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놀틈 (2023.6.9.)

― 부산 〈오래서점〉



  모든 길은 ‘첫걸음 + 두걸음’이라고 느낍니다. 왼발이건 오른발이건 첫발을 내딛고서, 다른 발로 새발을 뻗습니다. 두 발을 나란히 디디면서 새길을 나아갑니다. 외발로도 걸을 수 있을 테지만, 왼발·오른발을 나란히 옮기지 않을 적에는 기우뚱하거나 흔들리거나 쓰러지거나 자빠지기 좋습니다.


  새는 왼날개·오른날개를 나란히 펼쳐서 바람을 탑니다. 나비도 두 날개를 팔랑여요. 그런데 우리는 ‘둘’이라는 대목을 자꾸 놓치거나 멀리하거나 싫어하기까지 합니다. 내가 왼쪽에 서면 너는 오른쪽에 섭니다. ‘나’를 마주하는 쪽이기에 ‘너’이거든요. 내가 오른쪽을 걸으면 너는 왼쪽을 걷지요. 마주보는 둘은 ‘선자리’가 달라 보일 뿐, 언제나 같습니다.


  내 마음대로 네가 따라와야 하지 않고, 네 뜻대로 내가 따라가야 하지 않아요. 다만, 둘은 이야기를 할 적에 즐겁습니다. 우리말 ‘이야기 = 말을 잇는 길 = 주고받는·나누는 말’을 나타냅니다. 혼자만 떠들면 이야기일 수 없이 혼잣말입니다. 나도 말하고 너도 말하면서 생각을 이어가는 길을 살리려 하기에 이야기입니다.


  어른이란 사람이 있으려면 반드시 아이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라는 숨결이 빛나려면 꼭 어른이란 숨빛이 철들어야 합니다. 어른은 아이 곁에 있기에 슬기로이 살림을 짓고, 아이는 어른하고 함께살기에 즐겁게 사랑을 노래합니다.


  부산 〈오래서점〉으로 마실을 갑니다. 부산 사상나루에 내려 길을 어림하자니, 338버스를 타고서 하단나루로 건너갈 만하군요. 하단나루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면 〈오래서점〉 가까이에 내립니다. 책집이 깃든 곳은 새로 터를 닦고서 높이높이 잿집을 올리는 마을이지 싶어요. ‘새마을’에 ‘오래책집’이란 새삼스레 어울립니다. ‘새로 올리는 마을’이니 ‘오래 헤아리는 마음’을 심을 만해요.


  서울(도시)에 깃들어 일자리를 찾건, 시골에 스며들어 논밭을 품든, 우리는 먼저 놀틈을 누릴 노릇입니다. 적어도 세 해를 실컷 놀거나, 열 해쯤 느슨히 놀아 본 사람들은 오래오래 아름다이 일할 만해요. ‘놀틈’을 모르는 사람은 이웃하고 일할 적에 ‘쉴틈’을 내지 않게 마련이라, 서로 지치고 고단해요.


  놀틈을 누리는 어른이기에 아이들도 곁에서 함께 느긋이 놀면서 풀꽃나무랑 해바람비랑 들숲바다를 품으면서 마음을 가꿀 수 있어요. 놀틈을 누리는 어른이라면 이 삶이란 날마다 새롭게 배우면서 꿈을 사랑스레 씨앗으로 마음에 묻어서 서로서로 생각을 밝혀 활짝 웃음짓는 ‘별잔치’인 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놀려고 이 별에 태어났습니다. 느긋이 잘 논 사람들이 사랑을 맺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ㅅㄴㄹ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구로카와 유지/안선주 옮김, 글항아리, 2022.3.11.)

《나의 원피스》(니시마키 가야코/손정원 옮김, 한국몬테소리, 2001.1.5.)

《양치기 바바주》(안네트 티종·탈루스 테일러 글·그림/글샘터 옮김, 빛샘, 2012.1.20.)

《바바브라이트의 시계》(안네트 티종·탈루스 테일러 글·그림/글샘터 옮김, 빛샘, 2012.1.20.)

《바바보의 멋진 항아리》(안네트 티종·탈루스 테일러 글·그림/글샘터 옮김, 빛샘, 2012.1.20.)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김종철, 개마고원, 1999.4.5.)

