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지기 뜨개 책읽기

 


  여러 날을 들여 옷가지 한 벌 뜨는 마음은 어떠할까 헤아립니다. 곰곰이 헤아리기보다는 나 스스로 실과 바늘을 놀려 한 가지라도 뜰 때에 온몸으로 잘 알 수 있겠지요. 밭에서 돌을 고르고 이랑이랑 고랑을 낸 다음 씨앗을 심는 일 또한, 나 스스로 땀을 흘리고 품을 팔며 겨를을 기울일 때에 온몸으로 잘 알 수 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거나 책으로 읽는다 한들 하나도 알 수 없어요.


  설거지를 하든 빨래를 하든 무엇을 하든, 어떤 일이거나 스스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즐겁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하기 힘든 아픈 사람은 그저 마음속으로 헤아릴 뿐입니다. 누군가한테는 길을 걷는 일이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냥 걸을 뿐입니다. 누군가한테는 두 다리로 서는 일조차 꿈만 같습니다. 마음속으로 서고 마음속으로 걷는 사람이 있어요. 누군가한테는 앉는 일마저 꿈이요, 언제쯤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자리 털고 일어날 꿈마저 없는 채 지내기도 하겠지요.


  졸린 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우다 보면 이윽고 팔다리 등허리 모두 저립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리에 예쁘게 누워 잠들면 얼마나 좋으랴 싶지만, 이런 생각 저런 마음이란 퍽 배부른 소리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무릎에 누일 수 있는 나날이란 더없이 좋으며 즐거운 삶이거든요. (4345.4.2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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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5-01 10:41   좋아요 0 | URL
옆지기님이 뜨게질 고수시군요 와우 근사합니다

숲노래 2012-05-01 10:51   좋아요 0 | URL
고수는 아니에요.
이것 뜨는 데에 이레쯤 걸렸거든요... @.@

그냥 즐겁게 뜰 뿐이랍니다~~
 


 지도 책읽기

 


  길을 그린 길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길을 둘러싼 마을과 숲과 들과 내를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길그림을 들여다본대서 길을 둘러싼 마을과 숲과 들과 내가 얼마나 푸르거나 빛나거나 아름다운가까지 환하게 깨우치지는 못합니다. 몸으로 느낄 때하고 마음으로 느낄 때는 다르니까요. 그렇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면, 몸으로 느끼기 앞서 얼마나 아름답거나 좋거나 즐거운가를 한껏 받아들입니다.


  길을 그린 길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흐뭇하지 못하다면, 막상 내 몸으로 부대끼며 바라보더라도 그닥 흐뭇하지 못하기 일쑤라고 느낍니다. 먼저 마음으로 즐겁게 사귀거나 만나지 못했기에, 몸으로 부대낄 때에도 썩 내키지 않거나 그리 반갑지 못해요.


  왜 그러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습니다. 아하, 나는 길그림으로 척 볼 때에 몹시 서늘하거나 메마르거나 차갑다 싶은 도시라 할 때에는, 마음부터 내키지 않아요. 온통 딱딱하게 수평 수직으로 금을 긋거나 갈라 아파트를 세운 동네 길그림을 보면 무시무시하거나 무섭기까지 해요. 구불구불 온갖 골목집 흐드러진 동네 길그림을 보면 아기자기 앙증맞으며 재미나요. 한들산들 여러 시골집 하나둘 깃든 마을 길그림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며 꼭 찾아가서 한갓지게 지내며 천천히 들길이나 고샅을 거닐고 싶어요.


  몸으로 찾아가기 앞서 마음으로 찾아갑니다.


  아, 불현듯 한 가지 옛일 떠오릅니다. 당신 아이들한테 따숩게 말 걸기를 거의 못하던 내 아버지가 들려준 말이었는지, 아니면 가난한 학교 가난한 아이들한테 꿈만큼은 크게 부풀려 꾸라고 하던 가난한 교사가 들려준 말이었는지, 내 열 살 안팎이던 어린 날, 누군가 ‘지도 여행’을 들려주었습니다.  지도를 펼치고는 마음속으로 이 나라 이 마을에 내가 있다고 그리면서 내가 이 나라 이 마을을 걷는다고 꿈을 꾸라 했어요.


