시들지만 봄을 맞이하며 푸르고 싱그러이 다시 돋습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아이를 낳고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은 모든 사람과 목숨을 살찌우면서 모든 사람과 목숨을 고이 건사합니다. 서로 아끼고 서로 돌보며 서로 기대어 한삶을 누립니다. (4345.2.21.불.ㅎㄲㅅㄱ)


― 불새 7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4.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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