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마음을 살찌우는 좋은 그림책 10
사노 요코 글 그림, 정근 옮김 / 사파리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다섯 살짜리한테서 기쁘게 받는 선물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8] 사노 요코,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언어세상,2002)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을 끼니마다 마련하는 일이란 아름답습니다. 내가 마련하는 밥이든, 할머니가 마련하는 밥이든, 옆지기가 마련하는 밥이든, 아이들이 커서 스스로 마련하는 밥이든, 아저씨가 마련하는 밥이든, 어떠한 밥이든 아름답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다 식은 밥을 간장이랑 김치만 올려 밥상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당근을 짠 물을 잔에 담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빵을 굽거나 부침개를 부칠 수 있습니다.

 

 어떠한 먹을거리이든 고맙습니다. 어떠한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손길이든 아름답습니다. 어떠한 먹을거리를 냠냠짭짭 먹든 내 몸에는 사랑스러운 기운이 따사로이 감돕니다. 좋은 사랑을 먹으며 좋은 목숨을 지켜 좋은 나날을 누린다고 느낍니다.


.. 할머니와 고양이 한 마리가 함께 살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아흔여덟 살이지만 아주 건강했어요 ..  (4쪽)

 


 마음속에서 샘솟는 사랑이 없다면 밥을 지을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인데, 마음속에서 샘솟는 사랑이 없으면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칠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서 샘솟는 사랑이 있기에 옷가지를 빨래해서 해바라기하는 마당에 내다 널 수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사랑을 먹으며 목숨을 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사랑을 나누는 한삶을 누립니다. 일을 하는 까닭은 사랑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놀이를 하는 까닭은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나날이 좋기 때문입니다.

 

 무슨무슨 구실을 붙여 하는 일이 아니에요. 무슨무슨 핑계로 그만두는 일이 아니에요. 스스로 우러나는 꿈을 이루려는 사랑으로 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우러나는 꿈을 이루려는 사랑이 나타나지 못하니 더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전쟁이란 사랑 하나 없는 끔찍한 바보짓입니다. 너와 내가 서로 어깨동무하며 함께 잘살아야지, 왜 네 것을 빼앗아 내 것으로 삼아야 하나요. 왜 내 것을 나누어 너와 같이 누리려 하지 않나요. 왜 전쟁무기를 만드나요. 전쟁무기 만들 돈과 지하자원이 있으면, 낫과 쟁기와 호미를 만들어 논밭을 일구어야지요. 전쟁무기 만들 품과 겨를이 있으면, 씨앗을 받아 나무를 심어야지요.

 

 나한테 넘치는 돈이 있으면 이웃하고 나누면 됩니다. 나한테 돈이 모자라면 이웃한테서 얻으면 됩니다. 나한테 남는 기운이 있으면 두레와 품앗이를 하면 됩니다. 내 몸이 아프거나 힘겨우면 이웃을 불러 두레와 품앗이로 내 일손을 거들어 달라 이야기하면 됩니다.

 


.. 고양이는 할머니가 만든 케이크를 제일 좋아했어요. “야∼. 케이크다! 할머니가 만든 케이크가 제일 맛있어요.” “하지만 난 할머니인걸. 내가 잘 하는 건 케이크 만드는 거뿐이란다.” ..  (10쪽)


 아픈 사람을 돕는 일은 아주 마땅한 삶입니다. 내가 아플 때에 도움받는 일은 아주 마땅한 사랑입니다. 나는 내 몫대로 내 살붙이랑 이웃이랑 동무한테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야 즐겁습니다. 나는 내 몫 그대로 내 살붙이랑 이웃이랑 동무한테서 사랑을 받으며 지내야 아름답다 할 만해요.

 

 한쪽으로만 흐르는 사랑이란 없어요. 한쪽에서 퍼주기 하듯 내준다는 일이란 없어요. 이웃돕기는 퍼주기 아닌 사랑이에요. 이웃사랑은 ‘남아도는 돈 가운데 조금 떼어 뽐내듯 베푸는 바보짓’이 아니에요. 온넋 기울이는 사랑일 때에 이웃사랑이에요. 온마음으로 고맙게 여기며 받아들일 때에 이웃사랑이에요.

 

 사노 요코 님 그림책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언어세상,2002)에 나오는 ‘다섯 살짜리 고양이’는 ‘아흔여덟 살 자신 할머니’하고 함께 살아가며 이것저것 마음껏 누립니다. 할머니가 해 주는 밥을 먹고, 할머니가 돌보는 집에서 고맙게 잠을 자며, 할머니가 건사하는 옷가지를 정갈히 입고는 낚시를 다닙니다. 할머니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합니다. 그저 이제껏 아흔여덟 해 살아온 대로 아낌없이 나누어 줍니다.

 

 그런데, 다섯 살짜리 고양이가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주니까 아흔여덟 살 자신 할머니가 ‘아낌없이 나누어’ 줄 수 있어요. 받아들여 줄 가슴이 없으면 나누어 줄 사랑이란 없겠지요. 거꾸로, 다섯 살짜리 고양이는 이 고양이대로 아흔여덟 살 자신 할머니한테 나누어 줄 사랑이 있고 꿈이 있으며 믿음이 있습니다.

 


.. 할머니는 조금 실망했어요. “음, 5개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구나. 어서 케이크에 초를 꽂으렴. 5개밖에 안 되지만…….” ..  (15쪽)


 백 살에 꼭 두 해를 남긴 할머니는 ‘죽을 일’만 생각했습니다. 나이를 너무 먹었으니 무엇이든 ‘할 수 없는 삶’이라 죽을 일만 바라보았어요. 이리하여, 다섯 살짜리 고양이는 아흔여덟 살 자신 할머니한테 ‘남은 삶 고맙게 맞아들여 즐거이 누리는 나날’을 슬며시 선물합니다.