《李庸岳詩全集》(이용악, 창작과비평사, 1988.6.15.)

《달넘세》(신경림, 창작과비평사, 1985.10.10.)

《조국의 하나다》(김남주, 실천문학사, 1987.11.15.첫/1993.12.15.개정판)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윌리엄 스테이그/박향주 옮김, 한국프뢰벨주식회사, 1994.9.첫/2022.4.2.중판)

《우리 정말 친한 단짝 친구!》(로렌 차일드/문상수 옮김, 국민서관, 2010.10.25.)

《걱정 마, 정말 정말 조심할게!》(로렌 차일드/김난령 옮김, 국민서관, 2009.3.20.)

《나 정말 아프단 말이야》(로렌 차일드/김난령 옮김, 국민서관, 2008.2.25.)

《내가 이겼어, 아냐 내가 이겼어!》(로렌 차일드/김난령 옮김, 국민서관, 2008.11.25.)

《진짜야, 내가 안 그랬어》(로렌 차일드/김난령 옮김, 국민서관, 2007.3.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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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쓸 틈 (2023.6.9.)

― 부산 〈비온후〉



  어릴 적을 돌아보면 ‘어른 아닌 나이든 사람들 틈’에서 꼼짝을 못 하면서 휘둘리거나 굴렀어요. “저 사람들은 입으로는 스스로 ‘어른’이라 말을 하지만, 도무지 어른일 수 없잖아?” 하고 혼잣말을 했어요. 어린이가 들려주는 말을 가로막거나 내치거나 끊을 뿐 아니라 윽박지르고 때리고 밟는 ‘나이만 먹은 몸뚱이’는 그저 ‘늙은이’라고 느꼈습니다.


  살을 쓰다듬거나 섞는다면 ‘쓰다듬’이나 ‘섞음’입니다. 쓰다듬이나 섞음은 ‘사랑’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른 아닌 늙은이’인 분들은 으레 “사랑의 매”라는 말을 내세워 어린이를 짓뭉갰습니다. 그들이 참으로 ‘사랑’을 안다면 “사랑매”라는 허울을 안 세우겠지요. 사랑은 주먹질도 발길질도 따귀질도 아니니까요. 사랑은 오직 사랑이요, 따스하고 넉넉하게 품는 숨빛이요 살림빛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시(詩)’는 중국에서 들여온 ‘수글(한자 문학)’입니다. ‘문학(文學)’은 일본에서 들어온 ‘수글(문학 권력)’이고요. 이제부터 우리 눈과 마음과 손과 숨결로 처음부터 하나씩 새롭게 바라보아야지 싶어요. 우리는 ‘말’을 하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하면서 ‘사람’으로서 ‘참’다이 ‘숲’을 품고 나누는 길을 걸을 노릇이지 싶습니다.


  부산 명지에 있는 〈오래서점〉에서 망미에 있는 〈비온후〉로 건너옵니다. 부산도 무척 큰 고장입니다. 새하늬마높으로 넓어요. 이 넓은 고장에 깃들어 삶을 꾸리고 살림을 펴는 이웃님이 대단히 많습니다. 길바닥을 그득 메운 쇳덩이를 둘러보다가 생각합니다. 쇳덩이를 몰거나 탈 적에 ‘노래할 틈’이 있을까요?


  잿집(아파트)은 안 나쁩니다만, 잿집에서 하루를 보내는 분들은 흥얼흥얼 콧노래에 춤사위에 어깨동무에 이야기꽃을 지피는가요? 글 한 자락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모든 글은 ‘마음을 그린 말을 그림으로 담은 무늬’입니다. 훌륭하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고약한 말은 없습니다. 말은 마음을 담을 뿐이에요. 마음이 고약하거나 괘씸할 수는 있되, 말은 그저 말이에요. 말은 마음을 고스란히 비춥니다.


