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우리 아이들을 (2023.4.28.)
― 인천 〈그루터기〉
한봄이 깊어 늦봄으로 접어드는 즈음에는 덩굴풀과 덩굴나무 잎이 반짝반짝 새로 퍼지며 고와요. 덩굴잎도 나물입니다. 갓 돋으면 그대로 훑고, 살짝 길게 뻗으면 데쳐서 누립니다. 둘레에서는 두릅싹을 많이 즐기는 듯싶은데, 찔레싹도 더없이 빛나는 봄나물이에요. 갓 돋는 감잎도 느티잎도 싱그러이 나물입니다.
우리가 못 먹을 풀은 없습니다. 조금 센 풀은 있을 테지만, 세면 센 대로 여리면 여린 대로 이바지하는 풀이에요. ‘풀어’ 주기에 풀이요, 온누리를 ‘품’기에 풀입니다. 봄날 풀밭에 드러누우면 봄빛이 우리를 품는 숨결을 누릴 만합니다. 예부터 모든 아이어른은 맨발로 걷고 맨손으로 쥐면서 온몸을 푸르게 물들였어요.
다만 임금과 나리와 벼슬아치는 온몸을 치렁치렁 감싸고 해를 등진 채 감투를 썼어요. 맨발도 맨손도 아니던 이들은 ‘먹물’이고, 우리가 읽는 ‘역사책’에 이름이 남을는지 모르나, 이들한테서는 ‘삶·살림·사랑’이 없어요.
인천 그림책집 〈그루터기〉로 걸어가는 길에 인천시청 앞을 지나갑니다. 시청 둘레 길나무에 걸개천이 잔뜩 달립니다. 왜 나무줄기에 걸개천을 맬까요? ‘플라스틱끈’으로 감긴 나무는 앓습니다. 아무리 뜻있는 글을 걸개천에 담더라도, 나무줄기에 친친 감는다면 부질없어요. 살림이 아닌 죽음글 같습니다.
하루를 여는 길이란, 언제나 햇빛이요 바람결입니다. 시골도 서울도 해가 뜨고 구름이 흐르고 비가 내리기에 누구나 숨쉴 수 있어요. 해바람비는 풀꽃나무를 푸르게 물들이고, 우리는 맨몸으로 풀내음을 머금으면서 앙금을 풀어 서로서로 품는 사랑을 숲빛으로 나눌 만합니다. 그림책이라면 모름지기 숲살림을 그려야지 싶습니다. 노래꽃(시)이라면 언제나 숲바람을 옮겨야지 싶습니다.
올해는 봄비가 잦으면서 하늘이 무척 맑아요. 지난 열 몇 해 사이에 3∼5월은 이른더위였어요. 올해는 새롭게 나아가는 하늘길을 밝히는 봄비가 적셔 줍니다. 그러니까, ‘초록·녹색’이 아닌 ‘풀빛’을 말할 노릇입니다. 하늘빛인 ‘파랑’이라는 빛깔은 ‘늘사랑’을 밝히는 숨결이라는 대목을 아이들하고 나눠야지 싶어요. 타오르는 빛깔인 ‘빨강’은 불길(열정·분노)이기에 살림하고는 멀어요.
그림책에 담는 글이 노래(시)입니다. 노래는 신나게 놀 적에 부릅니다. 놀이는 살림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이 불러요. 어버이는 서로 사랑으로 마주하며 보금자리를 일구지요. 늦는 글이나 길은 없습니다. 모든 글이나 길은 제때에 태어나요. 이 글 한 자락은 이웃님한테 바람길을 타고서 사뿐히 내려앉는 봄글이 되고, 마음길을 열어 줄 테지요. 온누리 우리 아이들이 실컷 놀고 노래할 수 있기를 바라요.
ㅅㄴㄹ
《작은 임금님》(미우라 타로/황진희 옮김, 비룡소, 2023.1.26.)
《야마시타는 말하지 않아》(야마시타 겐지 글·나카다 이쿠미 그림/김보나 옮김, 청어람미디어, 2023.3.18.)
《헤이즐의 봄 여름 가을 겨울》(피비 월/신형건 옮김, 보물창고, 2023.4.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