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멀리 가까이 (2023.6.10.)

― 부산 〈파도책방〉



  멀리멀리 갈 적에만 나들이(여행)일 수 없습니다. 마당에 내려서는 발걸음도 나들이입니다. 마루하고 부엌을 오가는 길도 나들이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는 바람을 한 줄기 쐬면서 볕바라기를 하는 살림도 나들이예요.


  날개를 타고서 옆나라로 가야만 나들이라 할 만하지 않습니다. 사뿐히 거닐며 골목마실을 할 적에도, 저잣마실을 다녀올 적에도, 우리 스스로 즐거이 빛내는 하루마실이자 하루길입니다. 마을책집을 찾아가는 길, 이른바 책마실하고 책길도 새롭게 마음을 틔우거나 밝히는 놀잇길이에요.


  붓을 쥐어 글 한 자락을 쓸 적에, 여태 아무도 안 썼다고 여길 만한 놀랍거나 대단하다 싶은 글감을 찾아내야 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으레 쓸 만한 ‘삶’이라는 한 마디를 글감으로 삼아 ‘오늘 하루 이야기’를 쓸 만합니다. ‘나’라는 한 마디를 글감으로 놓고서 ‘내가 바라보는 여름’을 쓰면 되어요.


  먼먼 곳에도 이야기가 틀림없이 있습니다. 우리 집이며 마을에도 이야기가 흐릅니다. 멧새가 들려주는 노래에도 이야기가 감돕니다. 풀벌레가 속삭이는 가락에도 이야기가 번집니다. 구름 한 송이랑 꽃잎 하나에도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눈을 틔우기에 이야기를 알아봅니다. 마음을 열기에 이야기를 들어요. 생각을 키우기에 이야기씨앗을 심고, 사랑을 나누면서 이야기꽃을 두런두런 지핍니다.


  보수동 〈파도책방〉에 깃듭니다. 〈파도〉 지기님이 자리를 지키기도 하지만, 책집지기가 자리를 비운 ‘혼책집(무인책방)’으로 있기도 합니다. 여름볕은 후끈후끈 보수동 책골목으로 내리쬡니다. 골목집 마당에서 해를 먹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골목길 한켠에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서 같이 해를 보는 길꽃을 들여다봅니다. 책 한 자락을 손에 쥐고서 슬슬 넘기다가, 볕이 드는 밖으로 나와서 책에 햇볕을 씌워 줍니다.


  우리 가까이에는 무엇이 있는가요? 우리는 곁에 어떤 숨결이 자라도록 북돋우나요? 손길을 탄 책이 새롭게 읽힐 날을 기다립니다. 미처 손길을 타지 못 한 채 잊힌 책이 비로소 읽힐 날을 기다리는군요. 모든 책은 다 다른 사람들이 온누리를 다 다르게 사랑하면서 지핀 살림새를 품습니다. 우리는 다 다른 책을 다 다른 눈길로 읽으면서 다 다른 이야기를 새록새록 담아 놓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책은 앞으로 열 해 뒤에 누가 새롭게 읽어 줄까요? 앞으로 서른 해쯤 뒤에 이 책은 누구 손길을 타면서 빙그레 웃음지을까요? 저 멀디먼 데에서 찾아오는 별빛이 밤에 반짝이고, 이 가까운 곳에서 살랑이는 들풀이 낮에 푸르게 춤춥니다.


ㅅㄴㄹ


《내 방 여행》(자비에르 드 메스트르/장석훈 옮김, 지호, 2001.4.10.)

《그 섬에 내가 있었네》(김영갑, Human & Bokks, 2004.1.20.첫/2010.8.9.16벌)

《스파시바, 시베리아》(이지상, 삼인, 2014.8.10.)

《가까이》(이효리, 북하우스, 2012.5.24.첫/2012.6.8.3벌)

《新潮世界文學 19 トルストイ 4》(トルストイ/木村 浩 옮김, 新潮社, 1970.6.20.첫/1975.6.15.3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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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책으로 (2023.7.21.)

