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에 책을 끼고 달팽이 바라보다

 


  달팽이를 바라본다. 물기가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달팽이를 바라본다. 달팽이는 아주 느리게 긴다. 아무래도 내 눈길로 바라보니까 느리게 기는 셈일 테지만, 내 넋이 달팽이 되어 달팽이 몸으로 헤아리자면 느리거나 빠른 기어가기가 아닌, 내 삶에 걸맞게 움직이는 나날이 될 테지.


  아이가 옆구리에 책을 끼고는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무얼 할까. 아이가 한참 이러더니 나한테 묻는다. “이게 뭐야?” “어디?” “이거.” “이게 뭔데?” “여기.” 나도 한참 찾는다. 아이가 무얼 가리키는가 알 수 없다 싶을 무렵, 비로소 자그마한 달팽이를 알아본다. 나도 아이처럼 허리를 폭 숙이고 바라보았으면 금세 알아보았을까. 먼저 허리를 폭 숙이지 않고 선 채로 어른 키높이로 두리번두리번 할 때에는 알아볼 수 없을까.


  달팽이는 몸을 옹크린다. 누군가 저를 쳐다보는 줄 아는구나 싶다. 땡볕을 고스란히 받는 자리에 있네. 이 길을 가로지르다가 그만 아이 눈에 걸린 듯하다. 우리가 두 다리로 천천히 걸아다니기에 달팽이를 알아본달 수 있지만, 두 다리로 걸어다니더라도 앞만 바라본다면 달팽이를 픽 밟아 죽였어도 못 느낄 수 있겠지. 자동차를 탄 사람은 달팽이를 볼 일도 없지만, 자전거로 찻길만 싱싱 내달릴 때에도 달팽이를 볼 일이 없다. 몸을 낮출 뿐 아니라, 삶을 자연하고 맞출 때에, 비로소 달팽이가 제 몸뚱이를 우리한테 드러내어 ‘이보라구, 나도 좀 바라보라구, 나하고 동무하며 천천히 삶을 즐기자구.’ 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느낀다.


  아이는 이제 달린다. 책을 옆구리에 낀 채 달린다. 마치, 내가 신문배달 일을 하며 먹고살던 때 모습과 같다. 내가 중학생 때에 신문배달을 하던 모습이 이와 같았을까. 내가 신문배달 일을 하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준 사람은 없으나, 우리 아이를 바라보다가 이 아이가 살아가는 모습이 온통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하나하나 아로새겨지듯 드러나 보인다고 깨닫는다. 착하고 옳으며 예쁘게 살아가며, 아이도 착하고 옳으며 예쁜 꿈을 꾸도록 보듬자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4345.4.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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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4-27 13:23   좋아요 0 | URL
걷기의 좋은 점을 저는 체험으로 알고 있어요. 요즘 매일 한 시간씩 걸어요. 일주일에 여섯 번 정도로요. 차를 탔다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고, 차를 탔다면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게 되지요. 계절의 날씨와도 직접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걷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해요. 사색의 시간으로도 좋아요.

걷는 운동을 한 지가 7년 넘었는데, 이젠 중독의 수준이에요. 안 걸으면 걷고 싶어지지요. 운동을 따로 하더라도 걷기는 필수인 것 같아요. 건강에 제일 좋대요. 걸으면서 집집마다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밌어요. ㅋ

숲노래 2012-04-27 15:06   좋아요 0 | URL
오오, 요즈음 걸어다니며 마음을 살찌우기 아주 좋겠어요.
좋은 날은 좋은 바람을 느끼고,
궂은 날은 궂은 비바람을 느끼며
걷는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리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