  예부터 쓴풀이 몸에 이바지한다고 했습니다. ‘쓴말’하고 ‘쓴글’이야말로 마음을 씻고 달래면서 사랑으로 보듬어서 새롭게 피우는 길동무 구실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듣기 좋게 하는 말’은 한자말로 ‘미사여구·감언이설’이라 하지요. ‘립서비스·레토릭’은 노래로 피어나지 않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너무 쓰다고 여길는지 몰라도, 우리는 쓰디쓴 풀과 말과 글을 넉넉히 받아들이면서 처음부터 하나씩 생각을 짓고, 하루를 그리고, 사랑을 일구어야 비로소 사람으로 서리라 봅니다.


ㅅㄴㄹ


《부산에 살지만》(박훈하, 비온후, 2022.2.28.)

《이름 없는 고양이》(다케시타 후미코 글·마치다 나오코 그림/고향옥 그림, 살림, 2020.4.22.)

《아버지의 레시피》(나카가와 히데코/박정임 옮김, 이봄, 2020.11.23.첫/2021.2.26.3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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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눈빛 (2022.12.15.)

― 순천 〈책방사진관〉



  하루를 여는 일이란, 어제를 털고서 오늘을 새로 걸어가는 몸짓입니다. 어제까지 아쉽거나 못미덥거나 쓸쓸한 자취를 고이 내려놓고서 이제부터 새마음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잃은 열 가지가 있으면, 이 열 가지를 새로 추슬러서 처음부터 하나하나 지을 수 있어요. 하루하루 익힌 숨결을 되새기면서 천천히 걷습니다.


  구름빛을 살피고 햇살을 돌아봅니다. 바보하고 헤어지느냐 안 헤어지느냐를 따지면 스스로 바보라는 마음으로 갑니다.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려 하느냐를 바라보면, 이 마음에 담는 숨결로 즐거울 길을 지어요. ‘짓는이’ 또는 ‘지음이’인 사람은 글만 짓거나 쓰지 않습니다. 하루를 짓고 삶을 짓고 꿈을 지어서 차근차근 생각을 지어가는 길에 오늘을 짓습니다. 이러다가 어느새 이야기를 짓고, 이 이야기는 고스란히 글·그림으로 피어납니다.


  문득 순천으로 건너갑니다. 이모저모 저잣마실을 하고서 〈책방사진관〉으로 가는 버스를 탑니다. 작은아이하고 바깥마실을 하며 여러 모습을 지켜봅니다. 우리 눈에는 둘레에서 흘러가는 모습을 담을 수 있고, 어느 곳을 가더라도 꿈씨앗을 심는 발걸음일 수 있습니다.


  그림책을 넘기다가, 글책을 훑다가, 적잖은 ‘어른 글꾼’은 아이들한테 ‘꿈씨·생각씨·사랑씨·숲씨’를 물려주려는 줄거리보다는 ‘부스러기(인문지식)’를 외우도록 부추기는 줄거리로 책을 여민다고 느낍니다. 이른바 ‘사회생활’을 하자면 ‘인문지식’을 갖추어야겠으나, ‘삶’을 누리고 ‘살림’을 가꾸는 길에는 ‘인문지식’이 아닌 ‘마음씨’를 품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도덕·예의·규칙’으로는 아름나라로 나아가지 않아요. ‘사랑으로 품는 마음씨’일 적에 아름누리로 걸어갑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보고 느끼는 대로 말을 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삐뚤빼뚤 쓰지 않고, 늘 아이답게 쓰고 그립니다. 우리는 아이들 손길에서 어떤 마음을 느끼거나 읽을까요? 잘하기(전문가)로 나아가야 할 아이가 아니라면, 아이 발걸음과 손놀림을 수수하게 맞아들여서 삶이야기·살림이야기·사랑이야기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십이월이란, 한 해가 저무는 끝이라기보다 새해를 여는 첫발이라고 느낍니다. 꼬마도 꽃도 끝에 서기에 새길로 갑니다. 섣달은 ‘서면서(멈춰서면서), 서는(일어서는)’ 걸음마입니다. 하얀눈빛이란 눈송이로 차곡차곡 그리는 들빛이면서, 나무마다 찬찬히 웅크리는 잎눈이요 꽃눈입니다. 서로 바라보는 따사로운 눈망울 빛결도 언제나 하얀눈빛일 테고요.


