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쉬운 말이 사랑 (2022.10.23.)
― 부천 〈빛나는 친구들〉
오늘 저녁에 부천 마을책집 〈빛나는 친구들〉에서 ‘우리말 수다꽃’을 펴기로 했습니다. 느긋이 서울로 달렸고, 전철을 갈아타고서 부천에 닿았고, 〈글 한 스푼〉을 들르고서 천천히 걸어 〈빛나는 친구들〉로 건너옵니다. 마을책집을 알려면, 책집이 깃든 마을을 느긋이 거닐 노릇입니다. 골목집마다 돌보는 골목꽃을 살펴보고, 골목나무에 내려앉는 골목새랑 놀고, 골목밭에 맺는 열매를 지켜보다가 빨랫줄을 슬쩍 바라보고는, 이윽고 구름밭을 올려다봅니다.
부릉부릉 쇳덩이(자동차)를 달리면 더 멀리 빨리 가는 듯싶지만, 외려 더 느리면서 외곬이게 마련입니다. 걷거나 두바퀴(자전거)를 타기에 한결 빠를 뿐 아니라, 이웃과 마을과 하늘과 별을 누릴 수 있어요. 걷기에 꽃내음을 맡아요. 걷는 사람은 개미랑 잠자리랑 나비하고 동무합니다. 걷지 않으니 숲을 잊어버려요.
열이면 열 사람 다 “안 추워요?” 하고 묻지만 “왜 추워요?” 하고 대꾸합니다. 숲노래 씨한테 “안 춥냐? 안 덥냐? 안 무겁냐?”고 묻는 분으로서는 뜬금없는 대꾸에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겠지요. 그렇지만 추울 일도 더울 까닭도 무거운 짐도 없습니다. 모든 삶은 바라보기에 따라 다릅니다. 나이가 드는 길을 바라보면 죽음길이에요. 새롭게 배우는 하루를 바라보면 살림길이지요.
마음을 살찌우는 배움길로 삼으면 어느 책이건 배움책이요 삶책입니다. 부스러기(정보·지식)를 얻으려고 쥔다면 아름책조차 부스러기로 보일 뿐입니다. 올해에 써낸 《곁말》이란 책도, 지난해에 써낸 《쉬운 말이 평화》라는 책도, 앞으로 쓸 온갖 책도, 이웃님하고 나누고픈 마음은 늘 “쉬운 말이 사랑”입니다.
쉽게 쓰는 말이란, 어린이하고 손잡는 말입니다. 수수하게 쓰는 말이란, 스스로 숲으로 피어나면서 마을을 품는 말입니다. 수더분하게 쓰는 말이기에, 즐겁게 수다꽃을 피우면서 수박 한 조각을 나누는 숨빛이 환해요.
나도 빛이고, 너도 빛이니, 우리는 누구나 빛입니다. 너도 별이고, 나도 별이기에, 모든 숨결은 서로서로 별입니다. 사람이 디딘 이곳도 별이고, 사람 스스로도 별이며, 크고작은 뭇목숨도 다 다른 별이에요. ‘크기·덩치’라는 겉모습이 아닌, ‘넋·얼’이라는 속빛을 마주할 수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나란히 숲말을 주고받으면서 살림말로 노래하는 하루를 지을 만해요.
이웃님이 ‘등단’이나 ‘신춘문예 수상’을 하지 않기를 바라요. 그저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살림을 짓고 사랑을 나누면서, 하루를 노래하는 오늘을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등단작가’는 허울입니다. ‘살림지기’이면 넉넉하고 아름다워요.
ㅅㄴㄹ
《하프》(레미 쿠르종/권지현 옮김, 씨드북, 2017.11.7.)
《쥐꼬랑지》(김윤희, 2022.늦여름.)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하현, 빌리버튼, 2019.2.2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