  나는 우리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걸어다녔습니다. 다만, 마음속으로. 나는 지구별 숱한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돌아다녔습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나는 우리 네 식구 보금자리를 찾을 때에도 길그림을 쫙 펼치고는 이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걸어다니고, 자전거를 몰았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숲을 생각하고, 마을을 이루는 시골집을 헤아리며, 마을과 하나되는 들판과 멧자락을 그렸습니다. (4345.4.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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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달팽이 바라보다

 


  달팽이를 바라본다. 물기가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달팽이를 바라본다. 달팽이는 아주 느리게 긴다. 아무래도 내 눈길로 바라보니까 느리게 기는 셈일 테지만, 내 넋이 달팽이 되어 달팽이 몸으로 헤아리자면 느리거나 빠른 기어가기가 아닌, 내 삶에 걸맞게 움직이는 나날이 될 테지.


  아이가 옆구리에 책을 끼고는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무얼 할까. 아이가 한참 이러더니 나한테 묻는다. “이게 뭐야?” “어디?” “이거.” “이게 뭔데?” “여기.” 나도 한참 찾는다. 아이가 무얼 가리키는가 알 수 없다 싶을 무렵, 비로소 자그마한 달팽이를 알아본다. 나도 아이처럼 허리를 폭 숙이고 바라보았으면 금세 알아보았을까. 먼저 허리를 폭 숙이지 않고 선 채로 어른 키높이로 두리번두리번 할 때에는 알아볼 수 없을까.


  달팽이는 몸을 옹크린다. 누군가 저를 쳐다보는 줄 아는구나 싶다. 땡볕을 고스란히 받는 자리에 있네. 이 길을 가로지르다가 그만 아이 눈에 걸린 듯하다. 우리가 두 다리로 천천히 걸아다니기에 달팽이를 알아본달 수 있지만, 두 다리로 걸어다니더라도 앞만 바라본다면 달팽이를 픽 밟아 죽였어도 못 느낄 수 있겠지. 자동차를 탄 사람은 달팽이를 볼 일도 없지만, 자전거로 찻길만 싱싱 내달릴 때에도 달팽이를 볼 일이 없다. 몸을 낮출 뿐 아니라, 삶을 자연하고 맞출 때에, 비로소 달팽이가 제 몸뚱이를 우리한테 드러내어 ‘이보라구, 나도 좀 바라보라구, 나하고 동무하며 천천히 삶을 즐기자구.’ 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느낀다.


  아이는 이제 달린다. 책을 옆구리에 낀 채 달린다. 마치, 내가 신문배달 일을 하며 먹고살던 때 모습과 같다. 내가 중학생 때에 신문배달을 하던 모습이 이와 같았을까. 내가 신문배달 일을 하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준 사람은 없으나, 우리 아이를 바라보다가 이 아이가 살아가는 모습이 온통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하나하나 아로새겨지듯 드러나 보인다고 깨닫는다. 착하고 옳으며 예쁘게 살아가며, 아이도 착하고 옳으며 예쁜 꿈을 꾸도록 보듬자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4345.4.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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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4-27 13:23   좋아요 0 | URL
걷기의 좋은 점을 저는 체험으로 알고 있어요. 요즘 매일 한 시간씩 걸어요. 일주일에 여섯 번 정도로요. 차를 탔다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고, 차를 탔다면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게 되지요. 계절의 날씨와도 직접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걷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해요. 사색의 시간으로도 좋아요.

걷는 운동을 한 지가 7년 넘었는데, 이젠 중독의 수준이에요. 안 걸으면 걷고 싶어지지요. 운동을 따로 하더라도 걷기는 필수인 것 같아요. 건강에 제일 좋대요. 걸으면서 집집마다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밌어요. ㅋ

숲노래 2012-04-27 15:06   좋아요 0 | URL
오오, 요즈음 걸어다니며 마음을 살찌우기 아주 좋겠어요.
좋은 날은 좋은 바람을 느끼고,
궂은 날은 궂은 비바람을 느끼며
걷는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리시는군요!
 


 책들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4.26.