― 인천 〈책방건짐〉



  숲노래 씨는 어버이한테서 ‘최종규’란 이름을 받았으나, 열아홉 살 무렵부터 ‘함께살기’란 이름을 지어서 썼고, 서른아홉 살 무렵부터 ‘숲노래’란 이름을 지어서 씁니다. 다만, 법원에 가서 이름을 고치진 않았어요. 이름쪽(주민등록증)을 종이에서 플라스틱으로 바꾸던 무렵을 떠올리는 분이 있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입니다만, 푸른별에서 ‘사람줄(주민등록번호)’을 쓰는 나라는 오직 둘입니다. 사람한테 ‘셈값(숫자)’을 매겨서 부르는 곳은 ‘사슬터(감옥)’인데,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이름 아닌 셈값’으로 가리키려고 하는 나라(정부·사회)에 길들 적에는 우리 넋을 스스로 잊고 잃다가 나라한테 바칩니다. 〈센과 치히로가 사라지다〉라는 보임꽃(영화)에 이름을 둘러싼 이야기가 잘 나옵니다. 그들(권력자)은 우리 이름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우리 이름이 ‘순이’이건 ‘돌이’이건 ‘꽃님’이건 ‘별님’이건, 우리 이름에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르게 빛나면서 이 푸른별에서 삶을 짓는 숨씨앗이 깃들거든요.


  오늘 인천으로 가려고 밤 한 시부터 이모저모 꾸립니다. 아침 일곱 시 시골버스로 읍내에 갑니다. 읍내에서 서울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노래꽃(시)을 씁니다. 08시 30분 버스는 빠른길(고속도로)을 달리다가 한참 섭니다. 길에 수레도 많고, 곳곳에서 꽝꽝 부딪혔나 봐요. 겨우 서울에 내려 인천으로 쇳길(전철)을 갈아탔고, 인천예술회관에서 내리니, 드디어 여덟 시간에 걸친 맴돌이가 끝납니다.


  천천히 햇볕을 쬐며 〈책방건짐〉으로 갑니다. 책집지기님은 어떤 마음과 눈빛으로 ‘건지다’라는 말씨를 품으셨을까요? ‘건사·간직·거느림·건듦’ 같은 낱말을 헤아리다가 ‘거’를 뿌리로 ‘걷다·건지다’가 하나요, ‘가다’하고도 만나는구나 느낍니다. ‘건지다 = 건(거는 손) + 지(짓는 길)’가 얽힌 말씨입니다.


  어떤 책이 우리 살림길에 이바지하는지 굳이 말할 까닭은 없되 즐겁게 수다를 떨 만합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책이 스스로 살립니다. 스스로 노래하는 책이 스스로 빛냅니다. 마을이란, 마음을 모아 어우러지는 곳입니다. 책이란,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하루로 보금자리를 이룬 즐거운 하루를 나누는 글꾸러미입니다.


  사랑으로 눈을 뜨면서 책을 읽는 사람은 마을을 읽습니다. 살림을 하면서 책을 나누는 사람은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숲을 노래하면서 책을 쓰고 엮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별씨앗 한 톨로 만납니다. 인천에 이제 잿집(아파트)을 그만 짓기를 바라요. 골목집마다 흐르는 사랑빛을 알아보고서 푸른빛을 풀어내기를 빕니다.


ㅅㄴㄹ


《말할 수 없지만 번역하고 있어요》(소얼, 세나북스, 2023.4.20.)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은유, 읻다, 2023.6.1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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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랑 (2022.9.19.)

― 서울 〈서울책보고〉



  새벽바람으로 고흥을 떠난 버스는 한낮에 서울에 닿습니다. 바로 전철을 갈아타고서 천호동 쪽으로 갑니다. 〈강동헌책방〉을 찾아가는데 마침 아직 안 엽니다. 둘레에 있는 〈현대헌책방〉으로 걸어갑니다. 책을 한 꾸러미 장만하고서 전철나루로 걸어갑니다. 이제 잠실나루에 닿아 〈서울책보고〉로 갑니다.