 

 돈이 없는 고양이로서는, 고작 다섯 살짜리인 고양이로서는, 사람들처럼 무슨무슨 돈벌이 일자리에 몸바칠 수 없는 고양이로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 읍내 가게에 가서 돈을 들여 선물을 장만하지 못할밖에 없어요. 그러나, 이 어리고 가녀리며 작은 고양이는 마음을 선물해요. 온통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을 할머니한테 선물해요.


.. 둘은 한참을 걷고 걸어서 냇가에 왔어요. 고양이는 냇물을 껑충 뛰어넘었어요. “할머니도 얼른 건너오세요.” 고양이가 손짓했어요. “하지만 난 5살인걸……. 아참, 그렇지. 5살이니까 나도 할 수 있어!” ..  (21쪽)

 


 늙은 할머니는 어린 고양이가 나누어 준 선물을 고맙게 받습니다. 기쁘게 나누어 주는 선물이기에 기쁘게 받습니다. 웃으며 내민 선물이니 웃으며 받아요.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 아이들한테서 선물을 받습니다. 나날이 씩씩하게 크는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이 아이들한테서 선물을 받습니다.

 

 웃는 아이는 웃는 대로 선물을 줍니다. 우는 아이는 우는 대로 선물을 줍니다. 곯아떨어진 아이는 곯아떨어진 대로 선물을 줍니다. 배고픈 아이는 배고픈 대로 선물을 줍니다. 배부른 아이는 배부른 아이대로 선물을 줘요.

 

 어버이인 내가 느낄 때에 선물입니다. 어버이인 내가 못 느낀다면 선물이란 없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사랑으로 가득한 가슴을 활짝 열어야 비로소 선물인 줄 느낍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온통 사랑으로 빛나는 하루를 누리려고 꿈을 꾸어야 바야흐로 나날이 선물이고 이야기보따리입니다. (4345.2.27.달.ㅎㄲㅅㄱ)


―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사노 요코 글·그림,정근 옮김,언어세상 펴냄,2002.10.19./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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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2-27 12:24   좋아요 0 | URL
그림책을 보니 그림을 그리고 싶어지네요. 이 그림을 그렸던 사람은 행복했겠죠?ㅋ

숲노래 2012-02-27 19:38   좋아요 0 | URL
그림을 그린 분은 일본에서 재미난 '고양이 박물관'도
'책 판 돈'으로 만들어서 꾸린대요... 아아,
아주 놀랍고 좋습니다~
 
Leni Reifenstahl: Africa (Hardcover)
Angelika Taschen 지음 / TASCHEN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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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사진을 39장 붙입니다. 좀 많이 붙이니 저도 힘들고 그렇지만, 레니 리펜슈탈 사진삶을 하나도 모르며 엉터리로 편견만 품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 아무튼, 읽는 사람 마음입니다.

 

 

 

 

 

 

 

 

 

 


 하루하루 사랑하며 찍는 사진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50]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Africa》(Taschen,2010)

 


 2월은 어느덧 막바지입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하면서 아침 낮 저녁으로 바깥 날씨를 살핍니다. 1월과 견주어 2월은 저녁 다섯 시 사십 분까지 먼 멧등성이 위쪽으로 해가 걸립니다. 1월에는 네 시에서 다섯 시로 접어들라치면 해가 넘어가곤 했어요. 동짓날과 가까운 12월에는 네 시 즈음만 되어도 벌써 어둑어둑하다고 느꼈고요. 곧 3월이 되면 저녁 여섯 시 무렵까지 아직 멧자락에 해가 걸릴 테고, 4월로 접어들면 여섯 시 반 즈음까지도 햇살이 따숩게 내리쬐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늘 손으로 빨래합니다. 두 아이와 옆지기와 내가 입는 옷가지를 모두 내 손으로 날마다 여러 차례 빨래합니다. 빨래기계를 쓰지 않으니 언제나 내 몸을 바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내 몸이 하루라도 아프면 큰일입니다. 빨래뿐 아니라 온갖 집일을 제대로 건사하자면, 집일뿐 아니라 아이들하고 사랑스레 살아가자면, 또 옆지기하고 살가이 삶꽃을 피우자면 내 몸부터 튼튼해야 해요. 내 몸이 튼튼하지 않고서야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요. 내 몸부터 튼튼히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 꿈은 곱게 이루지 못해요.

 

 아직 2월이기에 저녁 다섯 시 반에는 빨래를 걷어야 합니다. 이때까지 저녁 빨래가 다 마르지 않았어도 걷어서 방으로 들여야 합니다. 다섯 시 반을 넘을 때까지 바깥에 둔 2월 저녁 빨래에는 차가운 기운이 서리거든요. 고작 몇 분 넘겼다 하더라도 옷가지마다 찬 기운이 빠질 때까지 잘 펼쳐 더 말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그냥 개면 이 옷을 입을 식구들이 즐거울 수 없으리라 느껴요.

 

 

 

 

 

 

 

 

 

 

 

 밥 한 그릇마다 사랑을 담습니다. 옷 한 벌마다 사랑을 싣습니다. 말 한 마디마다 사랑을 들입니다. 이부자리를 깔 때에도 사랑을 담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을 씻길 때에도 사랑을 싣기 마련입니다. 설거지를 하고 밥상을 치울 때에도 사랑을 들이기 마련입니다. 내 삶은 어디에서나 온통 사랑입니다. 내가 느끼지 못하더라도 사랑입니다. 언제나 결이 고운 사랑이기를 꿈꾸고, 늘 빛깔이 어여쁜 사랑이기를 바랍니다. 내 좋은 삶을 사랑으로 누리면서 내 손에 쥐는 사진기로는 아름답다 느낄 사랑 이야기를 엮고 싶습니다.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님이 1960∼70년대에 아프리카땅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와 삶을 담은 사진책 《Africa》(Taschen,201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때때로 까망하양 빛깔로 담은 사진이 있으나, 1960년대에 담은 사진이면서 거의 모두 무지개 빛깔 사진입니다. 2002년에 처음 나왔다가 2010년에 레니 리펜슈탈 한삶 발자취를 다시 갈무리해서 새로 펴낸 책입니다만, 책 간기로만 헤아리면 마치 2010년을 앞두고 찍은 사진이라고 여겨도 될 만큼 무척 곱고 빛나는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2010년에 새로 나온 《Africa》는 틀림없이 1960년대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자그마치 쉰 해를 먹은 사진입니다.

