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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홀림길에서>(텍스트,2009)에 실은 글. 

 

91. 까마귀의 죽음 (김석범 씀,김석희 옮김/소나무,1988)

 국민학교를 다닌 여섯 해에 걸쳐 학교에 갖다 내야 하는 돈이 참으로 많았다. 무어를 짓는다며 돈을 모으고, 교실에 ‘시청각교육’을 하겠다며 텔레비전을 놓는다고 할 때에도 돈을 모았다. 대놓고 돈을 모으는 일이 너무 잦아 때로는 ‘국화 화분을 사라’고 우리들한테 몇 그릇씩 몫을 나누어 주었고, 폐품수집은 학급과 학년마다 끝없이 싸움을 붙여 서로 옆 반 빈병과 신문지와 책을 훔쳐 오게까지 내몰았다. 다달이 방위성금을 내고 저축통장에 돈을 내라 했으며 전투기성금이 있었다. 동무들 가운데에는 ‘불량식품’이라는 문방구 먹을거리를 사먹느라 돈이 없는 녀석이 있기도 했지만, 주마다 한두 가지씩 있는 모금과 성금에 돈을 내기가 빠듯한 살림인 집안이 훨씬 많았다. 너무나 많은 성금이요 모금이었기 때문에 한 번에 500원을 내는 동무란 드물었다. 어쩌다 한둘이 500원을 성금으로 내거나 저축으로 내면 “우와!” 하면서 놀라 했고, 1000원을 내면 “이야!” 하며 기가 죽었으며, 부잣집 동무가 5천 원이나 1만 원을 내기까지 하면 끽소리를 하지 못했다. 명절을 치러 친척 어른한테서 돈을 얻은 다음에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저축에 내기도 했는데, 이렇게 돈을 낼라치면 “바보야, 곧 또 돈을 내야 하는데, 500원씩 나눠서 내면 두 번을 채우고 300원씩 나눠도 세 번이 되는데!” 하면서 옆 짝꿍이 나무랐다. 그런데 이런 성금과 모금은 담임교사한테 매를 맞으면서 겨우겨우 메꾸고 채우고 했지만, 1986∼87년에 냈던 ‘평화의 댐 모금’은 죽을맛이었다. 나와 동무들은 텔레비전 소식을 들으며 홀랑 넘어가 “엄마 엄마 우리가 돈을 안 내어 평화의댐을 못 지으면 다 물에 잠겨 버린대요!” 하면서 졸라댔다. 그렇지만, 다른 성금은 ‘기본 300원 넘게’ 내도록 했고 전투기성금도 500원 넘게 내도록 했으나, 평화의댐 성금은 5천 원이었다. 5천 원이라니! 바나나 한 송이 아닌 한 가닥이 500원을 하던 때요, 짜장면 한 그릇이 150∼200원을 하던 때였는데. 이무렵 대통령은 퍽 자주 ‘카 퍼레이드’를 했고, 경인고속도로 들머리인 우리 학교는 틈나는 대로 길에 나란히 서서 대머리 대통령한테 손을 흔들어야 했다. 시위나 데모라는 말을 모르던 국민학생 때, 남동공단이나 만석동 쪽을 버스 타고 지나갈 때 으레 최루탄 냄새로 재채기를 했고, 동인천역 앞에 버스가 뚝 끊기고 고갯마루에 돌이 어마어마하게 깔린 모습에 등골이 오싹했다. 학교와 집과 신문방송에는 한 마디도 안 나온 ‘민주찾기 싸움’이 벌어지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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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해 앞서 쓴 글입니다. 짧게 쓴 글에서 제 마음을 이렇게 짧게 적바림할 수 있는 매무새를 잘 추슬러야겠다고 다시금 되뇝니다.) 



 헌책방 헌책 느끼기


 나한테 즐거움과 기쁨을 베풀어 주는 온갖 책을 마음 가볍게 만날 수 있는 곳이 헌책방이라고 느낍니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나한테 즐거울 책을 찾는 가운데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곳이 헌책방이라고 느껴요. 해묵은 책이건 낡은 책이건 빳빳한 책이건 크게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느 책이건 나 스스로 내 손에 집어들어서 반갑게 읽을 수 있다면 나한테 좋은 책이라고 믿습니다. (4339.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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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 삶쓰기 빨래하기


 아이는 이제 오줌을 잘 가린다. 그런데 아이가 앉는 변기가 작은지 요새는 변기에 오줌을 누어도 자꾸 샌다. 아이가 나날이 크기 때문에 아이 스스로 변기에 얌전히 앉고 바지도 제대로 내려야 하는데, 이렇게 안 하고 아무렇게나 앉아서 쉬를 하면 엉덩이며 허벅지며 바지며 다 튄다. 오늘 하루만 속바지 세 벌과 겉바지 두 벌을 버렸다. 오줌을 가려 빨래감이 줄었다 싶더니, 이제는 이렇게 새로운 빨래감을 쏟아낸다. 오줌으로 젖은 바지를 들고는 짜증을 낸다 한들 어쩔 길이 없다. 아이보고 바가지라도 뒤집어쓰고 소금 얻어 오라고 꾸중하지만, 이런다고 아이가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가뜩이나 물이 얼어 멀리 물을 길어오는 데까지 가서 빨래를 해야 하는데, 자꾸 빨래감이 나오면 속이 아프고 힘들다. 예전에는 아이가 오줌을 누어도 “그래, 잘 눠.” 하고 말한다든지 가만히 다른 일을 해도 되었으나, 이제는 밥을 하다가도 뭐를 하다가도 허리가 아파 살짝 드러누워 쉬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아이를 변기에 제대로 앉혀야 할 뿐더러, 쉬를 눈 아이 밑을 닦아야 한다.