  푹푹 찌는 여름이라지만, 사람들은 입가리개를 용케 하고도 견딥니다. 가만히 돌아보자니, 숲노래 씨는 2005∼06년에 충북 충주에서 서울로 이레마다 두바퀴(자전거)로 오갈 적에 길에서 으레 입가리개를 했습니다. 쇳덩이(자동차)가 내뿜는 방귀로 숨막혔거든요. 요즈음은 돌림앓이 때문에 입가리개를 한다고들 하지만, 매캐바람(배기가스·공해)이야말로 우리 목숨을 갉아요.


  고뿔은 누구나 걸릴 만합니다. 몸살도 누구나 걸릴 수 있어요. 때로는 몸을 앓고서 푹 쉬고서 말끔히 낫습니다. 우리는 ‘앓기’에 ‘나을’ 뿐 아니라 한결 튼튼합니다. 앓지 않으면 ‘알지’도 않습니다. 사람도 새도 벌레도 헤엄이도 처음에는 더없이 작은 ‘알’이에요. 암수가 서로 다른 작은 알을 하나로 여미어 새빛으로 나아가려 하면서 새숨(아기)이 ‘한알(하나로 여미는 사랑을 품은 알)’로 깨어날 수 있습니다. 알이란, 앓는 동안 고요히 꿈꾸면서 새길로 나아가려는 몸짓이에요. 돌림앓이나 몸살이나 고뿔은 두려울 일이 아닙니다. 스쳐 보내면 될 뿐입니다.


  곰곰이 보면, ‘등돌림(무심·무관심)’으로 넘는 ‘줄(선)’은 고단하지만, ‘사랑을 다하는 마음’으로 ‘금(분단·분열)’을 녹이고 허무는 ‘너머(넘기)’는 아름답고 반가워요. 돌림앓이를 핑계로 모든 사람 입을 틀어막는 짓은 ‘금긋기’이자 ‘괴롭힘질’이라고 느낍니다. 서로서로 등돌리면서 손가락질을 일삼는 바보짓으로 치닫는 굴레이자 종살이라고 느낍니다.


  이웃이 아프기에 이웃한테 다가가서 토닥토닥 사랑을 폅니다. 한집살림을 짓는 피붙이가 앓으면 보금자리를 더욱 정갈히 여미고 바깥바람하고 햇볕을 끌어들여서 말끔하게 돌봅니다. 우리는 해바람비를 품기에 맑고 튼튼하며 밝습니다. 몸도 마음도 해바람이를 품는 길을 바라보아야 눈길을 틔우고 마음씨를 가꿔요.


  두려울 일이란 없고, 무서울 까닭이란 없어요. 눈을 감고서 바라보면 모든 일은 새롭고, 사랑으로 눈을 뜨고 마주하면 언제나 설렐 하루예요. 책사랑이란, 아무 책이나 덥석 읽는 몸짓이 아닙니다. 책사랑이란, 어느 책이건 사르르 녹일 줄 아는, 금도 허울도 담벼락도 부드러이 녹여서 상냥히 이야기를 건네는 몸짓입니다. 책사랑이란, 삶을 사랑으로 읽는 살림살이를 글 한 자락으로 나누려는 이음길입니다.


ㅅㄴㄹ


《時間의 손》(민용태, 문학사상사, 1982.12.10.첫/1984.2.29.3벌)

《革新의 理念》(피터 F.드루커/유호선 옮김, 을유문화사, 1961.3.20.)

《충청도여 시인이여·새여울 11집》(임강빈 외 14인, 청하, 1986.12.20.)

《피카소의 靑色時代》(김지현, 열화당, 1978.12.25.첫/1996.1.10.4벌)

《모나리자의 신비》(르네 위그/김화영 옮김, 열화당, 1979.1.10.첫/1997.8.10.5벌)

《오리 농법》(김광은, 서원, 1994.12.10.)

《럭치기》(이현세, 현대추리사, 1991.6.25.)

《21동행시 6집·함께 가서 좋은 길》(이경애 외, 아동문예, 1999.7.20.)

《농경얼 창간호》(편집부, 동국대학교 농과대학 농업경제학과, 1990.12.12.)

《韓國現代美術代表作家100人選集 11 金殷鎬》(김은호 그림·이구열 글, 문선호 기획·사진, 금성출판사, 1976.1.31.)

《韓國現代美術代表作家100人選集 12 朴得鎬》(박득호 그림·김인환 글, 문선호 기획·사진, 금성출판사, 1976.1.31.)