 

 

 

 

 

 

 

 

 

 

 

 1902년에 태어나 2003년에 숨을 거둔 레니 리펜슈탈 님은 백두 해를 살았습니다. 아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장비를 갖추어 바닷속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고, ‘푸른평화(그린피스)’ 회원이 되어 지구별을 푸르게 지키는 일을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흔히들 레니 리펜슈탈 님 삶을 놓고 1930년대에 〈올림피아〉라는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와 〈의지의 승리〉라는 나치 전당대회 기록영화를 찍었다는 이야기만 하지만, 레니 리펜슈탈 님은 나치 독일에서 영화밭 사람들이 ‘부역을 하지 않고 독일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거나 ‘미국으로 조용히 건너가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 같은 이야기는 《금지된 열정》(오드리 설킬드 씀,마티 펴냄,2006)이라는 두툼한 책에 잘 나옵니다. 어쩌면, 레니 리펜슈탈 님 스스로 1930∼40년대에 독일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며 영화를 찍었느냐 하는 대목을 제대로 똑부러지게 밝히지 못했기에 이모저모 말밥이 있다 할 테지만, 곰곰이 살피면 적잖은 비평가들이 ‘넌 반성문 안 썼으니까 안 봐주겠어’ 하고 으르렁거리지는 않느냐 싶습니다. 이리하여, 레니 리펜슈탈 님은 영화감독이라는 일을 1945년 뒤로는 더는 하지 못합니다. 영화마을에서는 당신을 받아들여 주지 않거든요.

 

 레니 리펜슈탈 님 사진책을 넘길 때마다 당신은 백 해가 넘는 나날을 어떻게 살아냈나 싶어 궁금하곤 합니다. 당신을 모르는 사람들이 애먼 손가락질을 할 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할 터이나, 당신한테서 도움과 사랑을 받아 나치 독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1945년부터 갑작스레 달라져 등돌리면서 손가락질을 하고 괴롭힐 때에 어떻게 살아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레니 리펜슈탈 님은 누구보다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했기에 모든 구비구비 가시밭길을 헤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발레하는 삶을 꿈꾸었으나 발목을 다쳐 발레꾼이 되지 못했기에 영화배우가 되었고, 영화배우로 뛰며 맨발로 얼음산을 타고 북극 얼음땅을 누비기까지 하며 영화감독을 꿈꾸더니 그예 영화감독까지 된 레니 리펜슈탈 님입니다. 영화마을에 발을 들일 수 없이 지내야 했으나 사진기와 촬영기를 들고 맨몸으로 아프리카 누바겨레 삶을 담았습니다. 예순을 넘고 일흔이 넘은 할머니가 ‘오늘날처럼 작은 촬영기’가 아니라 ‘무겁고 커다란 촬영기’를 오른어깨에 걸치고 아프리카 누바겨레 기록영화를 찍었어요. 여든과 아흔에는 바닷속 아름다운 누리를 찍고요. 그러고 보면, 레니 리펜슈탈 님이 찍은 〈의지의 승리〉는 나치 독일 전당대회가 ‘굳센 뜻으로 이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여자’ 영화감독이 나치 독일에서도 씩씩하게 영화를 찍는 ‘굳센 뜻이 이기는’ 이야기일 수 있으리라 싶습니다. 당신은 예술을 이루었고, 당신이 이룬 예술이 남았기 때문에 201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사람들까지 1930∼40년대 나치 독일이 ‘사람들을 어떻게 홀리거나 군국주의로 다스렸는가’ 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어요. 1934년 나치 전당대회 기록영화가 없었다면 ‘언론을 거머쥐어 사람들 눈과 귀를 다스리는’ 일이 어떠했는가를 알 길이 없었을 뿐더러, 이토록 아름다운 예술로 그린 기록영화는 없으니 ‘왜 여느 독일 사람들이 나치한테 그토록 눈물콧물 다 바쳤는가’를 헤아리기란 쉽지 않아요.

 

 나는 늘 집안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이 집안일이란 날마다 해도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집안에서 살아가자면 언제나 집안을 이모저모 손질하고 다스려야 하거든요. 아침에 방을 쓸고닦았대서 이제부터 방을 안 쓸고닦아도 되지 않아요. 아침에 밥 한 그릇 배불리 먹었으니 며칠 동안 굶어도 되지 않아요. 아침에 쓸고닦은 방이라 하더라도 낮이나 저녁에 또 쓸고닦아야 합니다. 아침에 아이들을 씻겼어도 저녁에 또 씻겨야 하곤 합니다. 아침에 밥을 했으면 낮이나 저녁에도 밥을 해야 합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삶이에요. 일이란 끝이 없으나 삶부터 끝이 없습니다. 날마다 할 일이 쌓이지만, 날마다 나눌 사랑이 가득합니다. 곧, 날마다 마음을 기울일 일이 많은 만큼, 날마다 생각할 꿈이 많고, 날마다 사랑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고되다 싶은 삶이라면 고되는 대로 생각하며 사랑할 삶입니다. 즐겁다 싶은 삶이라면 즐거운 대로 생각하며 사랑할 삶이에요.

 

 레니 리펜슈탈 님 사진책 《Africa》는 구비구비 흐르는 삶이 있었기에 태어납니다. 맨 처음, 발목 다친 발레꾼 레니 리펜슈탈 적부터 사진책 《Africa》가 태어났습니다. 영화배우가 되어 몇 천 미터 높은 멧자락을 맨몸으로 오르내리던 때에 사진책 《Africa》가 태어났어요. 나치 전당대회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영화로 담으며 사진책 《Africa》가 태어난 셈입니다. 영화마을에 발을 붙일 수 없던 슬프며 외로운 나날 사진책 《Africa》가 태어났다 할 만합니다.

