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노래를 쓸 틈 (2023.6.9.)
― 부산 〈비온후〉
어릴 적을 돌아보면 ‘어른 아닌 나이든 사람들 틈’에서 꼼짝을 못 하면서 휘둘리거나 굴렀어요. “저 사람들은 입으로는 스스로 ‘어른’이라 말을 하지만, 도무지 어른일 수 없잖아?” 하고 혼잣말을 했어요. 어린이가 들려주는 말을 가로막거나 내치거나 끊을 뿐 아니라 윽박지르고 때리고 밟는 ‘나이만 먹은 몸뚱이’는 그저 ‘늙은이’라고 느꼈습니다.
살을 쓰다듬거나 섞는다면 ‘쓰다듬’이나 ‘섞음’입니다. 쓰다듬이나 섞음은 ‘사랑’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른 아닌 늙은이’인 분들은 으레 “사랑의 매”라는 말을 내세워 어린이를 짓뭉갰습니다. 그들이 참으로 ‘사랑’을 안다면 “사랑매”라는 허울을 안 세우겠지요. 사랑은 주먹질도 발길질도 따귀질도 아니니까요. 사랑은 오직 사랑이요, 따스하고 넉넉하게 품는 숨빛이요 살림빛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시(詩)’는 중국에서 들여온 ‘수글(한자 문학)’입니다. ‘문학(文學)’은 일본에서 들어온 ‘수글(문학 권력)’이고요. 이제부터 우리 눈과 마음과 손과 숨결로 처음부터 하나씩 새롭게 바라보아야지 싶어요. 우리는 ‘말’을 하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하면서 ‘사람’으로서 ‘참’다이 ‘숲’을 품고 나누는 길을 걸을 노릇이지 싶습니다.
부산 명지에 있는 〈오래서점〉에서 망미에 있는 〈비온후〉로 건너옵니다. 부산도 무척 큰 고장입니다. 새하늬마높으로 넓어요. 이 넓은 고장에 깃들어 삶을 꾸리고 살림을 펴는 이웃님이 대단히 많습니다. 길바닥을 그득 메운 쇳덩이를 둘러보다가 생각합니다. 쇳덩이를 몰거나 탈 적에 ‘노래할 틈’이 있을까요?
잿집(아파트)은 안 나쁩니다만, 잿집에서 하루를 보내는 분들은 흥얼흥얼 콧노래에 춤사위에 어깨동무에 이야기꽃을 지피는가요? 글 한 자락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모든 글은 ‘마음을 그린 말을 그림으로 담은 무늬’입니다. 훌륭하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고약한 말은 없습니다. 말은 마음을 담을 뿐이에요. 마음이 고약하거나 괘씸할 수는 있되, 말은 그저 말이에요. 말은 마음을 고스란히 비춥니다.
예부터 쓴풀이 몸에 이바지한다고 했습니다. ‘쓴말’하고 ‘쓴글’이야말로 마음을 씻고 달래면서 사랑으로 보듬어서 새롭게 피우는 길동무 구실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듣기 좋게 하는 말’은 한자말로 ‘미사여구·감언이설’이라 하지요. ‘립서비스·레토릭’은 노래로 피어나지 않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너무 쓰다고 여길는지 몰라도, 우리는 쓰디쓴 풀과 말과 글을 넉넉히 받아들이면서 처음부터 하나씩 생각을 짓고, 하루를 그리고, 사랑을 일구어야 비로소 사람으로 서리라 봅니다.
ㅅㄴㄹ
《부산에 살지만》(박훈하, 비온후, 2022.2.28.)
《이름 없는 고양이》(다케시타 후미코 글·마치다 나오코 그림/고향옥 그림, 살림, 2020.4.22.)
《아버지의 레시피》(나카가와 히데코/박정임 옮김, 이봄, 2020.11.23.첫/2021.2.26.3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