ㅅㄴㄹ


《나쁜 말 사전》(박효미 글·김재희 그림, 사계절, 2022.2.25.첫/2022.6.30.3벌)

《화 괴물이 나타났어!》(미레이유 달랑세/파비앙 옮김, 북뱅크, 2022.8.5.)

《길동무 꼭두》(김하루 글·김동성 그림, 북뱅크, 2022.11.30.)

《악당이 된 녀석들》(정설아 글·박지애 그림·사자양 밑틀, 다른매듭, 2022.1.27.)

《사람 살려, 감염병 꼼짝 마!》(지태선 글·그림, 사자양 밑틀, 다른매듭, 2021.11.8.)

《행복의 정원》(김소연 글·채복기 그림·사자양 밑틀, 다른매듭, 2021.11.30.)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숲하루 글, 스토리닷, 2022.12.13.)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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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을 (2023.4.28.)

― 인천 〈그루터기〉



  한봄이 깊어 늦봄으로 접어드는 즈음에는 덩굴풀과 덩굴나무 잎이 반짝반짝 새로 퍼지며 고와요. 덩굴잎도 나물입니다. 갓 돋으면 그대로 훑고, 살짝 길게 뻗으면 데쳐서 누립니다. 둘레에서는 두릅싹을 많이 즐기는 듯싶은데, 찔레싹도 더없이 빛나는 봄나물이에요. 갓 돋는 감잎도 느티잎도 싱그러이 나물입니다.


  우리가 못 먹을 풀은 없습니다. 조금 센 풀은 있을 테지만, 세면 센 대로 여리면 여린 대로 이바지하는 풀이에요. ‘풀어’ 주기에 풀이요, 온누리를 ‘품’기에 풀입니다. 봄날 풀밭에 드러누우면 봄빛이 우리를 품는 숨결을 누릴 만합니다. 예부터 모든 아이어른은 맨발로 걷고 맨손으로 쥐면서 온몸을 푸르게 물들였어요.


  다만 임금과 나리와 벼슬아치는 온몸을 치렁치렁 감싸고 해를 등진 채 감투를 썼어요. 맨발도 맨손도 아니던 이들은 ‘먹물’이고, 우리가 읽는 ‘역사책’에 이름이 남을는지 모르나, 이들한테서는 ‘삶·살림·사랑’이 없어요.


  인천 그림책집  〈그루터기〉로 걸어가는 길에 인천시청 앞을 지나갑니다. 시청 둘레 길나무에 걸개천이 잔뜩 달립니다. 왜 나무줄기에 걸개천을 맬까요? ‘플라스틱끈’으로 감긴 나무는 앓습니다. 아무리 뜻있는 글을 걸개천에 담더라도, 나무줄기에 친친 감는다면 부질없어요. 살림이 아닌 죽음글 같습니다.


  하루를 여는 길이란, 언제나 햇빛이요 바람결입니다. 시골도 서울도 해가 뜨고 구름이 흐르고 비가 내리기에 누구나 숨쉴 수 있어요. 해바람비는 풀꽃나무를 푸르게 물들이고, 우리는 맨몸으로 풀내음을 머금으면서 앙금을 풀어 서로서로 품는 사랑을 숲빛으로 나눌 만합니다. 그림책이라면 모름지기 숲살림을 그려야지 싶습니다. 노래꽃(시)이라면 언제나 숲바람을 옮겨야지 싶습니다.


  올해는 봄비가 잦으면서 하늘이 무척 맑아요. 지난 열 몇 해 사이에 3∼5월은 이른더위였어요. 올해는 새롭게 나아가는 하늘길을 밝히는 봄비가 적셔 줍니다. 그러니까, ‘초록·녹색’이 아닌 ‘풀빛’을 말할 노릇입니다. 하늘빛인 ‘파랑’이라는 빛깔은 ‘늘사랑’을 밝히는 숨결이라는 대목을 아이들하고 나눠야지 싶어요. 타오르는 빛깔인 ‘빨강’은 불길(열정·분노)이기에 살림하고는 멀어요.