 

 누구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삶이었으니 아프리카땅을 밟으며 누바겨레를 만났을 때에도 이 사랑을 고스란히 담아 사진기를 누르고 촬영기를 돌립니다. 돈으로 사고파는 삶이 아닌 사랑으로 누리는 삶일 수 있기에 누바겨레 온삶을 맨살 그대로 담아내어 두고두고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이제 누바겨레는 1960∼70년대 기록사진과 기록영화에 남은 모습대로 살아가지 않는다지만, 누바겨레 뒷사람이건 오늘날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건, 이 두툼한 400쪽짜리 사진책 《Africa》를 넘기면 1960∼70년대 모습이 마치 오늘 모습인 듯 살아납니다. 아니 이 사진책에 남은 누바겨레 모습은 1960∼70년대 모습이 아니라 1800년대, 1500년대, 1000년대 모습 그대로라 할 수 있어요. 흙으로 집을 짓고, 흙을 일구어 살아가며, 햇살 따사로운 누리에서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채 즐거이 얼크러지는 예쁜 나날을 기쁘게 누린 삶자락이란 오래오래 이어온 꿈이자 사랑입니다. 아름답게 누린 삶이 사랑으로 빛납니다.

 

 나는 나대로 내 보금자리에서 살붙이들과 부대끼는 나날이 아름답게 누리는 사랑어린 삶입니다. 이 삶을 사랑하기에 날마다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날마다 빨래를 할 수 있으며, 날마다 밥을 지을 수 있습니다. (4345.2.27.달.ㅎㄲㅅㄱ)

 

 

 

 

 

 

 

 

 

 

 

 

 

 

 

 

 

 

 

 

 

 

 

 

 

 

 

 

 

 

 

 

 

 

사진은 사진대로 곧게 잘 살펴야 마음을 살찌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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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39장이나 올라가는군요!
참 좋은 사진들이고 글들입니다. 저렇게 하나에 헌신하고 정열을 키우는 분들은,
언제봐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아름답네요....

숲노래 2012-02-27 19:36   좋아요 0 | URL
사진을 하나씩 올려야 한다는 알라딘... -_-;;;
언제쯤 나아질까요. 에궁...

이 사진책은 5만 원이었나 해요.
값이 되게 싸요.
특가 판이라고 하는데,
아프리카 삶을 보여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에요.
 
Leni Reifenstahl: Africa (Hardcover)
Angelika Taschen 지음 / TASCHEN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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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0년에 써서 <포토넷>이라는 잡지에 실었는데, 알라딘서재에는 안 걸쳤더군요. -_-;;;; 왜 그랬을까 모르겠으나, 아무튼, 안 걸친 탓에, 레니 리펜슈탈을 그야말로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자료 한 가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레니 리펜슈탈 다른 사진책 하나 느낌글을 올리기 앞서, 이 글부터 올립니다.

 

<아프리카> 사진책은 이 글 다음에 새로운 글로 붙입니다. <아프리카>만 검색에 뜨고 <카우 사람들> 사진책은 안 뜨거든요.

 

 

 

 


 살아가는 마음과 사진찍는 마음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The People of Kau》(Collins St James's Place,1976)

 

 

 밤 열두 시 가까이에 겨우 잠든 아이가 새벽 네 시 오십 분에 깹니다. 오줌을 누었군요. 기저귀를 갈아 준 다음 재우려는데, 여러 날 일이 밀린 아빠가 셈틀을 켜니 아이가 잠들지 못하고 자꾸 칭얼대더니 그예 아빠 무릎으로 달려와 폭 앉습니다. 아마, 아이도 아빠와 함께 새벽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할 때까지 놀고 싶은 듯합니다. 아이는 아빠 품에 안긴 채 아주 조용하고 다소곳하게, 아빠가 자판을 두들기며 글을 쓰는 모습을 말똥말똥 바라봅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글을 쓰는 일이란 ‘누가 옆에서 글쓰기를 지켜보는 셈’이라 멋쩍고 쑥스럽습니다. 아이가 아직 글이며 말이며 모르는 열아홉 달짜리라 하더라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 채로 글을 쓰기는 힘듭니다. 그렇지만, 옆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눈길이 있음을 느끼면, 허튼 글을 어수룩하게 쓸 수 없습니다. 아니, 누군가 지켜보지 않더라도 글이란 허투루 어수룩하게 쓸 수 없는 노릇입니다. 내 모든 알맹이를 담아내고, 내 모든 고갱이를 깃들이며, 내 모든 빛나는 삶줄기를 쏟아내는 글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매한가지입니다. 언제나 모든 땀을 들이고, 노상 갖은 힘을 바치며, 늘 마지막 손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엮어내야 한다고 봅니다.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독일사람은 백둘이라는 숫자를 찍을 때까지 삶을 꾸렸습니다. 이이를 놓고 갖가지 말밥이 있음은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마티,2006)이라는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온누리에는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한 사람을 갉아먹거나 깎아내리는 이야기만 넘치고,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예술쟁이’가 어떤 사랑과 믿음으로 영화와 사진과 환경운동에 몸과 마음을 내놓았는가를 읽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때때로 시인 서정주와 예술쟁이 레니 리펜슈탈을 견주는 목소리가 들립니다만, 두 사람은 맞댈 만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릇이 다르고, 걸은 길이 다르며, 받은 대접이 다른데다가, 아픔과 생채기를 씻어내며 새삶을 여는 매무새가 다릅니다. 나치 기록영화를 찍은 탓에 죽는 날까지 멍에를 지고 살았던 레니 리펜슈탈은 숱한 손가락질을 받고 영화필름과 재산과 피붙이까지 빼앗겼으나, 이 모든 아픔을 겪으면서도 세상과 등지지 않습니다. 외려 더 다부지게 세상과 맞서면서 다시금 영화를 찍으려는 꿈을 품습니다. 그렇지만 영화마을 사람들은 레니 리펜슈탈이 영화마을에 다시 못 돌아오도록 문을 닫습니다. 아주 굳세게 닫아 겁니다. 꿈이자 빛을 잃은 레니 리펜슈탈이지만, 이녁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 촬영기가 아닌 사진기를 집어듭니다. 촬영기에 넋을 들일 수 없는 슬픔과 눈물을 사진기를 쥐어들면서 기쁨과 웃음으로 삭여냅니다. 일흔이라는 나이를 훌쩍 넘긴 때에 내놓은 《The People of Kau》를 보면, 이녁이 사진이라는 눈길로 이루어낸 애틋함과 뜨거움에는 고운 꿈이 맑은 빛으로 서리며 담기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그런데, 영화마을로 돌아가지 못한 레니 리펜슈탈은 사진마을에서도 비아냥을 듣고 해코지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이 누바족을 사진으로 찍었을 때에는 높이 기리고 손뼉을 쳤으나, 레니 리펜슈탈이 누바족을 사진으로 찍었을 때에는 파시즘 냄새가 난다고 깎아내립니다. 사진을 사진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외눈박이 정치빛으로 재고 맙니다. 껍데기를 벗고 알맹이를 볼 노릇인데. 껍데기를 벗고 알맹이를 감쌀 노릇인데. 껍데기를 걷어차고 알맹이를 사랑할 노릇인데. 그리고, 참사랑을 할 노릇인데. 거짓사랑 아닌 참사랑과 참삶을 아껴야 할 텐데.