 겨우겨우 아이를 재워 놓고는 느즈막한 저녁나절 아빠는 글조각 하나라도 건사해 볼까 싶어 셈틀을 켜는데, 멍하거나 띵할 뿐 도무지 손을 쓰지 못한다.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 보기도 하고, 멀뚱멀뚱 앉기도 하지만, 좀처럼 새마음을 차리지 못한다. 살림하는 어머니들한테는 책읽기라든지 글쓰기라든지 꿈조차 꿀 수 없던 일이었을까. 책이고 글이고 뭐고 돌아볼 겨를 없이 바빠맞을 뿐 아니라, 어쩌다가 숨돌릴 겨를을 얻었달지라도 숨마저 못 돌리며 밤하늘 별바라기를 하며 한숨을 쉴 뿐인가. 아이 옆에 다시 드러누워 잠들고도 싶지만, 밤새 아이 기저귀를 갈며 잠을 뒤척일 테고, 새벽나절 일어나서 맑은 넋으로 글조각 조금 붙잡는다 하더라도 아이는 다시금 일찌감치 깨어나 아빠하고 놀자고 옷소매를 붙들겠지.

 잠든 아이 기저귀를 채우는데 퍼뜩 깬다. 한동안 다시 잠들지 못하기에 가슴에 귀를 대고 토닥토닥거리다가는 “쉬 마렵니?” 하고 물으니, “응, 쉬 마려.” 한다. 기저귀를 푼다. 변기에 얌전히 앉힌다. 쉬를 깨끗하게 누도록 해 준다. 밑을 닦는다. 자리에 눕히고 기저귀를 채운다. 아이는 눈을 살며시 떴다가 감았다 한다. 다시 아이 가슴에 귀를 대고 통통통 뛰는 소리를 듣는다. 아이는 아빠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어 준다. 이윽고 일어나서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는 무거우면서도 보드랍게 눈을 떴다가 감는다. 깨어나려나 마려나. 허, 아이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하며 돌아앉는다. 아이 숨소리가 고르게 들린다. 문득 뒤돌아본다.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었다. 고마우면서 미안하다. 아이 이마에 입을 맞춘다. 아빠도 졸립다. 아무래도 함께 쓰러져야겠다. 달리 어떻게 할 수 없다. (4344.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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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만들기


 주말에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가는 김에, 일산 옆지기 어버이 댁에 들르기로 한다. 옆지기 어버이 댁에 들르기 앞서, 선물로 드릴 사진을 만든다. 첫딸 사름벼리가 시골집에서 복닥이며 노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큰 녀석과 작은 녀석 두 가지로 만든다. 사진찍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사진 선물. 글쓰는 사람한테는 구슬땀 흘려 내놓은 책이 가장 좋은 선물이 되겠지. 왜냐하면 사진찍기와 글쓰기를 빼고 딱히 내놓을 만한 재주가 없고 돈도 없으니까. (4344.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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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걱별


 밤과 새벽에 일어나 아이 오줌기저귀를 갈아 준 다음, 아빠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쉬를 눕니다. 찬겨울 찬새벽이지만 꽤 따스하다고 느낍니다. 모처럼 시골집에 아이 이모랑 삼촌이 찾아와서 하룻밤 함께 자기 때문일까요. 초롱초롱 빛나는 밤하늘 별을 보다가 굵직한 일곱 별이 반짝이는 북두칠성을 올려다봅니다. 저 별을 어릴 적에 무슨 별이라고 들었던가. 주걱별이었나? 국자별이었나? 물바가지별이었나?

 손잡이가 달린 물바가지처럼 생겼다 했고, 도시에서도 쉽게 알아보았을 뿐더러, 늦게까지 동무들하고 놀다 보면 어김없이 올려다보던 별입니다. 국자별만큼은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도 밝은 빛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우리 아이한테도 저 국자별인지 주걱별인지 물바가지별인지를 보여주었던가? 아빠가 아이한테 저 별 이름을 국자별이라 가르쳐 준다면 아이는 국자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서 크겠지요. 아빠가 아이한테 요 별은 이름이 주걱별이라 이른다면 아이는 주걱별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새기면서 자라겠지요.

 아빠 마음대로 아무 이름이나 붙일 수 있습니다. 아빠 마음대로 아무 이름이나 붙이는 일은 자칫 두렵습니다. 아빠는 아빠가 살아온 마음에 따라 가장 살가우면서 아름답다 느끼는 이름을 곱새기면서 고운 이름으로 별 하나 이름을 붙여 아이하고 즐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쉬를 눈 텃밭에는 마당에 쌓인 눈을 눈삽으로 퍼서 뿌립니다. (4344.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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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1-03 08:47   좋아요 0 | URL
저에겐 칠형제 별이었어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숲노래 2011-01-03 08:49   좋아요 0 | URL
네, 바라보는 곳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르게 생각했을 테니까, 다 다른 이름들이 저마다 예쁘리라 생각해요.

새해에 즐거우며 반가운 일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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