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이 넉넉한 햇볕 (2022.10.23.)

― 부천 〈글 한 스푼〉



  모름지기 마을이란, 사람만 모인 데가 아닙니다. 사람만 모인 데는 ‘서울’이란 이름입니다. 사람만 있지 않고 새랑 벌나비랑 풀벌레랑 풀꽃나무랑 어우러지면서, 흙이 있어 씨앗을 심을 뿐 아니라, 비도 바람도 해도 별도 내려앉을 틈새가 있기에 마을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부터 ‘마을·말’하고 ‘고을·골’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을’을 줄여 ‘말’인데, 들을 시원스레 달리는 짐승도 ‘말’이요, 우리 마음을 나누려고 소리로 옮길 적에도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지피는 자리가 ‘골(뇌)’이요, 셈으로 ‘10000’을 우리말로 ‘골’이라 합니다.


  모든 말은 얽히는데, 오랜 우리말을 멀리하거나 안 쓰거나 얕볼 적에는 우리 스스로 마음도 숨결도 넋도 잊어버리게 마련입니다. ‘터’하고 ‘터전’은 비슷하지만 다르고, ‘곳·데·자리·마당’도 비슷하되 다릅니다. 이런 낱말을 안 쓰고서 ‘도시·동네·촌·지역·지방·중앙·구역’ 같은 한자말에 얽매일 적에는 우리 스스로 생각까지 잃어버려요.


  넉넉히 드리우는 햇볕을 누리면서 〈글 한 스푼〉을 찾아갑니다. 책집 곁에 어린배움터가 있습니다. 어린배움터는 고즈넉합니다. 그리고 책집에서 멀잖은 송내나루 둘레는 온통 시끄럽고 지저분한 술집거리입니다. 술이 나쁘지는 않되 길바닥에 담배꽁초에 쓰레기가 수북하게 나뒹굴며 지저분하게 북적거리는 곳이 이렇게 어린배움터 가까이에 있어도 될까요?


  어린이는 무엇을 보면서 마음에 담을까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우리 터전을 어떻게 일구면서 어린이한테 물려주려는 셈일까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눈빛이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하루를 밝히면 넉넉합니다. 스스로 갉거나 낮추지 말아요. 보금자리부터 사랑하고, 마을을 나란히 사랑한다면, 푸른별도 사랑하게 마련입니다.


  언제나 모든 첫 글월(편지)은, “내가 나한테” 먼저 보여주고 보냅니다. 밥 한 술도, 글 한 자락도, 말 한 마디도, 스스로 새록새록 담고 누리기에 이웃하고 나누면서 싹틔울 만합니다. 모든 풀은 나물이면서 살림풀이자 푸른숨이에요. 모든 글은 빛이면서 노래이자 꿈이에요.


  아이가 어진 어른 곁에서 함께 놀고 일한다면, 어른도 언제나 일이면서 놀이로 누릴 만하지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에는 숲이 드넓게 있을 노릇입니다. 숲 곁에 골짜기랑 바다가 있을 노릇이요, 사이에 책집이나 책숲이 가만히 깃든다면, 서로 햇볕에 바람에 별빛을 듬뿍 누린다면, 이 삶이 반짝반짝하리라 생각해요.


ㅅㄴㄹ


《MR WUFFKES!》(David Wiesner, Andersen press, 2013.)

《Walt Disney's Dumbo》(Ladybirds books, 1988.)

《칼 라르손의 나의 집 나의 가족》(칼 라르손 그림·폴리 로슨 글/김희정 옮김, 알마, 2021.12.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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