 

 사진찍기에는 바른길이 없습니다. 그저, 어느 길로 접어들든 내 넋과 얼을 고이 실으면서 사랑을 나눌 좋은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진찍기에는 바른길이 있습니다. 다만, 어느 길로 접어들든 내 뜻과 빛을 굳은살 박힌 손끝으로 곱게 다스리면서 즐거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진기를 들고 걷는 우리 한길을 얼마나 곱거나 맑거나 즐거운 길로 가꾸면서 우리 삶을 알차고 튼튼하게 돌보는가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사진기를 들고 일구는 우리 살림살이를 얼마나 싱그럽거나 따뜻하거나 고마운 길로 여미면서 우리 터전을 힘차고 넉넉하게 북돋우고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레니 리펜슈탈은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바닷속 탐사를 즐기고, 바닷속 사진을 찍습니다. 영화를 찍을 때에는 다른 사람한테 돈을 빌리고 숱한 사람한테 일을 시켜야 하나, 사진을 찍을 때에는 홀로 사진기 하나만 쥔 채로 당신 꿈과 넋과 삶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면서 이녁은 푸른평화(그린피스) 회원이 되고, ‘사람들 손에 망가지는 자연 터전’을 지키는 일에 마지막 불꽃을 태웁니다.

 

 《The People of Kau》를 덮은 뒤 한숨을 돌리고 싶지만 집일은 가득 쌓입니다. 어제 하루 몸이 고단하여 미뤄 둔 빨래를 합니다. 아이는 손빨래하는 아빠 곁에서 내도록 물놀이를 합니다. 빨래 한 대야를 하고 나서 쌀을 씻어 밥을 안쳐 놓습니다. 빨래를 다 마치고 나서 아이를 씻깁니다. 아이한테 새 옷을 입힌 다음 새로 지은 밥을 먹입니다. 국수를 삶아 세 식구 함께 먹을 낮밥을 마련합니다. 낮잠 잘 낌새가 보이지 않는 아이는 이 방 저 방 뛰어다니고, 무언가를 어디에선가 끄집어서 들고 다닙니다. 예술은 길고 삶 또한 기나깁니다. 하루는 길지만, 이 긴 하루는 쏜살같이 지나가며, 칭얼쟁이 아이는 어느새 어여쁜 어른으로 자라겠지요. (4343.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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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만나러 갑니다 - 행복한 고양이를 찾아가는 일본여행
고경원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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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살짝 나오는 손발가락은 다섯 살 어린이 사름벼리~)


 좋아하는 꿈을 담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79] 고경원,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아트북스,2010)

 


 인천에서 살던 지난날, 4층 옥탑집 둘레로 골목고양이가 드나들었습니다. 골목고양이가 어떻게 4층 옥탑집까지 드나들랴 싶어도, 이 녀석들은 지붕을 타고 3층이건 4층이건 들락거릴 수 있습니다. 길눈이 트면 못 가는 데란 없어요. 이웃 골목을 마실하면서 다른 골목고양이를 숱하게 만났습니다. 어느 분은 골목고양이가 지겹다 말하고, 어느 분은 골목고양이 밥을 다달이 몇 십만 원어치씩 사다가 곳곳에 놓고는 굶을까 걱정합니다. 싫다 하는 분이 제법 있으나, 고양이밥 챙겨 주는 분이 무척 많았어요. 우리 식구도 가끔 고양이밥을 아래층(3층) 지붕 한쪽에 놓곤 했습니다.

 

 충청북도 충주 멧골집으로 옮겨 살던 지난날, 이 멧골집에 들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온 적 있습니다. 아주 기운이 빠진 들고양이는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보아도 꼼짝을 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멍한 눈이 아닌가 싶었는데, 옆지기는 이 들고양이를 바라보다가는 어디 아픈 데 있지 않나 하고 얘기했습니다. 이틀쯤 들고양이를 보았고, 며칠 뒤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모질게 쏟아지는데, 길가 도랑 수풀 우거진 한쪽 이슥한 데에서 그 들고양이를 만납니다. 들고양이는 숨을 거두고는 도랑 한쪽 이슥한 데에 조용히 누웠어요. 퍼붓는 비에 들고양이 주검은 어디론가 떠내려 갔습니다.

