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책읽기

 


  길을 그린 길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길을 둘러싼 마을과 숲과 들과 내를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길그림을 들여다본대서 길을 둘러싼 마을과 숲과 들과 내가 얼마나 푸르거나 빛나거나 아름다운가까지 환하게 깨우치지는 못합니다. 몸으로 느낄 때하고 마음으로 느낄 때는 다르니까요. 그렇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면, 몸으로 느끼기 앞서 얼마나 아름답거나 좋거나 즐거운가를 한껏 받아들입니다.


  길을 그린 길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흐뭇하지 못하다면, 막상 내 몸으로 부대끼며 바라보더라도 그닥 흐뭇하지 못하기 일쑤라고 느낍니다. 먼저 마음으로 즐겁게 사귀거나 만나지 못했기에, 몸으로 부대낄 때에도 썩 내키지 않거나 그리 반갑지 못해요.


  왜 그러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습니다. 아하, 나는 길그림으로 척 볼 때에 몹시 서늘하거나 메마르거나 차갑다 싶은 도시라 할 때에는, 마음부터 내키지 않아요. 온통 딱딱하게 수평 수직으로 금을 긋거나 갈라 아파트를 세운 동네 길그림을 보면 무시무시하거나 무섭기까지 해요. 구불구불 온갖 골목집 흐드러진 동네 길그림을 보면 아기자기 앙증맞으며 재미나요. 한들산들 여러 시골집 하나둘 깃든 마을 길그림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며 꼭 찾아가서 한갓지게 지내며 천천히 들길이나 고샅을 거닐고 싶어요.


  몸으로 찾아가기 앞서 마음으로 찾아갑니다.


  아, 불현듯 한 가지 옛일 떠오릅니다. 당신 아이들한테 따숩게 말 걸기를 거의 못하던 내 아버지가 들려준 말이었는지, 아니면 가난한 학교 가난한 아이들한테 꿈만큼은 크게 부풀려 꾸라고 하던 가난한 교사가 들려준 말이었는지, 내 열 살 안팎이던 어린 날, 누군가 ‘지도 여행’을 들려주었습니다.  지도를 펼치고는 마음속으로 이 나라 이 마을에 내가 있다고 그리면서 내가 이 나라 이 마을을 걷는다고 꿈을 꾸라 했어요.


  나는 우리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걸어다녔습니다. 다만, 마음속으로. 나는 지구별 숱한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돌아다녔습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나는 우리 네 식구 보금자리를 찾을 때에도 길그림을 쫙 펼치고는 이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걸어다니고, 자전거를 몰았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숲을 생각하고, 마을을 이루는 시골집을 헤아리며, 마을과 하나되는 들판과 멧자락을 그렸습니다. (4345.4.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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