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월간 토마토> 2024년 2월호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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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8


말을 모으자면 으레 걷는다. 걸으며 온누리를 보고 느끼고 담고 살필 적에, 온누리를 나타내는 말을 깨닫고 새롭게 배운다. 남들은 부릉부릉 앞서 달리지만, 낱말책을 여미려고 두 다리로 걷는다. 두 손으로 슥슥 종이에 적는다. 조금 번다 싶으면 책을 사들이니 살림돈은 으레 가난하다. 이런 삶길을 이 나라에서는 ‘저소득층’이라 일컫는데, 이름부터 바꾸면 눈길이 바뀔까? 늦꽃이 피듯 ‘가난꽃’이라고.



딸아들

국립국어원을 비롯해 여러 낱말책은 ‘아들딸’만 올림말로 삼는다만, 적잖은 사람들은 ‘딸아들’이란 낱말을 널리 쓴다. 이제 두 낱말 모두 올림말이어야지 싶다.


딸아들 (딸 + 아들) : 딸하고 아들. 딸하고 아들을 함께 가리키는 말. (= 아들딸. ← 자녀, 자식, 후예, 후손, 후대, 자손, 손孫, 손주, 손자, 손녀, 손자손녀, 자제子弟, 이세二世, 키드kid, 키즈, 존재)

아들딸 (아들 + 딸)  : 아들하고 딸. 아들하고 딸을 함께 가리키는 말. (= 딸아들)



늦별

해가 넘어가자마자 돋는 별이 있고, 한밤에 이르러 돋는 별이 있다. ‘이른별’도 ‘늦별’도 똑같이 별이다. 처음부터 잘 해내거나 이내 익숙하게 선보이는 사람이 있되, 오래오래 했어도 서툴거나 엉성한 사람이 있다. 이르니 이르다 여기고, 늦으니 늦다고 여긴다. 이르게 펴도 꽃이고, 늦게 돋아도 별이다.


늦별 (늦 + 별) : 1. 늦게 뜨거나 돋거나 나타나는 별. 2. 늦게 뜨거나 돋거나 나타나는 별처럼, 말·일·몸짓이 늦거나 서툴다고 여길 만하지만, 느슨하면서 느긋하게 말·일·몸짓을 다스리거나 다독이거나 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 늦꽃·늦게 핀 꽃. ← 만화晩花, 대기만성), 만성晩成, 미숙, 발달장애, 발달지연)



가난꽃

가난한 사람을 두고 ‘가난뱅이’라 하면서 낮잡곤 한다. 수수하게 ‘가난이’라고만 할 수 있을 텐데, 없거나 모자라거나 적으면 마치 나쁘다고 여기는 말씨이다. 한자말로 가리키는 ‘빈민·저소득층·무산자·영세민’도 다 낮춘다는 결이다. 돈이나 살림이 적더라도 나쁠까? 가난하면서 오붓하게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그래서 ‘가난꽃’이나 ‘가난별’처럼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가난꽃 (가난하다 + 꽃) : 가난한 꽃. 가난한 사람을 빗대는 말. 돈이 적거나 살림이 모자란 사람. 돈이나 살림을 넉넉하게 쓸 수 없는 사람. (= 가난하다·가난이·가난뱅이·가난님. ← 빈자, 무산無産, 무일푼, 빈곤, 빈한, 빈궁, 곤궁, 궁벽, 궁핍, 무전無錢, 궁하다, 저소득, 공황, 영세민)



뒷북치다

한창 할 적에는 조용하다가, 모두 끝나고서 불쑥 나서서 떠드는 사람이 있다. 함께 땀흘리며 모인 자리에서는 뒷짐을 지더니, 다 끝낸 자리에 뜬금없이 나서서 티내려는 사람이 있다. 뒷북인 셈인데, 혼자 돋보이려는 마음도 있겠지만, 한창이던 무렵에는 막상 알아차리지 못 한 터라 뒤늦게 알아차리고서 나서는 마음도 있다. 얄궂으면 ‘뒷북꾼’이요, 귀여우면 ‘뒷북아이’에 ‘뒷북노래’이다.


뒷북치다 : 하거나 누리거나 펴거나 있을 적에는, 안 하거나 안 누리거나 안 펴거나 없더니, 모두 끝이 난 뒤에 하거나 누리거나 펴거나 있으려고 움직이거나 나오거나 나서거나 떠들다. (= 뒷북·뒷북노래·뒷북이·뒷북아이·뒷북님·뒷북꾼·뒷북쟁이. ← 지각遲刻, 후발주자, 후순위, 지연遲延, 체납, 체불, 연체延滯, 연기延期, 지체遲滯, 시간관념이 없다, 나태, 안일, 태만, 불성실, 서서徐徐, 슬로slow, 둔감, 둔하다鈍-, 사후事後, 사후대책事後對策,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만년晩年)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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