 

 전라남도 고흥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살아가는 오늘날, 마을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살림집 마루 밑에서 제 또아리를 틉니다. 어느 날에는 뒷간에서 자고, 어느 날에는 헛간에서 자더니, 마루 밑으로 난 구멍으로 들락거리며 밤잠을 잡니다. 추운 겨울날 마루 밑은 고양이한테 더없이 좋은 쉼터가 되겠지요. 쥐를 얼마나 잘 잡는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들고양이라 할 테니 들쥐를 먹이로 삼지 않겠느냐 싶은데, 들고양이라 할 마을고양이가 돌아다녀도 들쥐 또한 곳곳에서 찍찍거리며 잰걸음으로 내빼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지난가을 마을 어르신들 쌀섬을 나를 때 일을 거들며 살펴보니, 쥐가 쏜 쌀섬이 꽤 있기도 했어요.

 

 

 고경원 님이 내놓은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아트북스,2010)를 읽다가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시골고양이를 곳곳에서 만나는데, 시골고양이는 도시고양이와 견주어 사뭇 다릅니다. 고양이라면 다 같은 고양이로 여길 사람이 있을 테지만, 시골고양이는 언제나 흙을 밟으며 살아요. 시골사람이라 하더라도 논일과 밭일을 할 때를 빼고는 흙 밟을 땅이 없지만, 시골고양이는 언제라도 논밭을 가로지릅니다. 햇볕이 따스한 낮에는 논이나 밭 한가운데에서 낮잠을 자거나 해바라기를 하곤 합니다. 흙내음이랑 풀내음을 맡으며 낮잠을 자는 고양이랑, 양철지붕이나 시멘트지붕에서 낮잠을 자는 고양이는 같을 수 없어요. 흙을 밟는 사람이랑 아스팔트를 밟는 사람 또한 같을 수 없어요.

 

 그래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대목이 있어요.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늘 마음에 두었던 꿈이 있다(5쪽).”는 말마따나, 도시에서 살아가건 시골에서 살아가건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어요. 아름답게 꾸는 꿈으로 아름답게 일구는 삶을 즐길 수 있어요. 아름답게 살아갈 꿈을 펼치면서 아름답게 즐길 사진을 나눌 수 있어요.

 


 “버려진 고양이도 사랑받으면 꽃처럼 고운 고양이가 된다. 집고양이나 길고양이나, 건강한 고양이나 다친 고양이나, 모두 소중한 생명이라고, 그림 속의 신이치가 가만히 말을 건네는 것 같다(29쪽).”는 이야기처럼, 도시고양이가 되든 시골고양이가 되든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들고양이도 사랑스럽고 집고양이도 사랑스럽습니다. 고양이도 사랑스럽고 사람도 사랑스럽습니다. 곧, 이 사랑스러움이 사진을 찍는 바탕입니다. 이 사랑스러움이 글을 쓰는 바탕입니다. 이 사랑스러움이 그림을 그리는 바탕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살아갑니다. 사랑으로 일을 합니다. 사랑을 주고받으며 놀이를 즐깁니다. 삶은 사랑으로 북돋우고, 사랑은 삶으로 살찌웁니다. 사랑으로 북돋우는 삶이기에 사진에는 사랑을 고이 담습니다. 사랑은 삶으로 살찌우기에 사진에는 삶을 누린 이야기를 살포시 싣습니다.

 

 고경원 님 사진책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으로 ‘고양이를 만나러 나들이’를 떠난 이야기를 담습니다. 아하,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일본으로 나들이를 가서 일본고양이를 만났구나, 그러면 한국에서도 한국땅 골골샅샅 누비며 한국고양이를 만나는 이야기를 적을 수 있겠지. 일본사람 이와고 미츠아키 님은 ‘일본땅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일본 골골샅샅에서 저마다 다른 꿈과 삶을 먹는 고양이’를 사진으로 보여주었으니,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한국땅 골골샅샅 고양이 삶과 사람 삶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살가이 담는 손길을 머잖아 만날 수 있겠지.

 

 

 “이 오래된 카페에서 할아버지도 료스케도 함께 나이를 먹어 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다(45쪽).”는 마음밭으로 담는 사진은 따스합니다. 따스하게 바라보며 따스하게 껴안으니, 사진이 따스할밖에 없습니다. 남한테 따스한 느낌을 보여주려는 사진이 아니라 스스로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삶이기에 따스함이 묻어나는 사진이에요.

 

 “대도시 도쿄의 모습이 날로 변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야나카에서도 길고양이의 쉼터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오래된 동네와 길고양이의 운명은 그렇게 닮았다. 길고양이가 숨어들 빈틈이 사라진 동네는, 사람에게도 어지간해선 틈을 내주지 않는다(74쪽).”는 생각으로 담는 사진은 슬픕니다. 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 터전에서 슬플밖에 없는 고양이를 바라보기에, 이러한 느낌을 받아들이며 찍는 사진은 슬픕니다. 애써 슬프게 찍으려 하니까 슬픈 사진이 되지 않아요. 슬플밖에 없다고 느끼는 동안 찍는 사진에는 슬픔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대목에서 아쉽습니다. 처음부터 즐겁게 느끼며 누리면 좋았을 텐데, 처음 사진을 찍던 때에는 나 스스로 살아가는 어여쁜 빛을 제대로 붙잡지는 못했어요. 이를테면, “처음 길고양이를 찍을 무렵, 내 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한 건 뒷모습이었다 … 그땐 뒷모습 사진이 ‘실패한 사진’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길고양이 사진이 쌓여 갈수록 뒷모습 사진에 매료된다. 뒷모습을 찍는다는 건, 결국 고양이가 눈길 주는 곳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니까(294쪽).” 하고 밝히거든요. 나중에는 비로소 깨달았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뒷모습을 찍건 앞모습을 찍건 고양이를 찍을 뿐이잖아요. 뒷모습이건 옆모습이건 앞모습이건,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찍잖아요. 뒷모습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니 좋고, 앞모습은 서로 마주보니 좋으며, 옆모습은 서로 나란히 앉으니 좋아요.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찍으니, 흔들리건 초점이 어긋나건 다 좋습니다. 빛이 좀 안 맞든 빛느낌이 영 어설프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넋으로 만난 이야기를 살릴 수 있으면 흐뭇해요. 어디, 자랑하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기에, 내 온 웃음꽃과 눈물꽃을 고스란히 보여주면 기뻐요.