  그림책에 담는 글이 노래(시)입니다. 노래는 신나게 놀 적에 부릅니다. 놀이는 살림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이 불러요. 어버이는 서로 사랑으로 마주하며 보금자리를 일구지요. 늦는 글이나 길은 없습니다. 모든 글이나 길은 제때에 태어나요. 이 글 한 자락은 이웃님한테 바람길을 타고서 사뿐히 내려앉는 봄글이 되고, 마음길을 열어 줄 테지요. 온누리 우리 아이들이 실컷 놀고 노래할 수 있기를 바라요.


ㅅㄴㄹ


《작은 임금님》(미우라 타로/황진희 옮김, 비룡소, 2023.1.26.)

《야마시타는 말하지 않아》(야마시타 겐지 글·나카다 이쿠미 그림/김보나 옮김, 청어람미디어, 2023.3.18.)

《헤이즐의 봄 여름 가을 겨울》(피비 월/신형건 옮김, 보물창고, 202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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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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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히 (2023.1.26.)

― 순천 〈책방 심다〉



  아이들 옷가지를 장만하려고 순천에 나온 길입니다. 〈책마실〉에 먼저 들르고서 〈책방 심다〉로 찾아가는데, 들목에 종이 한 자락이 붙습니다. 길게 쉬는 줄 알았으나 슬쩍 들렀는데 아직 새로 열려면 멀었군요(그러나 6월에 이르러 새롭게 열었습니다).


  고흥에서 순천으로 건너오는 시외버스에서 쓴 노래꽃이며 주섬주섬 글월집(편지함)에 얹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책집 앞 ‘필름뽑기’를 물끄러미 들여다봅니다. 저는 필름찰칵이를 쓰던 무렵에 ‘일포드’를 썼습니다. 바탕은 ‘감도 400’이되 ‘1600 띄움’을 할 수 있는 필름이었어요. 그런데 일포드 필름을 쓰는 사람이 드물고 다들 ‘티맥스’를 쓰는 터라, 일포드 필름을 장만하려면 미리 말을 넣어 서른이나 쉰쯤 받았습니다. 예전에는 부쳐 주지 않았으니 필름집에 꼬박꼬박 찾아가서 값을 치르고서 받았어요. 얼추 이레마다 새로 샀습니다.


  남다르게 하려면 무엇이든 어렵다지만, 나답게(나대로) 하려면 안 어렵지 싶어요. 찰칵이를 손에 쥘 적에도 ‘니콘·미놀타·캐논’ 세 가지를 다 다뤄 보고서 제 눈과 빛에 맞는, 여기에 주머니에 맞는 아이로 갈무리했습니다. 중형·대형·파노라마를 쓰고픈 마음도 있었으나, 주머니에 맞추어 더 뻗지 않았습니다.


  저는 책집마실을 하면서 책집만 찍었기에, 필름값보다 책값을 더 쓰는 살림이었고, 책을 미루며 찰칵이를 살 수 없는 터라, 마지막으로 캐논찰칵이가 숨을 거둔 날, 어쩌나 하고 눈물지으니, 오랜 벗님이 “우리 아버지가 쓰던 찰칵이를 빌려줄 테니까 받으라”고 하면서 니콘찰칵이를 물려주었어요. 캐논을 쓰다가 니콘을 쓰니 허벌나게 잘 받고 잘 나오더군요. 책집을 빛꽃(사진)으로 담을 적에 필름으로는, “니콘 + 일포드 400을 1600으로 높인 결”이 가장 어울렸다면, 디지털로는 “캐논 100디 + 자연광”이 가장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빛결은 ‘-1 또는 -1.5’로 조금 어둡게 하고, 디지털은 되도록 ‘감도 100’을 지키면서 셔터값을 낮춥니다.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책을 읽다가 덮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서 지난날을 되새기고, 오늘 걷는 하루를 돌아봅니다. 그동안 달린 길은 무엇이었는지 곱씹습니다. 바쁠 적에는 그저 달리기만 해도 즐겁더군요. 바쁘게 달리면서 모든 앙금을 훌훌 털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오늘은 늘 아이들한테 맞추어 살아가는데,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맞추는 길이란 ‘어버이다움’이지 싶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서 사랑을 배워서 깨닫고, 아이는 사랑을 깨달은 어버이한테서 살림을 물려받습니다. 포근히 밤빛을 맞아들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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