《세계 위인 전기 전집 4 링컨·간디·워싱턴·쑨원·처어칠, 국민서관, 1978.7.20.첫/1980.7.15.중판)

《세계 위인 전기 전집 13 마르코폴로·콜룸부스·마젤란·리빙스턴·아문센, 국민서관, 1978.7.20.첫/1980.7.15.중판)

《시골에서의 1년》(수 허벨/김기영 옮김, 출판사 뜰, 2005.2.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지난 2022년 9월 이야기를

이제 갈무리를 해서 걸쳐 놓는다.

지난해에 여미어 올리고 싶었으나

지난해 여름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통제사회'였던 터라

입을 다물기로 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좀 눈을 뜰까?

그동안 '입가리개'가 무슨 '통제와 강압'이었는지

조금이라도 '생각'을 할까?

아직도 생각을 못 하거나 안 한다면

우리는 그저 '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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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말이 사랑 (2022.10.23.)

― 부천 〈빛나는 친구들〉



  오늘 저녁에 부천 마을책집 〈빛나는 친구들〉에서 ‘우리말 수다꽃’을 펴기로 했습니다. 느긋이 서울로 달렸고, 전철을 갈아타고서 부천에 닿았고, 〈글 한 스푼〉을 들르고서 천천히 걸어 〈빛나는 친구들〉로 건너옵니다. 마을책집을 알려면, 책집이 깃든 마을을 느긋이 거닐 노릇입니다. 골목집마다 돌보는 골목꽃을 살펴보고, 골목나무에 내려앉는 골목새랑 놀고, 골목밭에 맺는 열매를 지켜보다가 빨랫줄을 슬쩍 바라보고는, 이윽고 구름밭을 올려다봅니다.


  부릉부릉 쇳덩이(자동차)를 달리면 더 멀리 빨리 가는 듯싶지만, 외려 더 느리면서 외곬이게 마련입니다. 걷거나 두바퀴(자전거)를 타기에 한결 빠를 뿐 아니라, 이웃과 마을과 하늘과 별을 누릴 수 있어요. 걷기에 꽃내음을 맡아요. 걷는 사람은 개미랑 잠자리랑 나비하고 동무합니다. 걷지 않으니 숲을 잊어버려요.


  열이면 열 사람 다 “안 추워요?” 하고 묻지만 “왜 추워요?” 하고 대꾸합니다. 숲노래 씨한테 “안 춥냐? 안 덥냐? 안 무겁냐?”고 묻는 분으로서는 뜬금없는 대꾸에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겠지요. 그렇지만 추울 일도 더울 까닭도 무거운 짐도 없습니다. 모든 삶은 바라보기에 따라 다릅니다. 나이가 드는 길을 바라보면 죽음길이에요. 새롭게 배우는 하루를 바라보면 살림길이지요.


  마음을 살찌우는 배움길로 삼으면 어느 책이건 배움책이요 삶책입니다. 부스러기(정보·지식)를 얻으려고 쥔다면 아름책조차 부스러기로 보일 뿐입니다. 올해에 써낸 《곁말》이란 책도, 지난해에 써낸 《쉬운 말이 평화》라는 책도, 앞으로 쓸 온갖 책도, 이웃님하고 나누고픈 마음은 늘 “쉬운 말이 사랑”입니다.


  쉽게 쓰는 말이란, 어린이하고 손잡는 말입니다. 수수하게 쓰는 말이란, 스스로 숲으로 피어나면서 마을을 품는 말입니다. 수더분하게 쓰는 말이기에, 즐겁게 수다꽃을 피우면서 수박 한 조각을 나누는 숨빛이 환해요.


  나도 빛이고, 너도 빛이니, 우리는 누구나 빛입니다. 너도 별이고, 나도 별이기에, 모든 숨결은 서로서로 별입니다. 사람이 디딘 이곳도 별이고, 사람 스스로도 별이며, 크고작은 뭇목숨도 다 다른 별이에요. ‘크기·덩치’라는 겉모습이 아닌, ‘넋·얼’이라는 속빛을 마주할 수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나란히 숲말을 주고받으면서 살림말로 노래하는 하루를 지을 만해요.


