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놀틈 (2023.6.9.)

― 부산 〈오래서점〉



  모든 길은 ‘첫걸음 + 두걸음’이라고 느낍니다. 왼발이건 오른발이건 첫발을 내딛고서, 다른 발로 새발을 뻗습니다. 두 발을 나란히 디디면서 새길을 나아갑니다. 외발로도 걸을 수 있을 테지만, 왼발·오른발을 나란히 옮기지 않을 적에는 기우뚱하거나 흔들리거나 쓰러지거나 자빠지기 좋습니다.


  새는 왼날개·오른날개를 나란히 펼쳐서 바람을 탑니다. 나비도 두 날개를 팔랑여요. 그런데 우리는 ‘둘’이라는 대목을 자꾸 놓치거나 멀리하거나 싫어하기까지 합니다. 내가 왼쪽에 서면 너는 오른쪽에 섭니다. ‘나’를 마주하는 쪽이기에 ‘너’이거든요. 내가 오른쪽을 걸으면 너는 왼쪽을 걷지요. 마주보는 둘은 ‘선자리’가 달라 보일 뿐, 언제나 같습니다.


  내 마음대로 네가 따라와야 하지 않고, 네 뜻대로 내가 따라가야 하지 않아요. 다만, 둘은 이야기를 할 적에 즐겁습니다. 우리말 ‘이야기 = 말을 잇는 길 = 주고받는·나누는 말’을 나타냅니다. 혼자만 떠들면 이야기일 수 없이 혼잣말입니다. 나도 말하고 너도 말하면서 생각을 이어가는 길을 살리려 하기에 이야기입니다.


  어른이란 사람이 있으려면 반드시 아이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라는 숨결이 빛나려면 꼭 어른이란 숨빛이 철들어야 합니다. 어른은 아이 곁에 있기에 슬기로이 살림을 짓고, 아이는 어른하고 함께살기에 즐겁게 사랑을 노래합니다.


  부산 〈오래서점〉으로 마실을 갑니다. 부산 사상나루에 내려 길을 어림하자니, 338버스를 타고서 하단나루로 건너갈 만하군요. 하단나루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면 〈오래서점〉 가까이에 내립니다. 책집이 깃든 곳은 새로 터를 닦고서 높이높이 잿집을 올리는 마을이지 싶어요. ‘새마을’에 ‘오래책집’이란 새삼스레 어울립니다. ‘새로 올리는 마을’이니 ‘오래 헤아리는 마음’을 심을 만해요.


  서울(도시)에 깃들어 일자리를 찾건, 시골에 스며들어 논밭을 품든, 우리는 먼저 놀틈을 누릴 노릇입니다. 적어도 세 해를 실컷 놀거나, 열 해쯤 느슨히 놀아 본 사람들은 오래오래 아름다이 일할 만해요. ‘놀틈’을 모르는 사람은 이웃하고 일할 적에 ‘쉴틈’을 내지 않게 마련이라, 서로 지치고 고단해요.


  놀틈을 누리는 어른이기에 아이들도 곁에서 함께 느긋이 놀면서 풀꽃나무랑 해바람비랑 들숲바다를 품으면서 마음을 가꿀 수 있어요. 놀틈을 누리는 어른이라면 이 삶이란 날마다 새롭게 배우면서 꿈을 사랑스레 씨앗으로 마음에 묻어서 서로서로 생각을 밝혀 활짝 웃음짓는 ‘별잔치’인 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놀려고 이 별에 태어났습니다. 느긋이 잘 논 사람들이 사랑을 맺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ㅅㄴㄹ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구로카와 유지/안선주 옮김, 글항아리, 2022.3.11.)

《나의 원피스》(니시마키 가야코/손정원 옮김, 한국몬테소리, 2001.1.5.)

《양치기 바바주》(안네트 티종·탈루스 테일러 글·그림/글샘터 옮김, 빛샘, 2012.1.20.)

《바바브라이트의 시계》(안네트 티종·탈루스 테일러 글·그림/글샘터 옮김, 빛샘, 2012.1.20.)

《바바보의 멋진 항아리》(안네트 티종·탈루스 테일러 글·그림/글샘터 옮김, 빛샘, 2012.1.20.)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김종철, 개마고원, 1999.4.5.)

《李庸岳詩全集》(이용악, 창작과비평사, 1988.6.15.)

《달넘세》(신경림, 창작과비평사, 1985.10.10.)

《조국의 하나다》(김남주, 실천문학사, 1987.11.15.첫/1993.12.15.개정판)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윌리엄 스테이그/박향주 옮김, 한국프뢰벨주식회사, 1994.9.첫/2022.4.2.중판)

《우리 정말 친한 단짝 친구!》(로렌 차일드/문상수 옮김, 국민서관, 2010.10.25.)

《걱정 마, 정말 정말 조심할게!》(로렌 차일드/김난령 옮김, 국민서관, 2009.3.20.)

《나 정말 아프단 말이야》(로렌 차일드/김난령 옮김, 국민서관, 2008.2.25.)

《내가 이겼어, 아냐 내가 이겼어!》(로렌 차일드/김난령 옮김, 국민서관, 2008.11.25.)

《진짜야, 내가 안 그랬어》(로렌 차일드/김난령 옮김, 국민서관, 2007.3.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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