 

 

 덜 예쁜 모습이어도 좋습니다. 좀 어두운 모습이어도 반갑습니다. 이냥저냥 심심해 보이거나 수수해 보이는 모습이어도 고맙습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손길로 담고, 스스로 좋아하는 마음길로 마주하며, 스스로 아끼는 꿈길로 보듬으면 가장 빛나며 해맑은 사진 하나 태어납니다.

 

 마땅한 얘기인데, 고양이 사진이라서 더 돋보이지 않습니다. 고양이 사진이기 때문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더 도드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고양이를 찍은 사진이라 하더라도 마음 깊이 아끼는 사랑이 없다면 하나도 반가울 수 없어요. 고양이를 담지 않은 사진이라 하더라도 마음 깊이 아끼는 사랑이 있다면 ‘고양이를 찾으러 떠나는 길’에 담은 어떠한 사진이든 더없이 애틋합니다. 이리하여, 뒷모습을 찍은 사진일 때에도 ‘고양이가 바라보는 무언가’를 나도 똑같이 바라보지 못하기도 해요. 고양이와 마주하며 사진을 찍어도 고양이 속마음을 못 읽고 예쁘장해 보이는 낯빛만 찍기도 해요. 고양이와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어도 막상 고양이 삶을 어깨동무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좋아할 때에 꿈을 꾸면서 한 장 두 장 신나게 찍는 사진입니다. 좋은 사진감이란 따로 없고, 내 사진감을 굳이 멀리서 찾을 까닭이 없습니다. 사랑을 천천히 이루며 삶을 빛내는 길동무인 사진입니다. 내 둘레 수수하며 투박한 벗님이 좋은 사진벗이면서 삶벗이에요. 나는 내 꿈을 맑게 보살피면서 내 삶을 가꾸는 사진을 즐깁니다. (4345.2.25.흙.ㅎㄲㅅㄱ)


―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 (고경원 글·사진,아트북스 펴냄,2010.1.8./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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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 자연과 나 7
이우만 글.그림 / 마루벌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맑은 물과 바람이 없으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4] 이우만,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마루벌,2010)

 


 창릉내는 경기도 고양시에 있다고 합니다. 창릉내는 다른 여러 냇물과 똑같이 사람들과 푸나무와 들짐승과 멧짐승 모두한테 고운 물줄기 구실을 하며 오래오래 흘렀겠지요. 그러나, 창릉내는 이 나라 거의 모든 냇물과 똑같이 백 해가 채 안 되는 짧은 나날 사이에 콘크리트 옷을 입었어요. 콘크리트 옷을 한 번 입혔다가 벗겼다고 하지만, 처음 모든 목숨들한테 시원한 물줄기로 스며들던 때처럼 구비구비 흐르지는 않습니다. 창릉내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냇물에서 멱을 감거나 빨래를 하지 않아요. 이 냇물을 길어 밥을 하거나 그대로 마시지 못합니다.


.. 하지만 새들을 만나려고 늘 먼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도시에 있는 작은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안의 작은 숲에서도 새들을 만날 수 있거든요 ..  (6쪽)


 사람 몸뚱이는 거의 다 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사람만 물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여우도 곰도 개도 고양이도 물로 이루어졌어요. 풀도 나무도 꽃도 이와 같아요. 복숭아도 능금도 포도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산 목숨은 모두 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에요.

 

 곧, 물은 목숨이라 일컬을 만합니다. 물이 없으면 죽음이라 할 만합니다. 물을 마셔야 살고, 물로 이루어진 다른 목숨을 먹어야 내 목숨을 잇습니다.

 


.. 나는 물총새가 멋스러운 바위나 버드나무 줄기에 앉기를 바랐지만, 앉는 자리는 언제나 물총새 마음대로였어요. 물총새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흉한 콘크리트와 철근 줄기를 못마땅하게 보았을 테지만, 그곳은 이제 물총새와 내가 만나는 사랑방이 되었답니다 ..  (25쪽)


 아주 살짝이라 하더라도 바람을 마시지 않으면 숨이 끊어집니다. 바람을 들이마시며 숨을 잇는 사람이에요. 아주 조금이라 하더라도 몸에서 물기가 빠져나가면 목숨이 버티지 못합니다. 물을 마시고 물로 이루어진 밥을 먹으며 목숨을 건사하는 사람이에요.

 

 사람으로 살아가자면, 먼저 좋은 바람을 마셔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물을 마셔야 합니다. 또한,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좋은 바람과 물과 밥을 얻는 좋은 터에 좋은 보금자리를 지어야 합니다. 좋은 보금자리에서는 좋은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함께할 좋은 짝꿍을 만나 좋은 살림을 지어야 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안 좋을 때에는 삶이 버겁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어긋날 때에는 삶이 비틀거립니다.

 돈은 없어도 돼요. 시원한 바람을 마실 수 있어야 해요. 자가용은 없어도 돼요.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해요. 아파트에서 안 살아도 돼요. 좋은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해요.

 

 어른이 되어 어떤 일자리를 얻는다 할 때에는, 돈을 더 버는 자리로 찾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일자리라 하더라도, 내 몸을 살리고 살찌우는 바람과 물과 밥을 누리는 가장 좋은 마을에서 가장 좋은 보금자리를 꾸릴 만해야 합니다.

