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포근히 (2023.1.26.)

― 순천 〈책방 심다〉



  아이들 옷가지를 장만하려고 순천에 나온 길입니다. 〈책마실〉에 먼저 들르고서 〈책방 심다〉로 찾아가는데, 들목에 종이 한 자락이 붙습니다. 길게 쉬는 줄 알았으나 슬쩍 들렀는데 아직 새로 열려면 멀었군요(그러나 6월에 이르러 새롭게 열었습니다).


  고흥에서 순천으로 건너오는 시외버스에서 쓴 노래꽃이며 주섬주섬 글월집(편지함)에 얹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책집 앞 ‘필름뽑기’를 물끄러미 들여다봅니다. 저는 필름찰칵이를 쓰던 무렵에 ‘일포드’를 썼습니다. 바탕은 ‘감도 400’이되 ‘1600 띄움’을 할 수 있는 필름이었어요. 그런데 일포드 필름을 쓰는 사람이 드물고 다들 ‘티맥스’를 쓰는 터라, 일포드 필름을 장만하려면 미리 말을 넣어 서른이나 쉰쯤 받았습니다. 예전에는 부쳐 주지 않았으니 필름집에 꼬박꼬박 찾아가서 값을 치르고서 받았어요. 얼추 이레마다 새로 샀습니다.


  남다르게 하려면 무엇이든 어렵다지만, 나답게(나대로) 하려면 안 어렵지 싶어요. 찰칵이를 손에 쥘 적에도 ‘니콘·미놀타·캐논’ 세 가지를 다 다뤄 보고서 제 눈과 빛에 맞는, 여기에 주머니에 맞는 아이로 갈무리했습니다. 중형·대형·파노라마를 쓰고픈 마음도 있었으나, 주머니에 맞추어 더 뻗지 않았습니다.


  저는 책집마실을 하면서 책집만 찍었기에, 필름값보다 책값을 더 쓰는 살림이었고, 책을 미루며 찰칵이를 살 수 없는 터라, 마지막으로 캐논찰칵이가 숨을 거둔 날, 어쩌나 하고 눈물지으니, 오랜 벗님이 “우리 아버지가 쓰던 찰칵이를 빌려줄 테니까 받으라”고 하면서 니콘찰칵이를 물려주었어요. 캐논을 쓰다가 니콘을 쓰니 허벌나게 잘 받고 잘 나오더군요. 책집을 빛꽃(사진)으로 담을 적에 필름으로는, “니콘 + 일포드 400을 1600으로 높인 결”이 가장 어울렸다면, 디지털로는 “캐논 100디 + 자연광”이 가장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빛결은 ‘-1 또는 -1.5’로 조금 어둡게 하고, 디지털은 되도록 ‘감도 100’을 지키면서 셔터값을 낮춥니다.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책을 읽다가 덮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서 지난날을 되새기고, 오늘 걷는 하루를 돌아봅니다. 그동안 달린 길은 무엇이었는지 곱씹습니다. 바쁠 적에는 그저 달리기만 해도 즐겁더군요. 바쁘게 달리면서 모든 앙금을 훌훌 털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오늘은 늘 아이들한테 맞추어 살아가는데,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맞추는 길이란 ‘어버이다움’이지 싶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서 사랑을 배워서 깨닫고, 아이는 사랑을 깨달은 어버이한테서 살림을 물려받습니다. 포근히 밤빛을 맞아들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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