 


  책을 장만한다. 책을 읽는다. 책꽂이를 장만한다. 책을 꽂는다. 글을 쓴다. 책을 묶는다. 책을 내놓는다. 사람들은 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헤아려 본다.


  도서관 들머리 자리에 내 책들을 꽂아 본다. 내가 읽던 책을 먼저 꽂고, 내가 쓴 책은 나중에 상자에서 끌른다. 어쩌면, 나는 내 책을 살짝 푸대접한 셈이었을까. 나부터 내 책을 아껴야 할 노릇일까.
  튼튼하고 커다란 책꽂이 넷을 들이니 퍽 보기 좋으며 야무지구나 싶다. 즐겁다. 책을 만지는 손이 즐겁고, 책내음이 배는 손이 즐겁다. 이 손으로 낮에는 흙을 만지고, 저녁에는 책을 만지며, 온 하루 살붙이들 살결을 만질 때에 더없이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좋은 삶을 생각하자. 아니, 내가 즐길 삶을 생각하자. 아이들과 즐겁게 누릴 삶을 생각하자. 옆지기와 아름다이 이룰 보금자리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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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산에서 바라보는 도서관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4.22.

 


  네 식구 뒷산을 오른다. 뒷산에서 멧풀을 뜯어먹고 놀다가 마을 논밭 사잇길을 천천히 걸어 도서관에 들른다. 뒷산에서 도서관을 바라보니 참 예쁘다. 예전에 이곳이 초등학교였을 적에는 훨씬 예뻤겠지. 그무렵 이 시골마을 복닥거리는 아이들 노랫소리가 가득 울렸겠지. 그러나 앞으로 새롭게 아이들과 어른들 노랫소리가 알맞게 울릴 수 있으면 넉넉하리라 생각한다. 학교도, 도서관도, 집도, 공공기관도, 우체국도, 회사도, 모든모든 삶터와 집터와 일터는 이렇게 어여쁜 숲과 들과 멧자락 사이에 알맞춤하게 자리잡아야 즐거울 수 있겠다고 느낀다.


  커다란 책꽂이 하나를 또 옮긴다. 세 차례째 옮기는 커다란 책꽂이는 퍽 수월하게 붙인다. 그래도 이 커다란 책꽂이 하나를 옮기자면 마치 밥 한 그릇 먹는 기운이 들어가는구나 싶다. 무게도 덩치도 대단하다. 속 빈 나뭇조각 아닌 통나무를 잘라서 마련한 책꽂이는 무게도 덩치도 대단한데, 이만 한 책꽂이가 되어야 백 해이든 이백 해이든 고이 이어갈 테지.


  오늘 만화책 자리는 얼추 새로 갈무리했다. 다른 자리도 찬찬히 갈무리하자면, 앞으로 몇 달쯤 더 있어야 할까. 차근차근 갈무리하자. 한두 해 살아갈 마을이 아니니, 오래오래 지내기 좋도록 천천히 사랑하고 아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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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4-27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 자연과 책, 좋은 건 다 있네요. 사랑스러운 아이까지...
삶이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숲노래 2012-04-27 15:06   좋아요 0 | URL
음.. 그러네요~
오호호~ 다 있어요, 다 있어!

하늘바람 2012-04-28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도서관에는 누가 다녀가나요?
가고 싶네요
개인도서관 넘 근사합니다

숲노래 2012-04-28 15:05   좋아요 0 | URL
아직 책 갈무리가 한참 남아서 공개하지는 않아요.
올여름은 되어야 비로소 어느 만큼 갈무리를 마치고
공개를 하겠지요~ ^^

분꽃 2012-04-2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아래쪽칸에는 책을 안 꽂는게 어떨까요?? 먼지도 많이 타고, 어쩌다보면 발길에 채이기도 하고요. 집안이 아니라서 많이 망가질 듯 해요. 제 생각에는요...^^;;;

숲노래 2012-04-30 02:29   좋아요 0 | URL
아직 바닥을 어찌하지 못하지만, 맨발로 다니도록 하려고요.
그래서 맨 밑바닥에도 책을 꽂으려 해요~ ^^

나중에 바닥 청소하려면 애먹겠지요 @.@

아무래도 대형청소기가 있어야 할까 싶기도 해요... 이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