 

 흐르는 냇물이 더러워 수도물이나 먹는샘물을 사다 마셔야 한다면, 수도물에까지 정수기를 달아서 써야 한다면, 이렇게 죽은 물을 마시는 사람 목숨은 얼마나 산 목숨이라 할까 궁금합니다. 날마다 부는 바람이 지저분해 재채기가 끊이지 않는다면, 공장 매연과 자동차 배기가스 때문에 지저분해지는 바람으로 잿빛 하늘을 등에 지고 살아야 한다면, 이렇게 죽은 바람을 마시는 사람 숨결은 얼마나 싱그러운 숨결이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물과 바람이 아름답게 빛나지 않는다면 밥 한 그릇 빛나지 못합니다. 물과 바람이 좋지 않다면 밥 한 술 좋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좋은 삶을 누릴 때에 즐겁고, 좋은 사랑을 나눌 때에 기쁘며, 좋은 꿈을 이룰 때에 아름답다면, 자꾸자꾸 커지는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으려는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어야 해요. 도시를 더 크게 키우는 일자리에 얽매이려는 어른들은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을 생각하며 좋은 쪽으로 마음을 바꾸어야 해요.

 

 


.. 세차게 흐르던 창릉천 물살이 쌓아놓은 흙더미에 어느새 풀과 나무가 무성해졌어요. 창릉천의 아기 새들과 풀이 자라는 동안 뚝딱뚝딱 쿵쿵 요란한 소리를 내던 창릉천 옆 공사장에는 산자락을 가릴 만큼 아파트들도 자라났어요. 창릉천과 사이좋은 북한산 봉우리들 사이에 허락도 받지 않고 끼어든 회색빛 거인들이 참 밉살스러워 보이네요 ..  (43쪽)


 이우만 님이 빚은 그림책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마루벌,2010)를 읽습니다. 이우만 님은 창릉내에서 만난 물총새 한 마리 때문에 그림책을 그립니다. 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만, 잣나무도 대나무도 미루나무도 감나무도 아닌 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만 경기도 고양시 한켠 창릉내에서 물총새를 만났기 때문에, 벅찬 가슴으로 그림책 하나 내놓습니다.

 

 아마, 물총새 아닌 딱새를 만났더라도, 딱따구리를 만났더라도, 직박구리를 만났더라도, 아니 흔하디흔하다는 참새를 만났더라도, 그림책 하나 얼마든지 빚을 만합니다. 더 이름나거나 더 예쁘다 하는 새를 만나야 그림책 하나 그리지 않아요. 그림쟁이 가슴으로 왈칵 다가오는 빛나는 사랑을 깨우치는 새 한 마리 만날 수 있으면, 이 새 한 마리를 좋은 삶동무로 여겨 좋은 이야기 담는 그림책 하나를 빚을 만해요.


..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하천가 자갈밭이지만, 꼬마물떼새 가족에게는 더없이 특별한 보금자리예요 ..  (13쪽)

 

 


 다만, 그림쟁이 이우만 님은 창릉내에서 물총새를 만나기는 했으나, 물총새가 나누어 주는 빛을 듬뿍 나누어 받지는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 쓸모없”다고 여기는 냇물이면 어떤가요. 나 스스로 쓸모있다고 여기는 냇물이면 넉넉해요. 나 스스로 사랑스레 돌보는 냇물이면 즐거워요. 나 스스로 아름답게 바라보며 좋은 꿈을 싣는 냇물이면 흐뭇해요.

 

 꼬마물떼새 식구들한테만 더없이 남다르다 할 보금자리가 아닙니다. 이 창릉내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도 더없이 남다르다 할 터예요.

 

 똑같이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창릉내 둘레 아파트하고 자동차 가득한 종로 큰길가 아파트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시멘트로 빽빽히 둘러친 한강이라 하더라도, 이 한강 둘레 아파트랑 깊은 밤에도 불빛 번쩍이는 압구정동 둘레 아파트랑 아주 달라요.

 

 숨을 쉴 수 있는 터에 깃드는 집이어야 합니다. 물을 아끼면서 마시고, 바람을 누리면서 마실 만한 곳에 짓는 집이어야 합니다. 밥 한 그릇에 담은 너른 우주를 헤아립니다. 쌀알 하나마다 깃든 깊은 사랑을 돌아봅니다. 목숨을 먹으며 목숨을 지키는 내 삶인 만큼, 내 목숨이 이 땅에서 얼마나 맑게 빛나도록 하루하루 새 꿈을 짓느냐 하는 대목을 톺아봅니다.

 

 생각하며 살아야 비로소 삶입니다. 참새이든 사람이든, 63빌딩에서 일하거나 지내더라도 밥(또는 모이)을 먹어야 목숨을 잇습니다. 신용카드로 끼니를 잇지 못해요. 밥을 먹어야 목숨을 이어요. 개미이든 사람이든,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일하거나 지내더라도 밥(또는 먹이)를 먹어야 목숨을 잇습니다. 은행계좌로 끼니를 잇지 못해요. 밥을 받아들여야 목숨을 빛내요.

 

 그림책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는 물총새 한살이를 살가이 보여줍니다. 그림책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는 도시 한복판이 되고 만 자연 한자락에서도 고운 숨결을 잇는 들새 한삶을 예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자연 도감’ 틀에서 머뭅니다. 자연 도감 틀을 한 꺼풀 벗고는 ‘자연을 누리는 기쁨’을 들려주거나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웃음꽃을 밝힐 수 있으면 한결 좋았을 텐데 싶어요.

 

 고마운 숨결인 창릉내일 테니까요. 반가운 삶터인 창릉내일 테니까요. 어여쁜 이야기꽃인 창릉내일 테니까요. (4345.2.25.흙.ㅎㄲㅅㄱ)


―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 (이우만 글·그림,마루벌 펴냄,2010.11.11./1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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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2-25 20:50   좋아요 0 | URL
이우만님이 그리신 수채화가 참 고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