  이웃님이 ‘등단’이나 ‘신춘문예 수상’을 하지 않기를 바라요. 그저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살림을 짓고 사랑을 나누면서, 하루를 노래하는 오늘을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등단작가’는 허울입니다. ‘살림지기’이면 넉넉하고 아름다워요.


ㅅㄴㄹ


《하프》(레미 쿠르종/권지현 옮김, 씨드북, 2017.11.7.)

《쥐꼬랑지》(김윤희, 2022.늦여름.)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하현, 빌리버튼, 2019.2.2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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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넉넉한 햇볕 (2022.10.23.)

― 부천 〈글 한 스푼〉



  모름지기 마을이란, 사람만 모인 데가 아닙니다. 사람만 모인 데는 ‘서울’이란 이름입니다. 사람만 있지 않고 새랑 벌나비랑 풀벌레랑 풀꽃나무랑 어우러지면서, 흙이 있어 씨앗을 심을 뿐 아니라, 비도 바람도 해도 별도 내려앉을 틈새가 있기에 마을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부터 ‘마을·말’하고 ‘고을·골’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을’을 줄여 ‘말’인데, 들을 시원스레 달리는 짐승도 ‘말’이요, 우리 마음을 나누려고 소리로 옮길 적에도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지피는 자리가 ‘골(뇌)’이요, 셈으로 ‘10000’을 우리말로 ‘골’이라 합니다.


  모든 말은 얽히는데, 오랜 우리말을 멀리하거나 안 쓰거나 얕볼 적에는 우리 스스로 마음도 숨결도 넋도 잊어버리게 마련입니다. ‘터’하고 ‘터전’은 비슷하지만 다르고, ‘곳·데·자리·마당’도 비슷하되 다릅니다. 이런 낱말을 안 쓰고서 ‘도시·동네·촌·지역·지방·중앙·구역’ 같은 한자말에 얽매일 적에는 우리 스스로 생각까지 잃어버려요.


  넉넉히 드리우는 햇볕을 누리면서 〈글 한 스푼〉을 찾아갑니다. 책집 곁에 어린배움터가 있습니다. 어린배움터는 고즈넉합니다. 그리고 책집에서 멀잖은 송내나루 둘레는 온통 시끄럽고 지저분한 술집거리입니다. 술이 나쁘지는 않되 길바닥에 담배꽁초에 쓰레기가 수북하게 나뒹굴며 지저분하게 북적거리는 곳이 이렇게 어린배움터 가까이에 있어도 될까요?


  어린이는 무엇을 보면서 마음에 담을까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우리 터전을 어떻게 일구면서 어린이한테 물려주려는 셈일까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눈빛이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하루를 밝히면 넉넉합니다. 스스로 갉거나 낮추지 말아요. 보금자리부터 사랑하고, 마을을 나란히 사랑한다면, 푸른별도 사랑하게 마련입니다.


  언제나 모든 첫 글월(편지)은, “내가 나한테” 먼저 보여주고 보냅니다. 밥 한 술도, 글 한 자락도, 말 한 마디도, 스스로 새록새록 담고 누리기에 이웃하고 나누면서 싹틔울 만합니다. 모든 풀은 나물이면서 살림풀이자 푸른숨이에요. 모든 글은 빛이면서 노래이자 꿈이에요.


  아이가 어진 어른 곁에서 함께 놀고 일한다면, 어른도 언제나 일이면서 놀이로 누릴 만하지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에는 숲이 드넓게 있을 노릇입니다. 숲 곁에 골짜기랑 바다가 있을 노릇이요, 사이에 책집이나 책숲이 가만히 깃든다면, 서로 햇볕에 바람에 별빛을 듬뿍 누린다면, 이 삶이 반짝반짝하리라 생각해요.


ㅅㄴㄹ


《MR WUFFKES!》(David Wiesner, Andersen press, 2013.)

《Walt Disney's Dumbo》(Ladybirds books, 1988.)

《칼 라르손의 나의 집 나의 가족》(칼 라르손 그림·폴리 로슨 글/김희정 옮김, 알마, 2021.12.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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