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월간 토마토> 2024년 5월호에 실었다


..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11


봄에 피는 ‘매화’라는 나무에는 한자 ‘화(花)’가 이미 깃들어 ‘매화꽃’은 틀린말인데, 알아채는 분이 드물다. 곰곰이 보면 ‘매나무·매꽃’이다. 이른봄에 새가 쪼다가 떨어뜨린 매꽃을 줍는다. 새도 사람도 봄꽃을 누린다. 매꽃한테서는 매끄러우면서 말간 빛이 퍼진다.



단추

옛날부터 쓰는 말 그대로 ‘단추’라 하는 사람이 있고, 일본이 밀려든 뒤로 일본말씨 ‘부저(ブザ-)’를 그냥 받아들인 버릇대로 ‘버튼·버저’를 쓰는 사람이 있다. 달면, 눌러서 여미거나 닫되, 곰곰이 보면 속으로 담을 뿐 아니라, 서로 닿는다. 당기는 구실인 단추이기도 하다. 잘 다물었으니 단단하거나 든든하다. 조그마한 단추 하나로 곧추선다. 작은 단추를 여미면서 추스르고 추린다. 옷춤을 다스리거나 다독인다. 이제 ‘단추’한테는 ‘실마리’를 빗대는 셋쨋뜻으로 넓힐 만하다.


단추 (다 + ㄴ + 추 / 달다·닫다·담다·닿다·땋다·당기다 + 추키다·추리다·추스르다·춤·곧추) : 1. 덮거나 닫거나 여민 뒤에 가볍게 열려고, 천·옷·살림에 다는 것. 옷섶이나 옷자락 한쪽에 작게 구멍을 내어서 닫거나 여미는 길로 삼기도 하고, 암단추하고 수단추를 옷섶이나 옷자락에 따로 달아서 둘이 물리기도 한다. (← 버튼) 2. 알리거나 알거나 무엇을 움직이거나 하거나 일으키려고 누르는 것. (= 실마리. ← 버튼, 버저buzzer, 부저ブザ-, 벨bell, 스위치, 초인종招人鐘) 3. 잇거나 풀거나 맺거나 마치는 길목·실마리·수수께끼를 빗대는 말. (← 단서, 단초端初, 사단事端, 시초, 비결, 비방秘方, 비법秘法, 노하우, 치트키, 키key, 해결, 해결책, 관건, 대책, 묘수, 돌파구, 타개책, 해법, 솔루션, 정답, 해답, 답答, 답안, 방정식, 이슈issue, 쟁점爭點, 화두話頭, 두서頭緖, 힌트, 방위方位, 방향方向, 프로젝트, 계획, 정향定向, 예정, 기획)



밥옷집

남녘에서는 한자말로 ‘의식주’라 하고, 북녘에서는 한자말로 ‘식의주’라 한다. 남북녘은 서로 옳다고 티격태격한다. 그러나 굳이 둘이 다툴 까닭이 없다. ‘옷밥집’이나 ‘밥옷집’처럼 우리말을 쓰면 된다. 따로 하나만 올림말(표준말)이어야 하지 않다. ‘옷집밥’이나 ‘밥집옷’이라 해도 되고, ‘집옷밥’이나 ‘집밥옷’처럼 사람들 스스로 가장 마음을 기울일 대목을 앞에 넣으면서 말하면 된다.


밥옷집 (밥 + 옷 + 집) : 밥과 옷과 집. 살아가며 누리거나 가꾸거나 펴는 세 가지 큰 살림을 아우르는 이름. 살아가며 곁에 두는 살림살이. (= 밥집옷·옷밥집·옷집밥·집밥옷·집옷밥. ← 의식주, 식의주)



다살림

우리나라 둘레에 있는 일본이나 중국은 ‘나란살림’이 썩 흔하지는 않다. 영국이나 미국처럼 조금 먼 이웃나라를 보면 ‘무지개’처럼 여러 사람이 어우러지는 집이 퍽 많고 수수하기까지 하다. 겨레가 달라도 얼마든지 보금자리를 꾸린다. 겨레가 같아야만 보금자리를 꾸리지 않는다. 굳이 ‘다문화(多文化)’처럼 ‘다(多)’란 한자를 안 붙이더라도, ‘살림(문화)’이라는 낱말에 “여러 길·삶·눈”을 고루 담는 결이 스민다. 다만, 나라에서 따로 어느 집안을 가리켜야 한다고 여긴다면 새말을 지을 수 있고, 이때에는 ‘모두(다)’ 아우르는 이름을 붙인다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온살림’이나 ‘무지개’로 바라볼 만하다. ‘다·모두’를 붙인 ‘다살림’이라 할 만하다. 한자 ‘多’가 아닌, 우리말 ‘다’이다. 다 하나로 어우러지며 나란히 서는 살림이다.


다살림 : 다 있는 살림. 다 어우러진 살림. 다 만나는 살림. 어떠한 길·결·모습·삶·살림·넋·빛깔이든 함께 있거나 어우러지거나 만나는 살림. (= 나란하다·나란살림·무지개·온살림·온삶. ← 다문화多文化)

다살림집 : 어떠한 길·결·모습·삶·살림·넋·빛깔이든 함께 있거나 어우러지거나 만나는 살림으로 가꾸는 집. (= 나란집·무지개집·온살림집. ← 다문화 가정多文化 家庭)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